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매니저의 할 일 (2)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너처럼 웨이브를 그렇게 잘 탈 수 있으면 매니저 하고 있겠냐?”
남진수가 투덜대는 이나라에게 말하고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아니 이걸 왜 못하지? 진짜 쉬운 건데.”
그러자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상체를 꿀렁대는 이나라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누워 있던 남진수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냥 남자 댄서 구하면 안 돼?”
“몇 번을 말해요!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가. 그리고 우리는 하나라고요. 몰라요?”
“허허….”
이나라의 타박에 남진수가 해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거 재밌네.
남의 불행에 재밌어하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오빠도 쉬지 말고 연습하세요!”
“나? 난 팀장님 진도 기다리고 있는 건데….”
바로 옆에서 편하게 앉아 쉬고 있는 게 못마땅했는지 이나라가 갑자기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그 시간에 또 연습하셔야죠. 팀장님은 하나지만 오빠는 두 곡 뛰셔야 하잖아요.”
“야. 내가 너희처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나나 팀장님은 지금 따라가는 것도 익히기 힘들어. 근데 두 개 동시에 입력하라는 건 뇌에 과부하가 온다고.”
“그게 왜 안 돼요? 이상하네.”
말하는 이나라의 표정이 정말 가관이었다.
마치 1+1=2인데 이걸 왜 모르지? 라는 표정이랄까.
“너희야 몇 년을 했으니까 멀티태스킹이 되는 거지. 우리를 너희랑 같은 선상에 놓으면 어떻게 하냐.”
“그냥 지금이라도 남자 댄서로 바꾸지?”
내 투덜거림에 남진수가 지원사격이 들어왔다.
그러자 이나라가 검지를 들더니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안 돼요.”
“이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남진수의 중얼거림에 이나라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재밌잖아요. 의미가 왜 없어요. 같이 첫 콘서트 무대 올리는 건데. 사실 스타일리스트 언니들이나 다른 분들하고도 같이 올라가고 싶었는데, 그분들도 그분들이지만 그래도 팀장님이랑 오빠가 저희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요.”
“스태프로 올라가도 되잖아?”
이나라의 진지함에도 남진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이 주제는 항상 애들과 연습실에서 연습하다 보면 도돌이표처럼 나오는 주제였다.
물론 이 주제의 끝은 항상 같았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끝은 결국은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였다.
“에이, 그거랑 무대랑 어떻게 같아요. 그리고 제가 슬쩍 팬 커뮤니티 돌아다녀 봤는데요, 현진 오빠는 특히 유명해서 오히려 재밌어 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 난 이젠 진짜 모르겠다. 콘서트 주인이 해달라고 하는데 해줘야지. 어쩌겠어.”
남진수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대자로 뻗었다.
일 체력과 춤 체력은 또 다른가 보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니.
“근데, 진짜 싫어요?”
신희진이 누워있는 남진수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물었다.
그러자 남진수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갑자기 자기 눈앞에 훅 들어온 격이니 당황할 만했다.
“어? 아니… 싫다기보단 내가 뭐라고 가수들이랑 합연하나 싶어서. 그리고 머리 좀 치워 줄래? 부담되니까.”
“이럴 때 해보는 거죠, 뭐. 경험이라 생각하시죠?”
신희진이 말하면서 머리를 치웠다.
“그래… 고맙다, 고마워.”
그사이에 한쪽에서 본인들의 안무를 연습하고 있던 유미소가 물을 마시면서 다가왔다.
“또. 또. 소모적인 논쟁하고 있었죠?”
“아냐. 쉬고 있는 건데?”
“다 들렸거든요?”
기세등등한 유미소에 남진수가 움찔했다.
확실히 자기 영역에 한해서는 사람이 무척 강해지는 것 같다.
연습실만 오면 애들의 기에 눌려 어떻게 말을 못 하겠다.
“너희 우리가 평소에 쥐 잡듯이 잡았다고 이제 반대다 이거야?”
“그럴지도요~?”
내 말에 유미소가 키득 웃으며 말했다.
어우, 얄미워.
짝! 짝!
“자, 이제 휴식 끝! 다시 시작해요. 좀 있다 업무 보러 가야 한다면서요.”
이나라가 박수를 두 번 치며 말했다.
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것 같은데 다시 연습이라니.
연습실에서의 이나라는 무척 강하구나.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저어졌다.
