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터지기 위한 조건 (3)
드라마가 여전히 순항 중이었지만 한 방이 아쉬웠다.
오히려 쭉쭉 올라가던 성장세가 한풀 꺾여 버렸다.
시청률은 현재 7%를 맴돌고 있었다.
특히 10회 시청률은 0.5%가 하락한 7.2%였다.
올라가다가 꺾였다는 건 더 유입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뭐가 문제일까.
지표상으로는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한 게 뭔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지표였다.
그런데 너무 아쉬웠다.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방법이 필요했다.
뭐가 있을까.
내 머리로는 한계가 있기에 방법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 방면에서 내가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딱 한 명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음이 가자 상대 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차 팀장님. 안녕하세요. 아, 이제 팀장님이 아니죠. 트리 엔터 대표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 어, 오랜만이야. 대표는 무슨… 뭔 일이야?
오랜만에 듣는 차태수 전 팀장의 목소리였다.
“에이,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하나요.”
- 너, 임마. 나 나가고 반년 넘게 연락 한 통 없던 놈이잖아. 당연히 무슨 일이 있으니까 연락했다고 생각하지. 네 번호 뜰 때 처음에 의아했어. 누구였지? 하고.
“하하… 잘 지내세요?”
- 아니, 못 지낸다.
차태수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네? 왜요?”
- 혼자 컨트롤 하려니 죽겠어. 괜히 나갔나 싶기도 하고. 확실히 대형 기획사 빽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은 좀 다르네. 그래도 입에 풀칠할 만큼의 일은 형식이한테 주고 있으니까 뭐….
차태수 팀장이 말한 형식이라는 인물은 배우 김형식이다.
차태수는 김형식 배우와 8년을 함께했다고 했다.
그리고 8년을 차태수와 함께한 김형식 배우는 업계에서 꽤 끗발이 높은 배우였다.
그런 김형식 배우가 회사와 계약이 끝나고 본인이 회사를 차렸는데, 그때 차태수는 같이 못 옮겼다고 했다.
이유는 김형식이 회사를 나갈 때 싸웠다고 했었다.
그렇게 둘이 싸우고 차태수가 붕 뜨자 헥사곤에서 스카웃 제의가 와 헥사곤으로 왔다고 했었다.
물론 지금은 김형식 배우와 화해하고 나간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일 잘 풀리시길 바라요. 응원하겠습니다.”
- 낯간지러운 말은 그만하고. 그래서 용건이 뭐야? 형식이 캐스팅으로 연락한 건 아닐 거고.
“아…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이번에 드라마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 희진이? 드라마 괜찮던데.
차태수도 배우를 맡은 사람답게 업계 모니터링은 꼼꼼히 하고 있는 듯했다.
“네. 근데 뭔가 좀 아쉬워서요. 이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 시청률을 더 올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 방법? 있기야 있지.
내 말을 들은 차태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 그럼. 이게 뭐 별거라고. 기도해. 물 떠놓고 하루에 세 번. 아니면 절에 가서 삼천 배 하면 하늘이 정성이 갸륵하다고 들어줄 수도?
“…….”
이 사람이 장난하나.
난 진지하게 물은 질문이었는데.
- 농담이야 임마. 얼굴 풀어.
“저 아무 표정도 안 지었습니다.”
- 지랄. 얼굴 썩어서 이 새끼 노망났나 싶었겠지.
“하하….”
다소 거친 차태수의 말에 뜨끔했다.
회사를 나가더니 어휘가 더 거칠어졌다.
게다가 어디에서 나를 보고 있나 싶었다.
귀신같이 내 표정을 읽었네.
- 드라마 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겠냐? 가장 좋은 건 드라마 작품이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봐주는 거지. 그게 베스트고. 그다음이 배우의 연기에 기대는 거. 우리가 외적으론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어. 사람들이 뭔가 이슈가 터져서 궁금해서 보는 게 아닌 이상.
“그런가요….”
