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거래 (60/278)

《거래》

 캡슐 뚜껑을 밀치고 밖으로 나온 아레스는 현실감을 빨리 되찾고는 굳은 관절을 풀기 위해 목을 돌리고 몸을 털었다.

 “어! 왜 벌써 나와?”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유니넷을 뒤지던 미료가 그런 아레스를 보고 물었다.

 “그러게. 왜, 죽기라도 한 거야?”

 또 뭔가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기사를 작성하던 장료가 앉은 채 의자를 돌려 끌고 아레스에게 다가왔다.

 “빅뉴스가 있어. 이리 와 봐!”

 아레스는 비좁은 실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캡슐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뭔데?”

 “얼굴로 봐선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이란성 쌍둥이라 성별도 다르고 몸집마저 차이가 나는 미료와 장료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아레스를 마주 보며 다른 캡슐 위에 앉았다.

 손위인 미료는 큰 키에 마른 몸매로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컴퓨터 관련 지식이나 기술이 뛰어났다. 셋이 한 팀이 된 후 유니넷과 글로벌넷을 통해 정보를 찾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동생인 장료는 큰 키에 몸집마저 컸고, 송충이같이 굵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으로 인해 마치 전사처럼 생겼지만, 실은 개미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심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연약한 성격에 몸치라서 가상현실 게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의외로 글을 쓰는 재주가 있어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아레스는 호기심 어린 쌍둥이를 조금 안달 나게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 바로 용건을 꺼냈다.

 “오늘 내가 후크란 산맥에 진입한 건 알고 있지?”

 “응.”

 “왜? 죽었니? 그럼 안 되는데. 너 그 레벨 올리게 해 주려고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장료가 인상을 썼다. 팀의 손발과 다름없는 아레스를 하이 랭커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두 사람은 해킹까지 해 가면서 레벨 업에 좋은 사냥터며 던전들을 수시로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게 아니야. 오늘 내가 후크란에서 누굴 만났는지 아냐?”

 “누구?”

 “후후후! 돌풍 용병대를 만났어.”

 “돌풍? 혹시 후크란 보석 광산을 안내했다는 그 돌풍 용병대를 말하는 거야?”

 “빙고!”

 미료와 장료의 눈빛이 단숨에 뜨거워졌다. 그들 역시 돌풍 용병대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보석 광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까지 이동할 수 있는 안전한 길을 알고 있는 돌풍 용병대는 현재 유저들이 가장 만나기를 원하는 유명 인사였다.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보석 광산의 위치를 아는 것은 물론 안전하게 그곳까지 갈 수 있다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럼 보석 광산까지 안내를 의뢰한 거야?”

 “그건 쉽지 않을 텐데…….”

 장료의 말대로 그것은 상도의상 안 되는 일이다. 특히 용병이라면 계약에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직종이니만큼 보석 광산의 위치를 원 의뢰자가 아닌 사람에게 발설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고대 던전이 발견됐어!”

 “고대 던전? 그게 무슨 소리야? 고대 던전이라니?”

 장료와 미료의 눈이 순간적으로 두 배 정도는 커졌다.

 “고대 문명의 유물이 있는 던전이 고요의 땅에서 발견되었다고. 내용을 알 수 없는 유물 한 점과 마법서가 들어 있는 던전이래.”

 “그래? 좋은 건가?”

 흥분해서 말하는 아레스와는 달리 장료의 태도는 미적지근했다. 물론 대단한 정보이긴 하지만 후크란의 보석 광산과 견주면 그다지 나을 것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런 반응은 미료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너희들이 마법사가 아니라 잘 모르는구나. 내가 전직을 하면서 배운 마법 지식을 보면, 현재 비욘드의 마법 체계는 고대 문명에 비해 엄청나게 낙후된 거란 말이야. 일례로 현재 4서클 마법인 플라이 마법의 경우 고대 문명에서는 2서클 마법이었어.”

 “그럼……?”

 미료가 뭔가를 눈치챘는지 눈을 치켜뜬다.

 “그래. 비욘드의 역사를 보면 테론 제국이 건국되기 전까지는 기사 시대로 정의하고 있어. 마법은 거의 소실되어 마법사들이 거의 없었던 거지. 그러다가 1,000년 전 제국 성립기에 우연한 기회에 지금은 황실 마탑이 된 파이오니어 마탑이 잃어버린 고대 문명의 하위 마법서 두 권을 발견한 사건으로 인해 마법이 재정립된 거야. 그 마법서들은 겨우 3서클까지의 마법들만 실려 있었대. 그나마도 제대로 해독을 할 수 없어 수많은 마법사들이 수백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일부 해석 가능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계의 마법을 만들어내고 발전시켜 온 거야.”

 “그렇다는 이야기는……?”

 미료가 말을 흐렸다.

 “아마 이 소식이 알려지면 당장 대륙의 마탑들이 난리가 날 거야. 웬만해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 고지식한 마탑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겠지. 마법서가 무려 네 권이나 있다고 하니 비교 분석하면 더 많은 마법들이 발견되겠지. 어쩌면 그 내용을 완전히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미료와 장료는 이제야 아레스가 가진 정보의 가치를 이해한 눈치였다. 둘 다 눈이 몽롱하게 풀어져 입만 벌리고 있었다.

