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수료 (11/278)

《수료》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수료일이 되었다. 아침 구보를 마친 수련생들은 익숙하게 열과 오를 맞추어 수련장에 집합했다.

 “그동안 모두 고생했다! 다행히 수련이 헛되지 않아 수련생들 대부분이 체력이 상당한 폭으로 올라갔음을 확인하게 되어 본 교관을 비롯한 조교들은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다.”

 슐츠는 수련생들을 따스한 눈길로 쭉 둘러보았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수련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자기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가진 기량을 손님들에게 보임과 동시에 석 달 전의 자신과 비교해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슐츠 교관의 말에 아침 구보가 끝나고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도열했던 수련생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제 수련장을 열 바퀴 돌면서 쓰러지는 수련생은 한 명도 없었다.

 이번 기수의 자랑이라면 중도 탈락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보통 열 명 가까이 나오던 탈락자들의 대부분은 마법사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수는 하룬이라는 인물 덕분에 마법사 출신들이 큰 자극을 받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원수료라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마법사이면서도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 준 하룬 때문에 체력적인 수력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 마련인 마법사 출신 수련생들은 용기와 동기를 얻었다.

 이제 오전 시간 동안 자신이 수련한 결과를 남들에게 선보이는 절차만 남겨 두었다.

 그 힘든 시간들을 고통에 몸부림쳐 가면서 견뎌야 했던 수련생들은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런 자긍심은 앞으로 용병 생활을 해 가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단한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우리 용병 아카데미가 생기고 기초 수련 과정이 생긴 이래 가장 훌륭한 수련생들이다. 수련 과정은 물론 수련의 결과까지 이제까지의 기수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수련 받는 자세와 의지 역시 최고라고 교관진에서 평가했다. 따라서 이번 기수의 경우 상위 성적을 보인 수료생들만 참여하는 장기시연長技試演에 여러분 모두를 참가시키기로 했다.”

 와아아!

 수련장이 일시에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이제 그동안의 노력과 땀을 보상받을 시간이 된 것이다.

 비록 수석 수료생을 선출하는 것을 제외하면 순위를 정하는 것도 없지만, 소수의 수련생들만이 빛나는 다른 때와 달리 모든 수련생들이 자신의 발전을 충분히 축하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씻고 수련복을 갈아입고 적당히 식사한 후에 광장에 집결할 것이다. 여러분들을 기다리는 내빈들이 본부 앞 광장에서 기쁘게 맞을 것이다. 혹시 연인이 될 사람이 참석할지도 모르니 되도록 단정한 모습으로 나오길 바란다.”

 교관의 말에 수련생들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이봐, 하룬.”

 고개를 돌려 보니 세보나를 중심으로 한 무리의 수련생들이 눈을 빛내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 갔는지 늘 끼어있던 재수 4인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떨리지?”

 세보나를 추종하는 한 녀석의 말이 하도 같잖아서 하룬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 마음에 걸릴 것이 없어서 그런지 한결 여유가 생긴 하룬이었다.

 “호호, 안 그런 척하면서도 벌벌 떠는 게 보이네. 당연한 걸 뭘 그렇게 물어봐?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지고 본인은 물론 자신을 추천해 준 사람들까지 용병계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건데 대답할 정신이나 있겠어?”

 하룬은 찧고 까부는 그들의 대화에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간 재수 4인방을 선두로 계속 이어진 저들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한동안 가슴 한구석에 큰 바위를 얹은 것처럼 힘들게 살았던 것이 떠올라 울컥했지만 지그시 눈을 한번 감는 것으로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호호호, 다른 사람들을 기만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줄 테니 기대하라고.”

 “누가 이런 간 큰 짓을 했는지 잠시 후면 다 밝혀지겠지. 하하하, 재밌겠어!”

 다른 기수 같았다면 수석을 놓고 서로 적대 어린 시선을 던졌을 일부 우수 수련생들이 무리를 이루어 하룬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던졌다. 수석 수료라는 타이틀을 놓친 것이 어지간히 아쉬운 모양이다.

 “뭐, 이따가 보든지.”

