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후크란에서 만난 유저들 (59/278)

《후크란에서 만난 유저들》

 “이크!”

 다른 와이번과 싸우는 사이 어느새 머리 바로 위까지 다가온 강철 같은 갈고리 발톱의 그림자를 본 매그럼은 식겁해서 검까지 놓치고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파앗!

 간발의 차로 그의 머리를 스치고 간 와이번의 발톱은 얼마나 날카롭고 단단했던지 땅에는 금세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그를 놓친 놈은 살기가 뭉클거리는 노란 눈알을 번득이며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흔들어 위로 다시 날아올랐다.

 “빌어먹을!”

 옆에서 들리는 욕설에 정신을 차려 보니 초른 역시 자신처럼 낭패한 꼴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마법사인 그로서는 3서클 마법 정도는 아예 무시하는 와이번의 공격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와이번이 이렇게 강한 몬스터일 줄이야.’

 어느새 작은 바위를 등에 대고 막다른 곳으로 몰린 두 사람의 얼굴에는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방금 전 발톱에 정통으로 가격당한 바위 윗면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런 마당에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죽는 건가?”

 “아마도요.”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와이번에게 잡혀 놈의 둥지까지 날아가서 먹히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공격 한 번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공격에 와이번이 당할 거라는 기대 따위는 아예 버렸다.

 “젠장, 우리가 사냥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 신세로 전락하다니.”

 초른의 말대로 유저들 중에는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GM 신세가 말이 아니다. 다 자란 새끼에게 사냥 기술을 익히게 해 주려는 와이번 가족들을 맞닥뜨린 두 사람은 제대로 몇 번 붙지도 못하고 죽음의 문 바로 앞까지 몰리고 만 것이다.

 기본 레벨이 120인 와이번은 아직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상대인 것이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놈의 깃털은 물론 가죽도 벨 수 없었다. 매그럼이 가진 유니크 등급의 장검조차 놈의 발톱을 잘라 내지 못했다.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빛을 잃어 가던 그들의 눈은 곧 생기를 찾았다. 뜻밖에도 마법 주문이 들려왔던 것이다.

 “매직 미사일!”

 세 발의 매직 미사일이 저공비행을 하던 와이번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력자가 날린 마법 공격으로 그들은 간신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와이번들도 그 위험을 짐작했는지 황급히 날개를 흔들어 활공 궤도를 틀었지만 비행 능력이 떨어지는 덜 자란 놈은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꾸어워억!

 끔찍한 비명을 지른 와이번의 거대한 동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큰 소리를 냈다.

 “명중했다. 만세!”

 초른은 두 손을 들고 환호를 했지만 매그럼은 눈썹을 찡그렸다. 부모로 보이는 와이번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새끼 와이번의 두 날개를 양쪽에서 단단한 발톱으로 움켜쥐는 것을 본 것이다.

 두 성체 와이번들의 조력을 받은 새끼 와이번은 이내 충격에서 회복되어 거대한 날개를 힘차게 한들어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매직 미사일!”

 다시 마법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무려 다섯 발이었다.

 ‘틀렸어.’

 매그럼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에 새끼 와이번이 매직 미사일을 피하지 못하고 맞은 것은 단지 경험 부족 때문이었다. 단단한 가죽과 깃털은 매직 미사일에 직격되어도 큰 부상을 입힐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유니크 검에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놈들이다. 게다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와이번들은 각각 한 명씩을 맡아 엄청난 빠르기로 날아왔다. 유려한 비행 기술로 매직 미사일을 피한 것은 물론이다.

 꽈앙!

 황급히 바닥을 구른 두 사람의 머리를 간발의 차이로 스치고 지나간 와이번의 발톱에 바위가 또 떨어지면서 굉음을 냈다.

 두 손까지 사용해 바위 사이의 틈으로 도망친 두 사람의 눈에 건너편에 있는 큰 바위에 선 남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히는 와이번의 모습이 들어왔다.

 “파이어 플레임!”

 낭랑한 주문과 함께 이십 대 초반의 잘생긴 마법사의 머리 위쪽으로 큰 불길을 생성되기 무섭게 위로 치솟으며 와이번을 향해 똑바로 쏘아져 갔다. 그는 높은 바위 위에 서서 오연하게 와이번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안 돼! 피해!”

 초른이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비록 파이어 플레임이 위력이 강한 4서클 마법이긴 하지만 내리꽂히는 와이번의 속도라면 별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가공할 속도에서 파생되는 바람은 마법의 위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자신도 이미 한 차례 경험했던 것이다.

 “허억!”

 다행히도 경고가 먹힌 것인지 그 마법사는 다급히 경호성과 함께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나마 와이번들이 머리 대신 발톱을 아래로 향하면서 속도가 약간 느려진 덕분에 그는 무사할 수 있었다.

 꽈앙!

 꽝!

