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용병 기초 수련 과정 (6/278)
  • 《용병 기초 수련 과정》

     빰빠라밤! 빰빠라밤!

     "기상! 기상!"

     곤하게 잠자던 하룬은 나팔 소리와 함께 기상을 알리는 조교들의 고함에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은 평소 익숙하던 그의 방이 아니었다.

     '뭐, 뭐야?'

     꿈인가 싶었지만 이내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

     '아! 여긴 비욘드지. 그리고 난 이제 용병 아카데미에 온 거고.'

     몇 번 머리를 흔들어 잠에서 깨어나자 어제 벌어졌던 일들이 다 생각났다.

     "이크!"

     생각하는 사이 문이 급하게 열리는 소리들이 밖에서 들려왔다.

     하룬은 순간적으로 튕기듯 침대에서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어제 미리 매킨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에 수련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하룬의 방이 있는 건물을 포함헤 인접해서 지어진 세 건물 사이에는 수백 명이 들어갈 정도의 큰 공간이 있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마치 입학식 때의 풍경처럼 더러는 모여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안함과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주변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옷차림이었다. 옷차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 대도 상당히 다양해 보였다.

     "정렬! 이 수련생을 기준으로 10열 종대로 모여!"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앞을 주시하니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근엄한 용모의 사내가 보였다. 아마도 교관일 것이다.

     일부의 눈치 빠른 젊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고는 서둘러 앞쪽부터 열을 지어 섰다. 그제야 나머지 사람들도 다소 허둥거리며 그 뒤로 줄을 섰다.

     아직도 세 동의 기숙사 건물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경황이 없어 자세하게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여자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지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뛰어 나오는 사람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한 사람이 정면의 교탁에 올라섰다.

     "난 이번 과정을 맡고 있는 슐츠 교관이다."

     한눈에도 엄청난 실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외모의 중년 사내였다.

     약간 마른 몸매지만 쏘아보는 눈매는 독수리의 그것과 같았고, 세파를 이기며 만들어 왔을 강인한 인상에다 긴 흉터를 훈장처럼 온몸에 새긴 사내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분위기를 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그는 한동안 험상궂은 시선으로 수련생들을 쏘아보았다. 감히 그와 시선을 마주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중에는 제법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보였는데 그들도 슐츠의 날카로운 시선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다.

     "아주 엉망이군! 오늘은 첫날이라서 그냥 넘어가지만 내일부터는 지각하면 지옥을 보여 주겠다. 젠장! 이제까지 내가 가르친 기수 중에서 최악이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그의 태도에 교육생들은 주눅이 들었다.

     "이래 가지고 제군들이 제대로 용병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교육생들의 태도가 숙연해졌다. 그는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제야 굳었던 얼굴 표정을 약간 풀었다.

     "좋아! 어쨌든 오늘은 첫날이고 예정된 일정이 빡빡하니 그냥 넘어가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이 기초 수련 과정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용병질은 고사하고 제대로 세상을 살아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란 말이다. 여러분들 중 상당수가 용병 마법사 출신이거나 회계 혹은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용병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본 체력은 필수다. 아무리 레벨이 높은 마법사라도 기본적인 체력이 되지 않으면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몬스터 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하룬은 사실 어제 엘저에게 이 기초 과정을 소개받으면서 걱정했었다. 그야 워낙 부실한 체력 때문에 기초부터 수련할수록 다행이었지만 나이가 있기에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이다.

     용병들의 기초 과정이니 어리지만 체격은 엄청난 친구들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면면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의 나이가 그래도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 것이다.

     '주로 마법사들처럼 육체적인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 용병들을 위한 과정이었구나. 다행이다.'

     하룬은 그제야 사람들의 나이가 적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갔다. 아마 전투를 담당하는 용병들을 위한 과정이었다면 이런 기초 과정을 이수하는 이들의 평균 나이가 상당히 내려갔을 것이다.

     "자, 이제 일정을 설명하겠다. 한 번만 말할 테니 주의 깊게 듣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이 과정에 들어온 이상 여러분들은 모두 평등한 수련생 신분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릴 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 교관들은 여러분의 체력 향상과 기초 지식 습득을 위해 나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엄격하고 공정하게 대할 것이다. 그러니 연장자라고 혹은 마법사나 여자라고 대우받길 원하면 언제라도 나가길 바란다. 알았나?"

     "네!"

     수련생들이 크게 대답했다. 하지만 슐츠의 얼굴은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아직 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나 보군. 이해를 하지 못하면 대답이 작은 법이지. 빨리 하고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아침은 건너뛰겠군. 참고로 이곳 식당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출입구가 폐쇄된다. 그건 아카데미 학장이라도 예외가 없는 원칙이다."

     치사하게 먹는 거 가지고 학생들을 협박하는 건 여기나 현실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록 육체적인 수련이나 훈련은 없었지만 앞으로 3개워간의 기초 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수련복과 방어구 등 수련 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수령했다. 그가 이곳에서 이름 대신 불릴 번호는 123이었다. 모든 물품에 그 숫자가 쓰여 있었다.

     오후에는 각 과정에 대한 상세설명은 물론 현역 용병들에게 이 과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몇 번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가 버렸다.

     다행인 것은 보통 용병 훈련 과정과 달리 심하게 몰아붙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 참가한 이들이 대부분 용병 마법사들이나 회계원, 길드 행정 용병, 정보 용병, 치료사 등 무력을 그렇게까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련생들은 초장부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대부분이 육체를 거의 쓰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앞으로 기상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 정해진 대로 생활해야 하는 타이트한 단체 생활은 물론 육체적인 수련에 상당한 시간이 배정된 만큼 힘들 것은 불문가지였다.

     "후우, 앞으로 죽었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래도 체력 하나만은 좋아지지 않겠어요?"

