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스트 남작성》
며칠이 지나자 캠프장에 넘쳐 났던 환자들이 거의 회복했다. 마나를 아끼지 않은 홀의 치료 마법과 높은 치유 효과를 가진 티노의 민간요법이 상승작용을 한 덕분이었다.
하룬의 돌풍 용병대는 수련 캠프에서 대단한 대우를 받았다.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 이미 이전부터 주군으로 모시는 브리엘라 황녀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사실을 홀을 통해 알게 된 수련생들은 그들을 용병이 아니라 동료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비록 아직 정식 기사로 임명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위험한 후크란에서 적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수련해 온 수련 기사들 대부분은 익스퍼트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후크란 기사단이라고 불렀다. 그들 대부분은 브리엘라 황녀와 연관 있는 귀족가의 자제들이나 오랜 수련을 받은 평민들이었다.
용병을 하찮게 여기는 기사들과 다름없는 신분이었지만 돌풍 용병대만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처럼 대했다.
두 달 전에 난데없이 나타난 일단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야밤에 침입해서 유일한 수워지인 우물에 마비독을 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자신의 집에 죄인으로 갇히게 되었다.
그 사실을 들은 하룬은 다소나마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동안 실력이 아니라 싸가지를 이용해서 약으로 상대를 제압한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들을 공격한 것은 광산을 찾아 후크란 산맥으로 들어온 슐레이만 후작가의 정예 기사단인 레드이글 기사단이었다.
사반 자작을 비롯한 수련 기사들은 레드이글 기사단을 상대로 한동안 일대일 혹은 집단 전투로 자웅을 가렸고 그 와중에 상대방의 실력에 경의를 가졌다.
그때만 해도 캠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막는 정도의 대응이었다. 후크란 기사단은 굶주린 그들에게 식량이나 생필품을 제공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나중에 합류한 마법사들이 우물에 마비독을 타는 바람에포로가 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전투를 통해 쌓은 기사들 특유의 관계로 그동안 무사할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반 자작과 수뇌부 진영이 완전히 몸을 회복하자 하룬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깊은 산중이고 이곳은 비상시에 쓰려고 만든 곳이라 음식이 변변찮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시오.”
자작은 생명의 은인에게 기껏 빵과 수프 그리고 훈제한 고기를 내놓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툭하면 배를 곯는 용병입니다. 용병들은 잘 차린 음식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뼈다귀를 핥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소. 하룬 대장은 어째 용병 같지가 않소. 안 그런가?”
사반 자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하하하! 정말 그렇습니다. 언행에 기품이 있으며 반듯한 기도를 가져 가히 기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맞아. 로번 남작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했군. 그런데 아직 서로 인사는 못 했지?”
로번 남작은 마치 지탄과 판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슷한 덩치와 분위기를 가진 기사였다. 다만 지탄에 비해 외모는 좀 험상궂었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졌다.
“그냥 오가다 눈으로 감사만 표시했습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야지. 다들 기립!”
자작의 말에 여덞 명의 기사와 세 명의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룬을 정명으로 응시했다.
“발검!”
기사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뽑아 하룬을 향해 쳐들었고, 마법사들은 각자 지팡이와 완드의 뒷부분을 하룬을 향해 올려 보였다.
“구명求命!”
“보은報恩!”
자작이 구명을 선창하자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내리고는 하룬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보은이라고 복창했다.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는 기사들만의 예식이었다. 마치 기사들의 사열을 받는 것 같았다.
구구절절한 말보다 오히려 더 강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인사에 하룬은 불편한 마음에도 뿌듯함과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후크란 기사단 일동은 앞으로 돌풍 용병대와 한 형제로 지낼 것을 주군 앞에 맹세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형제를 도와야 할 것이다. 이의 있는 기사가 있으면 지금 얘기하라.”
“없습니다!”
