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지혜의 파편과 황혼의 킨드잘 (48/278)
  • 《지혜의 파편과 황혼의 킨드잘》

     하룬이 힘겹게 포션을 마시고 의식을 잃어버린 얼마 후 그가 들을 수 없는 안내음이 울렸다.

     -아이언 스네이크를 완전히 해치웠습니다.

     -레벨이 5 상승합니다.

     -세트 아이템과 아이언 본 소드를 획득했습니다.

     -S.P. 80을 획득합니다.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집중이 2 상승합니다.

     -의지 스텟이 생성되었습니다. 초기 수치는 2입니다.

     -보상금 3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아이언 스네이크의 생명력은 하룬이 생각하는 것보다 질겨서 그가 사망하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완전히 끊어졌고, 그 때문에 레벨 업이 늦어진 것이다.

     레벨 업의 효과로 생명력과 마나가 가득 차오르는 사이, 아이언 스네이크가 흘린 핏물 속에 잠긴 그의 몸에서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직 굳지 않은 피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하룬의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입 안 가득 고인 피들은 피부를 통해 하룬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하룬에게 흡수된 그것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뼈와 근육들은 물론 혈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트롤의 피보다 훨씬 강력한 재생 능력을 가진 아이언 스네이크의 피는 포션과 함께 하룬의 몸속에서 믿기 힘든 재생 과정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두둑!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리를 잡는 동시에 강력하게 붙고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밀도일 뿐 아니라 핏속에 함유된 철 성분까지 포함되어 그야말로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것이다.

     푸르르! 부르르!

     살과 근육 부위에도 변화가 있었다. 마치 반죽을 하듯 스스로 부풀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던 근육들은 강력한 재생 능력을 지닌 아이언 스네이크 피의 공능으로 더욱 질긴 근섬유와 더욱 강력한 근력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하룬이 의식을 되찾은 것은 만 하루가 꼬박 지난 후였다.

     “흐윽!”

     정신을 잃을 때의 감각이 남아 신음과 함께 눈을 뜬 하룬은 시야가 어두워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떠올려야만 했다. 단검과 비수를 비롯한 암기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놈의 입천장을 보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놈이 이젠 완전히 죽은 건가?’

     눈에 들어온 곳이 현실이 아니니 분명 사망한 것은 아니다. 사망 카운트가 7까지 떨어졌던 것을 기억하는 하룬은 자신이 사망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무슨 원인인지 자신이 천우신조로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룬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 아프네. 그럼 부상까지 다 나은 건가?’

     그랬다. 부러진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갈비뼈를 비롯한 많은 뼈들이 부서지고 근육이 뒤틀리거나 끊어지는 것을 극렬한 고통과 함께 분명히 경험했는데 거짓말처럼 몸이 회복되어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가볍지?”

     마치 수십 킬로그램의 짐을 들고 있다가 벗어 버린 듯 몸이 가벼웠다. 두 손으로 바닥을 치면 놈의 입천장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를 든 하룬은 몸에서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만으로 몸서리가 쳐지는 그 극렬한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의 뼈란 뼈는 모두 부러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몸 상태는 전에 없이 아주 상쾌하고 모든 곳이 좋았다.

     “어떻게 내 몸이……? 포션의 효과인가? 아, 레벨 업도 했구나!”

     하룬은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활력이 감도는 몸 상태가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포션과 레벨 업으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죽기 일보 직전에 레벨 업을 완성한 끝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이다.

     아이언 스네이크가 그 전에 죽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사망하고 말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레벨 업이 되기 이전에 아이언 스네이크의 피로 특별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룬은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하고 활력이 넘치는 것을 단순하게 넘기고 말았다.

     아이언 스네이크의 입안으로 들어온 달빛을 세 갈래로 나누는 날카로운 이빨 두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놈의 무시무시한 독니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얼굴을 덮을 정도로 흥건한 피 속에 누워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하룬의 눈이 커졌다.

     “어! 피가 다 어디로 갔지?”

     분명히 귀가 잠길 정도로 놈의 입안에 고여 있던 피가 기억났다. 그 바람에 피를 한참 동안 들이켠 것을 떠올린 하룬은 자신이 누웠던 곳을 비롯한 놈의 입안을 살폈지만 피로 보이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만, 상태 창부터!’

     도저히 자신의 레벨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놈을 잡았으니 능력치가 많이 올랐을 것이 분명했다. 상태 창을 확인하는 하룬의 눈에 기쁨이 가득했다.

    『이름: 하룬

    종족: 인간

    직업: 검사

    레벨: 55

    칭호: 아이언 스네이크 슬레이어(외 7개)

    생명력: 1,870

    마나: 2,015

    정령력: 740

    힘: 72(+15)     체력: 65

    지식: 36        지혜: 54

    행운: 44        민첩: 73(+12)

    지구력: 26      심안: 21

    집중: 30        의지: 2

    S.P.: 448       명성: 1,880

    통솔력: 565

    화염 저항력: +10%

    마법 저항력: +10%

    남은 보너스 스텟: 10』

     의식을 잃은 사이 레벨이 무려 5단계나 올라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놈이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인지 S.P.가 무려 80점이나 올랐다.

     스텟치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새로 얻은 칭호의 효과인지 몰라도 모든 스텟이 공히 2씩 올랐고, 그 상태에서 힘, 체력, 민첩 스텟이 5씩 더 올랐다.

     ‘어? 이 스텟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올랐지?’

     아이언 스네이크와 싸우는 과정이야 다 죽어 가다가 겨우 비수로 놈의 약점을 파고 든 것이니 스텟이 오를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지구력과 집중 정도가 영향을 받았을 터였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스텟의 대폭적인 상승이 이루어진 것이다.

     잠시 생각해 봤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해당 스텟에 영향을 미치는 그 어떤 행동도 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뭐, 일단 좋은 거니까.’

     하룬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즐거운 일이기에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다른 스텟을 살폈다.

     새로운 항목이 보였다.

     ‘의지라고?’

     어떤 작용을 하는 스텟인지 모르지만 의지라는 항목이 생성되었다.

     하룬은 보너스로 얻은 스텟 10을 체력과 지혜에 반씩 배분하고 스킬 창을 열었다. 스킬 창은 변화가 없었지만 인벤토리에는 보상금으로 보이는 300골드와 새로운 아이템이 두 개나 들어와 있었다.

