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심장 떨리는 첫 (비)공식 콘서트 (1)
“지금 보시는 이 장소가 오늘 여러분의 마지막 카페입니다.”
Dream fantasy 오프닝을 김민성 아나운서가 열었다.
김민성 아나운서의 말을 들은 스타즈의 표정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저건 다 애들의 연기였다.
예전에 내 생일 때도 저런 연기 실력에 당했었다. 애들이 정말 천연덕스러웠다.
근데 왜 드라마나 영화 연기를 시키면 신희진과 린 빼고는 다 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성인가.
“여기가 카페라고 하니 당황스러우시죠?”
“당연하죠.”
“여기는 아무리 봐도 야외무대 같은데요?”
김민성 아나운서의 말에 서지영과 유미소가 능청스럽게 반응했다.
수군거리는 애들 사이로 이나라가 진행을 위해 핵심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카페면 커피나 음료를 어디서 팔아요?”
“드링크 이동 차량 네 대가 투입될 예정이며, 똑같이 고정된 금액이 아닌 기부금 형태로 받게 될 겁니다.”
김민성 아나운서의 말에 애들이 ‘아, 그렇구나’ 하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이번에는 서지영이 김민성 아나운서에게 물었다.
“무대는 왜 있는 거예요?”
“바로 그겁니다! 그게 제일 중요해요!”
“네?”
호들갑 떠는 김민성 아나운서의 반응에 애들이 영문을 모르는 척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이 무대가 오늘의 핵심입니다.”
“핵심이요?”
“바로! 여러분이! 여기서! 게릴라! 공연을! 하는 겁니다!”
“네?”
김민성 아나운서의 말에 몇 명은 표정 관리가 되었지만 몇 명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웃는 애들은 나중에 화면에 안 나가겠네.
“여기서요?”
“헐, 대박.”
“근데 삼촌. 왜 존댓말 해요?”
“오늘은 MC거든.”
“네?”
“Dream fantasy의 마지막 판타지! 스타즈의 게릴라 카페 이벤트! 지금 시작합니다!”
어수선한 분위를 한껏 뽐내며 오프닝이 끝났다.
애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듯 놀라워하는 연기가 무척이나 웃겼다.
입은 놀라워하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크게 티가 나는 건 아니니 상관없으려나.
“얘들아 잠깐잠깐! 조용해 봐!”
이나라의 말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고 모두의 시선이 이나라에게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이나라가 김민성 아나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인원은 어디서 구해요?”
“당연히 직접 발로 구해야죠.”
“네?”
“지금껏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네?”
오전 아홉 시 시작.
오후 여섯 시 종료.
아홉 시간 만에 스타즈 애들은 과연 몇 명이나 끌어올 수 있을까?
회사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매니지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결국 내기까지 하게 되었다.
남진수와 이진성 실장은 3천 언더에 걸었고 나는 4천 명 오버에 걸었다.
이왕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지 않은가.
* * *
“지금 가는 학교가 언니 영화 찍은 곳이었지?”
“응. 우리 측 제때 주막 가서 놀았던 곳. 거기잖아.”
서지영의 말에 신희진이 대답했다.
“아, 맞네. 그럼 길은 다 알겠네?”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 촬영 장소로 잡힌 곳만 갔으니까.”
“길 안내해줄 사람 누구 없나?”
마지막 서지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박혔다.
그 시선에 나는 급히 양손으로 엑스자 모양을 만들어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가이드가 필요한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 나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들은 나를 흘리며 바라봤다.
아니, 방송에 내가 나오면 안 되잖아. 얘들아.
곤란해 하는 나의 모습에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메인 작가가 스케치북에 ‘가이드 한번 해주시죠? B팀에는 김민성 아나운서가 붙어 있으니 여기에도 남자 한 명 붙어 있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 같네요.’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까 정할 때는 딱 4:4로 맞춰진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팀 구성은 간단했다.
A팀 신희진 서지영 린 유미소
B팀 이나라 박혜연 유코 김민성
A팀은 대학교 위주로 홍보를 하기로 했고, B팀은 유흥가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어떻게 할까.
내가 갈등하자 A팀 담당 PD마저 가세해 나를 재촉했다.
담당 PD도 아무래도 내가 방송도 몇 번 탔다 보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유문상 PD도 지금 PD와 같이 똑같이 반응 했으려나.
여기에 있는 PD는 유문상 PD가 아니었는데, 유문상 PD는 B팀으로 따라갔다.
