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눈 감고 눈 뜨면 내일 (4)
- 내 맘에 hurricane
- 네 맘에 hurricane.
- 심장이 두근두근대.
무대 위에서 애들이 이번 타이틀 곡 Hurricane을 열창하고 있다.
스타즈 3집 미니앨범 Hurricane.
벌써 스타즈 애들이 앨범이 낸 횟수가 이번으로 네 번째다.
정규앨범 1개, 미니앨범 3개.
1년 새에 앨범이 총 4개.
많아 보이는 것 같아도 의외로 업계 평균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기획사 기준이다.
자금력이 안 좋은 기획사는 밀던 아이돌이 뜨지 않으면 앨범 하나 내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니앨범 두 개로 끝난 회귀 전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걸 생각하면 정말 감개무량했다.
“애들 인기가 정말 대단하네요.”
안혜지가 애들의 무대와 관객석을 보며 감탄했다.
살짝 겁먹은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활동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네.”
“진상도 많으니까 마음의 준비도 하고.”
내 말에 안혜지가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팬덤이 큰 만큼 진상도, 또라이도 많았다.
칼 같이 쳐내도 꾸역꾸역 생기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때그때 빠르게 대처할 뿐이었다.
그나마 초기에 강력하게 대응해서 이 정도지, 아니었다면 정말 팬들 관리하기가 힘들었을 거다.
“그래도 스타즈는 관리가 잘된 편 아닌가요? 제가 듣기론 그랬던 거 같은데요.”
“그렇긴 한데 어디를 가나 예외는 있으니까.”
안혜지의 말처럼 스타즈는 정말 관리가 잘된 편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팬덤의 규모의 티어즈는 멤버별로 개인 팬덤이 두드러져 관리가 힘들어 곡소리를 낸다고 들었다.
그걸 보면 싹이 보일 때 확실히 잡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무튼, 이제 쇼케이스도 했으니 내일부터는 지옥의 스케줄 시작이니까, 오늘 쇼케이스 끝나고 푹 자두고. 활동기 때는 많이 못 자니까.”
“네!”
안혜지가 목울대로 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니 긴장한 듯했다.
너무 겁을 줬나.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의 내가 생각났다.
“혹시 그만두고 싶으면 꼭 3일 전에는 말해줘.”
“네?”
“그래야 스케줄이 안 꼬이거든. 아무튼, 겪어 보면 알아.”
안혜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안혜지에게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이 멘트는 회귀 전 남진수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와아아!
잠깐 안혜지와 대화하던 사이 무대가 끝난 모양이었다.
방금 무대가 타이틀곡이었으니 쇼케이스는 이걸로 끝이었다.
“노래 좋죠?”
네!
“여러분들 덕에 저희가 함께 이 자리에 있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고마워요, 우리 별님들!”
이나라의 말에 팬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수많은 인원이 각자 말하는 통에 갑자기 시장바닥이 되어버렸다.
“어… 잠시만요, 잠시만. 쉿! 언니가 말 아직 다 안 끝났대요. 쉬잇!”
서지영이 검지를 입에 대며 능숙하게 팬들을 대했다.
예전이라면 당황할 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노련했다.
서지영의 말에 점차 웅성거림이 멎어 들어갔다.
그러자 이나라가 서지영에게 윙크로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뭔가 더 어색하네요. 사실 할 말은 다 끝났거든요. 저희랑 평생 가실 거죠? 약속이에요?”
약속!
이나라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말하자 팬들도 그에 맞춰 호응해줬다.
“그럼 마무리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건 리허설 때 없던 멘트인데, 즉흥적인 건가?
애들의 반응을 보니 멤버들끼리는 이야기 되어 있는 듯했다.
이내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일렬로 섰다.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애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함과 동시에 오늘 함성 중 가장 큰 함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찰칵!
애들이 손을 잡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왠지 코끝이 찡했다.
* * *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니 15시 30분.