 “보석 광산이 후크란에 존재한다는 정보는 이미 비욘드의 주민들은 알고 있던 거라고 하더군. 알고는 있지만 후크란 산맥의 지형이 너무 험하고 몬스터들이 워낙 흉포하고 강해 몇 번의 대규모 탐사 후 포기했다는 것이 이미 정보 길드에 관여된 유저들이 찾아낸 사실이야. 그 원정대들은 현재 유저들에 비해서 월등한 전력을 갖추고도 몇 차례나 거의 전멸을 당한 역사가 있어. 즉, 현재의 유저들에게 있어서 후크란의 보석 광산은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지.”

 “그건 그래. 이번에만 해도 거의 삼천에 가까운 유저들과 이천에 이르는 기사들, 병사들이 후크란 산맥에서 전멸을 당했으니까.”

 정보 검색을 맡고 있는 미료의 말에 아레스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그런데 고대 던전은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고급 정보야. 거기에다 그 속에 매장된 유물은 마법사들이 몽매에도 그리는 마법서고. 이 정보가 알려지면 테론 제국은 발칵 뒤집히는 거지. 유저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고.”

 “후와! 정말 끝내주겠는데!”

 “그런데 그 정보를 누구한테 얻은 건데? 진실성이 있는 정보이긴 한 거야?”

 장료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그래도 진실성을 따지는 것을 보면 믿음직하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아레스가 대답했다.

 “와이번 세 마리에게 걸려 죽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 준 돌풍 용병대 대장이 말해준 거야.”

 “우리?”

 미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 나보다 후크란에 먼저 진입한 두 사람이 있었어. 난 능력도 모르고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가 같이 죽을 위기에 빠진 거고.”

 “으음. 어쨌든 와이번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춘 용병이란 말이지? 그것도 그 험하다는 후크란에서 만난 용병이고. 그럼 돌풍 용병대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진실성은 담보되는걸.”

 미료는 혼잣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확실해. 증거도 있다고 했어. 그게 없다면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지. 더구나 실력도 단편적으로 방송에서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나. 내 눈으로 직접 와이번을 사냥해서 가죽과 부속물을 도축하는 것을 봤으니까. 두 마리가 더 있었지만 아예 지상으로 내려올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비도 실력을 가졌어.”

 아레스는 두 사람에게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것을 들은 미료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비도의 날이 파르스름하게 빛난 것을 보면 마나를 사용하는 익스퍼트 급이 확실하네. 거기다가 거의 동시에 마나가 실린 수십 개의 비도를 날릴 능력을 가졌다면 중급 이상일 것이고, 정령까지 부릴 수 있는 희귀한 능력을 보유한 것을 보면 거의 상급 익스퍼트라고 봐도 될 거야. 아니, 아니지. 정령의 힘과 암기 실력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검술 실력까지 생각한다면 그 이상일지도 몰라. 그 정도 실력이라면 악마의 땅이라는 별명을 가진 후크란을 내 집처럼 헤집고 다닐 수 있는 능력은 확실하지.”

 역시 정보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미료의 몫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장료와 아레스는 하룬의 실력에 대해서 나름대로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이라면 특급에 해당하는 용병이야. 제국의 유수한 기사단 단장들 실력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우리 유저들에게 알려진 정보로는, 테론 제국이 보유한 소드 마스터의 숫자는 겨우 스무 명도 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은 황실에서 특별히 관리를 하기 때문에 정체나 실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도 거의 없고. 그 정도 실력을 가진 특급 용병이라면 가진 인맥도 엄청나겠지. 허섭스레기 용병도 아니고 네 말대로 무려 10만 골드나 되는 의뢰까지 처리한 적이 있다면, 제국 내에 강력한 인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해. 그럼 네가 얻은 정보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거의 100%야. 그런 인물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생면부지의 이방인에게 그런 사실을 말한 것은 조금 걸리지만 말이야.”

 미료는 정보에 대한 브리핑을 마쳤다.

 “하하하! 난 한 번에 이게 엄청난 정보라는 걸 알았지. 그래서 그 대장에게 거래를 제안했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하고 거래를 하자고 했지.”

 “NPC가 뭘 알아서 우리 일을 설명해?”

 장료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지만 미료는 아레스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흥미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니. 이해했어. 이해했을 뿐 아니라 이 정보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까지 꿰고 있더라고. 이 던전에 대한 정보 공개는 물론 지속적으로 던전 탐사를 진행하며 그 과정을 중계하거나 보고하는 것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까지 이야기하더라니까.”

 아레스의 그 말에 장료는 물론이고 미료까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비욘드는 게임이라고. 그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결국 NPC에 불과한데 어떻게 우리 일을 이해한단 말이야? 혹시 그 사람 유저 아니야?”

 장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NPC가 유저의 세계를 이해할 정도의 인지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생각했어. 하지만 게임을 계속하며 비욘드의 NPC들을 만나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었는지 몰라도 NPC들의 사고방식이나 수준 그리고 행동 양식은 우리 유저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어. 골든 배틀의 당사자들은 심지어 유저들과 손을 잡으려고 시도하고 있어. 그런 점은 이미 수많은 보고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야.”

 아레스의 말에도 장료는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지금 문제는 비욘드의 주민이 인공지능을 가진 NPC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야. 우리에게 있어 이 정보가 얼마나 돈이 될 것이냐 하는 거지. 인공지능이든 뭐든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이 말한 대로 던전 탐사에 동행할 수 있다면 우린 그야말로 넝쿨 달린 대박을 치는 거야. 우리와 같은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황금 동아줄이라고.”

