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점점 더 커지는 (3)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
무사히 녹음 일정이 끝나고 타이틀 곡 ‘Fairy’의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오전부터 찍고 있던 뮤직비디오 촬영이 새벽에 들어서 지금 끝이 났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얘들아, 의상 갈아입을 때 꼭 조심해야 한다.”
“네!”
김수연 스타일리스트가 애들에게 입고 있는 의상에 대해 주의점을 알려주고는 애들과 같이 의상실로 들어갔다.
지금 스타즈 애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자체 제작에, 얇고 망가지기 쉬운 재질이어서 평소보다 더욱 조심했다.
춤추다 보면 망가질 수도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이번엔 춤 선을 강조한 안무 중심이라 관리만 잘하면 망가질 위험은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의상실로 들어가는 애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남진수가 내게 다가왔다.
“세트장 부수는 건 좀 아깝긴 하네.”
“그러게요.”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순수한 느낌이야.”
남진수가 세트장을 보며 말했다.
요즘에 와서는 다들 뮤직비디오에 돈을 투자하는 추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스타즈의 타이틀 곡 ‘Fairy’의 뮤직비디오는 돈을 쓴 편이었다.
스타즈의 성적이 그저 그랬다면 평범하게 찍고 말았겠지만, 스타즈의 지금 위치는 돈을 쓸 만했다.
“그걸 노리긴 했지만요.”
“잘 먹힐 거 같다. 요즘 감성은 아니긴 한데. 애들 분위기랑 컨셉에는 괜찮은 거 같아. 오히려 그래서 신선하달까.”
“하하….”
남진수의 칭찬에 조금 머쓱해졌다.
확실히 이번 스타즈의 정규 앨범‘Fantasy’에는 내 손길이 다 닿았기 때문이었다.
앨범, 뮤직비디오, 재킷 촬영 등. 모두 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위치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게 이런 걸까.
“요새 이런 컨셉은 잘 안 나왔으니까. 게다가 이번 앨범이 어지간하면 마지막이 될 테고… 요정도 환상 속에 나오는 생물이잖아. 그래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요정 같은?”
“음….”
내가 민 기획과 컨셉이 무조건 오케이였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컨셉에 관해서는 반반이었다.
그러나 김동현 작곡가, 민서희 팀장 그리고 스타즈 애들의 의견이 실리자 결국은 내가 미는 컨셉으로 최종 승인 났다.
남진수의 말도 컨셉 회의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였다.
나는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럴듯해 보여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오히려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느껴 환상이라는 컨셉을 잡은 게 아니었을까.
“고생했다. 성적만 잘 나오면 되겠네.”
“성적은 뭐… 잘 나오지 않을까요?”
“하긴, 개똥으로 만들어도 잘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해.”
“개똥이라뇨… 엄선된 퀄리티입니다.”
스타즈의 지금 상황에서는 망하기가 쉽지 않기는 했다.
예전과 다르게 팬덤으로 돌아가는 아이돌 시장의 경우, 성장세가 보이면 쉽게 망하지는 않는다.
남진수의 말도 그런 맥락이었다.
“말이 그런 거지.”
“뭐, 그래서 저보고 하라고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건 또 아닌 거 같은데….”
남진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 내일 몇 시냐?”
“오디션이요?”
“어.”
“내일 두 시요.”
나도 내일 일정만 끝나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안재성의 ‘Finder’ 오디션.
“그럼 오전에 애들 픽업할 시간은 되겠어?”
“네.”
“언제 끝날지는 알아?”
“순번은 모르겠어요.”
“알겠다. 내일은 오디션 처리하고 바로 퇴근해.”
“네.”
남진수오 대화를 끝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스태프들이 정리하며 세트장 정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애들만 나오면 우리도 오늘 퇴근이다.
마냥 애들 기다리기가 심심했는지 남진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할 건 다 했네. 끝낸 소감은 어때?”
“어렵네요. 잘된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이렇게 바쁘고, 생각할 게 많을 줄 몰랐어요.”
“프로듀서가 괜히 프로듀서겠냐.”
로드 매니저는 하라는 것만 하면 됐다.
