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준비 그리고 결실 (3)
- 3! 2! 1!
- Happy new year!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다시 밝았다.
폭죽 소리와 함께 무대에 있던 가수 모두가 신년맞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저기에. 서고 싶은데.”
“1년만 참아.”
“네.”
린은 화면 속에서 다 같이 새해를 보내고 있는 가수들이 부러운 듯했다.
“린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 건데요?”
“아직 생일이 안 지났으니까 그렇지.”
“아!!!”
깜짝이야.
서지영이 억울한 듯 샤우팅을 질렀다.
네가 그런다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지는 않아, 지영아.
애처럼 징징거리는 게 보기 싫었는지 박혜연도 한마디 했다.
“시끄러, 서지영! 안 들리잖아!”
“악!!!”
박혜연의 말을 들은 서지영이 성큼성큼 박혜연에게 다가가 귀에다 대고 고함을 질렀다.
정말 무법자다. 무법자야.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박혜연이 벌떡 일어났다.
“저게 진짜!”
“올해는 소원 안 비냐?”
더 이상 놔두다가는 혼란이 예상되어 나는 서지영에게 말을 걸었다.
“크리스마스 때 빈 걸로 퉁 칠래요.”
“참 편한 마인드다.”
“남이사.”
된통 뿔난 서지영은 답이 없다.
연장 발표 이후 부쩍 애처럼 구는데 원래 이런 애였나 싶었다.
팬들도 이런 모습을 알아야 할 텐데.
에휴.
“작년엔 여기에 미소 언니도 있었는데.”
“작년, 미소 언니. 보는 듯.”
박혜연 말에 공감된다는 듯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작년에 깽판 치던 유미소의 모습과 서지영의 모습이 오버랩 돼 보였다.
저 나이가 되면 다 저런가?
그렇다고 하기엔 혜연이는 얌전한데.
- 다들 올해에는 좋은 일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떼창이 끝났는지 다시 MC가 화면에 나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올해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좋은 일만 가득해야 했다.
당장 1월만 해도 애들의 첫 콘서트가 있었고, 그 이후로 신희진, 안재성의 영화 개봉이 있었다.
물론 콘서트는 이미 성공적이었다. 앞선 매진과 함께 뜨거운 반응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 몰랐다.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계 평은 회귀 전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호평인 것 같았다.
잘 되겠지. 잘 될 거다.
띵.
핸드폰의 울림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happy new year.]
이진철의 메시지였다.
나도 간결하게 ‘너도’라고 적어 보냈다.
띵.
띵.
갑자기 안부 연락이 폭주하네.
연달아 울린 알림음에 확인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각각 안재성과 이예진이었다.
안재성의 말은 이해가 되는데 이예진의 말은 이해가 안 됐다.
그냥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이야긴가?
각각의 문자에 안재성에게는 ‘내가 더 잘 부탁한다.’라고 보냈고, 이예진에게는 ‘앞으로 승승장구하실 겁니다!’라고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덮자 다시 또 알림음이 울렸다.
이번엔 또 누구야.
[happy new your]
이번 문자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조금 놀랐다.
다름 아닌 정인수 대표의 연락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your? 오타인가.
뭐라고 적을까.
이것저것 쓰다 무난한 인사를 적어 전송을 눌렀다.
[대표님도 행운 가득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십쇼!]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꼬맹이들아! 언니들이 왔다!”
유미소가 벌컥 문을 열고 우렁찬 음성과 함께 등장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어느새 무대를 끝내고 돌아온 언니 라인이었다.
* * *
“새해 인사 개편안입니다.”
서류를 건네받아 찬찬히 보던 정인수 대표가 이내 서류를 툭 던졌다.
“다른 건 알고 있던 대로고, 스타즈 때문에 조금 꼬이게 됐군.”
“네, 그 부분은 그래서 비워 놨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타즈가 해체되면 원래는 어떻게 하려고 했더라?”
인사과장의 말에 정인수 대표가 되물었다.
“이진성 실장이 기획전략 본부로 가고 남진수 팀장이 신인 개발 실장으로 빠져서 신규 런칭할 걸그룹 쪽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규 걸그룹 프로젝트가 스톱 상태이기에 애매해졌죠.”
“아아, 그랬지.”
정인수 대표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즈에 붙어 있던 걔는?”
“걔라면… 김현진 매니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인수 대표의 질문에 인사과장이 생각을 하려는 듯 잠깐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
“스타즈 해체 이후 발령할 부서로는 예전에 보고 드렸을 때 배우 담당으로 보고드렸었습니다. 그때 대표님도 알겠다 하셨고요.”
“그랬나?”
“네.”
대답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눈을 감았다.
그에 맞춰 인사과장이 말을 꺼냈다.
“스타즈 관련해서는 기존 매니저팀 그대로 유지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맡아왔던 사람들이 계속하는 게 더 좋고요.”
“그래, 그럴 거긴 한데… 내가 약속한 게 있어서 말이야.”
“네?”
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정인수 대표의 행동에 인사과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정인수 대표가 눈을 뜨고는 인사과장을 바라봤다.
“일단 진성이는 기획전략 본부로 예정대로 옮기고, 진수를 실장으로 올려. 진수는 틈틈이 신인개발 쪽 업무도 쥐여주고. 스타즈는 전반적으로 김현진이가 맡게 하고.”
“네.”
인사과장이 방금 들은 내용을 서류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김현진 걔는 일단 팀장 달아주자고.”
서류에 정인수 대표가 말한 이야기를 적던 인사과장의 몸이 잠깐 움찔했다.
그리고 메모를 멈추고는 정인수 대표에게 말했다.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고작 1년 지났을 뿐인데.”
