소설리스트

67화.새로운 대원과 여행의 출발 (68/278)

《새로운 대원과 여행의 출발》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난 하룬은 티노와는 별도로 마탑을 돌며 포션류를 비롯한 물건들을 구입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식사나 숙영은 개별적으로 하기로 했기에 준비할 것이 많았던 것이다.

 오후 늦게 여행 준비를 하러 시장에 들렀던 티노가 웬 여자 하나를 달고 왔다. 숙소 마당에서 짐을 늘어놓고 정리하던 아반 부녀의 눈에 호기심의 빛이 떠올랐다.

 “누구?”

 “대장을 찾아온 분이오.”

 샤니와 비슷한 나이로, 갓 성년이 넘은 나이의 여자는 담담한 눈으로 아반 일행에게 목례했다. 큰 키에 단발머리 그리고 선이 굵은 용모는 마치 미소년처럼 보였지만 풍성한 로브 사이의 굴곡이 뚜렷한 라인이 드러나는 것을 보니 여자가 확실했다.

 묘하게 여자면서도 남자의 매력을 가진 특이한 인상에 샤니의 눈이 빛났다.

 “난 샤니예요. 상인이지요. 댁도 거기를 가려고 하룬 대장을 찾아온 건가요?”

 “맞아요. 난 치료사 헤니라고 해요.”

 “그런데 어떻게 돌풍 용병대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거죠? 아니, 저 티노 부대장을 알고 있었나?”

 “아니요. 용병대 부대장인 줄은 몰랐어요. 이 앞에서 만난 걸요. 정보의 출처는 밝히기 곤란하네요.”

 아마 다른 사람들처럼 용병 길드 사무실에서 그 정보를 얻었으리라.

 “후훗, 안 밝혀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여행 준비는 했나요? 의뢰가 받아들여지면 내일 오후에 바로 출발할 건데요.”

 “그래요? 어떡하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헤니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돌풍 용병대의 정보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여행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우리와 같이 쓰면 돼요. 우린 준비를 아주 철저히 했거든요. 마법 배낭 네 개를 가득 채웠으니 같이 써도 남을 거예요.”

 샤니는 게임을 한 이래 처음 또래를 만나서인지 아니면 헤니의 첫인상이 좋았는지 한동안 수다를 떨더니 이내 말을 놓았고, 급기야는 그녀를 끌고 아반에게 데려가 인사를 시키는 등 각별한 호의를 보였다.

 두 아가씨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금방 친해져서 지켜보는 아반을 놀라게 했다. 샤니는 자신이 어렵게 가진 딸로, 성격이 너무 똑 부러지는 데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쉬 사람을 사귀는 성격이 아니었다.

 “별일이네.”

 아반은 묘한 눈길로 헤니를 쳐다보고는 이내 꼼꼼하게 준비한 물건들을 배낭에 챙겼다. 그중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몇백 골드나 나가는 스크롤들이 가득한 귀한 마법 배낭이었다.

 세 사람이 짐을 챙기는 사이 샤니와 헤니는 마당의 넓적한 바위 위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태생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은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샤니로서는 그동안 너무 심심하고 힘들었는데 헤니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다.

 “근데 너 하룬 대장하고 알아?”

 샤니의 물음에 헤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는 사람에게 이야기는 들었어. 지도가 있어도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던 후크란 산맥의 보석 광산을 찾아낸 사람이라지? 몬스터들의 서식지를 귀신같이 잘 알고 지형지세에 빠삭해서 별 위험 없이 그곳으로 안내했다고 들었어.”

 샤니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그 이야기는 나도 아빠한테 들었어.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간 동행했는데 확실히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거 같아.”

 “이곳까지 동행했다고? 어떻게 돌풍 용병대랑 만난 거야?”

 샤니는 자신의 정체만 빼고 약초 마을에서부터 알라미즈 산을 넘어 이곳까지 오게 된 동기와 계약 과정 그리고 그렇게 심한 빗속에서도 용케 길을 찾아낸 하룬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헤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황 박사를 통해 GM 수석 팀장에게서 나온 정보는 정확했다.

