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Dangerous (3)
“너희 이대로 무대 올릴 거야! 정신 안 차려!”
오랜만에 본다.
한지연 안무가가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모습은.
“데뷔한 프로한테 내가 이렇게 말하는 상황이 너무 웃기지 않아?”
“죄송합니다!”
지금, 이 광경은 예전 데뷔 쇼케이스 때 잠깐 봤던 풍경이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보니 새로웠다.
애들의 데뷔 초가 생각난달까.
데뷔 쇼케이스 때는 데뷔 전이라 애들을 가르치던 트레이너들이 애들을 혼도 내고 무섭게 잡았지만, 데뷔 후에는 이렇게 대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즈로 데뷔한 순간부터 애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였으니까.
근데 지금은 또 다른 모양이다.
“너희 콘서트 값이 얼마인지 알아? 인당 9만 원꼴이야. 하루에 8,000명 들어오지? 그것만 해도 7,200만 원이네. 지금 너희가 보여준 게 7,200만 원의 가치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니?”
“…….”
콘서트 푯값만 7,200만.
애들의 콘서트는 3일간 진행되니 푯값으로만 2억이 넘어갔다.
게다가 수익이 이게 끝이 아니다. 굿즈도 있었다.
굿즈가 얼마 팔리지 않는다면 수익이 크게 뛰지는 않겠지만, 티켓 매진 속도와 지금도 암암리에 시장에 나돌아다니는 암표 시세를 보면 굿즈도 엄청 팔릴 거라 예상된다.
그에 맞춰 굿즈도 넉넉하게 준비한 거로 알고 있다.
‘굿즈가 팔려 봤자 얼마나 되겠어?’라고 생각할 게 아니다.
팬덤 파워가 있는 가수면 굿즈도 무시 못 한다.
잘 팔리면 콘서트 푯값의 배는 번다고 하니까.
괜히 기획사들이 국내 콘서트를 기획하고 해외 투어 일정을 잡는 게 아니었다.
가수가 콘서트만큼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게 없다.
“얼마나 남았다고 안무를 틀려! 남들이 보면 너희 데뷔한 지 5년은 된 줄 알겠다. 아니 데뷔 5년 한 애들도 이렇진 않을걸?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야!”
한지연의 혼내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닌 모양이다.
무섭게 눈을 부라리는 한지연을 애들은 눈도 못 마주치고 땅만 바라봤다.
“팬들의 성원으로 연장까지 끌어냈으면 보답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이렇게 보답할래?”
“아닙니다!”
스타즈 애들도 계속 날카롭게 건드리는 한지연의 말에 악에 받쳤는지 목소리에서 이 악물고 말하는 게 느껴졌다.
“좋아. 다음에는 얼마나 칼같이 맞추는지 보겠어. 그때는 오늘같이 안 그러길 바라.”
“네!”
한지연이 할 말을 다 했는지 애들의 혼나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게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현진 씨. 잠깐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한지연이 내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뒤돌아 문밖으로 향했다.
나도 냉큼 한지연을 따라갔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생각보다 춤을 잘 추시네요.”
“감사합니다. 나라가 열심히 지도해 줬어요.”
“진수가 현진 씨 반만큼만 췄어도 그림이 더 이뻤을 텐데.”
“하하….”
한지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남진수를 언급하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남진수도 꽤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그러나 전문가인 한지연이 보기엔 아직도 부족한 듯했다.
“아무튼, 다른 게 아니라 애들 케어 좀 잘 부탁드려요.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뭐라고요.”
“그나마 회사에서 애들이 편하게 대하는 게 현진 씨 같아서요.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들에게 애정 쏟는 게 느껴져서겠죠?”
한지연의 말에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회사에서 나만큼 애들에게 애정 쏟는 사람이 없긴 하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랑 똑같이 애들에게 대하는걸요.”
“그랬다면 제가 이런 말도 안 했겠죠. 애들도 사람인데 너무한다니까, 정말.”
한지연의 말에 가슴 한편이 쓰라렸다.
한지연이 말하는 건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비즈니스로 대하는 태도 때문일 거다.
나는 스타즈를 가족 같은 느낌으로 대했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 대부분은 일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아무튼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물론이죠. 들어가세요.”
한지연이 내게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에 맞춰 나도 인사를 건넸다.
한지연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잠깐 보다 애들의 연습실로 돌아갔다.
“한 쌤 기준이 갑자기 너무 올라갔어. 예전에 이렇게 했을 때는 뭐라 안 하셨는데.”
“그만큼 열심히 해서 제대로 무대 보여주라는 거겠지.”
“제대로 하고 있는데….”
가까이 가보니 애들이 내가 찍어둔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면서 오늘 한지연의 호된 호통의 주인공인 서지영이 투덜대는 게 보였다.
한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춤을 추더니 애들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나라가 얼굴에 맺힌 땀을 훔치며 나를 바라봤다.
“오빠! 오빠가 볼 땐 어땠어요? 오늘 런 돌린 거?”
“나한테 물어봐야 대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 정해진 대답을 하라고요.”
유미소가 내 대답을 재촉했다.
“답정너야?”
“아, 빨리요!”
“나야 좋았지. 사실 난 틀린 거 크게 안보였어. 나와 다르게 한지연 선생님은 너무 디테일하게 보시니까. 근데 린이 틀린 거는 좀 보이더라.”
“아….”
내 말에 린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서지영이 린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왜 우리 린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콘서트까지 일주일이야. 완벽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첫 콘서트인데. 엉망진창이라는 소리는 안 듣고 싶을 거 아냐?”
