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거래들 (65/278)

《거래들》

 호울 비전의 유한 PD가 아레스가 보낸 메일을 본 것은 방송이 막 끝난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 제대로 쏴요.”

 그의 부탁으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한 노라의 말에 유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메일만 확인하고.”

 오랜만에 동 시간대 시청률 45위를 한 유한은 기분이 좋았다. 전 지구를 대상으로 영상을 송출하는 백이십 개가 넘는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당당히 45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게 다 노라의 지명도와 랭커들로 출연진을 채운 그의 기획 덕분이었다.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최고의 미녀가 진행하는 버추얼 방송사를 누르는 것이다.

 메일함에는 수많은 메일들이 들어와 있었다. 보통 어시스턴트가 메일을 관리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모든 메일을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 그에게 기사나 영상을 송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들의 숫자는 백 명이 넘지만 그는 직접 그들을 관리하곤 했다. 그런 노력이 그가 점차 성공을 거두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버릇처럼 특종 기사를 의미하는 별 다섯 개가 달린 기사들만을 확인했다. 프리랜서 기자들 본인이 등급을 다는 것이다. 물론 습관처럼 별의 숫자를 남발하는 경우는 가차 없이 휴지통으로 직행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나름 기사의 가치를 평가해서 보낸다.

 나머지 기사들은 일이 끝나고 직장이나 집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들어온 메일들 중에 별 다섯 개가 달린 기사가 하나 있었다.

 “어! 아레스 녀석이 보낸 거네.”

 이제 갓 성년이 되었지만 첫 만남에서 독기를 느낀 녀석이라 아이드는 기억하고 있었다. 녀석이 보낸 기사들은 아직 특종은 없지만 제법 쓸 만해서 기사를 손질할 필요도 거의 없었다.

 그는 아레스가 보낸 메일을 열었다.

 “고대 던전 출현?”

 유현은 제목을 보고 저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옆에 서 있던 노라가 당장 의자 하나를 끌어왔다. 그녀 역시 비욘드의 랭커 중 한 명이며 고대 던전이 의미하는 바를 순간적으로알아차린 것이다.

 “빨리 내용을 열어 봐요.”

 “응.”

 유한은 클릭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엄청난 특종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타고난 그의 본능이 손가락까지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고대 던전이 나타났다.

 비욘드에서 잊힌 선대 문명의 제국 ‘라’를 아는가? 태양신을 숭배하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마법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무려 3,000년 이상 영화를 누렸던 ‘라’ 제국은 마법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선진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마법과 체계가 다른 고효율의 마법을 기반으로 번성했던 ‘라’ 제국의 유물이 숨겨진 고대 던전이 모처에서 발견되었다.

 유물의 내용을 알 수 없는 ‘지혜의 파편’과 마법서 네 권.

 은밀하게 마탑에 전해지는 말처럼 현대의 마법이 고대 문명에서 전해졌으며 몇 권의 기본 마법서를 바탕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고대 던전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라’ 제국이 남긴 마법서로 인해 마법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제국은 물론 비욘드 세계는 엄청난 변혁을 겪을 것이다.》

 “뭐야? 진짜라면 이거 완전히 특종 중의 특종이잖아.”

 노라의 감탄성에도 유한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함께 보내온 영상 자료를 클릭했다. 그 데모 영상은 아레스와 두 친구가 결정적인 단서를 뺀 상태로 편집한 것으로 고대 던전이 실제로 존재하며 누군가가 그 위치를 발견했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이 영상을 본 노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메일의 가치와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 그녀가 경험한 방송 생활에서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메가톤 급의 특급 정보였다.

 “밥은 나중에 먹자. 일단 수석 팀장을 만나야 해. 아니, 사장을 직접 만나야 해.”

 유한은 자신 정도로는 이 정보를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방송사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큰 사안인 것이다.

 “후와! 이 기자 누군지 몰라도 완전 대박을 잡았네. 그나저나 후크란의 보석 광산에 이어 고대 던전까지 출현하다니. 비욘드가 완전히 뒤집어지겠네.”

 그녀 역시 자세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 정보의 파급력이 얼마나 클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잇었다. 적어도 비욘드 전체가이 정보로 인해 발칵 뒤집히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 갈게. 아니, 너도 가자.”

 유한이 노라의 팔을 잡았다.

 “왜? 난 싫어. 그 늙다리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도 싫단 말이야.”

 그녀는 같이 가자는 말에 거칠게 팔을 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유한 PD는 그녀의 팔을 놓지 않았다.

 “안 돼! 이건 최고 수준의 보안이 필요한 정보야. 넌 이제 내 옆에서 절대로 1보 이상 떨어지면 안 돼.”

 그녀는 거칠게 저항했지만 결국 유한에게 질질 끌려 팀장실로, 사장실로 동행해야만 했다.

 “왔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쓰지 않고 모니터만 내내 보고 있던 미료가 소리를 질렀다. 다른 때와는 달리 보낸 지 30분도 안 되어 답장이 온 것이다.

 “역시!”

 유한 PD는 방송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가 이 정보를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짐작이 갔다. 이건 정말 최고의 특종이니 말이다. 각자 할 일을 하면서도 연방 미료 쪽을 훔쳐보던 장료와 아레스가 그녀에게 달려왔다.

 미료가 메일을 클릭했다.

 “뭐래?”

 장료가 급하게 물었다.

