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점점 더 커지는 (1)
“내일이죠?”
“네.”
“어때요?”
민서희 팀장이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떻냐니.
두근두근했다.
“어릴 적 신밧드의 모험을 읽으면서 나도 모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그런 기분이네요.”
“모험이란 건 잘 알고 계시네요?”
“모르는 게 바보겠죠.”
민서희 팀장이 내 말에 푸훕 하고 웃었다.
어지간히 웃긴가보다.
나도 웃기긴 한데 웃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뭐, 걱정하지 마세요. 저랑 동현 오빠가 적절하게 컷할 테니까요.”
“차라리 그럴 바엔 제가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애들의 컨셉과 앨범의 방향성만 제시해주는 등대 같은 역할로 끝일 줄 알았는데 또 일이 커져 버렸다.
앨범에 담을 트랙리스트가 완성되고, 트랙리스트를 정인수 대표에게 뽑아가자 정인수 대표가 ‘뽑아왔으니까 네가 만들어 봐야 할 거 아닌가?’ 하는 말에 어어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글쎄요. 느낌을 살리는 건 프로듀서마다 달라서요. 정인수 대표님도 거기에 기대하시는 게 아닐까요?”
“음악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프로듀싱 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없을걸요?”
“하….”
내가 음악적 지식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민서희 팀장이나 애초에 작곡했던 정인수 대표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랐다.
내가 노래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게 맞을까?
차라리 연기 관련이라면 자신이 있었을 텐데.
시시각각 변하는 내 표정이 웃긴지 내 앞에서 민서희 팀장이 킥킥 웃었다.
“정말 놀리는 맛이 있네요?”
“네?”
놀리는 거면 그만 놀리시죠. 심장에 해로우니까.
“음악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프로듀서를 하는 경우도 있긴 해요. 현진 씨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프로듀서는 작곡도 하면서 편곡도 하는, 그런 프로듀서죠?”
“네.”
“프로듀서도 스타일이 있어요. 지금의 현진 씨처럼 전문적인 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방향성만 제시하는 프로듀서도 있죠.”
“그렇군요.”
선생님처럼 설명하는 민서희 팀장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인수 대표님은 어떤 스타일인지는 아시죠?”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하는?”
“맞아요.”
프로듀서도 유형이 있었구나.
처음 안 사실이었다.
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프로듀서밖에 보지 못했기에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럼 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프로듀서겠군요.”
“그렇겠죠?”
나 같은 케이스도 종종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서희 팀장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엇나가는 거 같으면 저나 동현 오빠가 컷한다니까요?”
“컷한 시점에서 아웃 아닙니까?”
“글쎄요?”
내 말에 민서희 팀장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벼락치기 더 하러 김동현 작곡가님한테 가보겠습니다.”
“네, 내일 봐요.”
“네.”
민서희 팀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A&R팀에서 빠져나왔다.
내일 있을 레코딩 작업에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왔는데 진만 빠진 기분이었다.
* * *
“좋은데요?”
“그런가요?”
김동현 작곡가가 레코딩 작업을 하다가 내게 말했다.
내 느낌 가는 대로, 그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김동현 작곡가는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 대번에 파악하고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저번에도 바로 서지영에게 맞춰서 작업하더니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괜히 업계 0티어 작곡가라고 불리는 게 괜한 게 아니었다.
나 또한 이렇게 작업하면서 김동현 작곡가에게서 배우는 게 많았다.
“네, 지금이라도 음악 공부해 보시는 게 어때요? 감각이 있으신데. 원래 재능은 늦게 개화하는 법이거든요.”
“하하… 말씀만이라도 정말 감사하네요.”
김동현 작곡가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마 김동현 작곡가가 이렇게 느낀 건, 내가 앞으로 유행할 트렌드를 알고 있고 그것에 맞춰 요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농담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이 나이의 음악이라뇨. 매니저 일만 해도 바쁩니다.”
