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3)
[전격 연장 결정!]
연예 뉴스 란을 열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기사가 보였다.
회사에서 미리 준비해뒀나 보다.
그게 아니면 엠바고가 걸려 있었다던가.
어제 회의에서 스타즈의 연장 여부가 밝혀졌었다.
듣기로는 대표들끼리 합의해서 얻어 냈다는데, 그 과정이 참 궁금했다.
사실 지금도 얼떨떨했다.
스타즈의 연장이 조금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실수는 안 할 거라 생각했지만, 사람의 욕심에는 또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거라 생각했다.
어찌 됐든 다행이었다.
애들도 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렇게 확정이 났으니 마음이 편히 콘서트 준비를 하지 않을까.
그것과 별개로 내 고민 또한 깊어졌다.
본래라면 나는 애들의 스타즈 활동 기간 1년을 채우고 배우 매니저로 넘어가려고 했었다.
근데 상황이 이렇게 변해버려서 내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물론 애들의 연장 소식은 정말 기뻤다.
근데 이렇게 되면 내가 계속 애들한테 붙어 있으려나.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배워왔고,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분야가 더 좋지 싶은데.
[…서바이벌 그룹 중 이례적으로 연장에 성공한 그룹이 되었다. 기존에 나왔던 그룹들은 전부 다 기간만 채우고 해체했기 때문이다. 계약 조건에 관한 정보는 입수하지 못하였으나, 기존의 계약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업계 관련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를 했다. 지금껏 행보가 다른 그룹과 조금 달랐던 스타즈.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가 된다.]
생각을 멈추고 기사를 마저 다 읽었다.
나쁘지 않은 기사다.
기사에 적힌 내용처럼 스타즈는 처음부터 일반적인 아이돌들보다 기획 자체가 조금 틀렸다.
이미지 소모를 줄여 차기 그룹에 쓰려고 했던 기획이었는데, 스타즈라는 그룹 자체가 너무 잘 되어서 전략을 중간중간 조금씩 틀었었다.
그래도 태생적 한계가 있어 노출이 지지부진했었는데, 그게 지금은 사라졌다.
지금 스타즈의 스케줄이 빡빡해진 이유기도 했다.
└소리벗고 팬티 질러 ㅅㅅㅅㅅ
└애들 그럼 얼마나 더 보는 거임? 5년? 7년?
└그거 에스일보 기사에서 2년이라고 적어 논 거 봤음.
└2년은 또 너무 짧은데…
└이게 연장을 하는 게 어렵지 연장을 했으면 아마도 그때 되면 또 연장할 거임 서바이벌 그룹들 죄다 연장 못 했는데 얘네는 성공했네
└얘네 별것도 없는데 왜 연장해? 진짜 웃긴다
└그건 니 머릿속 망상이고요 애들 올해 히트곡만 몇 갠데 연장 안 했으면 욕만 존나 처먹었을 듯
└ㅇㄱㄹㅇ ㅂㅂㅂㄱ
벌써 기사 댓글 난에는 팬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계약 기간에 대한 말도 나온 거 같은데, 댓글 말처럼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지금 연장 재계약을 했으면, 다시 2년이 지났을 때도 재계약을 해서 연장할 가능성이 컸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커져 있을 테니까.
이렇듯 점점 좋은 일만 가득한데, 불안한 측면도 있었다.
다름 아닌 내가 알던 미래 정보가 거의 다 없어지고 있다는 것.
지금도 예전에 겪었던 11월과 현재의 11월은 아주 달랐다.
연예계 상황도, 방영되는 프로그램도, 드라마도.
나비효과란 거 이런 건가 싶었다.
그렇다고 미래의 정보가 없다고 기존에 내가 취한 스탠스를 바뀐 않을 거다.
그게 맞는 것 같다.
“형, 거기 앉아서 뭐 해요?”
안재성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언제 왔지.
오는지 전혀 몰랐다.
“어? 그냥 연예란 기사 확인하고 있었지.”
“스타즈 연장 때문이죠?”
“어. 나도 어제 회의로 알게 된 건데 오늘 기사가 뜰 줄 상상도 못 했네.”
안재성이 스타즈 언급을 할 줄 몰랐다.