 놈들의 강력한 발톱에 직격당한 바위 상단부가 굉음과 함께 돌가루와 파편을 튀기며 떨어져 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와이번의 발톱 공격에서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진 마법사는 낭패한 얼굴로 황급히 두 사람이 숨은 바위틈을 향해 달려왔다.

 아까 멋진 포즈로 여유 만만하게 마법을 날릴 때와는 너무나 다른 얼굴 표정에 매그럼은 그 와중에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 짧은 순간에 생사가 엇갈리는 위험을 겪으며 그 마법사의 얼굴에는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검이 떨어져있는 것을 본 매그럼은 빠르게 몸을 굴러 아까 놓친 검을 쥘 수 있었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다른 한 놈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매그럼은 검을 쥐자마자 머리 위로부터 강력한 바람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까앙!

 놈의 발톱과 부딪힌 검은 끔찍한 금속성과 함께 다시 튕겼고 그의 몸도 그 충격으로 두어 바퀴 굴러 바위에 모질게 부딪쳤다. 검을 쥐었던 그의 오른쪽 어깨는 이제 완전히 탈골되어 버렸다.

 “위험해!”

 다급한 초른의 고함을 들은 매그럼이 고통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와이번 두 마리가 자신을 목표로 날아오고 있었다. 놈들의 갈고리 같은 검은 발톱이 클로즈업되었다. 저 발톱에 몸이 꿰뚫리는 끔찍한 영상이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다급한 마법 주문과 함께 열 개의 파이어 볼이 그를 향해 날아 내려오는 와이번들을 향해 날아갔다.

 꿔억!

 꾸어워!

 다행히 놈들은 파이어 볼을 피하며 분노 어린 소리를 지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를 위해 바위틈에서 빠져나와 황급하게 마법을 날린 두 사람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는 어느새 매그럼의 검을 날려 버린 어린 와이번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내리꽂히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

 매그럼은 소리를 질러 위험을 경고했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머리 바로 위까지 살벌하게 구부러진 발톱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타앗!

 매그럼은 위기의 순간 작은 기합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너무 정신이 없어 사실인지 환상인지 모르지만, 비수 한 자루가 막 동료와 정체를 모르는 마법사의 머리통을 한꺼번에 움켜 채려는 와이번을 향해 놀라운 속도로 날아갔다.

 퍼억!

 놀란 와이번의 눈알이 눈에 들어왔다.

 놈의 날개 한쪽에는 어느새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자루만 보이고 있었다.

 꾸워어!

 날개에 단검을 맞은 와이번은 분노와 고통이 섞인 비명을 지르며 날개를 펄럭여 다시 하늘로 날았지만 상처 때문인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게 가능한 건가?’

 검조차 베지 못한 놈의 깃털을 뚫고 가죽 깊숙이 박힌 단검을 보는 순간, 매그럼은 멍해졌다. 심지어 자신의 모습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위험을 알아차리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두 사람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오는구나!’

 매그럼은 현실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와이번들의 강철 같은 부리를 보고 있었다. 그 부리는 그가 가진 검으로도 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톱니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크게 확대되는 순간 매그럼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타앗!

 다시 작은 기합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기합 소리를 듣고 눈을 뜬 매그럼은 자신을 목표로 날아오는 두 와이번들을 향해 날아가는 단검 두 자루를 볼 수 있었다.

 단검들은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위해 날개를 접은 와이번들의 눈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날에는 시퍼런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시퍼런 빛을 발하는 단검의 날은 그 무엇도 뚫을 수 있을 것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흘렀다.

 매그럼과 두 사람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멀었다. 밝은 햇살을 후광처럼 두르고 있는 사내가 서 있는 곳은 그들과는 20여 미터나 떨어진 작고 오래된 나무 위였다. 눈부신 햇살 때문에 그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내의 양손에는 단검 두 자로가 들려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꾸우어억!

 와이번들도 위험을 느꼈는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황급히 날개를 펄럭여 급선회했다. 엄청난 거리에서도 목표물을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시각과 청각을 가진 놈들이니, 잔상까지 남을 정도로 빠른 단검의 위력을 알아차린 듯했다.

 날개 한쪽에 단검이 박힌 어린 와이번이 불안정하게 날면서 흉광이 번득이는 눈으로 사내를 쏘아보며 비스듬히 그를 향해 날아갔다.

 “놈!”

 사내의 팔이 수십 개나 되는 것처럼 움직였다.

 ‘뭐지? 팔이 그렇게 많이 달린 것은 아닐 텐데, 그렇게 보인다는 이야기는…….’

 의문의 사내가 팔을 움직이는 순간 수십 개의 단검들과 비수들이 어린 와이번을 향해 날아갔다. 하나같이 날에서 시퍼런 광채가 흐르는 암기들은 그 방향과 각도가 다 제각각이었다.