다소 실망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정녕 방법은 없는 건가.
- 음… 희진이 파트너가 승훈이었지?
“네.”
- 승훈이면 예전에 스캔들 터지고 드라마 시청률이 좀 올랐던 적이 있긴 했는데.
“스캔…들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 어. 노이즈 마케팅이지. 잠깐 확 끌어왔다가 확 빠졌던가? 상대 여배우가 연기만 좋았어도 더 떴을 텐데 말이야.
차태수의 ‘여배우 연기만 좋았어도 더 떴을 텐데 말이야’가 내 머릿속을 울렸다.
“감사합니다! 좋은 생각이 났어요.”
- 너도 해보게?
“네. 될 것 같거든요.”
차태수가 내 반응에 대충 눈치챈 듯했다.
- 희진이 연기가… 흠. 그래. 될 수도 있겠다. 근데 그거 양날의 검이야. 잘못하면 훅 간다.
“양날의 검이라뇨. 그냥 보검인걸요. 잘되면 나중에 한턱 쏘겠습니다.”
- 음… 난 모르겠다. 한번 해보던가.
차태수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 그래. 너라면 뭔가 다른 걸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있을 때도 한두 번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고생해라.
“네. 들어가세요!”
차태수와 통화를 끊고 나서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장승훈과 신희진을 엮는 건 정말 별로였지만 나쁜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보기만 하면 빠져들 거란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요물은 매력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목표를 정했으니 발 빠르게 움직일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나 혼자 진행할 수는 없었다.
결제가 필요했다.
* * *
숙소보다 연습실에서 대본 외우는 게 편하다고 한 신희진을 먼저 찾았다.
당사자에게 허락을 구하는 게 서순이 맞지 않겠나.
신희진이 있는 연습실에 도착해 안을 훔쳐보니 열심히 대본을 외우고 있는 신희진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신희진이 나를 쳐다봤다.
“아, 미안. 방해했어? 대본에 몰두하고 있길래 방해 안 하려고 했는데.”
“아니에요. 무슨 일 있으세요?”
신희진에게 가까이 가자 신희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신희진에게 말했다.
“음… 진행하려고 하는 일이 있는데 네 허락이 필요할 거 같아서.”
“저요?”
“어.”
“뭔데요?”
신희진이 궁금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맞는 걸까.
“너 혹시 스캔들 터져도 괜찮겠어?”
“네??”
내 말에 신희진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웬 스캔들이에요?”
“노이즈 마케팅 해보려고.”
“노이즈 마케팅이요?”
“응.”
조금 전 차태수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신희진에게 말해줬다.
내 말을 들은 신희진이 팔짱을 끼며 나를 바라봤다.
“흐응….”
게슴츠레한 눈빛에 갑자기 등골이 서렸다.
신희진이 거부한다고 하면 안 할 거다.
안 그래도 1년 전 이맘쯤에 여론의 뭇매에 맞아 상처를 입은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차태수에게 들었을 때 괜찮겠다 싶다가도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본인의 의사를 가장 먼저 물어보려고 온 거였다.
“괜찮겠어요?”
“뭐가?”
“제가 스캔들 터져도 오빠는 괜찮냐고요.”
“나?”
“네.”
괜찮을 리가 있나. 안 괜찮지.
“당연히 싫지. 근데 사실이 아니잖아?”
내 말이 끝나자 신희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긴 하죠.”
“어떻게 할래?”
“전 괜찮아요.”
신희진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해서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정말?”
“네.”
“이유라도 있어?”
“오빠가 하자고 해놓고 역으로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아니….”
신희진의 역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쿨하게 승낙할 줄은 몰랐지.
내가 당황한 티를 내자 신희진이 싱긋 웃었다.
“오빠의 그 점이 마음에 드는 거지만요.”
신희진의 말에 뭐라고 답할 말을 못 찾았다.
“어차피 페이크잖아요. 수습은 생각하셨을 거구요. 터지고 당분간 인터넷 잘 안 하면 되죠, 뭐.”