매니저가 무슨 힘이 있나 까라면 까야지.
그래도 한번 튕겨 봐야겠다.
내가 애들 눈치를 슬쩍 본 뒤 고개를 가로젓자 메인 작가와 담당 PD가 눈을 마주쳤다.
마치 작당 모의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포착됐다.
이내 작가가 스케치북에 글을 다시 쓰고는 스케치북을 번쩍 들었다.
[얘들아! 도와줘!]
이건 반칙인데요.
“와, 어떻게 저렇게 거부할 수가 있죠?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렇게 이쁘고 깜찍하고 귀여운 소녀 네 명이 부탁하는데!”
서지영이 방방 뛰며 말했다.
팬들 눈에나 이쁘고 깜찍하고 귀엽지 내 눈에는 수라 나찰이야.
“가이드해주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저럴까요?”
서지영이 잽을 날리자 그다음으로 유미소가 다음 펀치를 장식했다.
“정말 못됐다.”
“치사해.”
그리고 신희진과 린이 마무리를 장식했다.
애들의 말이 끝나자 스태프 한 명이 내게 급히 핀 마이크를 건넸다.
판을 아주 제대로 까는구나.
받은 핀 마이크를 빠르게 착용한 뒤에 애들에게 말했다.
“나는 일반인인데….”
“방송물 먹었잖아요? 매니저는 연예인이랑 일심 공동체라고요. 제 말이 틀려요?”
서지영이 도끼눈을 뜨고 내 말에 바로 치고 들어왔다.
“그게….”
“그래서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대답 잘하셔야 해요?”
“알았어, 알았어. 근데 다른 대학들은 잘 몰라.”
신희진이 눈을 흘기며 재촉하는 통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리고 내 말에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넷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출연이 확정되자 여기저기서 나를 찍는 카메라가 확연히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앞으로 한숨 금지.”
“네, 마님.”
“푸핫, 뭐야.”
유미소가 내 대답을 듣고는 빵 터졌다.
“아유 돌쇠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이드도 하고 경호도 하고. 맡겨만 주십쇼!”
그래. 이건 방송이다. 다 내려놓자.
방송 재미만 있으면 이 한 몸 불살라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 * *
“안녕하세요! 스타즈입니다! 오늘 저녁 여섯 시에 여의도 물빛무대에서 공연 겸 카페를 열어요! 많이들 와주세요!”
“많이 와주세요!”
애들의 적극적인 구애에 학생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애들이 전단지를 들고 다가가면 어버버하기 바빴다.
보통 사람들은 전단지를 주러 가면 거절하기 바쁜데 지금은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애들의 인기가 이 정도였나?
인기가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이 정도일 줄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상의 인기와 피부에 와닿는 인기는 다르니까.
이러면 경호원이라도 불렀어야 했을 거 같은데.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절로 났다.
“지나갈게요!”
애들의 길을 터기 위해 앞장서서 지나간다고 말하며 인파를 뚫었다.
“놀러 와주세요! 쓸쓸한 가을에 스타즈가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솔로도 커플도 많이 와주세요!”
내가 몸으로 뚫는 와중에도 애들은 쉼 없이 홍보를 하고 있었다.
나와 달리 애들의 얼굴에는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진정성 담긴 웃음이 가득했다.
팬일지도 모를 대중들과 만남이 애들에게 좋은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지영 언니 이뻐요!”
“여기 저보다 어린 사람 없지 않아요?”
지나가는 와중에 한 팬이 이쁘다고 말하자 서지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이쁘다고 말한 팬이 얼굴을 붉혔다.
서지영의 팬인가 보다.
“이쁘면 언니예요! 저 별님들도 가입했어요!”
“앗, 감사합니다!”
싱글벙글한 애들과 달리 나는 극한직업 매니저 편을 찍고 있었다.
“지나갈게요! 길 좀 터주세요!”
“오늘 뭐 해요?”
“여의도! 물빛무대! 여섯 시! 카페 겸 공연입니다!”
“얘들아! 오빠가 격하게 아낀다!”
“감사합니다!”
“지나갈게요!”
맨 앞에서 탱커를 자처하는 나.
뭐하냐고 묻는 시민.
대답해주는 애들.
애들 보러 온 팬.
아수라장이 이러할까.
애들의 위상을 너무 얕잡아본 게 아닌가 싶었다.
나만 진땀을 빼는 게 아니라 제작진도 진땀을 빼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아수라장을 뚫고 도착한 곳은 수업 시작 전의 강의실이었다.
