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2)
“와, 오빠 오늘 얼굴 왜 이렇게 늙어 보여요?”
“괜히 트집 잡지 마라. 뭐가 늙어 보여. 평소랑 그대론데. 할 거 없으면 저리 가.”
서지영이 다가와 하는 말에 내가 파리 쫓아내듯 손을 휘적이며 대답했다.
요즘 애들이 나를 볼 때마다 지금처럼 툭툭 건드렸다.
내가 바빠 자주 못 봐서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쩍 내게 장난 거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진짜 걱정돼서 해준 말인데. 거울 한번 보고 와봐요. 진짜 어디 아파 보이니까.”
서지영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미소도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두침침하게 그을린 다크서클. 수척해진 볼살. 푸석해 보이는 머리카락! 이거 완전….”
“병자 아냐? 딱 보니 병원 가야 할 모습 같은데.”
유미소가 내 모습을 묘사하자 신희진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애들의 말에 내가 그렇게 상태가 안 좋아 보이나 싶어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 않나.
“그게 나야?”
“네.”
장난이 아니고 진짠가 싶어 애들에게 묻자, 내 곁에 있던 애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서지영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잠깐만요. 사진하나 찍어드릴게요. 한번 봐봐요.”
“어? 알았어.”
무슨 몰골이길래 아침부터 이러는지 모르겠다.
서지영이 곧장 핸드폰을 꺼내 내게 향했다.
그러자 내 옆으로 박혜연이 성큼 다가왔다.
“그럼 나도 같이 찍을래!”
박혜연의 말을 들은 애들이 흥미가 돋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재밌어 보인다. 우리 다 같이 찍을래?”
“그러자.”
애들이 하나둘 내 곁으로 오자 서지영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다 그러면 나만 빠지잖아.”
“너도 이리와. 오빠가 팔이 제일 기니까 오빠가 찍어줘요.”
“알았어.”
서지영이 이나라의 말에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서지영이 내게 핸드폰을 줬고 나는 그 핸드폰을 건네받아 촬영 모드로 설정한 뒤에 팔을 길게 쭉 뻗었다.
핸드폰 화면 속에는 상큼해 보이는 일곱 명의 여자와 수척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핸드폰에 보였다.
이렇게 보니 상태가 안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니, 이건 상태가 안 좋다기보다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차이일 거다. 아무래도 애들이 너무 예쁘니까 일반인인 나랑 비교가 되어 더 크게 느껴지는 거라 생각한다.
내가 어디 가서 못생겼다. 소리 들은 적도 없고 제법 잘생겼다고 듣는 편이었는데도 애들과 이렇게 붙어서 보니, 확실히 연예인과 나란히 서면 쭈구리가 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난 평소보다 조금 피곤하다고 느꼈을 뿐, 애들이 유달리 유난 피우는 거라 느꼈다.
찰칵!
사진을 찍고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봤다.
막상 사진을 찍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정지된 이미지로 보니까 참담했다.
이거 너무 비교되네. 내 얼굴이 이렇게 컸나.
아닌데. 나도 작은 편인데….
“와, 왜 이렇게 안쓰러워 보이지….”
“병원 가서 링거라도 맞고 와요. 팀장님한테 부탁해드릴까요?”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어 아무 말 안 하고 있자, 신희진이 안쓰러운 눈으로 말했다.
신희진의 말에 이나라도 걱정되는지 이어 말하며 나를 바라봤다.
“아니… 그냥 피곤한 거야.”
“그러다 쓰러져요.”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아직은 괜찮아.”
재차 걱정해주는 이나라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랑 셀카 찍을 사람!”
“나!”
나랑 사진 찍은 게 도화선이 된 건지 몇몇 애들이 셀카 삼매경에 빠졌다.
그 와중에 신희진이 깡충깡충 뛰며 내게 다가왔다.
“재성 오빠는 어때요?”
“잘하고 있지.”
“궁금하다.”
