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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40화 (140/200)

제140화. Fantasy (4)

“갑자기 이런 말 들으니 당황하셨죠?”

“그게…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남진수의 말에 유문상 PD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내가 너무 직진했나보다.

“김현진 매니저가 의욕이 과해 제대로 설명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설명 부탁드려도 됩니까?”

유문상 PD의 말에 남진수가 나를 보며 말하라고 고갯짓했다.

“다른 게 아니라 아는 분을 통해서 카페 예능을 준비 중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유문상 PD가 기획하고 있다는 건 지인을 통해 얻어냈다.

지인은 다름이 아닌 최승현 PD였다. 이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내 선배라는 걸 알게 되었던 그 사람에게서 유문상 PD가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아직 기획 단계고, 구체적인 건 크게 잡힌 건 없는데요.”

“솔직하게 이야기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남진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기 전부터 PD와의 교섭은 내게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자리는 사실 나 혼자 와도 됐지만, 유문상 PD의 성격을 모르기에 직급이 있는 남진수도 같이 왔다. PD 중에는 매니저 직급이 낮으면 상대해주지 않는 PD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지금 공중파 방송국이랑 줄다리기하고 있습니다.”

“음….”

“우리 회사 뒷배경은 K.net 모회사와 같죠. 이렇게 보면 한 식구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틀린 말은 아니긴 하죠.”

내 말에 유문상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K.net 소속 PD들과는 모회사가 같기에 아무래도 좀 더 터울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PD의 권위 의식도 생각보다 없는 편이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스타즈 애들이 콘서트 전까지 활동할 방송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미 스케줄로 꽉 차 있었겠지만….”

“누가 돈을 얼마나 발라 줬길래 막지? 이해가 안 되네. 스타즈면….”

내 말에 유문상 PD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하하,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요지는 제가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카페 예능을 스타즈를 메인 격으로 하고 싶다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애들에게 뭐가 좋을까 하고 지금 방송국 내에서 돌고 있는 기획안을 여쭤봤습니다.”

“편성은요?”

유문상 PD의 말에 남진수를 잠깐 힐끔 쳐다본 뒤 유문상 PD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이야기 끝내셨다고 합니다.”

“흠….”

이건 내가 그냥 하는 말이었다. 편성에 관해서는 아직 제대로 이야기된 건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편성은 아직 못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PD가 거절할 것 같기도 해서 지른 말이었다.

최승현 PD의 말로는 기획도 스트레스지만 편성 받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했으니까.

편성이야 어차피 받아낼 수 있다고 이진성 실장이 말했으니 뭐 상관없지 않겠나.

내 말에 유문상 PD가 눈을 감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5초도 지나지 않아 눈을 뜨고 내게 말했다.

“좋습니다. 스타즈의 화제성과 인지도면 환영이죠. 따로 물망에 올려둔 사람은 있었는데, 지금 대세 그룹이 냉큼 굴러 들어온다는데 거절하면 바보죠.”

“감사합니다.”

“그래도 애들만으로 메인으로 꾸리기엔 위험부담이 크니까 컨트롤 해줄 사람은 필요할 겁니다. 생각해두신 사람 있으세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유문상 PD의 말에 아차하는 심정이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예전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야 자유여행이 주제였으니 큰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건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따로 알아보도록 하죠. 애들과 케미가 잘 맞을 만한 사람으로.”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유문상 PD가 웃었다.

“감사하실 필요는 없죠.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거니까요. 그리고 프로그램 방향이 어떤지는 아시죠? 아시니까 저랑 미팅 잡으신 거겠죠?”

“네.”

“좋습니다. 근데 남 팀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와 이야기를 끝낸 유문상 PD가 남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말씀하시죠.”

“스타즈 책임자는 남 팀장님 아니에요?”

유문상 PD가 나를 힐끔 보더니 남진수를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

“스타즈 책임자…라고 하면 맞긴 한데요, 요즘은 이 친구에게 넘기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같이 온 건 오랜만에 유 PD님 뵙고 싶어서였습니다, 하하하.”