 미료의 말이 맞았다. 장료나 아레스 역시 NPC들에 대한 이해 여부를 떠나 이 정보의 가치는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조건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역시 미료는 머리 회전이 빨랐다.

 “내가 말발로 5 대 5에 우리가 용병대에 가입하는 조건까지 끌어냈어.”

 아레스의 말에 미료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익 배분은 나쁘지 않아. 아니, 굉장히 좋아. 하지만 용병대에 가입하는 조건이 걸리네. 일단 용병대에 가입하게 되면 제약이 많을 텐데.”

 “맞아. 그래서 너희들과 의논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나온 거야. 용병대의 경우 아마 생사여탈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한 제약이 있을 테니까. 탈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문제는 그거였다. 아레스는 물론 미료와 장료가 고민할 것은 용병대 가입 여부였다. 혹시라도 대장의 의도가 불순하다면 대원 신분이 될 그들로서는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뭐 어때? 그 정도 용병대가 우리 같은 이방인들을 상대로 나쁜 짓을 하겠어? 난 그냥 그 조건을 수락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미료가 힘들여 자료를 찾지 않아도 되고, 아레스 너도 혼자 그 고생을 안 해도 되잖아.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건데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장료는 일단 찬성이다. 아레스도 장료와 같은 의견이긴 했지만 미료의 결정을 기다렸다. 셋 중 가장 지혜로운 그녀는 심사숙고를 하고 있었다.

 “장료 말도일리는 있어. 하지만 우리는 이방인이야. 아무리 게임이 리얼리티가 높아도 결국 살아야 할 곳은 현실이라고. 너무 깊숙하게 게임에 관여되면 안 될 것 같아.”

 그 말은 장료와 아레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비욘드가 출시된 이래 게임으로 먹고사는 것은 물론 보육원에 돈을 보내는 것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 게임에 푹 빠져 살았던 것이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마음은늘 비욘드에 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료의 말대로 게임은 게임일 뿐 그들이 살아야 하는 곳은 배리어에 갇힌 현실인 것이다.

 아무리 이 게임이 재미있어도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고 재미가 떨어지면 유저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처럼 게임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게임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흔히 다크 게이머들이 말하길 한 게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길면 3년, 짧으면 1년에 그친다고 했다. 예컨대 하이 랭커들이 지존을 먹기 시작하면 게임의 생명은 대충 끝나는 것이다.

 비록 비욘드가 다른 게임에 비해 유저들의 레벨 업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리얼리티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유저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인 이상 그 시간이 길어질지언정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의 몫을 줄이더라도 용병대 가입 조건은 철회하게 했으면 좋겠어. 네 말대로 비밀 유지를 위한 것이라면 다른 수단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

 아레스는 미료의 말에 동의했다.

 “좋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럼 다시 가서 이야기를 하고 올게.”

 아레스는 금방이라도 접속을 하려고 했지만 미료가 말렸다.

 “아니야.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자. 이번에는 우리가 조건을 걸 수 있는 방안을 의논해 보자고. 일단 주도구너을 우리가 가져야 나중을 위해서도 좋을 거야.”

 “그래. 나도 질질 끌려가는 것은 딱 질색이야.”

 장료까지 거들자 아레스는 캡슐 뚜껑에 댄 손을 떼었다.

 “하긴 지금 가 봐야 거긴 밤이니까 제대로 이야기하기도 그렇겠네. 거기 시간으로 내일 아침에 접속해야겠다.”

 이제 더 많은 의견들을 나누어야만 했다.

 하룬은 시간을 내어 로그아웃을 했다. 대원들을 만나는 것도 급하지만 더 급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두 팀으로부터 받을 보상을 현실에서 처리하는 것이었다. 게임 내에서 골드로 받는 것은 시간이나 과정 면에서 무척 번거롭다. 적어도 한 팀에게 받는 것은 현금이어야 했다.

 마침 저녁 무렵이어서 해란과 금바 연결이 되었다.

 “어머, 무슨 일이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내가 보고 싶어진 거야?”

 해란은 뜻밖의 통화에 무척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하룬이 보는 앞에서 슈트를 벗고 눈이 아찔해지는 야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하룬은 시선을 약간 옆으로 고정하고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

 “뭔데?”

 해란이 캡슐에 엉덩이를 붙이고 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물었다. 하룬도 젊은 남자인지라 저절로 피가 뜨거워졌지만 표시는 내지 않았다.

 “너희 대장간을 거래의 중개지로 이용해도 좋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가게를 거래의 중개지로 쓴다니?”

 뜻밖의 말에 해란이 캡슐에서 내려 카메라 가까이 다가왔다. D컵은 확실해 보이는 가슴 사이의 골이 깊게 드러나 하룬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게임 내에서 다른 유저들과 현금 거래를 할 일이 생겼어. 그 거래 대금을 네가 좀 받아주었으면 해서. 물론 네 몫은 넉넉하게 챙겨 줄게.”

 하룬의 말에 해란이 무척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돈이 생기는 일이면 얼굴이 활짝 피어나는 해란이 거절할 리가 없다.

 “얼마나 되는데?”