대학 측과는 사전 협의가 되어 있었고, 담당 교수에게도 허가를 받은 상황이라 거리낄 게 없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애들이 칠판 중앙에 서자 초롱초롱한 눈빛을 장착한 학생들의 시선이 보였다.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우오오오-
애들의 인사가 끝나자 격한 학생들의 환영이 이어졌다.
물론 이 괴성은 남자들이 낸 소리가 과반이었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 똑같지 않았을까.
“저희가 오늘! 여섯 시! 여의도 물빛 야외무대에서 게릴라 공연을 하는데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연도 보시고 커피도 마시면서 기부도 하는 좋은 취지에서 하는 거니 많이들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유미소가 상큼한 미소와 함께 홍보했다.
“여섯 시? 오늘 수업 끝나면 여섯 시인데.”
“난 쨀란다.”
“나도 째야겠다. 한 번쯤이야 뭐.”
옆에서 수군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흐뭇했다.
그래, 수업은 째라고 있는 거다.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F가 되니까 문제였지만.
“꼭 와주세요. 약속!”
“약속!”
애들이 약지를 보이며 약속이라 외치자 몇 명이 손을 들고 약속이라고 외쳤다.
“야, 뭐 하는 짓이야.”
“왜? 무료한 일상에 이런 이벤트면 땡큐지. 아냐?”
“어휴.”
커플로 보이는 두 명이 이야기 나누는 것도 들렸다.
아닌가? 썸 타는 정도겠구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스타즈였습니다!”
“꼭 갈게, 희진아!”
“미소야!”
애들도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강의실을 나왔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것 같다.
“와, 재밌다.”
“진짜. 재밌어.”
서지영과 린이 자기들끼리 손을 맞잡고 꺅꺅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런 애들 사이로 신희진이 다가와 내게 물었다.
“오빠 다음은 어디에요?”
“다음은… C동 건물 가서 똑같이 홍보하고 B 대학교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아.”
“오케이! 가자, 얘들아! 한 명이라도 더 영업하자!”
“레츠 고!”
애들이 활활 타오르는 의욕을 보이는 모습이 퍽 즐거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B팀은 잘 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있는 유코가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헤어지기 전 유코의 텐션을 보면 오히려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니 괜찮지 싶다.
그건 그렇고 지금 사람들의 반응과 애들의 반응을 보니 꽤 좋은 그림이 나올 것만 같다.
* * *
“자, 지금 여러분의 앞에는 몇 명이나 이 자리에 와 계실까요?”
김민성 아나운서가 짓궂은 목소리로 애들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고된 하루였다.
그리고 그 결실을 보기까지 몇 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 5백 명?”
“5백 명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유미소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옆에서 서지영이 태클을 걸었다. 그러자 유미소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그럼 3백 명?”
“나능 천!”
“천 명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한데?”
유미소의 말에 유코가 자신 있게 천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이나라가 조용히 말했다.
“아, 너무. 떨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린이 옆에 있던 박혜연의 팔을 꽉 움켜쥐며 떨리는 모습과 말도 여과 없이 우리에게 보였다.
그런 애들에게 김민성 아나운서가 다가갔다.
“천 명일까요? 5백 명일까요?”
“이거 빨리 벗으면 안 돼요?”
짓궂게 이야기하는 김민성 아나운서에게 신희진이 안대를 잡으며 말했다.
“흠흠. 잠시 기다려 주시고요. 여러분! 이 친구들을 위해 몇 명이나 왔는지 한번 소리 질러~ 주세요!”
“…….”
“와아!”
적당한 침묵과 적당한 함성이 섞여 울려 퍼졌다.
“이봐. 몇 명 안 왔다니까. 조용하잖아.”
“몇 명 안 오면 어때? 우리 보러 와주시고 온 김에 카페에서 마실 것도 마시고 기부 해주러 오신 분들인데!”
서지영의 말에 박혜연이 소신 있게 서지영에게 타박을 줬다.
“그래, 맞아. 몇 명이 중요한 게 아니지.”
“갑자기 왜 나만 나쁜 사람 만들어?”
이나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자 서지영이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친구들이 많이 긴장했네요. 그럼… 이제 슬슬 확인해 볼까요?”
“…….”
김민성 아나운서의 말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던 김민성 아나운서가 이내 말했다.
“안대를! 벗어 주세요!”
김민성 아나운서의 말에 애들이 안대를 벗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