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점점 더 커지는 (4)
“야, 야. 우리 서로 힘 빼지 말자? 응?”
안재성이 건들건들하면서 말했다.
“너 하나만 편~하게 말하면 모두가 편해지는데 입에 지퍼를 채워 놨어?”
“전 모르는 일입니다.”
오디션장 안에 있던 조연출이 안재성이 연기하고 있는 배역의 상대역 대사를 쳐줬다.
“몰라? 시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다시 이어진 안재성의 대사.
그리고 그 대사에 성재원 감독과 판성식의 눈빛이 변했다.
“야, 이렇게 증거가 나왔다니까?”
“전, 진짜 아니란 말입니다. 증거라뇨.”
안재성의 다혈질적인 말투와 조연출의 어색한 말투는 이질적이었다.
조연출이 다음 대사를 읽으려는 찰나, 판성식이 말했다.
“철수야! 고마 해라. 그 사람 아니다.”
“예?”
“또 또. 버릇 못 고쳤네. 나와, 인마.”
“반장님!”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안재성.
“거기까지.”
성재원 감독이 손을 들며 안재성의 연기를 끊었다. 그리고 안재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존 시나리오에 나와 있지 않은 대사와 호흡이 보이던데, 이유가 있나?”
“한 달간 경찰서에서 살았습니다.”
“호.”
안재성의 말을 들은 성재원 감독이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성재원 감독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재성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극 중 김철수는 반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열혈 형사입니다. 경찰서에서 형사님들이 민원 상대할 때를 보면 민간인 상대할 때와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의 각자 태도가 다 달랐습니다. 그리고 씬 3의 경우에는 상대가 범죄 이력이 있는, 혹은 있을 거 같은 배역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없는 욕까지 쓰면서 몰아붙였다?”
성재원 감독의 눈이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변했다.
그러나 안재성과 같이 들어온 오디션 멤버 네 명은 표정이 점차 굳어 갔다.
지금 현장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걸 감지한 듯했다.
“예. 그게 김철수라 생각했습니다.”
“좋아. 그럼 94 씬도 해보지.”
안재성의 대답을 들은 성재원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재원 감독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판성식이 소리쳤다.
“희택아! 이번엔 내가 대사 칠 테니까 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방금도 호흡 끊어지는 거 같아서 영….”
판성식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시작하지.”
성재원 감독의 말에 안재성이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판성식을 바라보며 대사를 토해냈다.
“내가 이러는 이유? 공권력이 개 같아서 그래. 이것 봐. 내가 실수만 안 했어도 아무도 몰랐잖아?”
“그런다고 살인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안재성의 대사에 판성식도 감정을 잡아 대사를 쳐줬다.
판성식의 대사를 들은 안재성이 광소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정당화해 주는데? 판사? 검사? 형사? 아니야. 아니라고!”
안재성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판성식을 응시했다.
“오케이!”
성재원 감독의 말에 심사위원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판성식은 재밌다는 듯 시종일관 안재성을 쳐다보았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더불어 성재원 감독도 팔짱을 끼며 사색에 잠긴 모습이었다.
정성규 PD가 술렁이는 심사위원들의 분위기를 잡고는 안재성에게 말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기다리시면 됩니다.”
“네.”
안재성이 정성규 PD의 말에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안재성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정성규 PD가 서류를 보고 안재성 옆에 있던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분은… 박재빈 씨?”
“네.”
“똑같은 김철수 역이네요.”
“네….”
정성규 PD의 말에 박재빈이 기가 죽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재원 감독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무서운 표정으로 박재빈을 쳐다봤다.
“그럼 한번 봅시다. 씬 3.”
이내 성재원 감독이 박재빈을 힐끔 쳐다보더니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박재빈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울상 짓다가도, 감정을 잡아보려는 듯 기괴한 표정으로.
* * *
우리는 오디션이 끝나고 근처 곱창 맛집으로 이동했다.