 “당장 만나겠대. 이쪽으로 오겠대. 그리고 고료는 최고 대우를 해 주겠대. 먼저 타 방송사에 같은 메일을 보냈는지 회신해 달래.”

 “아싸아!”

 세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기사를 보내면서 약간 걱정은 했다. 기자들이 특종이라고 생각하는 기사들 대부분이 방송사 입장에서 보면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일단 회신해. 다른 방송사에는 안 보냈다고. 그리고…… 야! 집 안 치우고 살 거야? 이게 뭐냐?”

 아레슨느 집 꼴을 돌아보다가 얼굴을 구겼다. 여자도 한 명 있건만 집 꼴은 정말 개판 5분 전이었다.

 “빨리 치우자. 방송국 전용 자장 도로로 달려오면 이곳까지는 5분도 안 걸린단 말이야.”

 유니온의 공중에 건설된 수백 층에 달하는 자장 도로들 중에는 노블들이나 원로원 전용 도로들은 물론 방송사와 같은 힘 있는 기관들만 사용하는 도로들이 있었다. 일반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혼잡한 자장 도로들과는 달리 자기 전동차의 통행이 거의 없는 그 도로를 달려오면 정말 순식간이다.

 세 사람은 부지런히 집을 치웠다. 집이라고 해 봐야 방 하나에 부엌 딸린 거실 하나에 불과하고, 캡슐 세 대와 컴퓨터 다섯 대를 뺀 나머지 공간은 제대로 앉을 곳도 없을 정도였다. 세 사람은 빨지 않은 옷들은 일단 빈 캡슐 안에 다 던져 넣고 실내를 치우고 환기 장치를 최대 속도로 구동시켰다.

 그들이 대충 집을 치웠을 때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정말 놀라운 속도였다. 그들이 가진 정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찾아온 사람은 모두 세 명이었다.

 유한 PD와 유명한 랭커이자 진행자인 노라 그리고 멋진 제복을 입은 중년 신사였다.

 “오래간만입니다, 유한 PD님. 방송국으로 가도 되는데 이렇게 직접 오셨네요.”

 “반가워. 한 석 달 만인가? 이 친구들이 그때 말했던 팀원들이군.”

 유한 PD가 반갑게 안수를 청했다.

 “네. 미료와 장료입니다. 주로 소스를 수집 분석하고 취재 방향을 설정하는 등의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아레스는 두 친구를 소개했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는 노라, 우리 방송사의 보물이지. 그리고 이분은 수석 PD이자 부사장님이셔.”

 “반갑네. 프로그램 총괄을 맡고 있는 함관영이라고 하네.”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비좁은 거실 공간에 캡슐을 의자 대신 사용해 앉았다. 아레스와 두 친구들은 이런 집 꼴이 창피했지만 방문한 세 사람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미료야, 차 좀 내야지.”

 “아, 아니. 마시고 왔네. 거두절미하고 물어보겟네. 확실한 정보인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유한의 태도에 아레스는 내심 웃었다. 그들의 이런 태도를 볼 때 이 정보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합니다. 일단 원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부탁해.”

 칩이 장착된 플레이어를 구동시키자 하룬으로부터 전해 받은 원본 영상이 홀로그램으로 떴다. 여섯 사람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영상을 보았다. 약 5분 10초 분량의 영상이 모두 끝났을 때 아레스는 볼 수 있었다. 함관영 PD와 유한 PD는 물론 노라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놀람과 충격이 떠오른 것을 말이다.

 “이 영상의 등급은 어떤가?”

 복제 여부를 묻는 것이다.

 “일단 갓 등급입니다. 다만 똑같은 영상이 넥컴월에서 파견된 GM들에게도 하나 전해졌습니다. 그들이야 보고용으로 가져간 것일 뿐 이 던전을 공개하지 않을 테니 갓 급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갓 급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레스의 말에 함관영 PD의 얼굴이 조금 변했다.

 “GM이라고? 그럼 자네들이 GM의 존재들도 알고 있다는 건가?”

 다른 게임과는 달리 GM들의 게임 관여가 완전히 없다고 알려진 비욘드의 특성을 익히 알고 있는 함 PD는 실존 여부도 알지 못하던 GM에 대한 언급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일단은요. 이 일만 잘되면 앞으로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미리 말해 두지만 그들의 존재에 대한 정보는 거래 불가입니다. 그들은 우리 팀의 귀중한 정보 소스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에 대한 정보 공개가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이미 그것에 대해서는 넥컴월에서 각 방송사로 통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PD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노라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욘드의 GM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다른 두 사람 때문에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5,000까지 줄 수 있네.”

 유한 PD가 운을 떼었다. 거래를 빨리 해야 이 정보를 특종으로 안전하게 방송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최대한도입니까?”

 아레스는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유한은 함 PD를 한번 쳐다보고는 재차 확인을 해 주었다.

 “5,000은 이제까지 우리가 지급한 고료 중 최고 액수야. 이 정도 돈이면 세 사람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넓은 실내 공간을 가진 집을 구할 수 있어.”

 은근한 유한의 말에 아레스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얼굴이었다. 미료와 장료의 얼굴도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나름대로 프리랜서 기자를 몇 달 동안 해오면서 호울사와 유한 PD님에게 호감을 가졌기에 이 정보도 제일 먼저 보냈는데 좀 실망입니다. 없던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레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백한 축객령이며 확실한 거절의 의사 표현이다.

 “이 친구,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 돈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질 않나? 이제 갓 성년이 된 자네들이 어떻게 그런 돈을 만져 보겠나? 마음대로 하게. 자, 가자고.”