“본 적이 없는 얼굴인 거 같은데. 배우 맡다 오셨나?”

“아, 그게….”

“이 친구가 연차가 오래된 친구는 아닌데, 수완이 좋아서요. 지금 우리 회사 에이스입니다. 하하하.”

내가 말하려던 찰나에 남진수가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난데없는 칭찬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좋네요. 그럼 우리 악수라도 할까요?”

“네.”

유문상 PD가 내게 손을 건네길래 나도 냉큼 손을 뻗어 붙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요.”

성공적인 낚시였다.

* * *

“크, 실장님 이놈 간도 커요.”

“뭐가?”

유문상 PD와 미팅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남진수가 이진성 실장에게 말했다.

“PD 상대로 블러핑도 치더라고요.”

“뭐?”

“편성 확정도 아닌데 편성 확정됐다는 듯이 말하는 거 보고 식겁했어요.”

내가 말할 때는 태연하게 있던 양반이 엄살은.

“허, 참.”

남진수의 말을 들은 이진성 실장이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실장님이 예전에 말씀하실 때 편성은 따낼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못 따오면?”

“그땐 비즈니스 문제라고….”

“네가 황소야? 앞만 보고 돌진하게? 대책이 없네. 대책이.”

황소가 뭡니까. 불도저라고 해주세요.

이진성의 말은 나무라는 투였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남진수가 그런 우리를 보다가 끼어들었다.

“실장님. 그래서 편성은요?”

“될 거 같아, 근데 시간대가 좀 구려. 목요일 열한 시야. 그리고 당장은 안 되고 다음 달쯤에나 들어갈 거야.”

“새벽으로 넘어가는 편성은 아니라 다행이네요. 아직 유 PD랑 이야기를 다 한 게 아니어서요. 애들 활동도 남았으니까… 근데 한 달 만에 뚝딱 기획해서 만들기에는 빡빡해 보이긴 하네요.”

“안 되면 되게 해야지. 그치? 현진아?”

이진성 실장이 남진수와 말하다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죠?”

“그리고 너. 깜빡이 좀 키고 들어가라. 그러다 너 크게 다친다. 운전을 너무 위험하게 해.”

“하하….”

이진성 실장의 말에 어색하게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어색하게 웃고 있던 나에게 이진성 실장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번호를 띄우며 보여줬다.

“아, 그리고 여기로 전화 한번 넣어봐.”

“제가요?”

“어.”

이진성 실장이 보여준 번호를 내 핸드폰에 적어 넣었다.

메모가 끝나자 이진성 실장이 내게 말했다.

“전화할 때 조심히 전화하고.”

“누구신데요?”

“일단 해봐. 목소리 들으면 알 테니까.”

“네.”

이진성 실장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누굴까?

궁금함을 고이 접어두고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에서 쇠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진성 실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화를 걸자마자 한 번에 누군지 파악이 되었다.

목소리가 워낙 독특한 인물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 * *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디션장에서 보고 처음이지?”

“네.”

“반말한다고 너무 그러지 마. 내가 나이도 많잖아.”

“아닙니다. 오히려 편하게 안 하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그럼 다행이고.”

안재성과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꽤 거물이었다.

판성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에 항상 들어가는 배우다.

일전에 전화했을 때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판성식이 안재성과 대화를 나누고는 나를 쳐다봤다.

“자네는….”

“안재성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그래. 알고 있어. 통화까지 했잖아.”

내 말에 판성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비켜 드릴까요?”

“아니, 앉아 있어. 내가 말 편히 해도 되지?”

“그럼요. 저도 선배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판성식이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며 내게 말하고는 안재성을 쳐다보더니 웃음기를 뺀 얼굴로 말했다.

“오디션을 보고 나서 내가 좀 알아봤는데 말이야.”

“네, 선배님.”

판성식이 안재성을 따로 불러냈다는 건 오디션에서 합격했다는 이야기와 같다.