못해도 음악방송 생방송 녹화가 시작되는 17시 전에는 다시 방송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기다리는 인물이 오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 음악방송 중간마다 남진수가 업무 본다고 종종 사라졌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러는 중이었다.
기다리며 할 것도 없으니 남은 건 결국 기사 모니터링뿐이었다.
[가요계에 불어온 Hurricane!]
연예 기사란에 떠 있는 타이틀을 보니 절로 흐뭇했다.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스타즈. 연장의 힘일까? 이번 미니앨범도 심상치 않다. 발매 직후 음원사이트에서 굳건히 탑 텐을 유지 중이다. 최근 이런 걸그룹이 있던가. 감히 걸그룹 세대교체를 이야기해본다.]
내용은 나를 더 미소 짓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1년이 흐르면 명실상부 대한민국 탑 걸그룹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스타즈는 대중성도, 팬덤도 확보했으니까.
애들도 시간이 지나 연차가 쌓이면 하락세를 보이겠지만 지금은 상승세였다.
“김 팀장!”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니 오늘 만나기로 했던 박준석 PD가 보였다.
이내 박준석 PD가 다가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박 PD님. 잘 지내셨어요?”
“저야 잘 지냈죠. 이번 앨범도 반응 좋은 거 같던데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박 PD님도 이번에 런칭 들어가시는 거 축하드립니다.”
내 말에 박준석 PD가 멋쩍은지 손을 내저었다.
박준석 PD는 M사 음악방송 조연출이었다.
박준석 PD와는 음악방송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종종 안부 연락을 물으며 친해진 사이였다.
그런 박준석 PD가 올해 프로그램 런칭을 맡게 되었다고 내게 연락했다.
그래서 지금 자리는 박준석 PD의 신규 프로그램 섭외 관련한 자리였다.
“아주 바쁘시죠?”
“저희뿐만 아니라 활동 들어간 아이돌은 다 바쁘죠.”
“아, 그렇죠. 참.”
박준석 PD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며 뜸을 들였다.
PD가 내 눈치를 보는 이 상황이 되게 우스웠다.
오히려 매니저가 안달이어야 하는 상황이어야 할 텐데.
이런 역전관계가 나온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누군가 그랬다.
연예인의 파워는 곧 매니저의 파워라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애들의 화제성도 화제성이지만 지난 1년간 애들의 예능성도 입증을 받았기에 방송계에서는 스타즈의 입지가 꽤 높았다.
그리고 지금 자리는 단순히 일회성으로 프로그램 출연을 정하는 게 아닌 고정 출연진 자리를 놓고 이야기하는 사전 미팅 자리였다.
“전화로 누굴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셔서 자체적으로 회의를 해봤는데 미소랑 유코, 나라가 긍정적이더라고요.”
“셋 다 괜찮긴 한데….”
내가 말해준 셋은 박준석 PD의 플랜에 안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누구 염두에 두신 인물이 있으세요?”
“지영이는 어때요? 예능감도 괜찮고 성격도 좋고. 작가들도 캐릭터 성이 좋아 보인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지영이는 예능 생각 없대요?”
내 말이 끝나자 박준석 PD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지영이요?”
“네.”
내 반문에 박준석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능 프로그램에 서지영을 넣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근데 문제는 서지영 본인은 예능보다 작곡 공부하는 걸 원했다.
“지영이는 활동 끝나고 작곡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고요. 지금 바로 확답드려야 하나요?”
“이번 주까지만 알려주세요. 스타즈가 안 되면 다른 쪽도 알아봐야 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작곡 공부한다고 서지영은 방송에 얼굴 비춘 게 없었다.
단체로 나갈 때나 얼굴을 비췄지, 단독으로 나가거나 다른 멤버랑 같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
그 방송 재능을 썩히기엔 좀 아까운데.
이건 서지영과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겠다.
“다시 한번 런칭 축하드려요. 박 PD님.”