 ‘그는 확실히 비욘드의 풍운을 일으키거나 풍운의 핵에 근접한 인물이야. 용병치고는 정말 대단하네.’

 “어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룬이라는 용병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뭐가? 아, 생김새 말이지. 생긴 것은 별로야. 아니, 잘 모르겠어. 항상 긴 앞머리 때문에 얼굴 대부분이 가려져서 말이지. 면도도 안 하기 때문에 구레나룻도 그렇고 수염이 많아서 제대로 보이는 것은 눈밖에 없어. 평소에는 별로 눈이 가지 않는데 그 깊고 맑은 눈에서 한번 빛이 나오면 몸이 오싹해지고 요의尿意가 느껴진 정도로 무서워.”

 그 말에 헤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몇 살이나 되어 보이니?”

 “외모나 신분으로는 나이가 있는 듯한데 목소리가 맑은 것으로 보아서는 20대인 것 같더라고.”

 “그래?”

 헤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이제 회사와도 관련이 없으니 하룬이라는 용병에게 딱 달라붙어 이 세계를 제대로 여행해 봐야겠다.’

 그녀는 백사회의 목표와 개인적인 호기심을 위해 황 박사의 만류에도 끝내 사표를 냈던 것이다.

 비록 좋은 거주지와 안정된 주급은 잃었지만 대신 자유를 얻었다. 이제 마음껏 비욘드를 즐길 참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로 궁금해하던 주제들을 연구할 생각이었다.

 그때 하룬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새로운 인물을 보고 티노에게 시선을 주었다.

 “대장을 찾아온 손님입니다.”

 “나를요?”

 하룬은 헤니를 똑바로 보았지만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누구십니까?”

 “헤니라고 해요. 이방인이죠. 그리고 중급 치료사에요.”

 그녀는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맑은 미소와 투명한 피부가 아주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생명을 다루는 치료사 특유의 맑고 따듯한 느낌은 싫지 않았다. 게다가 풍기는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을 열었을 때의 홀하고 많이 닮았다.

 “세상을 떠돌며 각종 병에 대한 치료법을 두루 경험하는 중이에요. 이번에 고대 던전이 발견되었다기에 많은 부상자가 나올 고요의 땅으로 가려는데 아는 사람에게 들으니 돌풍 용병대가 무척 믿을 만하다더군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그래요?”

 하룬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는지, 그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충 용병 길드에서 그의 거처를 알아낸 것으로 받아들인 하룬은 귀찮았다.

 “의뢰를 하려는 것 같은데 이미 사람은 다 찼습니다.”

 “부탁해요. 전 꼭 그곳에 가야 해요.”

 “지금 북문으로 나가면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댁 정도의 미모와 능력이라면 동료를 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룬은 별 신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전 돌풍 용병대가 아니면 안 되겠는데요.”

 그녀의 고집스러운 말에 하룬은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돌풍 용병대에 의뢰하려면 최소 1만 골드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정말요?”

 하룬의 말에 헤니가 깜짝 놀랐다. 가뜩이나 큰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무척 귀여워 보였다.

 “그러니 의뢰비가 없으면 빨리 좋은 파티를 찾으시죠.”

 하룬은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 온 포션 종류를 쓰기 좋게 정리하려는 것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헤니의 곁으로 샤니가 다가왔다.

 “뭐래?”

 “의, 의뢰비가 만 골드래. 말이 되니? 이건 분명히 내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야.”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만 골드가 애들 이름도 아니고.

 ‘그 돈이면 최상급 치료 포션을 백 개는 사겠다. 왜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지? 내가 이방인이라서 그런가? 아니야, 그렇다면 샤니의 의뢰도 받지 않았어야 해. 그럼 처음 한 말대로 더 이상 자리가 없어서인가?’

 그녀는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맞는데. 우린 세 명이긴 하지만 2만 골드로 계약했어.”

 “지, 진짜?”

 헤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그 말이 진짜일 줄은 몰랐다.