“이르다고 하기엔 걔가 벌려놓은 거나 맡은 식구가 좀 많잖아? 스타즈도 전반적으로 맡게 된다면 모양새는 갖춰야지. 로드로 다니기엔 모양새가 너무 빠져.”
“그렇긴 합니다. 근데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냥 지금 같이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냥 달아줘. 문제는 없을 거야. 능력이 검증 안 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런 이레귤러 한 명쯤은 괜찮아. 자극도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정인수 대표의 태도에 인사과장도 더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룹 하나 혼자 맡기엔 힘드니까 신규 채용해서 로드 한 명 더 달아주고. 걔가 스타즈만 맡은 것도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공고 띄우겠습니다.”
인사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제 남은 건 조만간 차 팀장이 나간 자리를 채워줄 배우 담당을 정해야 하는데….”
정인수 대표가 손가락으로 빠르게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회사 내부에서는 마땅히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모집을 다시 할까요?”
인사과장의 물음에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이건 조금 기다려봐. 봐둔 사람이 있어서. 당사자 의견 좀 물어보고 정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이내 인사과장이 아무 말 없이 정인수 대표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던 정인수 대표가 멀뚱멀뚱 가만히 있는 인사과장에게 말했다.
“그래, 더 없으면 가 봐. 그리고 김현진 좀 올려보내.”
“아, 알겠습니다.”
인사과장이 고개를 짧게 숙여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갔다.
* * *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 업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애들 픽업은 내가 했고, 스케줄 없을 때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같았으며, 안재성의 스케줄을 맡는 것도 나였다.
작년 이맘때에는 뭘 하고 있었더라.
애들 앨범 준비하는 단계였던 것 같다.
“현진아!”
“네!”
“대표님이 부른다. 올라가 봐.”
“네? 대표님이요?”
남진수가 뜻밖의 말을 꺼내 조금 어리둥절했다.
나? 나는 왜?
“어. 너 나 모르게 뭐 일 벌인 거 있냐?”
“아뇨, 없는데요….”
나도 궁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
“왜 넌 틈만 나면 대표님 만나러 올라가는 거 같냐? 대표님 1년에 한두 번 뵙기도 힘든데.”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 위치에서 나만큼 대표와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신기했다.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얼른 올라가 봐.”
“네, 알겠습니다.”
남진수와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와 대표실로 향했다.
무슨 일로 부른 걸까.
사무실에서 남진수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뭐라고 대표실에 이렇게 자주 들락날락하는 건지 모르겠다.
궁금증을 가진 채 어느덧 대표실 앞까지 도착했다.
“김현진입니다.”
“들어와.”
대표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이야기하자 안에서 정인수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인수 대표가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앉지.”
정인수 대표에게 인사를 하고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차 팀장이 전에 같이 생활했던 배우랑 매니지먼트를 차린다고 해.”
“아, 그렇습니까? 차 팀장님이….”
“그래서 배우들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말이야….”
“…….”
정인수 대표가 말을 하면서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혹시 생각 있나?”
“제가…요?”
정인수 대표의 영문 모를 소리에 내가 말을 더듬으며 말하자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었다.
“그래. 여기에 너밖에 더 있어?”
“어….”
앉자마자 본론을 꺼내는 정인수 대표의 이야기에 머릿속의 회로가 타들어 갔다.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정리해보자.
차태수 팀장이 회사를 나가게 됐고, 그 공백을 나보고 메꾸라는 이야기 같다.
뭘 믿고 내게 맡기려고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쁜 기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제가 회사 소속된 배우들을 맡게 된다면 전 스타즈에서는 손 떼고 아예 배우 전담으로 넘어가게 됩니까?”
“글쎄, 배우 관리와 가수 관리가 같이 될까?”
“지금도 솔직히 조금 버겁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스타즈와 안재성이 활동이 겹치니까 내 시간이 아예 사라졌었다.
이때 괜히 매니저의 분담이 로드, 팀장, 실장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럼 계속 스타즈에 남아서 애들 케어하면서 보낼 건가?”
“그게….”
“미래를 위해서라면 배우를 맡는 게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원래 지망도 배우 매니저였었지?”
“…….”
정인수 대표의 말에 고민이 커져만 갔다.
지금 이 기회를 잡는 게 맞다.
근데 잡게 된다면 애들에게서는 손을 떼야 한다.
떼는 게 맞는 걸까?
애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렇게 고민하던 내 모습을 보던 정인수 대표가 크게 웃었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 이미 정하긴 했거든. 지금 물어보는 건 형식상이고.”
나도 모르게 목울대로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심장이 쿵쿵 두근거렸다.
이미 정해졌으면서 물어보다니, 악질이야.
“먼저, 너와 내가 약속한 게 있었지? 일만 잘 처리하면 팀장 혹은 실장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이번 신년 인사이동 관련해서 승진하게 될 거야. 팀장으로.”
“감사합니다.”
정인수 대표가 내게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실적만 가져오면 팀장 혹은 실장을 달아주겠다고.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한 소리였구나.
“그리고 조금씩 인사이동이 있을 텐데, 다른 건 궁금한 게 없을 거고 네가 궁금한 건 너와 관련된 건 4팀이겠지?”
“…….”
내가 딱히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있자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진성이가 기획전략 본부로 옮겨지고 진수가 실장으로 올라가고 스타즈와 신인개발팀을 맡을 거야.”
“네.”
“그렇게 하면서 너에게는 스타즈와 배우를 맡기고 싶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인수 대표가 소파에 몸을 안기며 내 말을 기다렸다.
나의 대답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