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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49화 (149/200)

제149화. 모여지는 퍼즐 (2)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어야 하냐?”

“항상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요.”

“짜식이.”

차태수 팀장이 내 말에 헛웃음을 짓더니 안색이 점차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긴 한 듯했다.

“후유.”

차태수 팀장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자 내가 냉큼 말했다.

“무슨 일이신데요. 제 도움이 필요하신 거예요? 일 얘기 하시려는 게 아니었어요?”

“음… 그게.”

내 재촉에 차태수 팀장이 여기저기 주위를 살피더니 단둘이 있는 걸 확인한 다음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예진 씨 때문이거든?”

“선배님이요?”

지금 이예진이 문제 될 일이 있나?

“응. 다음 작품을 정해야 하는데 계속 못 정하고 있어서.”

“안 하신대요?”

“아니, 본인도 하고는 싶은데 전 작품이 너무 잘 터졌잖아. 그래서 고민인가 봐.”

“그냥 들어온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거 하시면 될 일 아닌가요?”

“그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나 봐. 이 작품이 맞나 아닌가 고민이 많은 거 같더라고.”

“음….”

내가 본 이예진은 여장부 같은 이미지였는데 의외였다.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던 마녀 출연을 워낙 쿨하게 결정했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계속 설득을 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너한테 온 거야.”

“제가 뭘 해드릴 수 있다고요.”

차태수 팀장에게 말한 그대로였다.

배우가 작품을 못 고르겠다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전에 마녀 작품 선택한 게 너랑도 연관이 있었잖아? 예진 씨도 너 좋게 보는 거 같고. 얼핏 들어보니까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는 거 같던데.”

“그게….”

이예진이 나한테만 티 낸 게 아니라 차태수 팀장에게도 티를 냈나 보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어떻게 보면 차태수 팀장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내가 곤란한 눈치를 보이자 차태수 팀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이며 내게 말했다.

“내 눈치 볼 필요 없어. 내가 예진 씨랑 쭉 같이 해온 것도 아니고. 그냥 회사에서 배우 맡을 짬 되는 매니저가 없어서 내가 배우 쪽을 맡은 거뿐이니까. 회사 내에 배우 맡아본 매니저가 나밖에 없었거든.”

차태수 팀장의 말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어색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무튼, 한번 예진 씨 집에 가서 한번 이야기 좀 해볼래? 올해 안에 작품 골라서 들어가야 하는데 계속 딜레이 걸리니까 이게 좀 문제네. 부탁한다.”

“제가 어떻게 하게끔 만들 수는 없지만, 이야기는 한번 해볼게요. 큰 기대는 마세요.”

“그래 알았다. 예진 씨 스케줄은 지금 따로 잡힌 게 없으니까 연락 한번 하고 가봐. 집은 알지?”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차태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한 건 했다며?”

“네?”

“이번에 프로그램도 그렇고 게릴라 이야기 나온 것도 네 선이라며?”

“아… 그냥 어쩌다 보니까요.”

게릴라는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의견을 낸 건데 잘 먹혔다.

프로그램은 될 거라 믿고는 있었지만 다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에 흥행했다고 지금도 흥행하리란 보장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게릴라는 정말 즉흥적으로 꺼낸 아이디어였다.

“가만 보면 이것저것 다 한다니까?”

“하하….”

내가 어색하게 웃자 차태수 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다. 결과도 좋아서 더 그렇고.”

“감사합니다.”

“그럼, 예진 씨 문제는 너한테 맡긴다. 고생해.”

“네?”

홀가분한 얼굴로 내게 말하고 사라지는 차태수 팀장의 모습을 보니 황당했다.

좀 전까지는 그냥 말만 해보라더니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야.

* * *

“음….”

속전속결이라고 했던가.

차태수 팀장에게 부탁받은 일을 이진성 실장에게 말하자 미룰 거 있냐면서 다음 주부터는 바쁘다며 얼른 연락하라고 했다.

그렇게 이예진에게 연락하니 집에 있다며 나보고 오라고 한 게 불과 두 시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예진의 집 앞에 와있었다.

이렇게 무작정 집에 가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한데, 본인이 오라고 했으니 상관없으려나.

삑.

- 뭐 해요? 들어와요.

“아, 네.”

인터폰에서 들린 목소리에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온 건 어떻게 안 거지.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니 정면에 CCTV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보안상 설치해둔 것 같았다.

남자든 여자든 이런 큰 단독 주택에 혼자 있으니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인 것 같다.

현관문까지 오자 현관문이 열리고 간편한 옷차림의 이예진이 나와 맞이해줬다.

“오랜만이네요.”

“네,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들어와요.”

“네.”

이예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여배우의 집은 어떨까.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이예진의 필모그래피 포스터였다.

“오, 저 어릴 때 이 작품 재밌게 봤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무 늙어 보이잖아요.”

내가 포스터 중간에 있는 작품 ‘소나기’를 가리켜 말하자 이예진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까지는 없고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평상시의 이예진 같기도 하고, 예민한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갈피를 못 잡겠다.

“잠깐 거실에 앉아 있어요. 커피나 차 마실래요?”

이예진을 따라가는 도중 이예진이 내게 말했다.

“전 아무거나 좋습니다.”

“난 아무거나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더라. 하나만 정해서 말해 봐요.”

“그럼 커피요.”

인상을 찌푸린 이예진에게 얼른 말했다.

내 대답을 들은 이예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엌인 듯한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거기 앉아서 조금 기다려요.”

“네.”

거실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실 옆쪽으로 러닝머신을 비롯한 운동기구가 몇 개 있었고, 정면에는 흔히들 집에서 보는 TV가 아닌 넓은 스크린의 모습과 함께 좌우로 여덟 개의 스피커가 눈에 띄었다.