 하룬은 늘 짓던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한번 응시하고는 기숙사로 향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수틀리면 그냥 파이어 볼이나 하나 던져 주면 되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갈리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나도 한 손 거들게. 저놈들은 한번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거야. 여기서야 같은 수련 동료지만 밖에 나가면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할 녀석들이 우리 마법사 그룹의 상징인 너를 건드리다니.”

 “맞아, 나도 한번 저놈들에게 맛 좀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래, 나중에 박살을 내놓자고.”

 뒤늦게 숙소로 향하던 모글을 비롯한 마법사 동료들이 차례로 그를 격려하며 지나갔다. 그런 동료들에게 하룬은 따듯한 동료애를 느끼며 미소 지어 주었다.

 사실 여느 인간관계라면 제대로 한번 말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을 쉽게 동료로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들이란 족속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자신만의 연구나 마법에 빠져 사는 존재.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무심하리만큼 수련에만 열중해 온 하룬의 태도는 바로 자신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더구나 경쟁자끼리는 피 튀기는 경쟁을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경지라고 판단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극경의 마음 자세를 가지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마법 실력은 어떤지 모르지만 체력이나 검술, 암기술까지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유니크한 능력을 보인 하룬은 어느새 마법사들의 자랑스러운 존재로 부각되었다.

 그들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따듯해 하룬은 미소 지었다. 인간관계에서 동료들의 존재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간 수련에만 매진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던 사람ㄷ르이 그에게 보내는 따듯한 성원과 격려에 하룬은 갑자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자고! 매운 맛은 잠시 후에 보여주고 우리도 이제는 좀 씻어야지. 혹시 우리 대장이 변덕이 나서 에이미를 데리고 왔을지도 모른다고. 이거, 수염을 깎아야 하나 아니면 다듬어야 하나.”

 “하하! 지금이 보기 좋아요, 형.”

 하룬은 갈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두 사람은 그들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네미온을 비롯한 몇 명의 마법사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최근 완전히 바뀐 네미온의 태도는 하룬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네미온은 끝내 자신에게 마법을 익힌 사실을 말하지 않은 하룬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가 마법사 출신이 아니라고 믿어 버린 것 같았다. 하룬 자신은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끝까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그에게 배신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네미온, 넌 그래도 날 믿었어야 해. 네가 날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하룬은 쓸쓸하게 웃으며 숙소로 향했다.

 깨끗한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광장에 가자 언제 준비했는지 반원형으로 테이블과 의자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련생들과 관련된 용병단 혹은 용병대 그리고 길드의 고위층이었다.

 하룬은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좀 긴장되었지만 깊은 호흡으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내빈석에서 엘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고 무려 석 달 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은 왠지 많이 상해있었다.

 ‘그동안 어디 아팠나?’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그를 찾고 있을 것이 분명한 엘저, 눈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안색도 창백한 것이 어딘지 좋지 않아 보였다.

 사실 엘저는 어젯밤에 돌아와 매킨에게 하룬이 수석 수료생이라는 사실을 듣고 적잖이 걱정하는 중이었다. 비록 아버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겨우 추천에 관한 사항을 해결했지만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일어날 일단의 소동을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룬을 찾아낸 순간 엘저는 굳었던 얼굴을 풀고는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아는 사람들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가운데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에서 하룬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반가워하는지 진심으로 알 수 있었다.

 “하룬! 하룬!”

 그녀의 행동은 점잖은 태도로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끌 정도였다. 워낙 목청이 크고 행동도 와일드했기에 다들 그녀를 주시했다.

 알은척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목청껏 소리를 지를 것 같아 하룬은 할 수 없이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들어 화답했다.

 “뭐야? 너 저 은발의 마녀랑 아는 사이야?”

 이름도 모르고 지내던 옆자리의 마법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마도 그녀를 아는 것 같았다.

 “친구예요. 아주 친한.”

 그의 목소리에 진한 그리움이 배어 나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하룬을 중심으로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하룬은 분위기가 왜 그러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그녀가 용병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명한 인물인지 아직 하룬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독한 성정으로 보아 충분히 친구일 수도…….”

 누군가의 낮은 소리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발의 마녀 엘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많은 몬스터들과 도적들을 박살 내 이름을 떨친 그녀였다.

