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이게 흐름이야 (1)
“뭐라냐?”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는데요.”
“기사가 났는데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당연히 안 되죠.”
기사를 보자마자 이정수 PD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이정수 PD가 말하기를 자기들이 배포한 보도자료가 아니라고 했다.
근데 또 그건 말이 안 됐다.
신희진의 ‘요물’ 캐스팅을 아는 건 제작진과 우리 회사뿐이었고, 우리 회사가 이런 자료를 배포할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실장님. 일단 콜업 측에 지영이 출연 확정 짓고 보도자료 뿌리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그걸로 되겠어?”
“아예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어차피 차근차근 풀려고 했던 거고. 다른 것도 보도자료 뿌려야죠. 애들 단체로 프로그램 잡힌 스케줄부터 홍보팀에다 흘려 달라고 말할게요.”
“그래.”
원래는 애들 방송 스케줄을 차례대로 언론에 뿌리면서 신희진이 드라마를 하는 거에 대해 완충작용을 하려고 했다.
근데 신희진의 드라마 캐스팅이 먼저 나오게 되어 플랜이 꼬여버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드라마를 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드라마를 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회사에 박히는 게 팬들은 싫은 거였다.
게다가 스타즈의 지난 1년 전략 노선은 노출을 숨기는 거였으니까.
“근데 갑자기 이런 보도자료는 왜 뿌린 걸까요?”
“글쎄… 아무런 이유 없이 뿌린 것 같지는 않은데, 이유를 모르겠네. 언플할 이유가 있으니까 뿌린 걸 텐데.”
남진수의 말처럼 신희진을 미끼로 무언가를 하려는 거 같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지금 시기에 캐스팅을 공개한 건 일렀다.
기껏해야 여주 한 명 아닌가.
게다가 신희진은 드라마로 따지면 신인이었다.
물론 신인이 주연하는 만큼 이목이 쏠리기는 좋았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그래서 원래 조율한 공개 시기는 다음 주.
고작 1주일인데 그 1주일을 못 기다릴 이유가 있던 걸까.
그렇다면 캐스팅을 이르게 공개해서라도 신희진이라는 미끼가 필요했다는 건데, 도대체 뭘까.
배우로서 신희진의 가치는 크지 않을 텐데.
“아무튼, 콜업 PD랑 통화하고 홍보팀한테 이야기해서 양념 쳐. 나도 아는 기자 통해서 알고 있는 거 있나 알아볼게.”
“네.”
남진수가 내게 말하고는 휙 하고 사라졌다.
이내 나도 콜업 PD인 박준석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박 PD님. 일전에 이야기한 거 말씀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아, 네. 어떻게 됐습니까?
“지영이 한 명만 원하시는 거죠? 혹시 다른 자리는 더 없고요?”
-네. 다른 자리는 다른 패널들도 채울 예정이라서요.
역시나였다.
그래도 여기서 한번 운을 떼보는 건 할 수 있다.
“그럼 혹시 첫 회 게스트로 한 명 안 되겠습니까? 지영이가 혼자 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걱정돼서요.”
-음, 게스트요?
“네.”
-…….
박준석 PD가 고민이 되는 듯 말이 없어졌다.
나는 차분히 박준석 PD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이야기 한번 해보겠습니다. 게스트는 아직 이야기 나온 게 없는데 괜찮을 듯하네요. 그럼 지영이는 오케이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게스트 여부는 추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딜을 한 건 박준석 PD와의 친분, 그리고 앞으로 같이 할 출연진이기에 배려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 의도가 잘 먹혀들어 갔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게스트로 스타즈 멤버 한 명 더 출연이 가능할 것 같았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프로그램 보도자료는 언제쯤 뿌리시나요?”
-아마 다음 주 내에 배포할 거 같습니다.
“혹시 조금 더 빨리 배포하거나 저희 쪽에서 배포를 먼저 해도 될까요?”
-이유가 있으세요?
박준석 PD가 의아한 듯 물었다.