뭐 사오거나, 애들 스케줄 관리하거나.
정말 간단한 게 대부분이다.
지금 내 경력으로는 다시는 없을 기회가 와서 한 그룹의 최고 책임자급이 되었는데, 막상 되어보니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뭐가 어렵겠어?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직접 해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는 확실히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다가 성적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기도 하니까….”
“그건 방금에도 이야기했지만 괜찮을걸? 노래도 내부 반응은 좋았고, 컨셉이 좀 올드한 거 같기도 한데, 요즘에는 없었던 컨셉이라 먹힐 거 같기도 하고. 나쁘진 않아.”
“그런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프로젝트 그룹 특성상 활동 기간 다가와서 내놓는 앨범이 흥행 안 하기는 힘들어.”
“그럼 다행이고요.”
“그래도 또 모르긴 해. 워낙 변동이 심한 동네라.”
“하하….”
성적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바닥은 과정보다 결과가 압도적으로 중요했다.
컨셉이 B급이어도 성공하면 A급이 되는 거고 A급이어도 실패하면 B급이 되는 거다.
남진수는 걱정하지 말라며 누차 이야기했지만 결과는 나와 봐야 아는 거니까.
그래서 예전 애들의 타이틀 곡을 밀었을 때보다도 더한 압박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어색한 내 웃음 사이로 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박 힘들다….”
“그래도 바쁘니까 뭔가 좋다.”
“그건 그래.”
점차 다가오는 애들을 보며 남진수가 말했다.
“얘들아. 후딱 가자. 늦었다.”
“네~”
세트장에 아직 남아 있는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세트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애들과 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이나라가 내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요? 만족스러워요?”
그리고 그 물음에 내가 대답해줄 말은 정해져 있었다.
“응. 아주.”
* * *
“쉬고 있던 배우들이 다 여기 모여 있네.”
“그러게요.”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휴식기에 들어간 배우들 면면이 꽤 보였다.
한승호, 김현수, 송기원 등.
새로운 마스크가 6할이라면 기존에 봐왔던 마스크도 4할은 되는 것 같았다.
“겁먹었냐?”
“아뇨. 오히려 재밌죠. 이런 사람들과 같이 뛴다는 게. 그리고 전 항상 오디션장 올 때마다 느껴요, 짜릿한 느낌을. 결과는 그저 그랬지만.”
“내정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영화 이미지와 맞지 않은 걸 수도 있지.”
어설픈 내 위로의 말에 안재성이 웃었다.
“그렇게 말 안 해주셔도 돼요. 이렇게 기회 잡는 걸로도 충분하니까요.”
“내가 너무 바빠서 리딩이라던가 뭘 도와준 게 없어서 미안하네.”
“그건 연기자가 알아서 해야죠. 리딩이야 따로 맞춰볼 것도 없었어요.”
“그래도….”
“배역에 맞춰서 깊이 있게 의논 나눌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해요.”
“그래. 알았다.”
내 말을 끝으로 안재성이 눈을 감았다.
오디션 시작 시각이 다가오니 아무래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는 듯했다.
그런 안재성을 놔두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을 찾았다.
분명 오디션을 본다고 했었는데 여러 인물 사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찾던 인물이 멀리서 급히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여, 현진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홍승기였다.
우리의 인사를 받은 홍승기가 바로 안재성에게 알은체했다.
“안녕하세요. 우리 서로 처음 만나죠?”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절요?”
홍승기의 말에 안재성이 의아한 눈으로 변했다.
“곧 시간 다가오니까 회포를 풀기엔 좀 그렇고, 끝나고 일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선배님.”
“그럼 끝나고 술 한잔해요.”
“네.”
어떻게 기승전술이 될 수가 있는지.
안재성의 대답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짓던 홍승기가 나를 바라봤다.
“혼자 오셨어요?”
“차 팀장님이랑 왔지. 주차하고 계셔.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먼저 왔어.”
“지금까지 안 오시길래 전 안 오시는 줄 알았죠.”
“위험했어.”
홍승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너도 시간 괜찮냐? 요즘 바쁘다는 건 들었는데.”
“이걸로 끝이긴 한데….”
“그럼 너도 와.”
