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꽃은 핀다 (5)
“거기. 너. 나한테 반하지 말라구?”
“하지 마! 하지 말랬지!”
- 우리 귀염둥이….
무대에서는 급식 단의 학급 VCR을 절찬리에 상영하고 있었다.
스타즈의 의상 교체시간과 더불어 쉴 틈을 줘야하기에 중간중간 VCR을 상영했다.
내용은 미성년자 셋의 이야기를 담은 학교 에피소드였다.
“우리… 귀염둥이?”
“너 진짜 그러다 맞는다!?”
무대 올라가기 전, 영상을 보며 열심히 따라 하는 박혜연과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발을 동동 구르는 서지영의 모습이 제법 웃겼다.
평소라면 둘의 관계가 반대일 텐데, 이번에는 박혜연이 포식자가 되어 서지영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괴롭힘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악랄하게 지속되었다.
한편으론 박혜연이 저러는 게 이해됐다.
나라도 이런 기회는 놓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널. 잡아먹을지도. 몰라.”
“야!”
게다가 얌전했던 린마저 서지영을 놀리니 서지영이 악을 쓰며 부끄러워했다.
“저거 다 업보야. 업보.”
“아, 진짜 지영이 반응이 제일 재밌어.”
언니 라인인 유미소와 신희진은 서지영을 놀리고 있는 두 명을 보며 킥킥대며 웃기 바빴다.
그렇게 놀면서 준비하고 있던 애들에게 남진수가 다가갔다.
“그만 웃고, 슬슬 준비하자. 곧 올라가야 해.”
“네!”
“진짜 두고 봐!”
남진수의 말에 애들이 웃으며 대답했지만, 한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씩씩댔다.
물론 그런 서지영 덕분에 무대 뒤편은 활기가 넘쳤다.
첫날만 해도 긴장한 채 물만 마시며 기다리던 애들이었다.
그러나 콘서트 마지막 날이 되니 무척 노련해져 이렇게 짬짬이 놀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뭘 실실 쪼개고 있어? 너도 올라갈 준비 해야지.”
“전 중간에 투입되잖아요.”
“3일쯤 되니까 너도 좀 여유롭다?”
여유롭게 말하는 나를 보며 남진수가 피식 웃었다.
“3일이면 충분하죠. 팀장님도 오늘은 웃으면서 올라가셨잖아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게 맞는 거 같아.”
무대로 올라가는 스타즈를 보며 남진수가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신기한 동물이다. 사람은.
“아무튼, 사고 없이 끝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아직 끝난 거 아니다. 긴장 늦추지 마.”
남진수가 눈에 힘을 주며 내게 엄하게 말했다.
남진수가 그렇게 말 안 했어도 긴장을 늦출 생각은 없었다.
“네.”
“준비해. 실수하지 말고.”
“네.”
남진수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멀찍이 떨어졌다.
둥. 두둥. 둥.
첫날에 기다릴 때는 음악에 맞춰 심장이 울렁거렸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하면서도 흥겨웠다.
물론 심장이 쿵쿵 뛰는 건 여전했다.
셋, 둘, 하나, 지금!
샤인 팀 두 명과 함께 무대로 올라갔다.
3일이 되자 몸이 노래와 무대에 아예 익어버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어느새 내 앞에 이나라가 서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음악이 바뀌었다.
이내 나는 이나라와 천천히 호흡을 맞췄다.
처음은 가볍게 시작했다.
지금 추는 안무는 이나라가 예전에 출연했던 댄싱투나잇에서 영감을 따온 안무였다.
컨셉은 꽃 하나를 두고 움직이는 나비와 벌이었다.
짧은 브레이크댄스였지만 컨셉은 명확했다.
점차 멜로디가 고조되면서 이나라의 강렬한 턴을 받아내며 브레이크 댄스가 마무리되었다.
이내 나는 잽싸게 무대 뒤편으로 향했고, 노래는 다시 정상적으로 진행되어 애들은 무대를 진행했다.
“고생했어.”
“끝났네요.”
그렇게 내 임무가 끝이 났다.
