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공포의 대지 (49/278)

《공포의 대지》

 현실로 돌아온 하룬은 혹시나 싶어 비욘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이언 스네이크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이게 아닌데.’

 그가 얻은 정보는 아이언 스네이크가 몸길이 3미터에서 7미터로 주로 광산지대에 서식하며 강력한 독액과 흉포한 성정을 가진 몬스터로, 그 뿔과 피 그리고 쓸개가 최고가의 약재로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곳에도 그가 직접 죽인 40미터짜리 아이언 스네이크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나마 그 정보 역시 황실 도서관의 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라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룬이 정보를 검색하고 나자 벨이 차를 한 잔 타 주었다.

 “오빠, 혹시 지금 있는 곳이 후크란 산맥 아니에요?”

 “맞는데. 왜?”

 하룬은 갑자기 왜 벨이 그것을 묻는지 궁금했다.

 “버추얼 비전과 같은 게임 채널들이 며칠째 그곳에 대한 정보를 방송하고 있어요. 무척 위험한 지역이라는데 오빠는 괜찮은지 궁금해서요.”

 “그래?”

 버추얼 비전은 게임 관련 방송사 중 하나로 유니온 네트워킹이 아니라 전 지구를 아우르는 통신망을 가진 회사였다. 가상현실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유니온 자체 방송국보다 훨씬 더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방송사였다.

 “어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볼까? 벨, 화면 좀 띄워 봐!”

 “알았어요.”

 벨은 하룬의 눈앞에 홀로그램 영상으로 버추얼 비전 프로그램을 띄웠다. 저녁 시간대라서 그런지 버추얼 비전의 대표 프로그램인 ‘이매지너리 게임의 세계’가 방송 중이었다.

 유니온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인 라유라 싱이 메인 MC를 맡고 있는데 그녀의 옆에는 게이머로 보이는 한 명의 초대 손님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배경 화면에는 후크란 산의 전경이 여러 각도로 보이고 있었다.

 흑인과 황인의 혼혈인 라유라 싱은 건강하고 밝게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팔등신의 미녀로, 이력을 보면 18세에 이미 대학 과정까지 마친 천재라고 했다. 밝은 눈빛과 활짝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그녀는 절망의 시대를 사는 유니온의 하층민들로부터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녀는 초대 손님에게 후크란에 대해 질문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달라트 님의 말은, 지금 후크란 산맥으로 향하는 유저들 대부분이 보석 광산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네요?

 -네, 그렇습니다. 이미 몇 개의 길드가 그 보석 광산을 찾았다는 소식도 있스니다. 저희 ‘아라파 정보 길드’에서 입수한 극비 정보에 의하면 그 보석 광산은 노천 광산이며 해발 1,000미터 급의 산 여섯 곳에 걸쳐 광범위하게 다양한 광맥이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달라트의 말에 라유라는 놀란 듯 입을 벌려 눈부시게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노천 광산이라면 보석과 같은 광석들이 땅 밖으로 나와 있단 말인가요?

 -아니요. 그것은 아닙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몇 미터만 파도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은 광물을 함유한 광맥이 지표면으로부터 지하 100미터 내에 묻혀 있는 광산을 노천 광산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광석을 캐내기 위해 수백 미터, 혹은 1,000미터 이상 파고 들어가야 하는 일반 광산에 비하면 쉽게 원하는 광석을 캘 수 있지요.

 -어머! 굉장하군요. 우리 유저들로서는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렇지요. 확인되지 않은 한 정보에 의하면 수정이나 호박, 오팔과 같은 준보석들은 조금만 땅을 파도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어머, 세상에. 그런 곳이 다 있다니. 그곳은 우리 여자들이 꿈꾸던 장소네요.

 -하하하, 여자뿐이 아니지요. 보석뿐 아니라 황금과 은 그리고 철광석들까지 표토 가까이에 거의 무진장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기에 유저들은 물론이고 비욘드 주민들도 경쟁적으로 후크란으로 향하는 상황입니다. 특별히 광산 개발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이나 천문학적인 개발 자금이 없어도 채광 가능한 광산이라는 정보 때문에 이 난리가 난 겁니다.