일제히 대답하는 기사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아마 밖에서 다른 기사들과 함께 식사하는 돌풍 용병대원들도 모두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하룬은 아직도 그 자세를 유지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보면서 진한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이런 반응은 왠지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뿌듯한 것은 사실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하룬은 강철검을 빼 들어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리면서 역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돌풍 용병대 역시 후크란 기사단과 한 형제로 지낼 것을 맹세합니다. 주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주신의 가호와 주군의 은혜로움이 함께하기를!”
하룬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후크란 기사단에 상당한 호감을 가졌다.
위험으로 가득한 후크란 산중에서 오랫동안 지낸 탓에 다른 기사단처럼 예법을 따지지 않는 후크란 기사단은 격의 없는 대화와 강한 동료애를 가졌던 것이다.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와서 그런지 이런 따듯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들과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기사라는 집단이 가지는 배타성과 고압적인 태도를 이들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어서 더욱 좋았다.
“하룬 대장, 그런데 그들의 목적이 보석 광산이라고 들었다고?”
식사를 마치고 단장인 자작과 두 부단장인 기사 밀슨 남작과 마법사 홀리온 남작만 남아 차를 마실 때 세반 자작이 물었다.
“네, 자작님. 어제 낮에 침투했을 때 분명히 들었습니다.”
하룬이 확인해주었다.
“흐음, 그게 사실이었군. 우리는 믿지 않았는데.”
“후크란 산맥의 모처에 대륙 전체를 살 수 있는 거대한 보석 광산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것을 확인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죠. 더구나 이 위험한 후크란 산중에서 우리의 전력으로는 소문만 무성한 보석 광산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중년의 나이로 5서클을 마스터한 홀리오 남작의 말이었다.
“자금력이 부족한 3황자 진영이 작정을 한 거로군. 우리는 후크란에 들어온 그들의 눈에 우연히 띈 거고 말이야.”
“전형적인 기사 가문인 슐레이만 후작가를 배경으로 하는 3황자의 입장에서는 자금력이 약하니 그 소문에 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역시 기사단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홀리오 남작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 마법사들과 이상한 작자들은 누구였나?”
“마법사들은 딥퍼블 마탑 출신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포섭했는지 모르겠지만 흑마법과 백마법의 경계를 오가며 정신계 마법에 특화된 희귀한 마법사들입니다. 한동안 제국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는데 6서클 마스터까지 파견한 것을 보면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같은 마법사라 그런지 홀리오 남작은 마법사에 대해서는 줄줄 설명했지만 이상한 작자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하룬의 말에 세 명은 크게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이방인? 신탁으로 우리 세계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받은 자들이 그들이라고? 부활이 가능한 특이한 인간들이라고 하던데.”
후크란 산맥 안에서만 생활하던 그들도 그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었다. 하룬은 몇 가지 정보를 추가했다.
“맞습니다. 여행하면서 들은 정보로, 각 세력은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가진 이방인들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가능하지는 모르지만 부활이 가능한 만큼 큰 전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세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으려는 이방인들의 의도와 맞물려 급속하게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을 겁니다. 3황자 진영도 그중 한 무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광산에 대한 정보 역시 그들이 제공한 것으로 보이고요.”
“그렇군. 복장도 제각각이고 실력도 상이해서 우린 자유 기사의 길을 걷는 자들로 생각했네. 이미 두 달 전에 3황자 진영의 기사단이 이 후크란에 진입한 것을 보면 다른 진영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다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늦었군. 우리도 빠른 시간 내에 주군과 합류해야겠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다급한 표정이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홀 양에게 받은 주군의 전언은 실력을 더 키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묵묵히 대화를 듣던 밀슨 남작의 말에 세반 자작과 홀리오 남작의 얼굴에 답답함이 어렸다. 하지만 기사의 제 1 의무는 주군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이다.
“좋아. 주군께서 뭔가 생각하는 것이 있으시겠지. 비록 마음은 급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 우리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마법과 독에 대한 취약점이 드러났으니 그 부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마법사들과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하룬은 한참 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름 파악한 정보들을 말해 주었다. 벨이 파악한 골든 배틀에 대한 정보는 그 가치가 작지 않아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한참이 지난 후 막사에서 나오니 연무장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백여 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기사들은 돌풍 용병대와 함께 근처의 몬스터를 소탕하러 나간 것이다.