 “무, 무슨 의뢰비가?”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계는 현실과 비슷했다. 그것은 바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중상층 이상은 연봉이 억 단위 이상이지만 유니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하층 이상은 연봉이 기껏해야 2천만 원을 넘기지 못했다.

 그 돈으로 집 임대료를 내고 식비와 같은 기본 생활비를 쓰고 나면 손에 쥐이는 것은 겨우 몇십만 원이 고작이다. 그야말로 평생 개미처럼 일해도 절대로 돈을 모을 수 없고, 거주지를 벗어날 수조차 없었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미 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녀는 제일 잘 나간다는 기업 넥컴월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지만 주급은 겨우 50만 원밖에 되질 않았다. 물론 한 달로 치면 꽤 큰돈이지만 B구역의 좋은 아파트는 임대료가 월 70만 원이었고 세금과 관리비 그리고 식비를 제하면 남는 돈은 겨우 30만 원이 고작이었다.

 더 좋은 직장을 다니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구조적인 사회체제 때문에 그런 현상을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95%가 넘는 유니온 주민들은 5%도 되지 않은 중상층으로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비욘드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평민들 한 달 평균 수입은 겨우 2골드 남짓, 세금을 내고 나면 6인 가족이 겨우 입에 풀칠하고 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귀족과 일부 거상들은 평민들의 몇천 배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제국 초창기에 무려 80%가 넘었던 자작농들은 귀족들의 수탈과 흉년을 겪으며 소작농이나 농노로 전락하고 지금은 그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땅을 가진 귀족들은 영지를 가진 남작의 기준으로 한 달 수입이 5천 골드 이상이다. 세금을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기사를 거느리거나 영지군을 유지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만 일단 수입 면에서 보면 그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만 골드면 현실로 치면 3억이 넘는 돈인데…….”

 아무리 실력이 좋기로서니 의뢰비가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다.

 “나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은 했는데 막상 며칠 같이 다니고 보니 다 이유가 있더라고. 혼자 블랙 오크 열 마리 정도는 가볍게 작살을 내더란 말이야. 거기다 길도 귀신처럼 찾을 뿐 아니라 위험한 곳은 아예 피하더라고.”

 샤니의 말에 헤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황 박사가 알아 온 정보대로 돌풍 용병대를 용케 찾긴 했는데 이렇게 의뢰비가 비쌀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 헤니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눈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티노였다. 그녀의 직업을 들은 후부터 그는 은밀하게 헤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 정도 돈이 없는 거야? 내가 빌려 줄까?”

 “그럴래? 아, 아니야!”

 샤니가 노블인지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정도의 돈을 아무렇지 않게 빌려 줄 수 있는 유저는 노블밖에 없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도 그 분위기까지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전투 계열의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노블 특유의 고귀하고 독선적인 위압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헤니는 한숨을 쉬었다. 설사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직업까지 잃고 E구역의 작은 원룸 아파트로 이사한 그녀에게 만 골드는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거금이었다.

 모처럼 호의를 보였는데 헤니가 거절하자 성이 난 샤니였으나 때마침 손짓으로 그녀를 부르는 아반에게 달려갔을 때 티노가 마침 지나가는 듯 그녀의 곁을 스쳤다.

 “뭐, 대원이라면 의뢰비 같은 건 필요 없겠지요, 아가씨.”

 티노는 하룬이 그녀의 동행을 감정적으로 거부한다고 생각했다. 홀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대장이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와 동행을 꺼린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치료하는 법이라오, 대장.’

 티노는 이 아름다운 치료사를 대원으로 받아들일 참이었다. 보아하니 특별한 소속도 없는 것 같은데 이참에 용병대원으로 받아들이면 용병대 전력에도 좋고, 만약 하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저씨?”

 “우리 돌풍 용병대에는 뛰어난 치료사가 없다오. 그런 면에서 아가씨라면 제격이라는 이야기요. 내가 일단 잘 말해 볼 테니 우리 용병대에 들어올 생각은 있소?”

