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밀고 당기기가 필요해? (2)
“둘로 되겠어?”
“차라리 음방할 때나 사람이 많이 필요했죠. 오히려 지금은 괜찮을 거 같아요.”
애들의 Hurricane 활동이 이제 마무리되어 간다.
그리고 음악방송 활동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그 자리에는 예능 프로그램 스케줄로 꽉꽉 차버렸다.
그래서 매니저를 한 명 더 받을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녹화 일정은 다 달랐기에 문제없을 것 같았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허우대 멀쩡한 놈 뽑아도 일하다가 도망가는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신기하네. 가만 보면 인사팀도 꽤 보는 눈이 좋은 거 같어. 작년엔 너 하나 뽑고 안 뽑았고 올해도 혜지 말고는 안 뽑았는데 둘 다 잘 붙어 있는 거 보면.”
남진수의 말에 나는 뻘쭘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안혜지는 처음 매니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적응을 빨리했다.
단지 중간중간 쏟아지는 잠을 주체 못 해 나한테 꽤 혼났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일은 잘하는 편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남진수가 피식 웃었다.
“지금 와서야 하는 이야긴데 너 뭐 한다고 할 때마다 철렁한 거 알아? 너 보면서 무슨 깡으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많이 했다. 그래도 하는 거마다 잘됐으니 망정이지….”
“운이 좋았죠, 뭐….”
운이 좋은 건 맞다. 남들은 모르는 미래 정보로 부딪혔으니까.
“그래, 인마. 운 좋은 줄 알아. 그렇게 밀고 나가서 결과가 좋았으니 지금 위치에 있는 거겠지만….”
“저보고 지금 다시 똑같이 하라면 못할 거 같아요.”
내가 너스레를 떨자 남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희진이는 네가 쭉 데리고 다닐 거지? 예전에 영화 찍었을 때처럼?”
“네. 아무래도요. 예능 고정이야 첫 녹화 이후 자리 잡기 시작하면 딱히 할 것도 없잖아요?”
남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그럼 인원 충원은 안 하는 거로 알고 있을게.”
“네.”
“드라마 준비는 잘 돼 가?”
“요물 측에서 보내준 대본 봤는데 좋던데요. 희진이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장승훈은? 그때 이후로 연락 안 한대?”
남진수가 장승훈을 이야기하니까 첫 사전 미팅 때가 생각났다.
그때 신희진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장승훈을 먹이는 게 정말 일품이었다.
“네. 그때 희진이 철벽에 자존심이 좀 많이 상했나 봐요. 희진이한테 물어보니까 연락은 안 왔대요.”
남진수가 웃었다.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걸? 쉽게 포기했으면 스캔들을 그렇게 뿌렸겠냐? 아마 촬영하면서 좀 친해졌다 싶으면 다시 찌르겠지. 배우들은 다 그렇게 연애하더라.”
남진수의 말에 절로 공감이 되었다.
배우들은 작품을 할 때 연기로 끝나지 않고 그 감정 그대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장승훈이 괜히 상대 배우와 스캔들이 난 게 아니었다.
그 점을 잘 노렸기 때문에 작품마다 스캔들이 터진 걸 거다.
“그러고 보니 재성 씨랑 영화 찍었잖아. 그때는 뭐 없었어?”
“그때는…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아마 영화 자체가 연애라기보다는 다른 감정을 더 많이 사용했으니까요.”
“이번엔 대놓고 로맨스니까 유의 깊게 봐.”
“그래야죠.”
남진수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능 고정으로 나가는 애들도 조심해야 해. 거기서 눈 맞아서 연애할 수도 있으니까.”
“나라는 딱히 걱정 안 되는데 지영이가 걸리네요.”
이나라는 알아서 조심할 거고 서지영이 조금 걸렸다.
“생각 없는 애는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지금 위치 생각하면 하고 싶어도 꾹 참겠지.”
“그렇긴 한데,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가 서지영이니까요.”
“그건 그래.”
내 말에 남진수가 공감 간다는 듯 웃었다.
남진수와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는 중에 안혜지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팀장님!”
안혜지의 부름에 남진수와 동시에 안혜지를 쳐다봤다.
“어, 왜?”
“시간 됐습니다.”
“벌써?”
안혜지의 말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이내 나는 남진수에게 말했다.
“실장님 스케줄 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네.”
남진수에게 인사를 하고 안혜지와 같이 사무실을 나왔다.
* * *
“돈이다! 돈이야!”
유미소가 팬이 준 물건을 들고 팬미팅 장소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팬들은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지금 시간은 팬들과의 일대일 미팅은 끝나고, 팬들이 준 선물을 개봉하면서 잠깐의 시간을 보내며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이 팬미팅이 이번 Hurricane 활동 마무리였다.
“애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체력이 진짜 좋은 거 같아요.”
내 옆에서 팬 미팅을 지켜보고 있던 안혜지가 말했다.
“매일 운동하고 춤 연습하는데 체력이 안 좋을 리가 있나. 쟤네는 몸이 재산이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팀장님은 운동 안 하세요?”
“하고는 싶지. 근데 막상 하려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시간이 안 나. 우리는 불규칙적이잖아.”
안혜지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고 운동을 생각 안 한 게 아니다.
그러나 내 시간이 너무 불규칙했다.
일반 회사원들처럼 규칙적인 시간으로 출퇴근을 했다면 상관없겠지만, 우리는 담당 연예인에 맞춰 유동적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툼한 뱃살을 지니신 거군요.”
“나는 빼줄래? 나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 네!”