지형적인 이점을 지닌 본부에 비해 이곳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을 끼고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래쪽에 큰 초지까지 있었기에 몬스터들이 꽤 많았다.
또한 이 대규모 인원이 먹을 식량까지 확보해야 했기에 겸사겸사 조를 나누어 근처를 쓸어버리는 실정이었다.
“하룬 대장님!”
근처라도 한 바퀴 돌려고 마음먹었을 때 하룬은 홀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환자들이 분산 수용된 임시 대형 천막에서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걸음걸이도 약간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또 치료 마법을 과다하게 사용한 것 같았다.
“홀, 너무 무리하지 마요.”
그간 함께하면서 홀을 대하는 하룬의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괜찮아요, 저는. 홀리오 남작을 비롯한 마법사들이나 마나 봉쇄를 오래 당한 데다 고초까지 겪어서 아직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지만 며칠 안에 다들 회볼할 거니까 그때까지만 고생하면 돼요.”
영양가 높은 식사와 휴식으로 급속하게 몸 상태가 좋아지는 기사들과 달리 회복 속도가 느린 마법사들 때문에 홀이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그녀의 얼굴이 그야말로 주먹만 해져 버렸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측은한 눈길을 보내는 하룬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홀이 얼굴을 붉혔다.
“참, 아직 보수도 드리지 못했네요.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
그녀는 미안해하는 얼굴로 황급히 자신의 품을 뒤졌다.
현금 200골드를 내미는 그녀는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너무 약소해서 죄송해요. 아버님도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돈 되는 것을 하나도 챙기지 못한 터라…….”
하룬은 그녀가 내미는 돈주머니를 흔쾌히 받아 확인도 하지 않고 품 안에 넣었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고생을 하긴 했지만 대신 우리는 든든한 기사들과 형제가 되었으니 생각 이상의 보상을 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언젠가 이 은혜를 갚을 날이 반드시 있을 거예요. 감사해요.”
기사들을 대할 때는 차가우면서도 오연한 기세를 드러내던 홀은 하룬 앞에서는 천생 여자처럼 행동했다. 하룬도 이런 홀이 평소의 무표정하거나 차가운 모습보다는 훨씬 대하기 편했다.
그녀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렸지만 아직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그 속내를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나름대로 그녀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는 않았다.
“이 근처를 돌아보려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좋아요. 아, 근데 환자들이…… 며칠 동안은 안 되겠어요. 나중에…… 나중에 꼭 같이 가요.”
처음에는 반색하며 환하게 웃던 그녀는 이내 환자들을 떠올리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중을 기약하는 그녀의 눈에 진한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그래요. 그럼 저는 이만…….”
“네, 일찍 돌아오세요.”
그녀의 말에서 왠지 촉촉하고 따듯한 감정이 전해지자 하룬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룬은 수련을 하다 말고 물 밖으로 나와 햇볕이 따스한 바위위에 누웠다.
“답답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구름 몇 조각이 흘러가는 것을 보던 그의 입에서 무심코 터져 나온 소리였다.
대원들은 거센 계곡 물살 속에 몸을 담그고 수련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턱까지 차는 거센 계곡물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어 채 몇 분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던 대원들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그 속에서 검술을 수련할 정도로 적응했다.
거센 물살을 헤치고 검술을 수련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가 있었다. 검로는 정교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강한 힘이 검에 실렸다.
오후에는 후크란 기사들과 함께 근처의 몬스터를 상대로 실전을 가지는데 그 효과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연히 시작한 계곡 수련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대원들이 그 효과를 실감한지라 아주 열성적으로 임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네.’
하룬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익힌 검술은 실전을 통해 완성되는 센스 소드라 계곡 수련은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암기술을 수련했지만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마음이 답답해진 것이다.
하룬은 대원들이 수련하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다가 문득 그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궁금했다.
‘어디 얼마나 진전이 있는지 상태나 확인할까?’