 볼 것도 없다는 듯 함 PD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호통을 쳤다. 유한과 노라가 그의 호통에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지만 그들의 눈은 세 사람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하하. 우리도 성인이고 정보를 다루는 일을 하는데 돈의 가치를 왜 모르겠습니까? 이거 나이만 보고 너무 저희를 쉽게 생각하시는군요. 사실 이 정도의 정보면 대형 길드들을 대상으로 팔거나 비욘드의 정보 길드에 팔면 지금 호울 방송사에서 부른 돈의 열 배 이상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언젠가는 이런 불안정한 수입을 가진 프리랜서 기자가 아니라 정식 기자가 되기 위해서 방송사를 택했고, 그중 존경하는 유한 PD님이 있는 귀사에 가장 먼저 이 정보를 공개한 겁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앞으로 귀사와는 일절 거래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큰 방송사들도 있는데 굳이 유한 PD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연락했던 우리가 바보였군요.”

 아레스가 마치 배신을 당한 것처럼 분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하자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일어섰던 함 PD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유한 PD와의 인연을 들먹이니 이렇게 안 좋게 갈 수는 없겠군. 좋아, 그래서 얼마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건가? 참고로 말하지만 과도한 금액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네.”

 그의 노회한 태도에 노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들의 표상이다. 이런 인물은 밀고 당기기에 능했다. 그녀만 해도 자신이 별 가치가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저런 밀고 당기기에 당해 방송 진행자들 중 거의 최저에 가까운 돈으로 계약한 바가 있다.

 “아니요. 거래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아직 나이가 어려 밀고 당기는 거래는 할 줄 모릅니다. 거래를 한다면 게임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경매 같은 방식이 더 편합니다. 앞으로 귀 방송사와는 거래할 일이 없을 겁니다. 돌아들 가 주십시오.”

 매몰찬 아레스의 말에 함 PD의 얼굴이 약간 흔들렸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유한의 옷자락을 잡아 내리며 그의 옆구리를 눌렀다. 뭔가 말을 하라는 신호였다.

 “이봐, 아레스. 흥분하지 마. 원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거야. 우리 수석 PD께서도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거래라서 그런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지.”

 아레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른 두 사람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세 사람의 가슴은 아까의 기세와는 다르게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잠시 모니터를 보고 온 미료가 아레스에게 뭔가 귀엣말을 햇다.

 “결론이 났습니다. 호울 방송사와는 거래하지 않겠습니다. 최대 방송사인 퓨처사에 후크란 보석 광산에 준하는 정보에 대한 가격을 의뢰해 봤는데 그들이 최소 1억 이상을 주겠다고 합니다. 고대 문명의 유물이 숨겨진 고대 던전이야 보석 광산과는 차원이 다르니 그 몇 배는 받겠지요. 그래야 우리도 정보를 준 NPC 단체에 사례를 할 수 있을 거고요. 사실 이 정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단체와 동행을 하면서 던전을 탐사하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계속 촬영해서 넘길 생각이었기에, 고대 던전의 정보 자체로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그들에게 주기로 했거든요. 이래저래 호울사와는 거래를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아무리 가격을 후려쳐도 그렇지 최초 가격을 이렇게 부르는 곳과는 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차후 던전에 대한 영상물을 생각하더라도 호울은 아닙니다.”

 아레스의 말을 들은 함석영 PD의 얼굴이 이제 완전히 흙빛이 되었다. 단순히 던전에 대한 정보만 생각했지 그 던전을 탐사하며 계속 촬영을 할 수 있을 거란 사실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이건 초대박이다.’

 단숨에 시청률을 몇십 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엄청난 건인 것이다.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된 고대 던전을 탐사하는 것을 생생하게 촬영할 수 있다면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인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다.

 “잠깐! 그럼 자네들이 그 정보를 준 NPC들과 던전을 직접 탐사할 수 있다는 건가?”

 “그거야 이제 관심을 가지실 일이 아닙니다. 그들과 그 정도 인연과 믿음이 없고, 또 역량이 없다면 이런 정보도 얻지 못했겠지요. 와이번을 혼자서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 NPC들이 속한 단체입니다. 아무리 엘프들과 다른 길드들이 막아선다고 하더라도 도전할 겁니다. 설사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그 와중에 다른 길드들과 엘프들이 던전을 놓고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것만 촬영해도 우리는 성공입니다.”

 아레스의 말이 맞았다. 성공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유물을 차지하건 상관이 없었다. 방송사에서 원하는 것은 생생한 전투 장면과, 할 수만 있다면 던전을 깨 나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는 것이다.

 이제는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열 개 남짓한 유니온이 아니라 전 지구의 유니온으로 그 인기를 확장하고 있는 비욘드의 유저들 숫자나 그 관심도로 볼 때 동 시간대 1위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인 것이다.

 “이봐, 다시 이야기하세.”

 몸이 단 함 PD가 직접 일어나 아레스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는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됐습니다. 우리도 귀사에 버린 시간 때문에 할 일이 많으니 좀 나가 주십시오.”

 “허어, 이 사람. 젊은 친구가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나? 내 정보의 진위 때문에 장난, 그래, 시험을 좀 해 본 거야.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이런 특급 정보를 손에 넣었는지 그리고 그 가치는 제대로 알고 있는지 말이야. 자네가 이러면 우리 유한 PD는 어떻게 하나? 이 거래를 놓치면 저 친구는 끝이야. 손에 들어왔던 보물을 남에게 뺏긴 친구는 우리 방송사도 필요가 없네.”

