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90화 (190/200)

제190화. 발리에서 생긴 일 (1)

“잘 다녀와!”

“선물 사와!”

“특산품!”

애들이 후줄근한 복장으로 신희진을 마중했다.

요물의 흥행으로 인한 발리로 떠나는 포상 휴가.

드라마 차원에서 가는 휴가였지만, 스타즈도 같이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물론 발리로 떠나는 건 나랑 신희진만이었다.

남은 애들은 남아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가서 사진 꼭! 꼭! 찍어서 톡방에 올려줘!”

“알았어! 많이 올려 줄게!”

박혜연이 신희진의 손을 부여잡고 사진을 강조하며 말했다.

“아, 나도 가고 싶다….”

서지영이 아쉬워하며 중얼거렸다.

“너넨 집에 안 가?”

“오후에 갈거든요!?”

가볍게 물은 질문에 서지영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서지영이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휴가는 꽤 길었다.

신희진의 포상 휴가에 맞춰 스타즈에도 3박 4일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에 고정 프로그램 촬영이 있는 서지영은 일찍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서지영을 빼면 나머지는 데뷔 이래 가장 긴 휴가였다.

그런 서지영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옆에 있던 유코와 린에게 말했다.

“유코랑 린이는 잘 다녀오고.”

“네.”

“네.”

둘이 내 말에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처럼의 긴 휴가라 외국 멤버인 린과 유코 모두 자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오기로 했다.

둘 다 오늘 오후 비행기로 출발해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얼굴이 훨씬 밝아 보였다.

몇 년 만에 가는 거라고 했더라. 3년인가 4년이었나.

둘 다 인접해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바빠서 혹은 짧아서 가지를 못했었다.

“오빠. 선물 비싼 거 사 와요.”

“뭐래.”

신희진과 먼저 인사를 주고받은 서지영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언니는 열쇠고리라도 좋지만, 오빠는 안돼요.”

“야, 나 너네보다 못 벌어. 희진이한테 달라고 해.”

내 연봉에 몇 배는 버는 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정도가 있지.

내가 퉁명스럽게 답하자 서지영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였다.

“아, 어쨌든요!”

“화는 나한테 풀지 말아 줄래?”

서지영이 나를 째려봤다.

“씨. 누가 나보고 방송하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나도 길게 휴가 가는 건데.”

“아니….”

서지영의 말에 급격하게 할 말이 없어졌다.

서지영이 프로그램을 하게 된 건 나의 강력한 설득이 있었기에 서지영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은 있었다.

면세점에 뭐가 있더라.

“오빠! 저도요!”

잠깐 고민하는 동안에 유미소도 신희진과 인사가 끝났는지 내게 다가와 서지영을 거들었다.

“넌 안 돼.”

“왜요!”

“지영이는 내가 아~주 조금! 미안해서 뭐라도 줘야 할 거 같은데 너한테는 미안한 거 하나 없거든?”

“애정이 식었어.”

“아주 조금?”

유미소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열쇠고리로 만족해라,미소야.

그것보다 내 말에 서지영이 황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더 신경 쓰였다.

“지금 아주 조금이라고 그랬어요?”

“응.”

칼 같은 내 대답에 서지영이 부들거렸다.

평소 서지영이 나를 갈구는 만큼 나도 서지영을 열심히 갈궜다.

확실히 서지영은 놀리는 맛이 있었다.

그런 서지영 사이로 애들과 인사를 끝낸 신희진이 내게 다가왔다.

“가요, 오빠.”

“그럴까?”

신희진과 함께 차로 향하는데 뒤에서 분개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휴가 첫날부터 상큼하고도 즐거운 시작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 * *

- 손님 여러분 곧 이륙하오니 자리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이륙할 듯싶었다.

징. 징. 징

핸드폰에 연달아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버렸다.

지금 울리는 진동의 원인은 서지영의 개인 메시지였다.

오기 전에 조금 놀렸다고 개인 메시지로 엄청나게 투덜대고 있었다.

