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Dangerous (1)
“팀장님!”
“…왜?”
저놈의 팀장님이라는 소리는 적응이 안 됐다.
들리면 잠깐잠깐 멈칫한달까.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러놓고 끅끅대며 웃고 있는 서지영이 너무 거슬렸다.
“왜 그렇게 쑥스러워 해요?”
“저리 가.”
“아, 귀여워.”
내 반응이 재밌는지 서지영이 부쩍 나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팀장님.
이렇게 빠르게 팀장을 달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아직 회사에 인사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애들과 우리 팀에게는 정인수 대표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애들은 축하해 주었고, 남진수와 이진성 실장은 나와 정인수 대표가 나눴던 내용에 대해 얼핏 알고 있는 눈치긴 했다.
둘 다 듣고 매우 놀라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그만 놀리고 연습이나 해. 나도 연습하고 있잖아. 방해하지 말고.”
“싫은데요?”
깐죽거리는 서지영에게 꿀밤을 먹이고 싶었지만, 지성인인 내가 참아야겠지.
서지영의 깐족거림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어 상당히 피곤했다.
“서지영 너 때문에 연습 안 되잖아! 있다가 연습 끝나고 쉴 때 오던가.”
“알았어~”
이나라가 서지영을 컨트롤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고혈압으로 병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친하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서지영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습하고 있는 애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이나라가 이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빠도 이제 적응 좀 하시고요. 쟤한테 자꾸 먹이 주면 지금처럼 문단 말이에요. 뭘 그렇게 쑥스러워하는지… 어차피 거의 확정이라면서요?”
“그렇긴 한데, 아직 호칭 적응이 안 되네.”
“별게 다 적응이 안 된대.”
이나라가 작게 투덜거렸다.
적응 문제를 떠나서 내가 애들의 팀장이 되는 게 확정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아무튼, 합이나 다시 맞춰 봐요. 이제 3주도 남지 않았다고요.”
“그래.”
내가 멍하니 앉아 있자 이나라가 독촉했다.
지금은 일단 연습만 생각하자.
* * *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 사올 건데 먹고 싶은 거?”
애들에게 말하면서 핸드폰 기능인 녹음을 켰다.
애들의 주문을 일일이 외우거나 메모하기엔 너무 힘들어 익힌 방법이었다.
“저 핫바요!”
“초코우유!”
“민초 우유!”
“전 달콤한 거 아무거나요~”
“저 치킨 먹을래요!”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먹고 안 찔 자신 있어?”
애들 콘서트가 얼마 남지 않아 음식을 통제 중이었는데, 슬쩍 끼어든 음식이 있어서 말을 꺼냈다.
“오늘 연습 진짜 빡시게 해서 살 빠졌을 거예요!”
“…….”
웃기고 있네.
내가 아무 말 않고 지긋이 바라보자 유미소가 움찔하더니 내 눈을 피했다.
“한… 0.5kg 정도 빠지지 않았을까요?”
“오빠, 그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그래?”
“네.”
이나라가 괜찮다고 했으면 괜찮은 거겠지.
“뭐야. 왜 나라 언니가 말하니까 단번에 오케이고, 제가 말했을 때는 왜 부정적이에요!”
이런 내 태도가 불만이었는지 유미소가 씩씩대면서 입에서 불을 뿜었다.
“네가 나에게 그만큼 신뢰를 못 줬다는 거 아닐까?”
“제가 뭐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광분할 낌새를 보이던 유미소가 내 말을 듣더니 다소 누그러들었다.
그래, 안 찔리면 사람이 아니지.
나를 괴롭히는 투톱 중의 한 명인데.
“그래도 지영이보단 낫지 않아요?”
“그건 인정.”
물론 그 중 원톱은 서지영이었다.
“내가 뭘 했다고!”
“너 요새 징징거리는 거 오빠가 다 받아주잖아. 얼마나 힘드시겠어.”
“징징거린 적 없는데?”
“원래 그런 건 본인만 몰라.”