 티노의 은근한 제안에 헤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안 그래도 소속이 필요한 그녀였다. 더구나 이 세계를 떠도는 용병이며, 이방인들에게까지 이정받는 용병대라면 더 이상 좋은 소속은 없을 것이다.

 “좋아요. 꼭 돌풍 용병대원이 되고 싶어요!”

 티노는 이 어린 치료사가 마음에 들었다. 미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맑고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이 그랬다.

 티노는 그녀를 데리고, 막 포션을 정리해서 아공간에 넣은 하룬을 찾았다.

 “대장.”

 “무슨 일입니까, 티노 부대장?”

 “사람 하나를 천거하려고요.”

 “천거요?”

 하룬은 티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아했다. 더구나 치료사라는 아가씨를 데려온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실은 우리 용병대에도 치료사가 한 명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중급 치료사라면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처럼 위험한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이런 뛰어난 치료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거야 부대장도 치료 스킬을 가지고 있잖아요? 나도 웬만한 초급 치료사만큼은 될 거고. 굳이 필요할까요?”

 그 소리에 놀란 것은 오히려 헤니였다. 이 용병들이 둘 다 초급 치료사 정도의 치료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야 천재이니 그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약초학 이론과 치료 이론을 섭렵해서 이제 막 중급 치료사가 되었지만 치료사라는 직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여기 비욘드에서는 신관이나 마법사 그리고 치료사가 맡고 있다. 그중 치료사는 신성력이나 마나를 이용해 치료하는 신관이나 마법사와는 달리 현실의 의사들처럼 각종 수술을 하거나 이 세계에 자생하는 수많은 약초들을 알맞게 배합해서 치료제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위험한 곳으로 가는데 그 와중에 행여 의뢰인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플 겁니다. 아시겠지만 포션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만능은 아닙니다. 생명력을 끌어다 쓰는 만큼 되도록 사용을 지양해야 합니다.”

 하룬은 티노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포션이라는 것의 본질은 강한 재생력을 가진 몬스터들의 피나 약초들의 효능을 매개로 그 대상자의 생명력과 재생력 혹은 자연 치유력을 짧은 시간에 극도로 촉발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남용하답 보면 그 수명이 현저히 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헤니의 호리호리한 외양을 쳐다보는 하룬의 눈에는 우려가 담겨 있었다. 여행을 떠날 만큼 강한 체력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저 체력도 강해요. 허벅지도 두껍고 알통도 있다고요.”

 헤니는 행여 하룬이 거절할까 봐 소매를 걷어 올려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꼭 누운 계란처럼 보이는 작은 알통이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하룬과 티노는 미소 지었다. 일단 의지만큼은 인정해 주어야겠다. 게다가 티노의 부탁이니 거절하기도 그랬다.

 “하하하! 알았소. 그렇게 합시다. 그럼 이제부터 헤니는 우리 돌풍 용병대 대원이오. 보수는…… 음, 나중에 차차 봐가면서 정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수는 안 받아도 돼요. 그저 먹이고 재워만 주시면 되는걸요.”

 헤니는 정말로 좋은지 눈초리에 눈물 한 방울을 매단 채 손으로 티노의 목을 감고 펄쩍거렸다. 하룬은 팔찌를 풀어 헤니의 정보를 입력했다.

『이름: 헤나

종족: 인간

직업: 치료사

레벨: 72

칭호: 자연의 치료사-중급(외 2개)

생명력: 1,050

마나: 1,245

힘: 29       체력: 34

지식: 40     지혜: 44

행운: 18     민첩: 12

심안: 8      집중: 32

S.P.: 78      명성: 650

[스킬]

응급 치료: 고급 Lv.3(54.02%)/Lv.5

약초 채취: 중급 Lv.1(20.50%)/Lv.5

치료약 조제: 중급 Lv.4(24.50%)/Lv.5

외과 수술: 중급 Lv.2(14.24%)/Lv.5

포션 조제: 하급 치료 포션 조제 가능』

 ‘뭐, 저질 체력은 아니군. 게다가 레벨도 높으니 짐은 안 되겠어.’