“희진이 드라마 캐스팅 기사가 터져서요. 원래는 프로그램 스케줄 하나둘 공개하면서 드라마 캐스팅을 까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게 먼저 터져 버려서 팬들 내부 결속이 약해지고 있어서요.”
-음… 저는 그게 문제가 되는지 잘 이해가 안 되긴 하는데… 부탁하시니까 어차피 지영이를 끝으로 고정 출연진들은 확정되었으니 조금 일찍 공개하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빚진 겁니다? 나중에 어비스 섭외할 일이 있을 거 같은데 그때 힘 좀 써주시죠.
박준석 PD의 말에 움찔했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하던가.
어비스는 내 권한 밖인데 어떻게 하지.
“어비스의 그때 스케줄을 봐야 알겠지만, 이야기는 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녹화 때 뵙겠습니다.”
박준석 PD와 통화를 종료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너무 순조롭게 순항하더라니? 이런 암초가 기다릴 줄이야.
근데 언제는 무난하게 갔었나.
언제나 그랬듯, 이 암초도 부수고 헤쳐나갈 거다.
* * *
“보도자료로 공식화했으니 이제는 믿으시죠?”
“그럼요.”
이정수 PD의 말에 장승훈이 웃으며 말했다.
장승훈.
찍는 드라마마다 상대 배우와 스캔들이 터졌지만, 연기력과 흥행 하나만큼은 확실한 배우였다.
“이런 거로 거짓말 안 합니다.”
“예전에 한 번 당했던 적이 있어서요. 계약서 사인하니까 나중에 딴말하더라고요. 그때만 생각하면 열불이 터지네.”
장승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정수 PD는 투덜대는 장승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스크 확실하고, 연기력도 괜찮고.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드라마 판에서 확실히 놓치기 아까운 대어다.
다소 부족한 흥행성은 장승훈이 채워줄 거라 생각했다.
신희진을 캐스팅한 게 이런 효과를 낳을 줄은 몰랐다.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20대 초반 여배우만 찾는 이유라도 있으세요?”
“풋풋하잖아요. 작품 하면서 꼬시기도 쉽고. 누나들은 기가 너무 세서.”
문제는 장승훈의 여성 편력이었다.
“작품 진행하는 중에는 되도록 연애는 안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끝나고 할 거예요, 끝나고. 썸타는 건 괜찮죠?”
“야,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럴래?”
옆에서 대화를 보다 못한 장승훈 담당 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런 팀장을 보며 장승훈은 환하게 웃었다.
“형석이 형. 로코 드라마는 감정이 중요하다고요. 감정이. 드라마 찍으면서 남녀주연이 서로 눈 맞는 건 당연한 건데.”
“당연은 무슨.”
장승훈의 말에 서형석 팀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저랑 호흡 맞추는데, 당연한 거죠. 제 진심을 안 여배우들은 다 넘어오게 되더라고요.”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몇 년을 같이하고 절 모르시네.”
장승훈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서형석 팀장이 답답한지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 둘을 보며 이정수 PD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역시 달달한 연기는 다 진짜였군요.”
“그럼요. 연기로 포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죠.”
이정수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다가 진심이 되어서 그런 걸까.
확실히 장승훈이 나온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상대 배역과 달달하면서도 케미가 좋았다.
“상대 여배우한테 쏟는 진심 반만 다른 연기에 쏟았어도 진즉에 대성했을 텐데….”
“배우마다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죠.”
장승훈이 서형석 팀장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계약서에 사인했다.
“여기 있습니다.”
이정수 PD가 장승훈으로부터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계약서에 사인을 확인한 이정수 PD가 이내 장승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요.”
둘이 악수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형석 팀장이 이정수 PD에게 말했다.
“오늘은 저희가 화보 촬영이 있어서요. 촬영 전에 시간 내서 식사라도 같이 한번 하시죠.”
“네. 그러시죠.”
이정수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전체 리딩 때 뵙겠습니다.”
“네.”
