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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81화 (181/200)

제181화. 밀고 당기기가 필요해? (3)

“다시 만나서 되게 반갑죠?”

신희진이 앙큼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희진이 지금 앙큼한 표정으로 말하는 대사는 내일 전체 리딩을 하는 ‘요물’의 1화 대본 마지막 대사였다.

짝짝짝!

그러자 나와 같이 보고 있던 애들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와! 이 집 맛집이네! 맛집이야!”

“진짜 빈말이 아니고 재밌는데?”

서지영과 유미소가 호들갑을 떨었다.

“언니 나오는 장면만 봐서 전체적인 이야기는 좀 헷갈리는데 대사가 맛깔나서 재밌을 거 같아요.”

박혜연도 눈을 반짝이며 신희진에게 말했다.

애들의 칭찬에 신희진이 기세등등해졌다.

“그럼, 누가 연기하는데? 당연히 재밌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재수 없다?”

“사실을 이야기한 거야.”

이나라의 말에 신희진이 코웃음 쳤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조금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미호에 몰입 중인가?

나는 그런 신희진에게 다가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왜요!”

“몰입 풀라고.”

“네?”

뜬금없어 보이는 내 말에 신희진이 당황해했다.

그런 신희진에게 나는 재차 물었다.

“너, 방금까지 미호 캐릭터 성격 그대로 연기하고 있었지?”

“음… 그랬던 거 같아요.”

신희진이 아까와 다르게 차분한 분위기로 내게 말했다.

활발하면서도 차분한 모습.

이게 평소의 신희진이었다.

이나라에게 대꾸하며 톡톡 튀는 캐릭터는 극 중 미호 캐릭터에 가까웠다.

“어? 뭔데요?”

내 태도에 애들이 수군거렸다.

“재성이한테 이상한 걸 배웠네. 그거 위험한 거야. 배역에 몰입하는 건 좋은데 배역에 매몰되면 안 돼. 컷하는 동시에 배역에서 빠져나와야 해.”

내 말에 신희진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찌푸렸다.

“재성 오빠나 승기 오빠는 평소에도 캐릭터 성격대로 다니잖아요?”

“그 양반들은 나중 되면 구분을 하잖아.”

“저도 가능할 거 같은데요?”

신희진은 내 지적에 불만이 많은듯했다.

그러나 내가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넌 연기로만 먹고사는 배우가 아니잖아. 아이돌 활동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 보이면 다중인격으로 보이기 딱 좋아.”

“…그러네요?”

“너만의 스위치를 만들어서 켰다 껐다 해야 해.”

“노력해 볼게요.”

“그래.”

나와 신희진이 대화가 끝난 것 같아지자 애들이 우리 곁으로 스멀스멀 다가왔다.

“오~ 오빠 지금 쫌 뭔가 있어 보여요.”

“희진 언니 리딩 할 때 이런 식이었어요? 언니가 신뢰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

애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신희진이 내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근데 그거 말고, 오빠는 저 어땠어요?”

“좋았어. 영화 찍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너, 배역에 몰입을 잘하네. 그래서 자연스러워. 이번엔 더 자연스러웠고.”

“그래요?”

“응.”

확실히 얘는 연기에 재능이 있다.

아마 아이돌 생활이 끝나고 가수를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배우의 재능이 더 높아 보였다.

“나도 그때보다 지금이 더 훨씬 입체적인 것 같아. 톡톡 튀어.”

“나도.”

애들도 내 말에 공감해줬다.

“언니 2화는 아직이에요?”

“2화 궁금한데.”

“다시 만나서 무슨 이야기해요?”

애들은 정말로 내용이 재밌었던 듯했다.

괜히 나랑 신희진이 이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다.

게다가 드라마를 자주 보는 애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애들이 숙소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보니 숙소에서 할 수 있는 취미로 택한 게 드라마 보기였는데 드라마에 한해서는 평론가 저리 가랄 정도로 분석적이었다.

이 자리도 내일 있을 사전 리딩 전에 그런 애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볼까 해서 만든 자리이기도 했다.

“2화는 아직일걸? 내일 리딩도 1화만이니까.”

내 말에 애들이 급속히 실망하는 얼굴을 지었다.