    『아이언 스네이크 방어구(세트)

    등급: 유니크

    내용: 투구, 하드 레더, 장갑, 부츠, 내의

    아이언 스네이크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 세트다. 오랜 시간 동안 각종 광물질을 섭취해서 가죽을 철보다 더 강하게 만든 덕분에 플레이트 갑옷보다 더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다. 500년 이상 살아온 아이언 스네이크를 잡은 용사에게만 주어지는 착용 제한 최상급 방어구로 세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옵션: 세트 효과(방어력 +200, 마법 방어력 +100, 속성별 방어력 20% 증가, 힘 +10, 민첩 +15, 체력 +5)

    제한: 귀속 아이템』

     이제까지 얻은 아이템 중 최고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당장 갈아입어야겠다.”

     놈의 타액에 함유된 강산성 물질 때문에 예전부터 입어 왔던 방어구와 속옷은 이미 걸레처럼 변한 상태였다. 옵션을 떠나 마땅히 걸칠 방어구가 없는 상태였고 판매할 수도 없는 귀속 아이템이라 당장 착용했다.

     투구는 모자에 가까운 형태이고, 장갑은 손가락이 드러나는 형태로 방어구라기보다 외출복 같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아이템이지만 가볍고 부드러우며, 몸에 착 달라붙는 내의를 속에 받쳐 입으니 착용감은 물론 마치 입지 않은 것처럼 무게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과연 유니크 등급에 손색이 없었다.

     “오우! 몸이 막 날아갈 것 같은데. 힘이 불끈불끈 솟고 있네.”

     세트 아이템의 효과는 정상보다 높은 능력을 가지게 해 주었다. 칙칙한 검정 계열의 색상도 튀지 않아 좋았다. 언뜻 보면 블랙 오크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았다.

     세트 효과로 방어구를 착용한 것만으로 레벨이 10단계는 뛴 것 같았다. 게임을 하면서 귀한 아이템을 얻는 일이란 게이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보람이며 기쁨이다.

     하룬은 흥분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아이언 본 소드(본 소드)

    등급: 레어(상)

    아이언 스네이크의 뼈로 만든 검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각종 철 성분을 흡수해 마나가 깃든 검으로도 부러뜨릴 수 없는 강도를 가지게 된 아이언 스네이크의 뼈로 만든 검은 마나의 흡수와 발출이 빨라 마나 소드의 사용자에게는 최상의 검이다.

    옵션: 힘 +5

         체력 +5

    제한: 레벨 50』

     하룬은 그 색상이 마음에 들었다. 칙칙한 검은색 검은 그가 늘 써 왔던 강철검과 비슷한 형태와 크기지만 무게는 반의반도 되지 않아 무척이나 가벼웠다. 생김새는 양손 검이지만 한 손으로도 문제없이 쓸 수 있었다.

     하룬은 주저 없이 아이언 본 소드의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네가 내 애검이다.”

     검을 힘주어 잡은 하룬은 몇 번이나 휘둘러보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검대에 찼다.

     ‘다시 확인해 보자.’

     새로 착용한 아이템들의 영향으로 상태 창의 내용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 설레었다.

    『이름: 하룬

    종족: 인간

    직업: 검사

    레벨: 55

    칭호: 아이언 스네이크 슬레이어(외 7개)

    생명력: 2,395

    마나: 2,240

    정령력: 740

    힘: 82(+15)     체력: 80(+10)

    지식: 35        지혜: 59

    행운: 44        민첩: 76(+15)

    지구력: 26      심안: 21

    집중: 30        의지: 2

    S.P.: 448        명성: 1,880

    통솔력: 565

    물리 방어력: 200

    마법 방어력: 100

    남은 보너스 스텟: 0』

     이제 생명력과 마나가 공히 2,000이 넘었다. 해독약만 구한다면 싸가지를 소환해서 녀석의 특기인 독 스킬을 펼치게 해도 40초에서 60초를 유지할 수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니 능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간 것이다.

     지식의 파편 내용을 배우고 스킬을 익히느라 S.P.는 300점이 사라졌지만 그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또 아이언 스네이크와 본 소드를 착용한 덕분에 검사라는 직업답게 힘과 체력 그리고 민첩이 높은 캐릭터가 되었다. 굳이 정령이나 암기를 쓰지 않더라도 검술로 몬스터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한 번 비약적인 능력의 발전을 이룬 것이 신기하고 기쁜 나머지 상태 창을 질릴 때까지 보던 하룬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사용하던 강철검을 인벤토리에 넣은 하룬은 놈의 사체에서 암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단검들은 자루가 노출되어 수거하기가 편했다. 비록 칼집받이가 없는 비수들과 거의 살 깊숙이 박혀 버린 표창들을 수거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암기를 수거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암기들을 회수하던 하룬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몇 개의 비수 때문에 놈의 입안을 다시 샅샅이 수색했다. 귀중한 투명 비수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암기들과 달리 자루 자체가 없는 것이라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암기들을 가지고 있었나?’

     단검이 50자루가 넘고 비수는 100여 자루에 달할 정도로 많았던 것이다. 다행히 놈의 뼈와 부딪친 암기 몇 개를 제외하고는 내구도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방어력을 가진 외피에 비해 입안의 살들은 너무나 연했던 것이다.

     한참을 손끝까지 동원해서 투명 비수를 찾던 하룬은 탄성을 질렀다.

     “오! 이게 놈을 죽인 거구나.”

     분명히 비수가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만져지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의 위쪽에는 아이언 스네이크의 뇌가 있었다. 아마도 투명 비수가 연약한 살을 꿰뚫고 들어가 뇌에 박힌 것이리라.

     “아!”

     투명 비수를 턱 바로 밑에서 빼내던 하룬은 그제야 비도지존의 유물인 비수가 색이 바뀌면서 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하룬은 정신을 집중해서 그때 들었던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파라스 자작에게 선물로 받은 비수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아직도 미약하지만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한참을 찾던 하룬은 투명 비수처럼 놈의 뇌까지 들어간 그 비수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비수로 살과 뼈를 헤집어 겨우 찾은 비수는 낡은 날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진동음이었다. 손안에 들어온 비수의 미세한 진동을 하룬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여기 어디에 비도지존의 유물이 있다는 말인데?’

     설마 입안은 아닐 것이다.

     ‘혹시?’

     하룬은 아이언 스네이크의 배 속을 떠올렸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놈의 몸 안은 언뜻 보기에 그가 겨우 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위축되었는데, 역한 냄새와 함께 진한 쇳내가 풍기는 그 배 속을 살필 용기는 없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암기는 다 회수해서 암기대에 채운 하룬은 입안을 빠져나왔다.