 하지만 수틀리면 용병단이나 기사단 전체와도 싸움을 불사하는 고약한 성질머리와 실력으로 악명을 떨쳐 온 그녀의 친구라면 응당 그녀에 비근할 정도의 지독한 성정을 가진 이라야 할 것이다. 그들이 그동안 보아 온 하룬의 지독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가 아닌가.

 어느새 그 소식이 알려졌는지 세보나와 네미온 그리고 재수 4인방을 위시한 일부 수련생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세, 세보나. 은발의 마녀와 친구래.”

 그동안 하룬이라는 얄미운 공동의 적 때문에 한 무리처럼 어울렸던 재수 4인방의 몸이 북풍을 마주한 나뭇가지처럼 떨렸다.

 “혹시 그녀의 아버지인 그 노인네가 추천한 거 아닐까? 만약이라도 우리가 그동안 하룬이 비리를 통해 들어왔다고 떠들고 다닌 것을 알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분명히 너희들이 그랬어. 하룬이 마법사도 아니고 뭔가 비리 과정을 통해 이곳에 들어온 것이 확실하다고. 만약 이 모든 것이 너희들의 모함이나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알아서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재수 4인방을 노려보는 세보나의 붉은 입술이 얼마나 세게 악물렸는지 금세 하얗게 변했다.

 이제까지 하룬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기에 이들의 말을 확신했는데 아닐 가능성이 생겨 버렸다.

 하룬이 그녀와도 안면이 있는 유명한 용병인 엘저와 친구사이였다니.

 자신의 말을 거짓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소형 용병단 하나를 완전히 박살 낸 엘저였다. 중급 용병 열 명이 포함된 용병단은 그 일로 해체되었고, 용병단원 서른두 명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 황도의 용병 본부에 와서는 감히 황실 기사단의 하나인 은빛날개 기사단 전체와 드잡이질까지 한 그녀였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렸다는 이유에서였는데 현장에서 기사 네 명과 기사 후보생 열두 명이 그녀의 손에 사지가 부서졌다.

 여자 용병에게 실력 대 실력으로 붙어 깨진 것에 기사단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일단의 기사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뒤를 밟는 것을 확인하고 격분한 엘저는 기사단 본부까지 쳐들어가서 부단장과 검투를 벌였고, 승패나 그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문으로는 열 명 이상의 기사들이 그녀의 손에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돌았다.

 그 소문은 금방 황도를 발칵 뒤집어 버렸다. 결국 그녀 때문에 황도에 주둔한 기사단들을 대상으로 때 아닌 황실의 감사가 실시되었다. 여인을 대상으로, 그것도 용모를 가지고 놀린 기사들은 물론 그 기사를 감쌌던 간부들이 기사도 정신에 위배된 행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줄줄이 파직되고 나서야 겨우 그 일이 가라앉았을 정도였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그녀의 공인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었다. 비록 성질은 더럽지만, 거짓을 싫어하고 정도를 지키는 성격으로 알려진 엘저가 하룬을 친구라고 인정했다. 그 사실은 세보나를 위시해 그를 의심해 온 수련생들에게 많은 것을 유추하게끔 만들었다.

 세보나는 하룬이 그동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이라……. 그러고 보면 말을 아예 하지 않았지 뭔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네. 그럼 정말 떠도는 이야기대로 마나의 맹세 때문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거였나?’

 소름이 끼쳤다. 잘못하면 엘저에게 단단히 찍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엘저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이미 길드 본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만약 하룬이 마법사가 맞는다면 그녀가 이제껏 해 온 행동은 수석을 뺏긴 질투심에서 나온 치기 어린 그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수치심과 자책으로 붉게 물들었다.

 네미온 역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용병계의 유망주인 네미온은 비슷한 나이에 같은 여자인 관계로 엘저와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 엘저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네미온은 마음이 아팠다. 마나의 맹세를 했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그녀는 끝내 하룬을 믿지 못했다.

 아마도 마음 깊숙이 그를 향한 질투심이 있었나 보다고 생각해 보는 네미온이었다.