 마치 한 번에 던지는 것처럼 빠르게 수십 개의 암기를 날리는 사내의 모습은 그 후광과 함께 매그럼의 머릿속에 아주 단단하게 각인되었다. 놀란 어린 와이번이 피하려고 날개를 파닥였지만 이미 입은 상처 때문에 암기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파바밧!

 어린 와이번의 날개 곳곳에 암기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꾸와악!

 어린 와이번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쿠웅!

 그 무서운 와이번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럴 수가!’

 매그럼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레벨 80이 넘는 자신과 동료가 감히 상대할 수 없던 와이번이었다.

 마법도 제대로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놀라운 공격 속도는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능가하고, 가죽의 방어력은 일반 검으로는 벨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최상급 몬스터 와이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병아리처럼 힘없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그럼 마나를 사용하는 익스퍼트란 말인가?’

 인적이 끊긴 이런 곳에서 익스퍼트 급 전사를 만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꾸워억!

 새끼가 위험해진 것을 알아챈 두 와이번이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고는 엄청난 빠르기로 수직 하강했다. 세 사람은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에 놀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두 와이번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못난 꼴을 보이지 않아도 되었다.

 슈슈슈슛!

 공기를 가르는 소성이 연속적으로 들렸다. 두 와이번에게 두었던 세 사람의 시선이 사내와 와이번 사이의 공간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위에서 내리꽂히는 와이번을 향해 아래에서부터 위를 향해 맹렬하게 솟구쳐 올라가는 수십 개의 암기들은 마치 날개를 편 거대한 새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암기들의 날 끝에는 시퍼런 광채가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그림을 보는 듯 환상적인 모습에 세 사람은 숨도 쉴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와이번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는 것을, 비수로 만들어진 거대한 새가 와이번들을 상대하기 위해 땅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꾸웍! 꾸왁!

 살아온 세월만큼 경험과 감각이 뛰어난 두 마리의 와이번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들에 담긴 치명적인 위협을 감지하고는 접었던 날개를 급하게 펴서 방향을 틀더니 다시 하늘 높이 솟구쳤다.

 ‘세상에!’

 하늘과 땅이 바뀐 듯 위로 솟구치는 암기들은 까마득한 높이까지 올라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가벼운 단검과 비수가 어떻게 저 정도 높이까지, 그것도 중력을 거스르고 솟구칠 수 있는지 세 사람은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비록 다른 두 놈에 비해 덩치도 작은 놈이지만 몬스터 도감에 의하면 레벨이 120 이상이며 최상위 몬스터인 와이번이 비수에 저런 꼴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새끼로 보이는 와이번의 위험에 거대한 동체를 가진 와이번 두 마리가 금방이라도 내려올 것처럼 날개를 퍼덕거리며 소리를 질렀지만, 사내의 손에 들린 암기가 두려웠는지 내려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나무 위에서 바람처럼 가볍게 뛰어내린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늘고 윤기가 흐르는 거뭇한 수염과 길게 흘러내린 앞머리 때문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내는 긴 머리를 대충 묶은 모습이었다.

 하드 레더를 착용하고 배낭 두 개를 등에 교차해서 베고 있는 사내의 옆구리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지만, 사내의 손에는 단검과 비수가 손가락 사이마다 끼워져 있었다.

 이제 와이번의 위협에서 벗어난 세 사람도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이 시러베자식! 꼴좋다.”

 초른은 와이번에게 목숨을 위협당한 것이 자존심 상한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날개를 버둥거리고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화풀이를 하려는 것 같았다.

 “조심해!”

 천천히 세 사람에게 다가오던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날개에 열 개가 넘는 암기를 꽂고 다친 날개를 버둥거리던 어린 와이번이 한순간 번들거리는 흉악한 눈으로 초른을 보더니 언제 다 죽어 갔느냐는 듯 두 날개를 강하게 흔들며 뛰어올라 다가오는 초른을 덮쳤다.

 “허억!”

 살기등등한 어린 와이번에게 다가가던 초른의 입이 쩍 벌어지고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강철 갈고리같이 생긴 발톱이 아무런 방비도 없이 걸어오는 초른의 머리통을 잡아 채려는 듯 쫙 벌어져 있었다.

 초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매그럼이 놀라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그를 안고 바닥으로 굴렀다.

 파악!

 대번에 바닥이 놈의 발톰에 깊이 파였다. 다행히 한 덩어리가 되어 쓰러진 매그럼과 초른의 몸 바로 곁이었다. 일단은 곤경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상처를 입었냐는 듯 흉광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부리를 쩍 벌려 마치 톱니처럼 날카롭게 난 이빨을 드러낸 어린 와이번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내는 아직 20보는 떨어진 곳에 있었고, 또 한 마법사는 얼이 빠진 듯 멍청하게 서 있었다.

 “타앗!”