     “허억!”

     밖으로 나온 하룬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도대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달빛에 드러난 아이언 스네이크의 몸길이는 족히 40미터는 넘어 보였고 자신이 들어 있던 대가리만 해도 그 길이가 3미터는 넘어 보였다. 몸통의 굵기는 직경 2미터가 확실히 넘었다.

     대가리에는 럼프 오크의 그것과는 달리 창처럼 날카로운 날을 가진 뿔이 세 개가 나 있었는데 그 하나가 강철검의 크기와 비슷했다.

     뿔은 검붉은 외피와는 달리 보석처럼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뿔 사이로 흐릿하지만 언뜻 어떤 흐름이 보였다. 마치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룬은 이런 녀석을 자신이 죽였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아이언 스네이크의 사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허리가 부러지고 온몸의 뼈가 박살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런 굵은 몸통으로 조이면 그 어떤 존재도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하룬은 호기심에 본 소드를 뽑아 놈의 사체를 베어 보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검에 힘을 주자 검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검을 향하는 하룬의 눈이 희열로 반짝였다.

     ‘좋아!’

     그렇게 움직이려고 해도 끄덕도 하지 않던 마나가 이제는 미세하지만 그의 의지에 반응한 것이다.

     눈을 반쯤 뜨고 아랫배 깊숙한 곳에 똬리를 튼 마나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천천히 검으로 의식을 옮기자 신기하게도 마나의 일부가 기체처럼 풀어지더니 놀라운 속도로 움직여 어깨와 팔을 통해 검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익스퍼트에 도달한 것이다. 겨우 발가락만 담근 정도에 불과하지만 의식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단계에 입문한 것이다.

     하룬은 벅찬 가슴을 누르며 검에 더 많은 마나를 주입시켰다. 아주 조금씩 검으로 주입되던 마나가 검 전체를 감쌌을 때, 눈을 뜬 하룬은 본 소드의 날이 옅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상태라면 제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벨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온몸을 통해 상쾌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타앗!”

     그의 몸이 높이 도약했다가 떨어지며 본 소드로 아이언 스네이크의 사체를 베어 갔다.

     카앙!

     “큭!”

     검과 아이언 스네이크의 외피가 부딪힌 순간 하룬은 검을 놓치며 뒤로 튕겨 나갔다. 강한 힘을 주었던 만큼 충돌의 반작용이 컸던 것이다. 비명이 나올 만큼 손아귀와 팔 그리고 어깨에 극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부르르.

     그의 몸이 떨렸다. 비록 검을 놓쳤지만 그 충격파가 그의 몸 안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비록 검술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지만 검을 쉽게 놓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팔과 손아귀의 고통이 너무 심해 포션도 마실 생각도 못한 채 극렬한 육체적 고통을 동반하는 진동을 받아 내던 하룬은 검을 잡았던 손을 바라보았다. 손은 피로 흥건했다. 검을 힘주어 잡았던 손아귀가 심하게 찢어진 것이다.

     “흐유! 정말 대단하네.”

     아직도 통증이 심하지만 인벤토리를 뒤져 외상을 치료하는 가루약을 꺼낸 하룬은 찢어진 살 부위에 뿌리고 내친김에 치료 포션까지 꺼내 마셨다.

     비록 미약한 양이긴 하지만 검으로 주입되던 마나가 중간에 흔들리며 의도하지 않았던 곳으로 퍼져 나갔다. 때문에 몸 곳곳에서 연속적인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하룬은 비록 미약한 양이지만 고삐 풀린 마나가 길도 없는 곳을 누비는 통증에 천천히 걸으면서 메신저 워킹을 펼쳤다. 마나 이상으로 인한 현상이니 마나를 축적하다 보면 이 고통이 가시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뜨겁게 달구어진 발바닥에 차가운 얼음송곳이 파고드는 듯, 시원함까지 느껴지는 마나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발을 통해 체내로 들어온 마나는 이제 완전하게 뚫린 통로를 따라 아랫배 깊숙한 곳까지 올라왔다.

     새로운 마나에 자극받았는지 똬리를 틀고 웅크려 있던 마나가 연기처럼 풀어지면서 새로운 마나와 한데 뭉쳐 이제는 익숙한 통로를 타고 돌기 시작했다. 그 마나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쑤시며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파고 들어 가려던 길 잃은 마나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황하던 마나들이 모두 제 길을 타고 움직이는 마나에 흡수되었다. 그와 더불어 상처가 난 곳도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고 있었다. 아직 눈으로 보듯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통증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아 그것은 확실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진 후 메신저 워킹을 멈춘 하룬은 거대한 아이언 스네이크의 사체 앞에 다시 섰다. 그래도 놈의 외피에는 본 소드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 미약한 마나나마 실리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거대한 놈이 아공간에는 들어가려나?’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이 필요한 쓸개만 적출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놈을 도축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마나를 주입한 검과 부딪치고도 엷은 선만 남기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방어력이 높은 놈의 몸을 베거나 도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놈의 사체를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하룬은 싸가지를 소환 대기시켰다.

     -오랜만이야, 주인. 무슨 일이야?

     녀석은 나른한 목소리로 용건을 물어 왔다. 하지만 전직한 후에는 맑고 귀여운 목소리라서 그런지 듣는 즉시 대뜸 짜증이 나던 예전과는 달랐다.

     -싸가지야, 네 해독약을 만들 재료를 구했는데 아공간에 넣기엔 너무 크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니?

     싸가지는 하룬의 말을 듣고 문제가 뭔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에고. 이런 때 보면 주인도 참 멍청하다니까. 이러니까 내가 생고생을 하지. 그냥 아공간을 오픈시키고 ‘대상물 지정 투입’을 외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기에 애초에 아공간 다루는 법에 대해 내게 물어봤어야지. 에잉, 한심해서, 원.

     하룬은 녀석의 대답에 또 뭔가가 부글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눌렀다. 자신이 필요해서 부른 것이니 화를 눌러야 했다.

     ‘제길! 외모와 능력은 몰라도 성격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고맙다. 그럼 해독약을 만들고 나서 보자.

     -오케이. 그럼 난 오염 물질 분류하던 거나 마저 하고 있을게. 빨리 해독약 만들어 나도 세상 구경 좀 하게 만들어 줘.

     -그래, 알았다.