     같은 조로 편성된 이들 중 옆방에 배정받은 용병 마법사 갈리와 친해졌는데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에 들어온 것을 후회한듯 얼굴색이 더 안 좋아졌다. 하긴 그는 수련받을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난 것 같아 보였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마을에 들른 용병 마법사의 꼬임에 넘어가 용병단에 입단해 그를 시중들다가 몇 가지 마법을 익혀 용병이 된 갈리는 올해 서른셋으로, 2서클을 마스터한 용병 마법사였다.

     다른 마법사들처럼 몸을 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갈리는 그동안 이 과정을 피해 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자신 때문에 몇 번이나 다른 동료들이 몬스터를 막다가 다친 것을 본 후로 결심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기야 하겠지. 하지만 몸을 굴리는 것은 딱 질색이라……."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벌써 울상이 된 갈리를 위로할 말은 없었다. 사실 하룬 그만 해도 수련 과정을 소개받으며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룬은 다른 동기생과 입장이 달랐다.

     굳이 간절한 소망이 아니더라도 처음 만난 그를 위해 선뜻 쉽지 않은 호의를 베푼 엘저를 생각하면 소극적으로 수련할 수 없었다.

     어쩌면 게임이기에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수련해야겠다고 마음먹는 하룬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근로 수련생들의 소집이 있었다.

     "흐음, 이번 기수는 근로 수련생들까지 어째 믿음직하지가 않군."

     근로 수련생들의 최종 감독자는 슐츠 총교관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 선 네 명 근로 수련생들의 면면을 보면서 한숨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같이 먹을 것도 못 먹었는지 바짝 마른 데다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군들은 비록 추천받았지만 수련비를 낼 돈이 없어 근로하는 대신 수련받는 조건으로 이곳에 입소했다. 고생을 각오하고 배움을 청한 것은 가상하나 수련만으로도 힘들 텐데 과연 끝까지 수료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군기가 확실하게 든 네 수련생들은 이 말을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나름대로 사정은 다르지만 각오만은 대단했다.

     "할 수 있겠나?"

     "네, 할 수 있습니다!"

     네 사람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지만 슐츠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일단 제군들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다섯 가지다. 수련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수업 전에 수련장으로 옮기는 것과 수련이 끝난 후 수련장을 정리하는 일 그리고 매 식사 시간이 끝난 후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 재빨리 음식물 찌꺼기를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는 일은 모두가 같이 한다."

     세 가지 일 다 듣는 것만으로 힘들 것 같았지만 다들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다른 두 가지 알은 분뇨 처리를 포함한 화장실 청소와 하수구 청소다. 이 일은 부정기적이다. 청소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지시할 테니 그때 하면 된다. 뭐, 운이 좋으면 과정을 수료한 때까지 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 기수에서 한 번씩은 있었으니 각오하도록."

     벌써부터 화장실 냄새와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다들 얼굴을 찌푸렸다. 앞의 세 가지는 몰라도 이런 일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얼굴 표정들이 심각해졌다.

     "당장 내일부터 제군들의 일이 시작되니 오늘은 인사를 나누고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이상!"

     슐츠 교관이 나갔지만 네 사람은 쉽게 얼굴을 쳐지 못했다. 어느 정도의 강도로 수련이 진행될지 모르니 마음이 착잡한 것이다.

     "다들 인사나 하지. 난 모글이야.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고 1서클 마법사지."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만 보면 서른이 가볍게 넘은 듯한 모글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 나이에 1서클이라면 좀 늦은 편이지만 얼굴을 보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룬입니다. 나이는 열아홉 살이고 마법사입니다."

     마법사들의 숙소에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이 마법사인 척 해야만 했다. 같은 마법사라는 말에 모글이 반가운 눈길을 던졌다.

     "메넌이라고 해요. 회계를 배우고 있어요. 나이는 스무 살입니다."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메넌은 하룬처럼 약해 보였지만 눈빛이 참 맑았다.

     "로즈라고 해요. 저는 치료사의 길을 걷고 있어요. 나이는 열일곱 살이고, 모글 오빠와는 사촌이에요.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네요. 오빠들, 잘 부탁해요."

     작은 몸과 귀여운 얼굴을 가진 로즈는 활달한 성격인지 처음부터 오빠라는 소리를 해서 메넌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따.

     "일단 내일부터 일을 해야 하니까 오늘은 교관님의 말대로 일찍 자고 아침 식사 후에 만나자. 내가 아는 형도 근로 수련생이었는데 처음 한 달 정도는 무척 힘들다고 하니 단단히 각오하자. 휴우,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오늘은 너무 힘드네."

     모글의 말대로 첫날이고 아직 본격적인 수련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도 모글이 근로 수련에 대해서 선배에게 들은 것이 있어 세 사람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네 사람은 잘해 보자는 취지로 가볍게 악수하고는 헤어졌다.

     하룬은 이틀째 밤에도 결국 로그아웃을 하지 못했다.

     장소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였는지 모르지만 침대에 앉는 순간 푹 뻗어버린 것이다.

     조금 전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벌써 기상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룬은 튕기듯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일 정신은 없었다. 밤새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편 그는 자신의 상태에 만족스러워했다.

     현실시간으로 따지면 5시간 반의 활동 후에 2시간 반 정도의 수면을 취하는 것인데 몸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숙면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된 것인지 이 비욘드의 시간에 몸이 적응해 버린 것 같았다. 평소라면 17시간 활동해 7시간을 자는 패턴인데 여기서는 그것도 3분의 1로 축소되어 버렸다.

     '이래도 몸에 무리가 없을까?'

     걱정이 되긴 했다. 사실 가상현실 게임을 하다가 의식을 잃어 뇌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과도하게 게임에 빠진 것을 막기 위해 강제 접속 종료가 있긴 하지만 기계적 결함인지는 몰라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는 경우들이 가끔 있었다.

     '오늘 밤에는 접속을 해제하고 나가서 벨에게 물어보자.'

