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안녕! 안녕? (1)
“실장님!”
“어. 왜?”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뒤를 돌아보니 한석호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한석호는 내가 배우 전담으로 부서를 이동 후 뽑은 매니저였다.
홍승기 매니저로 붙여놨는데, 애가 참 싹싹했다.
나는 부서 이동 후 회사 내에 있던 배우 세 명을 설득해 작품을 시작했다.
처음은 쉬고 있던 이예진을 꼬드겨 시작했고 그다음으로 홍승기, 안재성 순이었다.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 전부 흥행하지는 못했다.
특히 중간에 작품을 고르고 진행할 때 내 판단으로 밀었던 작품이 있었다.
안재성의 차기작이었는데 대차게 말아먹었다.
작품은 괜찮다고 봐서 진행했는데 여기에 얽혀 있던 게 너무 복잡해서 배가 좌초된 케이스였다.
안재성은 그럴 수도 있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항상 미안했다.
“아, 이건… 예전 내가 맡았던 그룹. 그때 송별회 사진.”
“어? 스타즈네요. 언제 적이에요?”
한석호에게 보고 있던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자 한석호가 놀라워했다.
스타즈.
지금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탑클래스 걸그룹이다.
올해로 4년 차.
지금 재계약 시즌으로 알고 있는데 결과를 모르겠다.
얼핏 안혜지에게 듣기로는 각각 소속된 회사에서 욕심부리고 있다던데.
물론 애들은 재계약을 희망하는 편이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스타즈 단톡방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활발했다.
지금 와서는 애들의 힘이 세다 보니까 어찌 됐든 애들의 의견인 연장 쪽으로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2년 정도 됐나…?”
“그럼 2년 전에 지금 여기로 오신 거예요?”
한석호가 신기하다는 듯 물어왔다.
“응. 내가 이야기 안 해줬나? 부서 생긴 것도 내가 오고 나서부터야.”
“진짜요? 그런 이야기 좀 해주시지….”
“굳이 그런 걸 알려서 뭐 하냐.”
“재밌잖아요.”
한석호가 투덜댔다.
스타즈를 담당했던 때와 달리 배우 부서에서는 서로 교류할 기회가 적었다.
배우는 개인 전담으로 붙기 때문에 총괄로 작품 이야기할 때 빼곤 다 개인 전담 매니저가 알아서 하기 때문이었다.
한석호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현재 우리 회사 배우는 총 넷이었다.
대표 간판 남녀 배우로 이예진, 홍승기. 그리고 바로 그 밑에 안재성과 송민희. 이렇게 넷이었다.
송민희는 내가 부서 이동하고 예전에 계약 문제가 걸려 있다는 걸 생각해내 연락을 해서 영입하게 된 케이스였다.
송민희를 영입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김명성 매니저까지 같이 이동해왔기 때문에 배우 부서에는 총 세 명의 매니저가 있었다.
실장(진) 김현진.
팀장(진) 김명성.
매니저 한석훈.
이예진과 안재성은 내가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둘 다 작품을 동시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매니저 한 명을 더 뽑아야 했다.
부서 내 사람들끼리 소통이 너무 부족했나.
“그러네. 이번에 신입 들어오면 회식 한번 하자.”
“진짜요?”
“임마. 회식한다고 하면 싫어하는 티를 내야지.”
“전 회식하는 거 좋던데요? 공짜로 고기도 먹고.”
“요즘은 회식하면 다 싫어하던데….”
“그것도 회사 나름이죠.”
한석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한석호에게 잔소리하는 나를 돌아보니 나도 나이 먹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진수나 이진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나를 대했는지… 둘이 보살이었네.
그러고 보니 처음 입사했을 때가 28살이었는데 벌써 32살이구나.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잠깐의 상념을 멈추고 기분 좋게 웃고 있는 한석호에게 말했다.
“회식을 아예 안 하진 않았잖아.”
“반년에 한번? 일 년에 한 번? 정말 가끔 했잖아요. 남들이 보면 같은 부서 아닌 줄 안다고요.”
“우리야 개인플레이가 심하니까 그렇지.”