 “글쎄, 지금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최소 1억 원 이상이고, 앞으로 차차 그 규모가 커질 거야. 그 돈으로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대신 구입해 주면 좋겠어. 물론 구입 대금은 시장가로 하고 너나 바란 형이 시세보다 싸게 구입해서 생기는 차액이나 구전을 챙기는 것은 관여하지 않을 거야.”

 이야기를 듣는 해란의 눈이 조금씩 더 커졌다. 이미 머릿속으로 대충 손익계산을 하고 난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환희의 웃음이 피어났다.

 “거래 대금으로 받은 돈 전부 다 물건으로 구입한다고?”

 “응. 필요한 물건들 중에는 외부에서 구입할 것도 많아. 그 거래를 바란 형이 대행해주었으면 좋겠어.”

 “흐흐흐!”

 해란은 거래 와중에 챙길 콩고물을 생각했는지 기괴한 소리까지 내며 좋아하고 있었다. 통상 중개료는 10%다. 물론 배리어 외부의 물건을 중개하면 20%가 넘는 경우도 있다. 아우터들과는 보통 물물 거래를 하는데 양쪽에서 챙기면 30%의 중개 이익은 간단히 남는다.

 최소 거래 대금이 1억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1,000~3,000만 원까지 벌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이어질 거래를 생각하면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대장간을 운영하며 버는 돈도 유니온의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선 엄청난 액수이긴 하다. 하나 그것은 엄청난 땀을 흘린 대가지만 이건 아니다. 그저 양쪽을 잘 컨트롤하고 관리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지. 우리 하룬이 부탁하는 건데.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할 거야?”

 “머지않아 몇 사람이 대장간으로 현금을 가지고 올 거야. 그럼 그걸로 내가 보내 주는 리스트에 있는 물건들을 구해주면 돼.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는 내가 찾으러 갈 거고. 물론 그건 먼 나중이겠지만.”

 “호호!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필요한 물건들은 저번에 네가 나인에게 보여 준 그것들이니?”

 “응!”

 ‘녀석, 입이 아주 귀에 걸렸구나!’

 하룬은 굳이 싸게 해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품질만 좋다면 남들에게 챙기는 이익은 자신에게도 챙겨야 마음의 부담이 없다. 그래야 나중에 하자가 생길 때도 당당하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최우선으로 구할 품목 리스트를 보낼게.”

 하룬은 벨에게 받은 리스트를 화상 통화 계정으로 전송 처리했다. 리스트 화면을 열어 본 해란은 빽빽하게 기재된 품목들의 종류를 보고 놀랐지만 굳이 의구심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워낙 비밀이 많은 하룬이고 그동안 겪어 본 바로는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리도 없음을 아는 것이다.

 “흠, 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기계류와 설비 재료들은 별 문제 없을 거 같고. 철괴와 동괴를 비롯한 광석들과 합금들이 문제네. 일단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보겠지만 없는 것들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나도 나인이나 다른 아우터들에게 의뢰를 해야 하거든.”

 “되도록 빨리 부탁해.”

 “오케이! 게임을 접속 못 하는 상황이 있더라도 내가 열일 제쳐두고 매달릴게. 근데 이 물건들은 어디로 배달하면 되는데?”

 “아! 그렇지. 가만있자, 받을 장소는 나중에 따로 보내줄게.”

 “젊은 애가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몰라. 네가 꼭 USSA 요원이라도 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이 바닥에 USSA 요원들이 비욘드에 접속해서 활동한다는 말이 돌던데, 혹시 너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네 정체는 도대체 뭐야?”

 해란이 한 말에 하룬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USSA(Union Secret Security Agency 유니온 비밀 안전국)는 유니온 내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특별한 조직으로서 원로원 집행부 직속 기구다. 인적 구성이나 그 임무에 걸쳐 모든 것이 비밀인 이 기구의 요원이라니 해란의 비약이 심했다.

 하룬은 그저 미소만 짓고 대답을 회피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즉답이 없으면 본인이 알아서 자신에게 맞는 답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 사람들의 머리를 당해 낼 수 없으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쪽이 낫다는 것을 하룬은 알고 있었다.

 “쳇! 나중엔 꼭 얘기해 줘야 해. 나도 이젠 네 일에 상당히 관여하기 시작했다고. 혹시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억울하잖아. 무슨 일에 연루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당하면 안 되잖아.”

 “연루될 일 없으니까 일만 잘 처리해. 위험한 일도 아니고 말이야.”

 “제길, 이런 고가의 합금까지 필요한데 뭐가 위험한 일이 아니야? 이런 물건들을 잘만 이용하면 엄청난 무기나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란이 연방 툴툴거렸지만 하룬은 더 이상 대답을 피했다. 그녀가 알아 봐야 좋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잘 부탁해. 넌 아무래도 게임에 많이 접속해 있을 테니 바란 형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줘.”

 “걱정 마. 네 일은 내가 전담해서 처리할 테니까. 안 그래도 성년이 되었는데 일 안 하고 돈만 쓴다고 잔소리를 하는 오빠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이번 기회에 오빠들 콧대를 좀 눌러 놔야겠어.”

 하룬은 툴툴거리는 말과는 달리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좋아서 방방거리는 해란에게 인사를 하고 접속을 끊었다.

 “오빠, 저 언니 왜 저렇게 만날 벗고 다녀? 다 큰 여자가 창피하지도 않나? 저렇게 노출해도 오빠 바이탈 사인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 저게 취미인가?”