“축하 인사는 프로그램이 자리 잡히면 받을게요. 일단 고마워요.”
박준석 PD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박준석 PD가 내게 다시 물었다.
“프로그램은 어떤 거 같아요?”
“재밌을 거 같아요. 별로면 애초에 거절했겠죠.”
“하하, 맞네요. 그건.”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런칭하다 보니 불안한 듯했다.
처음이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박준석 PD와 프로그램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가 음악방송 대기실로 돌아갔다.
* * *
“음…. 그러니까 예능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거죠?”
“어.”
어제 박준석 PD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서지영을 따로 불러냈다.
마침 어제가 일요일이라 오늘은 애들 스케줄이 운동과 레슨 외에는 없었다.
“작곡 공부하는 게 더 좋은데….”
서지영이 탐탁지 않은 듯 내게 말했다.
“작년에 많이 했잖아.”
“아직 부족하단 말이에요. 안 그래도 이번 수록곡 혜연이한테 뺏겨서 화나 죽겠는데….”
“뺏겼다는 표현은 좀….”
이번 미니 앨범에는 서지영이 작곡한 곡이 아닌 박혜연이 작곡한 곡이 수록됐다.
둘 다 곡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박혜연이 작곡한 곡이 이번 컨셉에 더 어울렸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혜연이한테는 지기 싫단 말이에요.”
서지영은 은근히 고집이 있었다.
어떻게 구슬리지.
“다른 사람들이랑 교류하면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지. 너. 음악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김동현 작곡가님 말고 더 있어?”
“있는데요? 서희 언니. 멤버들이랑도 이야기하고요.”
“회사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 교류도 좀 하면 더 풀이 넓어지지 않을까? 프로그램도 음악 관련이기도 하고.”
“음….”
서지영이 내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알았어요.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할게요. 근데 그럼 저 혼자 나가는 거예요?”
박준석 PD가 서지영만 콕 집어서 말했으니 아마 서지영 혼자일 거다.
“아무래도 그렇게 될 거 같은데?”
“혼자 하는 건 좀 무서운데….”
서지영이 다소 떨떠름해 하는 모습에 박준석 PD에게 딜을 해서 같이 누구를 넣어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럼 할 얘기는 끝이에요?”
“응.”
“알았어요. 그럼 저 운동하러 가볼게요.”
“어… 그래.”
서지영이 담담하게 내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회의실을 나갔다.
그냥 혼자 보내도 되려나.
일단 박준석 PD에게 자리 더 있냐고 운은 떼봐야겠다.
회의실을 정리하고 나도 사무실로 돌아갔다.
로드일 때와 달리 팀장이 되어 애들 스케줄을 관리하다 보니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스타즈 음악방송, 서지영 개인 방송, 광고, 신희진 드라마, 스타즈 단체 방송 등 하루하루 스케줄 체크하는 게 산더미였다.
“현진아!”
그렇게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남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이거 기사 내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 안 했어?”
“네?”
뜬금없는 남진수의 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때에 남진수가 내게 다가와 핸드폰을 건넸다.
[요물 캐스팅 확정. 여주로는 대세 걸그룹 스타즈의 신희진.]
요물 제작진에게는 신희진이 컴백과 동시에 드라마에 들어간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안 좋으니 활동 2주간은 언론에 내보내는 걸 참아 달라고 말했다.
근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왠지 댓글 반응 보기가 두려워졌다.
└활동기에 바로 드라마?? 남은 멤버들은 쩌리냐? 애가 개념이 없네
└다른 애들도 다른 방송 프로그램 넣겠지
└ㅋ개소리 애들 방송 안 넣어주던데?? 그나마 나온 것도 신희진 쟤랑 남자 배우랑 같이 하나 나온 게 끝인데
└왜 얘만 밀어줌?? 지네 회사 됐다고 밀어주는 건가??
└얘 연기도 함? 연기 잘함?
└영화 하나 찍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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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