“‘올래?’도 아니고 ‘와’예요?”
“싫어?”
내 말에 홍승기가 인상을 구겼다.
“그러면 여기서 싫다고 대답할까요?”
“올 거면서 말이 많아.”
“배우님들 이동해 주세요!”
투덜대는 홍승기의 말과 함께 진행 스태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형. 갔다 올게요.”
“그래. 잘하고 와.”
안재성의 말에 내가 대답을 해주자, 홍승기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난 뭐 없냐?”
“경쟁자잖아요.”
“같은 배역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어쨌든요.”
“매정하기는.”
홍승기가 혀를 차더니 안재성과 함께 진행 스태프에게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는 내 배우를 믿는 수밖에.
* * *
“다음 그룹 들어오라고 할까요?”
“잠깐 5분만 쉽시다.”
진행 스태프의 말에 성재원 감독이 말했다.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진행 스태프가 나가자 성재원 감독 옆에 있는 인물이 성재원 감독에게 말했다.
“성 감독. 마음에 드는 배우는 있나?”
“있으면 진작에 끝냈지. 이제 두 그룹 남았는데, 없어서 쉬자고 한 거 아냐. 머리 아파서.”
주위 사람들이 성재원 감독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요즘 애들은 다 판에 박힌 연기만 하네. 디테일이 없어. 디테일이.”
“그래도 승호나 기원이는 괜찮지 않았어?”
“괜찮긴 무슨. 발전한 게 하나도 없는데.”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냐?”
성재원 감독의 말에 옆에 있던 인물, 판성식이 황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판성식.
성재원 감독의 페르소나.
성재원 감독과 초창기부터 줄곧 함께했던 성재원 감독의 분신이다.
“나 좋으라고 이러나? 서로 좋자고 이러는 거 아냐. 개떡 같은 애랑 호흡 맞춰보고 싶어?”
“감독님 그래도 남은 그룹 포함해서 김철수 배역은 그중에서 고르셔야 해요. 공개 오디션 열 시간이 없습니다.”
정성규 PD가 성재원 감독에게 애타는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내가 답답해서 그래.”
정성규 PD의 말에 성재원 감독은 페트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대답했다.
이내 페트병을 구기고는 다시 강하게 말했다.
“진행합시다. 열 뻗쳐서 술 먹으러 안 갔으면 좋겠는데.”
성재원 감독의 말에 정성규 PD가 대기하고 있던 진행 스태프에게 가보라며 고갯짓했다.
“또 그 지랄 맞은 넋두리 내가 감당해줘야 해?”
“그럼 누가 상대해 주는데?”
“거 희택이 있잖아. 희택이.”
판성식의 말을 들은 누군가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움찔했다.
“희택이는 안 돼. 열 받아서 병 깰 수도 있거든.”
“그 지랄 맞은 성격 나 아니면 누가 받아줘?”
“거, 조용히 해. 들어오잖아.”
판성식의 말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다음 그룹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섯 명의 인물이 차례대로 오디션 심사위원 앞에 서자 성재원 감독이 말했다.
“나는 다른 거 안 봅니다. 앞서도 말한 거 또 말하려니까 짜증나기는 하는데 원래 성격이 지랄 맞은 건 알고들 있을 테고.”
성재원 감독의 말에 오디션장에 입장한 인물들이 긴장된 얼굴로 성재원 감독을 쳐다봤다.
“난 딱 하나. 연기만 봅니다. 내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면 바로 컷할 수도 있으니 유념하시고.”
성재원 감독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서류를 들춰봤다.
“먼저 안재성 씨.”
“네.”
“이 감독 새끼 데뷔작으로 데뷔했다고?”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안재성의 말에 심사위원 측에 있는 인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신형 감독이 조연출로 들어간 그거?”
“그거 맞아. 유난 떤다고 내가 전화로 욕 한 사발 했어.”
“이 감독님 본 지도 오래됐네.”
판성식과 성재원 감독이 잠깐의 담소를 나누더니 안재성을 바라봤다.
“지망이… 김철수네? 자, 시작해 봅시다. 씬 3.”
성재원 감독의 말에 안재성의 눈빛이 변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