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럼프 오크의 의식 (50/278)

《럼프 오크의 의식》

 비욘드로 돌아온 하룬은 메신저 워킹을 펼치며 2시간여 만에 광산지대를 빠져나왔다. 마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인지 발을 통해 흡수되는 마나의 양이 꽤 많이 늘었다.

 그래도 며칠이나 이 광산지대를 돌아다닌 경험 때문에 코엠길드가 숙영했던 자리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광산지대를 관통하는 제법 수량이 많은 개울이 눈에 들어왔다. 철 성분이 함유된 붉은색 물이 흐르는 그 개울이다.

 “저런!”

 하룬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개울 양편으로 처참한 장면이 보였던 것이다. 꽤 넓은 지역에 걸쳐 천막을 비롯한 야영 도구들과 그릇들 그리고 무기들이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더구나 곳곳에는 찢어진 옷과 방어구들이 널려 있었다.

 한눈에도 천 명 이상이 머무르던 거대한 지역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곳곳에 마법에 난사당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들이 곳곳에 파여 있었고, 그 속에는 찢어진 옷들과 무기들이 널려 있었는데 색깔이 꺼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아이언 스네이크가 대규모로 야습을 한 거구나.’

 그렇게밖에는 해석을 할 수 없었다.

 찬찬히 넓은 지역을 살펴보던 하룬은 새끼 아이언 스네이크 몇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축을 하려고 한 듯 반쯤 가죽이 벗겨진 것도 있었고, 한 마리는 통째로 불에 구워진 듯 탄 모습이었다.

 ‘혹시 새끼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새끼 때문에 성체들이 유저들을 공격했거나 그도 아니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고 공격했을 것이다. 물론 진실이야 이곳에 머물다가 죽은 유저들밖에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룬은 혹시 몰라 아이언 스네이크 새끼의 사체 세 구를 아공간에 넣었다. 최고의 약재라니 새끼라도 제법 큰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 구덩이는 뭐지? 마법은 아닌데.’

 구덩이를 살피던 하룬은 그것이 어떤 거대한 힘에 단숨에 파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혹시 꼬리? 음. 그럴 수도…….’

 처음에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아이언 스네이크의 꼬리 끝은 마치 가시가 돋아난 공처럼 생겼다. 뱀과 도마뱁의 중간 형태를 가지고 있는 아이언 스네이크의 꼬리는 엄청난 위력의 타격 병기처럼 생겼다.

 하룬은 한동안 그곳을 돌며 사망한 유저들이 남긴 아이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이언 스네이크의 독이 묻어 있었지만 해독약을 복용한 하룬은 중독되지 않았다.

 워낙 엄청난 수효의 유저들이 사망한 전장이라서 건진 아이템들은 이삼백 개가 넘었지만, 묻은 독 때문에 팔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여유도 없이 발견하는 족족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중독되었습니다. 초당 10의 데미지가 발생합니다.

 ‘빌어먹을! 직접 중독된 것도 아닌데 해독약의 효력이 채 30분도 못 가는구나.’

 하룬은 해독약을 다시 복용하고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했다. 결국 눈에 띄는 모든 아이템을 다 아공간에 넣은 것은 해독약 한 알을 더 복용한 후였다.

 하룬은 처참한 전장을 떠나 왔던 길로 향했다.

 수중에 세류가 준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긴 하지만 쓸 수는 없었다. 퀘스트 하나가 더 남은 것이다. 잊고 있었는데 가죽 장인인 타림에게 럼프 오크의 뿔을 구해다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너무 시간이 지체되어 큰일이네. 그나마 대원들이 수련하는 재미에 빠져 있으니 다행이지.’

 한 달 정도를 예정하고 나왔는데 이미 한 달이 지나 버렸다. 대원들이 수련에 재미를 들인 것을 보고 왔으니 늦었다고 크게 타박은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는 것이 좋았다.

 이미 한 번 온 길이니 혼자서 움직이면 시간을 꽤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룬은 이제 메신저 워킹 3단계 플라이 워킹을 펼쳤다. 마나 축적으 포기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파앗!

 하룬의 몸이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비조처럼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주변 사물이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지나온 길의 지형은 하룬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었다. 코엠 길드를 끌고 오느라고 천천히 움직인 덕분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달린 하룬은 급하게 대지를 박차려던 발에서 힘을 풀었다. 어디선가 굉장한 함성이 들여왔던 것이다.

 ‘누구지?’

 하룬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저 멀리 어깨를 맞댄 산들 사이로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는 거대한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절벽의 중간에는 바위를 뚫고 땅속을 올라온 거대한 물줄기가 수백 미터 아래로 물보라를 날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물보라 때문에 생긴 무지개 몇 개가 햇빛에 빛나는 절벽, 엄청난 높이의 폭포와 어우러지니 정말 환상적인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번 이곳을 지날 때는 기후가 좋지 않아 안개가 낀 탓에 볼 수 없던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장관을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폭포의 물줄기가 안개처럼 떨어지는 아래쪽에는 엄청나게 넓은 초지가 있었다.

