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91화 (191/200)

제191화. 발리에서 생긴 일 (2)

찰칵. 찰칵.

숙소에 들어온 신희진이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와… 진짜 미쳤다. 미쳤어.”

내 짐을 먼저 방에 두고 신희진 방으로 왔는데 차이가 엄청 심했다.

물론 작가랑 주연 배우들은 좋은 방을 잡아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날 줄 몰랐다.

내 방은 그냥 호텔이라면 여긴 궁전이었다.

잠깐 주위를 살핀 후에 멤버들에게 핸드폰으로 자랑하고 있는 신희진에게 말을 걸었다.

“작가님은 언제 올라오신대?”

“PD님이랑 이야기 잠깐 하시고 올라오신대요.”

“오기 전에도 이야기했던 거지만 잘 구워 삶아봐.”

신희진이 핸드폰을 보다가 내 말에 고개를 들고는 씨익 웃었다.

자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게 아니었다.

신희진의 방 룸메이트는 김지선 작가였다.

그래서 이 기회에 김지선 작가랑 친해져 보라고 권했었다.

히트작 있는 작가랑 친해지면 나쁠 게 하나 없었다.

작가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이랑 친해지는 건 연예인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나쁠 게 없다.

“완전 구워 삶을 자신 있으니까 걱정 말래두요. 작가님이 절 좋게 봐주시는 것도 있고… 오늘 하룻밤이면 돼요.”

“그래. 그때도 말했지만, 작가랑 언니, 동생 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네!”

꼬르륵. 꼬르륵.

신희진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마자 신희진의 배에서 생체 알람 소리가 울렸다.

배가 고픈 듯했다.

갑자기 울린 알람 소리에 신희진이 부끄러운 듯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고프니?”

“그럴 땐 모른 척 넘어가거나 밥 먹으러 가자고 해야죠. 센스가 없네. 눈치도 없고.”

“크흠.”

신희진이 나를 힐끔 째려봤다.

“룸서비스로 해서 먹을래? 어떻게 할래? 피곤하면 룸서비스로 먹고. 숙소 보니까 룸서비스도 호화로울 거 같은데.”

“저도 여기 룸서비스가 궁금하긴 한데 오늘은 나가서 먹을래요.”

“너무 늦지 않았나?”

신희진이 나가서 먹겠다는 대답에 나는 어두컴컴한 창문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몇 시에요?”

“8시 12분.”

“8시면 엄청나게 늦은 시간은 아니지 않을까요? 빨리 나가서 음식점 찾아서 먹으면 될 거 같은데.”

“그래? 음… 그래. 그럼 일단 나가자.”

“네.”

신희진이 내 말에 대답하고는 가지고 온 캐리어를 침대 맡에 가지런히 뒀다.

밥 먹고 와서 짐 정리를 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신희진이 나를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엘레베이터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니 김지선 작가와 보조작가 이혜영이 양손에 캐리어를 끄는 모습이 보였다.

고작 2박 3일 일정에 뭐 저리 많이 가져온 것인지.

그런 둘에게 신희진이 다다다하고 달려갔다.

“작가님!”

“어. 희진아.”

“저희 지금 밥 먹으러 나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밥?”

“네.”

김지선 작가가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던 이혜영에게 물었다.

“혜영이 너는 어떻게 할래?”

“저는 기내식 먹어서 별로 배가 안 고프긴 한데… 모처럼이니까 또….”

김지선 작가의 질문에 이혜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들어갔다.

“말 흐리지 말고 얼른 말해.”

“갈게요. 이왕 왔으면 방에 있기보다는 나가야죠. 발리에서 먹는 음식도 궁금하구요.”

김지선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희진아. 나 짐 좀 놓고 올 테니 1층 테라스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아! 저도 도와드릴게요. 같이 갔다가 내려오면 되죠.”

“그러면 고맙고.”

신희진이 김지선 작가에게 귀엽게 엉기며 말했다.

그러자 김지선 작가가 흐뭇하게 웃었다.

벌써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흐뭇했다.

* * *

“글쎄, 이 PD가 내가 너 이름 꺼내니까 ‘뭐요?’ 하는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그래도 이 PD님 아니었으면 요물의 연출구도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 PD님 감성은 확실히 로코 감성이 맞는 거 같아요.”