그리고 콘서트는 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벌써 마지막 곡이에요. 별님 여러분! 잘 즐기셨나요?”
네!
땀에 흠뻑 젖어 말하는 이나라의 모습은 무척 아쉬워 보였다.
“정말… 너무너무 아쉬워요.”
“꿈만 같아요. 지금 모든 게.”
다른 애들도 목소리가 안 겹치게 한마디씩 보탰다.
벌써 엔딩이다.
3일간의 대장정인 첫 단독 콘서트가 이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남진수의 배려로 애들의 단독 콘서트 마지막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첫날의 엔딩 멘트는 ‘내일 또 만나요.’ 혹은 ‘아쉬워요.’가 주를 이뤘고, 둘째 날의 엔딩 멘트는 ‘저희 이제는 실수 없이 잘해요’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의 엔딩 멘트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거에 너무너무 감사해요. 저 작년에 위너6 선배님들 마지막 콘서트 사진이랑 멘트 보고 너무 슬펐거든요. 우리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고. 근데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게 다 별님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켜보는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거로 결정한 듯했다.
사실 이게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콘서트였지만 아니게 되었으니까.
“어…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쵸?”
벌써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머금고 있는 이나라 대신 유미소가 진행을 했다.
“하지만 별님들한테 인사는 드려야죠. 짧게 말할게요! 그럼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유미소가 끝에 있는 서지영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작된 애들의 멘트는 전부 주옥같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의 활력소 지영이에요. 첫 단독 콘서트라 조금 부족한 모습이면 어쩌지 하고 걱정 많이 했는데 잘 봐주신 거 맞죠? 오늘이 마지막이 된 게 아니니까…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감정이 복받치는 듯 울면서 말하는 서지영.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한 3일이었어요. 여러분들도. 행복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잘 봐주실 거죠? 고마워요, 여러분.”
앞에 울던 서지영과 다르게 침착하게 말하는 린.
“콘서트 준비하는 동안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첫 단독이니까 그래도 귀엽게 봐주실 거죠? 다음에 또 콘서트를 할 때는 더 발전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와줘서 고마워요, 별님! 항상 힘이 돼요. 감사합니다!”
의외로 씩씩한 박혜연.
“먼저 여러분들 덕에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사드리고 싶어요.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 말고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 덕이에요. 지금 이 자리도, 앞으로의 자리도요. 이만 마칠게요. 고맙고, 사랑해요.”
매사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지만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인 유미소.
“안녕하세요. 유코예요. 오늘 와주신 여러분 너무 고마워요. 사시른 고민이 마났거든요. 내 길이 이 길이 맛나 시퍼서…. 근데 맛는거 가타요. 아프로도 잘 부타캐요!”
평소 모습 그대로인 유코.
“으이구, 울보들. 안녕하세요. 신희진입니다. 3일간이 참 꿈같아요. 아니 지난 1년이 다 꿈같네요.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힘들었을 때도 있었고, 즐거웠던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고, 참 다양했네요. 그래도 그 중심에는 여러분이 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눈을 빛내며 여유롭게 말하는 신희진.
신희진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인물인 스타즈의 리더 이나라의 차례가 돌아왔다.
“울보이자 리더이자 맏언니인 이나라입니다. 여러분들 덕에 너무 행복해요. 불과 두 달? 세 달 전만 해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이렇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됐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여러분은 아실까요?”
네!
“첫 단독 콘서트라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겐 앞으로가 남아있으니까요. 여러분 함께해주실 거죠?”
네!
“감사합니다. 이만 짧게 줄일게요. 여러분 고맙고, 사랑하고, 기억할게요. 감사합니다.”
이나라의 멘트에 심장이 뭉클뭉클했다.
하물며 팬들은 어떻겠는가.
리더라 그런지 멘트 하나하나의 내공이 상당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스타즈 잘 부탁드립니다!”
일곱 명 모두 손을 잡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에 팬들의 함성이 떠나가라 들렸다.
와아아!
가지 마!
“안녕!”
“감사합니다!”
가지 마!
앵콜! 앵콜!
떠나려는 스타즈가 아쉬운 나머지 열심히 소리치는 팬들이었다.
