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모여지는 퍼즐 (4)
“이건 좀 재밌네. 어떻게 아셨수?”
임진석 본부장이 신기하다는 듯 정인수 대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에 말했잖아. 들은 게 있다고. 그래서 더 캐보니까 꽤 난잡하더라고.”
“그럼 엔터 사업에 뛰어들고 사업 벌이는 건 다 얻어걸린 거구먼….”
임진석 본부장이 기가 찬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 정말 얻어걸린 케이스지. 우리는 앉아서 코 풀 기회기도 하고.”
“이거 참… 이 바닥이 운도 필요하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 손 안 대고 코 푼 거면서 그렇게 뻣뻣하게 나오는 걸 보면 말이우.”
“뭐, 이시연 대표가 보는 눈이 좋은 걸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거든. 그냥 우연히 데리고 있던 캐스팅 매니저 눈이 좋은 거겠지. 그것도 운일 수도 있고.”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임진석 본부장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냥 얻어걸린 거 같은데… 거기 소속 연예인이라 해봤자, 지금 서바이벌로 데뷔한 희진이 한 명 아니우?”
“내가 알기론 걔 한 명이 끝이야. 연습생 풀은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겠다만. 그 풀이라고 해봤자 아마 별 볼 일 없을 거야. 애초에 사업 벌이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을 테니.”
정인수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임진석 본부장이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다가 정인수 대표를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그럼 다른 대표들은 설득하셨수?”
“이시연 대표 빼고는 다 넘어왔어. 머리가 있으면 우리가 계속 돌리는 게 이득이란 거 설 테니까.”
“그래서 이시연 대표는 어떻게 설득하려고요?”
“이번에 들어온 것도 그거 처리하려고 들어온 거야. 애들 일정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왜 들어왔겠냐.”
“그럼 스타즈를 우리가 먹으면 회사 내부에서 밀던 걸그룹 런칭은 자동으로 밀어야겠구만요.”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까지 준비해온 것도 있어서 인력 충당을 하고 로테이션을 돌려볼지는 나중에 회의해야겠지.”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임진석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수다. 그럼 어비스 애들은 이번 연말 무대는 생략하는 거요? 방송국에서는 벌써 입질 오고 있는데.”
“참여는 해야지. 사업적으로나 영향력으로나 거긴 나가는 게 맞으니까. 엔터 브랜드 파워는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소속된 연예인이 얼마나 잘나가냐야. 이번에 맞은 건 차근차근 갚아주자고.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호구인 줄 알고 계속 그러거든. 이번에는 당한 거 치고는 결과는 좋은 거 같다만.”
“걔가 난 놈이긴 난 놈인 것 같긴 해요.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하기엔 결과물들이 꽤 좋아서.”
“그래서 좀 더 체격을 키워줄까 생각도 하고 있는 중이야.”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임진석 본부장이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지금도 과한 거 같은데 너무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 아니우?”
“오히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가 될지도 모르지.”
“흠.”
“왜? 불만이냐?”
임진석 본부장의 떨떠름한 태도에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좀 그렇지 않나 싶어서.”
“뭐가 좀 그래? 시대가 바뀌었다, 진석아. 그런 마인드면 도태될 뿐이야.”
“그게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데 살아온 세월이 있잖수.”
임진석 본부장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무튼, 스타즈 관련해서는 우리가 먹는 거로 알고 노선을 정하겠수다. 참, 그럼 매니저는 계속 걔 붙여둘 거요?”
“고민 중이야. 가수 파트로 돌릴지 배우 파트로 돌릴지. 본인은 배우를 희망하는 거 같던데.”
정인수 대표의 말을 들은 임진석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알아서 하쇼. 돈만 잘 벌어오게 해주면 회사 차원에서는 그만이니까.”
“그래. 잘 물어오고 잘 포장해서 팔기만 하면 그만이지.”
임진석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쇼.”
“그래, 고생해라. 애들 일정 끝나면 술이나 한잔 하자고.”
“그럽시다. 형님이랑 술 먹어본 지도 꽤 오래되긴 했네.”
임진석 본부장이 정인수 대표의 말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임진석 본부장이 나간 곳을 지긋이 바라보던 정인수 대표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먹잇감이면 먹는 게 도리지.”
* * *
“인제 그만 엔터 사업은 접는 게 어떻습니까? 이시연 대표?”
정인수 대표의 뜬금없는 멘트에 이시연 대표가 황당한 얼굴을 취했다.
“이렇게 단독으로 일대일 미팅을 잡으시고 말씀하시는 의중이 궁금하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사업을 취미로 하시니 하는 말입니다.”
“전 취미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정인수 대표가 이시연 대표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시연 대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일념은 알겠지만, 엔터 사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시죠?”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잠깐 머뭇거리던 이시연 대표가 다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담연 부회장님이랑 조금 친합니다. 요신 그룹 이 회장님은 예전에 한번 뵌 적이 있군요. 알고 보니 조금 닮으신 거 같습니다. 아버님보다는 어머님을 닮으셨나 보군요.”
“제가 누군가와 많이 닮았나 보네요.”
이시연 대표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이것저것 벌이신 사업 중에는 지금 엔터 쪽에서 반응이 오셨지요? 근데 그건 결국 신희진이라는 친구 덕분에 얻어걸린 겁니다. 이건 순전히 운입니다. 애초에 서바이벌 프로그램 데뷔한 애들은 다른 그룹과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글쎄요?”
이시연 대표가 계속 해보라는 듯 정인수 대표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요신 그룹의 스폰이 있으면 더 날아오를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거로 알고 있는데요. 이건 둘째 치고 메이킹을 할 사람은 있으십니까?”
