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Fantasy (1)
“요즘 4대 기획사들이 잠잠해.”
“태풍은 피해야 하니까요.”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임진석 본부장이 대답했다.
“스타즈 애들이 그 정도인가?”
“Love Up&Down 성공이 컸습니다. 그전까지는 조금씩 방송사를 통해서 압력을 넣는 정도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말끔히 없어졌어요. 계속해서 터지던 스캔들을 잘 막은 것도 컸고요.”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정인수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나갈 땐 못 건드리겠지. 자기들도 손해 많이 봐야 하거든. 모든 건 기브 앤 테이크야. 그리고 방송사들도 화제성 좋은 애들은 건드리기 싫어하기도 하고. 그네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덕분에 우리 회사를 견제하는 곳이 어딘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4대는 포함이고 중소기획사 몇몇도 있었지?”
“네.”
정인수 대표의 물음에 임진석 본부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스타즈 애들 소속 기획사들은 어때?”
“대부분은 줄만 열심히 타고 있는 거 같더군요.”
“대부분? 아닌 곳도 있나?”
“네.”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정인수 대표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어디?”
“신희진이 있는 Wide입니다.”
“Wide? 이시연 대표?”
“네.”
“이시연 대표라….”
정인수 대표가 나직하게 내뱉으며 눈을 감고 생각에 들어갔다.
임진석 본부장이 잠깐 잠자코 보고 있다가 정인수 대표에게 물었다.
“아시는 사이입니까?”
“아니, 재밌는 걸 예전에 들었던 거 같아서. 나머지는?”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정인수 대표가 눈을 뜨며 말했다.
“나머지는 4대와 우리 사이를 줄 타며 누가 힘 싸움에서 이기는지 기다리는 형국이고요.”
“지금 4대 하는 거 봐선 가라앉는 배야. 그걸 모르나. 이렇게 감이 없어서야.”
임진석 본부장의 말에 정인수 대표가 혀를 찼다.
“재벌은 망해도 재벌이라는 소리가 있잖습니까. 4대도 쌓아온 저력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찍혀서 묻힌 사례도 있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요.”
“그것도 내세울 만한 게 있을 때나 가능하지. 거기 노인네들 감이 너무 떨어졌어.”
“대표님도 감 떨어지셨잖아요.”
“뭐?”
정인수 대표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타즈도 그래서 아예 맡긴 거 아닙니까?”
“내가 엉뚱한 놈 밀어준다고 이렇게 섭섭한 티를 내면 안 되지.”
정인수 대표가 임진석 본부장을 바라보며 낄낄 웃으며 말했다.
“저요? 아닌데요?”
“독립 레이블 차려준다니까 자기가 한사코 안 나가놓고선. 진석아, 지금이라도 따로 꾸릴래?”
“아, 그게 왜 나옵니까? 형님, 다 회사 생각하는 애사심에서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예?”
정인수 대표의 말에 임진석 본부장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내가 손 뗀 것과 별개로 일단 그놈이 손대서 반응 안 좋았던 건 없잖아?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성적 내고 있고.”
“그 성장세에 마지막 앨범이라는 버프면 무조건이었습니다.”
“그건 또 모르는 거야. 항상 너한테 하는 말이지만 이 바닥에 무조건은 없어.”
“…….”
임진석 본부장이 정인수 대표의 말을 다시 되받아칠 말이 없는지 잠자코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애들은 어떻게 할 거요?”
“일단 내년까지는 끌고 가봐야 알 것 같은데. 나도 좀 머리가 아파. 어떻게 할지.”
“놔주기엔 좀 아깝지 않수? 생각보다 재미도 좀 많이 봤고. 세대 교체 시점인데 마땅히 터진 그룹도 없으니.”
“그렇긴 하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나눴다.
“남돌 맡을 때랑은 상황이 여러모로 다르니까 어비스 데리고 해외 나가서도 생각 좀 하고 틈틈이 알려주쇼. 그거에 따라서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그룹 데뷔시기도 조율해야 하니까.”
“알았다.”
정인수 대표의 말을 듣고는 임진석 본부장이 그대로 휙 하고 대표실을 나갔다.
