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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첫 실전 (15/278)

《첫 실전》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사흘이 흘렀다. 워낙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잘 닦인 대로이고 직할령이라 수시로 몬스터를 토벌하기는 했지만 숲에서 정찰을 나온 고블린들이나 오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었다.

 그 몬스터들은 재수 4인방의 파티 공격을 연습시키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룬은 그동안 대원들에게 몬스터들을 상대하게 만들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지탄, 이 겁쟁이야! 막으라고, 막아!”

 덩치는 비슷한데 주제에 흉악한 눈을 부릅뜨고 달려오는 오크의 험악한 기세에 겁먹고 덜덜 떠는 지탄에게 시린느가 악을 썼다. 지탄이 무너지면 바로 자신이 다음이었던 것이다.

 “이-이익!”

 지탄은 결국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녀석의 동공은 겁에 질려 게게 풀려 있었다. 시린느 역시 지탄이 무너지기 무섭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결국 뒤에 대기하고 있던 필립과 라트리나가 그 오크를 처치해야만 했다. 필립은 이미 실전 경험이 있고, 라트리나는 첫 실전을 별 무리 없이 치른 데다 갈수록 실력이 나아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대장, 아무래도 지탄과 시린느는 전투에서 배제시켜야 할 것 같은데.”

 필립의 말대로 두 녀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왜 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나섰는지 후회막급이었다.

 그나마 한번 싸움이 벌어지면 광기로 흰자위만 남아 미친년처럼 날뛰는 라트리나가 저들보다는 나았지만 위험천만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라트리나는 몬스터들을 도발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몬스터들이 기를 쓰고 그녀에게 달려들곤 했다.

 하룬은 중간에 벨에게 부탁한 자료를 바탕으로 머리를 쥐어짜서 공격 조합을 하나 만들었다.

 “지탄, 넌 이제 방어만 맡아. 필립, 지탄과 함께 걔가 쓸 방채를 하나 만들어 봐.”

 하룬은 지탄에게 전신을 가릴 만한 크기의 나무 방패를 만들게 했다. 겁이 많지만 힘은 발군이니 방어를 전담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필립의 도움으로 지탄은 몸을 가릴 크기의 조악한 나무 방패를 하루 만에 만들어냈다. 사람 몸무게에 해당할 정도로 무거운 방패지만 지탄은 가볍게 들 수 있었다.

 일행은 아직도 전혀 나아질 줄 모르는 위험한 시린느의 음식을 몇 술 뜨고는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새로운 조합을 시험하기로 했다.

 “자, 이제 라트리나는 몬스터들을 도발해서 이곳으로 끌고 와. 되도록 한 마리씩만. 그리고 지탄은 그 방패로 공격을 막기만 해. 필립은 스매싱 블로우 스킬로 일단 공격이 막힌 겨석의 숨통을 끊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키킥, 재미있겠다.”

 라트리나가 낄낄거리며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끼를 든 오크 한 마리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녀를 쫓아오기 시작했고, 방패를 들고 서 있는 지탄과 마주쳤다.

 거대한 도끼가 마리를 찍어 오자 지탁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룬이 그 광경을 보고 소리 질렀다.

 “방패!”

 지탄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눈을 질끈 감고 방패를 앞으로 힘차게 내밀었다.

 꽈앙!

 엄청난 기세로 떨어지던 도끼는 두터운 나무로 만들어진 방패와 부딪쳐 굉장한 충격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필립, 스매싱 블로우!”

 지탄의 뒤에 몸을 감추고 있던 필립이 방패를 벗어나, 충돌의 여파로 자세가 흔들린 오크의 머리통을 향해 맹렬한 일격을 가했다.

 추욱!

 기괴한 소리와 함께 필립의 검침이 오크의 단단한 두개골을 뚫고 뒤로 빠져나왔다. 그 이름처럼 맹렬한 기세로 상대의 틈을 찌르는 스킬의 위력은 대단했다. 베는 것에 비해 피가 적게 튄다는 이유로 필립이 선호하는 스매싱 블로우의 속도는 어지간한 오크들은 보고도 막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웠다.

 ‘나중에 꼭 배워야지.’

