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내가 뭘 잡은 거야? (34/278)

《내가 뭘 잡은 거야?》

 “대장, 이놈들 너무 강해.”

 필립이 지친 상태로 힘없이 말했다. 그의 눈은 방금 하룬이 숨통을 끊은 럼프 오크를 질린 듯 바라보았다. 끝없이 퍼부은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니 몸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질렸다.

 “일단 포션으로 기운을 차리자. 이 상태에서 추가로 더 들어오는 놈들이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 말에 필립이 한쪽 바위틈에 숨겨 놓은 배낭에서 포션을 꺼내 지탄과 라트리나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광기에 젖어 날뛰었던 라트리나는 포션을 받는 손이 벌벌 떨렸다.

 하룬은 쓰러진 놈들의 머리통에서 뿔들을 잘라 품속에 넣고는 입구 쪽으로 향했다.

 마침 정찰을 위해 밖으로 나갔던 티노가 조심스럽게 들어오고 있었다.

 “어때요?”

 “다행히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다. 이곳까지 세 번이나 구부러진 통로 때문에 이곳의 정황을 미처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티노의 말에 하룬은 적잖이 안심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다들 지친 상황이었는데. 그래, 정찰한 결과는요?”

 “제가 정찰한 것이 맞는다면 이 던전은 흙을 파내서 만든 원형의 공동입니다. 언뜻 본 거지만 중앙의 커다란 광장을 중심으로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 구역은 마치 미로처럼 연결되는 통로를 달팽이관처럼 돌아가면서 흙을 파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오크들과 달리 암컷이 풍부한지 가족 구조를 이룬 럼프 오크들이 두꺼운 흙벽으로 분리된 통로마다 몇 가구씩 거주하고 있고, 통로들 사이에는 좁은 길이 나 있어 중심으로 통하게 해 놓았습니다.”

 티노의 말을 듣자 어린 시절 해 보았던 미로 찾기가 생각이 났다. 이곳의 구조가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굉장한 놈들이군요.”

 정말 지능이 뛰어난 녀석들이었다. 오크들이 건축을 한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원시인들처럼 자연 그대로 생성된 지형을 이용하는 것이 고작인 녀석들로 인지하고 있던 일행은 그만큼 놀라움이 컸다.

 “저도 이런 식으로 건축된 오크 거주지는 처음 봅니다. 마치 인간들과 비슷하게 거주지를 만들고, 시커멓게 그을린 화덕 같은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불을 사용할 뿐 아니라 지능이 무척 높은 놈들인 것 같습니다.”

 티노는 자신이 보고 관찰한 것으로 추측한 사실에 얼마간은 질린 것 같았다.

 물론 오크들 중에 일부는 인간들에게 교화되어 상당한 수준의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종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평야 지대에 서식하는 오크들이었고, 그 외형도 오크들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크들은 인간보다 무척 힘이 세고 흉포한 성정을 가졌지만 지능은 열 살 미만의 인간 아이에 그친다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래서 농사도 짓지 못하고 아직 수렵 생활과 약탈 생활을 하는 저능한 몬스터인데 이곳의 럼프 오크들은 전혀 달랐다.

 불을 사용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상당한 지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슷한 레벨의 필립이 한 마리를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힘과 전투력이 뛰어난 럼프 오크들이 득실대는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일단 좀 쉬고 생각합시다.”

 “네, 대장.”

 주변을 돌아본 하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오크들의 오물로 악취가 나는 곳이지만 필립과 지탄 그리고 라트리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면에 기대앉아 쉬고 있었고, 홀의 치료로 간신히 정신을 차린 시린느는 명상에 들어간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모여 봐.”

 하룬은 시린느의 옆으로 가서 세 사람을 불렀다. 이미 포션으로 체력을 회복한 세 사람이지만 럼프 오크들과의 일전으로 사기가 떨어진 듯 비실거리며 의욕 없는 얼굴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우리 힘만으로 이곳의 럼프 오크들을 해치우는 것은 좀 무리인 것 같다.”

 그 말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행여 하룬이 고집이라도 부릴까 봐 걱정했었나 보다. 럼프 오크의 힘과 전투력에 완전히 질린 재수 4인방이었다.

 “일단 후퇴한다. 나중에 우리의 실력이 더 높아지면 클리어해야겠어.”

 “현명한 판단이야, 대장.”

 “얼른 나가.”

