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준비 그리고 결실 (2)
“We wish your merry Christmas~ we wish your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And a happy new year!”
박혜연이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애들도 같이 따라 불렀다.
크리스마스라고 흥이 오른 듯싶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방송국에서 크리스마스 보내네.”
이나라가 작년을 떠올리는 듯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으어, 으어… 우리는 빨간 날에 왜 일을 하고 있는가….”
“너희가 언제부터 빨간 날 챙겨서 쉬었다고 그러냐.”
그러나 어디서나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법.
흥겨운 분위기를 깨는 서지영에게 남진수가 한 소리 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그렇잖아요! 남들 다 쉬는데!”
“아직 프로 의식이 부족하구먼. 내년에는 빨간 날은커녕 쉴 날이 없을 수도 있는데.”
“크앙!”
남진수의 말에 서지영이 앙칼진 표정을 지으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유독 오늘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그루밍이라도 해줘야 하나.
이브인 어제부터 서지영이 점점 날카로워지더니 오늘 완전히 터져 버렸다.
물론 바깥에는 방송사 관계자들도 꽤 많았기에 지금처럼 대기실에 있을 때나 차 안에 있을 때 등 우리끼리만 있을 때 투덜댔다.
작년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한두 달 전망해도 내년이 안 왔으면 했는데.”
“나도 나도!”
“야! 떨어져!”
유미소의 중얼거림을 들은 유코가 유미소를 덥석 안았다.
요즘 애들을 볼 때마다 항상 흐뭇했다.
고작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애들의 유대감이 엄청 단단해진 것 같다.
하긴, 서바이벌 프로그램 때부터 해서 그룹 데뷔까지 파란만장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고난과 역경을 함께한 전우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애들을 보던 중 누군가가 등을 툭툭 건드리길래 돌아보니 신희진이 서 있었다.
“왜 이렇게 음흉하게 웃고 있어요?”
“엉? 내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활발한 애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힐링 되는 느낌이었으니까.
“네. 미소랑 유코 보면서 히죽히죽 웃으시던데.”
“그냥. 하는 행동이 귀엽잖아.”
내 말에 신희진의 표정이 묘해지더니 히죽 웃더니 평탄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그래요? 저는요?”
“어?”
신희진의 평탄한 어조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내용은 전혀 평탄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물론 장난이겠지만,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니 당황스러웠다.
“저는 안 귀여워요?”
“아니, 너도 귀엽지.”
“그럼 됐어요.”
내 대답을 들은 신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이 기분은.
당황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때에 정면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이나라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빠! 희진이 좀 데려갈게요!”
“어. 그, 그래.”
그러자 신희진이 이나라에게 불만 어린 표정을 지으며 반발했다.
“왜, 왜, 왜!”
“시끄러워, 이년아. 따라와.”
이나라가 반발하는 신희진을 거칠게 끌고 갔다.
음, 뭔가 묘했다.
가슴 한편에서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머리를 간질간질하는 느낌이 뭘까 고민하던 중에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남진수가 들어왔다.
“어비스 애들 왔다. 잠깐 인사하러 가자.”
“오빠들 왔어요?”
“어.”
이나라가 반갑다는 듯 안부를 묻자 남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더니 애들이 하나둘 출입문으로 향했다.
“와, 진짜 피곤하겠다.”
“난 부러운데. 그만큼 지금 인기 짱이잖아.”
서지영과 유미소가 가면서 수군거렸다.
스타즈 연장 발표가 있던 직후, 해외 투어를 돌던 어비스 애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스타즈 애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물론 예전에도 몇 번 인사를 나누긴 했었지만 형식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 식구가 되었으니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됐다.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거리감이 사라지자 두 그룹 모두 꽤 친해진 상태였다.
“뭐해?”
들려온 남진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대기실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내가 뭐 하고 있었지.
일단 나가자.
* * *
“네, 다음은 올 한 해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그룹입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MC석에서 기품 있어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소개했다.
그리고 여자 MC가 소개한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그룹이 누구냐면, 바로 우리 애들이었다.
무대에서는 화려한 조명과 함께 뒷공간이 열리며 애들이 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뿐사뿐하면서도 도도하게 각자 자기 위치를 잡는 모습이 너무 흐뭇했다.
다음 달에 있을 콘서트 준비하랴, 연말 무대 준비하랴, 애들이 너무 바빴다.
연말 무대라고 해도 기존에 있던 곡들을 하는 거였지만, 그래도 연말이니만큼 조금은 색다르게 넣었다.
게다가 더욱이 작년과 다르게 지상파 3사 모두 다 출연을 하니 더 빡빡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3사 모두 스타즈에게 무대에 오를 시간을 10분 정도 준다고 하니, 달라진 애들의 위치에 좋으면서도 걱정도 되었다.
- Love Up&Down Up Down!
- 사랑은 원래 롤러코스터.
- 이랬다저랬다 왔다 갔다 하지.
Love Up&down은 다시 들어도 확실히 좋은 곡이다.
간편하면서도 눈에 쉽게 들어오는 안무와 귀에 박히는 멜로디와 가사.
오랜만에 들어도 여전히 흥겨웠다.
이 노래가 애들에게 도약의 발판이 되는 노래였다면, 내게 있어 가장 애정이 가는 노래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다음에 부를 노래인 Fairy였다.
아무래도 내 영향이 많이 간 노래였으니까.
- 소리~~ 질러!!
와아아!!
어느덧 무대는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다.
유미소가 돌출형 무대로 나오면서 말하자 관객들이 열렬하게 호응했다.