     벨이 어떤 존재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일단은 인공지능을 가졌으니 비욘드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그녀를 통한다면 이 게임 같지도 않은 세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못 하고 수련장을 구보로 뛰는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손에는 수련용 철검을 들고 다리에는 작은 쇠구슬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찼기 때문에 더욱 힘겨웠다.

     하룬은 뛰는 중에도 손에 든 철검과 다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의 정보를 확인했다.

    ───

    수련용 철검

    등급: 일반

    공격력: 25~30

    내구력: 45/50

    무게: 5kg

    설명: 수련할 때 사용하는 날이 무딘 검이다. 부실하게 정련된 하급 철로 대량 제작되었으며 날이 없어 베는 것이 극도로 힘들다.

    ───

    수련용 주머니, 수반

    등급: 일반

    방어력: 20

    내구력: 62/80

    무게: 1kg

    설명: 기사들이나 전사들이 근육을 수련할 때 팔이나 다리에 묶는 수반 혹은 주머니이다. 근력과 지구력을 향상시켜 주며 장기간 사용하면 익숙해지므로 무게를 늘려주어야 한다.

    ───

     '칫! 차라리 확인하지 말걸.'

     대학교 운동장 크기의 수련장을 아직 잠이 채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열 바퀴나 뛰는 것은 이제까지 몸을 쓸 일이 별로 없었던 수련생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확인한 주머니와 철검의 무게는 총 7킬로그램이었다.

     하룬은 두 바퀴도 채 돌지 못하고 지쳐 버렸다.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땅이 자석처럼 그의 몸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 정도로 체력이 약했나 싶어 창피했지만 그의 뒤에는 수련생들의 절반 이상이 다리가 풀려 여기저기에 뻗어 있었다. 그야말로 저질 체력들의 집합소였다.

     이를 악물었다.

     첫날부터 중도에 포기하기는 싫었다.

     물론 분위기상 자신이 여기에서 누워 버린다고 해도 혼자서 욕먹을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워낙 허약하고 부실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안 돼!"

     멈추고 싶은 유혹이 그를 괴롭혔지만 자존심이 이를 악물게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마법사를 지망하거나 회계를 배운 사람들이지만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들이야 체력이 약한 대신 다른 잘하는 것이 있었지만 자신은 지금 상태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기대 이런 작은 일부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풀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가며 세 바퀴를 돌았을 때 하룬의 앞과 뒤에는 상당한 인원이 있었다. 즉, 그는 중간 정도였던 것이다.

     앞서 뛰는 수련생들도 힘이 드는지 땀을 흘리며 잔뜩 굳어 있었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수련생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벌써 바닥에 쓰러진 수련생들도 있고, 뛰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모두들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도대체 뭐야, 이 한심한 체력들은?"

     "흐흐…… 역대 최강이다! 이번 기수는 마법사들이나 치료사들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인물들이 많아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최악이야. 이크! 슐츠 교관님 이 가는 소리 들린다. 제길, 이런 약골들을 데리고 무슨 훈련을 한다는 거야?"

     두 보조 교관이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또렷이 들렸다. 그들은 굳이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수련생들을 비웃는 것 같지도 않았다. 원래 마법사들이 상당수인 이 과정 수련생들의 체력이란 뻔했으니 말이다.

     "이익!"

     하룬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자신이 너무나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남들이 열심히 공부할 때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반항하고 자퇴까지 했기에 결국 이 나이가 되도록 꿈도 없이 아무런 능력도 배양하지 못했는데 거기다 이렇게 한심한 체력까지 가진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싫었다.

     다리가 천 근처럼 느껴졌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숨을 쉬기가 괴로웠다.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눈에 들어간 땀들이 바늘처럼 눈동자를 콕콕 찔렀다.

     '수련은 이게 끝이 아니야. 거기다 다른 수련생들과 달리 일도 해야 한다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이후로도 수련 시간은 엄청나게 길게 남았다. 그리고 수련 외에 할 일도 있었다.

     여기서 지치면 당장 오늘부터 이후의 수련은 물론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들지 모른다. 나머지 일정들을 위해 여기서 적당히 그만두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완주하고 만다!'

     이제껏 이런 유혹에 수없이 넘어간 결과가 지금의 허약한 체력과 무기력한 자세였다. 만약 현실이라면 벌써 굴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가상현실. 설사 죽는다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오히려 이제껏 가지지 못했던 독기를 만들고 있었다.

     '뛸 수 있어. 뛰어야 해. 달라져야 한다고.'

     하룬은 약해지려는 자신에게 악을 쓰며 멀리 보지 않고 두세 걸음 앞만 바라보고 거대한 바위를 등에 진 것처럼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무섭게 박동 쳤고, 다리 근육은 끊어질 것처럼 고통을 호소했다.

     '넌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 아니야. 너도 뛸 수 있다고. 여기서 질 수는 없잖아. 평생 그렇게 살 거야!'

     나약한 자신의 그림자에게 얼마나 악을 썼을까. 어느 순간부터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흐느적거리면서도 용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자신이 아주 생경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제 앞에는 이십여 명밖에 없었다. 그의 앞을 달리던 수련생들 중 상당수가 바닥에 누워 버리거나 뒤로 처진 것이다.

     '내가 아직 달리고 있어.'

     사실 어느 정도 체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평생 살면서 남들에 비해 무엇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던 하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많은 수련생들이 자신의 뒤에 있다는 것이 감회가 새롭고 감격스러웠다.

     이제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다. 근육이 찢기는 듯 격통이 어느 결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던 심장도 많이 안정되었다.

     분명 자신이 맞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힘든데도,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을 게 분명한데도 그의 육체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가슴을 채운 것은 아주 신선하고 처음 맛보는 감정이었다.

     황홀감!

     그랬다.

     처음 느낀 것이기에 잘 모르겠지만 남들이 황홀하다고 표현하는 그런 기분이리라.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만족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순간의 희열이 그의 풀린 다리를 꾸준히 달리게 만들었다.

