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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32화 (132/200)
  • 제132화. 특별하고도 이상한 (2)

    “오늘 생일이라고 선물 기대하신 거예요?”

    “오빠가 생일 안 알려줬잖아요.”

    “바쁜데 어떻게 챙겨요.”

    “아니….”

    이나라가 가벼운 잽을 먼저 날렸고 옆에서 신희진이 스트레이트를 꼽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미소가 훅으로 마무리했는데 정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말만으로도 이렇게 맞은 기분이 나는구나.

    “받은 게 있어서 쪼끔 미안하긴 한데 모르는 걸 어떻게 해요.”

    게다가 이어진 서지영의 말이 내 심장에 꽂혔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야 애들이 담당 연예인이니 줄줄이 꿰고 있는 거였지만 애들은 달랐으니까.

    오히려 뭘 믿고 내가 애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알고 있다고 여긴 게 미련한 게 아닐까.

    그래도 나도 사람인 이상 기대감이 무너져 섭섭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너희들이 갑자기 생일 이야기하고 그러니까 그랬지…”

    “아무튼,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꼭 챙겨드릴게요!”

    “꼭! 꼭!”

    다음이 있겠니. 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그래, 고맙다.”

    내 말을 끝으로 애들은 자기들끼리 오늘 있었던 일, 숙소에서 뭐 할지, 청소를 안 했다는 둥 평소처럼 수다를 떨었다.

    나도 평소라면 슬쩍슬쩍 말을 걸었겠지만 왠지 그러기가 싫었다.

    그렇게 애들과 나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 단절된 채로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차에서 내리자 애들이 내게 인사를 하길래 나도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이 받아줬다.

    “오빠, 오늘 생일인 거 몰라서 미안해요. 오늘 얼마 안 남긴 했지만…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축하해요!”

    이나라가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하자 애들도 축하한다는 말을 해줬다.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인데 아무튼 고맙다.”

    “선물은 당장은 힘들고 나중에 드릴게요.”

    “그래. 쉬어.”

    “들어가세요!”

    왁자지껄 떠들면서 숙소로 들어가는 애들을 바라보다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동을 켜고 멍하니 있었다.

    1년에 하나뿐인 날인데 뭔가 허무했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부터 학생 때보다 생일이란 게 의미가 많이 없어진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특별한 날이라 생각했는데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싱숭생숭했다.

    이게 아무래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면 그저 그랬겠지만 기대한 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뭐라고 기대했던 걸까.

    왠지 우스웠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얼굴이 후끈거렸다.

    지잉. 징. 지잉.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려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오빠, 아직 안 가셨죠?

    “어, 이제 출발하려고.”

    전화를 받아보니 박혜연의 목소리였다.

    - 저 베개 놓아둔 거 안 가져와서요. 그것 좀 가져다주시면 안 될까요?

    “베개?”

    - 네. 제가 항상 들고 다니던 거요.

    “잠시만.”

    박혜연이 항상 들고 다니던 베개가 있다. 종종 두고 가곤 해서 이렇게 연락이 올 때가 있었다.

    본인 말로는 없으면 잠을 못 잔다나.

    뒤를 돌아서 쓱 찾아봤는데 베개는 안 보였다.

    “없는데?”

    - 불편해서 트렁크 쪽에 놔뒀어요!

    “알았어. 찾아서 들고 갈게.”

    - 네!

    박혜연과의 통화를 끊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 뒤편으로 가 트렁크 문을 열었다.

    익숙한 베개와 함께 큼지막한 상자가 있었다.

    - 절대 열어보지 마시오!

    누가 봐도 열어봐달라는 상자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나를 반긴 건 포장된 상자와 그 위에 얹혀있는 편지 일곱 개였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지금을 위한 빌드업인가 하고.

    먼저 첫 번째로 이나라의 편지부터 시작해 신희진, 유미소, 유코, 서지영, 박혜연, 린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그중 기억나는 멘트만 다시 추려본다면.