 그 초지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모여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누구지?’

 북소리 비슷한 소리도 들렸고, 나팔과 같은 관악기의 소리도 들렸다. 이곳이 후크란 산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몬스터라는 건데, 악기를 사용하는 지성체인 것으로 보면 오크로 추측되었다.

 하룬은 비록 마음은 급하지만 일단 그리로 가 보기로 했다.

 아는 길이 아니어서 플라이 워킹을 펼칠 수는 없어 그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인근 산중턱까지 가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허억!”

 아래를 내려다본 하룬은 기겁을 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럼프 오크들이 절벽 아래 초지에 모여 있었다. 그 대다수가 방어구를 착용했고 잘 정련된 무기들을 들고 있어, 마치 잘 조련된 기사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사열을 기다리는 기사들처럼 엄정한 군기를 가지고 있었다.

 수만 마리가 넘을 것 같은 럼프 오크 대군 앞쪽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는 특별한 럼프 오크들이 모여 뭔가 행사를 치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복장으로 보아 부족장들과 제사장들로 보였다.

 “어! 저들은?”

 폭포에서 떨어져 내린 물보라 때문에 만들어진 무지개가 감싼 거대하고 넓은 바위의 한쪽에는 인간들이 결박된 상태로 모여 있었다. 오십 명은 족히 넘는 그들은 유저들이 아니라 NPC 기사들이었다.

 ‘왜 저들이 이곳에 있는 거지?’

 하룬이 의아해하는 사이 바위의 바로 밑에 자리를 잡고 있던 럼프 오크 악단이 악기를 두드리고 불었다. 그 순간 바위를 주시하고 대기하던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췌에에엑!”

 수만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지르는 함성은 절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룬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타고 난 전사 특유의 순수한 투기로 가득한 그 함성을 듣는 순간 머리칼이 곤두서는 전율과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제사장으로 보이는 길고 화려한 가죽옷을 걸친 오크의 손짓을 받은 전사들이 사지가 결박된 인간 기사들을 제단으로 보이는 둥근 바위 앞으로 끌고 갔다. 둥근 바위의 중앙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어 무척 신비해 보였다.

 “추얼! 추얼! 추얼!”

 그 순간 초지를 가득 메운 럼프 오크들이 박자를 맞추어 연호하기 시작했는데 먼 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헉!”

 아까부터 둥근 바위 옆에 서 있던 오크가 기사 한 명을 둥근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거대한 도끼로 머리를 잘라 버렸다. 아무런 예비 행동도 없던 까닭에 도끼에 잘려 굴러 떨어진 기사의 머리는 아직도 눈을 부릅뜨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추에누라다. 췌크궤에. 추크라쿼!”

 제사장으로 보이는 오크가 기이한 운율의 주문을 외우자 기사의 잘린 몸의 단면에서 붉은 피가 안개처럼 뿜어 나왔다. 붉은 피 안개는 이내 둥근 바위의 중심부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져서, 방어구와 내의까지 벗겨져 거의 알몸이던 기사는 금방 모든 체액을 구멍에 빨린 상태로 쪼그라들었다. 가죽과 뼈만 남은 기사는 건장하던 그 모습을 잃어버리고 미라가 되어 버렸다.

 “아아악!”

 그 광경을 지켜본 기사들이 발광을 했지만 몸을 속박한 줄은 풀리지 않았다. 그 후 한참 동안 오십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은 차례로 제물이 되어 모든 체액을 작은 구멍에 뺏기고 미라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 기사가 미라가 되어 버릴 무렵 초지에 모인 럼프 오크들의 분위기는 거의 광적으로 변해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놈부터 시작해서 대성통곡을 하는 놈도 보이고 춤을 추거나 옆에 있는 동료를 공격하는 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무질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때 기사들의 머리를 자른 럼프 오크가 고함을 질렀다.

 “췌에락!”

 산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쩌렁쩌렁한 소리에 오크들이 잠시 광적인 상태에서 벗어났다.

 날카롭게 솟은 세 개의 뿔로 미루어 거의 부족장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보이는그 오크는 느닷없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손을 쫙 벌리고 손톱을 박았다.

 즉시 가슴으로부터 엄청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그 오크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추얼! 추얼! 추얼!”

 또다시 초지에 모인 오크들이 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지르는 사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깊숙이 박아 버린 그 오크가 자신의 심장을 꺼냈다. 뭔가에 홀린 듯 손에 아직도 뛰고 있는 뜨거운 심장을 쥔 오크가 성큼 둥근 바위 위로 올라갔다.

 “추에췌라다. 췌크퀘에에에. 추크라쿼. 추얼!”

 제사장의 주문과 함께 그 오크는 자신의 심장을 경건한 자세로 작은 구멍 속에 던졌다.

 화르르!