 다들 반색했다. 명상에서 깨어난 홀 역시 같은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그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더구나 귀한 보물도 없는 몬스터 던전이니 더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나중을 위해 이곳을 조금 더 살피고 나갈 테니 티노가 인솔해서 먼저 나가도록 해요.”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지체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티노는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위험합니다, 대장. 대장의 실력은 알지만 이곳은…….”

 “나도 압니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정찰하고 나가지요.”

 하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꾸 뒤를 돌아보는 티노에게 미소 지어 안심시키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싸가지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고 전직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야. 포기할 수 없지. 급하면 싸가지의 독이라도 쓰는 수밖에.’

 해독약이 다섯 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함부로 싸가지를 소환할 수 없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웠다. 하룬은 몸에 익은 메신저 워킹을 펼쳤다.

 메신저 워킹의 효능 중 하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마나를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과정을 통해 몸은 가벼워지고, 그 마나들 때문에 소리들이 흡수되니 정찰할 때도 아주 유용한 스킬이었다.

 럼프 오크들이 화장실로 사용하는 이곳은 오크들의 거주지인 공동으로 나가려면 세 번이나 통로를 돌아야 하는 구조였다. 이러니 격렬하게 싸우는 와중에 발생한 소음에도 안에서는 그 소리들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통로의 벽마다 머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희미한 빛을 내는 발광석이 박혀 있어 앞을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런 것까지 만들 정도면 정말 뛰어난 지능을 가진 놈들이구나.’

 통로들을 모두 돌자 오크들의 거주지인 거대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티노의 말대로 광장을 중심으로 네 구역으로 분리된 각 공간에는 거주지로 보이는 흙집들은 물론 거주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는 다양한 건물들이 보였다.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건물이나 창고용으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들까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상당한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오크들이었다.

 취엑, 체엑!

 칙! 치익! 칙!

 ‘이크!’

 하룬은 문득 들리는 오크들의 대화 소리에 황급히 벽을 붙잡고 뛰어올랐다. 상당히 높은 벽은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아 잡을 곳이 많았다. 하룬은 오크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발광석이 있는 곳 위로 더 올라갔다.

 ‘응? 이건?’

 발광석의 한참 위쪽은 어둠에 잠겨 있었는데 천장에는 미처 다듬지 못해서 튀어나온 것이 많았다. 아마 이곳을 통째로 파낼 때 위까지는 다듬지 않았으리라.

 위에서 내려다보니 전사로 보이는 오크 둘이 뭐 마려운 표정으로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녀석들이군.’

 얼마나 급했는지 무기도 없이 배를 움켜쥐고 뒤뚱거리며 걷는 녀석들을 보니 아까 경험했던 그 무서운 놈들이 맞는지 잠시 헷갈렸지만 소리를 내지 않고 비수를 꺼내 쥐었다. 무섭도록 예민한 감각을 가진 놈들이니 조심해야만 했다.

 자신이 있는 곳의 바로 아래쪽에 오크들이 지나치는 순간 하룬의 손에서 비수 두 자루가 소리 없이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멀티 샷이었다.

 ‘비겁하지만 할 수 없지.’

 커억! 컥!

 뒤통수에 비수가 꽂힌 오크들이 작은 비명과 함께 몇 번 바동거리더니 쓰러졌다.

 재빨리 바닥으로 내려온 하룬은 놈들의 사체를 끌어 화장실로 옮겼다.

 “에휴! 더럽게 무겁네.”

 지탄보다 더 건장한 놈들이라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룬은 비수로 뿔은 자른 후 놈들의 사체를 오물 구덩이에 떨어뜨렸다. 가죽은 아까웠지만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물러났다가 나중에 올까 아니면 지금 한 건 하고 갈까?”

 도와줄 대원도 없는 상황이라 위험했지만 그냥 후퇴하기에는 아까웠다. 이왕이면 이 기회에 싸가지의 능력을 되찾는 것은 물론 전직까지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좋아. 이제 해독약도 몇 알 남지 않았으니 이 기회에 해결을 하자.”

 마음을 굳힌 하룬은 일단 대원들을 찾아 들어왔던 던전 입구로 향했다.

 대원들과 홀은 지치고 피로한 모습으로 던전 입구에 각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던전 안과는 달리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일단 쉬자. 준비해.”