그런 애들을 보던 신희진이 내게 말했다.

“저 2화는 대본 보면서 하면 2화도 얼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2화도 해볼까요?”

“그럴래?”

“네.”

나와 신희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애들이 재차 눈을 빛냈다.

“요물 2화 시작하니 다들 착석해 주세요!”

“네!”

이나라의 힘찬 외침과 함께 연습실 1열에서 요물 2화가 시작되었다.

내일,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모여서 하는 전체 리딩이 사뭇 기대됐다.

* * *

“안녕하세요. ‘미호’ 역을 맡은 신희진입니다.”

짝짝짝!

신희진이 앞선 사람과 똑같이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승수’역을 맡은 장승훈입니다.”

짝짝짝!

마지막으로 장승훈도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앉자 모두의 시선이 이정수 PD에게로 쏠렸다.

“자, 다들 통성명은 한 거 같으니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지문은 조연출이 읽을 테니 배우분들은 대사에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리딩이지만 최선을 다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드라마 시작 전에 한번 가지는 이 리딩은 의미가 컸다.

리딩은 탐색전이다.

배우에게는 서로에 대한 탐색전이었고, 제작진들은 이 배우들을 믿을 수 있나 하는 탐색전이었다.

여기에서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못 미치면 그때부터는 서로 피곤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상석에서 이정수 PD와 김지선 작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우들을 훑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이 절로 삼켜졌다.

이내 이정수 PD가 옆에 있던 인물에게 말했다.

“병수야, 시작해.”

“네.”

병수라고 불린 인물이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씬 1. 한 남성이 봉투에 술을 들고 산에 올라가고 있다. 승수다. 이내 묘지에 도착한 승수. 묘지 앞에서 한탄한다.”

“약속은 못 지킬 거 같아. 내 능력이 여기까진가 봐.”

조연출의 지문 읽기가 끝나자 장승훈이 재빠르게 대사를 쳤다.

발음도 괜찮고, 톤도 적당히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짧은 대사였지만 감정도 배어있고, 확실히 여자 문제 빼면 괜찮다는 평이 맞는 듯했다.

조연출이 다시 지문을 읽었다.

“승수. 가져온 술을 묘지에 뿌린다.”

“다음엔 레스토랑 문 닫고 나서야 오겠네. 그때까지 잘 있어.”

“자리를 정리하고 묘지에서 내려가는 승수. 그러다 내려가는 도중 입구에 있던 여우 신사를 본다. 여우 신사에 가지고 온 술과 주전부리를 두는 승수.”

“절대, 절대 버리기 귀찮아서 두고 가는 거 아닙니다. 너무 쓸쓸해 보여 공양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두고 가는 겁니다. 근데… 이러면 소원이라도 들어주나?”

장승훈이 피식 웃으며 대사를 마무리했다.

“승수가 내려가고 나서 여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를 돌아보는 승수. 이내 다시 내려간다. 화면 바깥으로 승수가 보이지 않자 그 자리에 미호가 등장한다.”

“마지막 공양 자가 저따위라니… 이것도 운명이겠지?”

신희진이 짧게 대사를 치며 드라마의 프롤로그가 끝이 났다.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건 이 드라마의 컨셉이었다.

어쭙잖은 드라마보다 막장 드라마가 더 재미있듯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유치하면서도 힐링 되는’이었다.

그래서 인물들이 다 개성이 강하고 톡톡 튀었다.

이걸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드라마가 유치찬란할 수도 있고 그럴듯하게 나올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계속해보죠.”

이정수 PD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방금 진행한 프롤로그의 느낌이 이정수 PD는 괜찮은 듯했다.

옆에 있던 김지선 작가도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정수 PD가 다시 조연출에게 눈치를 줬다.

“씬 2. 한적한 바 형식의 레스토랑. 멍하니 서 있는 승수. 여성 손님이 들어온다. 미호다. 미호가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바에 앉아 주문한다.”

“주문이요.”

“네.”

신희진과 장승훈, 둘이 단독으로 나오는 장면이다.

어떤 호흡을 보여줄까.

“창고에서 정리하던 승수가 나온다.”