안혜지에게 투덜거리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운동을 안 하다 보니 나도 살이 조금 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애들 음악방송 활동이 끝나니 안혜지가 한결 사람다워졌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음악방송 활동 때는 안혜지는 지금처럼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말 걸 시간에 자고 있었다.
“이제 좀 적응돼?”
“네.”
“안 자고 있는 걸 보면 적응한 거 같긴 하다.”
“하하….”
안혜지가 내 말에 뜨끔한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런 안혜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잘하고 있어. 그대로만 해.”
“네!”
안혜지가 밝게 대답했다.
그런 안혜지에게 흐뭇한 미소로 화답한 뒤에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무대로 나가서 애들에게 알려줄까 싶어 무대를 봤는데 이나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 이나라에게 시간이 다 됐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내 사인을 본 이나라가 멤버들에게 전달하더니 하나둘 무대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 모이자 대표로 이나라가 말을 꺼냈다.
“여러분 어쩌죠? 벌써 시간이 다 됐어요. 항상 이때가 제일 아쉬운 거 같아요.”
이나라의 말에 멤버들이 손으로 눈물 모양을 만들어내며 액션을 취했다.
잠깐의 소동이 일어나고 가라앉자 이나라가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할 말 있는 사람?”
그러자 서지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이나라가 서지영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서지영이 목을 가다듬었다.
“매주 금요일 밤 저녁 9시 40분! 콜업 많이 많이 봐주세요!”
서지영의 뜬금없는 홍보에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무슨 말을 하려나 했는데 본인 프로그램 홍보라니, 어이가 없었다.
멤버들도 서지영이 저런 말을 할 줄 몰랐는지 황당해했다.
처음엔 방송한다는 거에 소극적이더니 막상 하게 되니까 기대되는듯했다.
게다가 아직 촬영도 하지 않았으면서 벌써 홍보라니.
“희진 언니가 출연하는 요물도 많이 많이 봐주세요! 본인 말로는 깜찍하고 매혹적인 여우래요.”
오오!
이번엔 한술 더 떠서 신희진이 출연하는 드라마도 홍보했다.
신희진은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했다.
그런 모습에 팬들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확실히 애들의 팬 조련 방법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애들이 손을 잡고 앉아 있는 팬들을 향해 인사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스타즈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안녕!”
“다음에 또 봐요!”
애들이 연신 팬들에게 환한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번 Hurricane 활동도 무난하게 끝나는 것 같다.
* * *
“…이상이 스타즈 이번 활동 내역 보고서입니다.”
“순항 중이네.”
기획팀장의 보고에 정인수 대표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성장세는 어떻지?”
“앨범 판매 추이로 따지면 팬의 유입은 들어올 만큼 들어온 거 같습니다.”
“그래?”
“네. 이전 앨범과 비교하면 상승세이긴 해도 상승 폭이 많이 줄었습니다. 아마 이번에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노출하면 조금 더 유입은 있겠지만 크게 성장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는 콘서트 투어 돌고, 해외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끌어모아야지. 어비스처럼.”
“콘서트 이야기를 하시니까 드리는 말인데요, 안 그래도 원소속사에서 슬며시 콘서트 투어 일정을 물어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익 극대화하기 좋으니까요.”
“올해는 국내 한정으로 해서 돌리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투어 일정 잡자고. 그럼 뽑아 먹을 만큼 뽑을 수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이내 기획팀장이 정인수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 근데 김 팀장은 계속 스타즈 쪽으로 놔두실 생각입니까?”
“왜?”
“이미 자리를 잡은 그룹에 두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획팀장이 김현진 팀장을 보며 드는 생각은 ‘굳이 스타즈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였다.
한창 성장하는 그룹이면 모를까 이미 커질 대로 큰 스타즈에는 굳이 그의 능력이 필요 없어 보였다.
“본인이 거기에 묶여 있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정인수 대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기획팀장에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콘서트 투어가 잡히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투어 돌 때는 곁에 붙어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콘서트 투어를 돌게 되면 매니저는 안전 관리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다.
“지금 스타즈 스케줄은 남 실장이 맡고 있나?”
“스타즈의 전반적인 관리는 김현진 팀장이 하고 있습니다. 남진수 실장은 신인 개발팀으로 옮기고 손 뗀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보고한 프로그램들은 다 김현진 팀장이 잡은 건가?”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손을 들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지금 스타즈가 잘나간다지만, 현장에서 관계자들 구워삶기엔 1년은 짧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영업력이 꽤 좋아.”
“드라마도 하나 따내지 않았습니까?”
“신희진이 들어간다는 그 드라마?”
“네.”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었다.
“보면 꾸준하게 연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단 말이야. 아이돌 담당이 주 업무인데 불구하고.”
“아무래도 전공이 그쪽이니까 좀 더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잘 살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재미를 많이 봤지.”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이번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김현진 팀장을 아예 배우 전담으로 빼는 게 어떻습니까? 시기도 드라마 끝날 때면 스타즈는 콘서트 준비에 들어갈 거 같은데요.”
“흠….”
정인수 대표가 고민된다는 듯 책상을 두드렸다.
“그건 내가 나중에 김현진 팀장 불러서 이야기해 보지.”
“알겠습니다.”
말을 끝낸 기획팀장이 정인수 대표를 바라보자 정인수 대표가 기획팀장을 바라봤다.
“더 이야기할 게 남아 있나?”
“아니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기획팀장이 나가자 정인수 대표가 펜을 들고 보고서 위에다 ‘김현진 팀장의 쓰임새’를 적고 생각에 잠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