유미소와 서지영이 서로 투닥거렸다.
내가 볼 땐 둘이 도긴개긴이었다.
“오빠. 같이 가면 안 돼요?”
“어?”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신희진이 내게 물었다.
“뭔가 먹고 싶긴 한데 딱히 떠오르는 건 없고… 그래서 가서 고를까 해서요. 가서 보고 고르면 안 될까요?”
“음… 그래. 그렇게 해.”
신희진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서는 모습을 보다가 애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 없지?”
“그런 거 같아요.”
내 말에 박혜연이 대답했다.
더는 없는 것 같아 몸을 돌리자 뒤에서 인사를 나누는 애들의 말이 들렸다.
“우리도 잠깐 쉬고 있자.”
“갔다 올게!”
“많이 사와!”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져 쉬고 있는 애들을 뒤로하고 신희진과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뭐가 먹고 싶어서 같이 나온 거야. 안에서 쉬지.”
“저도 모르겠으니 잠깐 나온 거죠. 바람도 쐴 겸. 겸사겸사.”
신희진이 즐거운 듯 흥겹게 말했다.
그러다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즐거운가 보다.
그와 반대로 나는 차분해지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게 아니었다.
정인수 대표에게 스타즈도 맡고, 배우도 맡는 팀장의 자리를 제의받았으나 그날 바로 답하지 않고 한발 물러선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타즈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스타즈라기보다는 어떤 한 인물에 관해서였다.
바로 신희진이었다.
처음 생각했을 때는 내가 미친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말이 안 됐으니까.
그러나 예전 일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일련의 행동을 보면서 점차 내 생각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 아닌 신희진이 나를 남자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
누군가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했다면 ‘너 미쳤냐’ 소리 듣기 딱 좋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말이 안 되지 않나.
오히려 매니저가 담당 연예인에게 사심이 생기면 생겼지. 그 역전 현상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오히려 착각이길 간절히 바라는 중이었고.
착각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서로 오래갈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한편으로 내 생각이 맞으면 좋겠다는 발칙한 상상도 했다.
예쁘고 성격 좋은 여자가 나를 보고 이성으로 좋다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딨겠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어?”
“다 왔는데도 멍하니 있길래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어느덧 편의점 앞이었다.
“아, 잠깐 일 생각 좀 하느라.”
“와, 어떻게 나를 두고 한눈을 팔 수가 있어요!”
신희진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장난스럽게 말하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신희진이 내게 호감을 품었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나도 신희진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옆에서 멀뚱히 바라보던 신희진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
“네.”
같이 편의점에 들어가 요깃거리를 사기 시작했다.
애들이 주문한 것들 위주로 담기 시작했다.
핫바, 초코우유, 민초우유, 치킨, 초콜릿 몇 개.
이야기해준 것들을 다 담은 것 같아, 먹을 걸 고르고 있는 신희진을 보러 갔다.
거기에는 푸딩과 슈크림 빵을 양손에 들고 쳐다보면서 고민하는 신희진이 보였다.
내가 옆에 다가가자 신희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저 그냥 둘 다 먹을래요! 그래도 되죠?”
“그래.”
해맑게 내게 묻는 신희진에게 짧게 대답하고는 푸딩과 슈크림 빵을 건네받아 장바구니에 넣었다.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서니 신희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제 빵 먼저 주세요. 그거 가져가면 애들한테 뺏겨요.”
“어, 여기.”
내게서 빵을 건네받자 바로 뜯고는 입에 쏙 하고 넣었다.
앙증맞은 입에 쏙하고 들어간 빵을 보며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신희진은 확실히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
“드릴까요?”
내 시선을 느낀 신희진이 슬그머니 빵을 내게 밀며 말했다.
“아냐, 많이 먹어.”
“네!”
신희진과 함께 천천히 회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신희진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정인수 대표에게 할 말이 생긴다.
마침 둘이기도 하니 지금이 어떻게 보면 떠볼 수 있는 최적인 것 같다.