     하룬은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그 공간, 그 시간의 주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존재감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작지만 한 공간의 주인으로 그곳을 장악했다는 의식이 분명히 들었다.

     "그만!"

     하룬은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멈추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교관의 목소리를 듣고 땀 때문에 흐릿해진 눈을 크게 떴다.

     슐츠 교관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잘했다. 제법 근성이 있군."

     슐츠는 무너지려는 하룬의 몸을 조심스럽게 붙잡아 자리에 눕히고는 다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잠시 잊었던 근육에서 느껴지는 심한 통증에 하룬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낮은 비명을 질렀다.

     "참으라고. 이렇게 풀어 주지 않으면 며칠 동안 꼼짝도 할 수가 없어. 123번 수련생! 아주 잘해 냈다. 이렇게 오래 달려본 것은 아마도 처음일 텐데 스스로를 잘 통제했어."

     "아악! 아!"

     "후후, 번호가 1로 시작하는 걸 보니 마법사동 출신이군. 아주 오랜만에 첫날 마법사동에서 완주자가 나와 본 교관은 기쁘다. 기대하지. 아, 적어도 5분 정도는 계속 주물러 줘야 할 거야."

     "가, 감사합니다."

     슐츠의 안마가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하룬은 더듬거리면서도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정신이 들고 보니 그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을 벌였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룬의 일그러진 얼굴 속에서는 희미한 미소가 보였다.

     '그런데 아까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뭐였지?'

     하지만 생각을 계속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혹사당한 근육을 주무르는 동안 비명을 억제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쉴 새 없이 그를 엄습한 것이다.

     이미 도착한 이십여 명의 수련생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법사동 출신인 하룬을 향해 다양한 감정을 담은 시선을 던졌다.

     시선이 고통스러워서 그럴까? 이어진 하루 일정은 정말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끌고 겨우 아침을 먹은 후 수련생들은 휴식을 취했다. 물론 하룬을 비롯한 네 근로 수련생들은 그들처럼 편하게 쉴 수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했다.

     비록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이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무거운 양동이를 양쪽에 걸게 만들어진 철봉을 어깨에 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요리 조장인 핸들의 시범을 한 번 보고 철봉을 맨 네 사람은 몇 걸음에 한 번씩 쉬어야만 했다. 그 순간마다 네 사람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국물이 섞인 음식물 쓰레기의 무게도 무게지만 각종 음식들이 썩어 가는 그 오묘한 냄새는 그야말로 코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근처의 수련생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살인적인 그 음식물 썩는 냄새 때문에 네 수련생들을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은 다소의 연민에 이어 금방 혐오를 띠게 마련이었다.

     "모글 형, 죽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완주하지 말고 차라리 한두 바퀴를 돈 후에 주저앉을 걸 그랬어요."

     메넌이 또 열 걸음도 못 가서, 뒤따르는 모글에게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억, 헉. 난 네 바퀴째에서 포기했는데도 죽겠다. 이러다간 온몸의 뼈가 다 부서지고 말겠어."

     마법사인 모글은 말할 힘도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용케 메넌의 말을 받아 주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절반도 안 되는 철봉을 멘 로즈의 힘겨운 모습을 본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무게도 감당하지 못해 연방 휘청거리는 로즈의 연약한 모습에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들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시뻘겋게 피가 몰려 있었다.

     '할 수 있어. 해야 한다고. 이제 나약한 그림자는 털어 버리자고.'

     하룬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다.

     '한 걸음씩 가는 거야. 그럼 아까처럼 갈 수 있어.'

     이미 한차례 혹사당한 그의 나약한 육체는 벌써부터 쓰러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아까의 경험을 떠올리는 순간 힘을 잃었다.한 번의 성공이 가져온 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하룬은 쉬지 않았다. 다른 세 사람처럼 몇 걸음 가다가 쉬는 패턴이 아니라 느리지만 쉬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철봉의 무게가 목과 등을 사정없이 내리눌렀으나 한 번의 성공으로 용기를 얻은 그의 의지는 조금씩이지만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움직인 하룬은 네 사람 중 가장 빨리 하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제까지 들고 온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질 정도였다.

     작은 호수만큼 큰 하지장은 절반쯤 채워진 음식물 쓰레기들이 썩어 가면서 내뿜는 살인적인 악취와 거기에 기생하는 수많은 종류의 징그러운 벌레들 때문에 한시도 있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룬은 이제까지 메고 온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벼워진 철봉을 다시 어깨에 올렸다. 그동안에도 몸은 고통의 신응소리로 가득 찰 정도였지만 지금은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행군이 있었다.

     행군은 말이나 마차를 타는 경우도 있지만 용병들의 기본적인 이동 수단이 도보이기 때문에 마련된 과정이었다. 아침부터 무리한 수련생들은 또다시 행군 도중에 퍼지기 일쑤였다.

     "할 수 있어!"

     힘들고 더워서 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고통스러워 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하룬은 이를 악물었다. 길바닥에 누워버리는 다른 수련생들처럼 뻗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는 자신과의 싸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까지 합해진 상황이었다.

     물론 오해였찌만 아침 구보를 할 때 마법사 출신 수련생들 중 유일한 완주자였기에 교관들은 그를 간간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미약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고, 개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으윽, 제기랄! 난 더 이상 못 가겠다. 너라도 포기하지 말고 가 주라. 우리 기수의 마법사 출신들이 역대로 가장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자존심 상하고 싫으니까. 알았지, 하룬? 마법사들이 근성이 있다는 것을 네가 보여줘."

     갈리는 하룬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느라 힘든 판에 옆에서 염장을 질렀다.

     "갈리 형, 조금만 더 같이 가요."

     "아니야, 난 못 해. 내 체력은 이게 고작이야, 제기랄."

     갈리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곁에 서서 잠시라도 다리를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하룬은 억지로 발을 떼었다.