 “이 좆같은 오크 핏덩이야, 덤벼! 덤벼 봐! 그 돌대가리에 구멍을 뚫어 줄 테니까!”

 어느새 또 라트리나가 오크 한 마리를 도발해서 끌고 오고 있었다. 녀석은 대기하는 인간들을 보며 흠칫하는 기색이었지만 라트리나의 도발 스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녀가 까닥대는 손가락질에 흉광을 쏘아 내며 단단한 몽둥이를 들고 쇄도했다.

 “지탄!”

 여전히 퍼렇게 질린 얼굴이지만 이번에는 반사적으로 방패를 앞으로 쭉 내미는 지탄을 지나치는 라트리나의 얼굴은 즐거워 죽겠다는 듯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꽈앙!

 순수하게 힘 대 힘이 격돌하자 지탄과 오크는 무기를 든 상태로 비틀거렸다. 이번에는 하룬의 말이 없었는데도 필립의 몸이 검과 함께 엄청난 빠르기로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스매싱 블로우!”

 추욱!

 미처 균형을 잡지 못한 오크의 머리통에 다시 필립의 검첨이 박혔다가 빠져나왔다.

 푸우.

 이마 한 가운데에서 녹색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정말 그로테스크했지만 그걸 볼 여유는 없었다. 이미 세 마리의 오크가 후발로 라트리나를 따라온 것이다.

 취이익.

 췌엑!

 동료가 인간들의 손에 죽어 가는 것을 본 오크들의 고함은 높고 날카로운 데다 강렬한 적의와 분노가 담겨 있어 지탄의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얼굴은 공포에 질려 이제는 하얗게 변했고, 발 주변에 물기가 흥건히 고였지만 하룬은 후퇴를 명령하지 않았다.

 “방패!”

 이번에는 세 오크의 합공이었다. 놈들은 몬스터의 야수성으로 가장 겁에 질린 약자를 노린 것인지아니면 거대한 크기의 방패가 거슬리는지 각각의 무기로 지탄을 가격했다.

 꽝! 터엉! 꽈앙!

 다행히 공포로 능력 이상의 힘을 준 덕분인지 방패는 많이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오크들의 무기가 튕겨 나갔다.

 “스매싱 블로우!”

 지탄의 뒤에 숨었던 필립이 몸을 튕기며 한 오크의 머리통을 검첨으로 꿰뚫었지만 이내 자세를 잡고 흉성이 폭발한 듯 근육을 꿈틀거리며 도끼와 몽둥이를 휘두르는 오크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버렸다.

 “지탄, 다시 막아!”

 하룬은 지탄에게 소리치며 비수 한 자루를 날렸다.

 쉬익! 꺼엉!

 단단히 군기가 들어간 지탄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빠른 속도로 검을 거두어들이는 필립의 앞으로 움직이며 방패를 내민 것이다. 덕분에 필립은 검을 뒤로 물려 다시 스킬을 쓸 준비 자세를 취할 여유를 벌 수 있었다.

 큭!

 하룬의 비수가 목을 관통하자 오크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너졌다. 몽둥이를 놓으며 목을 부여 잡아 보지만 이미 비수는 목을 관통해서 뒷골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스매싱 블로우!”

 필립의 기합과 함께 방패로 인해 회심의 일격을 놓치고 비틀거리던 오크의 이마에 날카로운 검첨이 박혔다.

 끄어억!

 검첨이 뇌 속을 휘저으며 빠져나가는 사이 본능적인 공격을 하려는 듯 팔을 움직였지만 이내 천천히 쓰러졌다.

 “시린느, 가죽 벗겨. 이번에는 깔끔하게 벗겨야 돼. 라트리나가 도와.”

 “알았어, 대장.”

 시린느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날카로운 단검을 들고 죽은 오크들에게 향했다. 가죽을 잡아당기는 역할을 수행할 라트리나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거칠게 호흡하며 따라붙었다.

 하룬은 지탄을 챙기는 필립을 보며 흡족한 마음이 되었다.

 ‘이제야 좀 쓸만해졌구나.’

