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스네이크》
하룬은 더 이상 코엠 길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록 아이템 줍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는 않았다.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싸가지를 다시 소환하려면 좀 더 아이언 스네이크에게 집중해야 했다.
“이놈은 도대체 어디에 사는 거야?”
며칠 동안 방대한 광산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아이언 스네이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발견한 것은 음산한 소리를 내는 벨 스네이크 몇 마리가 고작이었다.
가츠 노인에게 듣기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다는데 벌써 며칠이 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눈에 띄는 거라고는 멀리서 보기에 좋을 뿐인 여러 색깔의 돌들을 제외하고는 나무들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산밖에는 없었다.
“도대체 언제 나타나려나?”
하룬은 한숨을 내쉬며 하룬을 올려다보았다. 두 개의 달이 이지러짐 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스네이크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분명히 뱀이었다. 하룬이 알기로 뱀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일부 약초꾼을 제외하고는 그 존재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놈이니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룬은 일단 큰 바위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곳과 달리 바위가 그늘을 만들어 중천으로 향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근처에서 유일한 곳이었다.
놈이 나타날까 봐 긴장 상태를 유지한 터라 상당히 피로해진 하룬은 빵과 육포를 대충 먹고는 바위에 등을 대고 한숨을 돌렸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비록 방대한 지역이지만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별로 없었다. 메신저 워킹 스킬이 아니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테지만 여섯 개의 낮은 산으로 이루어진 광산 지역을 며칠에 걸쳐 모두 돌아다닌 것이다.
광산 지역은 그가 등을 대고 있는 것과 비슷한 거대한 바위들을 빼고는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뱀이라면 동굴에 살든지 아니면 땅에 구멍을 파고 들어갔을 텐데 아무 데서도 그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혹시 근처에 이곳 말고 다른 철광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하룬의 주의력을 흩뜨렸다. 사실 그의 눈에 들어온 먼 산들에서도 식물이 자라지 않는 붉은 암석 지대들이 곳곳에 있었던 것이다.
쉬이익.
가만히 눈을 감던 하룬은 묘한 소리를 들었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궁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참 동안 집중한 탓에 몸과 마음이 노곤하게 풀어진 터라 눈을 뜨는 것도 귀찮았다.
그런 마음을 밀치고 그가 막 눈을 뜨려는 찰나 차가운 것이 자신의 몸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흐윽!”
하룬이 눈을 뜨는 순간 검붉고 차가운 동체를 가진 어떤 존재가 그의 몸을 빠르게 감아왔다. 자신의 허리만큼 굵은 그 존재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그의 몸을 휘감은 것이다.
“빌어먹을!”
이곳이 이놈의 서식지라는 것을 알아내고도 긴장의 끈을 놓은 자신에게 욕한 하룬은 두 손으로 몸을 감은 굵고 검붉은 뱀의 동체를 떼기 위해 힘을 썼다.
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이미 그의 몸은 아이언 스네이크의 거대하고 긴 동체에 돌돌 감겨 버린 것이다.
“우욱!”
몸이 완전히 감겼다 싶더니 어마어마한 압력이 몸 전체에 가해졌다. 순식간에 갈비뼈를 비롯한 몸 안의 뼈들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아악!
있는 대로 힘을 써서 두 손으로 놈의 동체를 떼어 내려는 하룬의 시도는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죄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몸 안의 장기며 뼈들이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머리통 역시 엄청난 압력을 받아 두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참을 수 없는 격렬한 고통에 하룬의 몸이 경련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쉬이익. 슈웃.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하룬은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흐릿하게나마 아이언 스네이크의 면상을 볼 수 있었다.
괴물이었다. 머리통이 그의 몸보다 더 거대하고 눈 하나가 자신의 머리통만 했다.
그를 바라보는 노란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는데 갈라진 붉은 혓바닥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 소름 끼치게 오싹했다. 하지만 차가운 그 느낌이 아득해져 가던 그의 의식을 깨웠고, 오싹한 살기가 그의 투기를 깨웠다.
“이노옴!”
하룬은 배 속 깊숙한 곳에서 고함을 토해 내며 온몸에 가해지는 압박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비록 달랑 두 손만 자유로운 상태였지만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급박한 위기 상황이라서 그런지 그동안 몸에 축적한 마나가 활성화되었다.
물론 그의 힘이나 축적한 마나량은 아이언 스네이크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몸 전체를 꼬아 압박을 가하는 아이언 스네이크에 대항하는 하룬의 저항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이미 두 손을 제외한 몸 전체가 놈의 거대한 동체에 감긴 상태라서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약한 육체가 손을 들고 말았다.
우드득!
갈비뼈 몇 개가 부러졌다.
빠득!
정강이 어름의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너무 과도한 힘을 쓴 탓에 눈앞이 벌겋게 변해 버렸다. 시야가 붉게 바뀌었지만 그는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생각이라는 것을 떠올리기에는 너무나 고통이 극렬했던 것이다.
다시 몇 개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룬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눈동자가 돌아가 버렸다.
잠시 후 그의 몸을 감았던 아이언 스네이크의 거대하고 긴 동체가 풀렸다.
쉬잇! 쉬잇!
하룬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피를 핥던 놈의 혀가 빨라지더니 부러진 하룬의 두 다리를 거대한 입으로 덥석 물었다. 단숨에 그의 하체가 놈의 입안에 들어가고 뒤이어 상체까지 삼켜져 버렸다.
“크윽!”
하룬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것은 부러진 다리가 놈의 몸에 닿았기 때문이다. 형용할 수 없는 극렬한 고통에 눈을 부릅뜬 하룬은 놈의 입안을 볼 수 있었다.