김동현 작곡가가 내 거절에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김동현 작곡가의 반응을 보니 솔직히 혹했다.
정말 내게 재능이 있는 걸지도?
아니다. 그건 내가 트렌드를 알고 있기에 얻는 어드밴티지다. 지금 음악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매니저보단 음악 프로듀서가 더 비전 있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좀 실례인가?”
김동현 작곡가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저는 그래도 매니저도 매니저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프로듀서나 매니저나 누굴 프로듀싱 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미안합니다. 말실수한 거 같네요.”
“아닙니다.”
김동현 작곡가는 내가 봤던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사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이었다.
서지영과 같이 있을 때부터 느꼈지만 오만해질 법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좋았다.
일례로 나를 대하는 태도와 나와 작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작업하면서 시종일관 나를 깔보거나 하지 않았다.
협업에서는 깔보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만 내 위치와 이 사람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내 말에 태클을 걸 법도 한데.
대단한 사람이다.
“조금만 더 해볼까요?”
“네.”
“이미 완성되어 있는 리스트에서 더 건드릴 게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좋은 거겠죠?”
“당연하죠.”
김동현 작곡가가 웃으며 말했다.
다시 시작된 레코딩 작업이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신희진과 영화 작업을 하면서 리딩과 연기 지도할 때와는 조금 색다른 기분이었다.
“7번 트랙 사비 부분은 어때요? 뭔가 늘어지는 느낌 받지 않아요?”
“거기는….”
김동현 작곡가의 말에 정신 차리고 집중하기 시작하자 다시 한번 실감 났다.
내가 진짜로 음악 프로듀싱을 하고 있구나 하고.
* * *
“내 안의 미로가 있어~”
“너도 헤매고 있니?”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를 바래다준 Fairy.”
“나를 바래다준 Fairy.”
“지금 목 쓰지 말고 있다가 써.”
각자의 파트를 부르면서 오늘 녹음할 타이틀 곡 Fairy를 부르고 있었다.
매우 신나 보였다.
“이 정도로 목 안 나가거든요?”
“그래도 조심해. 녹음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데.”
“그러게요~ 저희는 빨리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서지영이 말을 하면서 눈을 흘기며 나를 음흉하게 바라봤다.
저 눈은 아무리 봐도 내가 잘하면 된다는 눈빛인 것 같다.
“오빠 근데 녹음실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뭘?”
“오늘 우리 픽업은 팀장님이 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해.”
이나라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나 하고.
“원래 녹음실에서 가수가 기다리고 있으면 프로듀서는 맨 마지막에 등장해서 ‘자, 이제 시작할까?’ 하고 말해줘야 된다구요.”
“맞아, 맞아. 그게 기본 룰인데.”
“퍽이나….”
유미소와 박혜연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금 친해진 다른 아이돌한테도 물어봐도 똑같던데.”
“무게감 있게 등장해서 분위기를 기냥 휘어잡는!”
이나라와 서지영도 가세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숙소에서 프로듀서가 소재인 드라마를 보고 있나.
“유코랑 린이 가사 발음은 좀 어때?”
“굿!”
“좋아요.”
키득키득 웃고 있던 유코와 린에게 물었다.
“민 팀장님도 그렇고, 정인수 대표님도 그렇고, 김동현 작곡가님도 그렇고, 너희 둘은 특히 조금 걱정하시더라고.”
셋 모두 다른 인물들보다 외국인 멤버인 유코와 린의 디렉에 관해서는 내게 조금씩 조언을 해주었다.
“왜요?”
“아무래도 어눌하면 전달력이 많이 약해지니까.”
첫째도 전달력.
둘째도 전달력.
연기자가 내뱉을 때 발음을 보는 것처럼 일단 전달력의 기본부터 되어야 한다.
정인수 대표도 Love Up&Down 앨범에서 유코와 린, 둘의 녹음할 때는 발음은 정말 쥐 잡듯이 잡았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하면 바로 다시 녹음했다.
