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다시 맞이하는 10월의 어느 날 (1)
10월 9일.
돌아온 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1년을 되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다.
인상적인 애들과의 첫 만남부터 해서 갖은 스캔들까지.
지금 내 위치도 예전과는 좀 많이 달라졌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인맥이 늘었다는 점이다.
정인수 대표부터 시작해 민서희 팀장, 김동현 작곡가, 이예진, 안재성 등.
1년 사이에 참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 것 같다.
그저 이왕 돌아왔으니 후회 없이 앞만 보고 달리자고 다짐했던 게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물론 내게 가장 큰 변화는 애들과의 관계였다.
그 일례로 예전의 나는 애들과 많이 어색해서 연습실에 잘 찾아가지 않았다. 가더라도 조심스럽게 갔었다.
애들도 내가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연습실에 방문할 수 있었다.
애들도 웃으며 맞이해주기도 했고.
그렇게 오늘은 뭘 하고 있나 싶어 연습실의 문고리를 잡고 돌린 순간 안에서 들린 목소리에 얼어붙었다.
“…야!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가벼운 마음으로 뭐 하고 있나 해서 온 연습실이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의 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나라와 유미소인가?
조심스럽게 문고리에서 손을 놓고 물건 훔치러 온 도둑처럼 조심스럽게 듣기 시작했다.
“우리 이러는 게 의미가 있어? 솔직히 말해서 왜 계속 프로그램 못 나가고 연습실에 박혀서 연습만 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 돼.”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콘서트 대비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격앙된 유미소의 말에 이나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안 봐도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졌다.
“도대체 어떤 이유가 있길래 이래? 솔직히 우리 지금 잘나가잖아. 근데 이렇게 놀고 있는 게 말이 돼? 콘서트는 11월이나 12월부터 준비해도 안 늦어.”
“생각이 있겠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왜 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어? 나만 나쁜 년이네. 우리 곧 데뷔 1년 다가오고 있고, 조만간이라고. 뭔가 활동이라도 더 해야 더 같이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만 그런 거야?”
유미소의 말이 끝나자 정적이 일었다.
목소리에 울음기도 섞여 있는걸 보니 감정이 많이 올라온 것 같았다.
애들은 지금 왜 자기들이 노는지 몰랐다.
단지 회사 방침과 더불어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이라고만 둘러댔다.
애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들어가서 중재를 해야 할지, 좀 더 지켜볼지 고민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나라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유미소!”
“뭐!”
“말 그렇게 할래?”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너 까분다? 우리라고 그렇게 생각 안 했겠어?”
“내가 나쁜 년이지… 내가 나쁜 년이야. 그래. 여러분! 제가 나쁜 년이에요!”
이나라의 말에 유미소가 흐느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이상 진행되면 애들끼리 사이가 너무 과열될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너네 뭐해?”
목소리를 깔고 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내 눈 앞에 펼쳐진 일곱 명의 얼굴을 보니 할 말이 뚝 떨어졌다.
대부분이 조금만 툭 건드리면 다 터질 듯한 얼굴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울먹거리고 있는 애들의 모습을 보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일곱 명은 감당이 안 되는데….
“오빠. 저희끼리 중요한 이야기 좀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와주시면 안 돼요?”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당황하며 어리바리하고 있을 때 이나라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이나라는 확실히 애들과 달랐다.
그래도 이나라가 냉정히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눈을 자세히 보면 이미 붉어져 있었고 눈물도 고여 있었다.
아마 자신의 위치 때문에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참 고생이 많구나.
이런 이나라가 없는 스타즈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애들도 이나라를 많이 따르기도 했고.
“일단 앉아봐. 해줄 말이 있어.”
“그러니까….”
내 말에 이나라가 급히 끼어들려고 하자 내가 손을 들어 제지하고 말을 이어갔다.
“너희가 하고 있던 이야기의 연장이니까 들어.”
“들으셨어요?”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데 안 들리겠어?”
“갑자기 들이닥쳐 놓고선….”
“빨리 앉아.”
한숨을 내쉬며 불평불만을 하는 이나라에게 말하고선 애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니까….”
“…….”
생각보다 곤혹스러웠다.
고양이가 실타래를 엉켜놓은 것처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 이야기를 애들한테 해도 되나?’와 ‘아니다, 애들도 알아야 한다. 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혼자 뭐 하세요?”
“어?”
“인상 구겼다가, 폈다가, 찌푸렸다가 말았다가 어디 아파요? 말하다 말고 계속 그러니까 이상하잖아요.”
신희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신희진의 말이 분수령이 됐는지 분위기가 풀어졌다.
“웃기려고 한 거면 인정.”
“조금 웃기긴 했어.”
서지영과 유미소가 피식 웃으며 같이 까불었다. 그러자 이나라가 눈을 부라리며 눈치를 주는 모습이 보였다.
“아, 왜! 언니는 나만 미워해!”
“너!”
미소는 숙소 들어가서 나라에게 많이 혼나지 않을까 싶다.
“흠흠. 좀 진정 됐어?”
“진정은 아까 됐고요. 뭔데요? 그래서?”
내 말에 유미소가 다그쳤다.
그런 유미소를 이나라가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 건 덤이었다.
아무래도 유미소가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목소리 높여서 싸웠겠지.
“우리 회사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위치요? 강남에 있잖아요.”
박혜연의 엉뚱한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 위치 말고. 위상? 이라고 해야 하나.”
“헥사곤 지금 짱짱하잖아요. 장밋빛 미래. 꽃길만 가득!”
“4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기획사 바로 밑 정도 아닐까요?”