 “하하하! 더운가 보지.”

 해란의 꼴을 흉보는 벨의 태도에 하룬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질투하는 것같이 눈이 샐쭉해져서 잔뜩 볼이 부은 벨의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벨과 더 놀 시간이 없었다. 그들이 언제 다시 접속을 할지 모르니 빨리 돌아가야 했다.

 “벨, 이젠 이사를 할 수 있겠다.”

 “정말?”

 “응. 이젠 네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구할 방도가 생겼어.”

 “정말? 신 난다.”

 벨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곧 구할 수 있다는 말에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녀셕의 그런 모습을 보니 가슴이 흐뭇해졌다.

 “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곳으로 갈까? 거기 주택을 구입할 자금은 있는데.”

 “난 어디라도 좋아. 빨리 갔으면 좋겠다. 헤헤!”

 도대체 뭘 만들고 싶은 건지 자신의 작업실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은 벨의 천진한 미소를 보니, 꼭 제대로 된 작업실과 필요한 물건들을 다 구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하룬은 그렇게 일을 일단락하고 다시 비욘드에 접속했다.

 비욘드로 돌아오니 숙영 장소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산중이라 그런지 밤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다.

 하룬은 육포와 물 그리고 약간의 빵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아공간에서 지혜의 파편을 꺼냈다. 시간이 있을 때 다시 영상 강의를 듣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영상 강의를 듣다보니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다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지식이야 별 차이가 없지만 마나에 대한 강론에서는 이전보다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나름대로 마나 플로를 찾아낸 터라 더 깊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혈도라고 부르는 마나 포인트를 어떻게 도느냐에 따라 마나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점은 정말 신기했다. 영상 강의에서는 그것을 두고 인체가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은 우주의 축소판이라 모든 것이 다 들어있으며 인간의 정신과 마음속에는 우주의 질서가 들어있다고 했다. 이런 이론은 ‘인간이 곧 신이다’라는 아주 충격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

 하룬은 시간의 흐름까지 잊고 영상 강의에 빠졌다. 모든 내용을 다 듣고 나서 눈을 뜨니 새벽이 오고 있었다. 한 번 들은 내용이라서 그런지 시간은 조금 덜 걸린 듯했다. 아직도 깨치지 못한 내용들이 많지만 일단 지혜의 파편을 아공간에 다시 넣고 마나 플로를 돌리기로 했다.

 잠을 자기에는 너무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그사이 하룬은 이번에 사이언스 마을에 다녀오며 새롭게 익힌 기의 순환이 여기서도 가능한지 시험해 보았다. 그는 바위 앞에 형성된 작은 공터를 둥글게 돌면서 메신저 워킹을 펼쳤다.

 농밀한 마나가 발바닥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룬은 의지의 힘으로 그 마나를 다리와 허벅지를 거쳐 아랫배 깊숙한 곳까지 이동시킨 뒤 이미 축적된 마나와 한 덩어리로 만들어 체내를 순환시켰다.

 현실에서도 극고의 집중 상태가 아니면 쉽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력을 기울였다.

 ‘된다!’

 현실의 육체와 높은 동화율을 가진 덕분인지 마나는 현실의 기와 똑같이 그의 몸을 순환했다. 현실에서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 시도에서 마나는 그의 의지를 이전과는 달리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나를 받아들이고 순환시키는 과정이 계속될수록 하룬의 의식은 마치 안개처럼 풀어지고 있었다. 그가 마나인지 아니면 마나가 그인지 모를 정도로 뒤섞여 버리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룬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극고의 희열을 경험하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나 관념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 마나만 존재했다. 마나는 빛이고 그 외에는 온통 캄캄한 어둠이다.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그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과 수축을 계속하며 영원할 것처럼 돌고 있었다.

 빛의 세력이 강해지고 그 덩치가 늘어나면 어느새 강하게 수축되어 이전보다 더 작아졌다. 마치 어둠이 빛이 강해지는 것이 두려워 잡아먹은 것처럼 보이지만, 작아진 빛은 이전보다 더 휘황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지는 빛과 어둠의 세계를 오롯이 바라보며 관조자이자 동시에 그 세계 자체였던 순간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하룬 님!”

 그를 부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절대로 빠져나오고 싶지 않던 빛과 어둠의 세계에서 추방된 하룬은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메신저 워킹을 펼치며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던 그를 방해한 인물은 아레스였다. 그새 현실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왜 벌써……?”

 말을 하다가 보니 어느새 사위가 훤하다. 이미 해가 뜬 것이다. 해의 높이로 보아 새벽을 지나 아침으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밤새 이러고 있었던 건가?’

 이 위험한 후크란에서 밤새 이러고 수련을 했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했다. 너무 경솔하게 집중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럴 때는 집중력이 좋은 것도 반갑지 않았다. 행여 와이번이나 야행성 맹수가 그의 모습을 발견했더라면 영락없이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는 적의를 품은 존재들이 가까이 왔다면 그의 마나와 감각이 그를 깨울 거라는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책했다.

 하룬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레스의 뒤를 보았다. 매그럼과 초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들은 아직 비욘드에 접속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답은 가져왔소?”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요.”

 하룬은 자리를 잡고 앉아 아레스를 주시했다.

 “팀원들에게 대장님이 한 제의를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들의 의견은요?”

