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중간에 나인 일행과 헤어졌다. 사막 지대는 낮 동안은 별 위험이 없었고, 영흥 마을 전사들은 다친 자들이 많아 암시장까지 동행하지 힘들었던 것이다.
전사들과 뜨거운 작별 인사를 하던 하룬은 혹시 몰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나인에게 벨이 준 재료 목록을 보여 주었다.
“타이타늄-니켈 합금, 아모르퍼스합금, 초전도물질, 파인세라믹스, 광섬유, 결정화유리,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태양광발전 플라스틱 전지, 바이오센서, 섬유강화금속…… 맙소사! 이런 물건들을 어떻게 구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암시장에서도 구하기 힘들어요.”
헤어지기 전 그가 보여 준 목록을 훑어본 나인의 말에 하룬은 난감했다. 벨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난항에 빠진 것이다.
“이런 합금은 용광로 마을에서나 만들 수 있어요.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광산 마을 몇 곳을 돌아야 하고, 이 중 몇 개는 사이언스 마을을 비롯한 몇 개 마을에 따로 의뢰를 해야만 해요.”
이런 줄 알았으면 촌장에게 부탁할 걸 그랬다. 하룬은 이 모든 물건을 모두 암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자신의 단순함에 화가 났다.
그래도 나인에게 보여 주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나중에 더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뭐야, 이 엄청난 물건들은? 휴우, 내 능력으로는 가격도 산정 못 하겠어. 이 중 몇 가지는 유니온에서 만들 수 있지만 빼낼 수가 없어. 유일한 방법은 아우터 마을에서 구하는 건데…….”
목록을 넘겨보던 해란마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다이아몬드 커터나 글라인더, 선반과 유압 해머를 비롯한 기계류와 윤활유는 어떻게든 암시장 내에서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을 거야. 오빠들이 나서도 엄청난 가격을 부를 거라고. 최소한 수억 이상은 들어갈 거야. 우주선이라도 만들겠다는 거야? 왜 이런 물건들이 필요한데?”
하룬은 씁쓸하게 웃으며 끝내 입을 다물었다.
재료와 부품을 비롯한 기본적인 기계류를 구입하는 데 그 정도의 거금이 들어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제 이사를 해서 벨이 원하는 연구실과 작업실을 만들어 주려던 그의 희망이 멀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일단 내가 돌아가는 대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자체 발전 기능과 무선 통신 기능을 보유한 컴퓨터를 가진 마을들과는 연락이 가능하니까요. 물론 대금도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보고 최소한으로 흥정해서 암시장을 찾을게요. 해란에게 당신 연락처는 있는 거죠?”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주어서 그런 것인지 아우터 마을들을 꿰뚫고 있는 나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고맙습니다. 메일 주소를 적어 줄 테니 꼭 부탁합니다.”
“우리 마을에도 컴퓨터가 있으니 메일 주소가 있다면 해란을 통하지 않고도 연락이 가능하겠네요.”
하룬은 그녀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자신이 늘 사용하는 유니넷이 아니라 글로벌넷 계정으로 알려 주었다.
“칫! 이제까지 내게는 알려 주지 않았으면서. 나도 적어줘. 돌아가는 대로 나도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알아보고 보내 줄 테니까.”
해란이 툴툴거리면서도 메일 주소를 받았다.
여행이 끝났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것들을 새로 알게 된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도중에 만난 하르크 때문에 하루를 더 지체해서, 유니온으로 들어온 것은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였다.
집에 들어서자 예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감회가 떠올랐다. 바로 바람처럼 달려와 품속에 안기는 벨 때문이었다.
“오빠, 보고 싶었어. 히잉!”
금방이라도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벨의 보드라운 얼굴이 수염 가득한 자신의 뺨을 문지르자 정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따듯하고 정겨운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자신을 반기는 존재를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터라 이 생소한 느낌을 어떻게 정의하기가 힘들었지만, 아무튼 무척이나 따듯했다.
“이런! 다 큰 아가씨가 꼭 어린애처럼 구네.”
짐짓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농담을 하던 하룬은 가슴에 비벼지는 뭉클한 살덩이의 감촉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잘록한 허리 아래로 엉덩이를 받친 왼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정말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넘쳤다.