하룬은 오랜만에 상태 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 하룬
종족: 인간
직업: 검사
레벨: 44
칭호: 용병대장(외 6개)
생명력: 1,580
마나: 1,715
정령력: 740
힘: 58(+15) 체력: 51
지식: 33 지혜: 52
행운: 42 민첩: 50(+12)
지구력: 21 심안: 17
집중: 25 S.P.: 266
명성: 1,780 통솔력: 565
화염 저항력: +10%
마법 저항력: +10%
남은 보너스 스텟: 14』
그가 겪은 많은 전투와 6서클 마법사를 잡았음에도 레벨이 지난번보다 7밖에 오르지 않았다. 사실 대원들의 실전을 위해 그는 주로 암기로 지원하는 데 그친 탓이 컸다.
생각보다 상승폭은 작았지만 원래부터 게임을 하게 된 목표가 다른 터라 레벨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메신저 워킹 스킬로 마나가 스텟 증가분보다 더 많아졌고, 스텟들이 골고루 2 내지 3씩 상승한 것은 기분이 좋았다.
모든 면에서 골고루 올라간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비록 레벨은 낮지만 스텟치가 나타내는 실력만큼은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은 싸가지를 소환할 수 없게 되었고 앞으로는 메신저 워킹에 더 매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너스 스텟은 모두 민첩에 몰아주었다. 그의 레벨에서 한 스텟이 64까지 올랐으면 거의 올인한 경우와 비슷했다.
하룬은 자신의 상태 창보다는 대원들의 상태 창이 더 궁금했다. 그래서 용병대 상태 창을 열었다.
『이름: 돌풍 용병대
등급: C급 소형
특화 분야: 요인 호위, 몬스터 사냥
구성원: 필립, 지탄, 시린느, 라트리나, 티노
명성: 200』
예전에 확인했을 때와 달리 변화가 있었다. 일단 등급이 D에서 C로 올라갔다. 그리고 특화 분야가 두 가지 항목이나 기재되었다. 명성 역시 퀘스트를 성공한 영향으로 100 증가했다.
용병 길드를 통한 의뢰가 아니었음에도 정보가 변한 것이 좀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바로 대원들의 상태 창을 차례로 눌렀다.
『이름: 필립
종족: 인간 NPC
직업: 검사
레벨: 52
칭호: 4급 용병
생명력: 1,530 마나: 1,170
힘: 51 체력: 54
지식: 26 지혜: 30
행운: 6 민첩: 28
집중: 8
[스킬]
스매싱 블로: 초급 Lv.5(100%)/Lv.5
멀티 블로: 중급 Lv.3(16.30%)/Lv.5』
‘오, 좋아! 진짜 많이 발전했네.’
이번 여행과 최근의 수련을 통해서 무려 레벨이 12나 오른 필립이었다. 무엇보다도 힘과 체력 그리고 민첩성이 크게 늘어난 필립은 중급인 스킬 레벨도 이미 3단계에 진입했다.
『이름: 지탄
종족: 인간 NPC
직업: 검사
레벨: 46
칭호: 5급 용병(승급 대상)
생명력: 1,740 마나: 810
힘: 70 체력: 70
지식: 5 지혜: 8
행운: 6 민첩: 12
[스킬]
실드 어택: 초급 Lv.3(92.14%)/Lv.5
실드 크로싱: 초급 Lv.3(45.20%)/Lv.5』
지탄의 발전도 눈부셨다. 레벨이 무려 14단계나 상승했을 뿐 아니라 힘과 체력 면에서 가히 발군의 수치를 보여 주었다. 또한 스킬 두 개도 그동안의 실전과 수련으로 모두 3단계로 올랐다.
승급 대상이 칭호란에 뜬 것을 보면 길드에 가서 등록만 하면 승급된다는 소리 같았다.
