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55화 (155/200)

제155화. 매니저의 할 일 (1)

[판성식, 성재원 다시 또 뭉치다.]

이게 안재성이 보라던 Finder 관련한 기사인가 보다.

[2년 만에 다시 영화계에 돌아온 판성식, 성재원 듀오의 ‘Finder’는 영화계에서 내년의 기대작으로 꼽고 있다. 사회적 풍자가 일품인 성재원 감독이 이번에는 스릴러 장르로 돌아와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또한, 성재원 감독의 영화에서 항상 색다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판성식이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 것인지도 향후 기대해볼 만한 대목이다. 또 화랑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한 홍승기와 신인배우 안재성의 활약 또한 기대된다.]

안재성의 이야기는 정말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도 이렇다 할 필모그래피도 없는 배우의 이름이 기사에 쓰여 있는 걸 보니 신기했다.

아마도 아무 이름값 없는 배우의 이름을 적을 수 있던 건 순전히 이신형 감독의 이름값 덕분이겠지.

이신형 감독이 이진철 영화에 조연출로 참가했을 때는 꽤 이슈가 됐었으니까.

“뭘 그렇게 보냐?”

내가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자 남진수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 Finder 관련한 기사 좀 보고 있었어요.”

“거긴 어때?”

“아직까진 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종종 성재원 감독이 히스테리 터질 때가 문제긴 한데….”

“왜?”

남진수가 호기심 짙은 눈으로 내게 물었다.

“좀 개차반이에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요즘 잘못 걸리면 훅 갈 텐데.”

“그나마 판 선배님 계시면 억제가 되는데 없으면 억제가 안 되더라고요.”

내 말을 들은 남진수가 혀를 찼다.

“진짜 연출 감각만 없었으면 진작에 사라졌을 감독일 텐데.”

“그렇긴 하죠.”

확실히 그의 필모그래피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사람이 다 떠났을 거다.

오직 능력 하나만 보고 스태프들이 붙어 있는 거였다.

어찌 됐든 영화는 잘 뽑아내는 감독이니까.

“곧 시작하려나 보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네.”

남진수가 스크린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을 보며 내게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뻔한 스타즈의 콘서트.

오늘 이 자리는 스타즈 콘서트에 관한 마지막 회의 자리다.

콘서트까지 약 50일가량이 남아 있는 시기였지만, 연말 무대와 겹쳐 있기에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이었다.

게다가 이번 연말 무대에는 스타즈가 상을 탈 가능성이 무척 컸고, 작년과 달리 연말 무대 초청을 지상파 3사와 K.net까지 모두 받았기에 더욱 빡빡한 일정이었다.

“먼저 콘서트 중간마다 브릿지로 쓸 영상 녹화 일정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녹화 일정은 12월 14, 15일. 12월 22일 23일 총 4일 일정입니다.”

콘서트 중간중간 애들이 의상을 바꿔 입는 구간에 틀어줄 VCR 영상 이야기였다.

4일 안에 다 찍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꽤 내용이 많은 거 같던데.

“다음으로 무대 연출에 관해서는 한지연 안무가님이 말씀하실 겁니다.”

기획팀 직원이 들어가고 한지연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무대 연출을 맡은 한지연이라고 합니다. 다른 건 기존과 같고 마지막 무대가 조금 바뀔 것 같습니다.”

한지연이 잠깐 말을 끊고 좌중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는 해체를 염두에 두고 연출을 구성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원래는 사라져가는 연출이었다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원래 마지막 엔딩 후 연출은 실로 잔인한 연출이었다.

방식은 간단했다.

무대가 끝난 후 멤버 한 명씩 인사하고는 한 명씩 리프트를 타고 사라지는 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 같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다음에, 꾸벅 인사하면서 리프트 타고 마무리.

진한 여운이 남을 듯한 연출이었는데, 팬들로서는 아마 가슴 찢어지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스타즈가 연장되지 않았다면 이대로 해체하면서 끝나고 마는 마지막이라는 느낌을 듬뿍 준 연출이었으니까.

그래서 저 구도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었다.