“그건 그렇긴 해. 그건 인정.”

맞은편에서 김지선 작가와 신희진이 식사를 다 한 후 간단한 와인과 함께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이혜영이 그 모습을 보며 내게 말했다.

“작가님이 오늘 기분이 좋으신 것 같네요.”

“그래요?”

“원래 저렇게 말 많이 안 하시거든요.”

이혜영의 말에 가끔 봤었던 김지선 작가를 떠올려봤다.

확실히 그렇게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너네는 무슨 말을 그렇게 소곤소곤하니?”

“오늘 김지선 작가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김지선 작가의 말에 내가 답했다.

“내가?”

“네.”

내 대답을 들은 김지선 작가가 이혜영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작가님 기분 좋으실 땐 말 많아지시잖아요.”

“어머. 내가 평소에도 얼마나 말이 많은데.”

“말이 많다기보다는 히스테릭이….”

이혜영이 웃으며 김지선 작가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혜영의 말을 들은 김지선 작가가 발끈했다.

“야! 너 놀러 와서까지 그럴래?”

“사실을 이야기한 것뿐이에요~”

“얘가 진짜.”

김지선 작가와 이혜영 보조작가는 의외로 가까워 보였다.

위아래가 분명한 작가와 보조작가 관계에서 저런 농담도 주고받는 걸 보니 얼마나 친밀한가를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희진이 너… 승훈이는 어떻게 생각해?”

“승훈 오빠요?”

김지선 작가의 질문에 신희진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답하자 김지선 작가가 내 눈치를 살폈다.

“그게….”

“저는 이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게 말이에요? 어떻게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해요.”

“뭐… 비밀도 아니고 승훈 씨가 희진이한테 관심을 표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어머!”

직설적인 내 말에 김지선 작가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신희진을 쳐다봤다.

“그래서 희진이 너는 어때? 별로야?”

“제 스타일 아니에요.”

신희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나는 흐뭇한 감정이 절로 들었다.

“왜? 승훈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괜찮은 건 드라마 속에서만요.”

“그래?”

“네.”

김지선 작가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신희진을 보고 물었다.

“너도 그렇고 승훈이도 그렇고 화면만 보면 둘 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아서 사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뒤풀이 때도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신희진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드라마 속 미호와 승수의 케미는 좋은 편이었다.

김지선 작가가 저런 이야기를 할 만큼 좋았다.

요물의 마지막 화가 끝난 직후 보도 자료에서 대중들의 반응도 얘네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라는 반응도 꽤 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드라마가 흥행하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김지선 작가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장승훈의 경우에는 이미 신희진에게 관심이 있었기에 승수에 몰입하기가 더 쉬웠을 거다.

그렇다면 신희진은…?

이렇게 생각하니 신희진이 연기를 참 잘하는구나 싶었다.

얘는 확실히 재능이 있다.

“그때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는 줄 알았지.”

“아녜요. 승훈 오빠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정말?”

“네.”

“솔로끼리 작품을 같이 하면 거의 눈 맞던데… 희한하네. 너 혹시 다른 사람 마음에 두고 있니?”

김지선 작가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신희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신희진과 눈이 잠깐 마주쳤다.

“…아뇨.”

신희진이 살짝 머뭇거리며 말하자 김지선 작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흐응. 있구나. 누군지는 안 알려주겠지?”

“아하하… 없어요.”

“외국에서의 밤은 길다는데… 그건 방에 가서 들을게?”

김지선 작가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와인을 단숨에 비우고 신희진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일어날까? 일어나죠? 김 팀장님.”

“네.”

김지선 작가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김지선 작가는 신희진이 마음에 둔 인물이 누군지 궁금한 듯했다.

여기에서는 내가 있어서 신희진이 쉽게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근데 그 인물을 들으면 놀라실 텐데….

물론 이런 내 생각이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희진과 나의 그 미묘한 기류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사자인 나는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말만 안 했을 뿐.

어느새 멀어진 김지선 작가와 신희진의 뒷모습을 보다가 조용히 따라갔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고 있었다.

* * *

발리에서의 2일 차.

아침 일찍부터 숙소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요물 제작진이 짜둔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지금은 오전 스케줄인 래프팅을 하려고 래프팅 장소에 와있었다.

