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터지기 위한 조건 (2)
어느덧 ‘요물’은 3회차까지 방영됐다.
첫날 3.8% 조금 저조한 시청률로 출발, 현재 3회 시청률이 4.9%였다.
긍정적인 지표였다.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임을 보아 내일 방영될 4회도 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아니라고요!”
지금 열연을 펼치며 촬영을 하는 신희진과 장승훈의 케미가 생각보다 좋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요물 6회차를 찍는 중이었는데, 이 장면은 승수와 미호가 주방 안에서 목소리 높여 다투는 간단한 장면처럼 보여도 꽤 중요한 장면이었다.
드라마도 보다 보면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지금 찍는 장면이 그랬다.
이게 왜 포인트 장면이었냐면, 미호의 행동으로 인해 승수가 점차 미호에게 빠져가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둘이 티격태격하다가도 달달한 기류를 한껏 뽐내며 연기하고 있었다.
“자요.”
“이건 뭐예요?”
“제가 한식 전문가라고 말했잖아요. 정.통.비.법이라구요.”
미호가 승수에게 들이민 음식은 화면으로 한눈에 봐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물론 저 요리는 기다리고 있던 요리 전문가가 해준 요리다.
요리 과정 같은 경우 적절히 편집으로 나가지 않을까.
“괜찮죠?”
한 입 먹은 승수에게 미호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음식을 음미하던 승수가 머뭇거리다 미호를 바라봤다.
“…그러네요.”
“그럼 우리 이걸로 할까요?”
승수에게 한껏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고 말하는 미호.
그런 미호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승수.
그림은 확실히 괜찮았다.
“컷!”
이성수 PD가 컷을 외쳤다.
“좋습니다. 좋아요. 이렇게만 가자고.”
“괜찮았나요? 감독님?”
만족스러운 이정수 PD의 말에 장승훈이 물었다.
“이번엔 괜찮았어. 한번 볼래?”
“네.”
장승훈이 신희진을 데리고 이정수 PD가 있는 모니터로 향했다.
지금 장면은 4 테이크 만에 받은 오케이 사인이었다.
이정수 PD의 스타일은 조금 꼼꼼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배우들의 감정선을 자신이 생각한 방향대로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테이크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디렉팅 하는 것도 ‘이건 아닌 거 같으니 다시 한번 가죠’ 같은 뜬구름 잡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방금 이 대사에서는 감정이 너무 메마른 거 같은데 좀 더 감정을 실을 수 있을까요?’ 식으로 정확하게 짚어주니 능력이 없지는 않았다.
배우에게 정확한 디렉팅 없이 ‘이번 건 느낌이 별론데?’ 하면서 다시 찍는 감독들도 꽤 많았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표정을 좀 더 살리려고 노력했는데 확실히 이게 더 괜찮네요.”
“이번엔 잘 나온 거 같아. 그러니까 오케이 했지.”
“희진이 넌?”
“저도요.”
현장 분위기는 드라마가 그래도 점진적으로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어서 촬영장 분위기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힘내서 가자! 라는 분위기였다.
내가 생각했던 복병은 장승훈이었는데 장승훈이 생각 외로 노골적으로 신희진에게 들이대지 않았기에 분위기가 망가지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신희진의 노력 아닌 노력이 빛이 났다.
노력이 빛이 났다고 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어때? 좀 설렜어?”
“에이, 그 정도로 누가 설레요. 좀 더 분발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그래? 좀 더 노력해야겠네?”
창과 방패의 대결이랄까.
보는 내 입장에서는 되게 웃겼다.
나만 이 상황이 웃긴 게 아니었다.
다른 스태프들도 드라마 종영까지 과연 장승훈이 신희진을 뚫을 수 있을까? 하면서 내기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바로 다음 컷 가겠습니다!”
조연출의 말에 현장이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 * *
- 꼬맹이가….
- 너, 자꾸 나보고 꼬맹이라고 부르는데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왜 자꾸 까불어?
- 꼬맹이를 꼬맹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 이거 안 되겠네.
TV 화면 속에서 미호와 승수가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보였다.
요물은 어느덧 16화 중 8화인 중반까지 진행되었다.
6화에서부터 둘의 관계가 점차 진전이 있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서로 편하게 부르며 케미를 폭발시키는 중이었다.
꿀꺽.
옆에서 침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유코가 두 손을 모으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완전 푹 빠진 모습이네.
이에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유코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비슷했다. 특히 서지영은 입으로 손가락을 깨물면서 숨죽이고 보고 있었다.
애들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둘이 투덜대며 싸우다가 갑자기 승수가 미호에게 성큼 다가가며 분위기가 반전되는 장면이었다.
다시 TV 화면을 보니 승수가 미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미호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이 보였다.
- 자꾸 그러면… 혼나.
“꺄!”
승수의 대사에 애들의 비명이 숙소를 울렸다.
요물의 모니터링은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스타즈의 숙소에서 다 같이 보는 거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바빠서 모여서 보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는데 오늘 스케줄이 겹치는 게 없어, 모여서 보게 됐다.
이렇게 모여서 보는 건 1회와 3회 때 이후로 오늘이 세 번째였다.
승수의 태도에 숨죽여 애들이 TV를 보고 있던 때에 화면이 프리징 되고 OST가 흘러나왔다.
“왜 또 여기서 끊는데!”
유미소가 비명을 질렀다.
“와… 이제 예고편도 안 해주네.”
“으어… 넘나 감질 나는데… 언니 다음 어떻게 돼?”
박혜연과 서지영이 여전히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다음에 봐서 확인해.”
“아, 언니이!”
신희진이 도도하게 말하자 서지영이 고개를 휙 하고 돌리더니 급기야 신희진에게 다가갔다.
