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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78화 (178/200)
  • 제178화. 이게 흐름이야 (2)

    “승훈이? 희진이가 좀 철벽이던가?”

    “왜요?”

    장승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중 홍승기가 장승훈에 대해 좀 안다고 해서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는데 조금 묘했다.

    “음… 걔랑 엮여서 스캔들 안 난 배우가 없어. 거의 다 사귀었을걸? 상대 배우랑? 그래서 우리끼리는 걔보고 여배우 킬러라고 부르거든.”

    “…….”

    홍승기의 이야기에 기분이 무척 안 좋아졌다.

    홍승기가 그런 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내 표정을 내가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썩어들어 가 있을 거다.

    “그래도 연기는 잘해. 달달한 연기는 잘하더라. 난 못하겠던데.”

    “계약 무를까요?”

    작품이 좋아 덥석 물었는데 이런 문제는 생각을 못 했다.

    “그걸로 계약 파기가 되겠어? 기사도 나갔는데. 그래서 물어봤잖아. 희진이 철벽 좀 치냐고. 아이돌들은 몰래몰래 자주 만난다는데?”

    “아직 만나는 애들은 없는 거 같고요. 딱히 연애에 관심이 없는 눈치에요.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알아서 조심하는 거 같아요. 예전 데뷔 초에 멤버 중 한 명이 스캔들 터졌었거든요.”

    “그래? 그럼 문제없을 거야. 걔가 여자 밝히는 거 빼곤 괜찮아.”

    “음….”

    애들을 관리하는 내 입장에서나 흠이지 남들이 볼 때는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남자가 여자 좋아한다는데 문제 될 거 없지 않나.

    “예전에 걔랑 친한 다른 배우한테 들었던 건 자기를 21세기의 카사노바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던데 걔도 참 미친놈이야.”

    홍승기가 바짝 타들어 가는 내 마음도 모르고 커피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드라마만 찍나? 한국 드라마는 거의 무조건 러브라인이 들어가니까.”

    러브라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찬물에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걔가 승훈이한테 안 넘어가면 되잖아? 스캔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안 넘어간 배우는 없는 거 같긴 한데. 뭐, 연애가 나쁜 건 아니잖아?”

    “그건 맞긴 한데요, 아무래도 아이돌이니까….”

    홍승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한창 막 성장세 타고 있으니까. 괜히 연애라도 시작하고 팬들한테 걸리면 작살나지.”

    겉으로는 애들을 위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그냥 기분이 나빴다.

    이 주제로 더 대화하다가는 홍승기가 이상함을 느낄 것 같아 화제를 바꿨다.

    어차피 얻을 정보는 다 얻었으니까.

    “네… 그렇죠. 형, 작품은 안 들어가세요?”

    “모르겠어. 고르곤 있는데 딱히 끌리는 게 없더라. 계속 달리느라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니면 네가 좀 골라줄래?”

    홍승기가 덤덤하게 내게 말했다.

    작년에만 두 작품을 뛰었으니 방전될 만도 했다.

    “하하… 제가 뭐라고 골라 드려요. 그럼 요즘 뭐 하세요?”

    “지금? 지금은 스킨 스쿠버 하면서 휴식 중이지. 재밌더라. 곧 자격증도 따려고.”

    “불러줄 때 바짝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연달아 작품 하니까 번아웃 생기더라. 조금 조절하면서 하려고. 인생은 길잖아? 노를 젓는 것도 중요하지. 중요한데… 좀 길게 보고 가려고. 아니면 당장 할 만한 좋은 작품이라도 있어?”

    “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 역시 이제는 흥행 배우라 이거죠? 게다가 Finder 개봉하면 또 섭외 들어올 테니까요. 그때 가서 정해도 늦지 않겠네요.”

    내 말에 홍승기가 머쓱한 듯 눈을 피했다.

    홍승기도 이렇게 대놓고 비행기 태워주면 부끄러워했다.

    “흥행 배우까지는 아니고… 아무튼! 끝까지 작품 언급은 피하네. 네 담당 아니라고 이렇게 홀대하기냐?”