“래프팅을 타기 전에 일단 조를 짜야 할 거 같은데요.”

이정수 PD가 모여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래프팅을 타기 위해선 2인 1조가 되어야 했다.

“어떻게 짤까요?”

“…….”

이정수 PD의 묻는 말에 섣불리 나서서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누가 의견을 내놓겠나.

이런 건 제일 목소리 큰 사람 의견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이 PD님. 그냥 파트너 짜서 진행하는 건 조금 심심하니까 간단한 미니 게임 해서 몇 명은 선택권 줘서 해볼까요?”

“게임이요?”

김지선 작가의 말에 이정수 PD가 재밌어 보인다는 듯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네. 간단하게 가위바위보도 좋고, 동전 던지기나 신발 던지기 같은 거 해서요.”

“그럴까요? 다들 어떠세요?”

다들 재밌을 거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어떤 게임을 할지 잠깐의 의견을 나누다가 결국 게임은 동전 던지기로 합의 봤다.

동전 던지기의 룰은 간단했다.

만들어둔 원 중앙에 가장 가깝게 던진 사람부터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단, 남자는 참여하지 않고 여자가 선택하는 거로 했다.

성비도 여자가 좀 더 적고 여자가 파트너를 고르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다면서.

포상 휴가로 오게 된 여성 스태프들은 총 23명.

막내 라인부터 해서 차례대로 동전 던지기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원 안으로 집어넣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던지는 걸 보면서 누가 먼저 성공하는지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관전했다.

“오!”

첫 원에 입성한 인물은 촬영 팀 퍼스트였다.

사소한 게임이었지만 게임을 하면서 다들 꽤 기뻐하는 모습에 놀러 왔다는 기분이 물씬 들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이러기만 한다면 정말 일할 맛 날 텐데.

촬영 팀 퍼스트 이후로 이혜영 보조작가가 안에 넣었고 이제 배우들 차례가 다가왔다.

배우라고 해봤자 여성 배우는 조연인 한지우와 김혜숙. 주조연인 이정연. 주연 신희진. 이렇게 총 네 명이었다.

한지우와 김혜숙이 먼저 던졌는데 아쉽게 원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음 차례로 이정연이 던졌는데 세 번째로 넣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희진 차례가 되었다.

신희진이 신중한 눈빛으로 원을 주시하며 준비 자세에 돌입했다.

이내 한 발을 내딛고 손을 위아래로 흔들더니 가볍게 동전을 던졌다.

동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근데 방향을 보니 원 바깥에 도착할 것 같았다.

내 예상대로 동전은 원 바깥에 안착하는가 싶더니 동전이 튕기면서 원 안으로 골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가장 중앙에 가까운 위치였다.

운도 좋지.

“아싸!”

“희진이가 운이 좋네~”

곁에서 관전하던 김지선 작가가 내 심정을 대변해줬다.

신희진은 김지선 작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쁜지 양손을 브이 자를 하며 양 눈가에 대며 자랑했다.

찰칵!

셔터음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촬영팀 막내가 열심히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안쓰러워졌다.

휴가 와서도 일이라니.

지금 이런 광경을 찍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이런 모습을 촬영해서 마케팅에 쓴다고 말해왔었다.

그래서 나는 휴가가 아니라 일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자, 그럼 원 안에 골인 시킨 게 총 네 명이죠? 제일 멀리 있는 사람부터 파트너 골라 봅시다.”

이정수 PD의 말에 동전을 원 안에 넣은 네 명이 앞으로 나왔다.

원에 제일 가까운 순서로는 신희진, 촬영 팀 퍼스트, 이혜영, 이정연 이었다.

이정연이 먼저 자신의 극 중 파트너인 심태식을 골랐다. 그다음으로 이혜영이 망설임 없이 조연출을 고르자 그 모습에 김지선 작가가 이혜영에게 ‘너 연애하니?’라고 묻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촬영 팀 퍼스트는 조명 팀 스태프를 골랐는데 둘이 연인 사이인 듯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희진의 차례가 다가왔다.

신희진이 모여 있는 우리를 한번 쓰윽 쳐다보다가 입을 뗐다.

“저는….”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