“키스할까? 진도가 너무 빠른 거 같은데? 완전 지금이 하는 타이밍인데….”
“요즘 드라마 진도 빨리 빼잖아? 하지 않았을까?”
다른 애들을 살펴보니 이나라와 유미소는 열띤 토론 중이었다.
애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게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인가.
잘 모르겠다.
나는 신희진과 함께 촬영하고 있으니 이다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보니까 무덤덤한 건가 싶었다.
“했어? 안 했어? 그거만….”
린도 궁금했는지 신희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만나요!”
“오늘 잠 안 올 거 같단 말이야!”
서지영이 신희진에게 매달려 칭얼거렸다.
“히….”
유코는 여전히 아까 본 상태 그대로에서 입 모양만 히죽 웃고 있었다.
다음 장면을 상상하고 있나?
“오빠! 오빠는 봤죠? 했어요? 안 했어요?”
신희진이 안 알려주자 서지영이 화살을 나에게로 바꿨다.
“다음 주에 봐.”
“아악!!!”
그런 서지영에게 나는 최대한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서지영이 악을 질렀다.
귀 떨어질라. 목청도 좋지.
“지금 한밤중이야.”
“하… 진짜 요즘 스케줄 하면서 이거 보는 게 낙이다. 진짜.”
서지영이 내 말을 무시하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드라마가 완전히 끝나고 광고가 나오자 애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일어나야겠다. 그리고 신희진이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내게 와서 말했다.
“전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 그래. 얼른 쉬어. 내일 보자.”
“네.”
신희진이 냅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신희진의 스케줄은 엄청 살벌했다.
드라마 스케줄, 방송 스케줄, 광고 스케줄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마 스타즈로 데뷔 후 가장 바쁜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스케줄을 잘 소화하는 게 대단할 따름이었다.
“얘들아. 갈게.”
“네!”
내 말에 애들과 대화를 나누던 안혜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남은 애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렇게 안혜지와 숙소 밖으로 나왔다.
“희진이가 많이 피곤한가 봐요.”
“네가 봐도 그렇지?”
“네.”
안혜지가 나오자마자 내게 신희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스케줄 조절을 좀 해야 하려나….”
“방송하면서 가끔 졸더라고요.”
“그래? 그건 못 봤네….”
안혜지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신희진의 몸이 상당히 부담이 쌓인 상태인 듯했다.
내일 한번 슬며시 스케줄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다.
“오늘도 수고했고, 조심히 들어가.”
“네, 팀장님. 고생하세요.”
안혜지를 보내고 나자 나도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얼른 집 가서 자야겠다.
* * *
[맛있는 집은 소문이 퍼진다. 의외의 맛집 ‘요물’의 행진]
신희진이 숙소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일과처럼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켜 확인한 기사.
이런 기사는 피곤함에 절어 있다가도 보는 순간 활력이 돋았다.
[요물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1회 3.8%(닐슨 K 유료 가구 기준) 저조한 시청률을 시작으로 현재 8.2%(닐슨 K 유료 가구 기준)까지 올라왔다. 게다가 이번 8화에서 나온 승수(장승훈)와 미호(신희진)의 아슬아슬함에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8회에 8% 선을 뚫었다. 이 기세면 10%도 조만간 뚫을 것 같았다.
처음 저조한 시청률로 나에게 위로를 건네던 남진수가 회사에서 나를 치켜 세워주는 게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행보에 제작진과 방송국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요물의 제작비는 같은 편성시간대인 타 드라마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돈이 다가 아니란 걸 알려주고 있는 ‘요물.’ 현재 드라마 시장의 트렌드인 판타지와 함께 한국식 로맨스를 적절히 잘 섞은 요물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시청률이 심상치 않게 오르자 제작진도, 방송국도 신경 써주는 게 많이 달라졌다.
방송국 차원에서 간식 차를 보내기도 하고 촬영장에서 먹는 음식의 질도 많이 올라갔다.
그만큼 광고가 많이 붙어 흑자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건 외주를 줘서 진행한 드라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방송국은 축제의 현장이었다.
물론 그만큼 제작진도, 배우도 부담감이 더해지긴 했다.
즐거운 비명이었지만 말이다.
나와 신희진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힘내는 이유기도 했다.
드륵.
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신희진이 들어왔다.
그와 함께 내 고개도 문이 열린 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머리도 채 다 말리지 않은 신희진이 보였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좀 늦었죠?”
“아냐. 어차피 넉넉한데 뭘.”
내 대답을 들으며 머리를 털던 신희진이 내게 다시 물었다.
“뭐하고 계셨어요?”
“어제 방송한 요물 반응 모니터링.”
“뭐래요?”
“기사는 요물이 잘 돼가고 있고 예상외의 선전에 기대감 품는 호의적인 기사였어. 사람들 반응도 좋고. 댓글 반응 보면 둘 케미가 너무 달달하다. 여기서 끊는 게 어딨냐. 연기가 너무 좋다.”
기사를 보고 댓글을 쓱 훑어봤을 때 읽었던 댓글을 알려줬다.
“악플도 있었죠?”
“아니? 없던데?”
말을 하면서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신희진이 피식 웃었다.
“뭐래. 나도 보고 왔거든요? 신희진 남자 한두 번 홀려본 솜씨가 아닌 거 같다. 오빠한테 꼬리치지 마라.”
“넌 왜 안 좋은 것만 읽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신희진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런 게 더 기억에 많이 남나 봐요.”
씁쓸한 웃음에 마음이 아팠다.
아직 예전에 겪었던 사건이 다 치유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오빠가 볼 때는 어때요? 홀렸어요?”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신희진이 내가 있는 운전석 쪽으로 머리를 밀며 말했다.
샴푸 냄새와 함께 신희진의 얼굴이 가까이 보였다.
그리고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