“쳇! 그래도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랬어?”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룬은 벨을 통해 가족을 가지게 된 기쁨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 좋아! 난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벨이 길게 자라 이제는 까칠함이 줄어든 하룬의 턱수염에 얼굴을 비벼댔다. 하는 짓이 꼭 새끼 고양이 같아 웃음이 났다.
“별일은 없었지?”
요즘 배리어가 흉흉한 것을 암시장에서 들은 하룬의 물음에 벨이 배시시 웃었다.
“그럼. 도둑이라도 들까 봐 이 몸이 부족한 재료들로 무기도 만들었는걸.”
“그래? 어디 있는데?”
“조기.”
여전히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은 문 옆이었다. 문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문 옆 벽에 요상하게 생긴 건Gun이 붙어 있었다. 벽와 같은 연회색의 건은 마치 벽에 부착하는 옷걸이처럼 작지만 총구는 분명히 보였다.
“에너지 빔 건이야. 혹시 몰라 만들었어. 재료가 있었으면 로봇이라도 만들면 좋았을 텐데.”
“에너지는 어디서 났는데?”
유니온 수비군이 사용하는 빔 건의 동력은 주로 전기였다. 태양 발전으로 얻은 전기로 충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전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호호! 지하에 매설된 전기선에 접지해서 얻었지. 어차피 F4구역에서 끝나는 전기선이라 땅속으로 방류되는 전기를 사용했으니 유니온에서도 전혀 모를 거야.”
“잘했어. 우리 벨이 살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한다니까.”
혼자 사는 데다 거의 게임만 하고 있으니 살림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벨은 각종 공과금 처리라든가 은행 업무까지 유니넷을 통해 잘 처리하고 있었다.
“헤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벨이 또 귀여운 표정으로 웃었다.
‘윽!’
하룬은 벨의 웃음을 보자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외형이 성장하면서 이전에는 단순한 여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벨이 이제는 웃음 속에 치명적인 매혹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허리를 감은 벨의 두 다리와 목을 감은 팔 그리고 공기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밀착된 몸을 통해 강렬한 자극이 몰려왔다. 아침마다 건강하다는 신호를 보내며 단단해지는 동생(?)이 느닷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눈을 감아? 어디 아픈 거야, 오빠?”
순진무구한 벨의 큰 눈이 걱정을 담고 그의 눈 바로 앞에 왔다.
‘미치겠네.’
“응. 그동안 제대로 씻지를 못했더니 기분이 꿉꿉해서 그래. 나 샤워 좀 할게.”
하룬은 적절한 핑계를 대고 욕실로 향했다.
하룬은 물이 차갑게 느껴질 때까지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감정들을 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비욘드를 떠올린 하룬이었다.
벨은 수건을 들고 있다가 그가 나오자 열심히 대형 수건 밖으로 드러난 몸을 닦아 주었다.
“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헤에. 내가 해 주고 싶어서 그래, 오빠.”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닦아 주는 것이 기쁜 듯 팔랑거리며 바지런을 떠는 벨을 그는 말릴 수가 없었다.
“녀석도 참.”
이번에는 그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뜨겁고 자극적인 감정 대신 보살핌을 받는 따듯하고 편안한 감정이 떠올라 다행이었다.
“이거 마셔, 오빠.”
열심히 물기를 닦아 낸 벨이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주었다.
“뭔데?”
“헤헤. 벨 표 특제 주스. 몸에 좋은 거로만 만든 거라고. 피곤이 싹 날아갈 거야.”
칭찬해 달라는 듯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벨이다. 벨의 정성이 들어간 주스라는 말에 단숨에 그것을 마신 하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잔뜩 일그러졌다.
“어때?”
벨이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하룬은 잽싸게 빈손으로 벨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눌렀다.
“마, 맛있어!”
“호호호! 성공했네. 오빠 주려고 고대 자료까지 찾아 가면서 만든 건데. 어때? 피곤이 싹 날아가는 것 같아?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는데.”
“그, 그래!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날 것 같아.”
“헤에!”
벨이 얼굴을 가볍게 누르는 하룬의 손바닥 감촉을 즐기며 눈을 감은 사이, 하룬은 입을 벌려 입김을 불어댔다.
‘후아! 미치겠네. 뭐가 이렇게 쓴 거야?’
벨의 정성이라니까 참긴 하지만 정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쓴맛이었다. 마치 싸가지의 독에 중독된 듯 오장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그 충격은 한참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벨은 그의 손을 만지면서 그의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아, 그런데 비욘드는 요즘 어때?”