 기합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비수 한 자루가 어린 와이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미처 눈이 따라가지 못해 잔상이 남았다.

 꾸억!

 어린 와이번은 위험을 감지하고 황급히 날개를 접으며 머리를 숙였다. 하룬이 날린 비수는 아슬아슬하게 방금 전까지 놈의 머리통이 있었던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위험에서 벗어난 어린 와이번이 두려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성을 가진 와이번은 이번에 하룬이날린 비수에 마나가 실려 있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 사람을 바라보는 어린 와이번의 눈에 살광이 번뜩였다.

 -라이피!

 나타난 사내, 하룬이 속으로 라이피를 떠올리며 이름을 부르자 라이피가 소환되었다. 소환되는 속도는 다른 정령들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빨랐다. 확실히 그에게 강하게 연결된 정령다웠다.

 -와이번의 몸 절반을 땅에 묻어 버려.

 -문제없어.

 도망을 치려고 마지막 힘을 다해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르려던 어린 와이번의 두 다리가 한순간에 쩍 벌어진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리뿐 아니라 날개의 아랫부분까지 땅에 파묻히는 바람에 놈은 날개조차 펼 수 없었다.

 “가랏!”

 어느새 오른 손가락에 있던 비수를 제자리에 넣고 대신 본 소드를 뽑아 든 하룬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바닥을 박차고 어린 와이번을 향해 날아갔다. 지척에서 지켜보는 세 사람의 눈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였다.

 싸악!

 가슴이 서늘해지는 절삭음과 함께 어린 와이번의 머리통이 데구루루 바닥에 굴렀다. 덩치에 비해서는 작지만 매그럼의 상체만 한 머리통이 굴러다니는 모습은 묘한 감흥와 공포감을 주었다.

 공포에 질려 땅에 얼굴을 묻고 있는 초른의 옆에서 고개를 든 매그럼은 자신이 제대로 눈을 뜨고 있는지 의심하며 하룬을 보았다.

 하룬의 손에는 어느새 암기 대신 유백색 검신을 가진 검이 들려 있었다. 마치 동물의 뼈로 만든 것 같은 검이지만 마나가 담겼는지 와이번의 머리를 한 번에 베어 버린 것이다.

 꾸어워어!

 꾸으으으!

 새끼를 잃은 와이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놈들은 감히 아래로 내려오지 못했다. 아까 단단히 그 위력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차마 새끼를 떠날 수 없는지 공중을 선회하고 있었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동안 공중을 선회하던 와이번들이 결국 저 멀리 북쪽의 둥지를 향해 날아가자,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하룬은 검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사이 안전한 곳으로 피했던 매그럼과 초른 그리고 한 마법사는 그 순간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세 사람의 몸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고 몸은 아직도 공포 때문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룬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라이피에게 바닥을 원위치 시키도록 했다. 그러자 와이번의 거대한 몸체 3분의 1을 삼킨 바닥이 위로 솟아올랐다.

 -고마워, 라이피! 돌아가도 돼.

 -별말을. 언제라도 불러 줘. 정령계는 너무 심심해서 말이야.

 심술궂은 얼굴이지만 소환해 준 것이 고마운 듯 라이피는 윙크까지 날리고 사라졌다. 외모와는 달리 무척 상냥하고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싸가지없는 그 누구랑은 차원이 달랐다.

 하룬은 아직도 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 사람을 잠시 쳐다보고는 와이번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는 암기를 빼내 잘 닦아 챙긴 다음 암기대에서 투명 비수를 꺼냈다. 시린느만큼 도축 스킬이 높지 못한 그로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 아이템인 투명 비수를 사용해야만 했다.

 굳이 마나를 주입하지 않아도 날카로운 예기가 흐르는 투명 비수는 와이번의 살을 쉽게 파고들었다. 하룬은 시린느가 그리폰을 도축하던 것을 떠올리며 비수를 쥔 손을 신중하게 움직였다.

 사악! 슥!

 방금 전까지 와이번과의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곳에서는 비수로 가죽을 벗기는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하룬은 어깨 너머로 시린느에게 배운 대로 와이번의 가죽과 발톱들 그리고 힘줄을 분리하고 있었다.

 그사이 세 사람은 자신이 가진 포션을 복용해서 지치고 다친 몸을 치료했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세 사람의 눈길은 하룬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나름 이 비욘드의 세상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는 유저들이다.

 그들이 알기로 유저 중에 정령사는 확실하게 없었다. 정령사는 일부 NPC를 제외하면 엘프라고 알려진 이종족들이 전부였다. 거의 2미터의 깊이까지 땅을 갈라지게 만들고 순식간에 원상 복구시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하급 정령사는 아니었다.

 더구나 신기에 가까운 암기 실력과 마나를 무기에 주입하는 것은 물론 깨끗한 검의 궤적으로 보아 검술 또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욘드의 역사에서 몇 명박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정령 검사가 틀림없었다.

