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수련 캠프 (37/278)
  • 《수련 캠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동행하는 내내 터져 나오는 비류의 감탄 어린 질문에 세류는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기대한 것 이상의 놀라운 전투력을 보여주는 대원들도 그렇지만 위험한 순간이면 반드시 몬스터의 급소에 꽂히는 하룬의 비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돌산을 벗어나자 산기슭과 센 강 사이의 무성한 초원 지대가 나타났다. 그곳은 무수한 초식동물들과 육식동물 그리고 몬스터들의 천국이었다.

     초원의 몬스터는 돌풍 용병대에게는 그야말로 수련 상대에 불과했다. 이젠 전투 양상도 바뀌어 파티가 아니라 개별적인 전투로 몬스터를 상대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손에 죽은 고블린과 오크들의 숫자는 백이 넘어갔다.

     ‘이곳 몬스터들은 보통이 아니야. 돌풍 용병대원들이 강해서 그렇지 내가 상대했던 놈들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야.’

     강변의 몬스터들은 그녀들이 사냥터나 다른 곳에서 경험했던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체구도 체구지만 힘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몬스터들을 돌풍 용병대원들은 아주 손쉽게 상대했다.

     일행의 뒤를 따라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눈을 떼지 못하던 세류 자매의 시선이 가장 많이 향한 것은 하룬의 비수였다.

     “마치 비수가 살아 있는 것 같아.”

     “응,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볼 거라고는 맑고 깊은 눈밖에 없는 용병이었는데 그의 암기술은 정말 신기에 가까웠다. 지휘뿐 아니라 그는 전투 상황을 읽는 눈도 있어, 그가 짠 전략은 곧바로 무서운 효과를 발휘했다.

     대원들의 능력도 아주 궁합이 잘 맞았다.

     티노라는 중늙은이는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을 가졌는데 기가 막히게 척후를 잘 맡아 일행의 앞길을 열었다.

     냄새를 맡거나 땅의 울림으로 아직 모습도 보이지 않는 몬스터들의 존재를 찾아낼 정도였다.

     길드를 이끄는 그녀들 역시 척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적을 저찰해서 미리 준비하는 것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그 차이가 엄청났다. 그런 면에서 티노의 능력은 정말 탐이 날 정도로 뛰어났다.

     제법 잘생긴 외모와 잘 정제된 기도를 가진 필립이라는 대원은 빠른 몸놀림은 물론 마치 꼬챙이처럼 생긴 이상한 검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썼다.

     오우거를 연상하게 만드는 거대한 몸집의 지탄이라는 사내는 방패를 자유자재로 쓰며 탱커 역할은 물론 개별 전투에서도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했다.

     특히 인상 깊은 대원은 라트리나라는 여자였는데, 평소에는 필립처럼 주로 찌르기 위주로 탱커인 지탄의 후미에서 데미지 딜러 역할을 하다가도 난전이 벌어지면 마치 미친년처럼 날뛰는데 그 기세나 전투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자신들과 비교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시린느라는 대원은 가볍고 민첩한 몸놀림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주로 독침을 사용하여 측면에서 지원하는데, 일단 전투가 종료되면 놀라운 솜씨로 몬스터들이나 맹수의 사체를 도축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단검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몇 분 안에 사체는 붉은 속살을 드러낼 정도였다. 마치 원래부터 따로 만들어진 가죽을 입고 있던 것을 벗겨 내는 것 같았다.

     그들 말고도 한 명의 여자가 더 있었지만 그녀의 정체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눈치로 보건대 호위 대상으로 생각되는 여자는 대단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인 듯했지만 그녀가 마법을 쓸 일은 아예 없었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원들의 뒤를 편안한 걸음으로 따랐다.

     돌풍 용병대라는 이름을 가진 용병들은 오직 다섯 명만으로도 하룬의 지시대로 합공하거나 개별 전투를 하면서, 그녀들을 따르는 삼백 명이 넘는 유저들이 그렇게 상대하기 힘들었던 몬스터들을 효율적으로 해치우면서 빠르게 전진했다. 

     ‘대원들의 실전 감각을 높여 주려고 일부러 자신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있어.’

     세류는 자꾸 하룬에게 눈길을 보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을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나 눈빛으로 보아 용병대장인 하룬은 이십 대 중반인 듯했다.

     강렬한 눈을 제외하고는 특별하게 눈에 띄는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의를 집중한 세류는 큰 키와 마른 체구에 강인한 인상을 주는 하룬에게 아주 특별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랄까, 신념으 가진 남자가 풍겨 내는 향기랄까.’

     D구역의 평범한 유니온 주민으로 태어나 놀라운 상술과 노력 그리고 강인한 의지력으로 사업을 일으켜 결국 S구역에 입성했을 뿐 아니라 원로원 내의 하의 의원이 된 그녀의 아버지와 비슷한 향기를 풍기는 인물이었다.