내가 서지영을 상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던 신희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지영이 뭐래요?”

“완전히 삐졌는데?”

“그러게 심기 불편한 애를 왜 건드려요. 자기만 휴가 중간에 일해야 한다고 오늘 아침부터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와서 얼마나 투덜거렸는데요.”

“재밌잖아.”

“어휴.”

신희진이 나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한심하다고 짓는 저 표정을 보니 왠지 내가 애들을 바라볼 때 하는 표정이 저러지 않을까 싶었다.

흠. 흠. 조금 쑥스럽구먼.

조금 들뜬 나머지 나도 애들처럼 군 것 같다.

내 행동을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너 근데 안 불편하겠어?”

“네? 괜찮아요. 오히려 저 혼자 비즈니스석에 있으면 그게 더 불편해요.”

“음… 알았어.”

원래 요물 측에서 신희진이나 장승훈 등 주요 배우들에게는 비즈니스석을 끊어줬다.

그러나 신희진이 비즈니스석이 불편하다며 내 옆자리로 옮겼다.

이유는 지금 말했던 것처럼 편한 자리가 오히려 더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발리까지 직항인 비행기였지만, 최소 일곱 시간은 하늘 위에 있어야 했다.

신희진의 그런 태도에 나는 그냥 비즈니스석에 타서 자라고 재차 권했지만 신희진이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결국 이코노미석이었던 내 좌석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신희진이 내 옆으로 오게 되었다.

드드드.

엔진소리가 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오, 출발하려나 봐요.”

신희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벨트 맸지?”

“네.”

내 말에 신희진이 좌석 벨트를 점검하고 보던 안내 책자를 좌석에 붙어 있는 주머니에 넣고는 들뜬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오빠 발리 가보셨어요?”

“아니. 넌?”

“전 당연히 안 가봤죠. 발리가 그렇게 예쁘다는데… 기대돼요.”

“가면 좀 편히 쉬어. 드라마 달리면서 항상 피곤해했잖아.”

“그럼요. 푹 쉬어야죠. 아… 진짜 아쉽다. 하루가 아니라 이틀 삼일 왕창 늘렸으면 좋았을 텐데….”

신희진이 아쉬운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원래 요물의 포상 휴가 일정은 총 2박 3일이었다.

그러나 신희진이 회사에 강력히 이야기하더니 일정이 하루 더 늘었다.

물론 이건 우리만 늘어난 일정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드라마로 신희진의 몸값이 꽤 뛰어서 가능했다.

역시 연예인은 인지도와 화제성이 깡패긴 깡패였다.

“하루라도 더 있는 게 어디야.”

“그건 그렇긴 해요.”

치지직.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잡음에 우리는 대화를 멈췄다.

이내 이륙 멘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Korea Airplane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후 비행기 이륙이 있을 예정이오니 아직 자리에 없으신 손님께서는 좌석으로 돌아가 주시고 좌석에 계신 손님께서는 좌석 벨트를 매시고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 Ladies and gentlemen….

이제 곧 비행기가 뜰 모양이었다.

비행기가 뜬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그냥 뒤숭숭했다.

남들은 지금 발리로 가는 게 휴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일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휴가라고 함은 나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나.

신희진과 같이 가는 시점에서 내게는 휴가가 아니었다.

게다가 요물 제작진들까지.

이건 휴가를 빙자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편한 마음으로 간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일단 도착해서는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휴식을 만끽해야겠다.

그렇게 잠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때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기체가 흔들렸다. 아무래도 이륙하려는 듯했다.

번뇌는 접어두고 일단 떠나자.

가자! 발리로!

* * *

“와….”

숙소로 잡힌 리조트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왜 이렇게 호화스러운지.

요물로 얼마를 벌었길래 포상 휴가로 이런 곳을 잡는단 말인가.

“하하, 괜찮죠? 힘 좀 많이 썼습니다.”

놀라워하는 우리에게 이정수 PD가 선글라스를 치켜들며 말했다.

방송국이 생색내기용 포상 휴가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준비했다.