     이미 근육은 혹사당했고, 끔찍한 고통을 느꼈기에 더욱더 힘겨웠다. 달리 생각하면 이미 두 번이나 결코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은 고통들을 극복한 경험이 있기에 또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까도 해냈는데 못해 낼 것은 없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룬은 모든 것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멀리 보지 않고 몇 발 앞의 땅만 보고 힘겹지만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몸은 의지의 통제를 쉽게 벗어나고 있었다.

     '제길! 거의 다 왔는데…… 하지만 더 이상은 못 가!'

     목적지에 걸린 용병 아카데미 깃발이 흐릿하게 보였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지만 다리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걸음을 멈추는 순간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지구력 스텟이 생성됩니다.

     '우웅? 무슨 소리?'

     힘든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너무 현실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이 상황이 가상현실 게임임을 잊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들리는 안내음이 정신이 확 나서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

    이름: 하룬

    종족: 인간

    직업: -

    레벨: 2

    칭호: 용병 수련생

    생명력: 170

    마나: 180

    힘: 5    체력: 7

    지식: 9   지혜: 8

    행운: 7   민첩: 5

    지구력: 1  S.P.: 0

    남은 스텟: 2

    ───

     '언제 체력과 지혜가 이렇게 오른 거지?'

     생각해 보니 아까 아침에 열 바퀴를 다 돌았을 때도 이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때는 너무 힘들고 지친 상태라 고통스러워서 확인도 못 했다. 아마 그때 체력과 지혜 스텟이 올랐나 보다.

     하룬은 레벨 업으로 얻은 스텟 두 개를 행운에 투자했다. 사실 앞으로의 수련을 위해서는 다른 스텟을 올리는 것이 낫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이 현실감 넘치는 매력적인 세상을 접하게 된 계기가 바로 행운 때문이었기에.

     '그런데 이런 식으로도 스텟이 오르는 건가?'

     다른 게임에서는 주로 사냥과 퀘스트를 반복함으로써 스텟이 오르고 경험치가 쌓이면서 결국 레벨이 상승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너무 현실감이 강해서 수련을 받는 것만으로도 레벨과 스텟이 오르고 있었다.

     일단 레벨 상승에 따른 스텟 상승은 레벨당 2란 사실도 처음 알았다. 특정한 행동을 반복함에 따라 관계있는 스텟이 상승한다는 것은 다른 게임과 동일했다.

     더불어 실제 의지와 지혜 스텟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물론 레벨 상승이 목표가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수련하다 보면 남들이 사냥이나 퀘스트를 수행해서 레벨이 올라가는 것을 부러워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레벨이 오르고 생명력과 모든 스텟이 다시 채워진 것을 당장 눈에 띄게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힘들어 죽고 싶을 정도였지만 레벨 업을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몸의 상태가 회복된 것이다.

     하룬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다리를 놀렸다. 힘들면 다리를 떼는 시간을 여유있게 분배하는 요령도 생겼다. 스스로를 믿기 시작한 효과는 점점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용병 아카데미를 출발해서 성 밖 훈련장까지의 행군을 마법사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도착했다. 이제는 도착하고 나서 체조로 가볍게 몸을 풀어 주고 뭉치지 않게 다리를 마사지하는 여유까지 부리는 하룬이었다.

     "하도 비리비리해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주 제법이네, 저 친구."

     "하하, 원래 저렇게 마른 체질이 독기가 있지 않나."

     조교인 맥스와 타미는 자신들이 맡은 A동에서 오랜만에 행군 이수자가 나와 함박웃음을 지었다. 조교들은 수련생들의 수련 결과에 따라 성과가 정해지기 때문이었다.

     사실 각 동은 두 개로 분리되어 남녀가 따로 건물을 쓴다. 그중에서도 A동은 마법사의 길을 지향하는 수련생들의 숙소였다.

     행정과 회계를 배워 용병대나 길드의 운영, 행정 업무를 맡을 B동의 수련생들은 말할 것도 없이 향후 전 대륙에 정보 업무를 위해 파견될 C동의 수련생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저질 중의 저질 체력을 가진 수련생들이다.

     그런 이유로 역대로 A동에서는 이 과정을 우수하게 이수한 수련생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아무리 용병이라도 마법사는 마법사. 그들은 육체를 단련하는 법이 없었다. 하기야 주문 하나를 이해하고 마법을 구현하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운동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었다.

     "근데 123은 몇 서클이려나?"

     "나이로 보아 2서클에는 입문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중에라도 도움을 받으려면 지금부터 제대로 챙기자고. 마법사들은 성질이 좀 고약해서 그렇지 은원은 확실한 족속들이니까. 게다가 저런 근성이라면 나중에 한자리 톡톡히 할걸."

     하룬은 자신이 마법사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그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한순간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무사히 행군을 마쳤다는 성취감과 목적지에 들어와 완전히 뻗어 버리는 다른 수련생들을 보며 약간의 우쭐함에 젖어 있던 그는 이내 자신이 남들과 다른 점을 떠올렸다.

     '겨우 이걸로 만족하고 있었다니 나도 정말 한심하구나. 지금만 봐도 저 친구들은 생생한데.'

     하룬은 행군을 마치고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는 일단의 수련생들을 보며 자기반성을 했다. 그들은 마법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 분야에서 상당한 지식을 쌓은 수련생들이었다. 반면 그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인 것이다.

     점심시간까지 그래도 모든 수련생들이 다 도착했다. 물론 그중 삼분의 일가량은 조교들이 마차에 태워서 데려오긴 했지만 부상자는 없었다.

     야외에서 식사하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그것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있는 수련생들은 극소수였지만 말이다.

     하룬은 밖에서 식사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유니온에서는 이렇게 밖에서 식사하면서 주변 경관을 즐길 곳은 S나 A구역 외에는 없었다.

     좋았던 것은 그야말로 잠시였다. 배가 부르고 몸이 나른해진 상태에서 받는 오후 수업도 고되기는 오전과 마찬가지였다.