검붉은 색깔에 강철처럼 단단한 껍질과 달리 연분홍색을 띤 입안의 살을 보는 순간 강렬한 생존 의지가 불같이 일어났다.
생각할 시간이나 여유도 없이 본능적으로 허리에 찬 강철검을 빼려고 했지만 어깨뼈가 어떻게 되었는지 팔꿈치 위쪽이 움직여지지 않아 불가능했다.
대신 암기대에서 캣랫 비수를 꺼낸 하룬은 있는 힘을 다해 놈의 연한 입안을 찔렀다.
취이이익! 쉬이이익!
놈이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트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목구멍에 낀 부러진 다리에서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엄습했지만 하룬은 깊이 박힌 비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단단한 껍질로 보호되는 외부와 달리 입안의 살들은 너무나 연해서 비수가 쉽게 가르고 있었다.
꾸욱! 꾹!
놈이 자신을 토해 내려는 듯 목의 근육을 움직이자 부러진 다리뼈가 목구멍에서 빠져나왔다. 머리를 거대한 놈의 이빨에 부딪히는 순간 하룬은 완전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대로 토해지면 죽음뿐이야.’
놈의 약한 부위를 알았고, 공격할 기회를 잡았는데 놓칠 수는 없었다. 두 팔의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룬은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으며 암기대에서 손에 잡히는 것들을 꺼내 힘껏 놈의 입안 곳곳에 날려 보냈다.
나중에는 평소에 전혀 사용하지 않던 토시 속의 비수 세트까지 던져버렸지만 하룬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입안의 살들이 베이고 찔리는 통증에 아이언 스네이크가 몸을 뒤틀며 발광했기에 정신이 더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놈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약해지고 있었다. 언제 베어 버린 것인지 놈의 징그러운 혓바닥의 갈라진 앞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은 온통 자신과 놈의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부르르.
놈의 거대한 동체가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쿠웅!
꼬리 쪽이 땅에 떨어지는 듯 등에 닿은 살을 통해 울림이 한번 들리더니 놈의 움직임이 결국 멎었다.
‘죽은 건가?’
시간이 조금 더 흘렀지만 아이언 스네이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룬은 눈을 뜨려고 했지만 뜰 수 없었다. 숨을 쉬려고 했지만 쉴 수 없었다. 머리 전체가 차가운 물속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전신이 다 물에 잠겨 있다고 생각했다.
꿀꺽! 꿀꺽!
코와 입을 통해 대량의 핏물이 들어왔다. 차가우면서도 강한 비린내가 진동하는 물이었지만 그것의 맛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몇 번이나 코와 입을 통해 물을ㅇ 삼킨 후에야 공기를 접한 입술을 오므려 겨우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쿨럭! 쿨럭!
기침과 함께 폐 안으로 들어간 핏물을 토해 내던 하룬은 다시 다량의 액체를 마신 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길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자신의 살에 박힌 덕분에 놈의 입이 벌어져 있어 달빛이 들어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희미하게나마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놈의 입천장에 깊이 박힌 암기들이었다. 그것들을 타고 핏물이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었다.
입천장 곳곳에 박힌 비수들과 표창 그리고 단검들도 보였다. 숫자를 보니 정신없는 사이 그가 가진 것은 다 던져 버린 듯했다.
“크크크.”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언 스네이크를 비수만으로 죽인 것이다.
창졸간에 당한 터라 정령들을 소환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하룬이다. 비록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다 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싸가지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이 무서운 놈을 죽여 버린 것이다.
다른 곳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아악!”
머리를 약간 돌리려는 시도만으로 고통을 누구보다 잘 견디던 하룬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나올 정도로 몸 전체가 엉망이었다. 극렬한 고통에 부들부들 몸을 떨며 눈을 감고 그 고통을 참아 내던 하룬은 한참 후에야 눈을 떴다. 그제야 엉망으로 변한 놈의 입안과 자신의 몸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놈의 입안은 온통 피로 가득했다. 정신없는 가운데서 날린 수많은 암기들로 인해 박힌 부위는 피를 뿜어냈고, 그의 몸은 엄청난 양의 핏물에 잠겨 있었다.
특히 머리 부위는 원래 움푹 들어갔는지 아니면 비수로 파헤쳐 놓았는지 몰라도 귀가 푹 잠길 정도로 핏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생명력이 5% 이하로 하락했습니다. 속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하게 됩니다.
안내음이 들려왔다.
비록 그 내용은 살벌했지만 듣는 순간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하룬은 이를 악물었다.
“끄윽! 흑!”
하룬은 손을 움직여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깨가 부서졌는지 뼈가 서로 엇갈리는 생생한 고통만 느껴질 뿐 팔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를 기력이 없을 정도로 고통을 느낀 후에야 하룬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병뚜껑을 딸 힘도 없었다. 그는 병을 통째로 입안에 넣었다.
빠지직!
이를 악물자 유리병이 깨지며 입안에서 새로운 고통이 느껴졌지만 강인한 의지로 결국 포션을 마신 하룬의 머릿속에는 사망 카운트다운이 7까지 내려가 있었다.
치르릉! 치르릉!
아주 특별한 소리가 들렸다.
강한 예감에 힘겹게 눈을 뜬 하룬은 아이언 스네이크의 입안 한구석에 박힌 낡은 비수 한 자루를 볼 수 있었다. 그 비수는 신비하게도 푸른빛을 뿜어내는 것은 물론 이상한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비, 비도지존의 비수가?’
이를 악물었지만 하룬의 눈은 힘없이 감기고 말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