 아레스는 기도 안 찼다. 일은 자기가 망쳐 놓고 이젠 그와 인연이 있는 유한 PD의 자리까지 운운하며 은근하게 위협가지 하고 있었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한 인사였다.

 어차피 일로 만난 인연, 유한 PD의 거취 문제에 신경 쓸 아레스가 아니다. 유한 PD를 거론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 완강한 그의 태도에 함 PD는 더욱 몸이 달았다.

 “내 삼촌이 원로원에 계시네. 하원 의원이시지. 들어 봤을 거야, 함만희 의원의 이름을.”

 참으로 치사한 인사였다. 상황이 어려우니 노블인 친척까지 거명하고 있었다. 살면서 제일 치사한 인간들이 바로 이런 유였다. 자신의 힘이나 노력보다는 배후에 있는 이의 이름을 파는 짓은 학교에서도 익히 경험했다.

 이 바닥에서 먹고살려면 더 이상 튕기는 것은 위험했다. 아레스는 굳은 얼굴을 풀었다. 유연하게 행동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좋습니다.”

 아레스의 말에 함 PD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졸지에 자리에서 잘릴 위기까지 갔던 유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말씀 때문에 졸아서 다시 거래를 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퓨처사의 뒤에 계신 분이라면 함만희 의원님의 힘은 가볍게 누를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말에 함 PD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유니온 최대 방송사인 퓨처 사의 회장은 유니온에 열두 명밖에 없는 원로원 상원 의원이다. 의원직을 계승하면서 대대로 축적한 강력한 자금과 힘 그리고 권력을 통해 유니온 행정부에 거미줄처럼 퍼진 강력한 인맥을 관리하고, 또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대면 돈이나 기술, 혹은 지위로 의원의 자리에 오른 하원 의원은 그들의 눈으로는 일개 주민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윗선과 협의해서 최고가를 받아 오십시오. 우리도 생각하는 가격이 있습니다. 후크란 보석 광산의 경우처럼 간접적인 정보가 1억이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증거 영상과 더불어 차후 던전 탐사 과정을 생생하게 촬영할 겁니다. 이번에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퓨처사와 거래를 하겠습니다. 그곳이라면 지원도 빵빵하게 해 줄 테니까요.”

 “알겠네.”

 함 PD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 선에서는 결정할 수 없는 안건이었다. 이제까지의 거래 방식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이놈의 기자 놈들은 정말 골치 아프단 말이야!’

 정보를 가진 자들은 저 노라와 같은 부류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지금 이 자리였다. 이제 갓 성년이 된 녀석들이 프리랜서 기자 생활 몇 개월 만에 완전히 귀신이 다 되었다. 방송사의 생리와 역학 구도까지 어느 정도 꿰차고 있었다.

 그 시각 매그럼과 초른은 GM 팀장과 비밀 회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요른 백작성으로 향하던 중 호출을 받았다.

 “연구팀에 의해 칩의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네. 지사장님이 아주 흡족해하셨어. 자네들이 정말 대단한 특급 정보를 가져왔어.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이 시간만 기다려 왔다.

 “그래, 필요한 것은 없나?”

 “있습니다. 이제 곧 요른 백작성에서 돌풍 용병대와 만납니다. 그런데 그들과 동행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구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초른의 말에 팀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아. 안 그래도 자네들이 올린 보고서에 기술된 그 문제에 대해 본사에서 긍정적인 답이 내려왔네. 일단 이 건에 대해서는 증거까지 확보되었으니 1만 골드의 정보비를 지원하라고 말이야. 그리고 추가적인 정보가 나올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정보비를 지급하기로 했네.”

 “감사합니다. 아마 그 정도라면 그들도 우리의 동행을 기꺼이 허락할 겁니다.”

 “그럴 거야. 그리고 이런 특급 정보를 찾아낸 자네들에게는 보상으로 500골드씩 지급하겠네. 또 지사장님이 개인적으로 특별 수당 500골드를 주기로 하셨네. 경리과에 들러 찾아가게.”

 팀장의 말에 매그럼과 초른이 서로를 보면서 기쁜 미소를 떠올렸다. 개인적인 특별 부당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이제까지 GM들이 찾은 정보 중 가장 가치 있는 정보니까 말이야. 자네들은 우리 코원 지사의 힘과 능력을 본사에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대단한 공을 세운 거야.”

 “감사합니다.”

 팀장은 전에 없이 들떠 있었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력이 많은 초른도 처음 대하는 것이었다. 보상금도 보상금이지만 상사의 칭찬과 격려는 회사원에게 승진의 달콤함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매그럼은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계속 플레이를 하고, 초른 자네 휴가 줄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보를 준 인물과 동행을 하려면 저도 계속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좋아. 대단한 책임감일세. 휴가는 자네가 원하는 대로 잡게. 무조건 결재할 테니 말이야.”

 초른은 이런 팀장의 모습을 처음 대했다. 지난 3년 동안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은 고사하고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방 밖까지 따라 나와 어깨를 두드려 주는 팀장의 환송을 받았다.

 “휴우!”

 매그럼이 말없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하! 완전 대박이네요, 형. 팀장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요. 중요한 정보가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말이지요.”

 “흠. 어쩌면 지사장이 따로 정보를 거래했을 수도 있지.”