“너랑 할 때랑 크게 별다를 거 없어. 단지 촬영 시간이 좀 긴 거 외엔.”
내가 이렇게 수척해진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안재성의 촬영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촬영을 왜 이렇게 타이트하게 잡는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해 뜨기 전이나 해 뜨는 걸 보고 퇴근하니 생활루틴이 너무 많이 꼬여버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애들이 걱정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아 보이진 않았을 텐데.
어쩌겠나. 그게 내 몫인데.
그래도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와중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스타즈도, 안재성도 쭉쭉 뻗어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이대로 쭉쭉 더 컸으면 좋겠다.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내 왁자지껄하게 셀카 놀이를 하던 애들에게 그 기분 그대로 웃으며 말했다.
“이동하자.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네!”
내 말에 애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대답했다.
인터뷰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른 움직여볼까.
* * *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안녕하세요! 일곱 명의 요정님들! 화제 연예 섹션의 리포터 황정미입니다!”
예전에도 한번 본 적 있는 리포터였다.
인터뷰를 노련하게 잘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조금 늦긴 했지만, 이번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고충이 있으셨나요?”
“아뇨. 너무 재밌게 녹음했습니다. 노래들도 전부 마음에 들었고요.”
리포터의 질문에 이나라가 대표로 답했다.
황정미는 이나라의 대답을 듣고는 다음 질문을 꺼냈다.
“그렇군요.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어떤 곡이신가요?”
“멤버 모두 각자 다 다르긴 한데… 제일 선호도가 높은 곡은 ‘Fun한 안녕’이었어요.”
이나라의 대답에 황정미가 손뼉을 치며 눈을 빛냈다.
그때도 느꼈지만 정말 리포터의 표본 같은 사람이다.
리액션, 게스트에 대한 태도, 사전 준비까지.
“아, 그 노래는 서지영 씨가 작곡 및 작사에 참여했었죠? 그 노래는 저도 알고 있는 노래예요! 가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정미가 고개를 돌려 서지영을 바라보며 말하자 서지영이 웃으며 화답해줬다.
그리고 다시 이나라를 보며 재차 질문했다.
“Love Up&Down이 아직도 음원 차트에 있는데요, 어떤 기분이신가요?”
“정말 감사드리죠. 아직 사랑해주시니까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기세를 몰아 곧 연말에 있을 시상식은 기대하시는 편인가요?”
이어진 황정미의 질문에 이나라가 잠깐 멈칫하고는 입을 뗐다.
사전 질문지에 저런 게 있었나?
“연말에 상을 받는 건 모든 가수가 꿈꾸고 기대하는 일 아닐까요?”
살짝 위험한 질문이었지만 이나라가 잘 대처했다.
저 질문에 잘못 대답하면 악플러들한테 공격받기 딱 좋았다.
이나라의 대답을 들은 황정미가 웃었다.
“알겠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에요! 최근에 게릴라 공연을 하셨는데, 무척 성공적이었습니다. 화제도 되었구요. 그때 당시 어떤 기분이셨나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곤 해요. 그리고 그날에 취한 애들도 많구요. 저도 그중 하나구요. 얼른 콘서트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콘서트가 팬클럽 선 예매로 열었는데 3일 일정이 올 매진되었죠?”
1월에 열릴 콘서트의 티켓팅은 빠르게 마감됐다.
그것도 팬클럽에만 공개한 선 예매로만.
이건 애들의 팬덤이 얼마나 크고 충성도가 높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네. 숙소에서 티켓팅 시도해 봤는데 실패했어요.”
“본인들의 콘서트 티켓팅이라니! 아이러니하네요.”
애들뿐만 아니라 나도 티켓팅을 시도해 봤는데 빠르게 광탈했다.
자리 선택에 들어가니 나를 반기는 건 회색 좌석뿐이었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커뮤니티나 팬클럽 카페에 가보면 업자가 매크로 돌렸다고 화내는 글들도 많던데, 정말 그런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거기에 더해 왜 이렇게 좌석을 작게 잡았냐고 성토하는 글도 많았다.