하룬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풀썩!
버릇처럼 그의 무릎으로 올라온 벨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앉았다. 인간의 감정을 처음 배우는 벨로서는 그와의 유대 관계를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하는 행동이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이제 그녀를 여자로 느끼기 시작한 하룬으로서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별일은 없어. 후크란 산맥의 보석 광산 때문에 난리가 난 것은 오빠도 아는 거고. 그걸 제외하면 비욘드 홈피나 각종 카페에도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걸.”
“알았어.”
비욘드의 정황을 확인한 하룬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몸이 노곤했다. 거기에 벨을 안고 있으니 마음까지 따듯해서 그런지 졸리기까지 했다.
“오빠, 근데 이렇게 한잠만 자면 안 될까?”
벨의 목소리는 졸린 고양이처럼 나른했다. 완전히 인간의 육체로 재구성한다고 하더니 성공한 것일까? 기계는 잠을 자지 않는다. 갈수록 완벽한 인간으로 변하는 벨이었다.
“그래. 오빠도 한잠 자야겠다.”
“우웅. 오빠 품이 진짜 따듯해. 오빠 심장 소리가 꼭 자장가 같아.”
자꾸 품을 파고드는 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하룬의 손가락에 진한 정이 흘렀다.
‘하긴 벨도 고아지. 부모 없이 태어났으니.’
휴먼과는 다른 방식의 탄생이지만 하룬은 어쩐지 강한 동질감과 함께 안쓰러움을 느끼며 벨의 몸을 꼭 안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상한 충동이나 야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하룬은 벨의 숨결이 길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도 눈을 감았다.
이렇게 외로운 존재끼리 정을 나누며, 평생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따듯해!’
하룬의 맨 가슴팍을 간질이는 벨의 숨결을 느끼며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 자세 그대로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을 보니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벨이 귀여운 눈으로 그를 바로 앞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이젠 괜찮아? 아까는 많이 피곤해 보였어.”
“응. 잘 잤더니 피로가 다 풀렸어. 이렇게 너를 안고 자니까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푹 잤어.”
하룬의 말에 벨이 배시시 웃었다. 그런 벨의 등을 몇 번 쓰다듬던 하룬은 할 말이 있음을 떠올렸다.
“벨, 미안한 일이 하나 있어.”
“뭔데?”
“네가 구하려는 재료들과 기계류가 엄청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래. 설사 구입할 수 있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 것 같아.”
“정말? 하긴 나도 구하는 것이 쉬울 거 같지는 않았어. 합금 같은 경우는 유니온에서 반출 사항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들이 데다수였거든. 그래도 암시장에서라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벨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정말로 필요한 눈치였다.
“시간이 걸리지만 못 구할 건 없어. 다만 돈이 좀 문제네.”
“미안해, 오빠. 괜히 나 때문에 돈 걱정까지 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로 필요로 하는 티가 팍팍 났다.
하룬은 미안한 마음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공연히 벨의 얼굴을 더 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꼭 구해 줄게. 오빠 믿지?”
“응. 꼭 구해 줘. 나 그것들이 꼭 있어야 한단 말이야.”
벨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그를 믿는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런 벨의 모습을 보던 하룬은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녀석의 믿음을 생각하니 바로 구해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나 진수 형 집에 잠깐 다녀올게.”
이미 저녁 시간이 된지라 진수가 비욘드에서 로그아웃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진수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라야 빵 몇 조각에 주스 한 잔에 불과한 단출한 것이지만, 그래도 같이 먹으니 맛이 좋았다.
“형, 나 이번에 후크란에서 횡재를 했어요.”
횡재라는 소리에 진수는 눈을 크게 떴다.
“횡재? 뭔데?”
진수는 뜨거운 눈으로 하룬을 쳐다보았다.
“형도 후크란 산맥에 있다는 보석 광산에 대해서 들어 봤죠?”
“응. 노천 광산이라든가? 얼마 전부터 방송들이 난리를 치더라. 너 거기 있었던 거냐?”