 각자의 장점과 단점들을 파악하고 성공적인 조합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시험했지만 이번 조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제일 큰 문제는 지탄이었다.

 집채만큼 큰 바위를 들어서 던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을 지닌 녀석이었지만 그렇게 겁이 많은 줄은 아무도 몰랐다. 수련 기간 동안에는 실전이 없어서 그 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엄청난 체구에 강력한 힘을 가진 지탄이 요른 지방에서 상당한 세력을 구축한 유명 용병단의 자제임에도 검술 대신 행정을 공부한 이유를 일행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어차피 그의 힘으로 거점 도시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서 녀석들과 파티 플레이를 해야 한다. 하룬은 얼마 되지 않는 게임의 경험은 물론 벨이 찾아낸 정보를 통해 수십 종류의 공격 패턴을 시험한 끝에 지탄을 탱커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교한 검술 실력을 가진 필립에게는 데미지 딜러 역할을 맡겼다. 사실 그는 혼자서도 다수의 적을 상대할 정도의 검술 실력을 가졌지만 파티를 위해 그가 익힌 스킬 중 스매싱 블로우를 집중적으로 수련해야 했다. 호리호리하고 가벼운 몸을 가진 필립은 민첩성이 뛰어나 강하고 빠른 찌르기 공격에 적격이었다.

 얼굴과 몸에 밴 교태를 빼고는 쓸데가 없는 시린느는 안전한 대신 가장 더럽고 험한 일을 맡았다. 바로 도축 스킬을 집중적으로 발휘하는 역할이었다. 그녀는 몬스터의 가죽을 전문적으로 벗기는 일을 맡아 피비린내와 악취를 참아야만 했다.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재수 없는 S구역의 노블 계집들이 생각나.’

 시린느가 가죽이나 벗기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해야만 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별다른 능력도 없거니와 현실에서 하룬이 가장 증오하는 유형의 여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녀의 미모와 교태가 밴 태도 때문이었다.

 “갈수록 라트리나의 도발 스킬이 발전하고 있어. 다들 그녀를 본받도록.”

 “호호호, 내게 이런 재주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 남을 도발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대장, 정말 고마워.”

 라트리나는 날이 갈수록 변태적인 성향을 마음껏 드러냈다. 비릿한 표정으로 욕을 해 가면서 상대를 도발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그녀는 급기야 도발이라는 스킬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녀의 도발 스킬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순박하고 겁이 많은 사슴 같은 초식동물조차 그녀의 도발에 달려들 정도였다.

 ‘미친년!’

 일단 난전이 벌어지면 눈이 돌아가 흰자위로 가득한 눈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가늘고 날카로운 검을 날리는 그녀를 보면 그 소리가 절로 나왔다. 더욱이 광기로 가득 찬 얼굴을 보면 하룬도 겁이 날 정도였다.

 ‘일단 첫 조합은 이걸로 하자.’

 하룬은 전체적으로 전투를 이끌고 위험 요소를 원거리에서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기에 가까운 암기 실력을 가진 그가 배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수 4인방은 큰 힘을 얻었다.

 겁은 많지만 전신을 가릴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방패를 가볍게 드는 괴력의 소유자인 지탄은 1차 공격을 차단하는 탱커 역할을 맡았다. 이번에도 결국 공포를 못 이기고 오줌을 지리긴 했지만 갈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다.

 필립은 숨겨진 창이 되어 지탄이 1차로 막은 상태의 목줄을 끊는 데미지 딜러 역할을 수행한다. 익스퍼트에 근접한 그의 검이 가지는 강도와 빠르기 그리고 놀라운 민첩성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시린느는 아름다운 얼굴과 교태 어린 태도를 제외하고는 재주가 없어 잡일을 해야만 했다. 몇 번이고 그 결정에 불복해서 반기를 들었지만 그녀에게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하룬은 치료약을 무기로 그녀의 불만을 가볍게 일축했다.

 불 피우기, 식사 준비, 바느질, 빨래 같은 일을 하면서 인상을 썼지만 점차 적응해 갔다. 그것들 말고는 용병대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자각한 탓도 있지만 그녀 스스로 그 일에 점차 재미를 붙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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