 달라트의 설명을 듣던 라유라의 눈매가 걱정스러운 듯 조금 찡그려졌다.

 -그렇다면……?

 달라트는 라유라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네. 당연히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아니, 이미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미 대형 길드 중 네 개가 보낸 선발대가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몰살당했다는 극비 정보도 입수되었습니다.

 -어머, 끔찍해라!

 라유라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라유라 양이 그렇게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전하니까요.

 -그래도 수많은 유저들과 NPC 주민들이 피를 흘린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요. 보물보다 생명이 우선 아닌가요? 그 점으 현명하신 우리 유저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너무 끔찍해요.

 라유라는 정말로 끔찍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룬은 그런 라유라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개의 남자들이 보호 본능을 유발시키는 여성의 모습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하룬은 달랐다. 남자건 여자건 강인하고 냉철한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험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자건 여자건 강인한 기질로 위험에 도전하는 과감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룬의 생각이었다.

 “벨, 다른 방송으로 돌려 줘.”

 “호호!”

 하룬의 심사를 짐작하는지 벨이 나직이 웃으며 채널을 돌렸다. 마침 또 다른 거대 게임 방송사인 호울 비전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실제 게이머이자 ‘황혼의 라크라노’의 하이 랭커였던 유명한 여전사 노라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게임을 즐길 때처럼 전사 복장을 하고 있는 노라는 근육질 몸매를최대한 많이 노출시킨 모습이었다.

 -그럼 오링 씨가 후크란 산맥의 지형에 대해 브리핑을 해 주시겠습니다.

 오링 역시 몇 개의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랭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게이머였다.

 -주봉인 후크란 산을 비롯해서 사백여 개의 고산 준봉으로 이루어진 후크란 산맥은 센 강에 삼면이 막힌 절묘한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넓이는 코원 유니온 크기의 약 백 배가량 되는 지역으로 동서가 남북에 비해 짧은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산맥이 시작되는 북쪽은 만년설을 가진 고봉들이 즐비하며 와이번이 많이 서식하는 위험한 지역입니다. 동쪽은 비교적 낮은 산들이 이어지지만, 서쪽은 북쪽에 이어 높은 봉우리를 가진 산들이 이어집니다. 남쪽은 초원 지대입니다. 남에서 북으로 부는 고온다습한 바람 때문에 몇 개의 평원과 낮은 산 그리고 고원으로 이루어진 산맥 내부는 비교적 온화하고 적당한 비 때문에 생물이 살기에는 적당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몬스터들도 상당히 많이 서식하겠군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험한 환경을 극복하는 지능과 의지를 가진 인간과는 달리 몬스터들은 기후가 맞는 곳에 주로 서식한다.

 노라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또 다른 랭커인 오시리스였다. 그는 모험가 혹은 파인더라는 직업으로 두 개의 가상현실 게임에서 랭커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네, 맞습니다. 후크란 산맥의 남서쪽을 탐사한 저희 길드의 파인더들에 의하면 그곳에는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상위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서식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 파인더 길드원들의 희생이 무척 많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번식기가 아니면 개별 혹은 가족 단위로 살아가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부족단위로 생활한다는 겁니다.

 -호오! 엄청나군요. 한 개체로도 오크 한 부족 정도는 몰살시킬 수 있다는 괴력을 가진 트롤과 오우거가 군집 생활을 한다니요.

 노라의 눈에 언뜻 강렬한 투기가 번뜩였다. 천생 전사 기질을 가진 그녀의 반응에 출연자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시리스는 잠시 입술에 침을 적시고 마저 말을 이어갔다.

