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대장정의 마무리 (3)
“좋은 아침이에요! 팀장님!”
“어. 좋은 아침.”
안혜지의 인사에 손을 들어 화답했다.
“어제 늦게까지 달리셨어요?”
“뒤풀이 오래는 안 했어. 왜? 내가 그렇게 안 좋아 보여?”
“네. 평소보다 완전요.”
몸이 무거운 게 내 착각이 아니었나 보다.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인가보다.
“오랜만에 술 먹어서 그래. 드라마 들어가면서부터 술을 안 먹었거든.”
“아하.”
안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은?”
“연습실에 있어요.”
“희진이도?”
“아뇨. 희진이는 안 일어나더라고요.”
“있다가 내가 확인 전화해볼게.”
“네.”
안혜지에게 신희진은 안 일어나면 놔두고 오라고 이야기했었다.
두 달간의 대장정이 끝났는데 끝난 날 하루 쉴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나.
“근데 팀장님. 그거 진짜예요?”
“뭐? 그렇게 말하면 난 모르지.”
“발리요. 발리.”
“그거 어떻게 알았어?”
안혜지가 마치 자기가 가는 듯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어제 뒤풀이에서 포상휴가가 발리로 확정 났다고 들은 참인데 기사라도 난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혜지가 곧바로 기사를 언급했다.
“기사 났던데요? 드라마 흥행으로 인해 요물 배우 제작진들 모두 발리 보내준다고요.”
“이야기는 나왔었는데 어제 확정 났다고 이야기해 주더라. 기사도 빨리 났네.”
“부럽다… 완전 휴가네요?”
안혜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혜지의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휴가라 하기엔 담당 연예인한테 계속 붙어 있어야 하니까.”
“각자 개인 시간은 가질 거 아니에요.”
“매니저에게 개인 시간이 어딨어. 따라 다녀야지.”
“매니저랑 연예인이랑 완전 따로 있는 시간은 없어요?”
“따로 줬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 나. 그러는 경우 거의 없어.”
“아….”
안혜지가 처음 알았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힘드시면 제가 갈까요?”
“됐거든?”
“힝.”
안혜지는 빈말로 던진 멘트가 아닌 듯 엄청나게 아쉬워했다.
안혜지가 투덜거리는 모습이 애들과 겹쳐 보였다.
생각해보니 안혜지도 애들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었다.
“해외 나가 본 적 없어?”
“네.”
“걱정하지 마. 해외 투어 시작하면 질리도록 비행기 탈 테니까.”
“아! 그러네요. 근데 저희 해외 투어는 언제 가요?”
안혜지가 기대된다는 듯 두 손을 모았다.
콘서트를 한번 해본 내 경험상 이건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듣기로는 해외 투어 일정은 되게 힘들다는 평이 많았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애들이 2년으로 재계약했으니 내년에 콘서트 투어 돌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원래는 올해부터 돌리려던 거 밀어낸 거였거든.”
“아하, 그래서 저번 회의 때 콘서트 이야기가 나왔던 거였군요.”
“맞아. 너 입사하기 전에 방향성 잡는 회의를 했었거든.”
신희진이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에 스타즈 관련하여 회의가 있었다.
신희진의 드라마가 끝난 후면 활동을 어떻게 할지에 관한 회의였다.
나온 이야기는 콘서트와 앨범 이야기.
주로 나온 안건은 콘서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잉. 징. 지잉.
안혜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잠깐만.”
안혜지에게 말한 뒤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나른했던 몸이 풀리면서 긴장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는 안혜지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제스처를 취한 뒤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김현진 팀장입니다.”
- 잠깐 올라와서 얼굴이나 보지.
정인수 대표의 짧고 강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일단 드라마 성공적으로 끝난 거부터 축하한단 말을 하고 싶군.”
“감사합니다.”
대표실에 들어가자 정인수 대표가 먼저 꺼낸 한마디는 그간 누적되었던 내 피로감이 싹 가실 수 있는 한마디였다.