     싸가지의 소환 대기를 해제한 하룬은 비도지존의 비수가 나타내는 신호가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물어봤어야 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일단 녀석의 사체를 처리하는 것이 더 급했다.

     “아공간 오픈!”

     눈앞에 아공간이 보이자 아이언 스네이크의 뿔을 손으로 잡았다.

     “대상물 투입!”

     주문과 함께 그 거대하던 아이언 스네이크의 사체가 아공간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그간 모은 아이템들이 쌓여 있었다.

     놈의 사체는 마치 똬리를 튼 것처럼 둘둘 말린 상태로 아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똬리를 튼 덕분에 그 엄청난 몸이 다 들어갔는데도 아공간은 절반 정도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제 퀘스트 하나를 또 끝냈구나!”

     이젠 럼프 오크의 뿔만 몇 개 더 구하면 타우스트 성에서 받은 퀘스트는 모두 끝난다.

     하룬은 그제야 한쪽에 앉아 휴식다운 휴식을 할 수 있었다.

     꼬르륵!

     레벨 업을 한 기분과 아이언 스네이크에게 신경을 쓰느라고 배고픔까지 잊었는데, 이제 여유가 나자 당장 공허한 배가 노래를 불렀다.

     하룬은 마법 배낭에서 육포와 물주머니를 꺼내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육포 맛이 꿀맛이었다. 다른 생각 없이 한동안 오로지 먹는 것에만 열중하던 하룬은 배가 차기 시작하자 눈에 들어온 바위를 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이언 스네이크에게 죽을 뻔한 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부러진 다리가 목구멍 한쪽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룬은 자신의 몸이 놈의 뱃속에서 강한 위액에 조금씩 녹아서 죽어 갔을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아스라이 정신을 잃는 것은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죽는 것이 싫은 이유는 능력치의 하락 때문이었다. 레벨이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스텟은 달랐다. 특히 심안이나 집중 같은 스텟은 그간 아주 힘들여 쌓은 것이기에 사망으로 20%나 깎이면 무척이나 허탈했을 것이다.

     “어? 비수가 아직도 소리를 내네?”

     그랬다. 비도지존의 유물인 비수는 아직도 파란빛을 내며 진동음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놈의 뱃속에 비도지존의 유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네. 그럼 이 근처 어딘가에…….’

     하룬은 자신이 있는 곳 근방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조금이라도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비수의 빛과 진동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 원인이 되는 곳을 찾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곳은 바로 그가 등을 기대었던 바위 밑이었다. 원래 자리에서 약간 이동한 바위 밑에는 땅속으로 향한 거대한 구덩이가 음산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대한 바위로 가려졌기에 하룬이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이언 스네이크들은 그가 방대한 광산지대를 돌아다니면서 본 바위들 밑에 지하로 향하는 땅굴을 파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둘어가 봐야 하나?’

     차갑고 기분 나쁜 기운이 흘러나오는 구덩이는 비스듬히 아래를 향해 뚫려 있었는데, 비록 죽이기는 했지만 아이언 스네이크에게 심하게 당한 하룬의 눈은 한참 동안 흔들렸다.

     천행으로 살아났을 뿐 아니라 놈을 죽이기까지 한 하룬이지만 다시 상대하라면 절대로 사양하고 싶었다. 놈의 외피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하고 나니 자신이 어떻게 놈을 죽일 수 있었는지조차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가자!”

     그래도 강해지는 것과 함께 이 비욘드에 접속하는 또 하나의 목표가 바로 비도지존의 흔적을 쫓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를 악물고 심호흡을 하던 하룬이 결심을 하고 몸을 굽혀 구덩이로 향했다.

     구덩이는 매우 넓고 둥글어 동굴처럼 보였다. 몸통 굵기가 2미터가 넘는 놈이니 높이도 하룬이 충분히 설 수 있는 정도였다. 수직은 아니지만 각도가 제법 되는 경사였고 뭐가 나올지 몰라 조심스럽게 기다시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의 벽은 단단한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중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발광석들도 섞여 있어 어느 곳들은 주위를 흐릿하게나마 볼 수도 있었다. 다행하게도 발광석들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굵은 광맥을 형성하고 있어 이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어느 곳에 이르러서는 통로가 급격하게 커졌다.

     마침내 두 벽면에 발광석 광맥이 굵게 박힌 공동에 도착했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지표면에서 30도에서 45도 정도의 경사각을 유지한 채 200미터 정도 들어온 것 같았다.

     거대한 몸체를 가진 아이언 스네이크의 서식지답게 무척이나 큰 공간이었다. 발광석들이 꽤 많이 박혀 있는 주변 벽들과 천장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아이언 스네이크는 이 공동을 찾아내고는 지표에서 이곳까지 긴 굴을 판 것 같았다.

     하룬은 공동 안을 조심스럽게 수색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이 움푹 들어간 지형이었다. 아마도 놈이 오랫동안 그것에서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었다.

     그 자리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다른 아이언 스네이크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가츠 노인도 모르는 놈들의 생태를 알 리가 없는 하룬이지만, 자신이 죽인 아이언 스네이크가 홀로 산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발광석이 거의 박히지 않아 어둠에 잠겨 있던 곳이었다. 눈이 어둠에 완전히 적응하자 뭔가 벽과 바닥 사이에 잔뜩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가까이 간 하룬은 무기들과 방어구들이 포함된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잔뜩 녹이 슬거나 부식되어 삭아 버린 방패며 검, 도끼, 플레이트 갑옷, 아머가 한 벽을 모두 가릴 정도로 쌓여 있었다. 그 속에는 금속대로 만든 마법 지팡이까지 섞여 있었다.

     하룬은 그것을 보고 자신이 죽인 놈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간을 잡아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놈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살아오면서 보석 광산의 유혹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기사, 마법사, 몬스터들을 잡아먹고 산 것이다.

     물건들의 대부분이 삭거나 녹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뱃속으로 먹이를 소화시키고, 소화가 되지 않는 이런 것들은 토해 내서 한곳에 쌓은 것으로 보였다.

     하룬은 놈이 토해냈을 그 물건들을 만지는 것이 소름끼치고 싫었지만, 여전히 빛을 발하며 소리를 내는 비도지존의 유물 때문에 그 더미에 손을 대었다.

     실내는 한참 동안 낡고 부식된 무기들을 위에서부터 하나씩 바닥으로 던지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허어, 참. 도대체 이놈한테 몇 명이나 잡아먹힌 거야?”