 강렬한 호기심과 뜨거운 관심이 깃든 세 사람의 시선에도 하룬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경건한지 세 사람은 홀린 듯 입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룬이 도축을 끝마치는 순간까지 장내는 어색한 침묵 속에 살을 가르는 비수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하룬이 도축을 마치고 얻은 와이번의 부산물들을 모두 챙겨 마법 배낭에 넣자,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그에게 다가왔다.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그럼이라고 합니다.”

 “목숨을 빚졌습니다. 마법사 초른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주제넘게 나섰다가 하마터면 황천길로 갈 뻔했네요. 아레스라고 불러 주십시오.”

 세 사람이 감사를 표시하며 인사를 해 왔다.

 ‘유저들이군.’

 이젠 보는 것만으로도 유저들인지 아니면 이곳 비욘드의 주민인지 알 수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것이다.

 유저들은 NPC에게는 없는 여유가 있었다. 사망에 대한 부담감이 다른지라 죽음에 대한 가치가 달랐다. 당연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가치도 달랐다. NPC들이라면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이렇게 가볍게(?) 인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무리를 이루어도 속절없이 죽어 가는 이 위험한 곳에 왜 들어온 것인지는 몰라도, 하룬은 유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하룬이오. 그럼 다음에 인연이 있으면 만나도록 합시다.”

 간단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은 하룬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이들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다. 오늘 안으로 캠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어어!”

 “어…….”

 “자, 잠시만요!”

 세 사람은 하룬이 이렇게 쉽게 떠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황급히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왜, 무슨 볼일이 더 남았소?”

 “그게…….”

 발을 멈춘 하룬의 물음에 입담이 좋은 초른이 말을 더듬었다. 그래도 이런 험악한 곳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언제 봤냐는 듯 쉽게 등을 돌리는 것에 당황한 탓이다. 매그럼 역시 당황한 나머지 입도 벌리지 못했다.

 하룬에게 말을 붙인 사람은 아레스였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알면 실례가 될까요?”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군.”

 하룬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유저들과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레스는 그의 마음과는 전혀 달랐다.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어떻게든 갚고 싶습니다. 더구나 그 은인이 희귀한 정령 검사이시니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동행을 하면서 천천히 그 은혜를 갚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이곳에 들어왔지만 이곳 지리를 전혀 몰라서 은인이 기껏 구해준 목숨을 헛되이 잃을 것 같거든요.”

 하룬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심보가 아닌가! 드러내 놓고 달라붙을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한 그의 태도에 호감이 생겼다.

 “굳이 보답을 바라고 거든 것은 아니오. 또 난 할 일이 있어 당신과 동행할 수 없소. 당신들 세 사람이 같이하면 지금보다는 안전할 거요.”

 하룬은 딱 잘라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이곳에는 왜 왔는지 알아도 될까요?”

 이번에는 초른이 나섰다. 이 험악한 후크란 산중에서 할 일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다. 하룬은 귀찮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난 유저들이라 꾹 참고 말상대를 해 주기로 했다.

 “난 용병이오. 그리고 의뢰는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양해하시오.”

 “정령사가 아니라 용병이라고요? 어! 만약 용병이라시면 혹시 돌풍 용병대 아닙니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초른은 물론 매그럼과 아레스의 눈길이 뜨거워졌다. 최근 후크란에 대한 정보를 접한 유저들이라면, 후크란과 용병대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돌풍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맞소. 내가 돌풍 용병대 대장이오.”

 하룬의 대답에 세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세 사람이 모두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룬은 오히려 그들이 더 이상했다. 어떻게 그들이 돌풍 용병대를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와아! 여기서 그 유명한 돌풍 용병대를 만나다니, 정말 하늘이 내려 준 만남이군요.”

 초른이 호들갑을 떨며 하룬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매그럼 역시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다.

 “영광입니다. 그 유명한 돌풍 용병대를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어제는 좋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아레스까지 흥분한 얼굴로 그에게 가까이 왔다. 하룬은 그들이 왜 자신을 이렇게 반가워하는지 영문을 몰랐짐나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게임 채널에 우리 용병대 이름이 나왔지.’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었다. 그들이 왜 자신을 이렇게 반가워하는지 말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묻기도 좀 애매해서 입을 닫고 이상한 눈길로 그들을 보았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초른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방인들입니다. 우리 세계에서는 이미 돌풍 용병대가 보석 광산까지 안내를 맡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요. 더구나 이 험악한 후크란에서 혼자 와이번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용병이라면 어느 정도 그 정체를 추측할 수 있지요. 그래서 단박에 은인이 돌풍 용병대원이라는 것을 알아본 겁니다.”

 초른은 그를 처음 본 다른 유저들처럼 하룬을 NPC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참 내, 어딜 봐서 내가 NPC로 보이는 거야?’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굳이 자신을 NPC로 보는 유저들에게 자신이 유저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귀찮았다.