이런 거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럼 앞으로 저는 어떻게 돼요?”
“뭘 어떻게 돼? 매니저?”
“네.”
안재성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직 이야기 나온 게 없어. 근데 내가 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도 엄청 바쁘시잖아요. 되겠어요?”
“모르겠다. 버텨야지, 뭐.”
요즘같이 몸이 두 개나 세 개였으면 좋겠다 싶은 적이 없을 정도다.
안재성도 그걸 알기에 내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좋아요.”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신경 써.”
“형 걱정한 게 아니라 제가 걱정돼서 한 말이죠. 저는 형이 계속 쭉 해줬으면 싶거든요.”
“너 좀 징그럽다? 낯간지러운 말도 잘하네.”
“하하, 그런가요?”
이렇게 능글맞은 안재성은 오랜만이다.
한동안 김철수처럼 행동했기에, 이런 모습은 잘 보지 못했었다.
“아무튼, 전 곧 촬영이니 대본 좀 보러 가볼게요.”
“그래.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네.”
안재성이 내게서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몸이 피곤하긴 피곤한 모양이다.
스타즈 애들과 안재성 둘 다 활동에 들어가니 내 스케줄이 너무 살벌했다.
스타즈도, 안재성도 내 손이 많이 갔다고 생각하는 터라 시간 되면 둘의 스케줄을 무조건 한다고 했는데 이러다 병원에 실려 갈 판이다.
그래도 둘 다 보는 맛도 있었고,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 *
“시신. 어디다 숨겼어?”
“글쎄요. 제가 한 게 아니니 저는 잘 모르죠.”
어깨를 으쓱하는 배현우가 얄미웠는지 판성식의 눈초리가 더욱 사나워졌다.
“새끼야! 네가 모르면 누가 몰라?”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없는 사실을 지어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 새끼가….”
쿵!
배현우의 태도에 참다못한 판성식이 배현우의 멱살을 쥐었다.
“모든 게 네 뜻대로 되는 거 같고, 세상을 기만하고 조롱하는 것 같지?”
“…….”
“그것도 잠깐이야. 내가 꼭 밝혀낸다. 개 같은 새끼.”
이내 판성식이 배현우의 멱살을 놓고는 배현우를 노려봤다.
그들의 사이로 김철수가 다가왔다.
“반장님.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김철수의 말에 판성식이 그러라며 손짓을 했다.
“일단 앉으시죠.”
김철수의 말에 배현우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내 그 앞으로 가 앉는 김철수.
“현우 씨.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합시다.”
“지금도 충분히 이성적인데요?”
김철수의 말에 배현우가 약 올리듯 말했다.
김철수는 그런 배현우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증거가 불충분할 뿐이지 모든 정황은 배현우 씨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시신과 물적 증거만 못 찾았을 뿐이죠. 시신. 어디다 숨겼습니까?”
“글쎄, 계속 이야기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거 같은데요.”
“자신만만한 걸 보니 아주 확실한 곳에 숨기셨나 보군요.”
김철수의 말에 배현우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 하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한 번만 더 글쎄라고 말하면 나도 더는 좋게 말하지 않는다.”
“…….”
김철수의 반응에 배현우가 묵묵히 웃었다.
“어디다 숨겼어?”
“글쎄….”
퍽!
김철수의 주먹이 배현우의 얼굴에 닿으며 배현우가 쓰러졌다.
배현우가 맞은 부위를 만지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손이 좀 매섭네요. 앞에 반장님은 이 정도까진 안 했는데 말입니다. 이거, 이래도 되는 겁니까? 강압 수사한다고 언론이 알면 참 좋아하겠는데요.”
철컥.
“김철수! 판성식! 나와!”
넥타이를 맨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과장님!”
과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다시 한번 화내며 말했다.
“나와 이 새끼들아!”
판성식과 김철수가 문 앞에서 길길이 날뛰는 과장을 바라봤다.
그러다 판성식이 배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현우. 우린 다시 만날 거야. 그때는 좀 더 다를 거고.”
“나오라니까!”
과장의 말에 판성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과장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찰나에 김철수와 배현우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눈빛을 교환한 뒤에 김철수도 이내 판성식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둘이 문에 도착하자 몸을 돌려 배현우를 한번 쳐다봤다.