우리의 모습에 유미소가 풉하고 웃자 이나라가 그런 유미소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만 봐주고 다시 합류할 테니까 너희도 빨리 연습해!”
“우린 지금 쉬는 건데…?”
유미소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러나 이나라의 태도는 완강했다.
“어허!”
참 평화로운 한 때다.
* * *
“어제는 좀 늦게 끝났나 봐요?”
“어? 어.”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와 하품을 했더니 신희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쩌다 보니 애들과 함께 연습실에서 무대 준비한 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Finder 촬영 스케줄이 있는 날은 안재성과 스케줄을 처리하고, 없는 날은 회사에 출근해서 오전에 잠깐 애들과 연습하고 업무를 봤다.
업무가 끝나면 애들 기다리면서 짬짬이 연습했다.
어찌 됐든 내 퇴근 시간은 애들 연습 끝나는 시간과 같았으니까.
예전에는 애들 기다리는 시간에 업무를 보거나 개인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연습으로 바뀌니 참 오묘했다.
매니저 팔자에 무대 공연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왜 혼자 갑자기 피식피식 웃어요?”
“지금 내 팔자 생각하니 웃겨서.”
“네?”
“그렇잖아. 매니저가 담당 가수랑 무대를 꾸미는 게. 다른 사람들도 신기해하더라.”
음악방송을 하면서 다른 기획사 매니저들이랑 안면도 트고 연락도 종종 주고받고 있는 편이라 그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말하니 전체적으로 황당해했다.
그러나 내가 방송 출연을 몇 번 한 게 기억났는지 나쁘지 않다며 열심히 해보라는 동료들의 말에 내 말문이 다시 막혔다.
이 모든 건 방송 탄 게 잘못이었어.
“왜 그러란 법이 없죠! 그건 고정관념입니다!”
“맞아요! 이제 우리는 신세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옆에 있던 서지영과 유미소가 혁명가 연설하는 것처럼 번쩍 들었다.
“개뿔….”
“Pump도 맞춰봐야 하는데 팀장님이 없으니까 아쉽네요.”
“뭐 그건 급한 게 아니니까. 어차피 끝부분 30초만 다 같이 나와서 추는 거잖아. 거기에 나랑 팀장님 끼는 거고.”
“그렇긴 하죠.”
사실 남진수와 내가 같이 무대 뛰는 Pump는 연습하는 게 별거 없었다.
언제 나갈지 타이밍이랑 무대 동선을 어떻게 할지가 빡빡했지 춤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남진수는 그것도 힘들어해서 문제였지만.
문제는 내가 애들이랑 맞출 maze였다.
Maze의 경우에는 애들의 상큼하고 톡 쏘는 이미지와는 많이 반대되는 성향의 노래인데, 일단 비트가 강렬했고 조금 뇌쇄적인 곡이었다.
이 곡은 ‘너아누’ 때 발표한 곡이었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조금 변형했다.
다름 아닌 중간 브레이크 타임 때 남자 댄서와 호흡을 맞추는 걸 추가한 것.
그리고 얼결에 내가 거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점이다.
그래봤자 내 임무는 별거 없었다.
브레이크 댄스 마지막에 메인 댄서인 이나라가 턴을 하면서 남자에게 안기며 종료되는데 이 담당을 내가 맡게 된 거였다.
다른 둘은 다른 방식의 포즈로 끝이 났다.
하나는 등을 맞대며 끝이 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홀로 마무리하는 포즈로 끝이 났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는데 이런 방식이 곡에 내포되어 있는 가사인 미로를 그린 거라고 말했다.
그 미로란 거 다른 게 아니라 연인의 세 단계인 만남, 이별, 헤어짐이라고 했었다.
“오빠. 쉴 만큼 쉰 거 같은데 일단 다시 한번 맞춰볼까요?”
이나라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어. 그러자.”
콘서트까지 한 달가량 남았지만 이렇게 빨리 애들과 호흡 맞추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애들이 콘서트 준비뿐만 아니라 연말 무대도 같이 준비해야 하므로 미리미리 해두는 거였다.
어찌 됐든 콘서트에 올린다면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
애들도 실수하면 안 되지만 객원으로 올라가는 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무대를 망쳤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넌 또 왜 그러고 있어?”
이나라를 따라 연습하러 가려던 찰나 옆에 있던 신희진이 신경 쓰여 말했다.
표정이 뭔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네?”