박혜연의 말에 얼른 바로잡아 내가 말을 하니까 서지영과 이나라가 한마디씩 보탰다.
둘의 말에 내가 다시 이어 말했다.
“맞아. 이건 약간 비즈니스 이야기인데 기획사끼리 견제도 하거든? 뭐 어느 아이돌이랑 컨셉이 겹친다던가, 라이벌 구도를 만든다던가 컴백 일정 같은 걸 피하거나 겹쳐서 잡는다거나.”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돌끼리도 서로 견제하는데요, 뭘.”
신희진의 말에 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아, 그래?”
“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애들의 입에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돈이 얽히면 어디를 가나 약육강식 정글이 되는 건 다 똑같은 모양이다.
“우리 회사가 급성장하다 보니 4대에서는 그게 조금 아니꼬운 모양이야. 이번에 어비스 애들이 해외투어 일정으로 프로그램 깐 걸 빌미로 너희 프로그램 섭외도 막아버렸거든. 아니, 막았나? 이건 추론이긴 한데 거의 정론으로 굳혀지고 있긴 해.”
“…….”
내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어! 이래서 4대 기획사를 가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불편한 침묵은 유미소의 입이 열리자 깨졌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유미소에게 집중됐다.
그러자 유미소가 머리카락을 비비 꼬면서 눈을 피했다.
“너 4대로 갈래?”
“아니, 농담이야. 농담도 못 하나.”
“내가 하려고 했는데….”
이나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유미소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유미소가 분위기 전환으로 총대를 멘 느낌이었다.
서지영도 유미소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나라가 옆에서 중얼거린 서지영의 허벅지를 한 대 찰싹하고 때린 후 내게 물었다.
“그럼 카페 예능 하게 된 것도 그렇게 해서 된 거예요?”
“맞아.”
“어쩐지, 우리가 메인으로 프로그램 찍는다길래 의아했는데.”
이나라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마치 도를 깨우친 표정이었다.
어떻게 자신들이 메인으로 예능을 찍게 되었는지 의아했었던 듯했다.
“이렇게 맞기만 하는 건 내 성격에 안 어울리는데. 제가 들이받아 볼까요? 확 한번 사고 쳐?”
유미소가 복싱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미소야, 너 내년에 은퇴하게?”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요?”
“기업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마.”
“농담이에요. 농담. 무슨 말도 못 하겠어.”
혹시나 정말 사고 칠까 진지하게 말했는데 유미소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획사랑 척지는 건 정말 좋지 않다.
연예인이 상대적으로 너무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척져서 좋은 꼴을 못 보기도 했다.
기획사보다 이미지와 평판에 민감한 연예인이 더 타격이 컸으니까.
“그래서 해결책은요? 있겠죠?”
“음… 없는 건 아닌데.”
유미소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있어요?”
“뭔데요?”
그런 내 말에 박혜연과 신희진이 동시에 말했다.
프로그램이 잘 안 됐다면 먹히지 않을 방법이었겠지만, 지금 방송이 잘 풀리고 있기도 했고 애들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방송국에서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쐐기는 게릴라 콘서트였다.
아직 애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지금 상황이라면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좀 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전날이나 그날 알려줄 계획이었는데.
“너희 지금 찍고 있는 Dream fantasy 있잖아.”
“네.”
“그거 마지막 방송은 게릴라 콘서트 할 거야.”
“…….”
게릴라 콘서트라는 말을 듣자 애들이 벙찌며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하나, 둘, 셋.
“네?”
“뭐라고요?”
“게릴라?”
“콘서트…?”
속으로 셋을 세자 애들이 다다다 말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무슨 게릴라 콘서트에요. 미니 콘서트인가? 20명? 상대로?”
“그렇게 할 거면 콘서트가 아니겠지.”
박혜연이 조곤조곤 말하는 걸 다시 되짚어줬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이나라가 내게 말했다.
“카페에서 어떻게 콘서트를 해요.”
“왜 못해? 카페의 탈을 쓴 콘서트도 충분히 될 수 있는데.”
“네?”
어리둥절한 애들의 표정을 보니 조금 웃겼다.
사실 이 의견을 냈을 때도 다른 사람들도 애들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다 내가 점차 풀어서 이야기하니까 다들 괜찮겠다 싶어서 추진 중인 사항이었고.
“마지막은 무엇보다도 화려하게 해야지. 입장료는 받지 않지만 그래도 똑같이 커피랑 음료수만 팔 거야. 테이크아웃으로. 그리고 똑같이 기부 받을 거고. 콘서트장을 대관하는 게 아니고 한강 쪽에 보면 간이 무대 설치할 곳이 있거든? 거기서 할 거야. 수용 인원은 몇 명이 될지 모르겠네. 야외라서.”
“호오.”
내 말에 애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럼 콘서트 하는 거예요? 몇 시간짜리요?”
“그렇게 오래 하는 건 아니고, 대학 행사 뛸 때만큼? 아니면 조금 더 정도야.”
“흐응.”
유미소가 내 말에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럴 때가 아니다! 연습하자 애들아!”
이나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전에 밥 좀 먹고 하면 안 될까?”
“그럴까?”
신희진의 말에 애들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어. 밥부터 먹자. 가자! 오늘 메뉴 뭔지 아는 사람?”
신희진을 필두로 애들이 우르르 나갔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와 환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연습실에는 어느덧 유코, 이나라와 나만 남게 되었다.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지어졌다.
“저… 저도 고민잇서요.”
“엉?”
남아 있던 유코가 밍기적거리면서 안 나가고 있길래 뭐 하나 했더니 용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빠, 유코 좀 부탁해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코의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간 이나라가 내게 말했다.
내가 램프의 요정이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