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다시 맞이하는 10월의 어느 날 (2)
“그러니까… 나라한테 상담을 했는데 나라가 나랑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네. 이런 거 전문이라고….”
“내가?”
“네.”
지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똥말똥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코에게 ‘나는 그런 거 잘 못 해. 다른 사람 찾아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산타클로스는 없어. 그거 다, 엄마 아빠가 변장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일까.
이런 유코의 순진무구한 분위기 때문에 팬들도 팬 사인회에서 유코를 볼 때면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이내 나도 정신을 차리고 유코에게 말했다.
“일단 방금 네가 말한 요점을 정리해보자.”
“요점?”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되묻는 유코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유코가 아직 한글이 서툴러 몇몇 단어는 들을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비슷한 경우였다.
린은 습득력이 빠른 것 같던데 유코는 좀 더딘 편이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서 말해야 이해를 할 수 있으려나.
“그러니까… 요약? 아니, 네 말에서 가장 핵심 포인트라고 말하면 되겠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거네?”
유코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영어를 섞어 쓰니 대충 이해한 듯했다.
어렵다. 어려워.
평상시에 흔히 쓰던 단어를 풀어 설명하려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척 힘들었다.
“연예인을 계속해야 될까라… 어렵네.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벌써 매너리즘에 빠졌다면… 너는 왜 연예인이 되려고 했어?”
“그냥요. 어릴 때 K-Pop 보고 나도 쩌러케 무대를 서야지! 하고 왓써요.”
“활동하면서 언제가 가장 기분이 좋았는데?”
“무대 설 때?”
“그거 말고는 없어?”
유코가 내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에 들어갔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더니 금세 입이 열렸다.
“음… 프로그램 할 때도 재밋써요.”
“그럼 문제없는 거 아냐?”
“긍데요. 댓글로 막 뭐라 하니까….”
“다 너 질투해서 그러는 거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 좋은 것만 보면 돼지. 나라가 이야기 안 해줘?”
“하긴 햇능데….”
유코가 내 말에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관심을 끊을 수가 없는 거겠지.
연예인들은 관심이 필요한 직업이다.
흔히 말하는 관종의 끝판왕이 연예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관심은 다양하다.
좋은 관심이 있지만 나쁜 관심도 있다. 이걸 가려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유코는 그러지 못하는 듯했다.
이전에 신희진과 비슷한 문제랄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신희진은 악의적인 루머에 집중적으로 맞아 힘들어했다면, 유코는 본인의 평가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 문제는 이나라한테 확실히 말을 해놔야겠다.
유코는 인터넷상 반응 보게 하지 말라고.
멘탈이 약한 애들에게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반응을 보는 건 독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이진성 실장에게 들어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콘서트를 해보는 것.
‘너아누’는 경연이기 때문에 콘서트라는 개념을 즐기기 부족했고, 음방과 행사는 맛이 조금 부족하다.
자신을 봐주는 ‘팬’들만 있는 콘서트는 가수에게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게 이진성 실장의 이야기였다.
곰곰이 따져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콘서트의 의미는 단순히 수입 측면에서만이 아니었다.
가수에게 있어서 수입의 끝판왕은 콘서트였다. 그러나 콘서트를 함으로써 오는 에너지를 통해 가수가 힘을 얻는다는 말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콘서트를 통해서 매너리즘을 극복한 사례도 충분히 많았으니까.
괜히 기획사들이 작게라도 콘서트를 여는 게 아니었다.
“그 문제는 이번에 내가 말한 게릴라 콘서트 한번 겪어보면 말끔히 해결될 것 같은데.”
“네?”
유코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겪어본 건 아니지만 가수에게는 콘서트만큼 특효약이 없다더라. 그래서 콘서트랑 비슷한 대학 축제는 몸값 조금 낮춰서라도 꾸준히 가는 가수들도 있다고 하고.”
“음… 머가 달라요?”