 초른은 뭔가 아는 눈치였다.

 “따로 거래를 하다니요?”

 “그런 게 있어. 지사장이 이렇게 개인적으로 돈을 쓰는 것은 내가 GM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듣거나 본 적이 없거든. 하원 의원이 되기 위해 상납을 하는 등 준비를 하느라고 항상 돈이 궁한 그치가 우리에게 특별 격려금을 개인적으로 준다는 건 뭔가 큰 돈줄을 잡았다는 방증이지.”

 “설마요?”

 매그럼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초른은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정보를 고가에 매입한 인물이 있다는 건 확실해.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니까.”

 자신보더 몇 해나 더 GM 생활을 한 초른의 말에 매그럼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손해는 없으니 그걸로 됐어.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고.”

 초른의 말이 맞았다. 거기다가 더 신경을 써 봐야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알았어요, 형. 어쨌든 이걸로 또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뭐?”

 “우리 넥컴월이 비욘드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에요.”

 매그럼의 말에 초른도 동의했다.

 “맞아. 회사에서 게임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대접은 없을 거야. 은밀하게 도는 소문대로 넥컴월은 게임 ‘비욘드’의 보조 운영 회사에 불과한 거지.”

 “아무튼 재미있네요.”

 “그렇지? 그렇기에 이 지사장도 정보도 개인적으로 팔아넘길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이 게임은 흥미롭다니까. 누가 개발한 게임인지는 몰라도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이라면 아무도 게임에 인위적으로 개입을 하거나 컨트롤할 수 없어. 비욘드 주민들과 유저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네. 미리 짜인 스토리를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우리와 같은 보조 GM들의 개입도 자유로운 이런 게임은 아마 앞으로도 절대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새삼 마더컴들의 능력이 놀랍네요.”

 “그러게. 아무튼 우리야 제대로 게임을 즐기면 되는 거야. 자, 가자고. 가서 그 용병대장의 눈에 들어야지. 그 기자는 원고료를 얼마나 받아왔을지 모르겟네. 설마 우리보다 많지는 않겠지?”

 “그야 모르지요. 사실 1만 골드가 엄청난 돈이긴 하지만 그 용병 양반 눈에 찰지 모르겠어요. 워낙 거액의 의뢰만 취급하는 거물 같으니 말이에요.”

 “그래, 거물은 맞는 것 같아. 비욘드의 굵직한 사건들에 모두 관여하는 인물이니 대단한 NPC지. 그 친구만 따라다니면 우리도 풍운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거야.”

 두 사람은 경리부에 들러 1만 2천 골드를 비욘드 은행 계좌에 넣었다. 그동안 몬스터를 잡은 부산물이나 아이템을 얻어 판 적이 꽤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합해도 이번에 보상으로 받은 1,000골드에는 미치지 못한다.

 뿌듯했다.

 애초에 회사와의 계약이 비욘드에서 벌어들인 돈은 개인이 자유롭게 써도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계좌에는 어내스 1,500골드에 가까운 돈이 쌓여 있다. 방어구나 무기같이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회사에서 해결해 주니 이렇게 돈이 쌓인 것이다.

 현실로 따지면 4,000만 원이 넘는 거금이다. 그걸로 어떤 일에 쓸까 생각하는 것은 정말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다. 두 사람은 게임 룸까지 걸어오며 사용처를 생각했다.

 두 사람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요른 백작성은 평야를 지나는 강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물을 끌어들인 해자와 벽돌을 구워 쌓은 성벽은 끝없이 이어져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성곽의 높이는 다른 성과 비슷하지만 그 길이는 무려 10킬로미터가 넘었다. 백작령 자체가 워낙 넓고 인구가 많은 탓이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대륙 최대 곡창지대로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라 보통 삼십만에서 오십만 사이인 타 백작령과는 달리 요른 백작령은 무려 그 인구가 백만이 넘었다. 물론 농노들의 숫자는 포함도 되지 않은 수치였다.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직할령인 요른 백작령을 수호하는 제국 3군단이 요른 평야의 외곽을 뺑 둘러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몬스터들의 발호가 거의 없는 곳이라 백작령의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하룬과 아반 일행은 성을 들어서자 일단 여관부터 잡았다.

 요른 백작의 자택과 집무실, 3군단 본부와 세 개의 상급 아카데미 그리고 여섯 개의 신전이 자리를 잡고 있는 요른 백작성은 곡물상을 비롯한 상인들과 군부 인사들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들의 내왕이 많은 곳이라 상권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모두 여덟 개의 성문을 가진 백작성은 성문에서 중앙에 있는 광장까지 마차 네 대가 나란히 다닐 수 있는 대로가 뚫려 있었다. 그 대로 양옆에는 수많은 상점들과 식당을 겸한 여관들이 즐비했다.

 “대장, 어디로 갈 거예요?”

 “혹시 아는 곳이라도 있나?”

 아반 부녀의 물음에 하룬은 예전에 티노에게 들은 여관의 이름을 떠올렸다. 친절한 종업원들과 조용한 별채를 가진 곳이라고 했다.

 “아가시 나무의 추억이라는 여관이라면 편하게 쉬면서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로 가지.”

 이미 그 위치를 들어 알고 있는 하룬은 사람들이 들끓는 대로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향했다. 대로 바로 다음 골목도 각종 상점들이 가득했지만, 타우스트와 마찬가지로 이곳은 성민들과 지리를 잘 아는 외지인들밖에 없어 다소 한산했다.