확실히 무대에서만큼은 유미소를 따라올 만한 애가 없다.
그나마 유코 정도랄까.
그래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둘이 1, 2위를 나란히 먹은 게 아닐까.
둘은 아이돌 하려고 타고난 게 분명했다.
무대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고작 1년이지만 내겐 고작 1년이 아니었다.
온갖 스캔들부터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까지.
그리고 프로젝트 그룹 중 최초로 연장에 성공하기까지.
애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드라마로 써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 나만의 Fairy.
- 너만의 작은 요정.
잠시 사색에 잠겼다가 무대를 보니 Love Up&Down이 끝나고 애들의 최신 타이틀곡인 Fairy 무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기획해서 내놨는지는 몰라도 애들 이미지에 잘 맞춰서 했어. 암, 그렇고말고.
나도 모르게 자아도취에 휩싸였다.
“너 뭐하냐?”
“네?”
남진수가 나를 툭툭 치더니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다.
얼빠진 내 표정을 보던 남진수가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빙빙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
“너 미친놈 같어. 어딜 보고 히죽히죽 웃는 거야? 무대 보고 웃는 거 같지는 않은데.”
“그냥 애들 보니까 올 한 해 제가 정말 알차게 보냈구나 싶어서요. 우여곡절도 많았고요.”
내 말에 남진수가 피식 웃었다.
“그래. 너 진짜 알차게 보내긴 했지.”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 내년에는 더 알차게 보내봐라.”
“하하하, 될 수 있으면요.”
내년이라.
내년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은 쿵쿵 뛴다.
두려움 반 설렘 반이랄까.
뭐, 그래도 내 행동에 변화는 크게 없을 것 같다.
지금처럼만 하자.
“네, 올해를 뜨겁게 달군 스타즈의 무대였습니다. 다음 그룹도 올해를 뜨겁게 달궜던 그룹인데요.”
무대가 마무리되고 남자 MC의 말이 들려왔다.
벌써 스타즈의 무대가 다 끝난 듯했다.
꺄아아아! 오빠!
“함성 봐라. 장난 아니네.”
“그러게요. 애들 나올 때에 비하면 두 배는 더 큰 거 같아요.”
역시 함성은 여성 팬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지금 만나 보시죠!”
웅장한 음악과 함께 리프트를 타고 어비스 애들이 등장했다.
우리 회사도 이러면 남돌, 여돌 원투 펀치가 되는 기획사가 됐구나.
그것도 대세 그룹 둘을 갖춘.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뭐해? 애들 챙기러 가야지.”
내가 또 멍하게 있자 남진수가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아, 네!”
애들 보러 가볼까.
* * *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 들어가.”
“네! 들어가세요!”
스타즈와 어비스 애들이 인사를 나눴다.
이내 인사가 끝났는지 우리 애들이 남진수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어, 몇 시예요?”
“새벽 두 시.”
“내 크리스마스가….”
서지영이 오자마자 시간을 묻더니 침울해하며 투덜댔다.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이렇게 의미 부여하는지 원.
“크리스마스라고 해봤자 숙소에 콕 박혀서 안 나왔을 거면서.”
“그래도 기분이 다르다고요! 기분이!”
내가 한 소리 하자 더 날뛰는 서지영을 볼 수 있었다.
피곤할 텐데, 체력 참 좋아.
“집 들어가서 푹 쉬어.”
“그래봤자 오후에 나와야 하잖아요!”
옆에 있던 남진수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자 서지영이 앙칼지게 반격했다.
“오전에 안 나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너무해!”
서지영이 꽥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이나라에게 달려가 안겼다.
지영이 쟤는 언제 철들려나.
근데 서지영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냥 그 나이대 하는 행동인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서지영, 박혜연, 린은 학생이다.
며칠 뒤 성인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미성년자다.
그냥 덤덤히 애들과 부대끼며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가끔 애들의 나이를 잊는 경향이 있었다.
“어? 눈 온다.”
“그러네.”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올해 첫눈이죠?”
“그럴걸?”
서지영이 갑자기 가다 말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서지영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멈춰서 똑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
나도 한번 빌어볼까.
내년에도 다 해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소원 이뤄졌으면 좋겠다.”
“뭐라고 빌었어?”
유미소가 나직이 말하자 신희진이 물었다.
“내년에는 정산금 열 배로 받게 해달라고.”
“돈이 다야?”
그럼. 돈이 최고지.
유미소가 속물적인 것 같지만 돈은 거짓말하지 않지, 암.
그리고 유미소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지. 돈이 최고야! 언니는?”
“나? 난 비밀.”
“뭐야, 난 알려줬는데.”
“원래 이런 거 남이 알면 안 이뤄진대.”
“진짜?”
“몰라. 그렇대.”
신희진의 말에 유미소가 망연자실해했다.
근데 그걸 떠나서 소원은 이뤄지기 힘들 거 같은데.
올해 애들이 번 것에 열 배면 절대 무리다.
신희진이 유미소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있던 내게 와서 슬며시 물었다.
“오빠는 빌었어요?”
“나? 말하면 안 된다며.”
“궁금하잖아요.”
“비밀이야.”
“아, 재미없어.”
이내 내 말을 들은 신희진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다른 애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내게 했던 질문과 똑같이 애들에게 묻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는 행동이 귀엽지 않은가.
요새 애들의 행동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얘들아, 빨리 가자. 감기 걸린다.”
“네~!”
남진수의 재촉에 애들이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차량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애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1년 사이에 많은 모든 게 달라졌다. 애들도, 나도.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이제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내년, 아니 올해는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