 만약 진짜 마법사라면 도저히 이런 수련 결과를 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 불신의 근원에는 또래에서 자신을 모든 면에서 능가할 마법사가 없다거나 혹은 없어야 한다는 유치한 자만심과 질투심이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수료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 용병들의 성품을 반영한 듯 축사나 격려사는 아주 간결했고 곧 모두가 기대하던 시간이 되었다.

 진행을 맡은 슐츠 교관의 우렁찬 소리가 수련생들의 혈기를 자극했다.

 “지난 석 달에 걸쳐 진행되었던 기조 수련 과정을 끝낸 수련생들이 우리 앞에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의지와 성실성 그리고 수련 결과를 보인 자랑스러운 수련생들입니다. 단 한 명도 탈락 없이 여기까지 온 우리의 후배 혹은 제자들을 위해 큰 박수 부탁합니다.”

 장내에서 황도 전체에 들릴 만큼 큰 박수 소리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제 수련생들이 내빈 여러분들 앞에 그동안 수련한 결과 혹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재주를 펼쳐 보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행여 수련생들이 나이가 어리고 그 경지가 낮아 보잘것없다고 여길 분들은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이겨 낸 용병계의 기대주들이니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상기된 표정의 수련생들은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앞으로 나가 추천인과 소속 용병 단체를 밝혔다. 그러고는 혹자 혹은 두셋이서 자신들의 장기를 사람들에게 뽐내기 시작했다.

 먼저 시작한 것은 마법사 이외의 수련생들이었다. 마법사들처럼 특별한 재주가 없는 B동과 C동 수련생들은 이 과정에서 배우고 수련한 기초 검술로 대련하거나 암기술을 보였다.

 사실 용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기초 검술과 암기술을 이제 갓 배웠기에 수련생들의 경지는 아주 낮아 이 자리에 있는 용병들에게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지만 모두가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몇 명의 수련생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 대부분은 하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그를 무시하거나 괴롭힌 이력을 가진 수련생들이었다.

 이미 상당한 수련을 한 상태에서 이곳에 들어온 그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인재들답게 어릴 때부터 익힌 특기를 펼쳐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과 갈채를 받았다.

 세보나의 경우 아주 뛰어난 암기술을 펼쳤다. 용병단주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 때문에 전투 용병의 길은 걷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도 용병단의 운영에 관여할 정도로 뛰어난 업무 처리 수완을 보인 세보나였다.

 알려지길 검술이 장기라던 그녀는 뜻밖에도 암기술을 선택했는데 그 재주가 놀라웠다. 무려 삼십 보 거리에서 열 개의 표적을 모두 맞히는 신기에 가까운 암기술은 사람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 정도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비수에서 얼핏 오러를 보았다는 수련생들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비수나 단검 같은 경우는 살상반경이 이십 보 정도가 그 한계였다. 무게 자체가 가볍기 때문인데 그녀는 오러를 사용해서 그 거리를 늘리고 표적에 명중시키기까지 한 것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갓 스무 살이니 오러를 사용하는 그 재주가 놀라웠던 것이다.

 리보라는 수련생의 장기는 줄타기였는데 사람 키 높이의 외줄 위에서 부채를 흔들며 앞뒤로 걸어가는 것은 물론 점프까지 해서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제 모두가 기대하는 마법사들의 차례였다.

 이 과정에 들어온 수련생들 중 가장 선임은 갈리였다. 이제 2서클을 마스터하기 일보 직전인 갈리는 제국 북부에서 유명한 루솔 용병단 출신으로, 공격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였다.

 그는 마법 수련은 전혀 하지 못하고 육체적인 수련과 검술을 수련했음에도 이 과정을 통해 3서클 비기너가 되었음을 알리며 위력적인 파이어 웨이브를 선보여 모두의 시선을 이끌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마법사들 상당수가 모두 자신의 이전 경지를 뛰어넘었음을 보이며 자신이 속한 단체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 주었다. 왜 마법사들이 이 과정을 이수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여지없이 보여 준 것이다. 벽을 깨기 위해서는 마법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하룬이 나설 순서가 되었다.