“중간에 행동 지문은 생략하는 거로 하죠. 첫 지문만 읽고 대사 치는 거로. 장소 바뀌면 그때 지문 다시 읽고요.”

조연출이 지문을 읽자 이정수 PD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로 드릴까요?”

“뭐가 맛있어요?”

“다 맛있죠.”

“꿀에 빠진 크림소스 스파게티? 이건 뭐예요?”

꿀 떨어지는 장승훈의 목소리와 귀엽게 말하는 신희진의 목소리는 제법 어울렸다.

게다가 신희진은 대사에 감정만 실은 게 아니라 표정까지 연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장승훈도 재밌다는 듯 표정을 짓더니 신희진에게 맞춰서 표정까지 연기하기 시작했다.

“아~ 이거요? 이거 맛있어요. 제 야심작이죠.”

“…육류는 없나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하는 신희진.

그 모습에 장승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래를 보시면 미트볼 스파게티 있어요. 그걸로 드릴까요?”

“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장승훈의 대사가 끝나자 조연출이 입을 열었다.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미호.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미호를 쳐다보고 있다. 눈이 요사스럽게 변하는 미호. 고양이들이 도망간다.”

조연출의 지문에 맞춰 신희진의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

장승훈이 사라지면서 무덤덤한 표정이었던 신희진이 히죽 웃는 표정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사스럽다는 표현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 분위기에 뭔가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어제 리딩에서 봤던 것보다 표현이 더 훌륭했다.

그리고 그렇게 연기하는 신희진의 모습을 보던 배우들과 제작진들의 표정도 이채롭게 변했다.

느낌이 좋다.

* * *

“이 PD님은 오늘 리딩 어떻게 보셨어요?”

김지선 작가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흠.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네요.”

“생각보다 둘의 케미가 괜찮은 거 같죠?”

무덤덤한 이정수 PD의 반응에 김지선 작가가 눈을 흘겼다.

“음… 그럴 거 같네요. 나쁘지 않아요.”

“리딩에 이 정도면 훌륭한 편 아닌가요?”

“지금 정도에 만족하면 안 되죠. 더 잘해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오죠.”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이정수 PD의 태도에 김지선 작가가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런 김지선 작가에게 이정수 PD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생각보다 신희진 연기가 괜찮네요. 오디션 봤을 때보다 더.”

“제가 말했잖아요. 이미지도 맞고 연기도 괜찮을 거라고. 아직도 희진이 나온 영화 안 보셨죠?”

“봤습니다.”

버럭버럭하는 김지선 작가와 대조되게 이정수 PD는 차분했다.

“보신 분이 어떻게 그래요?”

“그 배역이야 신희진 말고 다른 20대 여배우 앉혀놔도 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요. 솔직히 마스크가 다른 배우들보다 독보적이지 않았다면 안 뽑았을 겁니다.”

김지선 작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시작이 좋아 보이네요.”

지금껏 김지선 작가의 말에 토를 달던 이정수 PD가 이번엔 토를 달지 않았다.

“아, 그리고 저 지금 나온 대본들 수정 좀 할게요.”

“전부 다요?”

이정수 PD가 토끼 눈을 뜨며 말했다.

촬영이 2주 남았는데 원고를 고친다니.

이정수 PD와 다르게 김지선 작가는 덤덤했다.

“네, 조금씩이지만요.”

“알겠습니다. 작가님도 오늘 리딩 보고 뭐 걸리시는 게 있으셨나 봐요?”

“그건 아니고요. 배우들 캐릭터 분석해서 연기하는 거 보고 캐릭터를 좀 더 디테일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김지선 작가의 말에 이정수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에 문제없게만 수정해서 넘겨주세요.”

“알았어요. 오늘 고생하셨어요. 다음 미팅 때 봬요.”

“네. 들어가세요.”

김지선 작가가 나가자 이정수 PD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이정수 PD입니다.”

- 어, 왜?

“이번 드라마 푸시 좀 해주시죠.”

- 그냥 있는 그대로만 해. 뭘 푸시 해달래? 너희 편성 받은 것도 운 좋게 받은 거 몰라?

“알죠. 아는데요. 이번에 느낌이 좋아서 그래요. 느낌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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