    “에이, 그럴 리가요.”

    의도적으로 대답을 회피했는데 티 났나 보다.

    얼른 도망가야겠다.

    인사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이야기 감사했습니다. 급하게 연락했는데 와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전화로 해주셔도 될 이야기였는데.”

    “가냐? 뭐, 할 것도 없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 겸 겸사겸사 여기서 부담 안 가져도 돼.”

    “네. 들어가 봐야죠.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게 뭐 별거라고. 나중에 술이나 먹자. 술이나 사.”

    “시간 되면요. 가볼게요.”

    “그래.”

    홍승기가 앉아서 내게 가보라며 손을 저었다.

    아무래도 카페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있다가 갈 모양이다.

    카페에서 나오면서 홍승기에게서 얻은 장승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봤다.

    장승훈.

    그 이름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웠다.

    * * *

    홍승기와 헤어지고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로 올라가 보니 내 책상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는 남진수를 볼 수 있었다.

    “실장님.”

    “어, 왔냐? 어디 갔다 왔나 봐?”

    “네. 누구 좀 만나고 왔어요.”

    가까이 다가가자 남진수가 얼굴을 굳힌 채 내게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아까 뜬 기사 알아본 거 알려주려고 왔지.”

    굳은 남진수의 얼굴을 보아하니 내가 알아 온 정보랑 거의 비슷할 거 같았다.

    “나도 내 나름 인맥 동원해서 알아봤는데….”

    “네.”

    “장승훈 낚으려고 기사 뿌린 거라더라.”

    “장승훈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남진수에게서 장승훈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걸 들을 줄 알았는데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신희진이 뭐라고 입지가 꽤 되는 배우인 장승훈을 낚으려 기사를 뿌린단 말인가.

    “걔가 작품 선택하는 기준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배우라고 하더라고. 제작진이 걔한테 희진이 보여주면서 살살 낚은 모양이야.”

    “그거랑 언론에 자료 먼저 뿌린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글쎄,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연관은 있는 거 같은데 거기까진 모르겠더라. 추측으로는 걔가 상대 배우 보고 들어간다고 하는 거 같던데….”

    “설마 희진이가 마음에 들어서 출연 계약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아니겠죠?”

    배우가 작품에 들어갈 때는 보통 작품 보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배우캐스팅을 보고 들어갈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배우 보고 들어가는 것도 흥행성 있는 배우를 보고 들어가는 거지, 신인을 보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게. 그건 아닐 거고. 도통 뭔지를 모르겠네. 근데 기사 뜬 건 장승훈 낚으려고 한 게 맞다고 해. 요물 측에서 보도자료 내달라고 하면서 장승훈 언급했다고 말해줬거든.”

    내 말에 남진수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물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장승훈을 보고 말하는 게 여자를 많이 밝힌다고 하니, 그게 또 신빙성 없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기도 하네. 희진이가 마음에 들어서 계약한 걸 수도?”

    “여자 밝힌다는 건 저도 방금 승기 형한테 듣고 왔어요. 사람이 좀 별로네요.”

    “근데 또 그거 빼면 괜찮대. 오히려 같이 합 맞춰보고 싶다는 여배우들도 꽤 있다던데. 걔랑 드라마 찍은 배우들은 다 떴으니까.”

    “그런가요?”

    “키 크지, 잘생겼지, 인기 좋지, 흥행성 좋지. 조건만 보면 나쁠 건 없잖아? 이 바닥에서 여자 밝히는 게 뭐 대수라고.”

    이 바닥은 또라이들이 참 많다.

    단지 그런 사실은 관계자 외엔 모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걔랑 엮인 여배우들이 잘되긴 잘 됐어. 걔가 말아먹은 작품이 없기도 하고… 잘 이용하면 우리한테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

    남진수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장승훈과 신희진이 붙은 게 불편한 거지 상황 자체는 좋았다.

    “너, 희진이한테 신신당부해. 절대 넘어가지 말라고. 열애설 터지면 골치 아프니까. 내가 이렇게 말 안 해도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남진수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이죠.”