 현재 레벨 70대 초반이면 랭커에 들어갈 정도는 될 것이다. 레벨을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하룬이짐나 그 정도는 알고 있었따. 상당한 실력자라서 다행이었다.

 더구나 생각보다 쓸 만한 스펙을 갖추었다. 응급 치료나 치료약 조제에 있어서는 티노와 비슷했지만 외과 수술 스킬은 중급이고 포션 조제까지 가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재료가 있어야 하지만 이 정도라면 용병 대원으로 받아들여도 무난했다.

 그녀의 진짜 목적이 궁금했지만 한번 배신당한 후로는 생각을 바꾸었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에 크게 마음을쓰지 않기로 했다. 세력을 일으켜 무슨 영화를 얻으려고 게임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차피 서로 필요해서 잠시 의지하는 것이니까.’

 조금 씁쓸한 생각이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나중에 대원이 나가더라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똑똑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배우지 못한 자신도 그렇고 티노도 경륜과 지혜는 있지만 머리 쓰는 것은 그다지 자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말대로 세상을 떠도는 중이었다니 보고 들은 것이 많으리라.

 그렇게 네 명의 대원이 떠난 자리에 다시 한 명이 채워졌다. 이 선택이 어떨지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평가되리라. 어쨌든 텅 비었던 대원 항목이 하나라도 더 채워지자 비었던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채워진 것 같았다.

 다음 날, 여행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한 하룬과 사람들은 마치 썰물처럼 북문을 향해 몰려가는 사람들 틈에 껴서 이동했다. 마음만 급하다 보니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북쪽으로 향하는 유저들이 대부분이었다.

 북문을 빠져나온 하룬 일행은 미리 기다리던 딜런 일행과 합류를 한 다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하는 대로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향했다. 미리 고요의 땅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던 사람들은 이상했지만 묵묵히 하룬과 티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안내자이니 지금부터는 그들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북동쪽으로 몇 시간을 이동한 사람들은 평야가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오벌 트리라는 이름을 가진 중간 부위가 두툼한 키 작은 나무가 숲을 이룬 곳에는 시원하고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어 제법 쉴 만한 자리였지만, 오크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추수를 끝낸 농부들이나 그들을 지키는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 이곳에서 오늘 쉬고 내일 아쉬락 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지요.”

 밤새 티노와 함께 이동할 루트를 의논한 바 있는 하룬은 티노의 말에 일행에게 야영을 준비시켰다. 사람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 천막을 세우고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주변을 수색하러 나갔던 티노가 급하게 돌아왔다.

 “대장! 누군가 우리 뒤를 따라옵니다.”

 저 멀리에서 흙바람이 일고 있었다.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하룬이 무슨 소리를 하기도 전 사람들은 각자 무기를 들거나 마법을 준비하는 등 경계 태세를 취했다.

 말을 탄 덕분에 곧 하룬 일행을 뒤쫓은 사람들이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네 명이었다. 로브 차림의 늙은 마법사 한 명과 대도를 등에 멘 젊은 검사 그리고 역시 키는 작지만 건장한 몸을 가진 중년 사내와 검사로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중년 여자가 더 있었다.

 그들은 하룬 일행이 천막을 치고 있는 곳까지 도착해 말을 세웠다.

 “워어-워!”

 제일 먼저 말에서 뛰어내린 것은 중년 여자였다. 거대한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람처럼 표홀한 몸놀림으로 멋지게 착지한 여자는 양 허리에 각각 검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막대기를 차고 있었다. 윤곽이 뚜렷한 미인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나운 눈매와 강렬한 눈빛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에서 턱을 거쳐 목까지 이르는 길고 굵은 검상으로 인해 인상은 무척이나 살벌해 보였다.

 “혹시 돌풍 용병대 사람이 여기 있나?”

 생김새처럼 거침없는 언사였다.

 “누구십니까?”

 티노가 앞으로 나섰다.

 “돌풍 용병대가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티노의 말에 대답할 생각도 없이 강렬한 기세를 드러내며 마치 사벨 타이거처럼 으르렁대는 여인의 뒤를 마법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차례로 포진했다.