“자, 다들 모여서 인증사진 하나 찍고 짐 풀고 쉽시다.”

네~

오늘 일정은 간단했다.

모두 장시간 비행에 지쳤기 때문에 첫날은 짐만 풀고, 자유 시간이었다.

자유 시간이라고 해봤자 지금은 한국 시각으로 밤 여덟 시였다.

짐 풀고 밥 먹으면 열 시 가까이 되지 않을까.

아무튼, 그렇게 오늘 하루가 끝이 나면 내일 하루는 요물 제작진 측과 같이 이동하며 관광 요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희진아. 너 오늘 저녁에 뭐 해?”

“저녁 먹고 쉬려고요. 비행기 오래 타니까 좀 피곤해요.”

“그래?”

“네.”

장승훈이 슬쩍 와서는 신희진을 떠보는 게 보였다.

이전 뒤풀이 때 신랄하게 까인 걸 들었기에 장승훈이 참 애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면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장승훈이 재차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이정수 P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훈아! 희진아! 인증 샷 찍게 이리 와!”

“얼른 가봐.”

이정수 PD가 적절하게 끼어 들어줬다.

그리고 이정수 PD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끼어들어 신희진에게 말하자 신희진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이런 나의 행동에 장승훈의 입을 꾹 다문채로 나를 바라봤다.

보면 어쩔 거야?

“오빠는요?”

“매니저가 저길 왜 가. 얼른 가.”

장승훈의 시선을 만끽하던 찰나에 신희진의 묻기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리고 얼른 가라고 신희진의 어깨를 제작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방향으로 툭툭 밀어냈다.

“아, 갈게요. 간다고요. 밀지 마요.”

신희진이 내게 웃으며 말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이정수 PD가 부른 방향으로 갔다.

그런 신희진의 모습을 보던 장승훈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신희진을 따라갔다.

자기가 날 째려보면 어쩔 건가. 웃기는 친구네.

장승훈도 인증 샷 대열에 합류하러 떠나자 나는 멀찍이서 인증 샷 찍는 과정을 팔짱 끼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들 호화로운 리조트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촬영할 때는 피곤함에 찌든 얼굴에 내일이라도 죽을 것처럼 하던 사람들이 저러니까 참 어색했다.

그들을 보던 내 곁으로 장승훈의 매니저인 권해철이 슬그머니 옆으로 왔다.

“발리에서 하루 더 있으신다고요?”

“네.”

“따로 움직이시죠?”

“그건 왜 물어보시죠?”

권해철의 질문에 날이 잔뜩 서버렸다.

갑자기 와서 저런 걸 물으니 내가 날이 안 설 수가 있나.

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권해철이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오해는 마시고요. 저도 돌아가는 상황은 잘 알고 있습니다. 희진 씨랑 일정 피하려고 물어보는 겁니다.”

“승훈 씨도 하루 더 있다가 갑니까?”

“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요물 제작진 측에 하루 더 있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장승훈 측에도 우리가 하루 더 있겠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까 싶기는 했었다.

그러나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장승훈도 하루 더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까이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러게요. 애가 말을 듣지를 않네요.”

권해철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권해철의 태도에 잠깐 경계심을 풀고 말했다.

“권 팀장님은 승훈 씨 편 아닙니까?”

“편이니까 이러죠.”

담담히 말하는 권해철의 얼굴을 살펴봤다.

저게 진짜일까? 아니면 나를 떠보는 걸까?

“일정을 따로 알려드릴 수는 없을 거 같고,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서로 모른 척하는 거로 하죠.”

“음… 알겠습니다.”

괜히 우리가 움직이는 위치를 알려주는 건 아닌 것 같았고 이게 맞을 것 같았다.

이 넓은 땅에서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몇이나 되겠나.

“스토커들처럼 움직이는 걸 기다렸다가 따라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설마 그러기까지야 할까요.”

혹시나 해서 한 내 말에 권해철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권해철에게 나도 싱긋 웃었다.

“그렇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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