 “거래 조건만 일부 바꿀 수 있다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흠, 그래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

 뜻밖이었다. 사실 그 정도의 이익 배분이라면 자신이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제 친구들은 용병대에 가입하는 문제를 상당하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룬은 뜻밖의 말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신은 나름 그들의 편의를 위해 그런 조건을 건 것인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용병대에 가입하는 것 대신 대장님에게 수익의 6할을 드리겠습니다.”

 하룬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용병대에 가입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이 세계에 대해 어두운 우리로서는 어떤 단체에 가입한다는 것이 좀 불안합니다. 어떤 제약이나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우리 입장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그렇다면야.”

 하룬 역시 불만이 없었다. 사실 용병대 가입 문제는 저들을 위한 것이었다. 행여 취재를 하는 동안 사망을 하게 되었을 경우 부활 장소를 단체장 근처로 설정할 수가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원유한 것이었다. 나름 호의를 가지고 제안한 것을 거절하니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럽시다. 앞으로 잘해 봅시다.”

 하룬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친구들도 시간이 나는 대로 이 세계로 건너오기로 했으니 머지않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좀 걱정을 했지만 하룬이 흔쾌하게 받아들이자 마음을 놓은 아레스의 얼굴은 기대와 설렘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 두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오?”

 “쌍둥이입니다. 이란성이라 외모나 성격이 비슷한 녀석들과 저는 한 보육 시설, 아! 이곳에는 고아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셋 다 고아지요. 부모도 모르고 찾을 수도 없거니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줄도 모르는 인공수정체입니다.”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는 아레스의 말은 무척이나 쓸쓸하게 들렸다. 순간 하룬의 눈에 묘한 광채가 번득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기분에 취한 아레스는 보지 못했다.

 “허어, 안됐군요.”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좀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실은 이제 막 성인이 됐거든요. 이런 일을 하려면 좀 나이가 들어 보여야 해서 일부러 나이 든 티가 나게 얼굴에 손을 댔습니다.”

 반가웠다. 자신과 똑같은 출생 과정을 가진 사람은 처음 만나는 것이다. 그가 겪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레스에게 방금 전과는 다른 따듯한 마음이 생겼다.

 “우리 세 명은 골칫덩이였습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고 자란 터라 장난이 심하고 욕심이 많아 늘 사고나 치는 못난 녀석들이라 부양 가정에서도 번번이 쫓겨났지요. 결국 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보육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맡은 원장님이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게다가 성인이 되면서 무능력자로 판별이 나 변변한 직업도 얻지 못했습니다. 아, 무능력자라는 것은 저희 세계에서 휴먼, 아니 인간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 능력의 여하를 가려 직업이나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이 있는데, 그것에 의해 아무런 능력도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낙인입니다.”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순간 아레스는 이를 악물었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가슴에 한이 된 모양이다. 하룬은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똑같은 경험을 했으니 말이다.

 “성인이 되어 보육원에도 머무를 수 없게 되고 무능력자로 판정되어 최하층민들이 사는 구역에 작은 방 하나가 고작인 벌집을 배정받은 우리 세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 며칠을 굶다가 보육원의 담을 넘었습니다. 우리가 기댈 곳은 그곳밖에 없었던 겁니다. 우리 같은 무능력자들에게 사회는 너무나 매정하고 차가웠습니다. 아무도 휴먼 취급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굶어 죽어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들을수록 자신과 판박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그들은 보육원에서 의지할 친구들과 함께 지냈으니 말이다.

 “며칠을 굶은 탓에 정신없이 움식을 훔쳐 먹던 우리는 원장 엄마의 눈에 띄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보육원 사람들에게는 안정된 직업을 배정받았노라고 거짓말까지 하고 떠난 우리였기에 정말 죽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랬을 것이다. 하룬 자신도 몇 번이나 자살을 꿈꾸지 않았던가.

 “원장 엄마가 우리 꼴을 보고 펑펑 우시더군요. 너무 한심하고 불쌍했겠지요. 우리도 같이 울었습니다. 너무나 철이 없었던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지요. 말썽 부리고 사고나 치면서 살 때는 몰랐는데 사회는 우리와 같은 무능력자들을 그 일원으로 인정하질 않았으니까요.”

 그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래도 아레스와 친구들은 행운아였다. 그는 같이 목 놓아 울 친인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보육원 동생들까지 모두 다 깨서 사정을 알았습니다. 그저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요. 너무 창피하고 절망스러워 차라리 하르크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아, 하르크는 이곳에 사는 오우거랑 비슷한 우리 세계의 최강 몬스터입니다. 그런데 배를 채우고 실컷 울고 나자 잠이 오는 겁니다. 방금 전까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우리인데 말이지요.”

 자신이 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아레스가 피식 웃었다.

 “그사이 원장 엄마와 열 살 이상인 동생들이 회의를 했더군요. 자신들 앞으로 배정된 예산을 떼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어떤 것을 마련해 주자고 말이죠. 한 동생이 우리 셋이 게임, 즉 이렇게 다른 세계로 여행해서 몬스터를 잡고 아이템을 얻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우리에게 게임기를 사주자고 했나 봐요. 우리 세상에서는 이곳으로 넘어와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그래서 원장 엄마와 동생들 때문에 이곳 테론 제국에 오게 된 겁니다.”