     체력을 올리기 위한 수련은 다양했다. 산을 타거나 각종 기구를 사용하여 근력을 키우는 수련들이 마련되었다. 장애물을 넘거나 통과하는 코스도 있었다.

     조교들의 시범을 봐 가면서 조별로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산과 수련장을 오가며 기어다니고 뛰어다니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하룬에게는 보람 있는 하루였다. 비록 레벨은 더 오르지 않았지만 지구력과 체력 그리고 힘 스텟이 하나씩 올랐던 것이다.

     수치로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고, 한 스텟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 평가되겠지만 그래도 수치화되어 오르는 스텟의 변화는 하룬에게 더욱 힘을 내게 만들었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야 겨우 오후 수업이 다 끝났다.

     "아이고, 죽겠다!"

     "앞으로 세 달 동안 매일 이렇게 지내는 거야? 난 못 해."

     "히잉!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고 정말 너무해."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지쳤는지 제대로 자세를 유지하고 서 있는 수련생들은 몇 명 되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련복을 착용한 상태로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것도 잠시, 무서운 슐츠 교관이 강렬한 포스를 풍기며 나타나자 이젠 얼마 걸리지 않아 정렬하는 수련생들이었다.

     "모두 수고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오늘과 같은 식으로 여러분들의 허약한 육체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용병 생활을 해 나가면서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몸으로 익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수련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힘들 테지만 여러분을 위해 소중한 돈을 들여서 본 과정에 입소시킨 대장이나 단장들의 기대를 생각해서 견뎌주길 바란다. 이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설마 집으로 가는 도중에 쓰러지는 탕아는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

     슐츠 교관의 말에 수련생들은 거의 일제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부터 매일 이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것도 끔찍했지만 당장 수련으로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육체로 기숙사까지 갈 일이 아득했다.

     그나마 하룬은 동기들과 함께 편하게 숙소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할 일이 더 있었던 것이다.

     점심 식사는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그 잔반들은 거대한 나무통에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수련이 다 끝나면 수레로 끌고 와야만 했다. 수련장으로 갈 때는 너무 무거워서 말을 사용해서 운반하지만 일이 끝나면 곧 돌아갔다.

     힘든 수련 때문에 모두들 많이 먹기에 남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남은 음식과 잔반이 든 나무통을 수레로 운반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교대, 교대해 줘!"

     평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흙길이니 힘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제 막 수레를 끌기 시작한 메넌이 벌써 교대를 요청해 왔다.

     하룬을 제외한 세 사람은 오늘 아침 식사 이후로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겨워했다.

     "하룬, 네가 앞에서 끌어. 우리가 뒤에서 밀게. 그나마 네가 힘이 제일 좋은 것 같으니까 고생 좀 해 줘."

     그도 죽을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수련을 받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글의 말대로 그래도 자신의 상태가 가장 나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휴우. 알았어요, 형."

     하룬은 정말 싫었지만 다 죽어 가는 꼴을 하고 목소리마저 갈라진 모글의 말에 수레의 앞을 맡았다.

     벌써 수련생들의 선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간 상태였다. 이렇게 질질거리다가는 저녁 식사를 못 할 수도 있다.

     '그럼 안 되지.'

     이제 하룬이 믿는 것은 벨밖에 없었다.

     양부의 메시지대로라면 그 많은 식재료와 약초들이 몸의 필요한 성분들을 자동으로 보충해 줄 것이다. 물론 그것도 그가 게임에서 식사를 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미 하루가 채 되지 않았는데 얼굴이 누렇게 뜬 세 사람은 잠이나 휴식이 먼저일지 모르지만 하룬은 식사가 최우선이었다. 어차피 공동 책임인 일이니 피할 수도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어깨와 등 그리고 목덜미가 멍 들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어깨와 허리 그리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힘들기는 하겠지만 근력과 지구력은 좋아지겠어. 견디자. 어차피 이런 모든 일들이 다 나에게는 수련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없던 힘이 솟았다.

     하룬이 앞에서 끌고 세 사람이 뒤에서 미니 제법 속력이 붙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룬은 스스로에게 만족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잘 견디고 이전과는 다른 끈기와 힘을 발휘하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더구나 한계 상황이 와서 절로 다리에 힘이 풀릴 때는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힘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지구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그가 게임의 유저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트겹ㄹ한 이점이었다. 비록 어떤 일이 일단락되어 휴식을 취하기 전에는 레벨이 오르지 않지만 스텟의 경우는 중간에라도 경험치가 채워지면 올라서 그를 기쁘게 해 주었다.

     네 사람이 힘을 합쳐 숙소로 돌아온 것은 식사 시간이 막 끝나려 할 때였다. 세 사람은 워낙 지쳐 식사도 포기하려고 했지만 아직 남은 일이 있어 억지로 식사를 해야만 했다. 바로 저녁 식사 후의 잔반 처리였다.

     "오빠는 그게 입으로 들어가요?"

     "그래, 내 말이."

     로즈가 신기하다는 듯 물을 정도로 하룬은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넣었다. 비록 입은 깔깔하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것들이 전부 필요한 영양분으로, 그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먹는 것이다.

     "먹어야 힘을 쓰지. 너도 생각은 없겠지만 먹어 둬."

     하룬은 그러헥 로즈에게 말해 주고는 음식을 먹었다. 다행히 게임이라서 그런지 급하게 먹는데도 체하거나 거북한 느낌은 없었다.

     그렇게 나머지 세 사람의 경악스러워하는 시선을 받으며 식사를 마친 하룬은 누구보다 무거운 음식물 쓰레기를 매단 철봉을 지고 하루의 마지막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악, 학! 나 살아 있기는 한 거냐?"

     모글은 결국 음식물 쓰레기 하차장 앞에서 대자로 뻗고 말았다.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일까지 끝냈다는 생각에 다들 시체처럼 누워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빠들, 나 내일 아침에 안 보이면 밤새 앓다가 죽은 줄 알아."

