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Dangerous (2)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일입니다.”
정인수 대표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기가 꺼려졌다.
그렇다고 지금 말한 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회사 일에 개인적인 일이 어딨나.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지. 게다가 이렇게 뜬금없이 스타즈를 놓는다고 하는 건 납득하기가 어려운데.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시간을 달라더니 그게 이거였나? 조금 실망스러운데. 지금까지 저돌적으로 덤볐던, 같은 사람이 맞나?”
“…….”
내 대답을 들은 정인수 대표는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화를 내는 듯한 말투였다.
“게다가 스타즈는 네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애들인데. 이렇게 쉽게 놔준다? 그렇게 애들에게 애착이 없는 건 아닌 거로 알고 있는데… 정말 그게 본심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정인수 대표를 보며 속으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건 숨겨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대표님은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둘의 관계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그래, 흔하게 쓰는 표현인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라 할 수 있겠지. 공생 관계로 알려져 있으니까.”
악어인 연예인과 악어새인 매니지먼트인가.
“악어가 악어새 없다고 삶이 힘들까요?”
“힘들지 않겠지. 애초에 악어새가 악어의 입 안 찌꺼기를 처리해주는 동물이 아니니까.”
“네?”
정인수 대표가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더니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많이들 둘의 관계를 대표적인 공생 관계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아니야. 악어와 악어새가 공생 관계라는 건 잘못 알려진 지식이거든.”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둘이 공생 관계가 아니었나?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와 연예인이 공생 관계인가? 하는 부분이지. 대부분은 연예인과 기획사를 공생 관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관계는 길지 않아. 연예인의 파워가 커지면 커질수록 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거든.”
그건 그랬다.
잘나가는 스타들의 경우 재계약할 때는 따로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번에 나간 차태수 팀장의 경우도 비슷했다.
이전에 같이 활동했던 배우와 매니지먼트를 차린다고 했었다.
배우가 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같이 하자고 해서 넘어갔다고 했던가.
그만큼 차태수 팀장이 그 배우에게 잘해줬거나, 능력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악어가 악어새에게 의존해야 할 이유가 반드시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렇지 않나?”
지금 정인수 대표가 말한 내용이 차태수 팀장의 경우와 비슷했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감정이 움직여도요?”
내 말을 들은 정인수 대표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왜. 애들에게 이성으로 호감이라도 생겼나?”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이라… 그럼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군. 단순 그것 때문이라면 본인이 참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정도의 절제도 없나?”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을 하다가 잠깐 고민이 들어 멈칫했다.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정인수 대표가 믿을까?
“그럼 다른 게 걸린다는 건데… 그럼 스타즈 중 누군가가 너에게 이성으로 호감이라도 표현하나 보군. 그래서 파트너로 못 보고 흔들려서 그러는 건가? 드문 일은 아니지.”
내가 머뭇거리는 낌새를 보이자 정인수 대표가 내가 말할 내용을 먼저 꺼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쉽사리 예측하지 못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안 걸까.
연예계 짬밥 20년이 괜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같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
정인수 대표는 나와 보는 관점이 달랐다.
서로 위험해지기 전에 떨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너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다.
특히 연예인에게는 말이다.
“그렇게 떠나는 게 과연 맞을까? 아깝지 않을 자신 있나? 남의 손에 맡겨도?”
“그건….”
이 부분은 정말 많이 망설여지는 부분이었다.
내 손을 떠난 스타즈.
지금도 정인수 대표에게 떠난다고 말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매니저로서는 최선의 상황인데 말이야. 네 손으로 담당 연예인을 마음껏 컨트롤 할 수 있는… 물론 스타즈 애들 모두가 너에게 이성으로 호감을 품고 있지는 않겠지.”
정인수 대표가 말을 멈추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도 정인수 대표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나답지 않게 꽤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한 얼굴이 아니다.
이건 불쾌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몸, 내 뇌는 아니었나 보다.
어떤 점이 불쾌했을까.
아무래도 내 손을 떠난다는 말이 제일 결정타이지 않았을까.
지금의 스타즈는 내가 키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래도 이 바닥에서 연예인에게 이성으로 호감을 끌어당길 정도의 매니저라면 스타즈의 다른 애들 또한 호감은 상당히 품고 있을 터. 게다가 스타즈 애들뿐만이 아니었지? 예진이도 있었네. 예진이는 이성으로서의 호감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야. 지금 보니 사람 홀리는 재주도 있나 봐? 매니저가 아니라 연예인을 해도 됐겠어.”
이전에 정인수 대표가 내게 배우도 맡아보라고 권했던 건, 이예진의 입김도 컸다고 했다.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이예진 또한 나를 원했었지.
“매니저에게 의지하는 연예인이라니, 그게 얼마나 큰 건지 감이 안 오나 보군.”
“…….”
“그런 기회는 너에게 있어서는 아주 훌륭한 기회인데 이걸 버리겠다고?”
정인수 대표가 내 마음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욕망을 콕콕 찔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내려야 해서 그런 걸까.
너무나도 어려웠다.
* * *
“…형! 현진이 형!”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몇 번을 불러도 반응이 없으시길래 기절한 줄 알았잖아요.”
“아, 미안. 생각 좀 하느라. 무슨 말 했어?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말을 해놓고 괜히 무안했다.