    [오빠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요. _나라]

    [내년에도 볼 수 있겠죠? _미소]

    [좋은 사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_유코]

    [오빠 같은 사람 없을 거예요. 모두가 좋아하는 거 알죠? 계속 가요. _희진]

    [요즘 내 히스테리 받아줘서 고마워요. 근데 이거에는 오빠 지분도 있는 거 아시죠?? _지영]

    [푸근한 푸우여서 좋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_혜연]

    [바보 6명 맡으시느라 고생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_린]

    편지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자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져 더 감성적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진정이 되지 않을 때 인기척이 들렸다.

    “앞에 봐봐요.”

    목소리가 들려 앞을 바라보니 케이크를 들고 이나라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나라뿐만 아니라 옆에는 멤버 전원이 다 와 있었다.

    언제 온 건지 모르겠다.

    애들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근처까지 와도 모르시더라고요?”

    “편지가 좀 감동이었겠지~”

    이나라가 웃으며 말하자 옆에 있던 서지영도 한소리 했다.

    감동이었던 건 인정.

    “어? 근데 운 거 같은데? 눈시울 봐봐. 붉어진 거 같은데?”

    “진짜?”

    신희진이 내 얼굴 앞으로 불쑥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얼굴이 너무 가까이 와서 부담스러워 얼른 얼굴을 뗐다.

    “에헤이, 저리 가라. 한번 말했다.”

    “싫은데? 싫은데?”

    “볼 건데? 볼 건데?”

    서지영과 유미소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애들이 장난이 꽤 심해 이런 건 수는 잘 안 줬는데 하나 잡았다고 방방 날뛰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팔 아프니까 초나 불어줘요.”

    “어.”

    다행히 이나라가 케이크를 내 앞에 가져다 대면서 화제를 돌려줘서 한숨 돌렸다.

    후하고 불자 애들이 폭죽을 터트리며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상자는 아직 안 열어봤어요?”

    “어? 어.”

    “열어봐요.”

    이나라의 말에 상자를 열어보니 신발이 있었다.

    신고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운동화.

    “뭐로 줄까 고민하다가 맨날 걸어 다니는 게 직업이니까 편한 운동화로 골랐어요.”

    “…고마워.”

    애들 얼굴을 한명 한명 쳐다보다가 말했다.

    “뭘요.”

    “언니가 사준 거 아니잖아! 다 같이 모아서 사준 건데 왜 언니가 생색 내!”

    “대표로 말한 거든?”

    서지영이 투덜대며 이나라에게 태클 걸자 이나라의 눈썹이 휘어지더니 서지영에게 으르렁댔다.

    “오늘 진짜 모른 척하느라 죽는 줄.”

    “차에서 오빠가 다 안다는 듯 이야기했을 때가 최대 고비였어.”

    박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자 유미소도 같이 말했다.

    “아니지. 연습실에서 희진 언니가 생일 이야기 꺼냈을 때 식겁했잖어.”

    “그때 내 인생 연기한 듯.”

    “나도.”

    이번엔 서지영의 말에 신희진이 가슴을 펴며 뿌듯하게 말했다.

    옆에서 유코도 웃으며 신희진의 말에 동조했다.

    “희진이 연기 잘하드라. 태연하게 말하면서 그렇게 쥐락펴락하는 거 보고 감탄함.”

    이나라가 나를 보면서 말하다가 엄지를 척하고 신희진에게 보냈다.

    “차에서도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나는. 꾹 참느라. 자는 척. 했는데.”

    애들도 오늘 나름의 사투를 벌인 듯했다.

    유미소가 케이크를 들고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는 걸 보고 유미소에게 말했다.

    “야, 케이크 묻히려 하지 마. 아깝잖아.”

    “재미가 먼저 아니겠어요?”

    유미소가 음침하게 웃으면서 일발 장전했다.

    그렇다면….

    “너네 먹으라고 줄려고 했는데? 나 케이크 잘 안 먹어.”

    “거기까지!”

    내 말에 신희진이 나와 유미소 사이를 황급히 끼어들어 바리게이트를 쳐줬다.

    “아무튼, 오늘 정말 고마웠어. 늦었으니까 들어가서 쉬어.”

    “네~ 그래도 이왕이면 파티라도 하고 싶었는데 너무 바쁘시니까….”