     하룬의 키 높이로 쌓인 무기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모양도 갖가지였다. 모양이나 장식이 다양한 그 무기들이 각기 다른 시대의 물건들임은 한눈에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 물건들을 치우면서 아이언 스네이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바닥까지 다 치웠지만 그가 기대하던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쓸 만한 물건 몇 개를 챙기기는 했지만 비도지존의 유물로 보이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재료값을 받을 수 있는 고철들과 수리를 하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마법 지팡이, 마법 팔찌 몇 개를 건진 게 고작인가?’

     실망한 하룬이 막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막 새로 밝은 바닥이 밑으로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바닥은 죽은 인간들이 남긴 잔해물이 쌓여 있던 곳이었다. 그 바닥을 유심히 살핀 하룬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밟고 있는 바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암석이 아니었다.

     “이건 또 다른 아이언 스네이크의 가죽이야!”

     그랬다.

     그가 밟은 것은 거대한 아이언 스네이크의 가죽인데 차곡차곡 갠 것처럼 접혀 있었다. 아직 날카로운 송곳니까지 남아 있는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뼈와 가죽만 있는 아이언 스네이크가 똬리를 튼 상태로 바닥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 새로 이 서식지를 차지한 아이언 스네이크는 그 위에 소화되지 않은 물건들을 토해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살은 썩어 없어지고, 쌓이는 물건들의 무게 때문에 이렇게 납작하게 눌린 것으로 보였다.

     하룬은 머리 부분을 들었다. 제법 무거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머리 부분은 물론 나머지 부분까지 들 수 있었다.

     힘의 증가와 함께 그가 새로 얻은 본 소드를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본 소드는 강철검보다 더 가벼웠던 것이다.

     따다닥!

     접힌 가죽이 펴지자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뼈와 가죽은 여전히 그 원형을 잃지 않고 있었다. 분명 그가 찾는 것은 그 뼈 위에 씌워진 가죽 안에 있을 것이다. 이미 제자리에서 이탈한 뼈들과 외피를 분리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넘의 꼬리를 잡고 공중으로 휘두르기로 마음먹었다.

     머리 부분은 이미 날카로운 이빨들이 우수수 가죽으로부터 떨어졌던 것이다. 꼬리를 잡고 몇 번을 휘두르자 벌려진 상태로 굳은 턱뼈를 시작으로 내부에 있던 뼈들이 몇 개의 물건과 함께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완전히 놈의 가죽만이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하룬은 튕겨나간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을 끄는 물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스스로 빛을 내는 네모난 모양의 금속판이고, 다른 하나는 짧은 검이었다.

     ‘혹시 저게 비도지존의 유물?’

     그의 손이 검을 향하다가 멈칫했다. 그렇게 얻기를 원하던 비도지존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이 있지만, 그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높이 10센티미터에 사방 30센티미터 길이의 사각형 금속판이 그것이었다.

     하룬의 짧은 재료 지식으로는 도저히 그 구성 성분을 알 수 없는 금속판에는 태양을 형상화시킨 문양과 함께, 그 둘레를 싸고 있는 또 다른 구형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더불어 그 옆에는 손바닥 형상의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잠시 그 외관을 구경하던 하룬은 묘한 이끌림에 금속판의 손바닥 형상의 음각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추어 보았다.

     찌르르.

     ‘흑!’

     금속판의 손바닥에서 하룬의 손바닥으로 벼락이 쏟아져 나와 그의 몸을 관통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저절로 눈이 감기며 무력감이 전신을 장악했다. 잠시 후 축 늘어진 하룬의 머릿속에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지혜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지혜의 파편

    등급: 미스터리

    ‘라’ 제국의 지식이 담긴 텔리온 금속판입니다. ‘라’ 제국의 황금기에 황실에서 차대 황제를 위해 만든 금속판은 파편을 가진 자의 뇌리로 직접 지식을 전달하는 아이템입니다. 이 텔리온 금속판은 모두 일곱 개로, 모은 개수만큼 수천 년의 혼란기를 끝내고 대륙을 통일한 ‘라’ 제국의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소모 마나: 100

    필요 S.P.: 200』

     -배움을 청하겠습니까?

     하룬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지만 고개를 끄덕이려고 애썼다. 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의지에 반응하는 듯 머리에 한 영상이 떠올랐다.

     인간이었다.

     혹시 비도지존인가 싶어 집중해서 응시했지만 그 얼굴은 계속 희끄무레하게 보여 알아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그 인간의 몸에서 방어구, 혹은 옷으로 보이는 것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속이 드러나고 있었다.

     ‘저건 인간의 몸 내부 모습이다!’

     하룬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놀랍게도 그 인간의 내부가 보였던 것이다. 그 내부는 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신의 뼈를 보는 동안 설명음이 들려왔다.

    《유사 인간의 뼈 수는 공히 206개인데, 연령이나 개체에 따라 뼈의 유합 상태가 다르다. 이 밖에 중이中耳에 있는 이소골(좌우 합계 여섯 개)이나 건腱, 인대 안에 생기는 종자골種子骨 등이 있다. 뼈는 형태에 따라 장골長骨, 단골短骨, 편평골, 함기골含氣骨 등으로 나뉜다.

     함기골 내부에는 공기를 함유하는 한 개 또는 많은 강腔이 있는데, 상악골이나 사골 등이 그 예다. 장골은 속이 빈 길쭉한 골간骨幹을 중심으로 그 양단은 비후와 골단骨端이 된다. 골간과 골단은 각기 독립적으로 발육하므로, 유년 시에는 양자 사이에 원판 모양의 골단 연골이 있어서 골단선骨端線울 만든다. 성장과 더불어 골각과 골단은 결합하여 골화융합한다.

     골단선은 발육 도중에 잠시 볼 수가 있다. 뼈는 대부분 처음에는 결합 조직 속에서 연골로 발생하며 이것이 나중에 골조직으로 치환되는데, 일부 뼈는 결합 조직 속에서 직접 만들어진다. 골단에서는 옆에 있는 뼈와 접하는 부분에 관절면이 있고, 그 표면에는 관절 연골로 덮여 있다.

     뼈의 표층에는 단단한 치밀질 또는 피질이라는 골질이 있고, 치밀질로부터는 내부로 방산하는 가는 골질판이 나와서 해면상 구조를 만들어 해면질을 형성한다. 해면질은 골단부에 특히 발달되었고, 해면 소주는 일정한 배열로 된 것이 특징이다.