 “사실 우리는 다른 이방인들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보석 광산으로 향하고 있던 중입니다.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안내자도 없는 상황이지만 꼭 알아내야 할 일이 있어 무작정 후크란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목적요?”

 초른의 말에 아레스가 하룬을 대신해 물었다. 다른 목적이라는 소리에 정체가 궁금해진 것이었다.

 “당신은 몰라도 됩니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보석 광산보다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 중에 보석까지 얻으면 더 좋지만 말이지.’

 초른은 하룬이 아닌 아레스에게 자신들의 임무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은 유저임이 확실한 아레스는 정체가 불분명했다. 실력으로 보아 자신보다 윗줄일 것 같은데, 같은 GM이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는 일인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찾던 숨겨진 하이 랭커 중 한 명이 틀림없었다.

 초른과 매그럼을 잠시 이상한 표정으로 보던 아레스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하룬을 향해 말했다.

 “전 이 세계에는 없는 특별한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직업은 테른 제국에서 이슈가 된 사건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해서 영상과 함께 상세한 내용을 이방인들이 사는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지요.”

 “기자?”

 “그럼 방송국 기자?”

 초른과 매그럼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레스는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룬에게 시선을 맞추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후크란 산맥에서 발견된 보석 광산은 이방인 세계에서 최고의 화제가 된 까닭에 이 일과 관련되어 벌어진 일들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후크란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크란 산맥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더군요. 애초 혼자 이곳에 들어온 것이 잘못이지만 달리 도와 줄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닌 프리 기자…… 아, 미안합니다. 이곳에서는 개별 정보 수집원이라고 하나요? 그런 신세이기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하고 이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말에 초른과 매그럼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게임 방송사의 기자라니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유니온 지부에서 파견된 GM이 아닐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표식이 없었다. 그래서 정체가 궁금했는데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를 까발린 것은 뜻밖이었다.

 하지만 게임 방송사 기자가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이해했지만, 자신들처럼 특혜를 받지도 않았으면서 일개 방송사,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프리 기자가 자신들보다 상위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돌풍 용병대에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보석 광산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취재하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이제까지 받아보신 적이 없는 액수의 돈을 지불하지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에 더해 보석 광산까지 안내를 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알아내야 하는 일이다.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받아본 적이 없는 액수의보상이라? 확실히 그냥 도와 달라는 말보다는 구미가 당기는군.”

 “그렇지요. 전 기사의 가치에 따라 보수를 받는 프리랜서 기자라서 이런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죠.”

 하룬이 구미가 동한 것처럼 보이자 아레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룬의 눈에서 묘한 광채가 일렁였다. 생각지도 않게 진한 돈 냄새를 맡은 하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얼마나 되려나? 우리 용병대가 이제까지 처리한 의뢰 중에서 가장 많이 받은 것이 10만 골드였는데 그것보다 더한 액수라…….”

 짐짓 고민에 빠진 척하며 독백하는 하룬의 말에 아레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은 초른과 매그넘도 마찬가지였다.

 ‘10만 골드라니? 현재 환시세로 따지면…… 후아! 30억!’

 1, 2억도 아니고 3억도 아닌 30억을 보수로 받는 용병들이 있다니. 그들의 사고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대원이 몇 명이나 되고, 그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대단한 용병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알기로는 그저 호위를 하거나 몬스터 퇴치, 아니면 막장까지 떨어져 전쟁 용병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던 용병들이 한 건에 보상금으로 10만 골드, 즉 30억을 받는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세 사람의 놀란 얼굴을 보았지만 하룬은 태연하기만 했다.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니까.’

 세류로부터 받은 돈이 2만 골드였다. 물론 가츠를 비롯한 허벌 길드에게 지도에 대한 대가로 1만 골드를 주기는 했지만 보상 금액에는 포함시켰다.

 그리고 의뢰 내용에는 없지만 그 와중에 잡거나 주운 아이언 스네이크의 사체들은, 확실히 모르기는 해도 약재 시장에서 팔리는 해독약의 가격으로만 따져도 수만 골드는 넘을 것이다.

 또 가츠의 말대로 아이언 스네이크의 외피로 방어구를 만들어 팔면 수만 골드는 나갈 것이다. 하룬은 적어도 수십 벌의 방어구를 만들 수 있는 양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계산이 재료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가공해서 나온 아이템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거기에 퀘스트 과정에서 얻은 모든 아이템들의 가치를 더하면 후크란에서 벌어들인 이득은 대충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구미가 당기는 의뢰이긴 한데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소. 우리 용병대는 여기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곧 고요의 땅으로 갈 예정이오.”

 “네? 고요의 땅으로요? 그곳에는 무슨 일로 가나요?”