이정수 PD가 말을 하며 일어서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둘도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장승훈과 서형석 팀장이 먼저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 두 명이 나간 문을 보며 이정수 PD가 조용히 읊조렸다.
“여자 밝히는 성격만 아니면 참 좋은 배우인데 말이야.”
이정수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회의실을 나섰다.
* * *
“무슨 일 있어요?”
“이 방에 이렇게 다 모인 건 오랜만인데.”
“작년에 이렇게 모일 때마다 무슨 일 있었잖아.”
“여기에만 들어오면 숨이 막힌다니까.”
“응. 숨 막혀.”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애들이 내게 말했다.
이 회의실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다.
일명 사건 사고의 방이다.
그래서 애들도 이 방으로 부르면 무슨 일이 터졌겠거니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는 편이었다.
“큰일은 아니긴 한데….”
“뭔데요?”
“희진이 캐스팅 된 게 언론에 흘러 들어갔어.”
애들의 표정이 전부 ‘그게 왜?’라는 표정이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나라가 대표로 내게 물었다.
“그게 문제가 돼요?”
“왜 희진이만 편애하냐고 팬들끼리 싸우니까 문제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서지영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아! 왜 언니만 편애해요!”
“그럼 방송 좀 하자. 지영아.”
“방송한댔잖아요.”
투덜대는 서지영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팬들 입장에서는 방송으로도 너희 보고 싶으니까 하는 말인 거 같아.”
“저희 프로그램 잡혀있지 않아요? 스케줄 표 보면 꽤 많았던 거 같은데.”
“잡혀있는데 그거야 우리만 알고 있는 거고, 팬들은 모르니까.”
내 말에 애들이 그제야 수긍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는 우리 회사가 너희 해체하는 걸 염두에 두고 노출을 잘 안 시켰는데 그거 때문에 팬들이 불만이 많이 쌓였나 봐.”
“아….”
“올해는 너희 방송도 많이 돌릴 거라 지금 스케줄이 빡빡한데 이걸 팬들이 아는 건 아니잖아.”
“음….”
“그리고 보통 그룹에서 한 명이 드라마 시작하면 나머지 인원은 붕 뜨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렵네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던 이나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는 방송 안 나가는 애들은 좀 더 Y 앱 컨텐츠 짜서 자주 하고, 방송 나가는 애들은 언론에 보도자료 뿌리면서 달래려고 하고 있어.”
“그럼 된 거 아니에요?”
유미소의 말처럼 이렇게 대응만 잘하면 조금 지나면 끓어오른 게 확 식을 거다.
여기까지는 현재 나온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한 걸 애들에게 알려주는 거였고 본론은 따로 있었다.
“한동안 커뮤니티 사이트 들어가서 너희 이름 검색하지 말라고 부른 거야.”
내 말에 멤버 전원이 움찔했다.
“알았지?”
“네.”
애들의 대답을 들은 나는 신희진을 바라봤다.
“괜히 보고 멘탈 터지지 말고. 특히 희진이.”
“이 정도는 뭐… 괜찮아요. 이제는 단련됐으니까요.”
“그건 단련된다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야.”
“알았어요. 당분간 안 볼게요.”
내가 걱정하는 말투로 말하자 신희진이 기분 좋은 듯 흥얼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유미소가 손을 번쩍 들고 내게 물었다.
“근데 오빠. 희진 언니 캐스팅 발표됐으면 남주는 누구예요? 남주는 아직 안정해졌다면서요.”
“기사에는 희진이 캐스팅만 뜨고 나머진 안보여서 그건 몰라.”
유미소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물론 그 잿밥에 나도 관심이 많기도 했다.
“언니는 누구랑 하고 싶어? 이동건? 정인후?”
“딱히 누구랑 하고 싶은 건 없는데….”
유미소에게 대답하면서 신희진이 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러다 구석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던 박혜연이 내게 말했다.
“오빠. 기사 떴는데요?”
“응? 뭐가?”
“요물 캐스팅 장승훈 확정. 선남선녀 두 배우의 열연을 기대… 라고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