 하룬은 이곳에서 조금 오래 머물 생각이었다. 당장에 급한 이사 문제나 영흥 마을 전사들을 도와주는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고대 던전에 대한 방송이 되는 것을 보면서 원고료를 받아 해란에게 부탁한 물건들을 구입해야 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레스와 두 GM들도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 하룬의 생각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묘가 슬쩍 그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하룬 대장, 여기서는 얼마나 머물 예정입니까?”

 “처리할 일도 있고 목적지와 그곳까지의 길도 상세하게 조사를 해야 하니 한 일주일 정도는 머물 생각입니다. 왜요?”

 “아니요. 아닙니다.”

 하룬의 물음에 당환한 표정을 짓는 묘를 보니 이상하다. 그녀는 여간해서는 당황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척 수령이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고목 곁에 자리를 잡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2층으로 된 음식점과 그 옆으로 정원을 갖춘 숙소가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여관이었다.

 여장을 푼 하룬은 일단 로그아웃부터 하기로 했다. 벨과 해란에게 맡겨 놓은 일의 경과가 궁금했던 것이다.

 “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어딜 좀 다녀와야 합니다. 한 사흘 정도 걸리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더 걸릴 수도 있으니 늦거나 밤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여행 준비를 해 놓으십시오.”

 “알겠네. 우리도 볼일이 좀 있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자유 시간을 확보한 아반의 얼굴에 웃음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 먼저 나가겠습니다.”

 “그러게.”

 중요한 물건들은 이미 아공간에 다 넣어 두었고, 나머지 보급품들과 귀중품들 역시 마법 배낭에 넣어 아공간에 넣으면 되니 물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용병 길드에 들러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거처를 남기고 안전한 곳에 가서 접속을 해제하면 된다.

 접속을 해제한 하룬은 캡슐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벨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잘 나왔어, 오빠!

 반갑게 그를 맞는 벨을 보자 집에 돌아온 듯 마음이 푸근해졌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하룬은 평소에 그가 게임을 할 때 얼마나 내부가 확장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캡슐의 사방에서 쏘아지는 수없이 많은 전자기파와 연결이 되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왜 해제 안 해?”

 -어? 금방 돌아갈 거 아니었어? 난 오빠가 내 호출 신호 받고 나온 줄 알았어.

 신호라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호출 신호? 아니. 난 할 일이 있어서 나온 건데.”

 -그래요. 잠시만.

 벨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사방 벽에서 쏘아지던 전자기파가 홀연히 사라지고 몸은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 봐야 높이 3미터 정도라 유연한 동작으로 쉽게 착지할 수 있었다.

 “실내가 굉장히 넓네.”

 -호호! 그래야 오빠가 게임에서 행동하는 움직임을 똑같이 구현할 수 있거든.

 지난번에 한 번 경험하긴 했지만 정말 신기했다. 특히 확장된 캡슐의 실내는 얼핏 집 전체보다 더 넓은 공간이라 신기함은 더했다. 벨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다만 싸가지 녀석의 아공간과 비슷한 개념이라는 것만 이해할 수 있었다.

 온몸의 신경과 빽빽하게연결된 전자기파를 통해 이렇게 넓은 캡슐의 정중앙에 떠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게임 속의 동작을 똑같이 현실의 캡슐 속에서 하기 때문에 별도의 수련 없이 게임 속에서 배운 패시브 스킬을 현실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자리에 누워, 오빠. 캡슐을 축소할 테니까.

 “응!”

 내린 자리에 하룬이 똑바로 눕자 사방이 자신을 향해 밀려들어 왔다. 확장되었던 실내 공간이 다시 원위치 되는 것을 보자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마치 몸을 압사시킬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하룬은 두 눈을 뜨고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캡슐의 내부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벨을 믿고는 있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캡슐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온 하룬은 일단 샤워부터 했다. 비욘드 안에서 여관에 들었을 때 목욕을 했더라면 그런 수고를 덜 수 있었지만 나오기 바빠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벨이 웃는 얼굴로 깨끗한 평상복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까 접속을 해제한 직후에 한 말이 생각났다.

 “메신저를 통해 영흥 마을의 나인이라는 휴먼이 연락을 해 왔어.”

 “나인이?”

 “응. 급하게 상의할 것이 있다고 연락 좀 달라고 해서 안 그래도 오빠를 호출하고 있었어.”

 “무슨 일이지?”

 나인이 직접 그에게 연락할 일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물론 헤어지기 전에 그런 의사를 비치기는 했지만 하룬으로서는 해란을 중개 역으로 하면 되는 일이었다.

 “연락해 봐.”

 “알았어.”

 연락은 금방 이루어졌다. 화상을 통해 나인의 영상이 떴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 하룬은 나인에게 물었다.

 “상의할 것이 있다고요?”

 나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내용을 꺼냈다.

 “사실은 해란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슨?”

 “네, 비욘드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최상급 캡슐을 사용해서 하다 보면 게임에서 쓰던 기술을 현실에서도 어느 정도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무슨 소리인지 감을 잡았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 게임에는 여러 가지 스킬이 있습니다. 그중 주문으로 발현되는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게임상의 육체, 즉 화신체를 써서 수련하는 패시브 스킬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익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도 그 기술을 쓰려면 따로 수련을 해야 할 겁니다.”