“그게 말이 돼요? 정이 없네. 정이 없어.”
한석호가 투덜거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여기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
“회사가 정으로 돌아가냐?”
“언제는 가족 같은 회사라면서요.”
“가 족같은 회사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
“그럼 진작에 튀었죠.”
“말하는 거 하곤.”
내가 혀를 차며 말하자 한석호가 으쓱했다.
정말 얘를 볼 때마다 매니저보다 연예인 쪽이 더 성향에 맞았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저런 성격은 매니저로도 이점이었지만 연예인에게 플러스가 더 컸다.
“근데 나한테 뭐 용건 있는 거 아니야?”
“아! 승기 형이 좀 알아봐달라고 해서요.”
“뭐?”
“그 예전에 작품 보내주신 것 중에 저랑 승기 형이랑 이야기 좀 해봤는데요, 유령 도시로 의견이 모였어요. 그래서 그거 좀 알아봐달라고 하시던데요?”
“유령 도시?”
“네.”
유령 도시라.
나도 나름 괜찮게 본 작품이었다.
홍승기에게 넘겨줄 때도 체크해서 넘겨줬던 작품인데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느와르물이었는데 한국 시장만큼 느와르 영화가 잘 먹히는 시장이 드물다.
“음… 알았어. 이야기 한번 해볼게.”
“넵!”
한석호가 장난스레 경례하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당하기가 힘드네.
“그건 그렇고 새로 들어올 매니저는 저 같은 사람이면 좋겠네요.”
“그건 좀… 끔찍한데.”
“제가 어때서요!”
반발하는 한석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넌 너무 활발해.
* * *
“안녕하십니까! 박성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의 인사에 박성진이 긴장한 티를 팍팍 냈다.
그 모습에 헥사곤 입사 면접 때가 생각났다.
나도 저랬던가?
“학과도 경제학과 졸업하셨는데… 굳이 매니저를 지원한 이유가 있습니까?”
내 옆에 있던 인사 팀장이 첫 포문을 열었다.
“어… 스타즈를 곁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
“그녀들의 모습에서 저는 인생을 찾았습니다!”
맙소사.
주위에 있던 면접관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이내 인사 팀장이 웃음을 멈추고 박성진에게 물었다.
“박성진 씨. 혹시 모집 요강은 보고 오신 거 맞습니까?”
“네? 매니저 뽑는 자리 아닌가요?”
“맞긴 한데… 이번 자리는 ‘배우’ 담당 매니저를 모집한다고 공고했습니다. 제대로 보신 거 맞아요?”
“네. 네?”
박성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매니저를 뽑을 때는 누구를 담당하게 되는지 이야기를 하고 뽑지 않았다.
그러나 헥사곤 하면 아이돌 명가였기에 매니저를 뽑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가수를 맡는다고 생각하고 지원했다.
나야 정인수 대표를 보고 지원했던 거였지만, 안혜지가 그랬고 한석호가 그랬다.
한석호는 자신은 아이돌을 맡을 줄 알았는데 배우로 왔다며 취업 사기라고 처음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금은 뭐 잘 적응해서 생활하는 편이었다.
이런 이전의 전례가 있기에 이번엔 ‘배우’ 매니저를 뽑는다고 아예 명시해놨는데….
“어…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건가요?”
“꼭 스타즈여야만 합니까?”
“같은 회사에 있으면 볼… 수 있나요?”
입사 동기가 너무 명확해서 어이가 없었다.
이런 사람은 둘 중 하나였다.
진득하게 해서 뼈를 묻거나, 팬심에 얼굴만 보고 나가떨어지거나.
“글쎄요. 재계약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희진이라면 가능하겠네요. 그 친구는 우리 회사 소속이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도망갈 자신이 없습니다! 뽑아만 주십쇼!”
내 말이 끝나자 박성진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멘트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아!
저 멘트는 내가 입사할 때 했던 멘트와 비슷했다.
갑자기 급 호감이 갔다.
저 멘트를 하고 도망갈 리가 없다.
암. 그렇고말고.
여기 산증인이 있지 않나.
“재밌네요. 그렇죠? 김 실장님?”