“아니 갑자기 표정이 안 좋길래.”
“아, 그랬어요? 오늘 연습이 좀 힘들었나….”
이내 신희진이 표정을 풀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야! 신희진! 엄한데 신경 쓰지 말고 연습이나 해!”
“언니!”
이나라의 외침에 신희진의 귀가 붉어지더니 빽 하고 소리 질렀다.
“오빠도 거기 붙잡혀 있지 말고 얼른 와요.”
“알았어.”
이나라가 나를 부르는 손짓에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가면서 슬쩍 신희진을 쳐다봤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애들과 노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뭔가 놓친 듯한 이 기분은.
기분 탓인가.
* * *
“아, 진짜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해!”
“뭘 어떡해. 그냥 가서 하면 될걸.”
서지영의 호들갑에 유미소가 대꾸했다.
애들 콘서트에 쓰일 VCR 촬영을 하러 가는 중이다.
“아…. 진짜 이거 흑역사 적립 백 프론데.”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안절부절못하는 서지영에게 신희진도 합세해 놀렸다.
아마도 애들은 이 상황이 재밌는 걸 거다.
서지영이 이런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든 장면이긴 했다.
“이게 잘 좀 한다고 되는 거면 내가 지금 가수가 아니라 배우를 하고 있지!”
“오구오구 그랬어요?”
“진짜! 아, 얄미워!”
이내 신희진이 자신을 애 취급하자 서지영이 분개했다.
보기 드문 장면이긴 한데 도대체 어느 수준이길래 저러는 걸까.
“쟤네 왜 저러는 거야?”
“오빠 지영이 연기하는 거 못 보셨죠?”
내 물음에 이나라가 대답했다.
“볼 기회가 없으니까 보진 못했지. 그래도 듣긴 했어. 참담한 수준이라고.”
“그래서 그래요. 큽.”
이나라가 말하면서도 웃겼는지 웃음을 삼켰다.
도대체 어떻길래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근데 의외로 혜연이가 연기 좀 하던데요?”
“그래?”
오늘 찍는 VCR은 별 생각 없었는데 애들의 반응을 보니 왠지 모르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너는?”
“저는 그냥저냥?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른 애들은 어떤데?”
“희진이가 독보적이고, 린이는 딕션을 빼고 보면 표정은 좋더라고요. 의외로 유코도 괜찮았고요.”
유코도 서지영처럼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평가가 괜찮은 모양이었다.
“유코는 의외네.”
“그죠? 저랑 미소랑 혜연이는 그냥저냥 평범했는데…. 지영이가…. 크흡.”
이나라가 다시 서지영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있다가 보시면 알겠지만… 희진이 내용이 좀 오글거리잖아요?”
“어, 그렇긴 하지.”
내 기억이 맞다면 신희진, 이나라, 유미소 성인인 셋이서 회사 생활을 이렇게 하세요! 하는 주제의 장면인데 신희진이 유미소에게 아양 떠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말하는 것 같다.
내용이 진중한 건 아니었고 그냥 시트콤이라고 보면 무방한 내용이었다.
“난 정말 희진 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나도.”
주제는 신희진이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로 스리슬쩍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 주제를 서지영이 주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오글거리는 걸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더라. 확실히 망가질 땐 확 망가져야 나은 것 같아. 어중간하면 더 티 나는 듯.”
“괜히 희진이가 영화 찍은 게 아니라니까. 다 이유가 있는 거였어.”
서지영의 말에 이나라가 공감 간다는 듯 동조했다.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내게 질문해왔다.
“그러고 보니 영화 개봉은 언제 해요?”
“내가 알기로는 다음 달 말일? 너희 콘서트 끝나고 다음 주일 거야.”
1월 28일인가 29일 개봉이었던 것 같다.
전국 동시 개봉은 아니고 서울에 백여 개 정도였던가.
근데 본격적인 자본 투자가 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정말 많이 걸리는 거다.
이신형 감독의 이름값이랑 정인수 대표가 말한 푸시가 합쳐진 결과겠지.
“우리 그럼 그때 다 같이 보러 가요!”
“오, 괜찮다!”
유미소가 의견을 내자 애들도 같이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애들의 반응에 슬쩍 신희진의 반응을 확인했는데,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나쁜 의견은 아니네.
“그럴 스케줄이 된다면? 그건 나중에 신경 쓰고 곧 찍을 촬영이나 걱정해.”
“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