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바쁘게, 더 바쁘게 (2)
짝짝짝!
우리가 몰래 왔다면 이렇게 박수를 받을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홍보를 목적으로 대놓고 왔기 때문에 같은 상영관에 있는 관객들은 우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고 박수를 쳐주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특히 관객들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신희진을 보는 건 내게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원래 계획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괜찮으니 짧게 인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
관객들이 나가지 않고 있는 것도 아마 GV를 하지 않을까 해서 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 스타즈 멤버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는 신희진을 쳐다봤다.
“희진아. 중앙에 가서 잠깐 인사하는 게 어때? 짧게 하고 나가자.”
“네? 중앙에서요?”
“응. 어차피 상영관이 크지는 않으니 들리긴 다 들릴 거야.”
“아, 네.”
상영관을 따냈어도 좋은 상영관을 따낸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100석 안팎 규모의 작은 상영관을 얻어낸 게 다였다.
그래도 몇십 억짜리의 영화들이 즐비한 이 바닥에서 이 정도 받은 게 어디인가.
“그냥 나가면 돼요?”
“잠시만.”
막상 일어나서 크게 외치려니 조금 부끄러웠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크게 외쳤다.
“박수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는 영화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많은 분이 뭔가 하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시는 것 같아! 영화에 출연했던 주연 배우인 신희진 배우가 짧게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짝짝짝!
박수를 받으며 신희진이 앞에 나갔다.
“아, 아! 뒤까지 잘 들리시나요?”
네!
“넓지는 않아서 그런지 잘 들리시나 보네요. 넓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
하하하.
관객들의 호응이 거의 팬미팅 수준이었다.
일반 관객도 있었겠지만, 의외로 팬들이 많이 보러 온 것 같았다.
그러다 운 좋게 우리랑 만난 게 아닐까.
“어떻게 보셨어요? 재미있으셨나요?”
“네! 언니 짱 재밌었어요!”
신희진의 질문에 서지영이 냉큼 대답했다.
“너희한테 안 물어봤어!”
“우리도 관객인데!”
“시끄러!”
하하하.
한편의 콩트에 관객들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가끔은 이런 소소한 이벤트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조만간 인터넷 사이트에 영상이 돌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런 점을 노렸던 거긴 했다.
“다들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여기저기 재미있다고 홍보 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신희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애들을 이끌고 상영관 밖으로 나왔다.
상영관 밖으로 나오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었다.
“와, 우리 나갈 수 있겠죠?”
“어, 걱정 마.”
유미소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은 했지만 이렇게나 사람들이 몰릴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위험하지는 않겠지.
공식 스케줄이 아니라 이렇게 많이 붙을 줄 몰랐는데 애들의 인기를 너무 과소평가한 듯했다.
“지나갈게요!”
인파를 뚫고 주차장까지 겨우 도착했다.
그 와중에 애들은 팬서비스한다고 웃으면서 사람들을 응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차에 도착하고 애들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릴 줄 몰랐어.”
“아녜요. 누가 이렇게 몰릴 줄 알았겠어요.”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인원이 너무 많았다.
그 잠깐 사이에 애들 보러 사람이 이렇게 몰릴 거라곤 상상을 못 했다.
이제 나 혼자로는 애들 커버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회사에서 내 밑으로 한 명 구해다 준다고 했는데 언제 오는지 모르겠다.
빨리 와야 할 텐데.
“언니 근데 연기 잘하더라. 의외야?”
“제대로 연기하는 건 처음 봤는데 진짜 잘하더라.”
“응, 응. 보면서 나도 연애하고 싶어지더라.”
“잘 봐줘서 고마워!”
애들의 말에 신희진도 기쁘게 화답했다.
“근데 언니. 안재성 배우님이랑 키스는 했어? 입 맞춘 거야 아닌 거야? 헷갈리던데.”
“그건… 비밀.”
서지영의 질문에 신희진이 수줍게 말했다.
하지도 않았으면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애들 반응이 재밌나 보다.
애들 반응을 보니 영화를 꽤 재밌게 본 듯했다.
물론 멤버가 영화를 찍었으니 설령 재미가 없어도 재미없다고 말은 안 했겠지만, 지금 반응은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나오는 반응 같았다.
물론 나도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이거 생각보다 기대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 * *
“제가 여기 앞에 나온 이유가 뭘까요?”
홍보요!
관객석에서의 외침에 이예진이 웃었다.
“네, 맞아요. 대답해 주셔서 고마워요. 홍보 맞아요. 이 영화를 찍은 감독님에게 빚이 있어서 찍은 영화였거든요. 근데 결과물이 꽤 잘 나온 것 같아서 꽤 만족해요.”
역시 하루 이틀 다져진 GV가 아니었는지 능숙하게 진행했다.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이 친구 연기 잘하죠? 앞으로가 기대되는 친구예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
“안재성입니다! 앞으로 자주 들으시게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안재성의 힘찬 인사에 상영관은 훈훈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니까 이만 짧게 마칠게요.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짝짝짝!
이예진의 인사를 끝으로 간단한 무대인사가 끝이 났다.
어제와 다르게 큰 소동은 없었다.
이게 희한한 게 배우와 아이돌에 대한 사람들의 온도 차인가 꽤 심하게 났다.
아이돌은 뭔가 친숙해서 다가온다면 배우는 조금 멀리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탈 없이 주차장에 왔다.
“선배님. 바쁘신 와중에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필요 없어요. 나도 시간 내서 영화를 보려고 했으니까.”
“다음 스케줄 있으시죠?”