 -남쪽의 초원 지대는 센 강의 강폭이 워낙 넓고, 식인 물고기 같은 수생 몬스터와 거친 물살 때문에 아직 탐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강 건너편에서 육안으로 관찰한 바로는 초식동물의 밀도가 높아서 오크들과 고블린들 그리고 수많은 맹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른 평야와 이어지는 북쪽은 경사가 가파르고 암봉이 많아 최상위의 몬스터인 와이번들이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습니다. 센 강의 폭이 가장 좁아 후크란으로 진입하기 가장 좋은 동쪽은 강안에 길게펼쳐진 초원 지대를 오크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크란 산맥 내부는 사정이 좀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출연자들이 모두 오시리스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는 잠시 그 반응을 즐기다가 입을 열었다.

 -후크란 산맥 인근 마을이나 도시에 전해지는 전설과 민담 그리고 테론 제국의 기록을 이 잡듯 뒤져 알아낸 정보입니다. 후크란 산맥의 남서쪽과 북쪽을 제외한 땅은 ‘악마 오크’라고 불리는 뿔을 가진 오크들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비욘드 세계에서 고대에 해당하는 시대부터 마법사들로부터 럼프 오크라고 불렸는데, 일반 오크들에 비해 두 배에서 세 배가 넘는 괴력을 가진 오크 종족들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들의 뿔은 수천 년에 걸쳐 마나가 녹아 있는 특수한 물을 섭취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생체 마나석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오크들의 지능은 인간과 비슷할 뿐 아니라 전사장이라고 불리는 계급은 인간의 기사처럼 마나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금번 후크란에서 사망한 유저들과 기사단 중 상당수는 이 럼프 오크 종족들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출연진들의 눈이 일제히 반짝거렸다.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오크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그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 겁니까?

 진행자도 아닌 한 출연자가 오시리스에게 물었다.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후크란 산맥은 아주 오랫동안 금역으로 여겨왔기 때문이지요. 유저들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비욘드의 NPC들도 이곳에 들어가 살아 돌아온 일은 아주 희귀한 경우에 속합니다.

 지금까지 오시리스가 한 말에 따르면 정말 대단한 금역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호울 비전에서 댄 자금으로 알아본 결과 황궁 도서관에 이곳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다시 사람들의 눈에 열기가 솟았다. 사실 이런 정보는 개인이나 일개 길드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리시스가 이끄는 정보 길드의 힘과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기록은 우리 호울 비전의 특종이 될 겁니다. 이 기록은 후크란에 진입했다가 살아 돌아온 이들이 남긴 겁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300여 년 전 요른 평야를 포함하여 인근의 광대한 영지를 지배하던 한 후작가에서는 보석 광산이 기재된 보물 지도를 입수하고 기사 백오십, 종자 삼백 명으로 구성된 기사단 열 개와 6서클 마법사들이 이끄는 마법 병단 두 개 그리고 병사 이 만을 동원해 보석 광산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장 진입이 쉬운 루트인 동쪽으로 진입해서 두 무리로 나뉘어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탐사를 떠났는데 여섯 달이 지난 후 그들 중 일부만이 귀환했다고 합니다. 생존자는 기사와 마법사들을 포함해서 열 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속한 후작가에서 황궁에 보고한 서류에 따르면, 후크란 산맥에는 적어도 열 개가 넘는 럼프 오크 부족이 있으며 한 부족의 전사는 대개 일만에서 오만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후우! 엄청나군요. 그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사의 숫자만 십만이 넘는다는 이야기군요. 정말 그곳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 대로 악마의 땅이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생이 전사인 노라의 눈은 숨길 수 없는 투기로 일렁였다. 당장이라도 럼프 오크들과 일전을 겨루고 싶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라는 사실을 그녀는 망각하지 않았다.

 금방 평정을 회복한 노라는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럼프 오크들과 관련된 귀중한 영상을 입수하셨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이 방송에 들어오기 전 한 유저가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는 후크란 산맥에서 럼프 오크들과 한 길드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고 합니다. 미리 1분 분량의 전투 장면을 보내왔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는 무척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뿐 아니라 진행자인 노라를 포함한 사람들 모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전투 장면을 볼 수 있다면 럼프 오크들의 능력과 전투 기술을 비롯한 고급 정보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종이 되겠군요.