하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숙영을 하다가 후크란으로 향하는 엄청난 수의 유저들을 우연히 발견한 우리 용병대는 마침 의뢰가 다 끝난 터라 호기심이 동해 그들을 쫓았지요. 사실 악마의 땅으로 불릴 만큼 위험하다는 후크란 산맥에 어떤 몬스터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눈에도 랭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수백 명의 유저들 뒤를 따라가면 안전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먼 거리를 두고 움직여 후크란으로 들어선 다음 날 유저들이 지나간 곳에서 싸우는 소리와 비명이 나더군요. 우리가 서둘러 달려갔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나 가고 있었는데, 상대가 바로 악마처럼 머리에 뿔이 난 일명 ‘악마 오크’들이었어요. 놈들은 일반 오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과 민첩한 빠르기를 지닌 까닭에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죽어 있었어요. 전투가 불리해지자 유저들은 도망을 쳤고 악마 오크들이 그 뒤를 쫓았지요.”
“그럼?”
“맞아요. 전투 중에 사망한 유저들이 떨어뜨린 아이템들을 주웠죠.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템들 등급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덕분에 대원들 모두가 한몫 단단히 챙겼어요.”
“하아! 부럽다. 그래, 얼마나 챙겼니?”
“500골드가 조금 넘어요.”
뜨악!
진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현 시세로 무려 1,50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인 것이다. 자신이 1년을 꼬박 벌어야 하는 거금을 게임을 즐기면서 어부지리로 건졌으니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한숨을 길게 쉬는 진수의 모습을 본 하룬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한 시간까지 게임을 한다면 그 게임으로 생활비를 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먹고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최저 생계비를 넘는 정도의 큰돈을 버는 것은 그야말로 게임에 일가견이 있는 다크 게이머들이나 운이 좋은 최소한의 유저에게 해당하는 일인 것이다.
진수는 아마도 행운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신세를 떠올린 것이리라.
“그중에 쓸 만한 아이템이 있어 팔지 않고 남겨 뒀어요. 여기!”
하룬은 미리 준비한 아이템 보관 번호가 적힌 메모를 건네주었다. 사이언스 마을로 떠나기 전 암거래를 할 때 진수 생각이 나 아이템 두 개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으응? 정말? 나한테 주는 거야?”
“네. 행운이 굴러들어 왔으니 혼자 좋을 수는 없지요. 형과 함께 그 행운을 나눠야지요. 하나는 형이 착용하면 좋을 민첩 옵션이 붙은 레어 급 하드 레더고, 다른 것은 매직 급 치료의 반지인데 형이 써도 되고 팔아도 제법 돈이 될 거예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받은 진수는 말없이 한동안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물기가 번졌다.
“레어 급 아이템이면 너나 입지. 흑! 나, 난 너한테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형? 이 F구역에 처음 왔을 때 형이 얼마나 잘해 주었는데요.”
하룬의 말에 감동했는지 진수는 하룬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아무튼 고맙다! 정말 고마워. 사실 난 무지무지하게 재수가 안 좋았었거든. 이제 네가 준 행운의 아이템으로 나도 행운이 들었으면 좋겠다.”
“재수가 없었어요?”
“응. 던전이나 마땅한 사냥터 하나 찾아보겠다고 소득도 없이 돌아다녔더니 돈도 없고 무기와 방어구는 내구도가 떨어져 곤란하던 참이었어. 특히 이번 길은 지금까지 안 죽은 것이 용할 정도로 고생만 잔뜩 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질을 하자니 예금도 그리 많지 않고, 비슷한 형편인 친구들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사실 좀 많이 힘들었다.”
그는 어렵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잘됐네요.”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으마. 정말 네 덕분에 살았다.”
“대신 나중에 형이 능력이 생기면 나 잊으면 안 돼요.”
하룬이 웃으며 말하자 진수는 그제야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같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활짝 웃는 진수를 보며 하룬은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웃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멀쩡한 육신을 가진 청년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저 게임에 빠져 힘들고 희망 없는 현실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는 진수의 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차라리 형을 우리 용병대에 영입해 버릴까?’
재수가 좋은 건지 아니면 싸가지의 사기적인 능력 때문인지 몰라도 하룬 자신은 비욘드를 하면서 엄청난 거금도 벌었고, 수많은 아이템들을 건졌다. 그런 자신과 함께한다면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돈 걱정은 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에이! 형이 나 같은 동생을 대장으로 모시겠어? 자존심 때문이라도 거부할 거야. 아니,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할지 몰라. 괜히 좋은 형을 잃고 싶지는 않아.’
하룬은 진수를 돌풍 용병대에 영입하려는 생각을 접었다.