“네? 네. 재밌네요.”
면접관 중 한 명이 내 일화를 들었는지 나를 보며 말했다.
이내 나는 면접관들에게 손을 들어 양해를 구한 뒤 박성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하나 질문할게요. 아마도 박성진 씨가 입사하게 되면 안재성 씨를 맡게 될 확률이 가장 큰데… 그래도 괜찮으신 겁니까?”
“음…네. 괜찮습니다.”
박성진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조금 궁금했다.
처음 모습은 스타즈가 아니면 죽음을! 같은 느낌이었는데.
“왜죠? 스타즈가 아닌데?”
“그… 김현진 실장님도 처음엔 스타즈 매니저셨잖아요? 지금은 아니신 걸 알고 있긴 한데… 저도 지내다 보면 애들 맡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저를 아세요?”
조금 놀라웠다. 나를 알고 있다니.
스타즈 진성 팬은 맞나보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 걸 보면.
“네. 푸우 매니저로 유명하셨잖아요.”
“앗….”
박성진의 말에 곁에 있던 면접관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내 인사 팀장이 우리를 보더니 박성진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따로 통보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진이 꾸벅 인사를 하고 뒷걸음질 치며 면접장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다른 면접자들보다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 * *
“이번 분기 보고서입니다.”
“그래. 거기 놔두면 나중에 읽지.”
“네.”
가져온 서류를 정인수 대표가 가리킨 곳에 놔뒀다.
그러자 정인수 대표가 특유의 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처럼 재밌어하는 그 눈빛.
“김 팀장. 아니 김 실장.”
“네.”
“그거 아나?”
“네?”
“스타즈 재계약.”
내가 배우로 부서로 옮긴 이후로 정인수 대표는 스타즈 이야기를 내게 꺼내지 않았다.
아마 배려 차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내게 스타즈 이야기를 꺼냈다.
“아… 아직 정확한 건 잘 모릅니다. 건너건너 듣기만 했습니다.”
“궁금하지 않나? 지금은 손을 놨지만, 애정담은 그룹이었잖나.”
“…그렇죠. 궁금은 하죠.”
“애들이랑 연락은 안 하나? 들은 게 있을 텐데?”
정인수 대표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건 나를 통해 애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떠보는 걸까?
“하고 있는데 계약 관련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이랑 회사 입장이랑 좀 다르다면서….”
“그러겠지. 애들은 연장을 원하는데 회사는 찢어지길 원했으니까.”
“네….”
나는 애들을 찢어놓으면 필패라 생각했다. 그건 예전에 연장 재계약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고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 돈맛을 보니까 다 자기 애들이 잘난 줄 아는 것 같다.
물론 애들이 잘난 건 맞다. 그러나 완전체와 개인은 하늘과 땅 차이다.
왜 자꾸 개인으로 가면 더 벌고 잘될 거라 생각하는 걸까.
“합의점을 찾긴 찾아서 곧 사인할 거야.”
“연장입니까?”
“연장은 연장인데 부분 연장. 1년에 잠깐 모이고 콘서트 몇 번 여는 거로 대표끼리 합의 봤어. 해체하면 자기들 은퇴하거나 태업한다고 협박하는 애들도 있어서. 애들 아니었으면 찢어졌겠지.”
“아하….”
결국, 연장으로 가는구나. 완전한 연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맥을 유지한다는 게 어딘가.
근데 이러면 걸그룹 세대교체는 피해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정인수 대표의 말을 들어보니 길어야 1년 중 1분기 활동이지 않나.
“그리고 우리도 그거에 맞춰서 신규 걸그룹 런칭 준비에 들어가려고.”
“남 실장님 그룹 말입니까?”
“어. 거기. 관심 있나?”
“관심이라기보다는 남 실장님이랑 종종 연락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있었으니까요.”
“아아… 둘이 같이 있었지. 참.”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쩐지 요즘 바쁜 것 같더라니 이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그건 그렇고….”
“네.”
정인수 대표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흐렸다.
“희진이를 어떻게 할까? 본인은 이제 연기하고 싶다는데.”
“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