     왜 한낱 용병, 그것도 NPC가 분명한 인물에게 이렇게 관심이 가는지 그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라면 믿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돈에도 무심한 것 같고, 여자에게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이니 어떻게 하지?’

     그와 대원들이라면 지도에 표시된 광산을 찾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아직 오우거나 트롤 같은 상위 몬스터는 보지 못했지만 이들이라면 그런 무서운 몬스터들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것 같았다.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저런 인물은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극도로 정체된 코원 유니온에서 입지전적인 신분 상승을 이뤄 낸 아버지는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능력 있는 사람을 가슴에 품는 것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업인 식품 유통을 맡아 3년이나 경영 수업을 쌓았던 그녀는 그것이 사업가의 최고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척이나 길었던 하루가 거의 지나갔다. 럼프 오크의 던전이 있는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눈에 노을에 붉게 물든 센 강이 보였다.

     어느새 벗겨 낸 가죽이 사람 키를 넘을 정도로 쌓였다.

     “의뢰를 끝내면 당장 가죽부터 처리해야겠네요.”

     하룬은 이미 세 덩이로 늘어난 가죽 덩어리를 보았다. 계속된 수련과 이동 때문에 제대로 말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시린느가 최선을 다해 관리해왔다.

     “확실치는 않아도 목적지가 여기에서 북쪽이니 저기 멀리 보이는 후크란 주봉 근처일 겁니다. 주봉을 넘어 동북쪽으로 이동하면 약초 시장으로 유명한 타우스트 남작성이니 의뢰를 끝내고 그곳에 들러 처분하면 될 겁니다.”

     “대원들, 특히 시린느가 좋아하겠네요.”

     하룬과 티노의 대화를 듣던 세류의 눈이 반짝거렸다.

     타우스트 남작성이라면 자신들이 가진 귀환 스크롤의 대상지였다. 그곳은 그들 길드의 전초기지로, 이미 사망한 패밀리들이 부활해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목적지가 어디이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경유지를 알았으니 굳이 따라가며 고생할 이유가 없지.’

     세류는 더 이상 그들과 동행할 마땅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눈치를 보던 상황이라 오히려 그 정보가 고마웠다.

     “저기, 하룬 대장님!”

     “무슨 일이오?”

     그녀의 부름에 하룬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흔하고 천박한 용병 나부랭이로만 여겼던 하룬이었지만 단 하루 만에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칫! 조금 다정하게 대해 주면 좋을 텐데.’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급속하게 호감을 가지게 된 세류는 똑바로 자신을 응시하는 하룬의 맑고 깊은 눈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우리가 건넌 강변이 보이네요. 이제 가려고요. 그동안 돌봐 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은은한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감사함을 잘 표현하는 우아한 인사여서 하룬은 일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

     마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여자처럼 성숙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서는 그가 평소 생각해 왔던 노블의 이미지가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여렸을 때는 여자 노블들은 똥도 싸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현실에서는 굉장한 대우를 받고 권위를 가진 존재들이 노블이다.

     “다행히 늦기 전에 강에 도착했군요.”

     “네, 덕분에 안전하게 왔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세류는 일일이 눈을 맞추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봅시다.”

     세류는 그녀들과 헤어지는 것이 시원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하룬의 말이 왠지 섭섭했지만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몰랐다.

     “부디 건강하세요. 다음에 만나면 저희 부탁을 한 번만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별일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요.”

     하룬의 무심한 말에 세류는 기쁜 듯 활짝 웃었다.

     “약속한 것 꼭 기억하세요. 그럼.”

     영문을 모르는 비류는 그 큰 눈만 끔벅거리며 언니 세류의 손에 잡혀 강 쪽으로 갔다.

     “우리도 갑시다!”

     하룬은 가죽을 쌓은 덩어리 하나를 어깨에 오리고는 산 쪽으로 향했다. 필립과 지탄도 각자 한 덩어리씩을 지고 하룬의 뒤를 따랐고, 시린느가 짐을 대충 들어 땅에 끌리는 것을 보고는 지탄에게 잔소리를 하며 따라갔다.

     뒤에 남은 라트리나가 그 뒤를 따르려는데 세류 자매의 뒷모습을 보던 티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어, 그거참 묘한 눈길이네.”

     티노의 얼굴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티노 오빠!”

     오빠라고 했다가 아저씨라고 했다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는 라트리나는 티노의 말이 이상했나 보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윽한 정이 담긴 눈길이었단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그런 게 있어.”

     티노는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하고는 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원한 대답으 못 들은 라트리나의 눈초리가 위로 올라갔지만 티노의 완고해 보이는 뒷모습은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큼 앞장섰지만 뭔가 남겨 둔 듯한 기분에 뒤쪽에 신경을 쓰던 하룬의 귀에 티노의 말이 들렸다.

     ‘설마!’

     하룬 역시 강한 호감과 묘한 감정을 한데 담은 세류의 눈길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우고는 힘차게 발을 옮겼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런 하룬을 맨 뒤에서 바라보는 홀의 눈에 한동안 묘한 빛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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