 지친 대원들은 하룬이 안에서 무엇을 보고 나왔는지 관심이 없는지 각자 할 일을 찾아 힘겹게 움직였다. 지쳤으니 평소보다 더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필요했다.

 전날 잡은 사슴 고기로 식사를 하고 차까지 마신 하룬은 대원들과 홀을 쉬게 하고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다. 재수 4인방은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지만 홀과 티노는 그런 하룬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배웅했다.

 ‘놈들도 저녁을 먹었으니 화장실에 오는 녀석들이 꽤 될 거야.’

 하룬은 화장실에 오는 놈들만 비수로 요격할 생각이었다. 비록 가죽은 얻지 못하겠지만 싸가지가 필요한 럼프만 얻으면 성공이다.

 그의 생각이 맞았다.

 오크들은 줄을 지어 화장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긴장이 완전히 풀어지는 순간(?)을 노려 녀석들을 해치우려던 하룬은 장소를 바꾸었다.

 연속해서 들어오는 오크들 때문에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는 순간을 겪었던 것이다. 정령 합체 암기술이 아니었다면 벌써 존재가 발각되었을 것이다.

 하룬은 아까 정찰을 위해 올랐던 벽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이라면 오크들의 행동을 관찰해 가면서 손쉽게 하나씩 잡을 수 있다. 이곳이 거주지이고 화장실에 가는 탓에 무기는 고사하고 조금의 경계심도 없이 오직 배설만 생각하고 화장실로 향하던 오크들은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하룬의 비수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일단 오크를 해치우면 민첩하게 녀석을 끌고 화장실로 와 뿔을 자른 후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하룬은 가장 악취가 심한 몇 개의 구덩이를 개방하고 싸가지의 정령 마법으로 그 냄새를 퍼트렸다.

 그의 용의주도한 행동과 몬스터들이 자는 시간이라는 점 때문에 목표한 숫자의 뿔을 모두 얻었을 때까지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오크들은 없었다.

 ‘이제 한 놈만 더 해치우고 나가자.’

 쉴 새도 별로 없이 엄청난 무게의 죽은 오크들을 옮기고 싸가지를 소환한 때문인지 피로감이 강하게 엄습했다. 물약으로 생명력과 마나는 채웠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자신 쪽으로 오고 있는 엄청난 체구의 오크가 들어왔다.

 ‘오크 부족장이다!’

 보통 오크의 두 배는 넘는 장대한 체구를 가진 부족장은 어린 오우거에 필적할 정도로 컸다. 직접 만들었는지 아니면 인간에게 빼앗은 것인지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녀석은 머리통에 뿔이 세 개나 돋아 있었다.

 ‘제길! 이 녀석은 잠을 잘 때도 이렇게 입는 거야?’

 하룬의 눈에 곤혹스러운 빛이 일렁였다. 녀석은 휘황찬란한 황금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놈의 손에는 무시무시한 스파이크가 박힌 건틀릿이 끼여 있었고, 부츠까지 신고 있었다.

 ‘이래서는 비도로 죽일 수가 없어.’

 눈에 보이는 공격 부위는 오로지 얼굴과 목덜미가 고작이었다. 위에서 던져 맞히기는 힘든 부위인 데다가 놈의 레벨과 일전에 기사를 상대한 경험으로 보면 정령 합체 암기술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룬이 머리를 쥐어짜는 사이 오크 부족장은 빠른 걸음으로 그를 통과해 가고 있었다.

 추르! 추욱!

 갑자기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낮은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몸을 낮추어 바닥에 난 흔적을 보고 있었다. 부족장답게 녀석은 핏자국과 함께 뭔가 쓸린 흔적을 찾은 것이다.

 ‘빌어먹을! 이렇게 되면 싸가지의 독밖에 믿을 게 없다.’

 하룬은 싸가지를 소환 대기시켜 의사를 전했다.

 -싸가지, 수면독이 필요해.

 -내게 맡겨 줘, 주인!

 자신 때문에 하룬이 잠도 못 자고 고생을 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녀석은 웬일로 고분고분했다.

 오크 부족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한 듯 허리춤에서 전투 도끼를 빼 들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무런 광채도 나지 않는 도끼였지만 그 예기는 소름이 끼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지 아니면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무리를 부르지 않았다. 그랬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화장실로 쓰는 공간 안쪽에 나 있는 틈을 오크들이 놓칠 리가 없을 것이다.