 “이번 수련생이 바로 수석 수료생입니다. 강의를 맡은 모든 교관들이 최고점을 준 유일한 수련생입니다. 근로 수련생으로 들어와 남들보다 몇 배나 더 노력해서 이 평가를 받은 인재입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이미 알게 모르게 하룬의 이름이 꽤 알려졌는지 한차례 박수를 끝으로 장내는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눈은 모두 하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기초 과정 동안 발군의 기량으로 마법사들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과정을 압도적으로 통과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서 사람들은 그가 어느 용병단의 소속이며 누가 추천한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하룬이라고 합니다. 아직 소속된 용병단은 없고 추천인은…….”

 하룬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추천인이 엘저라는 사실을 밝혀도 되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었다. 자칫 피해가 갈 수도 있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추천했네. 우리 딸과 친구 사이고 매킨도 인정하는 마법사지.”

 하룬이 멈칫하는 사이 내빈석의 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던 초로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한 말 때문에 장내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추천인이 너무 뜻밖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는지 눈살을 찌푸린 그가 버럭 외쳤다.

 “나 피엘이 추천한 것에 이의 있나?”

 그 말에 장내가 고요해졌다. 감히 누가 용병계의 살아 있는 전설 중 하나인 ‘칠흑의 용자’ 피엘의 말에 이의를 달 용기가 있을까.

 그는 젖먹이일 때부터 용병이었고 지금은 용병 길드 총본부의 열두 명 원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인간으로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마물의 세상인 칠흑의 숲을 통과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세보나와 네미온을 비롯한 일부 수련생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피엘이 누군가? 그런 사람이 직접 자신이 추천했노라 말한 하룬이 마법사가 아닐 까닭이 없는 것이다.

 “허허허! 이의가 있을 리가 있습니까. 다들 수석 수료생인 저 친구를 원로께서 직접 발굴해서 추천했다는 것에 놀란 거지요.”

 “허엄. 흐음!”

 테론 제국 용병 길드 총본부장인 나이크의 말에 겨우 굳은 얼굴이 풀리는 피엘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반대로 더욱 굳어 갔다.

 이실직고한 엘저와 매킨에게 모든 사정을 듣고도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모든 오명을 자신이 뒤집어쓸 생각을 하고서.

 ‘오늘 내가 망할 딸내미와 제자 놈 때문에 개망신을 하고야 마는구나. 빌어먹을! 내 행사가 끝나면 저놈부터 요절을 내고 말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얼굴과 잘빠진 몸뚱이로 내 귀여운 새끼를 꼬셨단 말이지. 이노-옴!’

 하룬은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다가 마치 화살처럼 자신의 눈을 찌르는 피엘의 살벌한 눈길에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영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저 사람이 바로 엘저의 아버지? 근데 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거지?’

 하지만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두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 호기심, 기대 같은 선의뿐이 아니었다. 질투, 저주 같은 악감정도 일부 느껴졌다.

 ‘그래, 내 능력을 보여 주지. 이게 다 엘저 덕분에 얻게 된 능력이다. 엘저, 잘 봐라!’

 “그럼 정말 마법사였단 말이야? 분명 팔찌를 풀고 나서 우리 몇 명이 비밀리에 살펴보았지만 마나량은 평범한 수준이었는데.”

 정령 마법을 펼쳐 많은 박수를 받은 네미온이 힘없이 주절거렸다. 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정령의 힘으로 그 사람의 내면세계까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하던 자신이 말이다.

 “제가 보일 것은 마법이 아니라 암기술입니다. 여기 와서 암기를 수련하던 중에 나름 얻은 것이 있어서 부끄럽지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제까지 마법사들은 모두 자신의 마법을 펼쳤다. 설마 그는 마법보다 여기에서 배운 암기술의 경지가 더 높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하룬의 차례가 되자 미리 부탁받은 조교 셋이 삼십 보 거리부터 다섯 보 간격으로 목각 인형 여덟 개를 쭉 세웠다. 하룬의 정면에서는 맨 앞 목각 인형만 보이게 종렬로 배치한 것이다.

 “이런! 저래서야 어떻게 암기를 던져 맞힌다는 거야?”

 가장 끝에 있는 목각 인형의 경우 무려 칠십 보 거리였다. 그 정도면 화살로 맞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비수는 가볍고 팔의 힘을 이용해 던지는 것이라 그 정도까지 가는 것도 힘들다. 더구나 첫 인형을 빼면 일직선상에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수련생 주제에 너무 객기를 부리는 거 아니야.”