“더욱더 빛나는 스타즈가 될게요!”
하나둘 애들이 무대 뒤편으로 인사하며 사라졌다.
끝은 존재했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물론 나는 팬들과 다르게 애들을 만나러 바쁘게 움직였다.
애들 만나기 전에 감정 좀 추슬러야겠다.
* * *
무대 뒤편에 도착하자 애들이 울음바다인 걸 볼 수 있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울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팬들 앞이라고 꾹 참고 있던 듯했다.
그런 애들에게 쩔쩔매고 있던 남진수가 나를 보더니 10년 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화색이 밝아졌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이 달래고 있던 애들을 내게로 넘기고 쏙 빠졌다.
나라고 남진수랑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
“얘들아, 고생했어.”
“오빠!”
애들에게 가까이가 말하자 우르르 내게로 몰려왔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일곱 명에게 이렇게 둘러싸이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 일곱 명 모두 울고 있기까지 하니 더욱더 이상했다.
“엉엉.”
“좋은 날에 왜 이렇게 울어? 이제 가족이랑 친구들 만나야지. 지금 이렇게 울면 어떻게 해. 만나러 안 갈 거야?”
“눈물이 나오는데 어떻게 해요.”
서지영이 나를 찌릿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잖아.”
“으허엉.”
내 말이 기폭제가 된 듯 애들이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안 좋은 말도, 틀린 말도 아니었는데 뭐가 문제지.
“근데 진짜 왜 울고 있는 거야?”
“그냥요.”
“뭐?”
“지영이가 우니까 괜히 눈물 나와서….”
내 물음에 이나라가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서지영이 답했다.
“난 언니가 우니까….”
“그냥 기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거예요.”
당사자가 아니라 그런지, 지금 애들의 기분을 정말 알 수가 없다.
크응!킁!
이상한 소리에 옆을 보니 서지영이 어느새 내 티셔츠를 잡고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야, 그래도 옷에다가 코 푸는 건 아니잖아. 눈물 닦는 건 이해라도 하지….”
“코 안 풀었어요. 눈물 닦으면서 훌쩍인 거예요.”
“허….”
분명, 코 푸는 소리였는데.
차마 확인을 위해 만지지는 못하겠다.
“저희 사진이나 한 장 찍어주세요.”
“사진?”
“네. 끝난 기념으로 찍는 거죠. 기념 사진으로.”
조금 진정이 됐는지 유미소가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우느라 엉망인데?”
“그래야 나중에 볼 때 추억 돋죠.”
유미소의 엉뚱한 말이었지만 그럴싸했다.
이런 것도 다 추억이니까.
이내 핸드폰을 들자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찍는다?”
“네.”
“하나, 둘, 셋!”
찰칵!
억지로 웃음을 짓는데 진짜 괴상했다.
내가 본 애들의 단체 사진 중 역대급이었다.
“한 장 더요.”
이나라의 말에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애들도 전과 다른 포즈를 취했다.
“하나, 둘, 셋!”
찰칵!
찍는 게 끝나자 애들이 내게서 핸드폰을 뺏고는 자기들끼리 돌려보며 낄낄 웃었다.
“와, 망가진 거 봐. 생각보다 심하네.”
“나중에 보면 진짜 웃기겠다.”
“좀 정리됐어? 밖에 사람들 기다리는데.”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남진수가 우리 보고 손짓했다.
“네! 갈게요!”
남진수의 말에 애들이 활기차게 대답하고는 내게 핸드폰을 건네줬다.
그리고 이내 남진수에게 뛰어가는 애들을 보며 왠지 모를 성취감과 공허감이 물밀 듯 몰려들었다.
이런 기분이어서 울음이 나온 거였나.
나는 고개를 털며 공허감을 지웠다.
오늘 끝난 콘서트가 끝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많이 남았기에 공허감은 금방 지워졌다.
지금은 새로운 다짐이 필요할 때다.
내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고, 이제는 다음 목표를 잡을 때였다.
다음 목표라고 해봤자 별거 있을까.
내 담당 연예인들을 더 높이 더 빛나게 해줄 수 있게 노력하는 것뿐.
그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