    “아무튼, 그렇다고. 고생해라. 이야기해줄 건 다 했으니 난 간다.”

    남진수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사라졌다.

    남진수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보며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면 여배우로서는 귀찮을지도 모르나 그 외적으로는 괜찮은 배우라는 건가.

    아니, 남자로서도 매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게 아니었다면 작품마다 스캔들이 그만큼 터졌을 수가 없다.

    지금 상황이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갔으나 감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씩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고 신희진이 장승훈에게 넘어갈까?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애들 바래다주고 신희진에게 따로 말하면 될 것 같다.

    요즘 애들 출퇴근 픽업은 안혜지에게 맡기고 나는 슬쩍 뒤로 빠졌는데 오늘은 내가 하겠다고 말해야겠다.

    * * *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봬요!”

    애들이 하나둘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다 신희진이 나가려고 하자 내가 말했다.

    “희진이는 잠깐 남아 봐. 할 얘기 있으니까.”

    아직 차 안에 남아있던 이나라가 내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쩐지 오늘 혜지 언니가 아니라 오빠가 바래다준다고 하길래 이상하다 싶더니….”

    “알았으면 얼른 나가.”

    “네, 네. 나가요, 나가.”

    이나라가 나와 신희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히죽 웃으며 나갔다.

    차 안에 홀로 남은 신희진이 바로 내게 말을 걸었다.

    “뭔데요?”

    “요물 캐스팅 관련해서 이야기해줄 게 있어서.”

    “캐스팅이 바뀌었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앞으로 호흡 맞춰야 할 상대 배역이잖아. 오늘 하루 알아본 거 알려주려고.”

    “아하.”

    내 말에 신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너는 어때? 상대 배역으로?”

    “저요? 장승훈 선배님이요?”

    “응.”

    “그냥 그런데요?”

    신희진이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승훈이 별로 감흥이 없나?

    “뭐 설렌다거나… 그런 건 없어? 재성이랑은 또 다르잖아. 이번엔 자리 잡은 배우기도 하고.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은 배우기도 하고….”

    내 말이 웃긴지 신희진이 크게 웃었다.

    “푸핫, 만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설레요. 그리고 TV로 보는 거랑 직접 만나서 호흡 맞춰보는 거랑은 또 다르죠.”

    신희진은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괜한 걱정이었나 싶었다.

    그래도 한번 짚기는 해야지.

    “뭐, 제가 생각한 요물의 ‘정수’는 좀 더 샤프하게 생긴 이미지였는데 장승훈 선배님도 이미지 상으로는 나쁘진 않은 거 같아요. 오빠는요?”

    “어? 나?”

    “네.”

    신희진이 역으로 나에게 장승훈이 어떤지 물어 조금 당황했다.

    “나야 뭐… 흥행은 보장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도 있어서.”

    “뭐가요?”

    신희진이 어느새 잠이 깼는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장승훈 상대 배우들은 다 스캔들 터진 거 알아?”

    “네. 기사 보고 아까 멤버들이랑 이야기했어요. 드라마 찍는 족족 스캔들 터졌다고 너도 터지는 거 아니냐면서.”

    신희진이 마치 자기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하듯 평탄한 어조로 말하며 웃었다.

    “그거 말하려고 했어. 좀 알아보니까 장승훈이 상대 배역한테 많이 들이댄다더라. 그래서 조심하라고 말하려고.”

    “뭐야. 제가 연애라도 할까 봐요?”

    신희진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 반응에 조금 뻘쭘했다.

    “그….”

    “왜요? 저 못 믿으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사람 일이라는 게 또 모르니까.”

    “흐응.”

    신희진이 팔짱을 끼며 날 바라봤다.

    “어차피 그 사람 제 취향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네 취향은 뭔데?”

    말을 뱉어놓고 아차 싶었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그와 별개로 신희진은 재밌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음… 체격 좀 있고 말끔한 사람?”

    “너무 포괄적인 거 아니야?”

    “그 이상은 너무 특정 지어질 것 같아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요.”

    “…그래?”

    “네.”

    정말 요물이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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