     골 안의 강은 수강髓腔이라 하며, 해면질 안의 해면 소주로 만들어진 그물눈의 소강과 연속되었고 모두 골수가 차 있다. 활발하게 혈구 조성을 하고 있는 골수는 적색을 띠므로 적색 골수라고 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일부의 골단, 단골, 편평골의 해면질에만 있다. 유년 시에는 모든 뼛속에 있다.

     성인의 골간에는 지방이 많은 황색 골수가 있는데, 고령자일수록 그 분포가 넓다. 골질의 구조는 치밀질이나 해면질 모두 골판이 겹쳐 있는데, 치밀질에서는 몇 층이나 동심원상으로 포개진 골층판(하버스 층판)이 여러 방향으로 배열하고, 각 층판의 중심에는 하버스 관이 있어 혈액이 통하고 있다.

     하버스 층판 사이에는 여러 방향으로 지나가는 개재층판介在層板이라고 하는 골층판이 있다. 골세포는 골층판 사이에 배열되어 있다. 뼈 표면에는 강인한 결합 조직성을 가진 골막이 있고, 신경과 혈관이 분포하여 뼈를 보호하고 영양을 담당한다. 골막이 없어지면 뼈가 생존할 수 없고 신생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게 된다.》

     뼈에 대한 상세한 정보였다. 어려운 용어가 섞여 있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보였다.

     설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부위별 뼈의 영상이 나타났다. 역시 그 부위에 대한 설명이 함께했다.

     손뼈를 보는 동안에는 손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손뼈는 쌍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 27쌍 54개로 구성되어 있다. 손은 섬세하고 자유로운 운동을 해야 하는 만큼 작은 뼈들로 구성되어 있다. 쥐는 동작을 하는 동안 손목에 이어진 노뼈와 자뼈 그리고 손목뼈들과…….》

     설명은 이해가 갈 수 있도록 상세했고, 각 동작을 취할 때 협조하는 뼈들이 무엇인지, 각각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영상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렇게 뼈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그 인간의 몸에 근육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에도 근육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있었다.

    《근육은 구조가 기능 면에서 다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손, 발, 가슴, 배, 등 따위의 피부 바로 밑에 있으면서 뼈와 뼈 사이에 붙어 있는 골격근骨格筋, 심장 벽을 이루고 있는 심근心筋, 위, 방광, 자궁 등의 벽을 이루고 있는 내장근內臟筋 등이다.

     보통 살이라든가 근육이라든가 할 때는 골격근을 말한다. 골격근은 가로무늬근이라고도 하며, 수의근이다. 또 심근도 가로무늬가 있으므로 가로무늬근의 일종이지만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는 없다. 내장근은 민무늬근이라고도 하는데, 이것 역시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없다.》

     그다음은 뼈와 마찬가지로 근육이 부위별로 확대한 영상과 함께 각 근육이 하는 역할에 설명이 함께했다. 어떤 동작을 취할 때 어떤 근육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영상을 통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근육 다음은 혈액이었다. 영상에 있는 인간의 몸속으로 흐르는 혈액이 자세하게 보였다. 역시 설명도 함께였다.

    《혈액은 혈관 속을 흐르고 있는 액상의 조직으로 크게 혈구와 혈장으로 나뉜다. 혈구는 적혈구, 백혈구 및 혈소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혈장은 주로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혈액 응고 인자, 전해질 등이 포함된다.

     주된 역할은 각종 물질의 운반이며, 폐에서 섭취한 산소나 소화관에서 흡수한 영양소 등을 전신으로 보내고 세포에서 만들어진 탄산가스나 노폐물을 운반해서 폐, 신장, 피부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배설한다. 또 골격근이나 간과 같이 열 생산이 왕성한 곳에서 다른 부분으로 열을 옮겨서 체열體熱의 분포를 균등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림프와 함께 체내의 면역 체계에도 관여하고 있다.

     인간의 전체 혈액량은 약 4~6리터 정도이며, 체중의 약 8%를 차지하고 있다. 물을 마시거나 적은 양의 출혈이 있을 때도 혈관 속을 순환하는 혈액량은 자율적으로 조절되어 전체 혈액량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대량의 물을 마셨을 때 수분은 곧 혈액에서 조직으로 나가거나 신장으로부터 배설된다.》

     하룬은 영상을 통해 혈액에 대한 일반론은 물론, 각 동작을 취할 때 어느 정도의 압력과 속도로 혈액이 흐르는지, 근육과의 관계는 어떤지, 혹은 뼛속에 흐르는 미세 혈류의 변화는 어떤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다음은 마나의 차례였다.

     영상에 있는 인간의 몸속에 12개의 큰 길과 365개의 점이 나타나 깜박거렸다. 그와 동시에 설명이 시작되었다.

    《마나는 우주의 근원적 에너지이며 만물의 근본이다. 마나는 개념적인 존재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예컨대 그 발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혹은 유형화되거나 계량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몸 안에 우주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발현하려는 실험은 고대의 몇몇 문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몇 개의 문명을 거치며 수만 년에 걸친 철학적, 이학적, 물리적 연구를 통해 마나의 존재가 알려지고, ‘룬’이라고 부르는 신神언어(소리를 내는 것으로 그 목적하는 바가 발현되는 언어. 모두 365개가 있다고 알려지지만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은 ‘훔’, ‘치’ 등 몇 가지뿐이다.)를 써서 마나를 구체적인 현상으로 바꾸어 발현하는 방법이 알려져 마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후에 극고의 수련을 거친 검사들에게서도 자연적으로 마나가 축적되고 그 마나에 의지를 심어 검이나 신체 일부를 통해 발현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일단 마나를 무기에 담는 것의 위력이 알려지자 몇몇 구도자들은 마법사들처럼 인위적으로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의 힘, 혹은 신의 의지라 불리는 신성력도 사실은 마나의 일종이라는 것이 통설이며…….》

     마나에 대한 강론은 엄청나게 길었고, 그 내용 또한 방대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뼈와 근육, 혹은 혈액과는 달리 존재를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 결과물밖에는 볼 수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룬은 그 설명을 듣고 겨우 일부분만을 이해했음에도 마나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었다.

     다음은 인간의 몸을 지나는 12개의 마나 통로에 대한 설명과 365개에 이르는 마나 정류점(혈도, 혹은 경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특히 경혈 중 꼬리뼈 바로 밑과 아랫배 깊숙한 곳은 거의 붙어 있었는데 그 점의 크기가 가장 컸다.