 “움직이면서 암기를 던지면 맞힐 수야 있겠지만 제일 뒤의 것은 거의 칠십 보 거리나 되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저마다 생각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는 하룬이 너무 힘든 과제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칠십 보라면 실력 있는 궁수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더구나 가벼운 비수의 경우는 표적에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아까 세보나의 경우는 오러를 사용해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펼쳤지만 하룬은 마법사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하룬이 만용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룬의 귀에는 그런 우려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온 정신을 허리에 맨 암기대의 암기들과 표적에 집중한 상태였다.

 사실 짧은 수련 과정을 거친 하룬이 칠십 보 거리의 표적을 맞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령술이 있었다. 지난 며칠간 이 자리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십 번이나 중독되면서까지 싸가지와 함께 수련한 하룬은 집중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일렬로 늘어선 목각 인형의 정면에 선 하룬은 사선으로 비껴선 자세로 허리에 찬 암기대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왼손은 다음 비수를 꺼내기 위해 준비했다.

 “싸가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소리로 소환하자 싸가지가 홀연히 나타나 그의 어깨 위에 앉았다. 물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 주변에서 특이한 마나의 유동을 감지한 마법사들은 의외로 꽤 많았다. 고위급 마법사들이 이 자리에 많이 온 덕분이었다. 그들은 웅성거렸다.

 “마나의 유동이 일어났다!”

 “뭐지?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하룬은 주변의 소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특기인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해야 할 시간이었다.

 “흐흐, 드디어 쇼 타임인가? 주인의 부족한 부분을 이 싸가지가 채워서 저 인간들이 맛이 가도록 해 주지.”

 말하는 본새가 영 형편없는 녀석이지만 싸가지는 이미 하룬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수련 기간이 짧고 정령력도 아직 미약해 어젯밤 마지막 연습에서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싸가지가 경험한 하룬의 의지와 집중력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어떻게 자신을 불러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마나와 정령력에도 그의 독심과 끈기 그리고 집중력은 싸가지도 벌써부터 인정했다.

 “계의 실로 맺어진 계약에 따라 부르노니, 실프 소환.”

 “흐흐흐. 역시나 사기로군. 역시 주인은 사악해.”

 하룬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앞쪽 공간에 싸가지가 여덟 번에 걸쳐 작은 바람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비록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사람들은 바람의 정령 실프가 현신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 네미온이 정령 마법을 펼쳤을 때도 실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이 연출은 장내에 크나큰 반향을 이끌어 냈다.

 “정령이다!”

 “정령사였어!”

 “맙소사, 정령 마법이라니.”

 아무도 그가 정령 마법사라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기에 장내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정령은 정령사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하지 않으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싸가지가 여덟 번이나 움직이며 그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켰음을 알지 못했다.

 네미온의 존재가 그렇듯 정령사는 만나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마법사인 것이다.

 “여, 여덟이야! 어떻게……?”

 자신도 셋 이상을 불러내지 못하는 실프를 하룬은 단번에 여덟이나 소환해 낸 것처럼 생각한 네미온의 입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그의 주변을 돌며 작은 바람을 일으키던 싸가지가 비수에 달라붙었다. 녀석은 기특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실프라고 생각하게끔 비수를 눈에 띄게 파르르 떨리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랏!”

 하룬이 던진 비수가 마치 바닷물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맨 앞의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하룬은 다시 비수를 뽑았다. 그리고 싸가지의 힘이 작용하여 흔들리는 두 번째 비수를 두 번째 표적을 향해 날렸다.

 그의 손은 정확한 간격으로 비수를 날리고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드디어 마지막 비수가 그의 손을 떠났다.

 “흐흐. 믿으라고, 주인. 멋질 거야.”

 “수고했다.”

 “이제 내 가치를 확실하게 알았으니 말투와 태도에도 신경 좀 쓰라고. 그럼 내가 알아서 잘 키워 줄 테니까.”

 퍼억!

 “시끄러. 빨리 들어가.”