영화관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느낌이 날 것 같기는 하다.

나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집에 이렇게 해놔야겠다.

집 좋다며 감탄하고 있는 와중에 눈앞에 있는 테이블에 수북이 쌓여 있는 시나리오와 드라마 기획서가 보였다.

이 중에 하나 골라잡으면 될 텐데 뭐가 어려운 걸까.

슬쩍슬쩍 확인해보니 내가 아는 시나리오나 드라마는 안 보였다.

“뭘 그렇게 봐요?”

“그냥 어떤 작품 들어오셨나 한번 보고 있었습니다. 실례였나요?”

“실례일 것까지는 없죠. 자요.”

“감사합니다.”

이예진이 다가와 내게 커피를 주며 말했다.

이예진이 타준 커피라니.

나도 참 많이 출세했구나 싶다.

“그래요. 제게 할 말이 뭔가요?”

“딱히 할 말이 있다기보다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차 팀장님 부탁받고 왔습니다.”

“부탁요?”

이예진이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내게 말했다.

“네, 작품을 계속 못 고르고 계신다고 하셔서요.”

내 말에 이예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잔을 내려놓으면서 웃으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이라 좋네요. 전 잘 모르겠어요. 어떤 작품을 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서거든요.”

“누군들 확신하고 작품을 고르나요. 자기 마음에 들고 이거다 싶으면 하는 거죠.”

“전성기…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런데, 지금만큼의 흥행 이후에 작품을 고르는 건 또 처음이어서요. 괜히 부담되네요.”

차태수 팀장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였지만 이건 좀 의외였다.

내가 생각한 이예진은 흥행 성적에 힘입어 오히려 빠르게 작품을 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 작품을 안 하는 것도 그냥 단순히 쉬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님 경력과 연기실력이면 그런 부담은 안 느끼실 줄 알았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쉽사리 결정이 안 되네요. 또 꼬리표처럼 따라올 것 같아서요.”

이예진이 자조적인 웃음을 내보이며 내게 말했다.

“음….”

이건 확실히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인 것 같다.

여태껏 흥행작 하나 없다가 갑자기 생긴 부담감일까.

“끌리는 작품은 없으세요?”

“없지는 않은데… 이걸 선택하는 게 맞을까 하는 확신이 없네요. 지금 방영하고 있는 ‘달콤살벌한 로맨스’도 예전에 끌리긴 했는데 성적은 저조한 걸 보니 더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내 안목과 감이 많이 떨어진 건 아닌가 싶어서.”

“그 작품은… 제가 바빠서 잘 보지 못해서 뭐라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선배님이 하셨다면 달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말이라도 참 고맙네요.”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어떤 배우가 작품을 맡느냐에 따라 흥행이 갈리기도 한다.

그걸 떠나서 연기자가 이렇게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주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은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선배님. 그럼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요?”

“이제 가을동화가 개봉하지 않습니까?”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정보를 바탕으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이거뿐이다.

“그렇죠. 일주일 조금 남지 않았죠.”

“가을동화는 선배님이 끌려서 선택하신 거죠?”

“네. 맞아요. 이신형 감독님이 하자고 한 것도 있긴 하지만요.”

이예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가을동화가 흥행할 거라 생각하세요?”

“이신형 감독님 작품이기도 하고 내용도 저는 만족스러웠고… 중간은 가겠죠? 한 200만은 찍지 않을까요?”

“저는 300만 위를 봅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네요.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300만이면 로맨스 영화치고는 꽤 하이스코어인데. 최근에 300만 찍은 로맨스 영화가 없을 텐데….”

다들 쉽게 5백만, 천만 영화라고 말하지만, 그 스코어가 쉬운 게 아니었다. 특히 로맨스가 주류가 되는 영화의 성적은 흥행 스코어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로맨스 영화에 들어가는 제작비가 그만큼 적기에 손익분기점은 다른 영화들보다 허들이 낮은 편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 작품이 좋았다는 겁니다. 선배님 안목이나 감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요. 마녀도 등 떠민 거지만 결국 선택은 선배님이 하셨잖습니까?”

“후….”

이예진이 답답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좋아요. 현진 씨 말대로 300만이 넘으면 끌렸던 작품 중에 하나 골라서 바로 들어가죠. 하지만 못 넘으면….”

“못 넘으면요?”

이예진의 말에 내가 대답하자 이예진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한 책임은 지셔야겠죠?”

책임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긴장되지 않았는데 저 단어가 나오자마자 온몸이 긴장되었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정말 마법의 단어인 것 같다.

그만큼 무거운 말이라 그런가.

“무슨 책임을 지면 될까요?”

“내 전담 매니저가 될 것.”

“그게 책임이 되나요?”

이예진의 말에 얼떨떨했다.

책임이라기에 흥행에 실패하면 퇴사하라든가, 다음 작품을 제대로 물어오라든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될 것 같기도요.”

“굳이 저 말고 베테랑 매니저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아뇨. 저는 저랑 말이 통하는 사람이랑 일하는 게 더 좋아서요. 그리고 연출 공부를 한 매니저는 귀하잖아요?”

내 말에 이예진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본 웃음 중 가장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책임. 지도록 하겠습니다. 단, 제가 말한 스코어에 도달하면 없는 겁니다.”

“그래요.”

어째서 전담 매니저가 되는 게 책임이 되는 근거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를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있었다.

가을동화도 꽤 히트했었으니까.

지금 이예진에게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본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거다. 그럼 본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면 된다.

자신이 선택해서 찍었던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만큼 연기자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 만한 게 더 있을까.

가을동화의 흥행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헤매는 연기자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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