“유코랑 린이는 그래도 노래할 때만큼은 네이티브 아니야? 대표님은 워낙 깐깐해서 그렇지.”
“맞아. 난 그게 신기하더라.”
신희진이 유미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이나라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유코와 린은 또 특유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 말하는 거 보면 완전 외국인인데.”
“쟤네 컨셉이라니까? 한국말 못하는 척. 그걸로 이득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서지영이 말하자 유미소가 큰 소리로 유코와 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닌데….”
“몰아가지. 말아줄래?”
유미소의 말에 유코와 린이 유미소를 째려봤다.
“저봐 저봐. 억울하거나 다급해지거나 화날 때는 네이티브임.”
“야!”
유코가 더는 못 참겠는지 소리를 질렀다.
쟤가 소리 지른 건 또 처음 본다.
유미소는 유코가 분개하든 말든 놀리는 데 집중했다.
“이봐 이봐. 완전 또렷해.”
“너 뚜고바.”
“또, 또. 저 봐. 일부러 어눌하게 말한다.”
유미소의 말이 얄미웠는지 유코가 그녀를 꼬집기 시작했다.
“야! 꼬집지 마! 아파!”
으르렁. 으르렁.
유미소는 린보다 나이가 같은 유코가 놀리기 좋았는지 물고 늘어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애들을 보니 쿵쿵대던 심장이 조금은 진정이 됐다.
* * *
“삼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네!”
녹음실에 들어가니 김동현 작곡가 홀로 우리를 반겼다.
“삼촌! 저는요!”
“넌 2일 전에도 봤잖아.”
“애정이 식었어!”
서지영이 짐짓 삐진 척하자 김동현 작곡가가 신선 웃음만 내보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네.”
어제 김동현 작곡가와 꽤 늦은 시간까지 레코딩 작업에 몰두했다.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았기 때문이었다.
“어제? 어제까지 작업했어요?”
“응. 노래가 좀 더 부드러워졌어.”
“오오.”
이나라가 의아하게 내게 묻자 김동현 작곡가가 대답했다.
게다가 노래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는 말에 애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민서희 팀장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네.”
애들이 말했던 마지막에 등장할 프로듀서는 민서희 팀장인가보다.
“서희 언니도 와요?”
“서희 언니?”
박혜연이 반짝이는 눈빛을 하며 내게 물었다.
얘네가 언제 민서희 팀장이랑 마주칠 일이 있었나?
너무 친근하게 불렀다.
“아, 서희 언니랑은 예전에 Lovely할 때 알게 됐어요!”
“그때 말고 본 적 없지 않아?”
“꾸준히 연락했는데요?”
“그래?”
“네.”
민서희 팀장은 왜 내게 애들과 친분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걸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민서희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언니!”
“우리 혜연이 오랜만에 보네?”
박혜연이 민서희 팀장에게 와락 안겼다.
잠깐의 포옹 후 민서희 팀장은 내게 와 말을 걸었다.
“노래 몇 개 조금 손보셨다면서요?”
“네.”
“오히려 컨셉이랑 트렌드랑 더 맞춰졌어요.”
내 옆에 있던 김동현 작곡가가 어떻게 손봤는지 매끄럽게 설명했다.
“그래요?”
“네.”
민서희 팀장이 나를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그럼 이제 올 사람은 다 왔으니까 시작해야겠지.
분위기를 잡고 목소리를 깔았다.
“흠흠. 자, 이제 시작할까?”
올 때 차에서 애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 무게를 잡고 야심차게 한마디 했는데 녹음실이 싸늘한 정적에 휩싸였다.
“…….”
잠시 정적이 흐르자 민서희 팀장을 주축으로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하시는 거예요?”
“애들이 꼭 이렇게 말 해줘야 있어 보인다고 해서….”
“진짜 그걸 할 줄 몰랐는데.”
“순진한 듯.”
애들의 말에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민서희 팀장의 눈빛이 괴로웠다.
대놓고 웃는 유미소가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저걸 그냥.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