“예시라고 하기엔 뭐한데, 방금 말한 대학 축제 있지? 그때보다 한 열 배는 더 즐겁다더라고.”
“와….”
내 말에 유코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아르겠습니다! 콘서트… 열씨미 준비 해보께요!”
“그래, 화이팅!”
주먹을 불끈 쥔 유코에게 나도 덩달아 화이팅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가끔 유코의 이런 행동과 표정, 말투에서 어릴 때 보던 만화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표현이 풍부하다고 해야 할지, 만화 캐릭터 같다고 해야 할지….
아무래도 나라의 특색인 것 같다.
린과 유코는 마치 자석의 플러스, 마이너스극처럼 완전 성향과 행동이 반대인데, 또 둘이 잘 어울려 논다.
너무 다르면 통한다는 게 이런 의미인가 싶다.
“저도 밥 머그러 가보께요! 나중에 바요!”
“그래.”
유코가 내게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나 혼자 남은 연습실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후, 요즘은 내가 매니저인지 스타즈 담임 선생님인지 종종 헷갈린다.
나를 믿어주는 건 좋은데 종종 이렇게 진땀 흐르는 일이 발생하니 좋아해야 하는지 아니면 거리를 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 * *
“그래? 잘했어.”
이진성 실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딱히 뭐라고 더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그런 애들한테 우리가 뭐 더 해줄 말이 있나, 없지. 걔네가 어떤 느낌으로 고민을 하는지는 우리가 알기도 힘들고. 근데 꽤 빨리 왔네. 3, 4년 차쯤은 돼서야 생각하는 이야긴데. 그런 문제는.”
매너리즘이 안 오는 직업이 있을까.
없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줬겠는데… 솔직히 이건 본인 문제잖아요.”
“이야, 만능열쇠인 현진이도 해결 못 하는 게 있네.”
“만능이라뇨. 하하….”
이진성 실장이 나를 띄워주길래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나의 너스레를 보던 이진성 실장이 피식 웃고는 웃음기를 감추고 내게 말했다.
“이건 네가 말한 것처럼 콘서트 할 때 카타르시스 한번 맛보면 끝나는 문제야. 그걸로 해결 안 되면 자기가 ‘왜’ 연예인을 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하면 되는데, 유코는 무대에 서고 싶어서라며? 그럼 콘서트 한번 하면 말끔히 해결돼.”
“그렇겠죠?”
“무대에서 제일 날뛰는 게 유코 아냐? 아마 말끔히 고쳐질걸.”
확실히 무대에서 가장 표정과 분위기가 좋은 건 유코였다.
다른 애들도 충분히 훌륭했지만 유코는 말 그대로 즐긴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면 다행이고요.”
“참, 그러고 보니 영화 준비는 어때? 잘 돼 가?”
“네, 잘하고 있더라고요. 배역 확정 받은 이후부터는 성격까지 배역에 맞춰 뜯어고치면서 생활하고 있어서… 잠깐잠깐 볼 때마다 섬뜩해요. 승기 형도 재성이랑 비슷한 느낌으로 배역 준비를 하시긴 하는데 얘는 뭐랄까. 좀 더 깊게 파고드는 느낌?”
Finder 오디션이 끝나고 홍승기와 안재성, 둘이 제대로 인사를 했는데 그때 서로 많이 친해졌다.
게다가 둘 다 서로의 연기 스타일을 말할 때는 서로 놀라워했다.
본인들도 자기랑 비슷하게 연기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그 영향일까. 지금은 꽤 친해진 듯 서로 연락도 자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더해서 홍승기도 Finder에 캐스팅 되었다.
그래서 내심 둘의 호흡이 기대되는 조합이기도 했다.
“그러다 배역에 잡아먹히는 거 아니야? 왜 꽤 되잖아. 배역에 몰입하고 우울증 와서 자살하는.”