 그 말에 하룬이 묘한 눈으로 아레스를 쳐다보았다. 다른 두 사람마저도 한심하다는 눈길로 자신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레스는 자신이 물어 놓고도 너무 대놓고 용병대의 비밀을 물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머쓱한 얼굴이 되었다. 그 표정이 꾸밈이 없는 순수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 호감이 생긴 하룬이 대충의 정보를 말해 주었다.

 곧 알려진 정보이니 말해 주어도 상관은 없었다. 아니, 널리 알릴 생각이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몰려들어 던전을 두고 치열하게 싸울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다.

 “뭐, 아직 비밀이긴 하지만 이 인적 없는 호젓한 곳에서 만난 인연을 생각해서 말해 주지. 고요의 땅 인근에서 고대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있소.”

 “고대 던전요?”

 아레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초른과 매그럼도 마찬가지였다.

 던전이야 유저인 관계로 수없이 경험한 그들이다. 하지만 허술한 몬스터 던전이 아니라 고대 던전이란다.

 “그곳에서 고대 마법서를 비롯한 고대 문명이 남긴 유물이 발견됐다는 정보요. 아마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의 가벼운 입을 통해 당신네 이방인들이나 이 세상 사람들도 다 알게 될 거요.”

 “고대 던전이라니. 그곳에 정말 고대 마법서가 있단 말입니까?”

 아레스가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적시며 물었다.

 “그렇소. 현 시대의 마법은 고대에 비하면 그 수준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 정설이니 황실은 물론이고 마탑들도 난리가 날 거요.”

 마법을 익힌 아레스와 초른의 눈이 충격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대박이다!’

 ‘이건 기회야! 완전 특종 중의 특종이야!’

 초른과 아레스의 눈에서 불이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후크란의 보석 광산은 순식간에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른 유물이 뭔지는 몰라도 고대 마법서는 보석 광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아이템이다.

 그들은 마탑에서 마법을 배우는 동안 고대 마법이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아직 그 가치를 잘 모르는 매그럼과는 달리 초른과 아레스의 얼굴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후크란 인근에서 상당 기간 머물러 있던 것이 확실한 저 용병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아레스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어디에서 입수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바보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을 말해 줄 리가 없는 것이다.

 ‘엄청난 건수를 수행하는 용병대답게 제국 곳곳에 넓은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보 단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 거겠지.’

 아레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자신만 해도 정보를 찾아내는 두 명의 친구이자 팀원들과 같이 일하고 있지 않은가.

 혼자라면 이렇게 하이 랭커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돈이 되는 기삿거리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이자 팀 동료인 두 명은 정보를 수집하고 걸러 내는 데에 거의 귀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쌍둥이라서 그런지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아레스의 친구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엄청난 성능의 컴퓨터 세 대로 유니넷과 글로벌넷에 접속해서 뛰어난 해킹 실력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카페까지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누구보다도 빨리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레스는 마음이급했다.

 ‘어서 이 사실을 기사화시켜야 해.’

 남들보다 빨리 고대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게임 방송사에 알려야 했다. 그러려면 진위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혹시 그걸 증명할 물건이라도 있는지요?‘

 공손하게 묻는 아레스의 얼굴은 어느새 기대로 가득했다.

 “허어, 참! 내가 굳이 당신에게 그런 것을 알려 줄 이유가 있소?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니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아무려면 나름 제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용병대를 이끄는 내가 허튼 소리를 할까?”

 당연히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렇기에 하룬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노기가 섞인 하룬의 대답에 아레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연히 심기를 건드린 꼴이 된 것이다.

 후크란의 보석 광산을 안내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용병대 대장이 근거 없는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어쨌든 아레스는 그의 대답을 통해 고대 던전에 대한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정보에 대한 근거나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면 대장님에게 그것에 대해 사례하겠습니다.”

 아레스는 다급한 표정으로 간절하게 하룬을 쳐다보며 말했다. 부디 이 용병이 돈에 욕심이 많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이 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려던 하룬은 순간적으로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올랐다. 그것은 방송국 기자인 이 유저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레스의 역량에 따라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사례라? 뭐 그것도 괜찮겠지. 어차피 내일쯤 가까운 성으로 내려가 정보 길드 중 몇 곳과 접촉하려던 참이었으니까. 우리 용병들과 정보 길드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오.”

 잠깐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던 하룬은 곧 아레스를 향해 눈을 빛냈다.

 “가만. 어쩌면 당신과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겠군. 당신 말대로 당신이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가진 이 정보를 이용해서 적지 않은 이득을 취할 수 있겠지. 값을 따지기 힘든 귀중한 유물이 있는 고대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최초로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남들보다 항상 한발 정도 앞서 나가며 그 던전을 탐사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당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자들은 지속적으로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요.”

 “네, 맞습니다.”