“너, 앞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김철수는 다들 한마디 듣고 잘 봤다고 하냐?”
“하하….”
어느새 홍승기가 안재성에게 편하게 말했다. 안재성은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궁금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 수 있던 건 성재원 감독과 판성식이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거다.
안재성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과 호흡도 맞췄고 자기가 연기한 이후로 자신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근데 형. 왜 김철수 배역 말고 배현우 지원 하셨어요?”
홍승기가 내 물음에 잔에 들어 있는 소주를 한 번에 입에 털어놓고는 말했다.
“김철수도 좋은데, 난 그냥 악역을 하고 싶었어. 난 배현우가 좋더라. 그리고 어차피 판 선배님 단독 같은 느낌이잖아. 이 영화.”
“아무리 그렇긴 해도….”
“김철수가 임팩트는 더 있겠지. 감초 같은 캐릭터가 알고 보니 흑막! 캬! 근데 난 별로였어.”
임팩트로는 김철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홍승기의 말도 맞았다.
“극을 끌어가는 인물이 되고 싶으신 거죠?”
“어, 맞아. 영화가 판 선배님 원톱이긴 하지만 그 대적자는 배현우니까.”
“배현우는 느낌 오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디션 잘 본 거 같냐고.
“글쎄, 모르겠다. 워낙 지원한 배우들이 많아서. 신인은 김철수 노렸을 거고 나같이 짬 좀 있거나 휴식기인 배우는 배현우 노리지 않았을까? 내 그룹만 해도 현수 형도 배현우 역 지원이었고.”
“그냥 안전빵으로 김철수 가자고 했는데 한사코 배현우 하겠다고 해서.”
홍승기의 말에 옆에 있던 차태수 팀장이 거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차태수 팀장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뭐? 자신 있다며?”
차태수 팀장이 능청맞게 말했다.
“팀킬은 하지 말아야죠.”
“너 내가 김철수 했으면 못 땄을 거 같아?”
내 말에 홍승기가 눈을 부라렸다.
“하하하….”
안재성은 우리 둘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홍승기는 피식 웃었다.
“뭐 조금 위험하긴 했을 수도?”
“곧 죽어도 밀린다는 이야기는 안 하시네요.”
내 말에 홍승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재성을 보고 말했다.
“당연하지. 배우는 자존심 빼면 시체야. 재성이 너도 새겨들어. 그래도 안 굽히면 부러져서 죽으니까 굽힐 땐 굽히고. 대쪽 같으면 살아남기 힘들어.”
“네, 새겨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술은 좀 하냐?”
“네.”
“오, 좋아. 좋아.”
아무래도 홍승기가 안재성이 마음에 든 듯했다.
보통 홍승기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인물을 대할 때는 딱 하나다. 술을 권유하는 것.
그렇게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하나둘 술친구로 늘리는 게 홍승기의 특기였다.
“자, 먹고 죽자. 우리의 ‘Finder’를 위하여!”
“위하여!”
홍승기의 말에 맞춰 모두가 잔을 들고 술자리를 즐겼다.
* * *
정신없이 바쁘고 다사다난했던 8월을 보내고, 애들의 정규 앨범 ‘Fantasy’ 발매와 쇼케이스까지.
그리고 그 쇼케이스가 끝난 지금.
쇼케이스장에서 애들을 숙소로 바래다준 뒤 집으로 돌아와 경건한 마음으로 샤워를 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매니저 기본 업무인 대중들과 팬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먼저 음원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음원 사이트를 제일 첫 번째로 들어갔다.
[1위 Fairy – Stars]
[2위 뻔한 Fantasy – Stars]
[3위 한 여름밤 – 빈.(feat 악동)]
…….
[23위 신기루처럼 – Stars]
…….
[26위 미로 – Stars]
…….