“…알았어. 그럼 그렇게 진행할게.”
뭔가 맥이 빠졌다.
“네. 할 이야기는 끝이죠?”
“어? 어.”
“그럼, 저 대본 좀 마저 외울게요.”
“알았어. 고생해.”
내 말에 신희진이 손을 흔들었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연습실을 나왔다.
이걸 일이 잘 풀렸다고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당사자에게는 허락을 구했으니 이제 상급자에게 허락을 구할 차례였다.
내 계획을 들은 남진수는 마케팅팀을 연결해줬고 마케팅팀은 기획팀에 연결을 해줬다.
기획팀으로 가니 기획팀에서는 대표님과 이야기를 해보라며 정인수 대표에게 연락했다.
결국, 대표실 문 앞에 서게 됐다.
“대표님. 김현진 팀장입니다.”
“들어와.”
* * *
“그러니까…. 노이즈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는 거지?”
“네.”
정인수 대표가 양손을 깍지 낀 채로 내게 물었다.
“드라마가 지금 시청률이 7%대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결과 아닌가? 너무 욕심내는 거 같은데? 케이블 드라마 7%대면 선방한 거 아닌가?”
7%면 선방한 게 맞다.
어디 가서 드라마 망했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쉽지 않나.
“욕심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요.”
“더 오를 거라는 보장은?”
“보장은 없지만… 왠지 오를 것 같습니다.”
“보장은 없지만, 왠지 오를 것 같다라… 이번에도 감인가?”
“감이라기보다는 배우와 작가, PD를 믿는 쪽에 가깝겠죠.”
정인수 대표가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좋아. 진행한다고 치고 실패할 시 리스크는 어떻게 하지? 이미지만 나빠지고 욕만 엄청 먹을 텐데.”
“실패하지 않을 텐데 리스크를 왜 생각해야 하죠?”
계속해서 부정적인 정인수 대표에게 발끈해 급발진해 버렸다.
왜 이렇게 부정적인 거야.
그러자 정인수 대표가 앉아 있는 의자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푸하하, 정말 리스크가 없어? 정말?”
“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인수 대표가 다시 상체를 앞으로 향하더니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김현진 팀장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 재밌어.”
“감사합니다.”
“칭찬하는 건 아니야.”
“죄송합니다.”
“기죽을 건 없고.”
“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정인수 대표가 흥미로워하는 모습에서 승인이 날 듯 보였다.
“제작진이나 장승훈 쪽에게는 알릴 건가?”
“그냥 우리만 알고 진행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정인수 대표가 의아한 듯 쳐다봤다.
“알리는 게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게 더 좋을 텐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생각하다 보니 예전 일이 생각나서요. 예전에 우리 모르게 자기들끼리 기사 냈으니 저희도 한번 그래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 일이 있었지.”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그때 갑자기 기사가 나서 이게 뭔가 싶어서 정말 황당했었다.
자기들도 그런 기분을 느껴 봐야 하지 않겠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브 앤 테이크다.
“네. 그리고 혹시 모를 책임론도 피할 수 있고요.”
“언제는 자신 있다면서?”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끅끅대며 웃었다.
나도 그 웃음에 덩달아 같이 웃음을 지었다.
“좋아. 진행해 봐. 마케팅팀에는 전폭적으로 도우라고 말해두지.”
“감사합니다.”
정인수 대표가 나를 지긋이 계속 쳐다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깝단 말이야….”
“네?”
“아니야. 가봐.”
“네.”
정인수 대표에 말에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아 문으로 향해 걸어갔다.
문에 도착하기 조금 남았을 때 정인수 대표가 나를 불러 멈춰 세웠다.
“아, 참.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드라마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면 그때 한번 이야기를 다시 하지. 할 말이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 가봐. 고생하고.”
정인수 대표에게 다시 고개를 숙이고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좋아, 이제 한번 저질러 볼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