『이름: 라트리나
종족: 인간 NPC
직업: 검사
레벨: 40
칭호: 5급 용병(승급 대상)
생명력: 1,200 마나: 900
힘: 40 체력: 40
지식: 16 지혜: 20
행운: 8 민첩: 36
집중: 2
[스킬]
스위프트: 초급 Lv.3(27.40%)/Lv.5
도발: 초급Lv.4(23.30%)/Lv.5』
레벨이 12가 오른 라트리나 역시 지탄처럼 승급 대상이었다. 힘과 체력이 많이 좋아졌으며 무엇보다도 민첩성이 크게 올라갔다.
이전에는 없던 집중 스텟이 생성된 걸 보면 수련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의욕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익힌 검술인 스위프트가 민첩성과 집중에 크게 관계가 있어 향후 대단한 발전이 기대되었다.
『이름: 시린느
종족: 인간 NPC
직업: 검사
레벨: 30
칭호: 5급 용병
생명력: 1,190 마나: 1,010
힘: 30 체력: 38
지식: 18 지혜: 26
행운: 8 민첩: 19
집중(교태가 잘못 나온 둡..): 6
[스킬]
가사: 초급 Lv.3(24.00%)/Lv.5
도축: 중급 Lv.2(12.30%)/Lv.5
독침 쏘기: 초급 Lv.1(88.50%)/Lv.5』
‘이 정도면 괜찮은데.’
시린느도 놀지만은 않았다. 전사의 전당에서 스킬을 전수받은 동료들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무진 애를 써 왔던 그녀의 모습을 하룬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모든 스텟이 고루 향상되어 레벨이 7단계나 올랐고, 특히 독침 쏘기라는 새로운 스킬까지 만든 그녀였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보다는 미운 부분이 줄어들었다.
『이름: 티노
종족: 인간 NPC
직업: 검사
레벨: 57
칭호: 3급 용병
생명력: 1,550 마나: 1,400
힘: 38 체력: 52
지식: 40 지혜: 42
행운: 10 민첩: 42
집중: 12 심안: 4
관찰: 13 예지: 11
[스킬]
지형 정찰: 중급 Lv.5(14.80%)/Lv.5
응급 치료: 고급 Lv.2(10.30%)/Lv.5
약초 채취: 중급 Lv.3(21.20%)/Lv.5
치료약 조제: 중급 Lv.2(40.13%)/Lv.5
메신저 무빙: 중급 Lv.1(20.50%)/Lv.5
지도 제작: 중급 Lv.3(92.50%)/Lv.5
디펜드 소드: 초급 Lv.3(24.60%)/Lv.5
독침 쏘기: 초급 Lv.2(50.00%)/Lv.5』
티노 역시 레벨이 많이 올랐다.
하긴 그가 새로 익힌 독침 쏘기와 3단계에 이른 검술로 다른 대원들 못지않게 몬스터를 잡았으니 당연했다.
티노를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했다. 수많은 스킬을 가진 다재다능한 티노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돌풍 용병대와 그에게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대원들의 상태 창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 곁에서 티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아, 티노! 어서 와요. 햇볕이 좋아 즐기는 중입니다.”
한동안 물속에서 수련에 매진했던 티노는 물에 흠뻑 젖어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도 하룬의 옆에 자리를 잡고 상의를 벗어 몸을 말렸다.
“수련은 어때요?”
“좋습니다. 이렇게 수련에 몰두하는 것도 아주 오랜만입니다. 덕분에 그동안 미진했던 검술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티노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우리가 쓸 물품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음식이야 후크란 기사단과 같이 마련한다고 하지만 다른 보급품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차마 같이 쓰자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내일 산을 내려갈 생각입니다.”
하룬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흐음. 그것도 괜찮겠군요.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티노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얼굴이었다. 아마 한창 재미를 붙여 가는 검술 수련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시린느까지 수련의 효과를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니요, 나 혼자 갑니다. 대원들은 여기서 한동안 수련하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그 말에 티노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장 혼자서 말입니까?”
“네, 모처럼 실력 향상의 기회를 잡았는데 여기서 중단하면 안 되지요.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더 수련해야 합니다.”
“그럼 대장님은?”
“제 검술을 알잖습니까.”
티노는 그의 말에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그도 하룬의 센스 소드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쟤들 해독약도 다 떨어졌으니 약재도 구입해야 합니다.”