* * *
“컴백 때는 항상 이유 불문하고 떨리는 것 같애.”
“쇼케이스 때는 두근거렸다면, 음방할 때는 긴장된다고 해야 하나.”
“그치?”
서지영과 박혜연이 서로 팔짱 끼고 가면서 대화를 나눴다.
이번 정규앨범 첫 음악방송 드라이 리허설을 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번 활동이 제일 맘 편한 거 같아.”
“그건 그래.”
“우리 팬덤이 그렇게 커져 있는지 실감이 안 났는데 깜짝 놀랐다니까. 그쵸 오빠?”
“어? 어.”
아무 생각 없이 같이 가는 도중에 서지영이 박혜연과 말하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서지영의 말처럼 팬덤의 크기가 생각보다 꽤 컸다.
미니앨범 ‘Love train’ 때보다 지금 정규앨범 ‘Fantasy’의 상승 속도가 모든 면에서 다 빨랐다.
음원도, 음반도, 반응도.
“초동 어디까지 올라갈까요?”
“글쎄다.”
내가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는 찰나에 같이 있던 남진수가 유미소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에게 한 질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진수의 반응에 유미소가 다시 조용히 읊조렸다.
“더도 말고 15만 정도만 찍었으면 좋겠다.”
“푸하하, 언니 욕심이 과한데?”
유미소의 말에 서지영이 자지러지듯이 웃었다.
“뭐 어때. 목표는 높게 잡으랬거든?”
“이룰 수 있는 목표를 높게 잡으랬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잡으라 하지는 않았을걸?”
유미소가 눈을 찌푸리며 말하자 서지영이 훈계하는 듯한 말투로 유미소에게 말했다.
“너, 이리 와봐. 너 지영이 아니지? 다른 그룹이지?”
“앗. 들켰다.”
서지영의 말을 들은 유미소가 성큼성큼 서지영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확실히 가시적인 성적이 눈앞에 나오니 애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아냐, 가능성 있어.”
“10만은 넘을 거 같은데 15만은 좀 힘들지 않을까요?”
“지금 추세면 될 것 같기도 해.”
“되면 좋겠다.”
누차 가능성 있다는 내 말에 신희진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초동 집계 기간은 보통 음원 발매 후 일주일을 잡는다.
4일이 지난 현재 스타즈의 정규앨범 ‘Fantasy’는 9만이 넘었다.
현재 음반 시장에서 초동 10만이 넘는 걸그룹은 한 손가락으로 셀 정도니 스타즈의 성적은 아주 놀랍다고 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초동 10만 넘는 그룹은 아무리 못해도 2년 차 이상의 그룹이나 가능한 스코어였다.
물론 스타즈가 이렇게 초동이 좋은 건, 시즌제 프로젝트 그룹의 경우에 다른 그룹보다 팬덤의 화력이 압도적으로 좋은 것도 한몫했다.
“오빠!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가 갈게요.”
이나라가 대기실로 돌아가는 와중에 내게 말했다.
“나도 들렀다 가야겠다. 팀장님, 나라랑 같이 갈게요.”
“그래.”
남진수에게 말하고는 이나라와 같이 각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난 후에 화장실 앞에서 이나라를 기다리는데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우, 걔네 언제 해체해?”
“얼마 안 남았잖아. 반년?”
목소리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멜론티였나?
그리고 둘의 대화 주제가 너무 흥미로웠다.
해체. 얼마 안 남았다. 반년.
촉이 왔다. 어떤 그룹을 보고 이야기하는지.
“빨리 좀 했으면 좋겠다. 기세등등한 게 눈꼴시려.”
“어차피 다 찢어지고 나면 지금 같은 화력 안 나올 테니 맘껏 즐기라 해.”
멜론티.
우리랑 같이 데뷔했던 그룹이다.
그렇지만 성적은 그저 그런. 평범한 이 바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그룹.
그래서 나도 얘네들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이름이 뭐였지. 예명이었던 거 같은데.
“다시 데뷔하면 우리가 선밴가?”