 “그 정도면 돼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전대 전사들께서 갑자기 사고를 당해 돌아가시는 바람에 전사들이 갖추어야 할 비전秘傳을 비롯해서 상식적인 것들까지도 전수받지 못했거든요.”

 그 이야기는 지난번에 들은 적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경험 없고 제대로 된 비전도 익히지 못한 전사들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하르크와 같은 변종 생물들에게 죽고 말 거예요. 그렇게 되면 대를 이어 상행을 하던 우리 마을의 전통과 명예는 사라질 것이고, 마을도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거예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듯했다. 그런 하룬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나인이 말을 이었다.

 “전사들은 1년에 열 달이 넘게 오염된 세상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수명이 짧은 편이에요. 그래서 전사의 후예들은 어린 나이부터 전사들과 함께 상행에 동행하며 경험을 쌓지요. 로수 오빠는 일이 생겨 빠졌지만요. 그런데 지난번 사고로 모두…….”

 듣고 보니 로수를 제외한 전사들은 어릴 때부터 전사로 키워진 친구들이 아니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수련을 했다면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일 리가 없었다.

 “사정이 딱하군요.”

 “해란에게 들으니 구하고 있는 물건들이 꽤 많더군요. 그것도 주로 기계류와 각종 광석들과 합금들이더군요.”

 나인의 눈이 반짝거렸다.

 “네. 개인적으로 쓸 일이 있어서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들은 정보가 하나 있어요. 언제 만든 시설물인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 같이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그런 물건들이며 설비들이 많이 있었어요. 물론 없는 것들도 있겠지만 물건은 우리가 책임지고 구해 드릴게요.”

 하룬은 귀가 솔깃했다.

 “어디에 있는 겁니까?”

 “유니온에서 남서쪽으로 걸어서 하루 반나절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그 정도라면 위치는 괜찮았다. 벨도 그렇지만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라도 배리어 밖이 안보다는 훨씬 좋을 것이다.

 “좋습니다. 필요한 게 뭡니까?”

 원하는 것이 없으면 이런 소리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상급 캡슐이 필요해요. 우리 마을 전사들이 게임을 통해 전사로서의 소양과 무력을 갖추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말대로 최상급 캡슐이 필요했다. 배리어 밖을 떠도는 상행을 하거나 호위하려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수련을 해야 했다.

 “몇 개 정도가 필요합니까?”

 “최상급 스페셜 캡슐 가격이 꽤 비싸다고 들었어요. 대당 가격이 3,0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열 대 정도만 있으면 번갈아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인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3억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하룬으로서 감당 못 할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필요한 것들은 영흥 마을 사람들이 책임지고 모두 구해 준다고 하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좋습니다. 곧 상당한 자금이 들어올 겁니다. 해란에게 말을 해 놓을 테니 해란을 통해 수령해 가도록 하세요.”

 “감사해요.”

 나인은 하룬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줄 알았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몇 번 보았지만 웃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웃으니 폭발적인 매력이 흘러나왔다. 마치 꽃이 피어난 것 같았다. 단지 미소를 지은 것만으로 말이다.

 “그럼 그 장소를 알려 드리죠. 그 시설은 황무지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호숫가 지하에 있어요. 자세한 위치는 좌표를 찍어 드릴게요. 일단 예전에 그곳을 탐사했던 아빠가 찍은 영상을 보세요. 지금 파일을 보내 드릴게요. 확인해 보시고 다시 통화를 하지요.”

 “좋습니다.”

 곁에 있던 벨이 바로 파일을 재생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영상 때문에 자세한 것을 알기는 힘ㄷ르지만, 벨이 연방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박수를 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필요한 것들이 꽤 갖추어진 것 같았다.

 영상을 확인한 벨이 펄쩍펄쩍 뛰며 달려와 그의 목에 매달렸다. 신이 난 벨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가벼웠다.

 “오빠! 굉장해. 웬만한 것은 다 갖추어져 있어.”

 “그래? 그게 영상만으로 확인된단 말이지. 그럼 혹시 우리가 지낼 만한 공간도 있니?”

 어차피 벨이 간다면 자신도 가야 했다. 즉,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영상이 너무 오래되어 그건 확인하지 못했어.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규모의 작업실이라는 거야. 영상에는 한 층만 있었지만 내 생각으로는 지하에 더 많은 공간이 있는 것 같아. 자세한 것은 오빠가 직접 나가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아.”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하룬은 다시 통신을 연결했다.

 “어때요?”

 “일단 자금이 들어오면 답사를 해서 영상과 다르지만 않다면 거래를 하겠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연락 주세요. 지금 전 전사들과 함께 해란이 마련해 준 은밀한 곳에서 비욘드라는 게임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해란을 통해도 되고 이 메신저로 연락해도 돼요. 되도록 빨리 연락 주세요.”

 “알았습니다.”

 이제 곧 고대 던전에 대한 뉴스가 방송될 예정이다. 그럼 상당한 액수의 현금이 들어올 것이다. 설사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최악의 경우 게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게임 머니를 환금하면 된다.

 일단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봐야 했다.

 “씨발 새끼들!”

 뫼비우스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자신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다른 길드원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최소한 자신에게 이번 일을 시킨 수뇌부들은 자신의 입장이나 그동안의 경과를 길드원들에게 이야기해서 오해를 풀어 주어야 한다.

 “짜식! 좀 즐겼냐?”

 “당연히 즐겼겠지. 저 새끼가 어디 굴러 온 여자 거절하는 거 봤냐? 분명히 따먹었겠지. 비류 고년이 성질은 더러워도 몸매 하나는 끝내주던데 말이야. 거기에 걸레라고 소문난 년이잖아.”