 -네. 평소 쓸 만한 정보에 후한 보상을 해 온 우리 길드를 유저들이 인정해 준 덕분입니다. 아마 다음 시간에는 그 영상을 직접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 영상,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노라의 말에 오링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종을 잡은 기쁨이 얼굴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특종에 대한 보수도 보수지만 몇 번만 터트리면 방송사 특별 직원으로 특채가 되어 막대한 연봉과 좋은 저택까지 받을 수 있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노라는 시청자들에게 다음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올린 후에야 다른 화제를 언급했다.

 -오링 님 같은 분들의 열혈 정신과 노고 때문에 우리 방송사가 유저분들에게 이렇게 많을 사랑을 받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은 엘란 마법사께서 그곳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그녀가 말한 엘란은 은은한 황금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로 그 역시 한동안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으로 이름을 떨치던 ‘여명의 대지’에서 한때 탑 랭커에 오른 유명 인사였다.

 -우리 골드 마탑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 대한 정보를 가장 먼저 입수한 곳은 코엠 길드라고 합니다.

 하룬도 골드 마탑에 대해서는 벨이 준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골드 마탑은 엘란처럼 유명한 유저 마법사들이 조직한 단체로 다른 몇 개의 마탑과 같이 기존 NPC 마탑들과 사승 관계를 맺으며 유저들 사이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 세력이었다.

 나중에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모르지만 현재는 길드와 다를 바가 없는 단체였다.

 -코엠 길드라면 내가 좀 알지요.

 노라가 아는 척을 했다. 엘란이 그녀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이자 노라가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했다.

 -코엠 길드는 길드원 수가 이천이 갓 넘은 중형 길드랍니다. 길드장인 세류 님과는 다른 몇몇 게임에서 인연이 있는 관계로 아는 사이인데, 자금력이 탄탄하고 상인과 생산직 유저들 중 고레벨이 꽤 많은 곳입니다.

 -네, 맞습니다. 차후 거대 길드를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중형 길드지요. 아무튼 이 코엠 길드에서는 정보 길드를 통해 극비리에 보석 광산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 지도를 입수했습니다. 하지만 정보 길드에서는 교묘하게 조건을 붙여 지도는 아니지만 광산이 후크란에 있다는 정보를 다른 길드들에도 팔았습니다. 때문에 초기부터 대형 길드들이 보낸 선발대들과 비욘드의 귀족가에서 보낸 선발대들이 후크란 산맥 동쪽에서 가장 큰 도시인 타우스트 성에 모여들게 되었지요. 그들의 정보는 여기 있습니다.

 엘란은 홀로그램을 통해 타우스트 성에 모여든 길드들과 귀족가의 이름을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저는 물론이고 NPC들도 후크란 산맥의 지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정보에 따르면 코엠 길드의 1차 탐사는 불과 일주일도 안 되어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제외하고 모두 몰살당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탐사 인원은 얼마나 되었답니까?

 이번에는 등에 황금색 활을 멘 궁사가 엘란에게 물었다. 그래도 유명한 게이머들은 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는 하룬이지만 그녀는 본 적이 없었다.

 -아, 사미르 님도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엘란이 뜻밖의 질문에 놀라면서 하는 소리에 진행자인 노라가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사미르 님도 길드를 이끄는 랭커시니까요.

 -네. 선발대는 삼백 명 정도로 그들의 평균 레벨은 50을 갓 넘는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집령을 내리고 길드 랭커들이 다 모이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세력들까지 모여들자 급하게 출발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 인원수와 레벨을 가지고도 일주일을 못 버텼다고요?

 사실 현재 유저 레벨 분포를 고려할 때 레벨 50이면 중상은 된다. 그 레벨이면 혼자서도 몬스터들 중 대표적인 강자인 오크 워리어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다. 더구나 길드라면 당연히 마법사를 비롯한 다양한 직업군이 망라되었을 터였다.

 각종 직업군이 섞인 길드의 힘은 시너지 효과를 내 평균 레벨 이상의 가공할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엘란은 사미르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한번 짓고는 말을 이었다.