 오크 부족장이 조심스럽게 통로를 도는 틈을 이용해 하룬이 최대한 낮은 소리로 싸가지를 소환했다.

 “소환.”

 휘익.

 소환된 싸가지가 통로 안쪽으로 사라졌다. 중독이 되었다는 안내음을 들은 하룬이 황급히 해독약을 먹는 사이 오크 부족장의 분노 어린 고함 소리를 들었다.

 췌에에-엑! 췌엑!

 -오크 부족장의 피어를 들었습니다. 3분 동안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향후 5분 동안 능력이 20% 하락합니다.

 피어를 들은 것만으로 3분 동안이나 스턴 상태에 빠지다니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운 보스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하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는지 긴장된 눈으로 오크들의 서식지를 지켜보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3분이 흐른 후, 하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어내려 통로로 향했다. 거대하긴 하지만 이곳은 막힌 공간이라 오크 부족장의 고함이 벽을 타고 웅웅거릴 정도로 울렸던 것이다.

 여차하면 도망을 쳐야 하는 상황이다.

 통로를 막 돈 하룬은 싸가지가 위에서 수면 물질로 보이는 뿌연 것을 오크 부족장의 머리 위로 뿌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크 부족장의 주변에는 뿌연 안개 같은 물질로 가득했지만 놈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도끼를 사방으로 휘두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날에서는 마나로 이루어진 날이 발출되고 있었다.

 “익스퍼트 최상급?”

 부기斧氣를 날릴 정도면 그 정도라고 알고 있다.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는 해도 오크의 실력이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하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단순한 괴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 기사들처럼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것은 럼프 오크들이 얼마나 높은 지능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확실하고 위험한 증거였다.

 “위험해! 그만하고 돌아와!”

 눈에도 수면 물질이 잔뜩 들어갔는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산지사방으로 부기를 날리는 오크 부족장 때문에 연방 수면 물질을 놈에게 뿌리고 있는 싸가지가 위험했다.

 일반 무기라면 모르지만 마나가 실린 공격은 정령인 싸가지에게는 충분히 위험했다. 녀석은 하룬을 향해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흐흐흐! 하도 패고 못살게 굴어서 날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녀석은 하룬이 자신을 걱정해 준 것에 기분이 좋아진 듯 징그럽게 웃었다.

 “녀석은?”

 “레벨이 높은 녀석이라 잘 버티고는 있지만 좀 있으면 뻗을 거야. 흐흐흐! 지랄을 하면 할수록 몸 안으로 들어간 약기운이 더 빨리 퍼질 테니까 말이야.”

 자신만만한 싸가지의 말대로 오크 부족장은 조금 더 발악을 하다가 결국 잠에 곯아떨어졌다.

 하룬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강철검을 빼들었다. 오크 부족장의 피어를 들었으니 곧 오크들이 모여들 것이 틀림없었다. 비록 놈이 저항할 상태가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힘을 주어 놈의 목을 베었다.

 오크 부족장은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잠에 빠진 상태에서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물론 그 순간 하룬의 귀에는 언제 들어도 기쁜 안내음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럼프 오크 부족장을 해치웠습니다.

 -레벨이 8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3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명성이 200 오릅니다.

 -S.P. 50점을 획득했습니다.

 -레어급 칭호 ‘럼프 오크 슬레이어’를 얻었습니다. 칭호 보상으로 전 스텟이 2씩 상승합니다.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하룬은 안내음을 다 듣기도 전에 캣랫 비수를 꺼내 들었다. 비록 독 데미지가 있긴 하지만 이미 해독약을 먹은 상황이니 걱정은 없었다.

 절삭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캣랫 비수는 머리통과 단단히 연결된 럼프를 간단하게 자를 수 있었다.

 하룬은 죽은 오크 부족장의 머리통에서 투구를 벗기고 세 개의 다 자란 뿔을 잘랐다. 뿔을 인벤토리에 넣고 황급히 움직이려던 하룬은 생각을 바꾸었다.

 ‘이게 다 아이템인데 그냥 갈 수 없지.’

 하룬은 누런 광채를 내는 투구와 무시무시하게 생긴 건틀릿, 장화와 발끝까지 끌리는 갑주를 벗겨 냈다. 몸을 뒤집는 것도 힘겨울 정도로 엄청난 무게지만 잘하면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무게를 줄여 주었다.