배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이 굳는 판성식, 그리고 표정을 유지하는 김철수.
이내 둘 다 문밖으로 사라진다.
“컷!”
* * *
된다. 이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껏 촬영을 해오면서 느꼈지만, 오늘 세 사람의 취조 장면에서 확신을 느꼈다.
마지막 반전까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셋의 관계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했다.
후반부에 밝혀질 반전으로 인해 관객들은 얼마나 섬뜩하고 뒤통수 맞는 느낌이 들까.
“성 감독! 다시 한번 봐도 되나?”
“그럽시다. 김 감독! 찍은 거 틀어줘!”
판성식이 성재원 감독에게 다가가 말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개운한 표정이 아닌 걸 보니 뭔가 불만인 듯했다.
안재성과 같이 판성식과 몇 번 같이 촬영을 하면서 판성식의 스타일도 대충 알게 됐다.
판성식은 자기가 제대로 찍었다고 생각된 장면은 성재원 감독의 컷소리가 끝나고 나면 바로 웃지만, 별로라고 생각한 장면은 지금 같은 표정을 짓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표정을 짓는 순간 마 다 모니터링을 했고.
“다 같이 한번 보자고.”
판성식이 홍승기와 안재성을 불렀다.
이윽고 작은 모니터 앞에 성재원 감독과 배우 세 명이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이 보였다.
덩치가 제법 되는 남자 네 명이 보고 있는 장면을 보니 왠지 모르게 조금 웃겼다.
이내 모니터 화면에서 방금 찍은 장면이 재생되었다.
나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슬쩍 모니터링하는 인원들 뒤로 갔다.
좀 전의 장면도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판성식은 뭐가 불만이었던 걸까.
“흠. 너무 격했던 거 같은데. 성 감독 생각은 어때?”
“화면으로 봤을 때는 크게 문제없었는데? 왜? 좀 아쉬워?”
판성식이 성재원 감독을 잠깐 보더니 이내 홍승기를 바라봤다.
“승기, 너는?”
“저도 괜찮았습니다.”
홍승기의 말에 판성식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한 번 더 다시 갑시다. 승기야 괜찮지?”
“물론이죠.”
홍승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성재원 감독이 끼어들었다.
“내 의견은 어디다 버려두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여? 더 기깔나게 뽑아줄 테니 한 번 다시 가자고.”
“아니기만 해봐라. 아주 그걸로 박박 긁을 테니까. 희택아, 다시 간다.”
판성식과 성재원 감독 둘의 호흡이 생각보다 좋았다.
현장 분위기는 둘의 주도하에 확확 바뀌었는데, 어떨 때는 지금처럼 판성식이 주도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성재원 감독이 주도하기도 했다.
간혹 성재원 감독이 예민해져서 촬영장을 개판으로 만들 때가 있긴 했지만 판성식과 같이 촬영하는 날은 웬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저번에 판성식 없이 촬영했을 때는 정말 끔찍했다.
육두문자와 고성방가는 기본 옵션이었고 손이 얼굴 위로까지 올라갔다가 멈췄다.
멈춘 것도 조연출이 몸을 던져 막아 말려서 그렇지, 말리지 않았다면 폭행기사가 나갔을지도.
그때 성재원 감독이 왜 현장의 폭군이라고 불리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다시 가겠습니다!”
조연출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다시 아까와 같이 촬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부산스러운 와중에 내 곁으로 차태수 팀장이 걸어왔다.
“오늘 분위기는 괜찮네.”
“판 선배님 계실 때는 뭐….”
“그래?”
내 말을 들은 차태수 팀장이 갑자기 주위를 살피며 주위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어우, 저번에 엑스트라 한 명 따귀 때리는 거 보고 식겁했잖아.”
“그랬어요?”
“어.”
그때는 조연출이 말리지 못했나 보다.
그에게 걸렸던 사람을 향해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
“액션!”
성재원 감독의 액션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성재원 감독의 히스테리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게 내 사람에게 향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성재원 감독이 안재성을 좋게 보고 있기에 그럴 일은 아마 없지 싶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