 아레스는 하룬의 말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비록 그는 NPC, 그것도 용병 신분이지만 세상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프리랜서 방송사 기자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위험이 있건 없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환경이 어떠하건 남들보다 먼저 그 정보를 찾아내서 기사화 시키는 것이 기자의 능력이다. 그녀와 같은 프리랜서 기자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말이다.

 ‘이자, 대단하다. 과연 이 위험한 후크란 산맥에서 보석 광산을 최초로 발견한 용병대 대장답게 식견도 높고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어. 우리 세계나 기자라는 직업도 잘 모르면서도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제대로 꿰고 있어.’

 아레스는 생각할수록 하룬이 위대해 보였다. 위험한 일을 하며 거친 성격에 아무렇게나 살아간다고 생각하던 용병들에 대한 인식이 한순간에 싹 바뀔 정도였다.

 초른과 매그럼도 놀라고 있었다. 아레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도 정보의 중요성과 아울러 정보가 큰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GM이면서도 게임에 직접 참여하는 원인도 넥컴월이 원하는 정보를 직접 얻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저…… 대장! 제안이 있습니다.”

 “뭐요?”

 하룬이 물주머니를 꺼내 물을 마시며 물었다.

 “의뢰는 취소합니다. 차라리 저와 동업을 합시다. 정보와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 그리고 고대 던전을 동행하며 그 과정을 취재할 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 방송사에서 지속적으로 받는 보상의 일정 부분을 드리겠습니다.”

 “흐음.”

 하룬은 구미가 당겼다.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벨이 원하는 재료들을 암거래를 통해 구입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동행만 허락하면 대부분 가능한 일이다.

 “7대 3, 어떻습니까?”

 “흠, 내가 7이라면 생각해 보지.”

 “네에?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레스는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고생은 자신의 팀이 다 하고 수익의 70%를 준다는 것은 아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비록 이제는 완전히 방관자가 되어 돌아가는 사정만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초른이나 매그럼이 보기에도 너무 과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하룬의 태도는 당당했다.

 “내가 없다면 이런 고급 정보를 이방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아예 불간능했을 것이 아니오? 게다가 당신과 동행하면서 보호까지 해 주려면 당연히 그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 그래도…… 이번에 목숨을 구해 준 것은 고맙지만 저도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꽤 실력자로 통합니다. 명색이 4서클 전투 마법사란 말입니다.”

 “후후후! 그 실력으로는 엘프들이 차지한 금역에서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하룬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레스는 즉시 항변을 하려다가 말고 눈을 번득였다.

 “엘프라고요?”

 “후후. 그 정도만 하지.”

 하룬은 이제 자리를 잡고 배낭에서 육포를 꺼내 점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레스와 두 사람 역시 근처 바위에 앉아 빵을 꺼내 공복도를 채웠지만 아무런 대화도 없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뭔가를 한참 생각하던 아레스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한입 베어 물었던 빵을 바닥에 던지고는 하룬에게 다가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다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름 고심을 했지만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아레스의 말에 하룬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소. 일단 내 쪽의 최종 가이드라인은 수익 배분은 5 대 5에, 신뢰를 위해 당신 팀이 우리 용병대로 들어오는 것이오.”

 “우리 팀이 돌풍 용병대에 가입한단 말입니까?”

 “그렇소. 그렇게 되면 서로의 신뢰는 당연히 유지될 것이고, 우리 용병대가 하는 의뢰에 자연스럽게 동행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세하게 지켜볼 수 있지 않겠소? 그래야 우리 대원들도 마음을 열고 당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말이오.”

 하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아레스였다. 단순한 거래 관계보다 진일보한 관계가 되면 그들로서도 얻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사실 정보야 쌍둥이가 담당하지만 그것을 직접 몸으로 취재하는 것은 자신 혼자였다.

 길드원이 되는 것처럼 한 단체에 소속되어 접속 장소를 특정 인물 인근으로 설정하면 이동하는 것도 쉽다. 더구나 혼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참에 든든한 보호막 아래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팀원들과 의논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팀이 있는 이상 그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다. 비록 프리랜서 기자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형제의 정으로 엮여 뗄 수 없는 친구들의 의견은 다를 수도 있었다.

 “좋소. 그야 어려울 것이 없지. 일단 난 이 근처에서 야영을 할 테니 그리로 갑시다.”

 “저희들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초른이었다. 둘만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지 아니면 아레스와는 다른 용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동행을 청했다. 하룬이야 별 상관이 없었다.

 “어려울 거 없지요.”

 하룬은 이곳으로 오기 전 미리 보아 둔 장소로 이동했다.

 그 뒤를 따르는 아레스는 물론 곁가지로 따라붙은 초른과 매그럼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하룬이 미리 보아 두었던 인근의 한 바위틈에 자리를 잡자 세 사람은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 로그아웃을 했다. 이미 자신들이 이방인임을 밝힌 터라 그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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