“희진아.”
“네.”
“음…. 아니다.”
“뭐야. 불러놓고 아니라고 하면 더 궁금한데. 뭔데요.”
신희진이 즐거운 듯 환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막상 말하려니 입이 안 떨어졌다.
왜 웃기지 않나.
누가 이성에게 너 나 좋아하니? 혹시 감정 있니? 라고 물어보는 것만큼 미친 짓이 또 있을까.
“오빠, 그거 알아요?”
“어? 뭐가?”
아무 말 않고 긴장하고 있던 내게 신희진이 갑자기 훅 들어오며 말을 걸었다.
“저 회사 헥사곤으로 옮겨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랍니다~”
신희진이 장난기 다분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고는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세부적인 이야기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우리 회사 헥사곤에 흡수? 합병? 된대요. 그거 관련해서 저랑 했던 계약을 다시 헥사곤이랑 맺어야 한다구 대표님이 알려주셨어요.”
“그래?”
“네.”
기획사끼리 합병이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신희진이 있던 기획사는 말 그대로 신생 기획사였다.
근데 굳이 헥사곤이 이런 기획사를 먹을 이유가 있나 싶기도 했다.
이렇게 된 내막이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신희진은 모를 테고.
“예전에 우리 회사로 오면 안 되냐고 말했었는데, 이젠 진짜로 같은 회사 식구가 됐네요?”
“그러네.”
“좋다. 좋아.”
“그래?”
“네. 계속 같이 있잖아요.”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데 내 착각인 걸까.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티를 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왜 몰랐을까. 왜 지금에서야 알았을까.
“희진아.”
“네.”
“너는 연예인이 연애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
내 질문에 신희진이 잠깐 생각이 필요한 듯 뜸을 들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신희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저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팬들을 위해서라면 안 하는 게 맞는데. 사람 감정이란 거,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래. 사람 마음이 쉬운 게 아니긴 하지.”
“근데 갑자기 왜요?”
신희진이 호기심 짙은 눈으로 내게 물었다.
게다가 목소리도 커진 걸 보니 조금 흥분한 모양이었다.
“아니, 요즘 들떠 있는 거 보면 연애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만날 시간이 있어야 연애를 하죠. 하고는 싶지만.”
아까보다 다소 낮은 톤의 목소리로 내 눈치를 슬쩍 살피며 말했다.
나는 그런 신희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깊고 맑은 눈.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신희진의 표정은 태연했으나 동공이 확장되고 떨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목소리에서도 미세한 떨림 또한 느껴졌다.
예전 영화를 준비하면서 신희진과 신물 나도록 리딩을 하면서 발음을 들어 이 정도의 구분은 가능했다.
“혹시 연애할 생각 있으면 꼭 회사에 말해야 한다. 아니면 나한테라도 말해줘. 그래야 커버라도 쳐줄 수 있으니까. 몰래 하면 우리도 힘들어.”
“그럼요. 꼭 알려드릴게요.”
차마 대놓고 묻지는 못하겠고,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나름 확신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히죽 웃는 신희진의 얼굴이 내겐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 *
똑똑.
“김현진입니다.”
“그래. 들어와.”
안에서 정인수 대표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안경을 끼고 큼지막한 대표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정인수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정인수 대표가 안경을 벗고는 나를 바라봤다.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나야 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지. 그래 할 말이 있어서 왔다고?”
“일전에 보류했던 대답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래. 대답은?”
정인수 대표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후. 떨리네.
속으로 심호흡 한번 하고 정인수 대표의 눈을 바라봤다.
“스타즈를 맡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번 콘서트 마무리 후 배우팀으로 넘어가 배우만 맡겠습니다.”
이게 맞다.
서로의 감정이 더 위험해지기 전에 매듭을 짓는 게 맞다.
내 대답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묵묵히 나를 바라봤다.
“…….”
게다가 의외의 대답을 들은 모양인지 슬며시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내려와 무표정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흠,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