 “하긴 저 새끼도 걸레니까 잘 어울렸겠네.”

 길드의 상위 랭커들이 참석하는 대표 회의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가해서 이번 후크란 보석 광산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나오는 뫼비우스를 두고 뒤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아랫입술에서 뜨듯하고 짭짜름한 피 맛이 느껴졌다.

 코원 길드장인 세류에게 걸려 척살당한 것은 물론 다시 접속했을 때도 끌려가서 온갖 고문을 다 당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현실의 작업장까지 찾아온 코원 길드의 행동대장에 의해 온갖 수모를 당하고, 세류에게 그동안 게임을 하면서 번 1억이 넘는 피 같은 돈을 바치고 나서야 겨우 무한 척살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세류와 비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개처럼 취급을 받은 것이다. 온갖 고문과 협박에 눈물, 콧물 그리고 핏물까지 흘리고 나서야 겨우 용서를 받았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그랬는데 길드장과 수뇌부들은 겨우 한다는 소리가 자기들 덕분에 노블과 연애를 즐길 수 있었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씨발! 노블 새끼들은 다 똑같아. 애초에 천공과 계약을 하는 게 아니었어.”

 천공 길드의 길드장인 여천철의 꼬임에 넘어가 별생각 없이 계약한 것이 잘못이다.

 길드 사무실을 나온 뫼비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빨에 찢어진 입술이 따가웠지만 지금은 그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게임에서는 주로 솔로잉을 했다. 하지만 비욘드는 다른 게임들처럼 유저들을 위한 편의가 별로 없어 솔로잉은 힘들었다.

 운이 좋아 정보 길드와 관련된 NPC에게 스킬을 배워 전직 도시까지 가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전직을 한 뫼비우스는 정보가 큰돈이 된다는 점을 NPC 스승을 통해 깨달았다. 그의 스승은 제국 정보 길드에서 은퇴했기에 정보를 다루는 방법을 그에게 전수했던 것이다.

 뫼비우스는 스승의 인맥으로 제국 정보 길드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행정직이 아니라 현장직이지만 뛰어난 로그였던 스승의 배려로 빠르게 실력을 올릴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주요한 임무는 이방인들에 대한 정보를 제국 정보 길드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방인으로 제국 정보 길드의 정식 길드원은 그가 처음이었다. 때문에 많은 고급 정보를 취급할 수 있었고, 그 정보를 이용해서 초반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주목한 사람이 천공 길드를 창설한 여천철이었다. 노블로서 막강한 자금을 바탕으로 비욘드 서비스 개시와 동시에 자신의 패밀리로 길드를 만든 그는 빠르게 자신과 길드원들의 레벨을 높이고 막강한 힘을 동원해서 실력자들을 영입해서 세력을 키우는 한편, 골든 배틀 퀘스트가 시작되자 가장 막강한 후보인 1황자에게 달라붙었다.

 테론 제국에 있는 네 개의 정보 길드 중 가장 규모가 큰 제국 정보 길드는 1황자와 은밀하게 야합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여천철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결국 여천철의 달콤한 권유에 넘어가 계약을 맺고 말았다. 그것은 길드 수뇌부에 준하는 대우와 의무가 걸린 계약으로, 그는 천공 길드의 은밀한 어둠의 손이 되었다.

 그 말고도 천공 길드에는 어둠의 손들이 많았다. 그들은 유저 출신의 어쌔신들이나 로그들 그리고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천공 길드를 대신해서 암중에 암살, 도둑질, 혹은 사기와 같은 지저분하고 은밀한 일을 처리해 왔다.

 그들은 모두 현실에서 보수를 받기 때문에 개인적인 정보가 다 드러난 상태였다. 때문에 노블로서 현실에서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여천철을 배신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흥! 언제까지 네놈들의 밑이나 닦아 주면서 살지는 않을 거야. 어차피 가족도 없는 몸.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냐?’

 이번 일로 인해 확실하게 마음을 굳힌 뫼비우스는 천공 길드를 엿 먹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놈들은 고대 던전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입수하고 나서 유저들과 다른 골든 배틀 경쟁자들의 시선을 다른 게로 돌리기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 후크란 산맥의 보석 광산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일을 바로 뫼비우스가 맡은 것이다. 정보 길드에서 세류 자매와 만난 것 역시 애초부터 짜인 각본에 다 들어있던 것이다. 여천철은 이상하게 세류에게 강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코원 길드가 목표물이 된 것이다.

 ‘일단 나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능력자를 섭외해야 해.’

 놈들이 다른 두 길드와 연합해서 찾아낸 고대 던전은, 그 땅의 주인인 호전적인 다크 엘프들 때문에 던전은 입구만 발굴해 놓고 들어가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어차피 등을 돌리기로 한 마당에 이런 굉장한 정보를 가만히 알고만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팔아야 한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후크란 산맥의 보석 광산처럼 지도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길드원이 아닌 그로서는 고대 던전을 발견했다는 사실과 탐사 상황이 지지부진한 점을 빼고는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한다.

 이런 상태의 정보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물론 증거가 없다고 해도 이 정보를 은밀하게 소문내면 천공 길드를 비롯한 세 길드는 막대한 피해를 받을 것이다. 지금 후크란으로 쏠린 유저들이나 NPC들이 대거 고요의 땅으로 향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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