보러온 관객들에게 여운은 남겠지만 그 남은 여운만큼 대못을 박는 거라고.

“아, 그리고… 애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온 건데요.”

한지연이 어떤 말을 하는지 집중하면서 듣고 있는데 한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왜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걸까.

식은땀도 갑자기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고.

“자기들이랑 같이 고생하는 매니저들이랑 뭔가 하나 해보고 싶다고 해서요. 특별 무대 같은?”

“예를 들면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거죠?”

한지연의 말에 민서희 팀장이 흥미로운 눈으로 질문했다.

“몇몇 무대는 백댄서를 두잖아요? 그 무대를 매니저분들이랑 꾸며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몸치인데 빠지면 안 됩니까?”

한지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진수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재빠르게 자기 몸을 빼려고 하고 있었다.

살 거면 같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무하네, 진짜.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애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특히 김현진 매니저는 방송도 타면서 화제도 잡았고,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꽤 좋잖아요?”

“어…. 그게….”

“현진이가 매니저 팀 대표로 하는 거로 하죠. 괜찮네요.”

내가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하던 찰나에 남진수가 끼어들며 나를 팔았다.

그 모습에 순간 목구멍까지 쌍욕이 올라왔지만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해 참았다.

“김현진 매니저는 어떠세요?”

“남 팀장님도 같이 올라가면 하겠습니다.”

“야.”

남진수가 급히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푹푹 찔렀다.

나는 그런 남진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혼자서는 안 죽습니다.”

“일단 두 분 다 오케이 한 거로 알고 있을게요. 빠른 시일 내에 연습실 가셔서 나라랑 이야기해 보세요.”

한지연의 담담한 말에 머리를 굴려봤다.

애들과 같이 무대를 잠깐이나마 꾸린다면 어찌 됐든 3일 내내 다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일 거다.

그럼 콘서트가 3일 올 매진했고, 시야 제한 석까지 풀었으니까, 대충 하루에 8,500명 입장이었나.

그 앞에서 잠깐이지만 무대를 하라고?

아무리 봐도 미친 거 같은데.

“저는 아직 한다는 말 안 했는데요?”

남진수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당황한 눈빛으로 발을 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진수의 행동에 한지연의 눈빛이 바뀌었다.

“남 팀장님? 그래서 안 할 거예요?”

“해야죠. 현진아, 언제 갈래?”

하하하.

한지연이 눈빛으로 찌릿하며 바라보자 남진수가 바로 깨갱 하며 꼬리를 말았다.

잡혀 살고 있구나.

둘이 연애를 하는 걸 회사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보니까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웃겼다.

회의가 다 끝나가고 있기도 했지만, 딱딱한 분위기의 회의가 좀 더 부드럽게 풀린 느낌이다.

어찌 됐든 분위기가 나와 남진수는 엮여서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은 분위기다.

그럼 이렇게 일하기에는 억울하지 않은가.

“그럼 저랑 남 팀장님한테도 콘서트 수익이 떨어집니까?”

“무슨 소리세요? 회사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죠. 월급 받으시잖아요?”

민서희 팀장이 내 말에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이럴 땐 편 좀 들어주지. 너무하네.

* * *

“팀장님은 생각보다 너무 몸치네요.”

이나라가 팔짱을 끼며 남진수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애들 연습실로 찾아와 점검을 받는 중이었다.

“팀장님. 몸치인 척하지 마시고 제대로 하세요. 정말 이러시면 섭섭합니다.”

“야. 나는 이거 진짜 제대로 한 거라니까?”

아니,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겠다고?

어림도 없지.

“팀장님….”

“아니, 나 진짜 몸치라고. 나중에 지연이한테 물어봐. 예전에 지연이랑 댄스 스포츠 하다가 욕먹었다니까? 걔도 아는데 이걸 왜 추진한 건지 모르겠네.”

남진수가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이나라가 눈을 찡그리더니 남진수에게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한 쌤 말로는 간단한 건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던데….”

“야, 이게 간단해? 너네는 간단하지만, 일반인은 힘들다고.”

“음….”

남진수의 반발에 이나라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럼 팀장님 안무는 조금 바꾸고 오빠는 그대로 가면 될 거 같아요.”