그냥 이렇게 가끔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거의 유일한 현실의 인간관계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두 사람은 차를 한 잔 마시며, 비욘드를 하면서 생긴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진수는 매퍼나 파인더를 했으면 어울릴 정도로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을 가졌다.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그는 남들이 가 보지 않은 길을 고집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일을 겪었다.
희귀한 동물들과 몬스터들의 기이한 습성을 잘 알고 있었고, 지형이나 지리를 꿰뚫어 보는 눈도 있었다. 그의 성격 때문에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 보통 유저들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많이 겪은 탓에 식견도 탁월했다.
다만 전투 능력이 부족해 자꾸 사망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길드가 있으면 그는 정말 멋진 활약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안타까웠다.
“이번에는 어디를 갔기에 그렇게 고생을 했어요?”
하룬은 아까 진수가 한 말을 기억하고 물어보았다.
“이번에는 제국 가장 북쪽 영지인 테베 백작령에 있는 고요의 땅 쪽으로 갔어. 요른 백작령 인근에는 몰려든 유저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좋은 사냥터나 던전이 없거든.”
고요의 땅이 언급되자 하룬은 눈을 빛냈다. 브리엘라와 데브론이 간 곳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고요의 땅이라고요? 그 이름에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흠. 그건 나도 확실히는 몰라. 다만 테베 백작령과 인접한 개척민 마을 사람들 이야기로는,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를 보이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고도가 높은 곳이고 북쪽의 극지방에서 남으로 부는 바람의 통로에 있어 매서운 추위와 차가운 바람이 분대. 그리고 그런 추운 기후에 더해 끝없이 펼쳐진 활엽수림 때문에 생명체의 흔적이 거의 없어 그렇게 불린다고 해. 테론 제국의 북쪽을 양분하고 있는 두 산맥의 중간에는 광대한 고원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그 대부분은 울창한 삼림지대로 엘프들의 영역이고, 그 지역에서도 다른 곳에 비해 유달리 고도가 더 높은 서쪽이 꼬리 모양으로 생긴 고요의 땅이야.”
“그렇군요.”
“뭐, 내가 오다가다 주워들은 말로는 고요의 땅에는 난폭한 성질을 가진 드래곤이 레어를 틀고 있다고도 하고, 까마득한 옛날에 신족과 마족이 그곳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였다고도 하는데, 그건 믿을 수 없는 전설이지. 확실한 것을 그곳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땅이란 사실이야. 그곳에는 침엽수림 이외에는 구경할 수 있는 생명체가 거의 없다니까 그 말이 맞을 거야.”
하룬은 브리엘라와 데브론이 왜 그곳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 말로는 광산을 개발하려는 것 같은데, 인적이 드문 고산지대라 광산을 발견한다 해도 개발하는 데 무척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그곳은 백작령 아닌가요?”
영지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세수가 나오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진수의 대답은 그 예상을 여지없이 깼다.
“말이 변경백이지 사실은 남작령보다 못한 척박한 땅을 일구며 근근이 살아가는 산간 마을들 몇 개가 고작인 곳이 테베 백작령이야. 몇 대 위의 선조가 골든 배틀에서 실패한 후에 그나마 후손들을 보전하기 위해 자청해서 개척한 영지라는 말이 있어. 아무튼 그곳이라면 인간들의 내왕이 별로 없어 행여 던전이라도 찾을 생각으로 가 본 건데,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니까.”
하룬은 브리엘라 진영에 속한 것이 확실한 테베 백작령의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듣고 브리엘라가 걱정되었다. 남들은 공, 후작을 끼고 거사를 벌이는데 이쪽은 유명무실한 백작이 고작이니 정말 한심했다.
“고요의 땅은 들어가 본 거예요?”
“아니! 그곳까지 가지도 못했어. 고요의 땅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험해서 엘프들의 영역으로 우회했다가 경고도 없이 화살을 난사하는 엘프들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겪고 깨끗이 포기했어. 다른 게임에서는 그저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종족인 엘프가 이 비욘드에서는 너무 호전적이더라고. 내 빠른 다리와 잘 발달된 위험 본능이 아니었으면 레벨이 한참 떨어질 뻔했어.”
“엘프가 공격을 했다고요?”
“응. 어제도 죽을 뻔했는데 간신히 살점 몇 덩이를 주고 살았지. 덕분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준비했던 포션류를 다 써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오늘 던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엘프들의 영역을 빠져나왔어.”