 초면인데도 그들은 고압적인 자세였다. 마치 대답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여 버리겠다는 듯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룬은 이대로 그들의 기세에 눌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고요의 땅까지 험한 길을 뚫고 가려면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어야 했다. 이 세계는 오직 힘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강하니만큼 강력한 힘을 보여 준다면 나머지 여정이 편할 것이다.

 그걸 알아챈 것은 티노였다. 하룬과 눈빛을 교환한 그는 잠시 이를 악물더니 여자 용병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것들이 어디서 감히 행패냐? 도대체 어디서 온 놈들이냐?”

 티노가 땅을 박찼다. 순간적으로 거의 10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 중년 여자 용병의 코앞에 선 그의 눈에서 폭발적인 살기가 흘러나왔다. 비록 체구는 무척이나 차이가 나지만 폭발적인 투기를 발산하니 그 차이는 어느새 의식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흐윽!”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날렵한 티노의 움직임에 가장 앞에 선 여자 용병은 경악하며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티노의 왜소한 체격을 본 그녀는 곧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손으로 검 자루를 잡았다.

 ‘놀라운 움직임이군. 보아하니 대가리도 아니고 꼬락서니도 비루먹은 말처럼 보이는데, 바람처럼 가벼운 동작이라. 쉽지 않겠군. 헛소문으로 생각했는데.’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두 용병이 스산한 눈빛을 하고 은말하게 자신의 무기에 손을 댔다. 여차하면 출수할 태세였다.

 일촉즉발의 긴장된 대체에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후후! 잘 나타났군. 안 그래도 우리의 힘을 조금은 보여야 했는데.’

 하룬은 싸가지의 힘을 드러내기로 했다.

 -싸가지, 나와서 비수들을 조종해.

 -흐흐흐,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는군. 어떤 장면을 연출하려는지 내가 잘 알지.

 심령을 통해 교감하는 사이인 싸가지는 하룬의 의사를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여 은밀하게 소환된 아공간을 열고 해독약을 하나 꺼내 삼킨 하룬이 티노를 불렀다.

 “티노 부대장은 뒤로 빠져요. 저들은 내가 상대하지요.”

 세 명과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눈빛 하나 바뀌지 않던 티노가 하룬의 말에 마치 뒤에서 뭐가 끄는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 쭉 미끄러져 하룬 곁으로 왔다.

 그 모습에 사태를 주시하던 사람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티노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메신저 스킬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마법처럼 보이는 신기한 움직임이었다.

 이어 앞으로 나서는 하룬은 손도 까딱하지 않았는데, 그의 암기대에서 무려 열두 개의 단검이 저절로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네 사람을 향해 그 날을 세웠다. 단검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날을 세우고 네 사람을 노려 보았다.

 “허억! 정령?”

 “이런!”

 “저게 뭐야?”

 놀라는 소리가 앞뒤에서 들려왔다. 처음 보는 모습에 감탄을 하고 질려 내뱉는 탄성과 신음이었다. 정령술이라는 것을 아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영문을 모른 채 신기의 암기술에 경악하고 있었다.

 “단 한 번만 묻겠다. 다짜고짜 쳐들어와 본인 소개도 없이 무례하게 구는 너희들은 누구냐?”

 하룬의 눈에서 강렬한 살광이 번득이자 그의 심령과 연결된 싸가지의 힘이 실린 단검들이 금방이라도 쏘아질 것처럼 요동을 쳤다. 하룬의 전신에서 폭풍과도 같은 강력한 기세가 흘러나와 앞에 선 네 사람을 압박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에 압도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히이힝!

 뒤에 서 있던 말들까지 놀랐는지 앞다리를 들고 투레질을 하더니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살기가 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당황한 네 사람은 말의 고삐를 잡고 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덕분에 살벌했던 대치 상황은 이상하게 풀려 버렸다.

