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86화 (186/200)

제186화. 터지기 위한 조건 (4)

- 김 팀장님. 제가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연락한 건데요.

“네. 무슨 일로…?”

기자들에게 우회해서 자료를 돌린 지 30분 만에 이정수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들에게 우리가 흘렸다는 걸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누가 그새 이정수 PD에게 말했나 보다.

그래도 입 무겁고 우리에게 친화적인 기자 몇 명에게만 흘린 거였는데.

역시 기자는 믿으면 안 된다.

이정수 PD의 반응이 빠르긴 했지만, 홍보팀도 분명히 퍼질 거라 이야기했기에 연락이 온 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30분도 안 돼서 연락이 올 줄 몰랐다.

- 승훈이랑 희진이 둘이 사귀는 사이입니까?

“네?”

이정수 PD의 말에 놀란 척 연기를 했다.

- 아는 기자가 곧 기사 터진다고 촬영 중에 연락 와서요.

“전 금시초문인데요.”

- 그래요? 소스가 헥사곤에서 흘러나온 거라던데?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이정수 PD의 음색이 다소 거칠어졌다.

- 그럼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거네요?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이정수 PD에게 말하고서 내 연기에 자아 도취했다.

목소리 떨림 좋고, 어리둥절한 말투 좋고.

자체 연기 평가를 하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물오른 내 대답에 통화 너머에서 이정수 PD의 답답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허…참.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알겠습니다. 스캔들은 장승훈 씨랑 연락해서 처리하세요. 저희가 따로 입장 내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작품에 피해 가면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 촬영하느라 머리 아픈데 이거까지 신경 쓰지 않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정수 PD가 마무리로 위협을 하면서 통화를 끝냈다.

이정수 PD는 이 사안이 잡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평범한 사람이면 당연히 잡음이라고 생각할 거다.

이렇게 상황이 흐른 이상 장승훈 측에게도 연락해야 했다.

본래는 기사가 터지고 연락을 하거나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연락이 와버렸으니 입을 맞춰야 하지 않겠나.

장승훈 매니저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장승훈 매니저 권해철입니다.

“안녕하세요. 신희진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 아, 네. 이정수 PD님에게 연락받으셨죠?

권해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장승훈이랑 엮여서 스캔들 터진 여배우만 몇 명인데, 당황할 짬밥은 아닐 거다.

“네. 연락받고 연락드렸어요. 조금 당황스럽네요.”

- 저희도 조금 당황스럽네요.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승훈 씨는 뭐라고 합니까?

-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

권해철의 답에 어색하게 웃었다.

권해철도 촬영장에서 장승훈이 열심히 신희진에게 대시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게 티가 나는데 모르는 게 바보였다.

게다가 오히려 내게 와서 종종 장승훈에 관한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 아, 잠시만요. 승훈이가 바꿔 달라고 해서요.

“네? 네.”

갑자기 여기서 장승훈이 왜 나와?

- 장승훈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 옆에 희진이 있나요?

통화하자마자 신희진을 먼저 찾는 장승훈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없어. 있어도 바꿔줄 생각 없어. 돌아가.

“아뇨. 지금 연습실에서 대본 외우고 있어요.”

- 희진이도 곧 스캔들 기사 터진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아직 이야기 안 했습니다.”

- 음….

장승훈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고민하는 기색을 비쳤다.

합의 보고 빠르게 아니라고 대응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걸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 판 한번 키워 볼래요?

“네?”

뭐야, 얘?

* * *

“너 미쳤어?”

“뭐가?”

권해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장승훈에게 말했다.

그런 권해철과 다르게 장승훈은 태평했다.

“너 이미지 타격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이미지 타격? 이런 거로 무슨 이미지 타격이야. 내가 스캔들로 이미지 타격 입을 게 뭐가 있다고? 트로피 하나 더 생기는 거지.”

“트로피? 미치겠다 진짜.”