“이번에도 보란 듯이 성공했네? 보는 눈이 좋아.”
“아닙니다. 저도 확신은 없었는데 작품이 좋아 잘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겸손 떨 필요는 없어. 모든 건 결과가 이야기 해주는 거니까.”
정인수 대표가 나를 띄워주니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정인수 대표가 살짝 웃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드라마 중간에 스캔들을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 재밌어서 승인은 해줬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 몰랐어.”
“감사합니다.”
“스캔들을 이용한 마케팅이라… 다시 생각해봐도 황당하단 말이야. 스캔들이 마케팅에 활용될 거라고는 솔직히 몰랐거든.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여자 연예인이어서 엮이면 안 돼야 했던 게 스캔들이었고.”
“그건 장승훈이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습니다. 상대가 워낙 스캔들이 잦은 배우이기도 했고, 희진이가 장승훈에게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해볼 만한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조건이 아니었다면 저도 안 했을 겁니다.”
정인수 대표가 흡족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래. 네가 예전에 내게 말하는 것처럼 흘러갔지. 그리고 희진이한테도 꼬리표가 크게 붙지도 않았고. 잘했어.”
정인수 대표가 잠깐 나를 응시하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앞으로 찍을 광고가 몇 개나 남았지?”
“스타즈 단체 광고가 3개 잡혀있고 희진이 단독으로 3개입니다.”
“차는 줬으니까 별 필요 없을 것이고…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정인수 대표의 말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필요한 걸 준다는 이야기인 걸까? 내가 뭐가 필요했지?
“지금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
“…네.”
재차 묻는 정인수 대표의 물음에 머뭇거리며 대답하자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었다.
“아닌가본데? 당장 딱히 필요한 게 없는 거 같으니 돈으로 하지. 나중에 월급 정산하면서 인센티브로 따로 넣어줄 테니 확인해봐.”
“감사합니다.”
정인수 대표는 사람 마음을 참 잘 긁는 것 같다.
게다가 이렇게 따로 언급해서 이야기해줄 정도면 꽤 들어올 것 같았다.
사뭇 기대됐다.
“그리고 말이야….”
“네.”
정인수 대표가 더 할 말이 있는지 뒷말을 흐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배우 쪽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아예 그쪽으로 옮기는 건 어때?”
“배우 쪽… 말씀입니까?”
정인수 대표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말을 해 조금 당황했다.
아무래도 나를 부른 본론인 듯했다.
정 대표의 완급 조절에 정신을 못 차리겠네.
그건 그렇고 배우라… 배우?
“그래. 회사 내 배우 분야를 좀 더 공격적으로 늘려 보려고 생각하고 있거든. 네가 관심이 많은 분야 아닌가? 지금껏 줄곧 해온 행동을 보면 말이지.”
“그렇긴 한데요. 음….”
정인수 대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배우 맡기를 희망하기도 했었고, 전공이 관련되어 있기에 더 관심이 높았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왜, 스타즈 애들이 걸리나?”
“네.”
지금 맡은 스타즈가 걸렸다.
가수가 내 전공 분야는 아니었지만, 애들과의 유대감은 내 생각 이상인 것 같다.
“근데 말이야… 곧 애들 한국 콘서트 일정 잡은 다음에는 해외 투어 일정이 잡힐 거란 말이지.”
“네.”
“그냥 애들 보모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거로 만족하나?”
“그건….”
정인수 대표가 내게 정곡을 찔러왔다.
줄곧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기실 스타즈가 콘서트로 일정을 채운다면, 사실상 내가 하는 역할은 애들의 안전 관리, 스케줄 관리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는 너는 그런 것보다 활발하게 필드를 뛰던가, 기획하던가 하는 쪽이 더 성미에 맞는 거 같은데 말이야. 아닌가?”
“…….”
정인수 대표의 말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맡은 배우가 안재성 하나뿐이지? 그걸로 만족하나?”