한창 촬영하고 돌아온 연기자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어? 라니.
업무 태만이었다.
얼빠진 내 말에 안재성이 웃었다.
“아뇨. 그냥 잠깐 브레이크 타임이어서요.”
“아, 그래?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뇨. 뭐 필요한 건 없는데…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올 때부터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는데 오늘따라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요. 어디 아프세요?”
아프긴 아팠다.
물론 정말로 아픈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아팠다.
어제 정인수 대표와의 대화 이후 지금같이 멍한 상태였다.
“그냥 고민이 필요한 문제가 생겨서. 그거 생각하느라.”
“뭔데요?”
“개인적인 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얼른 정신을 차리려야 하는데.
너무 티를 내고 다니고 있나 보다.
“궁금하긴 한데 말 돌리시는 거 보니 굳이 캐묻지는 않을게요.”
“그래. 고맙다.”
안재성이 깊게 물어보지 않고 센스 있게 넘어가 줬다.
안재성 덕분에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오늘 촬영은 언제 끝날 거 같아?”
“글쎄요. 워낙 들쭉날쭉해서 잘 모르겠어요. 오늘은 제시간에 끝날 거 같기도 한데.”
“그렇게 예측했을 때마다 다 오버해서 끝났잖아.”
내 말에 안재성이 크게 웃었다.
“하하. 어쩔 수 없죠, 뭐.”
“곧 촬영도 끝나가네.”
어느덧 안재성의 ‘Finder’ 촬영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네. 벌써 첫 촬영 하고 2개월 넘게 흘렀네요.”
“어때?”
“잘 모르겠어요. 전 작품이랑 워낙 성향이 틀려서.”
안재성의 말투는 잘 모르겠다는 듯 담백했다.
하지만 이내 환한 미소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그냥 재밌어요. 즐겁고요.”
“다행이네.”
“전 작품에서도 많이 배웠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예전과 다르게 판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안재성이 전 작품에서는 배우에게 큰 배움을 얻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판성식이 안재성이 마음에 들었는지 촬영장에서 이것저것 챙겨줬다.
그리고 성재원 감독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촬영하면서 불같은 성재원 감독에게 찍히지 않은 것만 해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촬영하는 동안 스태프 교체나 단역 배우 교체가 꽤 잦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역시 지랄 맞은 성재원 감독의 성격 때문이었고.
그러나 인성과 능력은 별개라고 했던가.
연출 능력은 꽤 탁월했다.
현장에서 지켜볼 때 컷의 구도와 디렉팅은 때때로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괜히 거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영화는 무조건 편집이 끝난 후를 봐야 안다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재성아!”
“예!”
“잠깐 와볼래?”
“알겠습니다!”
안재성이 들려온 목소리에 크게 답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판성식이었다.
“형, 저 가볼게요.”
“어, 그래.”
안재성이 내게 인사를 하곤 목소리가 들린 장소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나도 따라가는 게 맞는데 왜 나 혼자 덩그러니 여기에 있는지.
정신 차리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안재성이 간 장소로 몸을 움직였다.
* * *
“야, 너라면 어떻게 할 거 같냐.”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말 하면 내가 뭐라고 말할까?”
답답한 마음에 무턱대고 이진철을 불러내 술 한잔하는 중이었다.
“짜샤. 너만 바쁘냐? 나도 바쁘다고. 불러 내놓고 계속 실없는 소리 할래?”
“바쁘긴 무슨. 편집은 다 끝냈을 거고, 이제 기다리는 일밖에 안 남았으면서.”
“임마. 그게 바쁜 거야.”
영화 개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이진철이 바쁜 건 아니었다.
하루하루 피 말리는 심정일 뿐.
그리고 나 또한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심정이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너한테 이런 상담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이진철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는 이진철 말고는 누구한테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맡은 애들 알지?”
“스타즈? 알지.”
“걔네 중에 한 명이 나를 남자로 보는 거 같은데,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이야,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착각이 심하네. 걔들이 뭘 보고? 잘생긴 애들이 한 트럭인데.”
이야기를 듣던 이진철이 입을 쩍 하고 벌리며 황당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더라.”
“음.”
이진철이 진중한 내 태도에 장난이 아니란 걸 깨닫고는 얼굴을 굳혔다.
“남자로서는 땡큐. 일적으로는 배드 플랜이네.”
열에 아홉이면 ‘와, 땡잡았네.’ 했을 것이다.
나라고 싫겠는가.
그렇지만 이 바닥에 근접해서 봐온 나에게 있어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같은 연예인끼리 만나도 어마어마한 구설수에 오르고 내리는데 매니저와 담당 연예인이 연애한다? 그대로 매장이다.
서로를 위해서라면 멀어지는 게 맞다.
그렇게 생각하고 정인수 대표를 찾았으나 정인수 대표는 달랐다.
정인수 대표는 역으로 그 마음을 이용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그게 할 소린가.
“뭐 중요한 건 네 마음이겠지. 넌 어떤데?”
“이게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거 같아. 처음엔 전혀 이성으로 안 느껴졌는데 나한테 호감을 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성으로 느껴지더라.”
“그래? 그럼 답은 정해졌네.”
이진철이 쉬운 문제였다는 듯 쉽게 말했다.
나도 모르는 답이 있었나 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