굳이 떨어진 사람을 찾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왜 불렀는지가 궁금했다.

“연기는 누구한테 배웠어?”

“대학 들어갈 땐 입시로 배웠고, 대학 와서는 연극이랑 단편영화 하면서 지냈습니다.”

“아니, 아니. 몸으로 부딪쳐 익히는 거 말이야.”

판성식이 고개를 작게 저으며 말했다.

“딱히 누구에게 배웠다기보다는 저는 이렇게 하는 게 배역에 몰입하기 더 좋아서 시작했습니다.”

“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널린 게 매체인데.”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흠….”

판성식이 팔짱을 끼더니 안재성을 노려봤다.

그리고 금방 표정을 풀더니 방긋 웃었다.

“껄껄. 좋은 마음가짐이야. 타인의 인생을 날로 먹으면 안 되지, 암.”

안재성이 판성식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이야기도 좀 들었어.”

“네? 저 말씀입니까?”

“그래.”

판성식의 말에 당황해 동공이 흔들렸다.

일개 매니저인 나를 누구한테서 듣는단 말인지.

“예진이가 섭섭하다는데 무슨 뜻인지 아나?”

“아….”

아무래도 판성식의 정보통은 이예진이었던 모양이었다.

나한테 섭섭하다라.

그 말에 괜한 민망함이 밀려와 시원한 내부임에도 불구하고 더웠다.

“반응을 보니 둘이 뭔가 있는 모양이네.”

“그게….”

“예진이, 좋은 애야. 인복이 없어서 그렇지. 이제는 인복이 있을 때도 됐어. 같은 회사 식구라며? 좀 챙겨줘.”

내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판성식이 말을 끊고는 내게 말했다.

“네. 선배님.”

내 대답을 들은 판성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안재성을 바라봤다.

“내가 불렀다는 건 ‘Finder’ 오디션도 통과했다는 이야기야. 오면서 그건 짐작했겠지?”

“…네.”

판성식의 말을 들은 안재성이 흥분했는지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런 안재성에게 판성식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좋아. 오늘은 한번 얼굴이나 보자고 불렀어. 결과도 알려줄 겸. 잘해보자고.”

“네, 선배님.”

둘이 악수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이런 게 매니저의 맛이 아닐까.

* * *

지상파 예능 출연이 막혔다는 걸 알고 자체적으로 돌파구를 찾고 준비한 지 약 3주가 지났다.

다행히 이번 스타즈의 ‘Fantasy’에 대한 외부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

김동현 작곡가나 민서희 팀장이 내게 웃으면서 고생했다고 말해줄 때 꽤 뿌듯했다.

그렇지만 그 준수한 성적에 무엇보다도 숨 가쁘게 달릴 것 같았던 스타즈의 ‘Fantasy’ 활동은 음악방송과 팬 사인회, 그리고 들어온 광고 촬영밖에 없었다.

이게 얼마 남지 않은 대세 아이돌의 스케줄이 맞는지.

그래서 이번 활동은 무려 평균 수면 시간이 여섯 시간이 넘는 기염을 토해냈다.

원래라면 틈틈이 예능 프로그램 스케줄도 소화했다면 이전 활동과 같이 수면 시간이 대폭 줄었을 거다.

이전보다 활동이 덜 빡빡해 나는 이렇게 한시름 돌릴 시간이 꽤 나왔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대하는 방송국 사람들과 우리를 엿 먹이려 물밑 작업했을 것 같은 기획사들의 태도에 환멸도 느낀 3주였다.

남진수와 이진성 실장은 익숙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적응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려주면 된다.

방송국이나 기획사들에 너희들의 시대는 갔다고.

“준비 다 끝났어?”

“아직입니다!”

“빨리 빨리해!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네!”

스태프들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카페 예능 ‘Dream fantasy’ 촬영장이었다.

한 방을 먹이기 위한 스타즈의 ‘Dream fantasy’가 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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