 구멍으로부터 붉은 화염처럼 보이는 빛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 붉은빛은 제사장의 주문과 함께 점점 더 높이 솟구쳐 올랐다. 구멍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빛 덩어리는 공중 한가운데에서 한 덩어리로 모이더니 천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광적인 소리와 주문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모든 오크들의 눈이 하늘에 떠 있는 광구(빛 덩어리)로 향했다.

 휘리리릭!

 잠시 뭔가를 찾는 듯 공중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붉은 광구光球는 방향을 정한 듯 이내 꼬리를 만들며 하룬이 있는 산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모든 오크들의 뜨거운 시선이 광구가 이동하는 궤적을 좇았다.

 ‘뭐야? 이곳이잖아.’

 하룬은 자신을 향해 똑바로 쏘아 오는 붉은 광구를 보고 기겁을 하며 앞에 있는 바위 밑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광구가 날아온 속도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가 채 뛰어내리기도 전에 광구는 그의 몸을 집어삼켜 버렸다.

 광구는 그의 몸을 둥글게 감싸고 휘황한 빛을 발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광구에 갇혀 몸 전체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그 기분은 뭐랄까, 뜨거우면서도 청량한 것이었다.

 문득 빛으로 가득했던 사야에 주변 사물이 들어왔을 때에야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던 정체 모를 붉은 광구가 어느새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딜 간 거지?”

 몇 번이나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지만 방어구와 몸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몇 번이나 더 살펴본 하룬은 일단 아무런 변화가 없음만 확인하고는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갔다. 오크들의 동정이 궁금했던 것이다.

 “뭐, 뭐야?”

 초지를 가득 메우던 럼프 오크들이 메뚜기 떼처럼 자신이 있는 산을 향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자신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가장 앞쪽에는 머리에 뿔이 세 개씩이나 솟은 오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제사장으로 보이는 오크들은 발도 놀리지 않고 공중에 둥둥 떠서 날아오고 있었다.

 하룬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일단 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메신저 워킹 3단계 스킬인 플라이 워킹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럼프 오크들이 두 다리를 힘차게 놀리며 산을 탔지만 새처럼 날아가는 하룬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었다.

 하룬은 꼬박 2시간이 넘게 달렸다. 그사이 높은 산 두 개와 계곡 그리고 작은 물줄기를 넘었다. 평상시보다 두 배는 족히 되는 빠르기지만, 하룬은 자신이 그렇게 엄청나게 먼 거리를 달려왔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숫자의 오크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에 압도되어 도망을 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바람을 안으며 혹은 등지며 날아가는 것 그 자체에 매료되어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룬이 발을 멈춘 것은 한 협곡을 앞두었을 때였다.

 “이런!”

 하룬은 이맛살을 좁혔다. 실로 처참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좁고 높은 협곡 안에는 수많은 인간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제대로 사지가 붙어있는 시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된 기사들이 부러지고 깨진 무기, 방어구들과 함께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후크란에 들어올 때는 각기 다른 기사단이었지만 맹수들과 몬스터들에게 쫓긴 나머지 전략적으로 동맹을 맺었던 그들은 이곳에서 럼프 오크들에게 습격당한 것이다. 기사들의 시체 사이로 럼프 오크들의 사체 역시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럼프 오크들의 의식에 제물이 된 기사들은 이곳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뒤를 한번 돌아본 하룬은 캣랫 비수를 꺼내 럼프 오크들의 사체에서 럼프를 베어 내기 시작했다. 아무런 저항이 없는 럼프 오크의 머리통에서 뿔을 잘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비수에 마나를 소량이나마 주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룬이다.

 “가만! 이것들도 챙겨 가야지.”

 하룬은 널려 있는 무기와 기사들이 소지한 물건 중에서 쓸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나이가 제법 든 어느 기사에게서는 포션과 돈이 가득 든 마법 주머니를 얻었고, 핏물이 말라붙은 마법 배낭도 세 개나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되었나?’

 문득 하룬은 장기가 몸 밖으로 삐져나왔거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끔찔한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도 별로 충격을 받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단지 너무 징그럽다는 생각과 측은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같은 휴먼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니면 게임 속이라서 그런가?’

 챙기려면 챙길 것이 많았지만 문득 든 자신에 대한 이상한 기분 때문에 더 이상은 손을 대기가 싫었다.

 하룬은 죽어서도 자신에게 귀중한 것들을 주고 간 기사들과 럼프 오크들의 명복을 빌고는 라이피를 소환해서 모두 땅속으로 묻어버렸다.

 그 직후 하룬은 나팔 소리를 들었다.

 뿌우!

 ‘이런! 벌써 쫓아온 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달려오는 럼프 오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라면 센 강을 넘을 때까지 내리 뛰기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중간에 대기하고 있는 놈들이라도 있다면 자칫 포위가 될 수도 있었다.

 ‘아깝지만 할 수 없지.’

 하룬은 인벤토리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신속하게 찢었다. 그러자 하룬의 몸은 찬란한 빛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사라진 협곡 입구에 도착한 럼프 오크들은 하룬이 사라진 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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