 ‘어! 이건 뭐지?’

 시간이 없어 갑주들을 연결한 사슬들을 캣랫 비수로 자르던 하룬은 부족장의 가슴 어름에서 주먹 크기의 가죽 주머니 하나를 찾아냈다.

 뭔가 보물이 들어 있을 것 같아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하룬은 아이템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다행하게도 그 모든 것을 다 끝내고 땀에 흥건히 젖었을 때서야 이쪽으로 향하는 오크들의 발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놈의 피어는 부하들까지 상태 이상에 빠뜨리고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하룬은 재빨리 화장실로 돌아와 던전 입구로 나가는 틈새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할 일이 더 있었다. 주변에 있는 바위들로 그 틈새를 막아야만 했다.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해야 했다.

 틈새까지 막은 후 던전 입구로 빠르게 움직이던 하룬은 알맞은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 후 싸가지를 소환했다.

 “불렀어, 주인?”

 소환된 녀석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충성심이 가득한 목소리가 생경하게 느껴졌지만 빨리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제 알아서 해! 뭐 다른 필요한 거 있어?”

 “이걸로 충분해. 주인, 정말 고마워. 되도록 최대한 능력을 올릴 수 있도록 전직할게.”

 녀석의 목소리는 기쁨과 감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독이나 좀 어떻게 해 봐라. 이래서야 널 제대로 소환할 수 있겠냐?”

 “주인에게 미안하긴 한데 어쩔 수가 없어. 단순한 독만 흡수한 것이 아니라 오만 가지 오염 물질들을 다 흡수한 터라 전직을 해도 그것은…….”

 녀석은 정말 미안한 표정이었다.

 “됐다. 독을 막아 주는 아이템을 얻든지 아니면 포이즌 관련 스킬이라도 익히든지 하면 되겠지.”

 하룬은 금세 기대를 포기했다.

 “대신 전직을 하고 나면 내가 중급 정령 마법까지 쓸 수 있으니까 주인 많이 도와줄게.”

 “그래라. 전직하는 데 얼마나 걸리냐?”

 “한 일주일쯤 걸릴 거야.”

 “제발 외모라도 좀 귀엽게 변했으면 좋겠다. 아니, 귀여운 것은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불쾌감만 들지 않게 변해라.”

 “알았어, 주인. 기대해!”

 녀석은 희희낙락하며 인벤토리로 돌아갔다. 하룬은 녀석이 수북이 쌓인 뿔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는 새로 얻은 아이템들을 꺼냈다.

 “아! 먼저 내 상태를 봐야지.”

 레벨 업을 꽤 했으니 무척 기대가 되었다.

 “와우! 15 업이다!”

 던전에 들어와 럼프 오크들을 학살한 덕분에 그의 레벨은 파로스 자작령을 떠난 후 무려 15단계나 올라갔다. 하룬은 레벨 업으로 얻은 보너스 스텟 30점을 기본 스텟에 각기 5점씩 배분하고 흐뭇한 눈길로 잠시 상태 창을 바라보았다.

『이름: 하룬

종족: 인간

직업: 검사

레벨: 37

칭호: 용병대장(외 6개)

생명력: 1,510

마나: 1,540

정령력: 500

힘: 57(+15)       체력: 48

지식: 32          지혜: 50

행운: 42          민첩: 45(+12)

지구력: 18        심안: 14

집중: 24          S.P.: 183

명성: 1,780        통솔력: 465

화염 저항력: +10%

마법 저항력: +10%』

 하룬은 내친김에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일단 오크 부족장을 잡고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들어온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하나는 스킬 북이었고, 하나는 검이었다. 하룬이 검사이기 때문에 아이템도 관련된 것으로 나온 것 같았다.

『크레이지 소드(중급 스킬 북)

내용: 중급 검술인 크레이지 소드가 기재된 스킬 북이다. 이 크레이지 소드를 펼치면 버서커 상태에 빠지면서 스킬 레벨에 따라 제한된 시간 동안 본신 능력의 두 배에서 열 배까지 낼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필요 S.P.는 100이고 가능 시간은 스킬 레벨당 3분씩 늘어나고 위력은 레벨의 2배수만큼 강해진다.

제한: 레벨 40 이상의 전사 계열로 초급 검술 하나는 마스터해야 한다.』

 “이건 라트리나를 주면 되겠구나.”