비욘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또 하나 알았다.
판타지 게임의 주 캐릭터 중 하나인 엘프 종족은 큰 키에 매끈한 몸매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환상적인 미모로 유명하다. 그들은 대개 활을 잘 쏘며 정령을 소환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물론 그 성정은 진수가 이야기한 대로 싸움이나 분쟁을 싫어하고 욕망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게임에서는 대개 먼저 공격을 하지 않으며 함부로 살상을 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참! 너 이것 좀 볼래?”
“뭔데요?”
“오늘 대단한 것을 발견했어.”
진수는 하룬에게 칩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것은 유저들이 많이 사용하는 영상 칩이었다. 게임에서 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현실에서 볼 수 있도록 캡슐의 기능을 통해 영상을 옮겨 담은 것이다.
진수는 그 칩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헤어 밴드형 캠으로 찍은 듯 유저의 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영상이 홀로그램 화면으로 떴다. 촬영자가 보는 시야에 키 작은 나무들로 가득한 평범한 산을 필두로 몇 개의 높은 산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이 보였다.
“여긴 어디죠?”
“나도 잘 몰라. 내 생각으로는 가장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귀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고요의 땅 동쪽 경계에 있다는 스카이 이어Sky Ear 같기도 한데, 확실치는 않아. 잠깐, 이제부터 잘 들어 봐!”
진수의 말에 입을 다문 하룬은 어떤 산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곧 촬영자가 동료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이 산, 꼭 피라미드 같지 않냐?
-어딜 봐서 피라미드냐?
-아니야. 잘 봐. 저 나무들이 없다고 생각하면 영락없는 사각뿔이야. 어제 다른 쪽 사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이쪽 사면도 거의 똑같은 생김새야. 저기 있는 능선을 봐. 굴곡이 없잖아. 나무들 때문에 확실치는 않지만 거의 똑바로 정상을 향하고 있어.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은데.
-공중에서 보면 확실하겠지만 두 사면을 본 것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어.
-가 보자!
그 직후 영상은 끊어졌다. 하룬은 진수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고 눈을 고정했다.
잠시 후, 다시 영상이 떴다.
이번에는 주변이 흙과 돌로 엉망인 거대한 입구가 보였다. 그 주변에는 입구를 가렸던 것으로 보이는 직사각형의 암석이 두 쪽으로 깨진 상태로 떨어져 나와 있었다.
-보이죠?
촬영자의 손가락은 입구의 위쪽에 있는 덮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기이한 형상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테론 제국의 문자는 확실히 아니었다. 이 문자는 상형문자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하룬은 유저의 특권으로 그 문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라의 지혜가 잠든 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기도요.
손가락은 이번에는 바닥을 향했다. 입구의 바닥은 흙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짐작되는 매끈한 석재인데 그곳에도 글이 새겨져 있었다.
《영명하신 ‘탄’ 황제 폐하의 명으로 지혜의 파편 한 조각을 이곳에 봉인한다. 향후 이곳을 방문할 미지의 황제 폐하를 위해 본 마탑은 네 권의 마법서를 같이 봉인한다.
제국력 2041년 블루 선더 마탑 마탑주, 클리온 드 나마》
-이곳은 확실한 던전입니다. 하하하! 던전이라고! 우리 골드 스톰이 드디어 고대 마법서 네 권과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아이템이 있는…….
-그만 촬영하고 너도 와서 일손 좀 도와.
누군가 곁에서 촬영을 하는 이의 말을 끊었다.
-알았어. 이젠 우리도 고생 끝이라고. 신 난다!
-미친 놈! 이제 겨우 입구를 찾은 것에 불과한데 벌써부터 만세를 부르고 지랄이야. 피닉스 길드와 정체불명의 길드들도 이제 대충 이곳에 대한 정보와 위치를 눈치 챈 것 같은데 이럴 시간이 없어. 놈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기 전에 물건을 찾아 안전하게 빠져나가야 해. 빨리 서둘러!
-알았…… 엇!
갑자기 영상이 흔들리더니 촬영자가 머리를 튼 듯 영상이 바뀌었다.
다급한 상황에 영상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제대로 영상이 잡혔다.
-헉! 엘프, 엘프다!
-이 새끼야! 토껴! 도망치란 말이야!