회사에서는 나름 게릴라 공연 성적에 더불어 콘서트 좌석을 칠천 석이나 풀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몰려 더 풀지 말지 고민 중인 거로 알고 있다.
콘서트 동원력이 약하다는 걸그룹이 이 정도인데, 팬덤이 훨씬 큰 남자 아이돌은 도대체 어떤 수준일까.
남자 아이돌 팬들은 도대체 어떻게 표를 구하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저희도 이렇게 사랑을 주실 줄 몰랐어요. 별님들! 너무 사랑해요!”
이나라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적절하게 팬서비스를 날렸다.
누구라도 저런 관심과 사랑은 행복할 만할 거다.
“네, 여기까지 화제 연예 섹션이었습니다! 안녕~”
“안녕~!”
황정미가 클로징 멘트를 하며 손을 흔들자 애들도 똑같이 따라 했다.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애들과 황정미가 서로 인사했다.
이번 인터뷰도 잘 나가겠지.
저번에는 꽤 잘 나왔던 거 같은 기억인데.
“아, 이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 하나 여쭤봐도 돼요?”
“네? 답해드릴 수 있는 거면 답해드릴게요.”
황정미의 말에 이나라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업계에서는 스타즈가 올해가 마지막이 아니고 연장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던데, 사실인가요? 알려주시면 안 돼요? 오프 더 레코드 할게요.”
“네?”
황정미 리포터의 말에 애들이 놀란 눈으로 황정미를 쳐다봤다.
애들만 놀란 게 아니라 나와 남진수도 같이 놀랐다.
우리도 정확히 모르는 정보를 이 리포터는 어디서 듣고 말하는 걸까.
* * *
“오늘 모임이 마지막 합의가 되겠네요.”
“허허허. 그렇게 되나요? 종종 만나서 이야기도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인수 대표의 말에 정인수 대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상이 능글맞게 웃으며 답했다.
“합의된 거로 다시 계약을 하게 된다면 2년은 이야기 나올 일이 없으니까요.”
“정인수 대표가 그럼 이시연 대표의 전권을 위임 받은 겁니까?”
이번에는 콧수염이 인상적인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정인수 대표에게 물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무섭게 집어삼키셨네요.”
남자의 말에 분위기가 무겁게 깔렸다.
그런 분위기를 정인수 대표가 깨버렸다.
“딱히 기업 인수 · 합병에는 취미가 없습니다. 서로 이익이 맞아 진행된 것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흠, 알겠습니다.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살짝 불편한 기색을 비치자 이야기를 꺼낸 남자가 바로 꼬리를 말았다.
“아, 정인수 대표님. 성공적인 해외 진출 축하드립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김성진 대표님.”
“나중에 스케줄 괜찮으실 때 홀이나 돌면서 경험담이나 들려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하하.”
“시간이 맞으면 언제 한번 날 잡고 필드 가시죠.”
“하하, 그럼요.”
김성진 대표의 말에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주요 골자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정인수 대표의 말에 모두가 정인수 대표를 바라봤다.
정인수 대표가 좌중을 한번 쓱 훑더니 손에 들린 서류를 바라봤다.
“첫 번째. 계약은 2년 갱신으로 한다. 두 번째. 이전 계약과 그대로 가되 각 소속사는 개인 활동을 요구할 수 있으나, 거절과 승낙은 헥사곤이 결정한다. 세 번째. 헥사곤이 운영하는 스타즈에 대해 각 소속사는 간섭은 하지 않는다.”
정인수 대표가 말을 멈추고 모여 있는 인원들을 바라봤다.
“자세한 세부 내용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요하게 다룰 내용은 이 정도라고 생각해서요. 의견 있으십니까?”
“…….”
장내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각 대표자 날인을 끝으로 오늘 모임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품에서 도장을 꺼낸 후 옆에 놓여 있던 계약서에 도장을 쿵 하고 찍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