“그렇게 안 되게 해야죠. 승기 형은 게임 아바타라고 생각한다는데… 연기자들이 정신병원 다니는 게 정말 이해가 되더라고요.”
“안 다니는 게 이상할걸. 어떻게든 본인이 배역에 몰입해야 사람들이 봐주니까. 참 힘든 직업이야.”
이진성 실장의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연기 더럽게 못 하네. 라고 쉽게 말하지만, 연기자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튼, 내일 리딩 하고 와서 소감이나 알려줘. 성재원 감독 영화는 나도 개인적으로 팬이거든. 시나리오 보니 재밌을 거 같더라.”
“네, 알겠습니다.”
어쩐지, 시나리오 나왔을 때부터 한번 본다고 가져가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리고….”
이진성 실장이 뜸을 들이며 말했다.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 같았다.
“아니다. 할 거해.”
“네? 네.”
묘한 느낌을 남긴 채 이진성 실장이 떠나갔다.
뭘까. 이진성 실장이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 찝찝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게릴라 콘서트와 당장 내일 스케줄인 안재성의 Finder 전체 리딩이었다.
그렇지만 Finder의 경우에는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게 크게 없기에 내 머릿속은 온통 게릴라 콘서트 생각뿐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게릴라 콘서트의 중요도가 많이 높아졌다.
화제성도 잡아서 우리 물 먹인 사람들에게 엿도 먹여야 하고, 인원수도 많이 채워야 하고, 유코도 신경 써야 하고.
지금 조금 더 꼼꼼하게 짠 다음 유문상 PD와 이야기 해봐야겠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 이번에도 성공할 거다. 반드시.
* * *
“불편하진 않지?”
“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내 옆에 있던 홍승기가 뒤에 있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안재성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Finder’ 전체 리딩 장소에 가는 중이었다.
오기 전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건 안재성이 차 앞자리에 앉으려는 걸 한사코 홍승기가 앉고는 안재성을 뒤에 앉혔다.
아마도 홍승기가 불편해할 안재성을 배려해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왜 둘을 데리고 가고 있냐면, 둘이 같이 ‘Finder’에 캐스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체 리딩 장소에 굳이 매니저 둘이나 따라갈 필요는 없어서 내가 둘을 데리고 리딩 장소로 가게 됐다.
그건 그렇고 배역 성격에 맞춰 입은 둘을 보니 적응이 안 됐다.
한쪽은 냉소적인 살인마.
한쪽은 평소에는 활발하며 웃고 다니는 사이코패스.
“형, 오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긴. 잘해야지. 성 감독님은 리딩도 깐깐해. 제대로 해야 해.”
“그런가요.”
표정 변화가 없는 홍승기에 비해 안재성의 표정은 꽤 다채로웠다.
극 중 안재성의 배역은 꽤 표현이 풍부한 편이었고, 홍승기의 경우에는 냉정했기 때문에, 이를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어, 그러니까 잘해보자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작 중에서는 호흡 맞춰보는 장면이 많이는 없어서 아쉽지만, 잘해보자.”
“네!”
둘의 대화하는 모습을 백미러로 보면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시종일관 웃고 있는 안재성과 딱딱하게 말하는 홍승기.
이래선 내가 정신병이 오겠네.
“둘 다 평소에는 그냥 평소 성격대로 하면 안 되나? 왜 고집하는지 모르겠네.”
“오늘은 리딩도 있잖아. 네가 참아.”
“형, 메소드예요. 메소드.”
“다 배역을 위해서니까 말이야.”
“그럼요.”
툴툴대는 내 말에 담담하게 말하는 홍승기와 웃으며 대답하는 안재성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둘이 말하면서 한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호흡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지 괜히 얄미웠다.
저 둘에게 해줄 말은 딱 하나였다.
‘또라이.’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매니저가 어쩌겠나. 담당 연예인에게 맞춰가야지.
“남들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한다고요. 진짜로.”
토해내듯 내뱉은 내 말에 둘 다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