재수 4인방이 마법 치료나 신성 치료도 듣지 않는 묘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치료할 유일한 사람이 하룬이라는 것은 티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타우스트 남작성까지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여차하면 도망치면 되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데브론에게 비전 스킬을 배웠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티노였다. 그가 익힌 패스트 무빙 스킬보다 훨씬 뛰어난 스킬을 익힌 하룬이 자신보다 더 가볍고 빠른 몸놀림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얼마나 예정하는 겁니까?”
“개인적인 볼일도 좀 봐야 하니 오가는 것을 합하면 넉넉잡아 한 달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날도 많이 차가워져 계곡 수련도 불가능해지니 적당한 것 같습니다.”
티노는 쉽게 수긍했다. 다만 혼자 먼 길을 다녀오는 것이 걱정되긴 했지만 하룬이라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평생 용병으로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강자들을 만난 티노도 하룬의 진짜 실력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암기술은 신기에 가까우며 검술도 상당한 수준이다. 거기다 놀라운 정령 마법까지 펼치는 하룬의 신비는 그로서는 감히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잘 다녀오세요. 여긴 걱정 말고요.”
하룬을 가장 마지막까지 따라온 것은 돌풍 용병대원들이 아니라 홀이었다.
무표정하거나 차가웠던 전과 달리 캠프에 도착하고 나서는 다소곳하게 변한 태도가 영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그럼 대원들을 부탁합니다.”
하룬은 홀에게 선물로 받은 마법 배낭 두 개를 양어깨에 맸다. 수백 장이 넘는 가죽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시린느가 신경 써서 도축하고 관리한 가죽들은 상태가 아주 좋아서 좋은 가격을 받을 걸로 예상했다.
막 돌아서려는 찰나 홀의 조그만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도 선물 같은 거 받고 싶어요.”
돌아보니 홀은 말하고도 쑥스러운 듯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아, 알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홀의 부탁에 하룬은 어색하기도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공연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자신을 생각하고 기다린다. 가슴이 따듯해지고 달콤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대원들 사이에 서 있던 티노가 묘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괜히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룬은 강하게 바닥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 이미 그런 감정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가 향하는 길은 수련 캠프가 있는 산을 통과해야만 하는 험한 산길이었다.
하룬은 감각을 최대한 끌어 올려 주변을 살피며 메신저 워킹을 펼쳤다. 워낙 위험한 지역이라 조심해야만 했다. 더구나 근처는 아직도 그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레드이글 기사단들이 정찰하고 있었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편하네.’
사실 대원들과 같이 다닐 때는 몬스터를 발견하고도 미처 피하거나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많았지만 혼자서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가 익힌 메신저 워킹 스킬은 소리를 내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더구나 이제는 3단계까지 익힌 상황이라 마치 새처럼 높은 바위 사이를 뛰어넘는 것도 가능했다.
가는 길에 처음 만난 것은 레드이글 기사단이었다. 그들은 한 조가 되어 산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벌써 탈출한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수색 범위를 넓혀 갔다.
‘방향이 완전 다르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그들은 심한 경사를 가진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2캠프 방향은 아예 수색 대상에도 넣지 않고 있었다.
하룬은 은밀하게 움직여 그들의 수색망을 차례로 통과했다.
산속에서 기동하는 것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 기사들의 수색은 허술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를 뚫고 후크란 주봉을 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산맥에서 가장 험준한 봉우리에 오르니 끝없이 펼쳐진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끝도 없이 이어진 험준한 산들은 남쪽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고 그 주위를 센 강이 휘감아 돌았다.
강줄기가 보이지 않는 북쪽은 긴 능선을 형성했는데 그 끝은 광대한 평야 지대였다. 그곳이 바로 제국의 5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요른 평야였다. 진수가 친구들과 플레이하는 요른 백작령이 있는 곳이다.
후크란 산맥의 외곽에 속하는 몇 개의 작은 산을 넘으면 북동쪽의 작은 분지에 위치한 타우스트 남작성도 볼 수 있었다.