 -네, 그렇답니다. 문제는 수백 년 전에 살아 돌아온 후작가 기사들을 증언을 토대로 그려진 그 지도의 내용이 너무 허술해서 안내자가 없으면 도저히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후크란 산맥 인근에 사는 사냥꾼들이나 약초꾼들을 모두 찾았지만, 그들 중 금역으로 각인된 그곳에 들어갈 간담을 가진 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건 코엠 길드뿐 아니라 정보를 입수하고 모여든 다른 세력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지요. 그런데 코엠 길드는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지만 안내자를 찾았습니다.

 -안내자를 찾았다고요?

 노라와 다른 출연자들이 일제히 관심을 표명했다.

 -자세한 인적 사항은 코엠 길드장밖에는 모르지만 최소한의 정보는 길드원들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돌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용병대가 최고 정예만을 뽑아 출정한 코엠 길드원들은 보석 광산까지 안전하게 안내를 했답니다. 그들은 후크란 산맥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지형 정보는 물론 몬스터들의 서식 정보까지 가지고 있었고, 가진 무력도 길드원들을 위험에서 구해 줄 만큼 강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용병대군요.

 노라가 감탄했다. 중형 길드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라면 평균 레벨이 55에서 60은 될 것이다. 그 정도 실력을 가진 길드원들을 구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다.

 -네. 그래서 나름대로 용병 길드를 통해 알아보았는데 그들의 정체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용병대가 열 개가 넘는 데다 그들의 위치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의뢰를 수행할 수 있는 용병대는 없었습니다. 그중에는 등록한 지 겨우 몇 달도 안 되는 대원 수 다섯 명의 극소형 용병대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그들이 용병 길드에 등록되지 않은 비등록 용병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욘드는 은밀하게 고위 귀족들과 거래를 하는 비등록 용병 단체들이 꽤 많은 곳입니다.

 하룬은 엘란의 말에 서운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돌풍이라는 이름까지 알아낸 것을 보면 대단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코엠 길드원들로부터 흘러나온 정보에 따르면, 이 돌풍 용병대는 이미 후크란에서 오랫동안 사냥을 하거나 의뢰를 처리한 경험을 가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방대한 지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용병대 이름은 알려졌지만 그나마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세류 자매를 비롯한 길드 수뇌부들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 아래 길드원들은 그의 이름은 모르고 그가 돌풍 용병대 대장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기에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다고 해 봐야 지금의 경우처럼 믿을 사람도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두각을 나타내 남들의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는 하룬으로서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대단한 용병대라는 것은 확실하군요.

 하룬이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돌풍 용병대는 출연진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아! 그건 그렇고 그 이후 상황도 이야기를 해 주시죠.

 노리가 주의를 환기시키자 엘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코엠 길드가 갑자기 사라지자 타우스트 성에 모여든 다른 세력들이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일제히 그 뒤를 쫓았습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관계상 그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는 코엠 길드와 동행한 한 유저가 비밀 뒷거래를 통해 그들에게 행로를 안내했다고도 하는데, 그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비교적 적은 희생자만 내고 보석 광산에 도착한 코엠 길드와는 달리, 후에 출발한 길드나 기사단은 후크란의 험안한 지형과 맹수들 그리고 몬스터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특히 가장 나중에 출발한 NPC 기사들로 이루어진 세 개의 기사단은 이미 먼저 지나가며 큰 피해를 준 길드 때문에 악마 오크들의 분노를 사서 아예 생존자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유저들은 부활의 이점을 이용해서 무사히 보석 광산까지는 갔겠군요? 그럼 보석 광산에서 무슨 다툼이라도 생긴 건가요?