[32위 Fun한 안녕 – Stars]
걸그룹으로서는 흔치 않은 지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근데 순위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음원 시장은 진입은 팬덤으로, 유지는 대중이 붙어야 순위 유지가 가능했다.
그런데 음원 발표를 18시에 했음에도 23시인 지금 1, 2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대중도 듣고 있다는 증거였다.
애들의 노래가 그 정도로 듣기 편안한 곡이었나.
반응을 한번 살펴보자.
[☆★이번 노래는?★☆]
가장 조회 수가 높고 추천이 높은 글을 클릭해 들어갔다.
[스타즈의 이번 노래는 이전에 내놨던 앨범 두 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다.
말에서 모순이 느껴지는가? 맞다.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다. 이번 앨범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과연 정인수답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스타즈 ‘Fantasy’는 정인수 프로듀서 이름으로 나갔지만, 실상은 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내 이름은 사이드로 빠졌다.
앨범에 이름이 안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메인으로 올리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다.
[이전과 다르면서도 같다는 건, 다음과 같다.
스타즈의 그룹 특성상 이번 앨범에 모든 걸 쏟아내야 했다. 그렇다면 4년 차, 5년 차들이나 하는 컨셉 변화를 꾀하기는 쉽지가 않다.
기존에 있던 미니앨범 두 개의 경우 대중성을 노린 손쉬운 안무와 반복적인 훅을 이용한 곡들이었다. 물론 이건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스타즈는 이래요!’하는 확고한 컨셉과 함께 노래는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고, 무대를 볼 때는 눈 호강이 더해졌다.]
맞다. 이처럼 우리는 큰 컨셉 탈피를 하지는 않았다. 앞을 포용하는 완성형으로 갔을 뿐이다.
그리고 노래의 경우에도 모험하지 않았다. 모험은 뒤가 있는 그룹이나 하는 거다. 우리는 지금 뒤가 없었기에 철저히 트렌드에 맞춰서 짰다.
[이번 컨셉은 아련하면서도 신비스러움으로 잡았다. 그리고 이건 지금 스타즈의 상황과 성향에 백 프로 들어맞는다.
이전까지는 귀여움과 청순함 같은 단조로움이었다면 한층 더 발전한 모습으로 나온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아무래도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미니앨범에는 없던 김현진 프로듀서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는데, 이 사람 때문이 아닐까 추론해본다.]
공교롭게도 여기에 적힌 말들은 다 회의에서 나왔던 말들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언급된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움찔했던 내 몸과는 별개로 눈은 글을 마저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저 흔한 방구석 ㅈ문가일 뿐이다. 그런 놈이 뭐라고 이런 글을 싸지르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는 있지 않을까?]
└방구석 ㅈ문가 글이라 별로 공감 안 될 거 같았는데 공감돼서 추천 눌렀음
└이번 앨범이 대중적이면서도 편안하게 들리기는 해. 무슨 차이지??
└애들이 발전한 듯?
└뭔가 좀 더 표현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그냥 노래가 좋음. 다 좋음.
└고거슨 ㅇㅈ하는 부분이구요
└근데 여기 적혀 있는 프로듀서 이름 중에 김현진? 매니저 아님? 언제 프로듀서 됨?
└어? 그 푸우매니저 이름 아님?
└동일인물이야 동명이인이야?
└같은 말 아니냐?
└우리 애들한테 어디 가서 지식 자랑하지 마라 쪽팔리니까
본문과 댓글 중에 가장 눈에 띈 건 아무래도 내 이름을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변화를 프로듀서 하나 추가했고, 그로 인한 변화라니 그건 너무 간 추측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이었다.
내부 관계자가 썼나 싶을 정도다.
나는 팬들에게 꽤 알려진 매니저라 팬들도 내 이름을 알고 있어서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 갑론을박도 벌이고 있었는데 상황이 참 웃겼다.
확실한 건 음원과 인터넷 반응을 보니 감이 왔다.
이번에도 내가 옳았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