     영상의 설명에 의하면 그 두 곳은 하나이면서도 두 개로 갈라질 수도 있으며 인간에 따라 그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곳은 ‘마나 오션’으로 개인에 따라서 액체 혹은 기체 상태로 생각되는 마나가 쌓이는 곳이었다.

     ‘마나를 순환하는 경혈의 순서가 바뀌면 마나의 성질까지 바뀐단 말이지.’

     분명히 설명은 그런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정한 경혈들을 일정한 순서로 순행한 마나는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된다고 영상은 설명하고 있었다.

     특별한 순환 주기, 즉 마나 플로를 보여 주면 좋으련만 하룬이 원하는 그런 설명은 더 이상 없었다.

     마나에 대한 모든 내용은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것에 그치고 있었다. 심지어는 마나를 어떻게 체내로 흡수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내심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있던 하룬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강론은 생각, 혹은 사고로 이어졌다.

     주로 두뇌에서 이루어지는 신경 물질의 활동 산물로 정의되는 ‘생각’에 대한 강론은 금방 명상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명상 효과에서 방법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설명을 통해 하룬은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생각에 대한 강론에서 특이한 부분은 장기 깅거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두뇌에서 관장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기억의 일부가 위나 심장, 간과 같은 장기 세포에서도 공유하는 것으로 영상의 강론은 주장하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영상 강론이 모두 끝났다.

     강론이 끝나고 눈앞에서 영상이 사라지는 순간 하룬은 심한 허탈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심한 갈증이 났다. 더 많은, 더 수준 높은, 더 깊은 지식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이 한참 동안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거의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죽음까지 각오한 처절한 노력과 수련으로 조금씩 발전해온 하룬은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결의를 새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목표가 하나 더 늘었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해지는 것과 비도지존의 흔적을 쫓는 것에 더해 고대 문명의 유물을 얻는 것이 그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은 기쁨은 육체적으로 강해지는 것에 능히 비견될 만큼 짜릿한 희열과 만족감을 주었다. 더불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얼른 생각해 봐도 뼈와 근육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연구와 수련을 하면 어떻게 동작을 취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는지 알게 해 줄 것이다.

     마나에 대한 지식은 이제 막 진입한 익스퍼트의 경지를 더욱 올려 줄 것이다. 비록 특별한 마나 플로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익힌 마나 순환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명상을 거친다면 새로운 마나 플로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이게 1단계란 말이지? 그렇다면 7단계의 지식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새로운 지식을 접한 희열과 더 깊은 지식에 대한 기대는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힘을 얻기 시작한 그때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룬은 영상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여운에 빠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들은 것으로는 겨우 개념 정도만 잡을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지식이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겨우 그 여운에서 빠져나온 하룬의 눈이 또 하나의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총길이가 약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검이었다. 단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장검으로는 너무 짧았다. 얇게 빠진 검신은 곧게 선 양날을 가지고 있었고, 가운데 부분에는 피가 빠질 수 있는 혈조가 파여 있었다.

     단검도 아니고 장검도 아닌 어중간한 길이지만 막상 잡아보니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있어 투척용 검이 확실해 보였다. 더구나 얇고 짧은 손잡이 부분까지  혈조가 이어져 있는 것을 보면 단검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었다.

     잔뜩 녹이 슬어 있는 검의 표면을 손으로 한 번 털어내자 혈조 가까이에 작게 새겨진 문양이 눈에 띄었다.

     -그대, 밤이나 낮이나 나를 지켜 줄 존재다. 나를 적대한 자, 배신한 자, 모욕한 자들은 곧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양이건만 보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예사로운 물건은 아니었다. 비도지존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정보 창!”

    『황혼의 킨드잘

    등급: 미공개

    내용: 미공개

    옵션: 미공개』

     “뭐야, 미공개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왜 등급부터 그 내용까지 아무런 정보도 뜨지 않는 것인지 하룬은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더 정보 창을 외쳐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어쩌면 그가 너무 실력이 약해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포기한 하룬이 킨드잘의 자루를 잡은 순간 안내음이 들려왔다.

     -비도지존의 네 무기 중 하나인 ‘황혼의 킨드잘’을 얻었습니다. 황혼의 킨드잘에는 비도지존이 심령으로 새긴 스킬이 영상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스킬을 익히시려면 S.P. 100점이 필요합니다. 익히시겠습니까?

     하룬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고 바라던 것이었다.

     소리 없이 영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한 인물의 상체를 나타나는 영상은 그의 몸속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금속판으로부터 인체의 신비에 대한 지식을 일부 전해 받은 하룬의 눈에 마나 오션에서부터 손끝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마나 통로가 들어왔다.

     그가 충분히 그 통로를 머릿속에 기억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마나 오션부터 시작해서 해당하는 경혈들이 확대되며 자세한 위치를 표시했다.

     마나 오션으로부터 풀려 나온 마나가 경혈들을 차례로 통과하며 움직였다.

     홀린 듯 그 경혈들의 위치를 뇌리에 새기던 하룬은 어느 순간 의아해졌다.

     ‘이상하네. 왜 최단 거리가 아니지?’

     영상에 나타난 경혈들은 가장 빠른 경로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중 가장 이상한 것은 심장 사이에 있는 경혈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손을 향하려면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혈들은 많았다.

     ‘아! 이건 마나 플로다!’

     마나는 모든 경혈을 다 통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 어떤 경혈을 어떤 순서로 통과하느냐에 따라 생성되는 마나의 성질이 달라진다고 라의 파편은 알려주었다. 이것은 비도지존이 비수를 던질 때 사용하는 특별한 성질의 마나를 생성하기 위한 마나 플로였다.

     의문을 접고 경혈을 모두 외운 하룬이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영상의 시현이 시작되었다.

     마나 오션에서 시작된 마나의 흐름이 다소 복잡한 경로를 거쳐 손끝에 이르고 영상의 인물이 손에 쥔 단검으로 흘러들어 갔다. 마나가 주입된 단검은 밝은 빛을 뿜어냈고, 어깨와 팔 그리고 손목의 각 뼈들과 근육의 힘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앞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단검은 마치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것처럼 공기를 타고 날아가 가상의 목표점에 꽂혔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다른 것은 이상할 게 없지만 단검이 날아간 궤도는 분명히 직선이 아니었다. 마치 예전에 싸가지가 조종한 것처럼 직선로가 아닌 타원 궤도를 그리며 날아간 것이다.