“음….”
정인수 대표의 말에 침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던 정인수 대표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더니 내게 말했다.
“지금 당장 다급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고 찬찬히 생각해봐.”
“…알겠습니다.”
내게 불을 질러놓은 정인수 대표였다.
나는 그런 정인수 대표에게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러자 내 대답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막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맞아. 마침 다음 주에 포상휴가로 발리로 간다면서?”
“네.”
“가서 생각 정리 좀 하고 와. 애들한테 붙어 있을 건지, 아닌지. 정리할 시간은 충분하겠네.”
“네….”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
정인수 대표의 말에 인사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갑자기 숙제가 생긴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 *
“나도 발리 갈래요. 왜 오빠랑 희진 언니만 가는데요!”
“어허.”
드라마가 끝난 기념으로 오랜만에 애들을 보러 연습실에 방문했다.
드라마 촬영 기간 동안 거의 신희진에게만 붙어 있다 보니 애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애들에게 포상휴가 이야기를 꺼내니 서지영의 징징거림이 시작된 상태였다.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서지영뿐만 아니라 유미소도 귀엽게 투덜댔다.
“와, 너무하다. 누군 한국에서 쓸쓸하고 고독하게 일하고 있고 누구는 휴양지의 낙원 발리로 가서 즐기다 오고. 인생 너무 불공평해.”
“그렇게 말해도 안 돼.”
유미소에게 말하자 옆에 있던 서지영이 거들었다.
“그럼 내 돈 주고 갈래요.”
“안 돼.”
“왜요!”
“어허.”
내가 혀를 차며 말하자 서지영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와… 헥사곤은 소속 연예인에게 자유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서지영과 유미소가 죽이 완전 잘 맞았다.
얘네가 원래 이렇게 죽이 잘 맞았나?
“안 본 사이에 미소도 완전 애가 됐네. 너까지 지영이한테 물들면 어떻게 해?”
“원래 이랬거든요?”
“언니 원래 이랬거든요~”
둘이 내 말에 말대꾸하며 약 올렸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 지금까지는 정해진 스케줄만 진행했잖아요.”
“응.”
“그럼 이제 다음 스케줄은 뭐에요? 희진이 드라마 끝날 때까지는 지금 상태 유지한다고 하셨었고… 저희 Hurricane 활동한 지 이제 3개월 정도 지났잖아요. 이제 다시 또 미니앨범 준비에 들어가나요?”
역시 이나라밖에 없다.
이런 건설적인 이야기의 포문은 항상 이나라가 열었다.
“구체적인 건 안 나왔는데 아마… 콘서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앨범 컴백이랑.”
“콘서트요?”
“응. 한국 내에서 대도시 몇 개 위주로 콘서트 투어하고 내년에 해외 콘서트 투어.”
“와!”
내 말이 끝나자 유코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올해 처음 열었던 단독 콘서트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듯했다.
그때가 그렇게 좋았나.
그건 그렇고 지금 애들에게 말한 것처럼 회사 내 분위기는 스타즈를 콘서트로 돌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신희진의 드라마로 팬 유입을 끌어올 만큼 끌어왔다며 이제 남은 건 콘서트로 돈을 땡기자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그 의견에 올해 초처럼 더 기다리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회사 차원에서도, 애들 처지에서도 돈을 벌 기회는 맞았으니까.
“일정은 아직 확정된 건 없는 거죠?”
“응.”
“지금부터 천천히 무대 한번 짜봐야지.”
이나라도 콘서트 이야기가 나오니 조금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큰 무대를 몇 번 겪고 단독 콘서트까지 올리니까 애들의 수준이 확 올라갔다.
확실히 경험만큼 값진 게 없는 것 같다.
갑자기 나온 콘서트 이야기에 애들이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번 콘서트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더 해보고 싶었던 점 등을 거론하면서 열띤 토론에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애들의 모습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이제는 완성되어 버린 애들에게 내가 더 필요할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