“네.”
이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옆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이예진의 로드 매니저.
신정수였다.
차태수 팀장이 나가고 새롭게 들인 매니저였다.
이렇게 배우 매니저를 구하는 김에 스타즈 로드 매니저도 구하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정수야. 선배님이 좀 까탈스러우시지? 좀 익숙해지면 편해져.”
“하, 참. 나랑 같이 다닌 것도 몇 번 안 되면서 그렇게 말하기예요?”
“그 정도면 꽤 같이 다닌 거죠. 알만한 건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가 그 정도였어요? 그럼 왜 개인 전담은 거부한 거죠? 아, 정수 씨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아니에요. 저 사람이 날 거부했거든요.”
우리의 대화 주제가 된 신정수가 안절부절못했다.
긴장하지 말라고 신정수에게 농담을 건넨 거였는데, 이예진이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다.
“개인 전담은 지금 맡은 사람들도 조금 버거워서요. 그래도 어느 정도 제가 관여를 하지 않습니까?”
“난 같이 호흡을 맞춰주길 원했던 건데?”
“그건….”
이예진의 태도는 내게 고맙기도 했지만, 부담도 됐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예진이 피식 웃었다.
“알아요. 알아. 바쁘다는 거. 해본 말이에요. 그리고 늦었지만, 진급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이예진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신정수를 바라봤다.
“가요. 정수 씨.”
“네?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선배님!”
이예진이 신정수에게 말하고는 몸을 휙 하고 돌렸다.
그러자 묵묵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재성도 떠나려는 이예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가보겠습니다, 팀장님!”
“어, 고생해.”
이내 신정수도 내게 짧게 인사를 하곤 이예진을 뒤따라갔다.
남아있던 안재성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인기 좋으시네요.”
“인기라니. 연예인도 아니고 매니저가 인기 많아서 뭐하겠냐. 일만 더하지.”
“그건 그렇네요.”
“스크린 데뷔 기분은 어때?”
“좋네요.”
안재성의 웃는 표정이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만족한다니 다행이네.”
“제 연기에 만족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성적에 대한 부담은 없고?”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천천히 가는 거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은 기대감에 차 있는 게 보였다.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봤을 땐 첫술에 배부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요?”
“응. 생각보다 반응이 오는 것 같아서.”
안재성에게 말한 것처럼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의 반응은 빠르게 오는 중이었다.
* * *
[한겨울, 예상치 못한 곳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사 때깔 한번 좋고.
[…아직 봄이 오기 전 벌써 봄이 온 듯 사람을 간질간질하게 되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을 추천하며 이만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스타즈가 단체로 보러 갔다고 하길래 팬심으로 가서 찾아봤는데 꽤 재밌었음.
└상영관 찾기 힘들던데
└드문드문 있는 거 같은데 우리 동네에는 있어서 가서 봤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
└아… 나도 연애 하고 싶다
└희진이 연기 잘하나요??
└모든 아이돌들이 나중에 배우 루트 타는 걸 보면 신희진도 빼박 배우 루트 탈 듯
생각보다 영화의 반응이 좋았다.
특히 노리려고 했던 입소문을 타는 중이었다.
이 기세라면 상영관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띵.
기사를 보고 있는 사이 이메일이 왔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그 알림음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나를 반기는 건 줄줄이 이어진 업무 관련 메일뿐이었다.
[스타즈 2월 스케줄]
[시나리오 모음]
[방송 섭외 명단]
[앨범 리스트]
[12월 법인 카드 사용 내역서]
확실히 직급이 올라가고 일이 확연히 늘었다.
게다가 남진수가 실장으로 올라가고 스타즈 관련 업무는 거의 손을 뗐으니, 그 업무가 내게 집중돼 지금 과부하 상태였다.
업무 분담이 무엇보다도 절실한데 나를 도와줄 인원은 언제 오는지 모르겠다.
“현진아.”
열심히 업무를 보던 중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남진수가 서 있었다.
너무 집중했는지 뒤에 누가 온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아, 팀장님. 아니, 실장님이죠. 이게 적응이 안 되네요. 언제 오셨어요?”
“뭐, 나도 그렇지. 온 건 방금 왔어.”
서로 불러온 호칭이 있었기에 아직 새로운 호칭이 입에 붙지 않았다.
그건 남진수도 마찬가지인지 멋쩍은 듯 웃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오냐?”
“보통은 무슨 일이 있으니까 사무실에 찾아오죠. 그게 아니면 전화를 하면 되니까요.”
“쓸데없이 예리하긴.”
남진수가 내 태도에 실없이 웃었다.
“다른 게 아니고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소개해줄 사람이요?”
남진수의 말에 그의 뒤편을 슬쩍 보니 누군가 서 있는 듯했다.
왜 인기척을 못 느꼈지?
남진수도 그런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몸을 옆으로 빼내며 내게 말했다.
“어. 앞으로 너랑 같이 스타즈 맡아줄 사람. 인사해.”
“안녕하세요! 안혜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진수에게서 소개받은 인물이 안혜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짧은 단발에 적당한 키를 가진 여성이었다.
왜 스타즈 쪽으로 매니저 배정이 늦어지나 했더니 매니저를 여성으로 구하느라 늦어진 듯했다.
아무래도 여자 매니저는 남자보다 구하기 힘든 편이었으니까.
“아, 안녕하세요. 김현진 팀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혜지를 보며 다른 것보다 나는 드디어 이 업무 폭탄을 해결해줄 사람이 왔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과로로 실려 가기 전에 와서 다행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