 그 꼴을 보던 하룬이 쓴웃음을 지으며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또한 싸가지를 통해 조종하던 단검들을 다시 암기대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제자리로 얌전히 돌아가는 단검들의 움직임을 본 모든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그중 도끼를 든 중년의 사내가 말을 겨우 진정시키고 앞으로 나왔다. 상대의 실력을 확인한 후라서 그런지 팔뚝을 앞으로 내미는 용병 특유의 예법까지 갖추고 용건을 말했다.

 “미안하오. 우린 다카린 용병단 사람들이오. 의뢰인의 부탁으로 돌풍 용병대를 찾고 있소. 워낙 다급해서 미처 양해를 구하지 못하고 예의 없이 행동한 것에 대해 사과하오.”

 그 소개를 들은 티노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하룬에게 가까이 다가온 티노가 속삭였다.

 “다카린은 제국 10대 용병단 중 하나입니다. 이곳 북부를 무대로 하는데 그 역사가 무려 200년이 넘었습니다.”

 하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용병 아카데미 시절에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골든 배틀로 생겨났다 쓰러지는 하급 귀족가로서는 감히 가질 수 없는 엄청난 무력과 부를 쌓아 온 전통 있는 용병단이었다.

 “내가 바로 돌풍 용병대 대장 하룬이오. 무슨 볼일이 있어 우리를 찾았소?”

 비록 기세와 암기는 거두어들였지만 여전히 굳은 얼굴로 스산한 기세를 뿌리는 하룬이었다. 그의 얼굴은 만약 시답지 않은 용건으로 귀찮게 한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기세와 능력으로 보아 그럴 거라고 생각했소. 난 다카린 용병단 스카이조 조장 헤르슈라고 하오. 귀한 분께서 댁들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찾아왔소.”

 헤르슈의 말과 함께 뒤에 있던 늙은 마법사가 앞으로 나왔다.

 “라잇트루 마탑의 마법사 타니엘라라고 하오.”

 “소개는 이미 했습니다. 무슨 용건으로 우리 용병단을 찾았습니까?”

 그렇게 묻는 하룬의 기세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불쾌감이 전혀 사라지지 않은 딱딱하 어조에 타니엘라가 좀 당황한 기색으로 이 사태를 촉발시킨 세 용병을 좋지 않은 눈으로 한번 쓸어 보았다.

 “내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돌풍 용병대를 찾았는데 이들이 무례하게 굴어 대장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구려. 미안하오. 이 늙은이가 대신 사과하리다. 용병 길드를 통해 거처를 알아 찾아갔더니 몇 시간 전에 출발했다기에 급한 마음에 안면이 있던 다카린 용병단에 대장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소. 워낙 사람이 많아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이렇게 실례를 한 것 같소이다.”

 대충 사정은 이해가 갔다.

 “라잇트루 마탑은 백마법의 워조라고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마탑으로 제국 초창기에 황도에 세워졌습니다. 주로 마법진을 연구하며, 현재 위세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티노가 옆에서 속삭였다. 하룬은 그제야 눈에서 힘을 풀었다. 하지만 세 용병을 보는 눈길에서는 아직도 냉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용건을 들어 보지요.”

 6서클 마법사라면 최소 자작급이다. 그만큼 제국은 마법사들을 중요시했고, 희귀한 존재인 마법사들은 권위 의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하룬은 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 타니엘라 역시 몰락해가는 마탑 출신인지라 불손하게 들릴 수도 있는 하룬의 말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 옆에 있는 양반 말대로 우리 마탑은 제국 초기에 번성했지만 그 찬란하던 역사도 세월의 흐름에 부침을 거듭해 현재는 그 명맥만 겨우 잇고 있는 실정이오. 마침 백작성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고대 던전 이야기를 듣게 되었소. 황도에 있는 마탑 본부는 너무 멀고 나라도 먼저 가야 하는데, 안전이 염려되어 방도를 궁리하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돌풍 용병대의 이름을 들었소. 공포의 대지에서 수많은 이방인들을 안내해서 보석 광산까지 무사히 호위했다는 말에, 그곳까지 길 안내와 호위를 부탁하려고 이렇게 찾았소.”