“구하면 되죠. 그게 어렵나요?”
이시연 대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게 쉬웠다면 엔터 사업은 레드오션이 아니라 블루오션이었겠죠. 생각보다 힘들 겁니다.”
“흠….”
“무엇보다도 사업에 관심 있어서 하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괜한 고집 부리지 마시지요. 지금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어필 가능할 겁니다.”
“…….”
정인수 대표의 말에 이시연 대표가 고민에 빠졌다.
“괜히 힘 빼지 마시고 적당히 저한테 회사 지분 넘기시고 회장님에게는 부회장님 통해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말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페이퍼 컴퍼니로 비자금 세탁 건 관련해서는 할 말이 있으신지요?”
“…그게 뭐죠?”
정인수 대표의 말에 이시연 대표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정인수 대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빨리 안 털어내시면 물리실 겁니다. 냄새 맡기 시작했거든요. 이건 호의로 알려드리는 겁니다.”
“흐음.”
“그거에 엮여서 괜히 아까운 재원만 날릴까 봐 이렇게 단독으로 미팅 잡자고 한 겁니다. 사업 관련해서는 제가 잘 포장해 드리죠.”
“…….”
이시연 대표가 아무 말 않자 정인수 대표도 묵묵히 기다렸다.
이내 이시연 대표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생각 좀 해보고 연락드리죠.”
“알겠습니다. 당장 확답 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정인수 대표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배고프네요.”
이시연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정인수 대표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시죠.”
* * *
“11월 스케줄이 살벌한데요.”
“들어온 CF, 행사, 방송 다 받았으니까.”
짜인 애들의 일정을 보고 내가 경악하자 남진수가 덤덤히 말했다.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무슨 회광반조 같네요….”
씁쓸했다.
애들을 각 소속사에 보내주기 전에 뽕을 뽑으려고 하는 듯한 이 스케줄을 보니 스타즈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회사 전략과는 많이 다른 행보였으니까.
노출을 안 하던 이전과 달리 스케줄이 빵빵했다. 쉬는 12월과 1월은 TV에 얼굴을 비추기에 최적화된 스케줄이었다.
아니면 12월과 1월에 스케줄이 없어서 그런 건가.
12월은 연말 준비와 더불어 콘서트 준비 때문에 일정이 비워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회광반조는 아닐걸?”
“네?”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와중에 남진수가 한마디 했다.
“이제 놔줄 애들을 우리가 이렇게 굴릴 필요가 없지. 이 스케줄은 기획사에서 돌리는 일반적인 아이돌 스케줄이거든.”
“그럼…?”
“위에서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야.”
와우.
애들의 연장 여부는 정말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일이 잘 풀린 것 같았다.
그래, 이만큼 큰 그룹을 놔주는 것도 바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차라리 그룹을 유지하는 편이 더 좋다는 계산이 설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맥이 탁하고 풀렸다.
“아….”
“표정이 왜 그러냐?”
남진수가 의아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맥이 풀린 내 표정이 이상했나 보다.
“그냥 묘해서요. 애들 더 볼 거 같다는 생각에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좀 싱숭생숭하네요.”
“기쁘긴 뭐가 기뻐, 임마. 우리야 더 개고생 하는 거고. 인원도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네. 지금 구성은 1년이라 생각하고 인력 구성한 걸 텐데.”
내 말에 남진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지금이랑 딱히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지금 구성으로도 충분히 잘 꾸리지 않았나.
“달라질 게 있나요?”
“지금보다 좀 더 세분될 거야. 회사에서도 신경 더 쓸 거고. 애들 성장도 꽤 크게 됐으니까 어비스처럼 전담을 따로 꾸릴지도 모르겠네.”
전담이라.
어비스한테 붙어 있는 인력은 상당했다.
지금 우리처럼 여기저기 발품 팔아 얻어오는 식이 아니었다.
보다 전문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뭐 지금은 나도 추측뿐이니까 공식적으로 이야기 나오기 전까지는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러네. 아직은 남진수의 추측이었지.
공식적으로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 나온 사실은 애들의 11월 스케줄이 살인적으로 변했다는 것뿐.
“팀장님 일단 애들한테 스케줄 좀 알리러 갔다 올게요.”
“그냥 단톡방에 올려.”
남진수가 뭐 하러 일을 두 번 하냐는 듯 말했다.
“걔네 공지 방은 잘 안 봐서요. 그리고 그렇게 전달하는 건 또 정 없잖아요.”
“퍽이나. 맘대로 해라.”
내 말에 남진수가 웃었다.
“네. 그럼 갔다 올게요.”
남진수에게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와 애들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애들과 헤어질 날이 다가와서 조금 서먹해지고 조심스러워진 상태였는데, 지금은 한결 가벼웠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물론 남진수의 말이 확정적인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여서 그런 것 같다.
이 좋은 기분 그대로 가지고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연습실의 풍경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야! 끈적거려! 저리 가라고!”
“끈적끈적~”
“체력도 좋다니까.”
질색하는 박혜연과 그런 박혜연에게 부비부비하고 있는 서지영의 모습.
이를 웃으며 보고 있는 이나라.
한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는 린과 유코.
핸드폰으로 셀카 놀이 중인 유미소와 신희진까지.
계속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벅차올랐다.
“어, 언제 왔어요?”
나를 발견한 이나라가 내게 물었다.
“방금.”
“또 무슨 일 있어요? 보통은 여기 잘 안 오시잖아요.”
이나라가 조금씩 내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종종 왔는데. 다른 게 아니라 스케줄 알려주려고 왔어. 변동된 게 좀 있어서.”
내 말에 다른 애들이 하나둘 내게로 몰려왔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