     영상의 인물은 다시 다른 단검을 연속해서 던졌다. 이번에는 방향마저 전혀 달랐고 각기 다른 궤도를 그렸지만 단검은 목표물에 여지없이 적중했다. 심지어는 직선으로 날아가던 단검이 목표물을 스치고 지나간 후 일정 지점에서 튕기듯 돌아 날아와 목표물에 명중했다.

    『커브 피치(패시브)

    레벨 등급: 중상급

    특별한 마나 플로를 통해 생성된 휘어지는 성질과 음파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마나를 이용, 어깨에서 손목까지의 정교한 동작으로 목표물을 다양한 궤도를 통해 소리 없이 타격할 수 있는 암기술이다. 마나를 제어하는 능력 및 던지는 동작과 힘을 정교하게 조정하는 능력에 따라 그 수준이 올라간다.

    소모 마나: 회당 150

    필요 S.P.: 100』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세라도 불렀을 것이다.

     커브 피치를 제대로 익히기만 한다면 암습에 이 스킬을 따라갈 것은 없을 것이다. 소리마저 흡수하는 암기가 상대방이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사각을 통해 날아가는 것을 상상하자 짜릿한 흥분이 밀려왔다.

     눈에 띄지 않게 땅을 타고 혹은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한순간에 급소를 파고드는 암기를 피하기란 아무리 익스퍼트 급이라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다.

     그렇다고 위력이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마나가 실렸으니 그 공격력은 단순히 뼈와 근육의 힘만으로 던진 암기에 비할 바가 아닐 것다.

     싸가지를 이용한 정령 합체 암기술이 이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회당 소모되는 마나 양이 극히 적다. 더구나 이 스킬은 정령력과 해독약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중상급 스킬답게 필요한 S.P. 수치가 높긴 하지만 몬스터들이 그득한 후크란을 오가며 쌓은 S.P.는 아직도 여유가 많았다.

     하룬은 이곳에서 사흘을 꼬박 보냈다.

     지혜의 파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금속판이 전하는 지식들과 황혼의 킨드잘을 통해 익힌 커브 피치 스킬을 수련한 것이다.

     동굴을 나가기 전 하룬은 이제까지 수련을 위해 한 벽에 그려 놓은 작은 원을 노려보았다. 마나 오션에서 흘러나온 마나는 이제는 익숙한 마나 플로를 돌아 손가락 끝에 모이고 있었다.

     그의 손이 마치 다섯 개로 늘어난 것처럼 잔상을 일으켰다.

     마치 한 번에 던진 것처럼 비수 다섯 개가 연속으로 벽에 그린 작은 원을 향해 날아갔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날아가는 비수지만 그 궤도는 다 제각각이었다.

     미약하지만 마나가 들어간 비수의 날은 시퍼렇게 빛났다.

     하룬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미 던지는 순간 비수들이 목표에 정확히 박힐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팍! 팍! 팍! 팍! 팍!

     비수들은 작은 원 안에 시차를 두고 박혔다. 단단한 암석으로 된 벽에 비수 다섯 자루가 빼곡하게 박혀 버렸다.

     스킬 창을 확인한 하룬은 커브 피치 스킬 1레벨을 마스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처 더 수련하고 싶지만 이 정도에서 멈추어야 했다. 이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고, 후크란 기사단과 머무르고 있는 대원들도 만나야 했다.

     비록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것들을 얻은 소중한 곳이지만 더 이상 여기서 머물 필요가 없었다.

     하룬은 아이언 스네이크의 서식지에 쌓여있던 물건들 중에서 쓸 만한 아이템들을 모두 챙겨 아공간에 넣었다. 거기에 비도지존의 비수와 금속판을 몸속에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아이언 스네이크의 뼈와 가죽도 챙겼다.

     “다 넣은 건가?”

     공동을 둘러본 하룬의 눈에 신기하게도 발광하는 광석 몇 개가 광맥에서 돌출되어 나온 것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사용하면 좋겠다.’

     하룬은 낡은 무기를 사용해서 돌출된 발광석 몇 덩이를 광맥에서 떼어 냈다. 그러고나니 아이언 스네이크가 머물던 공동은 쓰레기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원하던 비도지존의 단검은 물론 그 스킬을 얻고 익힌 곳이다. 더욱이 금속판을 통해 배운 지식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가야 할 때였다. 이곳은 이제 다른 아이언 스네이크가 보금자리를 틀 것이다.

     하룬이 밖에 나온 것은 아침이 밝아 오는 때였다. 저 멀리 후크란 동쪽 봉우리들 위쪽은 어느새 많이 밝아져 있었다.

     ‘한 이틀 정도 흐른 건가?’

     사실 아이언 스네이크의 동굴 안에서는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없었다. 대충 그 정도라고 생각할 뿐 정확히 얼마나 이곳에서 지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으며 나머지 시간은 라의 파편이 전하는 지식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이해하고, 커브 피치를 수련하는 데 전념을 다했다.

     전심전력을 다한 수련을 일단락했지만 하룬은 피곤하지 않았다. 엄청난 행운을 얻은 기쁨에 몸과 마음이 붕 뜬 것 같았다.

     ‘광산지대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메신저 워킹과 마나 수련이나 하자.’

     이곳이 마나가 무척이나 농밀하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한 하룬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안타까웠다.

     결국 그렇게 마음을 먹은 하룬은 서서히 어둠의 장막을 걷어 가는 미명 속으로 메신저 워킹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련도 잠시였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쉬이잇!

     췻! 췻!

     아이언 스네이크가 내는 소리였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그렇게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놈들이 무슨 일이지?’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간 하룬은 들소 정도로 몸집이 큰 사슴의 사체를 놓고 대치하고 있는 두 마리의 아이언 스네이크를 볼 수 있었다.

     서로 5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대치한 두 놈은 용수철을 감은 것처럼 똬리를 틀고 대가리만 든 채 서로에게 살기 짙은 경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자신이 운 좋게 잡은 아이언 스네이크의 몸길이가 거의 40미터에 육박한 것과는 달리 이번 녀석들은 몸길이가 5미터 정도에 불과한 작은 놈들이었다. 머리에는 이제 겨우 불룩하게 뿔 하나가 솟아 있고 꼬리에는 주먹 크기의 혹이 매달린 것으로 보아 새끼가 아닐까 싶지만, 놈들의 생태를 모르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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