 안 그래도 버서커 기질이 농후한 라트리나가 익히면 궁합이 기가 막히게 맞을 검술이었다.

 다른 아이템을 보는 순간 하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건?”

 그의 눈에 뜨인 것은 거의 투명해 보이는 얇고 날카로운 비수 네 자루로 구성된 세트 아이템이었다.

『유령 비수 세트

등급: 유니크

내용: 재료를 알 수 없는 비수 세트이다. 다만 마나를 담아 날리면 투명해지는 것으로 보아 투명 와이번이라고 불리는 고대 몬스터의 부리나 발톱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평상시에는 볼 수 있지만 마나를 싣는 순간 투명하게 변하는 특별한 비수이며 일반 강철을 베거나 관통하는 위력이 있다.

제한: 마나 사용 가능자

옵션: 회수 가능』

 “이거야!”

 드디어 그가 쓸 수 있는 대박을 건져냈다. 비록 아직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지만 장차 마나를 쓸 수 있게 되면 엄청난 비밀 병기가 될 아이템을 건진 것이다.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비수를 그 어느 누가 쉽게 인지할 것인가? 더구나 강철을 벨 수 있는 강력한 절삭력까지 가진 이 비수 세트야말로 하룬이 늘 가지기를 고대하던 아이템이었다.

 유령 비수 세트를 얻은 기쁨과 감동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잠시 후 하룬은 오크 부족장이 가지고 있었던 아이템들까지 확인했다.

『럼프 오크 부족장의 투구

등급: 레어

럼프 오크 일족의 부족장을 상징하는 투구이다. 황금과 미스릴을 섞어 만든 것으로 럼프 오크 일족의 특유한 주술을 담은 아이템이라 몬스터에게 강렬한 공포를 줄 수 있다.

내구력: 95/100

방어력: 141/150

제한: 지혜 40 이상

옵션: 지혜 +5

     상대의 능력치 10% 하락』

『럼프 오크 부족장의 갑옷

등급: 레어

황금과 미스릴 그리고 화이트 와이번의 비늘로 만든 갑옷으로 강력한 주술이 담겨 있어 적에게 강렬한 위압감을 줄 수 있다.

내구력: 165/200

방어력: 245/300

제한: 힘 50 이상

옵션: 파티원 충성도 +100

     카리스마 +10』

『럼프 오크 부족장의 부츠

등급: 레어

와이번의 가죽과 날개털 그리고 그 뼈를 가공하여 만든 부츠로 강력한 주술이 담겨 있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일정 시간 공중을 날 수 있다.

내구력: 115/120

제한: 마나 사용자

옵션: 민첩 +5

     3분간 공중 유영 가능』

『럼프 오크 부족장의 거대 전투 도끼

등급: 레어

럼프 오크 부족장을 상징하는 거대한 전투 도끼로 미스릴이 다량 섞였고, 강력한 주술이 담겨 있어 아군의 투기를 진작시키고 적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무게: 50Kg

공격력: 300

내구력: 280/300

제한: 힘 50 이상

옵션: 아군의 사기 10% 증가와 상대의 사기 10% 감소』

『파워 건틀릿

등급: 레어

강철과 미스릴, 블랙 베어의 발톱을 재료로 드워프가 만든 건틀릿. 강철을 부순다는 와이번의 발톱을 갈아 스파이크를 만들어 부착했다. 상대의 공포를 유발한다.

내구력: 100/140

공격력: 150

제한: 없음.

옵션: 힘 +10, 화염, 마법, 독 저항력 각 10% 증가』

 하룬은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말을 할 사람도 없었지만 말이다.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다문 하룬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레어 아이템을 다섯 개나 착용하고, 유니크와 중급 스킬 북을 토해 낸 보스 몬스터라니! 도대체 내가 뭘 잡은 거야? 이건 완전히 노블 오크잖아.’

 하룬이 묘한 미소를 떠올렸다.

 ‘일단 홀을 목적지에 내려놓고 나면 여기서 한동안 지내야겠다. 이 정도의 몬스터들이라면 나와 대원들이 적어도 60레벨까지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더구나 아이템으로 도배를 한 녀석들이니 이석이조지.’

 아이템 드롭율이 세 배라는 옵션은 물론 가진 것이 빵빵한 녀석들이 있는 던전 안을 주시하는 하룬의 눈이 반짝거렸다.

To Be Continue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