 사망 시에 사흘의 접속 금지가 있긴 하지만 부활 위치를 길드장 인근으로 설정하면 나름대로 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노라의 물음에 엘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먼저 광산지대에 도착한 코엠 길드가 누군가 자신들의 뒤를 따르는 것을 알아차린 거지요. 화가 난 코엠 길드는 밤을 이용해 뒤따르던 길드를 급습했고, 사흘에 걸쳐 두 개의 길드를 말살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사망한 유저들을 통해 현실에서 알려지면서 뒤따르던 두 길드는 연합해서 함정을 팠습니다. 양 세력은 한밤중에 처절한 전추를 치렀고 그 결과 그동안 전력이 약해진 코엠 길드의 모든 길드원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엘란의 브리핑이 끝나자 노라와 출연진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제 모든 정보가 다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망했더라도 이미 대충의 위치를 파악한 길드들은 더욱 많은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보석 광산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상한 것이 당시 생존했던 두 길드의 수뇌부들도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석 광산에 도착해서 광맥을 탐사하던 중에 엄청난 괴물들에게 급습을 당해 죽었다고 합니다.

 -괴물요?

 -네, 드래곤이라고도 하고 거대한 도마뱀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지만 확실한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보석 광산에 도착한 유저들 대다수가 강력한 독에 중독되어 사망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보석 광산에 대한 대충의 위치가 알려졌으니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군요.

 노라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게임에서도 보물이 나타나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으니까요. 사실 이런 사실이 은밀하게 알려지면서 이미 엄청난 수의 유저들이 타우스트 성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보석들이 발에 채일 정도의 보석 광산에서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개인이건 길드건 가리지 않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욘드의 주민들 역시 이 행렬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엘란의 말에 노라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유! 완전히 ‘주얼리 러시’군요.

 -네. 노라 양이 말한 대로 주얼리 러시 때문에 랭커들까지 속속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후크란 산맥에서 골든 배틀에 앞서 각 세력들의 전초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어느 때보다 황위 계승권자들의 숫자가 많은 이번 골든 배틀에서 자금력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테니, 이 보석 광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세력은 없을 겁니다. 길드를 포함한 유저들의 입장에서도 보석 광산의 자금을 바탕으로 단숨에 황권에 도전하는 세력의 중심으로 편입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겠지요.

 -후크란 산맥의 주인이라는 악마 오크도 그렇고, 보석 광산의 정체 모를 몬스터들이 아무리 강해도 욕심 많은 인간들 앞에는 결국 무너지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흘릴 피와 그 후에 인간들끼리 보석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서 흘릴 피가 이 아름다운 비욘드를 파괴시키지는 않을까 걱정이네요.

 노라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다른 어떤 존재들보다 더 강했다. 도무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향을 가진 인간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못 깨뜨릴 것이 없는 무서운 존재였다.

 -큰일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유저들이 그렇게 모여들어 비욘드에 무슨 영향이 없을지 걱정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꿈꾸어 왔던 진정한 판타지 세계가 비로소 우리 앞에 나타났는데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이네요.

 노라의 말에 다른 출연자들의 얼굴에도 한 가닥 근심의 빛이 생겨났다. 혹시나 이 일의 여파로 밸런스라도 깨져 이 흥미진진한 게임을 즐기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어느새 그들은 비욘드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노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시리스 님, 혹시 후크란 산맥으로 들어갈 유저들을 위해 지금까지 알려진 안전한 루트를 몇 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네. 일단 이 지도를 보아 주십시오.

 이제 화제는 후크란 산맥의 지형으로 옮겨 갔다. 더 이상은 볼 필요가 없었다.

 하룬은 벨을 보았다. 그녀는 뭔가를 점검하는지 바쁘게 보였다.

 “벨! 이제 돌아갈게.”

 “벌써? 좀 쉬었다 가지. 안 피곤하겠어요, 오빠?”

 “괜찮아. 부탁이 있는데 비욘드의 역사를 뒤져서 ‘라’ 제국에 대해서 알아봐 줘.”

 “알았어요. 다음에 오빠가 나올 때까지 찾아 놓을게요.”

 하룬은 상황을 파악하자 바로 비욘드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자신이 아이언 스네이크와 사투를 벌이고 수련을 하던 며칠 사이에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비록 코엠 길드에 각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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