 그의 용건 역시 뒤에서 흥미로운 눈길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간의 만남은 처음이 중요한데 다카린 용병단 때문에 첫인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들의 아전을 자신과 티노만으로 보장할 수가 없었다.

 하룬은 잠시 생각 끝에 의뢰를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타니엘라가 품 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최상급 마나석이라오. 최소한 몇천 골드에서 최대 1만 골드까지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오. 부탁하오. 우리 마탑의 숙원이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는 마법서가 있는 곳까지만 빠른 시간 내에 데려다 주시오. 다른 건 필요 없소.”

 하룬은 거절하려던 의사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석이 문제가 아니라 늙고 주름진 얼굴에서 절박감과 꺼지지 않을 강인한 의지를 확인했던 것이다. 목적이 뭐가 되었든 하룬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 좋았다. 그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예전의 자신처럼 그저 시류와 환경에 끌려다니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 좋았다.

 “좋습니다. 한 자리 정도는 괜찮을 거 같군요. 일단 먼저 의뢰를 한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 보지요.”

 하룬은 티노에게 눈짓을 했다. 눈치 빠른 티노가 구경을 하던 사람들에게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이미 모든 것을 듣고 본 사람들이라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양해는구해야 했다.

 “나도 같이 가겠어요.”

 그 와중에 한마디 사과도 없이 서늘한 눈길로 하룬을 쏘아 보던 여자 용병이 뜬금없이 말했다. 하룬은 기가 막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당장 두 용병이 거세게 반응했다.

 “안 됩니다.”

 “미쳤소, 부단장? 단장님이 알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안 그래도 던전 소식 때문에 북부 일대가 난리가 날 텐데 자리를 비우면 어쩌자는 겁니까?”

 “나완 상관없다. 난 고대 던전을 구경해야겠다. 그리고 돌풍 용병대가 얼마나 잘났는지도 확인을 해야겠다. 아버지도 사정을 들으면 내 결정을 존중할 테니 걱정 말고 돌아가.”

 무척 강한 기세를 드러내더니만 부단장이었다. 아마도 용병단주의 딸인 것 같았다. 그녀는 하룬의 눈을 똑바로 보고 제의했다.

 “돌풍 용병대장, 무보수로 호위 역할을 수행하겠어요. 특기는 궁술, 등급은 특급이니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고 보니 허리춤에 차고 있는 긴 막대가 활인 모양이다. 그녀의 허리와 타고 온 말에는 화살이 수북하게 든 화살통이 열 개가 넘었다.

 그사이 티노가 돌아왔다.

 “모두 양해했습니다. 6서클 마법사라고 하시니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아마도 누군가 마법사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나 보다. 6서클 마법사라면 제국에서는 극히 소수인 최고 경지의 마법사다. 하룬 역시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가 살아난 적이 있어 그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티노의 말에 타니엘라가 기쁜 표정이 되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표정이 드러나는 마법사였다.

 “저 여자는 다카린 용병단주의 맏딸로 명궁으로 알려진 도네이스라고 합니다. 저 우람한 덩치에서 나오는 타고난 신력으로 쏘는 화살은 엄청난 명중률과 관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티노는 뻔히 도네이스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좋습니다. 부대장이 추천하니 그렇게 하지요. 대신 부대장이 그녀의 합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룬은 일부러 티노에게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도네이스의 합류를 받아들였다. 아직까지도 사과를 하지 않는 거칠고 예의 없는 여인이 티노의 입장을 생각하서 자제하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티노 역시 하룬의 심중을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까지 말하는 법이 없는 하룬이었다.

 도네이스는 자신의 합류를 허락한 돌풍 용병대에 어떠한 감사 인사도 하지 않고 아직도 그녀의 행동을 말리는 두 용병과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런데 여행 준비는 좀 하셨습니까?”

 티노가 웃는 얼굴로 타니엘라에게 다가갔다. 그는 합류가 허락된 것에 마음이 놓이는지 조금은 풀어진 얼굴이었다.

 “급하게 출발하느라 못 했소. 하지만 대충 필요한 것은 있으니 도중에 구하면 될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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