     "나도."

     로즈와 메넌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방에 돌아가서 씻고 나서 그냥 자지 말고 근육을 마사지해 줘야 해. 그러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걷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하룬은 슐츠 교관에게서 들은 대로 조언해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나마 자신이 가장 나은 상태였다.

     "너 보기보다 의외다. 뼈밖에 없는 그 몸의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거니?"

     모글이 신기한지 그렇게 물었을 때 하룬은 어두운 하늘을 보며 싱긋 웃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을 때도 있네. 푸훗!'

     "형, 저건 체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독기에서 나오는 거야. 아까 힘쓸 때 하룬의 눈 봤어? 마치 지옥 불처럼 이글거리던걸."

     메넌의 말에 다들 상체를 일으켜 하룬을 쳐다봤다. 정말이냐는 듯.

     "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이게 내가 쥔 마지막 기회니까. 이번에도 내 자신에게 지면 평생 패배자로 나약하게 살아갈 테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어 버리고 말겠어."

     강한 의지가 담긴 하룬의 말에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빈 하늘만 쳐다봤다.

     나름 사연은 달라도 그들의 처지 역시 하룬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이 수련 과정이 무척이나 중요한 기회였다.

     "하룬, 너 멋있다. 우리도 힘을 내자. 우리나 하룬이나 뭐가 다르냐? 몸으로 따지면 내가 하룬보다 더 나은데 난 죽는 소리나 했으니. 우리 조금만 힘내자.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뭐, 누구는 처음에 우리만큼 힘들지 않았겠냐?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와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고 있는 희망을 위해 독을 품고 덤비자."

     모글의 자기반성에 이은 결의에 찬 각오에 다들 이를 악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각오와 동료애로 위안받은 하룬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충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련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이었다.

     '오늘은 로그아웃해야지.'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다. 온몸의 근육과 뼈들이 움직일 때마다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잠시 앉았다가 일어나니 더 힘들었다. 그냥 이대로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래 가지고 기초 과정을 수료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하룬은 늘어지려는 몸과 마음을 억지로 긴장시키며 사흘만에 접속을 해제했다.

     화아악.

     눈을 뜨니 약한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새 비욘드의 세상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

     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캡슐이었다.

     하루 만에 돌아온 현실은 마치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익숙한 자신의 방도 아니고 많은 선이 달린 접속기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이 그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하루 만이네요.

     맑고 귀여운 목소리.

     벨이었다.

     "벨?"

     -네, 저예요. 오래 기다렸어요.

     인공지능은 다 이런가? 자아를 가진 존재라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리움과 기쁨이 희미하게 풍겨 나왔다.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로 돌아온 하룬은 기분이 좋아졌다.

     -비욘드의 세상은 어땠어요?

     "대단했어. 마치 현실 같았어. 돌아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과연 그렇군요.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해서일까, 그녀의 대답이 시무룩했다.

     정이 별로 없는 성격이었지만 눈칫밥을 먹으며 커서 그런지 하룬은 남의 기분을 잘 알아채는 편이었다.

     "벨이 없었다면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거야."

     -후후후.

     그제야 들리는 낮은 웃음소리에서 왠지 빛이 났다.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기쁨의 향기가 맡아졌다.

     '이젠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흰소리나 할 정도인가, 내가? 그렇게 외로웠을까?'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언제나 혼자였던 하룬에게 벨은 태생적으로 같이한 가족과도 같은 다정하고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터울이 많이 나는 귀여운 여동생을 대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벨이 언제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지?'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형체도 없는 전자기적 존재에게 인간만이 가지는 정情을 구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에는 별일 없었어?

     -없었어요. 원래 이래 왔나요?

     아마도 인간관계를 묻는 것이리라. 찾아올 사람도 없고, 연락 올 곳도 없는 하룬이었다.

     "거의 항상……."

     -저와 같네요. 저도 늘 혼자였어요.

     "벨이?"

     -저는 태어난 지 꽤 오래됐거든요.

     그랬었나? 만들어진 것은 한참 되었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의식이 깨어 있었다는 건가? 아니, 자아가 있었다는 이야긴가?

     벨에 대한 것은 전문지식이 없는 하룬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럴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상책이다.

     -정민, 아니 하룬 님에게 예속된 존재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가이아 님의 그늘 한구석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었어요.

     "그랬구나."

     분명히 같은 인간은 아닌데 묘한 동질감과 친밀감이 느껴졌다.

     인간은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낀다. 그런데 벨은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의 감정을 거의 다 느끼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가 느껴왔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하룬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이 공연히 감정적이 되는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참, 비욘드에 대해서 정보는 모아 놓았어?"

     -그럼요. 그런데 유저들의 반응이 상당히 격렬하더군요. 처음 분위기는 완전히 무슨 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어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같이 게임을 시작한 유저들 대부분이 접속하고 얼마 되지 않아 흥분한 상태로 접속을 종료했다.

     "이제까지 내가 알아 온 게임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아. 분명히 게임의 요소는 있는데 왠지 게임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세상으로 여행을 간 느낌이었으니까."

     -호호호, 제대로 경험하셨네요.

     "제……대로 경험했다고?"

     -네, 캡틴이 비욘드에 접속하고 나서 나름대로 정보를 취합해 봤어요. 처음에는 불만 사항들이 폭주하더군요. 도대체 사냥은 어떻게 하느냐, 퀘스트는 있는 거냐? 비욘드가 열린 지 불과 서너 시간도 되지 않아서 넥컴월의 서버가 불안할 정도로 불만 사항과 의문 사항들이 폭주하더군요.

     그건 당연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그의 경우만 해도 얼마나 당황했던가?

     -게임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고 나서 넥컴월은 너무 많은 불만에 당황했는지 아니면 미리 예정되어 있었는지 몰라도 비욘드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했어요.