 하룬은 싸가지의 뒤통수를 한 대 쳐서 소환 해제시키고는 재빨리 해독약을 꺼내 먹었다. 앞에서 보았다면 이상하게 여겼을 테지만 표적을 향해 서 있던 터라 등을 보인 그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처음에 던진 비수는 거의 반원을 그리며 공중을 선회하여 천천히 날아갔고, 나중에 던진 비수 순서로 그 궤적이 짧아지고 빠르기가 빨라졌다.

 비수의 빠르기는 물론 그 비행 각도를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게으른 싸가지를 폭력과 폭언으로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여덟 자루의 비수가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수련생들과 내빈들의 눈은 어느새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입은 벌어져 닫힐 줄 몰랐다. 무생물에 불과한 비수가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대기 속을 각각 다른 경로와 다른 빠르기로 날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말을 잊은 것이다.

 탁!

 날아간 비수는 모두 여덟 자루였다.

 그런데 표적에 맞는 소리는 하나였다. 하나만 표적에 맞은 것이리라. 그 환상적인 비도술은 칭찬할 만하지만 표적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깝다. 결국 맨 앞의 표적만 맞았구나.”

 “그러게. 만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령을 이용한 암기술이라니 멋졌어.”

 사람들이 쑤군거리는 사이 하룬의 머릿속에는 안내음이 울리고 있었다.

 -정령 유도 암기술을 익히셨습니다.

 -심안 스텟이 1 증가합니다.

 -정령력이 30 증가합니다.

 그 순간 멀찌감치 대기하던 조교들이 표적으로 달려가 목각 인형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곱 명이 모두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목각 인형들을 관중이 잘 볼 수 있도록 옆으로 나란히 세웠다.

 와아!

 “최고다!”

 휘이이익!

 “끝내준다.”

 그제야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과 경탄성이 터져 나와 장내를 뜨겁게 달구었다.

 표적에 꽂힌 비수는 모두 여덟 개.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비수 여덟 개가 모두 다른 급소에 꽂혀 있었다.

 비록 급소를 표시하는 세 개의 작은 원 중 중심에서 빗나간 것들은 몇 개 있었지만 원을 빗나간 비수는 하나도 없었다.

 표적에 맞는 소리가 한 번만 들렸다는 것은 여덟 개의 비수가 동시에 표적을 맞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정령, 즉 실프들의 힘으로 각 비수의 빠르기를 조절해서 똑같은 순간에 목표물에 명중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정도라면 비록 정령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암기술로는 최고의 경지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까지 그 어떤 정령사도 암기에 정령을 실어 날렸다는 것은 들어본 사람이 없었다. 하룬은 상식을 깬 정령술의 새로운 응용을 보여준 것이다.

 정령사인 네미온은 물론 전통적으로 암기술을 구명의 수단이나 적을 습격할 때 공격 신호 정도로 사용하는 용병들로서는 새로운 세상을 본 것과 다름없었다.

 순수하게 탄성을 터트리는 수련생들과 달리 용병단과 길드의 고위층은 하룬의 암기술에 담긴 그 가치와 의미를 짐작하기에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무슨 정령술이 저렇게 정교해.”

 “무섭다, 무서워. 소름이 다 끼치네.”

 “저게 가능한 거야? 정령의 힘을 비수에 실을 수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데.”

 마치 뭔가에 홀렸다가 깨어난 표정으로 감탄사를 터트리는 내빈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난 상태였다.

 기초 과정을 이수한 수련생이 이렇게 정령의 힘을 사용해서 최상위 난이도의 고급 암기술을 보여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 친구, 누구라고?”

 “하룬이라고 했잖아. 피엘께서 직접 추천할 만하네. 정령과 암기술을 혼합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그런데 아직 그 어떤 용병단에도 들지 않았단 말이지?”

 사람들의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저런 암기술이 가능한지 몰라도 저 정도 실력이면 최소한 중급 용병 이상이었다. 거기다 기본적인 정령술의 효용은 덤이었다.

 검술이나 여타 다른 실력은 보지 못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특히 용병단장 몇 명은 눈을 빛내며 연방 주체할 수 없는 군침을 흘렸다.

 머리 좋고 눈치가 빠른 몇 명은 벌써 본부장과 피엘의 옆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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