 하룬은 같은 나이지만 아레스가 측은했다. 살아온 시간은 같지만 누구보다 힘들게 산 탓에 아레스가 동생처럼 여겨졌다.

 “우리 세계는 이곳처럼 다른 세계로 가는 일종의 게임이 많습니다. 이전까지 다른 세계로 갔을 때는 재미로 생활했다면 이번에는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다들 다른 세계로 갔을 때도 나름 유명인이 될 정도로 재능이 있었고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이방인들 중에는 꽤 높은 실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귀한 던전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얻었을 때, 어쩌다가 방송사에 그 정보를 넘겨 꽤 짭짤한 돈을 번 후로는 이렇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레스의 말을 듣던 하룬의 눈이 붉어졌다. 힘들었던 고아로서의 삶과 사회의 냉대 그리고 죽기 살기로 게임을 해 온 과정이 그와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십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린 돈을 많이 벌 겁니다. 그래서 원장 엄마와 동생들에게 가져다줄 겁니다. 우리와 똑같은 좌절과 절망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한 동생들에게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겁니다.”

 “모두 원하는 대로 잘될 거요.”

 가슴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던 하룬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다였다. 그래도 이들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마치 살붙이를 만난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자신의 신세가 새삼 생각나 마음이 아렸다.

 “저희들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가 원하는 돈만 벌 수 있다면 절대로 배신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룬은 입을 열면 울음 섞인 말이 나올까 봐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름 정들고 절대로 마음이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대원들에게 한차례 배신을 당한 하룬으로서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네요.”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레스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하룬은 이미 매그럼과 초른이 접속한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아레스의 이야기 때문에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 기척도 없이 와서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겁니까? 큰 실례라는 걸 모릅니까?”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으며 눈이 붉어진 아레스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사실 남들 앞에서 이렇게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 대상이 앞으로 자신들의 목숨 줄이 되어 줄 하룬이라면 몰라도, 매그럼과 초른은 전혀 아닌 것이다.

 “미안합니다. 워낙 분위기가 그래서…….”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초른은 깊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일부러 들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분위기가 심각해서 자신들이 어떻게 끼어들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레스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불같이 화를 내던 아레스의 말이 갑자기 뚝 끊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레스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매그럼이 울고 있었다. 비록 소리를 내서 우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슬프게 울고 있었다.

 “왜……?”

 순간적으로 당황한 아레스였다. 설마 자신이 화를 낸다고 상대가 울기까지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분명히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는데도 화가 가라앉고 있었다.

 매그럼은 대답 대신 아레스를 와락 끌어안았다.

 “뭐, 뭐, 뭐요?”

 당황한 아레스가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매그럼은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검사라서 그런지 힘이 장난이 아니어서 마법사인 아레스로서는 그를 떼어 낼 수 없었다.

 “네가…… 흑! 내 형제인 줄은 몰랐어.”

 울음이 잔뜩 섞인 매그럼의 말이 귓가에 들렸다.

 “혀, 형제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나도 너와 똑같은 고아야. 그것도 너와 생일이 똑같은.”

 매그럼의 말에 아레스의 눈이 커졌다. 생일이 같은 고아라는 말은 매그럼 역시 자신과 똑같이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랬구나.”

 아레스는 순간 강렬한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며 매그럼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그가 자신을 형제라고 했던 말이 가슴 깊이 박혔다. 같은 날,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공수정체들은 한 형제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쌍둥이인 미료와 장료를 처음 보육원에서 만났을 때처럼, 마치 운명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던 강력한 인력을 아레스는 매그럼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축하해! 축하할 일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그렇게 연애하는 것처럼 뜨겁게 안고 있는 건 조금 보기가 그렇네.”

 “허억!”

 “으응?”

 초른의 장난 섞인 말을 들은 매그럼과 아레스는 입이 거의 붙을 정도로 밀착하고 있는 것을 이제야 확인하고는 황급히 서로를 밀어냈다.

 “하하하! 왜? 더 하지. 보기 좋던데. 가끔 남자끼리도 그렇게 정을 나누면 좋아.”

 하룬까지 농담을 던지자 매그럼과 아레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하룬이 정리를 하자 세 사람이 가까이 모여들었다.

 “저희도 대장님에게 할 제안이 있습니다.”

 치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에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매그럼이 말을 꺼냈다.

 “무슨 제안이오?”

 말을 꺼낸 매그럼은 초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하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먼저 제안에 앞서 우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부터 드리겠습니다. 사실 매그럼과 나는 대장이 이해하기 힘든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GM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GM이라고요?”

 하룬이 뭐라 말을 받기도 전에 아레스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쳐 물었다. 물론 하룬 역시 경악했지만 다행이 표는 나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니까요. 아무튼 우리는 이방인들이 이 세계에서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이 세계와 이방인들의 정보를 모으며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세계와는 달리 이 테론 제국이 있는 세계에서는 우리와 같은 GM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이방인들보다 레벨, 아니 실력 면에서 아주 조금 우월하다는 것과 좀 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 차이가 없지요.”