     넥컴월 같은 세계적인 초거대 기업이 그 정도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니 아마 예정된 것이리라.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매스컴에서 난리 나게 만들어 비욘드에 별 관심이 없었던 유저들에게는 한순간에 인지도를 올리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몰라도 벨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아마도 캡틴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 도무지 게임 같지 않은데 주변 환경이나 NPC들 그리고 유저들이 맞닥뜨린 세계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거든요.

     "맞아, 그랬어."

     -그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게임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또 다른 판타지 현실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비욘드다! NPC와 인간을 구별하지 않고 또 하나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든 세상이 바로 비욘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게임 시간으로 사흘 동안 비욘드의 세상을 제대로 경험한 하룬은 그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했다.

     다른 건 몰라도 생생하고 사실감 넘치는 엘저와의 만남이 그랬고, 용병 아카데미에서 현재 경험하는 기본 수련 과정이 그랬다. 지금도 느껴지는 온몸의 고통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또 다른 유저가 자신과 같은 경로로 그런 훈련을 받고 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다른 게임들은 유저들을 위한 것이 아니면 그렇게 세밀하게 프로그램화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현실적인 상황을 겪거나 보고 나면 그게 게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이 게임은 출시 하루 만에 벌써 가입자가 오백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어요. 이미 기족의 가상현실 게임에 질려 있던 사람들은 오히려 유저들의 불만 사항에 혹해 찾아오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요.

     비욘드에 접속한 유저들은 자신이 마치 두 개의 삶을 사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공식처럼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얻고 명성을 쌓아 랭커가 되는 그런 상식적인 게임이 아니다. 연극이나 영화처럼 극본대로 예정되어 있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치열하고 생생한 삶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하는 사람도 어느 때는 자신이 걷지 않았던 길을 걸었으면 하고 바란다. 더욱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만약에 주어진다면 다른 삶을 경험하기를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그걸 비욘드의 세상은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직 비욘드의 세상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드러난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이는 비욘드로 오라!' 넥컴월이 외치는 이 구호는 사람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어요.

     "그럴 거야."

     제대로 한 번만 경험하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고 획일적인 게임에 질린 사람들은 이제 비욘드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게임의 강자 넥컴월은 역시 위대하다.

     -한 가지는 레벨 업에 관계된 것이에요.

     벨의 말에 하룬은 눈을 빛내며 그녀의 입을 바라보았다.

     -비욘드에서는 수련 중에는 상관없지만 몸을 움직이거나 전투를 벌이는 중간에는 레벨 업이 되지않는대요. 전투 중에 레벨 업이 될 것을 예상하고 능력보다 우위인 몬스터와 상대하던 여느 게임의 방식에 길들여진 유저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넥컴월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에요.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전투 중에 갑자기 레벨 업이 되면 생명력과 마나가 가득 차서 리얼리티는 떨어지게 된다. 현실감을 강조한다면 당연한 설정일 수도 있다.

     -또 퀘스트가 있긴 하지만 레벨이 더 오른 상태에나 가능하대요. 단순한 NPC의 부탁은 퀘스트로 치지 않고 거래로 본다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각 게시판과 정보 사이트들을 통틀어 퀘스트를 받았다는 유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렇군."

     목표가 남들과 다른 그와는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냐용은 가볍게 넘기는 하룬이었다.

     -그리고 레벨 업을 위해 사냥터로 나가기 위해서는 수련장을 이용하거나 비욘드의 세상에 적응해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유의할 사항이에요. 적어도 레벨 5는 넘어야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정해 놓았어요.

     그런 거라면 일부 게임에서 이미 채용한 바였다. 실력도 없이 접속하자마자 사냥터로 향하는 유저들의 기량을 일정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서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전직 시스템이에요. 비욘드는 레벨 10에서 1차 전직, 100에서 2차 전직, 250에서 3차 전직을 하게 되는데 생산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직업을 위한 전직소가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그건 게임 도우미에게 들었어."

     -그 전직소들이 있는 곳은 거점 도시들로 한정되어 있어요. 다만 예외가 있는데 전직에 필요한 소울 포인트가 충분히 쌓인 경우는 NPC에게 직접 스킬을 전수받거나 사승 관계를 맺는 것으로 전직이 가능해요.

     "그럼 스킬 북은 전직과는 관련이 없나?"

     -네, 1차 전직에는 해당이 없어요. 전직소에서 파는 스킬 북이나 몬스터에게서 드물게 획득한 스킬 북으로도 스킬은 익힐 수 있지만 전직은 불가능해요. 1차 전직은 앞서 말한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해요. 물론 2차 전직부터는 좀 다르겠지요.

     이제 비욘드에서의 전직에 대한 의문은 없어졌다. 하룬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럼 액티브 스킬은?"

     -그건 가능해요. 하지만 스킬을 정확하게 발동하려면 각 스킬마다 최소한의 경험을 하도록 설정해 놓았어요. 그래서 다른 게임에 비해서 수련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그렇구나. 역시 떠돌던 이야기가 맞았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은 없다는 거지요.

     "흐음. 게임 요소보다는 리얼리티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이군. 유저들만 즐기는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라 NPC들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세상을 경험하라는 거군."

     -빙고! 정확해요, 캡틴! 넥컴월이 공지한 것과 어쩜 그렇게 똑같을 수 있죠?

     벨은 그것이 신기했나 보다.

     하지만 이 정도 내용까지 파악한 유저들은 부지기수일 터였다. 확실한 것은 다른 게임처럼 사냥에만 열중하지 말고 NPC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 비욘드의 세상을 즐기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캡틴은 벌써 수련을 시작한 건가요?

     "으응? 그걸 어떻게 알았어?"

     -후후, 쉴 새 없이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더군요. 끙끙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움직이더니 밤에는 근육통을 느끼는지 고통의 신음을 내는 것을 몇 번이나 봤거든요. 그리고 벌써 꽤 많은 약재가 캡틴에게 투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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