“쳇. 너무해. 린아, 그지?”
논리정연한 내 말에 서지영이 투덜댔다.
“아니야. 내 실수야. 좀 더. 잘할게.”
자책하는 린의 모습을 보며 그냥 당근만 줄 걸 그랬나 싶었다.
한지연이 외국인 멤버들한테는 조금 무른 경향이 있어 내가 지적한 거였는데.
“오빠, 근데 새로운 매니저는 언제 와요?”
“글쎄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너희 콘서트 끝나기 전까진 지금 체제 유지할 거 같은데?”
“그럼 앞으로는 잘 못 보겠네요.”
이나라가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애들도 이나라의 심정과 틀리지 않았는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쳐다보는 게 심상치 않았다.
“잘 못 보지는 않지. 팀장님처럼 중요하거나 활동기 때는 함께할 거야.”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드는 거잖아요.”
박혜연도 섭섭하다는 듯 끼어들며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고 너희랑 붙어서 현장 다닐 수는 없잖아. 그 시기가 좀 빠르게 오긴 했지만.”
팀장을 달게 되면 지금보다도 애들에게 간섭해질 수 있는 발언권이나 권한도 더 커진다.
지금도 로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손이 닿은 편이긴 했지만 말이다.
“억.”
갑자기 서지영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들어 왔다.
그러더니 이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능력 있으래요?”
“능력이 있어야 좋은 거 아니야?”
“아, 몰라요. 오빠 없으면 놀아줄 사람이 없는데.”
서지영은 섭섭하기보다는 본인의 심심함을 달래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말투였다.
이거 완전 장난감 취급인데?
“우리랑 잘 맞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대자로 뻗어 있던 유미소가 조용히 읊조렸다.
아무래도 본인들과 함께할 시간이 길어지는 로드 매니저가 본인들과 잘 맞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고역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빡빡한 건 둘째 치고 담당 연예인과의 호흡도 중요했다.
유미소가 읊조린 이후로 갑자기 연습실이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잠깐의 적막감이 돌다가 이나라가 벌떡 일어나자 그 적막감이 깨졌다.
“30분만 쉬고 연습 다시 하자!”
“으아!”
이나라는 지치지도 않는지 스트레칭을 하며 벌써 몸을 풀고 있었고, 애들은 연습실 바닥에 철퍼덕 널브러졌다.
나는 그런 애들을 보며 말했다.
“나도 업무 처리하고 조금 있다가 올게.”
“네!”
나가기 전에 슬쩍 신희진을 쳐다봤다.
신희진은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이전에 같이 편의점에 갔던 이후로 신희진이 은근히 말수가 적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조심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내 착각일런지.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도 답을 내러 갈 시간이었다.
* * *
“그래, 결정은 내렸나?”
“네.”
1월에 들어서 대표실에 찾아온 횟수만 해도 벌써 몇 번짼지 모르겠다.
대표실에 걸려 있는 포스터들이 이제는 정겨웠다.
“스타즈랑 배우팀 다 맡아보겠습니다. 그렇지만 배우는 일단 지금 그대로 재성이만 맡으면 안 되겠습니까? 희진이도 배우 병행을 할 것 같아서요.”
“예진이가 섭섭해할 텐데.”
내 대답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었다.
“선배님까지 맡기에는 제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배님에게는 제가 잘 말해보겠습니다.”
“뭐, 마음대로.”
정인수 대표가 내 얼굴을 쓱 쳐다보더니 이내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댔다.
“그래, 마음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 나갈 때는 스타즈를 절대 안 맡을 것처럼 하고 나가더니.”
“머릿속이 복잡해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친구의 한마디가 컸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기대하듯 기대감에 찬 표정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거창한 말을 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했길래 태도가 이렇게 바뀌었나?”
“억지로 해결할 생각 말고 순리대로 흐르게 하라고요.”
“순리라….”
순리는 내가 생각해낸 표현이었고, 이진철이 내게 말했던 건 ‘괜한 걱정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라.’였다.
그 말에 머리가 징 하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의 불투명함에 내가 지레 겁을 먹었던 거였다.
그러면 안 됐는데.
이번 일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과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순리대로 흘러가야 함이 맞다면, 둘 다 맡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관계는 괜찮고?”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아직 남녀 간의 사랑이 싹튼 것도 아니니 조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하면서 웃음 실실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상황 자체가 묘했기 때문이다.
대표한테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그리고 또 남녀 간의 감정 문제로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이.
“그게 쉬울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그래도 선은 지키려고 합니다.”
“선을 넘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고 왈가왈부해봤자 나올 게 없으니까요.”
내 나름의 선을 정해놨다.
그 선을 넘는다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정인수 대표가 크게 껄껄 웃었다.
“너를 보면 내가 처음에 남자 아이돌을 키웠던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이런 문제로 고민했던 적이 없었거든. 물론 난 시장성과 애들의 재능을 보고 택했지만 말이야.”
“…….”
내가 남자 아이돌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스타즈의 남자 버전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좋아. 그럼 인사는 이렇게 확정 짓기로 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경우가 너무 특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다 네가 잘 해왔기 때문이지. 나는 그리고 저돌적이고 모험적인 사람을 좋아하거든. 거기에 능력이 있으면 더더욱.”
이런 특수한 상황이 내게 벌어진 건 대표가 나를 좋게 보고 있었기 때문인가.
참 공교로웠다.
지금까지의 내 모든 태도와 행동은 딱히 대표의 마음에 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어찌 됐건 지금까지 걸어온 내 길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