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모여지는 퍼즐 (1)
“좋은 아침입니다!”
“굿 모닝.”
회사에 도착하니 밝은 얼굴의 남진수가 나를 맞이해줬다. 이내 남진수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내게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아, 잠시만.”
“네.”
“네, 한 PD님. 잘 지내셨어요? 저야 뭐 늘 똑같죠. 하하하. 네, 네. 애들 섭외요? 아… 일정 확인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아유 당연히 방송국 사정 알죠. 네, 네. 연락드릴게요. 네. 들어가세요.”
남진수가 전화를 끊자마자 피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섭외 전화인가요?”
“어, 어제 Dream fantasy 막방 나가고 오늘 섭외 전화가 엄청 오네. 이제 간 보기 힘들다고 판단한 거 같다. 그리고 방송국도 어느 정도 받아먹은 값은 했다 생각하는 거 같은데.”
Dream fantasy가 엉덩이 무거운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할 정도는 된듯했다.
이렇게 반응이 빠르게 온 건 좀 놀라웠지만.
“참 아이러니하네요.”
“뭐가 아이러니해? 이 바닥 이런 일 비일비재한데. 어제까지는 적이었어도 오늘은 또 다른 게 이 바닥이야. 너도 익숙해져야지. 여기서 일하려면.”
“하하….”
남진수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알고는 있다.
단지 머리는 알고는 있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는달까.
아직 때가 덜 묻었나 보다.
“팀장님. 그러면 이제 애들 지상파 예능 들어가게 되나요?”
“아니, 왜? 우리는 배알도 없냐? 당연히 종편이랑 케이블 위주로 가야지. 그쪽도 있는 자리 뺏어서라도 우리한테 줄 텐데.”
“방금 말씀하신 거랑 좀 다른데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리 편이라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연말 되기 전에 프로그램 한두 개 정도 나가면 되지 싶은데? 애들 전체 다 나오는 거 두 프로 정도에 유코랑 미소 묶어서 두어 개 정도 하면 연말이겠네. 9월이었으면 또 몰라, 지금은 좀 그렇지.”
남진수가 말한 것처럼 올해가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다가 애들도 바빴다.
콘서트 준비도 해야 하고, 연말 무대 준비도 해야 하고, 생각보다 애들의 스케줄이 빡빡했다.
방송하고 싶어도 애들이 마냥 놀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 주에 CF 미팅 잡혔어. 광고주가 컨셉 확인 차 애들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해서 같이 갈 거니까 알아두고.”
“네.”
이처럼 CF 섭외 요청도 꽤 오는 듯했다. 광고주가 얼마나 달아올랐으면 미팅이 이번 주에 바로 잡힐까.
확실히 이 바닥은 인지도와 화제성이 깡패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애들이 이런 대접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떡거려지면서 흡족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번에도 성공적인 것 같다.
“현진아!”
“네?”
이진성 실장이 나를 불렀다. 아침 회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이진성 실장이 이내 손가락을 위로 향하며 내게 말했다.
“위에 가봐. 대표실.”
“대표실이요? 대표님 해외 일정 차 지금 출국 중이신 거 아니었어요?”
“어제 일 처리할 게 있다고 잠깐 돌아오셨어.”
“아, 그러시구나… 근데 저는 왜…?”
“난들 내가 대표님이냐? 내가 왜 부르는지까지 알게? 그냥 너 위로 올려 보내라고 하시길래 알았다고 했지. 이유는 가서 여쭤봐.”
“아, 네. 알겠습니다.”
이진성 실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침에는 엄청 예민하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정인수 대표가 이번엔 무슨 일로 나를 부른 걸까.
이제는 긴장보다 기대감이 품어졌다.
* * *
“오랜만이야.”
“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정인수 대표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랜만에 본 정인수 대표는 달라진 게 없었다.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다.
“두 달 만인가?”
“그쯤 된 거 같습니다.”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
갑자기 대화가 끊겨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정인수 대표가 아무 말 않고 지긋이 나를 보는 모습에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입을 뗐다.
“많이 바쁘시죠? 해외는 어떠세요?”
“바쁘기야 바쁘지. 아무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니까. 그렇지만 해외도 별거 없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해외 엔터도 한국이랑 크게 다른 게 없나 보다.
해외는 또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군요.”
내 말에 정인수 대표가 갑자기 크게 웃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달 사이에 많이 컸어.”
“제가요?”
많이 컸다니 뭐가 컸다는 이야긴가.
“그래.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내 앞에서 긴장하던 병아리였던 거 같은데… 귀여운 맛이 사라졌어. 지금은 병아리는 어디 가고 쌈닭이 하나 있는 거 같아.”
그런 의미라면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뭐?”
내 말에 정인수 대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정인수 대표의 얼굴을 읽기 힘들었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재밌어 하는 거 같기도 한 표정이라서 내가 너무 나댔나 싶기도 했다.
이내 정인수 대표가 소파에 몸을 기대면서 고개를 크게 젖히더니 대표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하하하!”
그 웃음에 나는 어색하게 미소만 지어 보였다.
“좋아. 그런 자신감이 아주 좋아. 재미도 있고 말이야.”
“저도 요즘 너무 즐겁습니다.”
“그래? 그럼 한 가지만 묻자.”
“네. 말씀하세요.”
내 대답을 들은 정인수 대표가 웃음기를 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스타즈를 어떻게 생각하나?”
“스타즈요?”
“그래. 네가 맡은 그 그룹.”
스타즈.
지금 대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게릴라 콘서트가 그렇게까지 화제가 됐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우습게도 인지도가 없는 아이돌이 게릴라 콘서트를 하면 이슈라도 될까? 절대 아니다.