“그거 완전 개족보래. 현지 알지? 걔네 그룹에 저번 시즌 멤버 지은 선배 있잖아.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던데. 무시한다고. 아무래도 확 뜨진 못했으니까.”
“잘나가면 선배. 못 나가면 후배래. 유구한 역사라던데?”
“그거 말 되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에는 나라도 있을 텐데.
“그치? 근데 이 바닥이 기가 좀 세잖아. 그러다 보니 서로 감정도 많이 상한다더라.”
“그럴 수밖에 없지. 현타도 엄청나게 오겠다. 차라리 처음부터 윗공기 마시지 않았으면 몰랐을 텐데.”
“그러게. 우리가 더 속 편하겠다.”
안에서 다시 까르륵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나는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나오면 한 소리를 해야 할까.
그냥 둬야 할까.
안에 있던 이나라가 가만히 있었으니 나도 가만히 있는 게 맞겠지.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나오는 인기척이 들리길래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하는 척했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가는 느낌이 들자 고개를 들고 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은 모습의 둘을.
그 모습 뒤에 감춰진 모습을 보니 씁쓸했다.
그런 와중에 뭔가 싸늘한 기분을 느껴 오른쪽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이나라가 서 있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으슬으슬했다.
“어… 나라야. 언제 왔어?”
“방금요.”
“그래. 갈까?”
“네.”
“…….”
내 물음에 이나라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목소리에서 서리가 느껴졌다.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이나라는 반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이나라의 호흡이 뒤에서 느껴졌다.
천천히 내뱉는 심호흡이.
* * *
“언니. 몇 장 했어?”
“몰라. 100장은 넘게 하지 않았을까?”
박혜연이 자신의 앞에 쌓여 있는 앨범을 보고는 신희진에게 말했다.
신희진은 박혜연의 말에 쳐다보지도 않고 묵묵히 손을 놀려 사인에 몰두하며 말했다.
마지막 카메라 리허설까지 마치고 이제는 음악방송이 시작되어 대기실에서 대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의 대화를 들었을 이나라의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큰 변화는 안 보였다.
내색을 원체 안 하는 애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슬쩍 눈치를 다시 살펴보니 묵묵히 사인만 하고 있었다.
“난 왜 사인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유코 봐. 얼마나 간단해?”
“바보~”
푸념하는 박혜연을 신희진과 유코가 놀렸다.
내가 이나라를 걱정하는 것과 다르게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나도 저랬어야 했는데….”
“나 같으면 말할 시간에 꾸준히 하겠어.”
유미소도 합세해 박혜연을 놀렸다.
“손이랑 입은 따로거든?”
“말하면서 느려졌잖아.”
“네에. 네에. 잘나셨어요~”
박혜연도 이제는 완전히 서지영화가 다 된 것 같다.
“오빠. 폴라 사진도 찍어야 하죠?”
“어. 그것도 찍긴 해야지.”
“저 주세요. 전 끝났어요.”
“어, 잠시만.”
이나라가 내게 와서 말했다.
이나라가 앉아 있던 자리를 슬쩍 보니 앨범들이 옆에 있던 유미소에게로 다 넘겨져 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이나라에게 건넸다.
“다 끝낸 사람 이리로 와. 폴라 사진 찍자. 남는 건 사진뿐이야.”
사진기를 건네받은 이나라가 말하자 유코와 신희진이 움직였다.
“나도 사진 찍고 싶은데….”
“밀린 거 빨리하고 와. 그리고 이것도 일이거든?”
“사진은 찍으면서 놀 수 있잖아.”
박혜연이 투덜거리자 이나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 주위로 온 유코와 유미소와 함께 폴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애들을 보며 이나라가 아무렇지 않게 말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내 걱정과 다르게 이나라는 즐겁게 애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사이, 앨범에 사인을 마무리한 나머지 멤버들도 합류했다.
서로를 찍어주고 놀면서 이벤트용 폴라로이드 사진과 자신들이 소장할 사진까지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느새 애들이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똑똑.
“무대 올라 가실게요. 준비해 주세요.”
두 번의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음악방송 스태프가 시간을 알려주었다.
이내 애들과 함께 정규앨범 첫 공식 무대를 하러 무대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