장승훈의 말에 권해철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

장승훈은 권해철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나랑 연기하면 백프로 스캔들이 생긴다는 트로피지.”

“미쳤구나. 미쳤어.”

장승훈은 스캔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번에도 스캔들을 터트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엮일 건수가 없어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였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굴러들어오니 장승훈은 몹시도 기분이 좋았다.

태평한 장승훈의 말에 권해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치다니. 어느 때보다도 정상인데.”

“그게 그러자고 하는 이유 전부야?”

“당연히 아니지. 분위기가 이러면 꼬시는 데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장승훈이 히죽 웃었다.

권해철은 장승훈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얼이 빠졌다.

지금껏 봐온 장승훈이라면 그럴 거라고 예상을 조금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잖아. 스캔들 터진 걸 구실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애가 너무 철벽이잖아? 잘 안 넘어오네.”

“진짜 네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 진짜로.”

권해철이 장승훈을 보며 혀를 찼다.

이내 다 포기한 말투로 장승훈에게 말했다.

“모르겠다. 마음대로 해라. 너랑 4년을 일했는데 난 아직도 널 모르겠다.”

“형. 난 항상 일관적이었어.”

장승훈이 악동처럼 권해철에게 답했다.

그런 장승훈의 태도에 권해철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항상 일관적이었지. 그게 여자한테만 일관적인 게 문제야. 난 진짜 네가 배우가 된 게 제일 미스터리다.”

“그건 나도 그래.”

권해철의 말에 장승훈이 능글맞게 대답했다.

“아무튼, 아까 통화하는 거 들었지?”

“그래, 임마.”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게 단어 선택 잘해서 대응해줘. 입장 잘못 내면 나도 우스워지니까.”

“하아… 알았어.”

권해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그러자 장승훈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난 대본 좀 외우러 갈게. 특이 사항 있으면 알려 주고.”

“그래.”

장승훈이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지자 홀로 남겨진 권해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박 기자님! 누가 그래요? 사귄다고? 기사 당장 내려주세요!”

“아이고, 양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빠르게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기자님. 아무 사이 아니라고 이야기드렸잖아요. 드라마 속 케미가 환상적이었다. 이런 기사는 어떻습니까?”

오후 내내 기자들과 전화를 한 결과 촬영 전까지는 어찌저찌 수습을 할 수 있게 됐다.

[입장이 서로 다른 두 사람]

[드라마의 케미가 부른 잠깐의 해프닝]

[(단독) 장승훈 -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사이]

[(속보) 헥사곤 - 아무 사이도 아닌 드라마 속 관계일 뿐. 루머 일축]

오늘만큼 내 핸드폰이 불이 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엄청 났다.

오늘 온종일 포털사이트 실검 10위권에는 장승훈과 신희진의 이름이 내려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파급력이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노이즈 마케팅을 제대로 해버렸다.

단순 홍보 효과만 놓고 본다면 몇천, 몇억까지도 될 법한 홍보를 무료로 하루 만에 해버렸다.

이래서 다들 노이즈 마케팅 노이즈 마케팅 하나 보다.

물론 그만큼의 부작용도 있었다.

댓글은 아비규환이었으며 장승훈과 신희진에 향한 댓글도 곱지는 않았다.

장승훈은 한두 번 그랬던 게 아니니 그러려니 하는 편이었지만 신희진은 달랐다.

댓글 수위의 격이 달랐다.

그래서 신희진 보고 절대 본인 기사 찾아보지 말라고 했다.

봐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뭐하세요?”

신희진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신희진이 와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요. 근데 뭐하고 계셨어요? 표정 굳은 채로.”

“그냥… 오늘 기사 좀 확인하고 있었어.”

내 답변을 들은 신희진이 피식 웃었다.

“어때요?”

“그냥 그래.”

“궁금하다.”

신희진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뒷짐을 지었다.

“보지는 말고.”

“안 봤어요. 근데 그렇게 심해요?”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는 거야. PD님은 어때?”