하지만 스타즈는 이슈가 됐다. 그만큼 스타즈가 대중들에게 각인 되어있다는 소리다.
그것도 1년 차 그룹의 성과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좋은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생적인 한계를 제외하고 보면 걸그룹 중에서 이만한 캐쉬카우가 있겠습니까?”
“태생적 한계… 그래. 태생적 한계를 떼고 보면 어떻지?”
“못해도 걸그룹들의 하락기가 오기 전까지는 걸 그룹 시장판은 잡아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여돌 그룹들은 다 하락세니까요.”
“애들이 찢어져 후속 그룹이 나온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장담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선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고 내게 물었다.
“이번엔 다를 수 있지 않나?”
“거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전 이 말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었다.
자기들이 후속 그룹을 내서 이만큼 키운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대형기획사들도 줄줄이 실패하는 게 아이돌 판이다.
중소기획사들이 무슨 자신감으로 성공을 확신하나.
현재의 인기에 기대서 욕심 부리는 거지.
“그럼 우리가 스타즈를 계속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겠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게 헥사곤 입장에서도 중소기획사에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속해서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거니까요. 근데 다른 기획사들이 그렇게 해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들 장밋빛 미래를 생각해 자기들은 성공할 거라 믿으니까요.”
“그렇게 해준다면?”
정인수 대표가 흥미로운 얼굴로 재차 내게 물었다.
다른 기획사들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우리로서는 엎드려 절해야 하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야죠. 스타즈를 통해 헥사곤이 얼마나 이득을 취하고 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섣불리 신규 사업 손대는 것보다 지금 스타즈 몸집을 키우거나 현행 유지만 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남돌은 어비스, 여돌은 스타즈. 쌍두마차로 좋지 않습니까? 회사 입지와 파워도 충분히 올라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정인수 대표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았다.
뭔가 생각할 게 있는 듯했다.
이내 정인수 대표가 눈을 뜨더니 내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았어. 나가봐.”
“네, 고생하십쇼.”
이럴 거면 아까 나가라고 하지.
정인수 대표의 손짓에 몸을 일으키고 대표실을 나왔다.
뭔가 싱거웠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나를 부른 건가?
* * *
“오래간만입니다.”
“네, 오랜만에 모였네요.”
정인수 대표의 말에 한 여성이 말했다.
“1년 만인 것 같군요.”
“좀처럼 이렇게 다 모일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모일 필요도 없고요.”
“1년 좀 넘은 거 같은데요. 데뷔 가시권인 기획사끼리 미팅 잡은 게 작년 9월이었으니까요.”
다시 이어진 정인수 대표의 말에 중년 남성 둘이 웃으며 말했다.
둘의 이야기를 듣던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에 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니 바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
정인수 대표의 말에 방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스타즈 연장 여부에 관해 일차적으로 의논하려고 연 자리니 의견 있으신 분은 말해주시죠.”
“우리끼리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
정인수 대표의 말에 앞서 말을 꺼냈던 중년 남성 중 한 명이 정인수 대표에게 말했다. 그리고 정인수 대표와 눈을 마주치자 이어 말했다.
“네 명은 연장하는 데 찬성했고, 세 명은 반대입니다.”
“반대는 누구누구입니까?”
“메이브, Wide, 벨루시 세 곳입니다.”
“차례대로 서지영, 신희진, 유미소 맞습니까?”
“네, 맞아요.”
“이유가 뭡니까?”
정인수 대표가 중년 남성에게 묻자 중년 남성은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바라본 시선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안경 낀 30대 여성에게로 향했다.
정인수 대표도 그 시선을 따라 30대 여성을 바라봤다.
“그 이유는 반대 측인 제가 대표해서 말하도록 하죠.”
“이시연 대표… 알겠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굳이 나눠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지금보다 더 잘나갈 거라 생각하나 보군요.”
정인수 대표의 말에 이시연 대표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특히 희진이는 영화 쪽으로도 포텐이 높아 보여서요.”
“그걸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회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걸 위해서 위탁한 거 아니었나요? 저희도 그래서 일정 비율 포기하고 위탁한 거예요.”
이시연 대표의 날 선 대답에 정인수 대표가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반대 측 다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이신가 보군요.”
“네, 지영이나 미소는 예능감도 좋고 어딜 들어가도 중추 역할을 할 거라 보고 있는 편이에요.”
“다른 애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인수 대표의 말에 이시연 대표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다른 애들도 매력적이죠. 뭐, 이건 각자의 선택 아니겠어요?”
“후회. 안 하시겠습니까?”
정인수 대표의 말에 이시연 대표는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어머, 왜 후회를 하죠?”
이시연 대표의 태연한 말에 정인수 대표가 너털웃음을 흘린 뒤 무표정한 얼굴로 좌중을 바라봤다.
“저는 당연히 일곱 기획사 전부 연장에 찬성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이래선 대화가 더 되지 않을 것 같군요. 이번 자리는 여러분의 의견을 안 자리라 생각하고 이만 파하죠. 이 자리에서 당장 세 분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내 정인수 대표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평화롭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이 평화를 깨는 인물이 우리 팀으로 찾아왔다.
“똑똑똑. 실례합니다.”
“차 팀장님. 안녕하세요.”
“남 팀장님도 안녕하세요.”
차태수 팀장이었다.
차태수 팀장이 남진수에게 인사를 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런 모습을 본 남진수가 차태수 팀장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이번에도 현진이 찾으러 오신 거겠죠?”
“하하하, 맞습니다. 이번에도 현진이 좀 빌려 가겠습니다.”
“저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되묻는 내 말에 차태수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군말 말고 따라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