“그냥 빼주면 안 되겠니?”

“이벤트 무대잖아요. 어떻게 빠질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거죠? 너무해.”

남진수의 행동에 이나라가 삐진 표정을 지으며 시동을 걸었다.

“너무해!”

그러자 관망하고 있던 애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나왔다.

애들의 전매특허 떼창, 떼쓰기.

“아니….”

“너무해!”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귀 아파.”

남진수가 애들의 수법에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항복했다.

나와 남진수는 저 수법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애들에게 굴복했다.

일단 애들의 떼쓰기에 당하지 못한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애들이 떼쓰는 게 이유가 없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우리가 져야 하는 문제에 관해서 쐐기를 박을 때 애들이 자주 써먹었다.

“근데 오빠.”

“응?”

“합 맞춰볼 시간은 돼요?”

이나라의 질문에 핸드폰을 켜봤다.

큰 무리는 없지 싶다.

“될 거 같아. 12월은 중간중간 비는 타임도 좀 있고, 12월은 11월만큼 재성이 스케줄이 빡빡한 편은 아니라서.”

“그래요?”

“어. 11월은 너희 스케줄도 너무 빡빡했고 재성이 스케줄도 좀 빡빡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다행이네요.”

이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다행인 건가.

“근데 오빠 춤 좀 추시네요?”

“말 안 했나? 나 이래봬도 학교 다닐 때 몸 좀 썼었는데.”

몸을 조금씩 흔들며 이나라에게 말했다.

춤을 전문적으로 춘 건 아니었지만 교양과목으로 댄스 스포츠도 들었었다.

그러자 신희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 저 그거 들었어요. 지예 언니한테.”

“뭘?”

“학교 행사 때문에 춤추러 무대 올라간 적 있었다고요.”

“별걸 다 이야기했네.”

갑자기 나온 과거사에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언제 적이지. 한 8년인가 9년 됐나.

“지금 살짝 스치듯 든 생각인데요.”

이나라가 내게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응? 뭔데?”

“린이랑 희진이랑 저랑 조금 끈적한 노래에 맞춰서 추는 게 있거든요?”

“어.”

나도 안다.

애들 콘서트 진행 큐시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뭘까. 회의에서도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 내 몸에 감도는 것 같은 이 기분은.

“그거 남자 댄서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근데?”

이나라에게 반문하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겠지?

“그것도 해주세요.”

“내가? 말이 되니?”

눈을 빛내며 말하는 이나라에게 나는 퉁명스러운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나 매니저야. 연예인 아니라고.

“괜찮은 거 같은데? 난 찬성.”

“나도. 찬성.”

신희진과 린도 재밌어 보였는지 이나라와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전문 댄서도 아니고 너네랑 어떻게 호흡을 맞춰. 나 업무도 봐야 해.”

말을 하면서 내 시선은 남진수를 향했다.

이렇다면 내가 기댈 곳은 남진수뿐이다.

“12월은 업무 볼 거 없는데? 너 재성이 스케줄 말고는 스케줄 없잖아.”

“팀장님….”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니야? 게다가 이런 건 이벤트성이라 논란도 안 나올 거고. 애들 무대 기획 중에 섹시 컨셉은 조금 걱정했잖아. 혹시라도 이야기 나올까 봐. 그래서 남자 댄서 쓰냐 마냐 이야기 나오다가 연출 방식 때문에 결국 쓰자고 나온 거였고.”

애들이 단독으로 무대를 꾸미는 거면 상관이 없는데, 남자 댄서와 호흡을 맞추는 경우에는 서로의 신체접촉에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그렇긴 한데요. 제가 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요?”

“글쎄. 너라면 큰 탈 없이 지나가지 않을까 싶은데. 너랑 호흡 맞추면 팬들도 그냥 매니저 부럽다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남진수의 말에 애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이런 심정이지 싶다.

“어차피 무대 올라가서 맞추는 시간은 30초밖에 안 되는걸요? 잘 알려드릴게.”

웃으며 말하는 이나라가 내겐 너무나도 사악해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