자꾸 궁금해하길래 화제를 바꿨다.

“오늘 완전 저기압. 조심해야 할 거 같던데요. 뭐 하나 잡히면 탈탈 털릴 거 같아요.”

“그래?”

“네.”

오늘 촬영장에서 이정수 PD를 만났을 때 직감하긴 했다.

오늘 촬영은 좀 힘들겠구나 하고.

게다가 우리와 장승훈이 입을 안 맞춰서 일을 더 키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 쳐서 촬영장 분위기는 꽤 험악한 상태였다.

“근데 효과가 있을까요?”

신희진이 주위 눈치를 살피다가 내게 말했다.

“효과?”

“마케팅 효과요.”

신희진의 말에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 온종일 실검 장악하고 있었으니 관심은 가졌을 것이고 그게 드라마로 연결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조금 도박이었거든. 오늘 시청률을 보면 알지 않을까?”

“그래도 오빠가 진행한 거니까 잘되겠죠?”

신희진이 눈웃음을 지으며 태평한 소리를 했다.

저 눈웃음은 아무리 봐도 심장에 해로웠다.

나는 신희진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답했다.

“내가 진행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어딨어.”

“여기요! 오빠 감 아주 좋잖아요. 그거 믿고 저도 베팅한 거였는데?”

쉽게 그러라고 한 이유가 단순히 나를 믿어서인 듯했다.

신뢰받는다는 게 확실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쉽게 믿으면 안 돼.”

“오빠니까 믿은 거죠.”

“음.”

신희진의 낯간지러운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오그라드는 연기를 하더니 오그라드는 말도 잘하네.

괜히 무안해져서 나는 말을 돌렸다.

“근데 너 왜 여기 와있어? 촬영은?”

“잠깐 휴식이에요. 오빠는 왜 모니터링 안 하고 여기 있어요?”

“일하고 있었잖아.”

“일이요?”

신희진이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양팔을 허리에 올렸다.

“오늘 반응 살펴보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략 수립하는 게 일이지. 모니터링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다.”

“아니죠. 배우가 연기하는데 그걸 보고 있어야죠. 뭐가 문제인지 짚어주는 게 일 아니에요?”

“매니저가 뭘 짚어줘? 그러는 매니저 거의 없어.”

매니저가 배우한테 터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의 경우에는 어쩌다 보니 터치를 하게 된 경우였다.

“오빠는 해줬잖아요.”

“그건 그때고.”

“지금은요?”

“아니, 언제는 쉬라며?”

내 말이 불만인 듯 신희진이 눈을 치켜떴다.

“신희진 배우님!”

멀리서 신희진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찾는다.”

“있다가 다시 이야기해요.”

신희진이 내게 말하고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갔다.

나 참. 뭘 다시 이야기하자는 건지.

신희진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나도 신희진을 따라갔다.

반응은 얼추 확인을 끝냈으니 신희진 말처럼 촬영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을 해봐야겠다.

부정적인 반응만 이야기했지만 긍정적인 반응도 꽤 많았다.

그리고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도 나와 상당히 많은 사람이 드라마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의도한 대로 주목은 받았는데 이 시선을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신희진을 따라간 장소에는 이정수 PD와 장승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굳은 얼굴의 이정수 PD와 여유로워 보이는 장승훈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신희진이 가까이 가자 정색한 이정수 PD가 신희진에게 말했다.

“다음 장면 이야기 좀 하려고 불렀습니다.”

“네.”

“대본이랑 달라진 게 있는데 동선이 조금 바뀌었어요.”

이정수 PD가 신희진과 장승훈에게 다음 장면 디렉팅을 했다.

그런 이정수 PD에게로 조연출이 다가가 무어라 말하자 이정수 PD의 무표정한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여러분. 11회 시청률 10% 뚫기 직전이랍니다.”

노이즈 마케팅의 입질이 오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청신호를 밝힌 채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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