시커먼 그림자들이 연속으로 촬영자의 앞을 지나가면서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가 다시 앞이 보였을 때는 엄청난 수의 엘프들이 건너편 산을 질풍처럼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대충 500~1,000미터는 떨어진 것 같은데, 그 먼 거리에서 날린 화살들이 마치 비처럼 촬영자의 시야를 가득 채우며 날아왔다.
그걸 마지막으로 영상이 꺼졌다.
하룬은 흥분으로 잠시 말을 잊었다.
‘라! 그리고 지혜의 파편! 그 이름들을 여기서 다시 듣다니.’
이미 지혜의 파편을 하나 얻은 하룬으로서는 도저히 흥분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7단계에 이르는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는 지혜의 파편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빨리, 또 이렇게 우연하게 접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진수는 하룬의 놀란 얼굴이 마음에 드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대단하지?”
하룬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하룬의 눈에는 뜨거운 열기가 번득였다.
“2시간 전이었지. 던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엘프의 영역을 막 벗어나 로그아웃을 하려고 안전한 곳을 찾고 있을 때, 우연히 한 바위 뒤에서 몸에 화살 세 대를 박고 쓰러진 한 유저의 시체를 보았지. 아니, 죽어 가고 있었으니 시체는 아니지. 죽었으면 이것도 같이 사라졌을 테니까. 요즘 하도 형편이 좋지 않아 이제 곧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재수 없는 유저의 옷을 뒤졌어. 그런데 방어구는 물론이고 무기도 깨지고 부러져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렇다고 로그도 아닌 터라 남의 인벤토리도 털 수 없어, 그나마 망가지지 않은 것을 건지겠다고 이마에서 헤드 캠을 빼냈어. 이미 의식을 반은 잃어버린 유저는 곧 죽었어. 혹시 이 유저가 내가 가 보지 않은 곳까지 가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캠에 저장된 영상을 재생시켰더니 이런 게 걸리는 거야.”
이제야 사정이 이해가 갔다.
“대박이네요.”
“그렇지? 하지만 꽝이야.”
그렇게 던전에 목을 매던 진수였다. 고요의 땅으로 가려고 엘프들에게 그 험한 꼴을 당한 것도 던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엄청난 던전의 존재를 발견했는데 그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왜요?”
“죽은 유저를 알아. 아니, 그 유저가 속한 길드를 알지.”
“길드요?”
“그래. 죽은 유저는 골드 스톰 길드원이야. 골드 스톰은 비욘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길드지. 하이 랭커가 열 명이 넘게 가입한 초거대 길드로 평판이 아주 안 좋아. 골드 스톰과 적대한 존재는 개인이건 길드건 엄청나게 험한 꼴을 당했지. 연속 척살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현실에서도 무참하게 척살을 당한다더군.”
길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아무런 정보도 없는 하룬이다. 진수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그런데요?”
“그런데요라니? 욕심은 나지만 나한테는 가당치도 않다고. 더구나 영상에 언급된 피닉스 길드는 전원 고레벨의 어쌔신들로 이루어진 길드로 골드 스톰 못지않은 악명을 떨치는 길드란 말이야. 엮여서 좋을 일이 없다고.”
진수는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나는 듯 가늘게 치를 떨기까지 했다.
하긴 진수의 생각이 옳았다. 잘못하다가는 계정 삭제는 물론 현실에서도 잔혹한 테러를 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룬은 진수처럼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남들도 그렇지만 하룬 역시 지혜의 파편을 얻어야 한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그래야 할 당위성이 있었다. 지혜의 파편과 비도지존 간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반드시 얻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일단 비욘드로 돌아가 대원들부터 만나야 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이 필요하면 더 모아야 했다.
“형, 이 칩 내게 줘요.”
“뭐하려고?”
진수는 하룬이 걱정되는지 염려가 어린 얼굴로 물었다.
“쓸데가 있어요.”
벨에게 말해 이 영상에 나온 지형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래라. 뭐, 혼자나 너희 용병대만으로 던전을 찾아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테니까.”
진수는 흔쾌히 칩을 내주었다. 심약한 그로서는 가지고 있어도 딱히 도움이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고마워요. 나 갈게요.”
“그래. 오늘 정말 고마웠다. 빨리 요른 백작성으로 와라. 내일 요른 백작성으로 떠날 거야. 거기서 만나면 내가 제대로 한번 쏘마.”
“알았어요.”
하룬은 급하게 진수의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