“흐음, 과연.”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공룡의 척추처럼 솟아오른 능선 곳곳에는 와이번들이 보였다. 홀이 걱정하던 와이번의 대규모 서식지가 바로 그 능선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하룬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능선이 아니라 경사가 가파른 산의 중턱을 타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역시.”
생각대로 경사는 무척 가파르지만 바위들 사이로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하룬은 나무들을 타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수련 캠프에서의 경험이 그 생각에 현실성을 부여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급한 경사와 나무 사이를 건너가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포기했겠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하룬은 거대한 바위들과 나무들이 드문드문 이어진 가파른 절벽을 타고 산을 내려갔다. 쉽게 부서지는 돌들 때문에 몇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가볍고 빠른 몸놀림으로 나무뿌리나 가지 혹은 돌부리를 잡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드디어 산 중턱 어름까지 내려온 하룬은 수백 미터는 족히 될 법한 수직 절벽이 이어진 아래쪽을 살펴보며, 이동할 적당한 위치를 찾았다.
산 중턱은 가파른 위쪽보다는 한결 경사가 완만해졌을 뿐 아니라 키 큰 나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랐다.
“타앗.”
낮은 기합과 함께 하룬의 몸이 무성한 잎이 매달린 나뭇가지로 뛰어올랐다.
휘청!
‘휴우. 떨어질 뻔했다.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겠어.’
두 팔을 휘둘러 중심을 잡은 하룬은 조심스럽게 나뭇가지 위를 걸어 적당한 거리에 있는 바위나 나뭇가지를 찾았다.
“타앗! 헉!”
도약하려던 하룬은 급하게 중심을 잡으려고 두 팔을 크게 휘둘렀다. 발이 닿은 나뭇가지가 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크게 휘자 중심을 잃은 것이다.
“하나, 둘, 셋!”
몇 번 나뭇가지를 밝고 도약하던 하룬은 마침내 요령을 깨칠 수 있었다. 그것은 나뭇가지의 탄력과 반동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높은 곳에서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밝고 있다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떨어질 것과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메신저 워킹 스킬을 익힌 그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호옷! 우웃!”
몇 번 나뭇가지를 밟고 이웃한 나무 사이를 이동하면서 하룬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 나온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이제 확실히 요령을 깨달은 그의 몸은 마치 새처럼 나무와 나무, 나무와 바위들을 날아 빠르게 움직였다.
비록 가파른 경사였지만 새처럼 날아서 움직이는 하룬은 2시간도 지나지 않아 타우스트로 향하는 산기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 좋은 걸 배웠네. 메신저 워킹 스킬은 정말 쓸 만하단 말이야.”
도약하는 것이 익숙해지자 2단계인 점핑이 아니라 3단계인 플라잉 워킹을 사용할 수 있었다. 대지의 마나와는 다른 나무의 마나를 흡수하고 그 일부를 이용해서 빠르게 달리는 기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것이었다.
“이젠 플라이 워킹이다.
스킬 창을 열어 메신저 워킹 스킬을 확인한 하룬은 이제 경험치가 65%에 달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릴 준비를 했다. 초원의 제왕이라는 레오파드나 샤벨 타이거만 아니라면 포식자들 중에 그가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을 존재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왜 메신저 기사단이 황실 최강의 비밀 기사단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소수로 제국 전체의 귀족들과 황제를 연결하는 비밀 존재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다!”
파파밧!
몸이 앞을 향해 심하게 기울었지만 마치 화살처럼 관목 숲을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굉장한 공기의 압력에 긴 머리카락이 날리고 얼굴 근육이 뒤로 심하게 쏠렸지만 기분만은 상쾌하고 짜릿했다.
‘이런 속도라면 늦은 오후에는 타우스트 남작성에 도착할 수 있겠어.’
레인저 훈련을 받은 후크란 기사단의 고참 기사들이 캠프에서 타우스트 남작성까지 가는 데 꼬박 사흘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속도는 실로 무서웠지만 하룬은 그 사실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