    내 말에 이나라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냐, 이걸로 충분했어.”

    “그럼 다행이고요.”

    내 말에 애들이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조금 찝찝했던 듯했다.

    이걸로도 충분했는데.

    “가볼게요!”

    “쉬세요!”

    “케이크 먹을 사람?”

    “나!”

    스타즈 애들이 왁자지껄하게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애들이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진한 여운이 남았다.

    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했는데 시간보다 눈에 띄는 메시지가 보였다.

    [남진수 팀장님 : 생일 축하하고, 오늘 야근은 우리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 일찍 보내주려고 했는데 애들이 해줄 거 있다고 말하더라.]

    [이진성 실장님 : 생일 축하한다.]

    철두철미하게 꾸몄네.

    기분 좋은 허탈감과 함께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다.

    * * *

    “예쁘죠?”

    린의 뒤에서 린의 얼굴을 만지며 유미소가 말했다.

    “네, 맞아요. 시사회 때. 입고 간 옷이에요.”

    그리고 린이 내가 붙잡고 있던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하는 건 린의 생일 겸 팬들과의 소통을 위한 Y앱이었다.

    “나풀나풀~”

    서지영이 나비모양의 손짓을 하며 옆에서 놀고 있는 게 너무 거슬렸다.

    왜냐하면, 저건 이번 타이틀곡 안무였기 때문이었다.

    서지영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눈을 피하며 그만두는 모습이 보였다.

    한숨이 절로 나오네.

    “활동 언제 다시 하냐고요?”

    “글쎄요….”

    신희진이 Y앱에 올라오는 채팅을 읽자 이나라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며 대꾸해줬다.

    “커밍쑤운?”

    “유코 언니가 올라오는 글 읽은 거예요. 저희도 언제 컴백할지 잘 몰라요.”

    유코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하자 박혜연이 급히 수습했다.

    전부 다 티를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촬영 전에 노래, 안무 스포 금지라고 못을 박았거늘.

    시간을 보니 슬슬 끌 시간이 되어 애들에게 촬영 종료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오늘 축하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이만 가볼게요! 모두 안녕!”

    스타즈 애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내가 전원을 끄고 카메라를 내리자 애들이 내 눈을 피했다.

    “미소야….”

    “왜요. 뭐요.”

    내가 나직하게 부르자 자신을 왜 부르냐는 듯 유미소가 당당하게 대꾸했다.

    “스포하지 말랬지?”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어휴.”

    유미소가 얄미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서지영을 바라봤다.

    “서지영 너도.”

    “저요?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해? 안 했어? 정말로?”

    “아, 쫌 넘어가요.”

    “티 안 내면 안달 나?”

    “네.”

    내 말에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짓다가 재차 강하게 묻자 혀를 내미는 서지영을 보니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콱 그냥.”

    “어? 때리려는 거예요? 지금? 신고할 거예요!”

    “허허….”

    저번 내 생일 이후로 애들과 부쩍 친밀감이 형성됐다.

    그래서 그런지 애들도 나를 대하는 게 정말로 한결 편하게 대했다.

    일로 만난 게 아니라 가족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근데 왜 린이만 저런 거 주고 우린 안 줬어요?”

    “맞아. 우리도 예쁜 옷 좋아하는데!”

    애들 말을 무시한 채 묵묵히 촬영 뒷정리를 했다.

    여기서 답해주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이다.

    “아, 떨린다 떨려.”

    “내일이네.”

    “드디어!”

    “연습은 잘했어?”

    “당연하죠.”

    그래도 당장 노래 녹음이 내일로 다가와 있어서 들뜬 애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미니앨범도 아니고 첫 정규 앨범이었으니까.

    그리고 애들만 떨리는 게 아니었다.

    기대하고 있는 애들의 심정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이 내 몸을 감싸 쥐었다.

    레코딩 작업할 때 내가 디렉팅을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때문에 정인수 대표와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저번에 같이 Love Up&Down 녹음할 때 어떻게 하는지 잘 봤잖아? 내가 괜히 잘 보라고 한 줄 알아? 나는 안 가지만 민 팀장이 같이 가잖아? 잘 해봐’

    말이야 방구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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