 매그럼과 초른이 GM이라는 것에 놀랐던 아레스는 이어진 설명에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일개 게이머인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실 유저들 사이에서는 다른 게임처럼 GM이 게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버그나 게임의 진행과 밸런스, 혹은 게이머들의 행동 제한이나 게임 내용의 패치 등 게임 운영의 모든 면에 있어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일종의 관리 감독관이나 감시자 역할을 하는 GM이 이 비욘드에서는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GM이긴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보조 GM입니다. 우리 상위에 이 세계의 질서와 이방인들의 행동을 조율하는 존재가 있을 것으로 생각은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로는 그런 존재가 있어도 그 행동반경은 무척이나 좁습니다.”

 잔뜩 놀랐던 아레스는 이제야 겨우 이해가 가는지 자리에 앉았다.

 ‘이 게임, 정말 대단한데. 이제까지 저들이 한 말을 생각해 보면 유저들이 게임을 하는 것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그 이야기는 게임의 자유도가 거의 무한이라는 뜻이고.’

 아레스는 초른의 설명을 듣고 그렇게 이해했다.

 “우리에게도 임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있는 아레스와 비슷한 거지요. 다른 임무들도 있긴 하지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세계의 특별한 사안이나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정말이네. 나와 다를 바가 없어.’

 아레스는 초른의 설명을 듣고 그 말에 동의했다.

 “우리 보조 GM들은 주급을 받습니다. 오랫동안 이 세계에 머무를 수 있는 특별한 기계 장치도 제공받지요.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받는 주급은 굉장히 낮은 수준입니다. 물론 상당히 좋은 거주지를 제공받지만 받는 주급으로는 겨우 먹고사는 정도입니다.”

 아레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보조 GM이라지만 넥컴월과 같은 거대 기업의 직원이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주급만 받는다는 사실은 길을 막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수입은 주급이 아닙니다. 우리를 고용한 곳에서는 여기 있는 아레스처럼 두 명이 한 팀으로 구성된 GM들이 발로 뛰어 알아낸 정보의 등급에 따라 특별 수당을 지급합니다. 사실 우리의 주된 수입은 그 수당인 거지요.”

 하룬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보조 GM들은 정기 급여가 아니라 능력별 성과 급여를 받는 것이다.

 “대장의 말을 듣고 우리 세계로 돌아가 비슷한 정보가 혹시 나왔는지 확인을 해 봤는데 전혀 없더군요. 진실 여부만 확인된다면 우리 조직에서도 특급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정보란 이야기지요.”

 왜 심각한 표정으로 로그아웃을 했나 싶었더니 그것을 확인하러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대장에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와도 계약해주십시오. 물론 아레스와 같은 조건입니다.”

 초른의 말에 아레스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진위 여부도 알아보지 않고 결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름 정보를 다루는 사람답게 냉정하고 침착성을 잃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조금은 걱정이 된 아레스지만 다행하게도 하룬은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좋소! 이것은 이방인들이 쓰는 영상 기억장치요.”

 하룬이 품속에서 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진수에게서 받은 것으로 홀로그램 재생 칩이었다. 그 칩은 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저장한 것으로 흔한 시계형 영상 컴퓨터나 플레이어만 있으면 영상을 쉽게 재생할 수 있었다.

 이마에 두르는 헤어밴드 모양으로 생긴 캠은 인간의 눈처럼 두 개의 렌즈가 신경과 자동으로 연결이 되어 시야에 보이는 모든 광경과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영상 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용에 제한도 없었다. 복잡한 부속과 회로가 내장된 캠이지만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매직 급 아이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기에 누구나 쉽게 살 수도 있고 복사도 가능했다.

 하룬의 말에 아레스가 그 칩을 받아 자신의 캠 속에 넣고 플레이를 시켰다.

 세 사람은 작은 캠의 영상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보았다. 영상에 나오는 골드 스톰 길드나 피닉스 길드의 이름을 정보를 다루는 이들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5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그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휴우!”

 영상이 끝난 후 세 사람의 입에서는 일제히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횃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 영상의 가치를 확실하게 인식한 것이다.

 “이방인들이 만들어 낸 마법 무구이니 똑같이 복제하는 것은 그대들이 알아서 하시오.”

 초른이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린 것은 아레스가 먼저였다.

 “그럼 언제 합류할까요?”

 “준비가 필요하오?”

 하룬은 이들과 동행해서 캠프까지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네. 대장님과 동행하며 밀착 취재를 하려면 최상급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필요한 장치를 우리는 캡슐이라고 부르는데, 사흘 이상 이곳에서 지내려면 최상급 캡슐이 필요합니다.”

 하룬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저희도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오직 이 일만 수행하려면 준비가 좀 필요합니다.”

 초른 역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하룬은 대원들도 미리 이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쪽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좋소. 그럼 앞으로 열흘 후 요른 백작성 용병 길드 사무실에 내 거처를 남기겠소.”

 용병 길드 사무실은 대상을 정해 전할 메모를 남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저희도 일을 마무리하고 도착할 수 잇을 겁니다.”

 세 사람이 동의하자 몸을 일으켜 캠프로 가려던 하룬이 잠시 발을 멈추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잊었군. 그 영상을 당신들의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우리가 요른 백작성을 출발한 직후가 좋을 거요. 우리도 기한의 이익은 얻어야 하니까 말이오.”

 “네. 당연합니다.”

 “저도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하룬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영상을 조작하면 간단한 일이다. 즉, 고대 던전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정도만 영상을 편집하여, 거래는 데모 영상으로 하고 요른 백작성을 출발한 직후에 본 영상을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기자인 아레스나 경험이 많은 초른에게 그것은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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